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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편에서는 엘튼 브랜드와 안드레 밀러 콤비의 투맨 게임이 의외로 효과를 보지 못했던 이유와 모리스 칙스 감독이 경질된 이유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투맨 게임이 아직까지 포기할 단계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며 글을 마쳤다.

이제 이어지는 하편에서는 투맨 게임의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하여 두 선수 각각의 스타일을 분석하여 보고 어떤 조합이 가능한지, 가능성을 살릴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려 한다.


브랜드와 밀러 플레이 성향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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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밀러의 스타일을 분석해보자.

밀러는 픽 앤 롤에 어울리는 선수는 아니다. 패스 자체가 어깨를 축으로 하여 뿌리는 패스(종으로 가로지르는 체스트 패스 유형)에 능하며, 바운드 패스도 수준급이긴 하지만 선호하는 편은 아니고 체스트 패스에 비해서 시야 확보나 공간 창출에 잘 활용하지도 못하는 편이다.

또한 밀러는 민첩성이나 순발력이 뛰어난 선수가 아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그의 드리블 스킬은 대부분 순간적으로 생기는 수비수의 틈새를 파고들거나 숄더 페이크 등을 활용하여 순간적으로 공간을 만들어 파고드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즉, 순간 반응 속도는 뛰어난 편이지만 운동 능력 자체는 평범하여 돌파 동선은 잘 만들지언정 직접적인 공간 창출에 유용한 유형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밀러는 픽 앤 롤에는 강점을 보이는 선수가 아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픽 앤 롤에서 메리트를 상실한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시즌 들어서 중거리 슛의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즉, 앞 선에서 공간을 창출하는 능력이 지난 시즌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진 것인데 이것은 결국 밀러의 공간 창출 능력이 극히 제한적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많은 이유들은 밀러가 픽 앤 롤에서는 그리 강점을 보이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들이 되었다.

하지만 픽 앤 팝에 이르면 얘기가 달라진다.

밀러는 직접적인 공간 창출에는 다소 약점이 있는 선수이지만(이런 이유로 인해서 중거리 슛이 호조를 띄던 지난 시즌에도 혼자 공간을 만들어서 풀업 점퍼를 던지기 보다는 픽 앤 점퍼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돌파 동선을 만드는 재주는 탁월한 선수이다. 또한 종으로 뿌리는 패스에 능하며 패스할 때에 어깨를 잘 활용하기 때문에 킥아웃에도 상당한 강점을 보인다. 더욱이 돌파 이후 마무리는 리그에서도 수위 급의 능력을 자랑한다. 즉, 픽 앤 롤과는 달리 픽 앤 팝의 개시자로서는 상당한 메리트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브랜드는 어떠할까. 브랜드는 전형적인 로우 포스트 플레이어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치지만 그의 주 무기는 중거리 슛이다. 포스트 업 이후 턴어라운드 점퍼는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어느 위치에서건 높은 타점을 자랑하는 중거리 슛은 그의 로우 포스트 플레이를 더욱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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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의 진정한 가치는 훅 슛을 비롯한 로우 포스트 플레이가 굉장히 탄탄하고 기본기에 충실하며 또한 다양하다는 것에 있지만, 중거리 슛이 그의 공격에 다양성과 창의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역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킥아웃 능력은 준수한 편이다. 팀 던컨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준수하고 꾸준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또한 중거리 슛 능력이 있기 때문에 페이스 업도 평균 이상으로 해줄 수 있는 선수이지만, 기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것은 포스트 업을 바탕으로 한 미들레인지 게임, 혹은 로우 포스트 게임이며 이를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픽 앤 팝이다.

이상으로 두 선수의 스타일을 각기 분석해 보았다.


2대2 옵션의 종류와 활용 방안은?

두 선수의 스타일을 분석해본 결과 나온 결론은 두 선수 모두 픽 앤 팝을 주 옵션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 코트 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는데, 두 선수의 투맨 게임이 많이 나왔던 프리시즌과 시즌 초반에는 두 선수의 투맨 게임 상당수가 픽 앤 팝으로 귀결되었던 적이 많았다. 즉, 픽 앤 팝은 밀러-브랜드 투맨 게임의 핵심인 것이다.

두 선수의 투맨 게임이 서서히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 이유 또한 이러한 픽 앤 팝을 위주로 한 투맨 게임이 점차 호흡이 맞아들면서 공간 창출 능력이 점차 좋아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팀 내 공격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던 브랜드의 중거리 슛과 밀러의 돌파의 원동력이 바로 두 선수가 펼치는 투맨 게임에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공간 창출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과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의 의미가 비로소 이해가 될 것이다. 즉, 여러 가지 악재에도 불구하고 두 선수가 점차 호흡이 맞아 들어가면서 그들이 시도했던 전술들 중 몇 가지는 분명히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픽 앤 팝이 그 자체로써만 효과를 발휘하기는 쉽지가 않다.

디트로이트 시절의 천시 빌럽스의 사례는 이에 대한 훌륭한 예시인데, 뛰어난 중거리 슛 능력, 감각적인 드리블, 적절한 킥아웃 능력, 다양한 공간에 넣어줄 수 있는 패스 능력, 다소 평범한 운동능력까지.

빌럽스는 밀러와 여러 가지 요소에서 상당히 닮은 선수였다. 그리고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투맨 게임에서 단골 메뉴처럼 사용되던 것이 바로 픽 앤 팝이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의 픽 앤 팝은 필라델피아의 그것과는 달리 매우 위력적이었다.

같은 픽 앤 팝이고, 각 팀에서 이것을 적용하는 선수들의 능력 또한 마찬가지로 큰 차이가 없었음에도 두 팀에서 이러한 차이가 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점은 적용 옵션의 다양성에 있다.

쉽게 말해서 빌럽스를 축으로 한 투맨 게임은 픽 앤 팝 외에도 다양한 옵션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서 주 옵션 중 하나인 픽 앤 팝의 위력이 극대화되는 효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빌럽스나 밀러나 픽 앤 롤에는 크게 강점이 없는 선수라는 점이다.(빌럽스는 이번 시즌의 밀러보다 공간 창출 능력이 뛰어난 선수이지만, 기본적으로 운동 능력이 평범한 편이라 픽 앤 롤에 걸 맞는 직접적인 공간 창출 능력은 다른 픽 앤 롤 전문 가드들에 비해서 다소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빅맨 들도 롤러로써의 위력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선수들의 선호도 문제도 있고, 가진 능력의 문제도 있지만 두 팀 모두 주축이 되는 빅맨 들의 롤링 능력이 높은 편은 아니다.) 즉, 픽 앤 롤이라는 픽 앤 팝과 더불어 투맨 게임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전술을 쓰기에는 빌럽스나 밀러나 다소 부족한 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의 픽 앤 팝은 필라델피아와는 달리 매우 위력적인 공격 옵션이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픽 앤 롤이 없음에도 다양한 투맨 게임 옵션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픽 앤 점퍼이다. 빌럽스의 중거리 슛과 3점 슛은 팀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위력적이며, 그 정확도 또한 매우 높다. 거기에 클러치 상황에서도 높은 적중률을 자랑하기 때문에 그 효용성이 매우 높은 공격 옵션이다.

이 픽 앤 점퍼를 바탕으로 과거 디트로이트의 투맨 게임은 픽 앤 롤과 픽 앤 팝이 아닌, 픽 앤 점퍼와 픽 앤 팝, 그리고 픽 앤 아이솔레이션을 축으로 하여 전술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이런 상황으로 인해서 픽 앤 슬립까지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간 창출 능력이 높아졌다는 것에 있다.


전술수행의 악재는 무엇인가?

원래 픽 앤 슬립은 픽 앤 롤에 능한 콤비 들이 그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서 사용하는 전술이다.

하지만 픽 앤 롤이 능하지 않음에도 디트로이트에서는 픽 앤 슬립이 가능했다.(물론 상대적으로 비중이 높았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양한 옵션의 적용이 가능함으로 인해서 공간 창출 능력이 높아졌고, 이로 인해서 로우 포스트에 빅맨이 침투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픽 앤 점퍼와 픽 앤 아이솔레이션이 위력을 발휘한다면, 픽 앤 롤이 안 된다는 약점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디트로이트에는 윙 사이드에서 공간을 벌려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슈터들이 존재했다. 프린스와 해밀턴이 그들이다. 특히 프린스 같은 경우 사이드에 파생되는 오픈 찬스를 이용하는 능력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투맨 게임의 공간 창출 능력은 더욱 향상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필라델피아는 위에서 적용된 중요한 옵션들 중 픽 앤 점퍼, 윙 사이드 오픈 점퍼가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로 인해서 픽 앤 슬립 또한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즉, 투맨 게임이 본연의 다양성을 상실한 채 단지 픽 앤 팝과 픽 앤 아이솔레이션 만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물론 이 두 가지는 시즌 중 많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위력을 되찾았지만, 필라델피아가 원하던 수준까지는 아니다. 결국 아직까지는 가능성만 어느 정도 보여준 상태인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밀러의 중거리 슛 부진이다. 밀러가 중거리 슛 능력을 상실하면서(지난 시즌까지 밀러의 중거리 슛은 사이드라인에서도 상당히 정확했다. 그리고 이런 사이드라인에서의 확률 높은 슈팅 능력은 픽 앤 점퍼뿐만 아니라 픽 앤 슬립을 사용하게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준다.) 지난 시즌 주요 전술 포맷 중 하나였던 픽 앤 점퍼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두된 것이다.

또한 이궈달라의 예상치 못한 슈팅 슬럼프는 그에게 디트로이트의 프린스나 해밀턴과 같은 역할을 기대했던 팀에게 있어서 크나큰 악재로 작용하고 말았다.

거기에 영은 슈터로써 상당히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아직까지 윙 사이드에서 오픈 찬스를 활용하는 능력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고, 이것은 더욱 더 두 선수의 투맨 게임에 나쁜 영향을 주고 말았다. 즉, 야심차게 시도했었던 투맨 게임이 두 가지의 큰 악재로 인해서 시즌 초반부터 다양성과 파생 효과 두 가지 모두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팀의 행보는 두 선수의 활용에 있어서 더욱 문제점을 야기하고 말았다.

칙스 감독 경질 이후 딜레오 감독 대행이 야심차게 준비한 전술 포맷. 즉, 지난 시즌으로의 귀환은 투맨 게임의 비중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졌고, 또한 지난 시즌 이 전술에 있어서 상당히 큰 위치를 차지했던 밀러의 중거리 슛 옵션이 사라짐으로 인해서 지난 시즌 이상의 위력은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거기에 브랜드가 부상으로 장기 결장이 예상됨에 따라(무리해서 이르게 복귀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어깨 부상은 슈팅 컨디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즉, 투맨 게임의 효용성은 더욱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분명히 현재 시점에서 더욱 높은 곳을 바라보려면 필라델피아는 밀러-브랜드의 투맨 게임을 보다 적극적으로 시도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그 이유는 여러 제약으로 인해서 극도로 좁아진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상당히 타이트한 수비를 맞이했음에도 두 선수가 추구했던 픽 앤 아이솔레이션과 픽 앤 팝은 시즌이 지날수록 그 위력이 증가되는 추세였기 때문이고, 또한 결정적인 순간 이 두 가지 전술이 경기 흐름을 바꾸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즉, 두 선수의 공존이 초반 잇따라 일어난 악재로 인해서 모두의 기대치를 전혀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시즌이 지날수록 서서히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다른 선수들의 지원이 거의 없이 이 정도까지 해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다.)

특히 칙스가 경질되기 직전 몇 경기들 중 투맨 게임의 비중이 높았던 때에는 두 가지 전술만을 가지고도 시즌 초기에 비해서 그 위력이 상당히 대단했으며, 안정감 또한 눈에 띄게 좋아졌었던 것도 사실이다. 두 선수의 공존은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그 시너지 효과는 점차 높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상황에 밀러의 슈팅이 다시 제자리를 찾고, 이궈달라의 슈팅 또한 제자리를 잡게 된다면 두 선수의 투맨 게임은 비로소 제 위력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두 선수의 공존 가능성을 아직까지는 시험해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시즌까지 밀러-이궈달라-영은 상당히 훌륭한 조화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브랜드가 가세한 필라델피아는 지난 시즌만큼의 조화를 아직까지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브랜드만으로 야기된 문제가 아니다.

분명히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밀러와 이궈달라의 슬럼프였으며, 거기에 더불어 브랜드의 활용 미숙, 벤치 멤버 활용 미숙 또한 중요한 문제점으로 작용하여 현재의 부진이 생기게 된 것이다.


Outro

겉으로 보기에는 브랜드의 영입이 가장 큰 문제인 듯 보이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면을 들여다보면 브랜드의 영입 그 자체보다는 다른 여러 가지 악재들이 필라델피아의 경기력을 떨어뜨린 진정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필자는 브랜드의 영입에 대해서 아직까지 긍정적인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또한 밀러-브랜드 콤비에 대한 희망의 끈도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다.

팀의 부진은 단순히 브랜드의 영입 실패로 인한 것이 아니다.

분명히 가장 큰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으며, 거기에 브랜드가 제대로 녹아들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다. 결국 밀러-브랜드 콤비 플레이의 진정한 위력은 아직 발휘되지 못했다. 그리고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는 아직까지 충분히 시험해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역시 새로운 감독의 결단이 필요하다.

딜레오 감독 대행은 부임 이후 지난 시즌의 포맷으로 돌아가고자 의도적으로 브랜드의 활용 범위를 좁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팀 내 최고의 선수에게 특별한 문제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선수를 배재한 채 공존의 방향을 모색하지 않는 것은 그리 올바른 선택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팀은 그러한 선택 이후 3연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 경기력은 그리 만족스러운 편이 아니었으며, 결국 천적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보스턴 셀틱스에게 완패를 당하면서 2연패의 안 좋은 분위기 속에서 서부 원정 5연전을 떠나게 되었다.

이쯤에서 딜레오 감독 대행은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지난 시즌의 포맷으로 돌아가 지난 시즌 수준의 경기력을 되찾을 지를 고민하기 보다는(필자는 현재의 밀러와 이궈달라의 경기력으로는 절대 지난 시즌 수준의 경기력을 찾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즉, 이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끝날 확률이 크다. 물론 브랜드가 아웃된 현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겠지만, 문제는 브랜드 복귀 이후일 것이다. 그리고 승부수를 걸어야할 시점 또한 브랜드 복귀 이후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브랜드를 팀에 빨리 녹아들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브랜드가 설사 빠르게 복귀한다 하더라도, 브랜드 부상 직전처럼 의도적으로 브랜드의 비중을 줄인 채 경기에 임한다면 필라델피아는 앞으로 강팀을 이길 수 있는 저력을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부진에 빠진 이궈달라와 밀러를 축으로 하여 지난 시즌의 포맷을 답습하는 것은 결국 분명한 한계가 올 것임을 딜레오 감독 대행이 빨리 깨달았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램이다.

농구는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다. 한 명과 한 명, 한명이 각기 플레이하기 보다는 한 명 한 명이 모여 두 명의 농구, 세 명의 농구를 펼칠 때 비로소 강팀의 저력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 농구라는 스포츠의 매력이다.하지만 브랜드 영입 이후 잇따른 악재로 아직까지 필라델피아는 다섯 명의 농구를 펼쳐보지 못했다.

이제 충분히 시간은 흘렀고, 그동안의 부진으로 인해서 결국 감독은 교체되었다. 더 이상은 각각의 플레이를 하면서 약한 모습만을 보일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감독은 교체되었고, 최후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감독이 교체된 이 시점에서 더 이상의 부진이 이어진다면 결국 팀을 떠나는 것은 감독이 아닌 선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쪼록 모두가 힘을 모아서 진정한 저력을 되찾기를 기원해본다.

필라델피아는 충분한 저력을 가진 팀이다. 비록 슈퍼스타는 없지만 농구는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고, 필라델피아는 이미 이것을 지난 시즌에 충분히 증명한 적이 있다.

다섯 명이 함께 힘을 모아 경기에 임하여 돌풍을 일으켰던 지난 시즌을 다시금 기억해야만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선수가 영입된 현 상황에서 지난 시즌에만 머물러 있으면 더 이상의 발전을 할 수가 없다. 새로운 선수들과 함께 새롭게 힘을 모아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섯 명이 새롭게 힘을 모아 하나의 팀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순간 다시금 필라델피아의 비상은 시작될 것이다.

하루 빨리 진정한 비상을 이루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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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DREAM TIME 2008. 12. 25. 12:49

한 눈에 보는 NCAA 농구 입문 가이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본 가이드는 이제 NBA가 좀 질려서 싱싱한 영계(?)들이 보고 싶은데 NCAA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거나 뭐가 뭔지 도통 모르시겠다는 분들, 그리고 NCAA를 '엔씨더블에이'라고도 한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분들을 위해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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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AA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
 
미국 대학 스포츠는 '대부분' 이 NCAA라는 이름하에 치러진다. 오늘 이야기할 NCAA 농구를 비롯해서 NCAA 미식축구, NCAA 야구, NCAA 축구, NCAA 발리볼 등 다양한 종목이 있다는 이야기다. 유학중인 지인의 이야기로는 시즌 중에 미식축구의 인기가 더 좋은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상관할 바 아니고 아무튼 NCAA는 우리식으로 따지자면 대학 체육협회, 대학연맹정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외에도 몇몇 대학연맹과 함께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하지만, 상당히 마이너하다.)

이 NCAA는 다시 디비전 I, II, III로 나뉜다. 상식적으로도 미국에 대학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래서 그 대학들이 한 번에 다 붙을 수는 없으니 다시 학생 수, 규모, 역사 등을 고려하여 분류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 전역의 모든 대학이 전부 디비전에 소속된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디비전에 껴줄만한 레벨이 되어야 NCAA 공식전을 뛸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NCAA라 하면 바로 이 디비전 I을 지칭하는 것이다.
 
디비전 I에 소속된 대학은 336개인데, 몇 년 전만해도 그 수가 310여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연히 이 336개 대학을 전부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따라서 실제로 알 필요도 별로 없다. 듀크, 노스캐롤라이나 등 유명한 대학 말고도 우리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른바 ‘듣보잡’ 대학들도 많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디비전 I에 속했다면 디비전 II, III의 대학과의 실력 차는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약체 대학(대략 300위 정도에 랭크 된 대학)선수들이라도 다 날아다닌다. 물론 한 시즌 동안 이 많은 팀들이 서로 다 경기를 치르는 것은 아니다. 인근 지역 학교들끼리 모여 독립된 컨퍼런스(Conference)를 구성하고 주로 같은 컨퍼런스 내 팀들과 시합을 갖게 된다.
 
NCAA에서의 컨퍼런스 분류는 NBA처럼 양대 컨퍼런스로 깔끔하게 나누는 게 아니라 앞서 말한 대로 지역별로 대학을 묶어 만든 것인지라 그 개수가 굉장히 많다.(무려 31개) 이렇게 된 까닭은 전미 디비전I 소속 대학을 다 모아 한 번에 컨퍼런스를 나눈 것이 아니라 인근 학교들끼리 모여 컨퍼런스를 만들고, 또 만들고를 반복하다보니 그런 것이다. 그렇다보니 디비전 I 소속 대학 중에 어떤 컨퍼런스에도 소속되지 않은 대학들도 존재하는데 이 대학들을 묶어 독립팀(Indefendentsd)이라 칭한다. 2008 시즌 기준으로는 11개 팀이 컨퍼런스를 못 찾고 독립팀에 머무르고 있다.

정리
1) NCAA는 미국 대학 스포츠 연맹전이라 생각하면 된다.
2) NCAA 바스켓볼은 수준에 따라 디비전 I, II, III로 분류하며 그 대학 수는 굉장히 많다.
3) 우리가 말하는 NCAA는 일반적으로 디비전 I만을 지칭한다.
4) 디비전 I에는 336개 대학이 있고 이 대학들은 31개 컨퍼런스에 각각 소속되어 있다.
5)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대학들은 그냥 독립팀이라 칭한다.
    

NCAA 디비전 I의 소속 대학들의 연간 스케줄
 
NCAA 소속 대학들은 일반적으로 연간 3~40 회의 시합을 치른다. NBA와는 달리 연간 스케줄이 정해져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각 대학의 자율에 맡기는데 기본적으로 컨퍼런스 내 팀들끼리 홈&어웨이로 2회씩 시합하는 것은 반 의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와 함께 이 성적을 바탕으로 한 컨퍼런스 내 단판 토너먼트 역시 의무인데 이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는 팀은 NCAA 65강 토너먼트, 이른바 '3월의 광란(March Madness)' 직행 티켓이 주어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컨퍼런스가 없는 독립팀들과 공부 잘하는 학생을 모아놓은 아이비  리그만큼은 예외적으로 토너먼트를 시행하지 않기 때문에 총 30개 컨퍼런스에서 토너먼트를 시행하는 셈이다.
 
즉, 일반적인 컨퍼런스의 소속팀이라면 컨퍼런스 내 팀들과 홈&어웨이로 2회씩 시합을 치르고 다시 단판 토너먼트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코치 성향에 따라 타 컨퍼런스 소속팀들과 공식적인 친선경기를 추가로 치른다. 이 성적은 모두 해당년도 정규시즌 성적에 포함되기 때문에 결코 우습게 볼 수 없지만 약팀들과만 맞붙어 승수를 쌓는 것은 향후 랭킹선정에서 보정을 받기 때문에 강팀들과 적절히 싸우면서 승수를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게 정규시즌이 마무리 된 후에는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65강 토너먼트를 치르게 된다. 이 토너먼트가 3월에 열리기 때문에 ‘March Madness‘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이 토너먼트에 대해서는 밑에서 다시 자세히 설명하겠다.

이렇게 3월의 광란이 마무리 되고 토너먼트 우승팀이 결정되면 그 해 NCAA 시즌은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정리
1) 컨퍼런스 팀들끼리 홈&어웨이로 2회씩 시합 (한 컨퍼런스는 보통 7~10개 팀 정도)
2) 독립팀, 아이비리그 제외한 30개 컨퍼런스에서는 토너먼트 실시 (토너먼트 우승 시 65강 토너먼트 진출권 획득)
3) 이외 타 컨퍼런스 소속팀들과의 시합으로 정규시즌을 보냄
4) 정규시즌 종료 후 65강 토너먼트가 열리고, 이 토너먼트의 종료와 함께 NCAA의 한 시즌도 마감된다.


NCAA의 꽃! 65강 토너먼트, 3월의 광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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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했다시피 30개 컨퍼런스에서 실시되는 토너먼트 우승팀에게는 65강 토너먼트 진출 자격이 주어진다. 여기에 더해 토너먼트는 치르지 않지만 독립된 컨퍼런스로 당당히 정규시즌을 치르는 아이비 리그의 경우 정규시즌 우승팀이 토너먼트 우승팀과 마찬가지로 토너먼트 진출권을 획득한다. 자, 이제 남은 자리는 34개가 되었다.
 
이 나머지 34개 자리를 채우는 것이 NCAA의 묘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정규시즌 성적이 중요한 기준이 되지만 스케줄을 자유롭게 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막연히 승률 순으로 진출권을 건내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또 강팀들이 몰려있는 컨퍼런스 소속팀들이 손해를 보는 측면도 있고 말이다. 때문에 나머지 34개 팀을 선정하는 독립된 선정위원회가 존재한다. 이들은 31개 팀을 제외한 나머지 305개 팀들의 시합을 분석하여, 얼마나 강한 팀들과 상대했는지 또 그 성적이 어땠는지, 최근 성적은 좋은지 나쁜지 등을 고려하여 랭킹을 발표한다. 이 랭킹 산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진 것이 바로 NCAA 공식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RPI 랭킹이다. 이외에도 시즌 도중에 각종 언론기관, 스포츠 전문사이트에서 예상 랭킹을 발표하는데 신뢰도가 높아 객관적이라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AP랭킹과 ESPN랭킹을 들 수 있다 .
 
물론 이렇게 결정된 토너먼트 진출 팀에 모두 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아슬아슬하게 막차 탄 하위 랭킹 팀들과 가까스로 합류할 수 있으리라 예상되었으나 결국 떨어지고 만 팀들은 완전히 희비가 교차하고 마는데, 이 후 이런저런 잡음이 토너먼트 시작할 때 까지도 끊이질 않는다. 뭐, 그게 또 재미라면 나름 재미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65개 팀을 선정하면 랭킹 순으로 토너먼트 대진표를 완성한다. 대진표는 크게 4지역(Region)으로 구분되는데, 최상위 랭킹 1-4위 팀들을 각각의 Region 1번 시드에 배치한다. 이후 1위와 '64~65위 중 승자', 2위와 63위, 3위와 62위, 4위와 61위를 대진시키고 이후 랭킹에 따라 역순으로 대결하게 된다.(이건 일반적인 토너먼트 대결에서 다 쓰는 방법이다.)
 
본래는 64강 토너먼트였지만,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1팀이 더 추가되었고 64위 팀과 65위 팀의 '진짜 토너먼트' 진출을 위한 외나무다리에서의 혈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한다. 이 토너먼트는 3월 한 달 내내 펼쳐지고 이후 4강과 결승은 4월 초에서야 끝나기 때문에 이를 가리켜 3월의 광란, March Madness라 한다.
 
이중에서도 16강, 8강, 4강에는 특별한 애칭이 있는데 각각 Sweet Sixteen, Elite Eight, Final Four라 명명됐다. 특히 파이널 포(Final 4) 같은 경우엔 각각의 Region 우승팀이 맞붙는다는 상징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준우승 보다 파이널4 진출을 더 널리 선전(자랑)하는 경향이 있을 정도다. 고교생, 외국인들의 유입이 덜하던(지금이야 강제로 대학가야 되지만)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이 파이널4 경험의 유무는 드래프트 랭킹에 큰 영향을 미치곤 했다. 그만큼 큰 시합에서 얼마나 강한지, 또 단판 승부 연속인 토너먼트에서 어디까지 헤쳐 나갈 수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척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Final 4가 보통 주말에 열리고, 결승은 다음 주 월요일 즈음, 평일에 열리곤 한다.

정리
1)  65강 토너먼트 진출 팀 = 각 컨퍼런스 토너먼트 우승팀 (30) + 아이비리그 정규시즌 우승팀(1) + 랭킹산정 순으로 34팀
2) 1위 vs 64-65위 승자 / 2위 vs 63위 / 3위 vs 62위 / 4위 vs 61위 와 같은 식으로 대진표 결정.
3) 랭킹 1,2,3,4위 팀은 아무리 빨라도 준결승까지 가야 맞붙을 수 있고, 이는 각 지역(Region)을 제패했다는 의미.
4) 16강, 8강, 4강엔 각각 애칭이 있고, 그 중 4강인 Final 4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주목해야 할 만한 컨퍼런스
 
이제 디비전 I의 구성과 컨퍼런스 내 토너먼트, 그리고 3월의 광란까지 전반적인 시스템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는 아셨으리라 생각된다. 그럼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무려 336개나 되는 대학들과 31개의 컨퍼런스 중 어디에 관심을 두어야할지 고민이 되지 않는가? 그래서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할 컨퍼런스만 몇 개 소개할까 한다.

NBA에서 사우스웨스트 디비전이 최강팀들이 몰려있는 죽음의 디비전인 것과 마찬가지로 NCAA에도 강팀들이 몰려있는 컨퍼런스가 있다. 이른바 6대 컨퍼런스라고 하는데 최근 부침을 겪고 있는 팀도 몇몇 보이지만 이 컨퍼런스에 속한 팀들은 전통적으로 아주 강력한 모습을 보여 왔고, 지금까지 NCAA 역사를 논하는 데 있어 결코 빠질 수 없는 팀들이 대부분이다. 6대 컨퍼런스는 다음과 같다.
 
애틀랜틱 코스트 컨퍼런스(ACC) - 듀크, 플로리다 주립, 노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주립, 메릴랜드 등
빅 이스트 컨퍼런스 - 조지타운, 피츠버그, 빌라노바, 마켓 등
빅 10 컨퍼런스(Big-10) - 오하이오 주립, 위스콘신, 미시간 주립, 인디애나 등
빅 12 컨퍼런스 - 캔자스, 텍사스 A&M, 텍사스, 오클라호마 주립  등
퍼시픽 10 컨퍼런스(Pac-10) - UCLA, 애리조나, 오레건, 워싱턴 주립, 스탠포드 등
사우스이스턴 컨퍼런스(SEC) - 플로리다, 테네시, 켄터키, LSU 등
 
이상 6개 컨퍼런스는 항상 관심이 집중되는 컨퍼런스로 토너먼트 우승 팀 이외에도 매년 3-4팀 정도 꾸준히 65강 토너먼트에 합류시킬 정도로 강한 컨퍼런스다. 여기에 최근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는 컨퍼런스도 있다. 컨퍼런스 USA(C-USA), 웨스턴 애슬레틱 컨퍼런스(WAC), 마운틴 웨스트 컨퍼런스(MWC), 애틀랜틱 10 컨퍼런스(A-10)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NCAA 토너먼트만 있냐? 우리도 있다 - NIT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만 잘 기억해도 NCAA 관전시의 재미가 2배는 더 높아질 것이라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NIT에 대해서만 가볍게 설명해보겠다. NIT는 Nationcal Invitation Tournament의 약자로 원래 NCAA 토너먼트 보다도 오히려 더 먼저 시작한 전미 대학 토너먼트였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위치가 역전되어 버린데다 열리는 시기마저 NCAA 토너먼트와 겹쳐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랭킹 1위~65위까지의 팀들은 죄다 NCAA 토너먼트에 참여하는 관계로 NIT에는 66위 이하 팀들이 초청을 받아 대회를 열게 된다. 일종의 챔피언스 리그와 UEFA컵의 개념이라 해야 할까? 이 NIT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도 빅 리그 입성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선수들은 마지막 기회를 붙잡기 위해 무척 치열한 시합을 펼친다.(여담이지만 필자가 응원하는 LSU는 전력상 NCAA토너먼트와 NIT를 왔다 갔다 한다)

할 만한 이야기는 모두 풀어놓은 것 같다. 아무쪼록 NCAA에 막 도전하시려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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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필라델피아 76ers를 응원하는 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화두는 무엇일까?

루이스 윌리암스의 리딩 플레이어로써의 자질? 안드레 이궈달라의 슈팅 가드 전향 실패? 테디어스 영의 스몰 포워드 정착 여부? 물론 이런 주제들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는 있지만 이런 주제들보다도 논란이 되고 있는 화두는 바로 엘튼 브랜드와 안드레 밀러의 공존 여부이다.

오프 시즌 브랜드를 영입하면서 필라델피아 팬들은 많은 기대를 하였다. 그리고 그 기대는 비단 필라델피아 팬들 사이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유수의 전문가들도 대부분 브랜드의 영입으로 인해서 필라델피아가 상위권으로 약진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였으며, 프리 시즌에 그 시너지 효과가 어느 정도 드러나고 브랜드의 몸 상태가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양호한 상태라는 것이 증명되면서 그러한 예상들은 어느덧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28경기를 치른 현재 필라델피아의 순위는 동부 컨퍼런스 10위에 불과하며, 승률은 42.9%에 불과하다. 그리고 많은 팬들은 이런 결과가 온 이유로 이미 경질된 칙스 감독의 잘못된 벤치 멤버 운용, 이궈달라의 부진 등을 첫 손에 꼽고 있지만, 최근에는 브랜드와 밀러의 부조화 가능성 또한 새로운 이유로 떠오르고 있다.

감독 경질 이후 지난 시즌 전술 포맷을 다시 사용하면서 3연승을 달린 것이 그러한 의문들이 대두되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브랜드와 밀러는 공존하지 못하는 선수들인가. 또한 시즌 초반의 부진이 단순히 브랜드를 잘못 영입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는가.

필자는 이번 글에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 보려 한다.


브랜드 시너지의 부재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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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시즌만 하더라도 필라델피아 팬 들은 밀러와 브랜드가 코트에서 보여주던 시너지 효과로 인해서 고무되어 있었다.

이궈달라와 영을 필두로 한 외곽 자원들의 든든한 지원 속에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는 빛을 발하였으며, 이는 곧 팀의 전력 상승으로 이어졌다.(이것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이궈달라와 영의 외곽 지원이 활발했다는 것.)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가 가장 빛을 발한 경기는 10월 31일 뉴욕 닉스 전이었으며, 이 경기를 기점으로 하여 필라델피아 팬 들은 두 선수의 공존 가능성에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고 모든 것이 변하고 말았다.

역시 그 가장 큰 이유는 이궈달라의 부진이다. 프리시즌까지 40%의 3점 슛 성공률을 보여주던 이궈달라가 시즌 개막 이후 갑작스럽게 급격한 슬럼프를 보임에 따라 이궈달라와 영의 외곽 지원에 맞춰서 시즌을 준비하였던 브랜드와 밀러의 콤비 플레이 또한 큰 고비를 맞게 되었다.

프리 시즌에 브랜드의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시도하였던 2-1 세트 공격 전술은 그 한축을 담당했었던 이궈달라의 슬럼프로 인해서(예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2-1 세트가 제 효용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로우 포스트 옵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확실한 외곽 자원이다. 지난 시즌까지 필라델피아에서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슈터인 카일 코버를 축으로 2-1 세트가 빛을 발하였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효용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고, 더욱이 밀러마저 중거리 슛 난조로 인해서 외곽 득점 능력을 상실하면서 그 문제는 더욱 커지고 말았다.

결국 시즌 초반부터 오프 시즌 내내 준비했던 전술들이 예상외의 변수들로 인해서 모조리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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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와 브랜드가 오프 시즌동안 열심히 준비했던 픽 앤 팝과 픽 앤 점퍼, 픽 앤 아이솔레이션은 모두 2-1 세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전술들의 근간이 되는 2-1 세트가 완전히 제 기능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두 선수가 준비했던 수많은 콤비 플레이 또한 그 가치를 상실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후 필라델피아의 공격 시스템은 완전히 그 방향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오프 시즌동안 칙스 감독이 의욕적으로 준비했던 2-1 세트와 4-1 세트를 혼합한 하프 코트 오펜스 시스템과 이궈달라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트렌지션 오펜스 시스템의 결합은 하프 코트 오펜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2-1 세트가 무너지면서 시작부터 어긋나버리고 만 것이다.(트렌지션에서 밀러보다 이궈달라의 비중이 늘어났던 이유는 다소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하프코트 오펜스에서 밀러-브랜드의 비중이 컸어야 했고 이 때 밀러의 부담을 줄여주면서 트렌지션 오펜스는 이궈달라 중심으로 끌어가려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은 하프코트 오펜스 전술이 철저히 실패하면서 오히려 밀러가 속공에서도 지공에서도 제 자리를 못 찾고 표류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물론 브랜드가 표류했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2-1 세트가 무너지고 그로 인해서 브랜드가 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사실상 필라델피아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필라델피아는 시즌 초반부터 의도하지 않은(지난 시즌까지는 시도해본 적도 없는) 런 앤 건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게 되었고, 이것은 결국 시즌 초반 팀 운영의 실패와 성적 하락이 생기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시즌 초반부터 필라델피아는 브랜드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으며, 하프 코트 오펜스는 전혀 없는 어중간한 런 앤 건 팀이라는 평가까지 들어야 했다.

오프 시즌에 준비했던 수많은 전술 들이 그 축의 하나인 이궈달라의 붕괴로 인해 무너져버린 와중에 그에 대한 칙스 감독의 대응 또한 늦어버리면서 결국 예상치 못한 최악의 결과가 나오고 만 것이다.

결국 필라델피아는 9승 14패를 기록한 이후 감독 경질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칙스 감독이 오프 시즌동안 전술을 잘못 준비한 것 때문이라기보다는 급작스러운 팀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 부재와 잘못된 용병술 등으로 인해서 팀의 위기를 초래한 데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쯤에서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칙스 감독의 이번 시즌 가장 큰 패착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그 것은 윌리암스와 윌리 그린을 동시 기용한 1쿼터 후반, 혹은 2쿼터 초반의 벤치 사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이궈달라가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던 상황으로 인해서 팀컬러 자체가 어느 정도 트렌지션 오펜스에 맞춰진 상황이었다면, 첫 번째 벤치 멤버 기용은 안정적인 리딩 플레이어를 기용하면서 주전 멤버들이 만들어놓은 분위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갔어야 했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필라델피아는 1쿼터에 항상 상대팀보다 우월하거나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이궈달라가 극도의 부진을 보임으로 인해서 브랜드 활용에 심각한 제약이 따르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러-이궈달라-영-브랜드-사무엘 달렘베어로 이어지는 주전 라인업은 다소 런 앤 건으로 경기를 끌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대팀보다 우월하거나 대등한 경기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힘을 주었다. 하지만 윌리암스-그린의 동시 기용은 그러한 이점을 포기하게 만드는 악수였다.

밀러와 이궈달라가 노련하게 리딩을 하면서 경기력의 기복을 최소화했었던 주전 라인업과는 달리 윌리암스-그린의 라인업은 빠른 흐름 속에서 안정감을 유지할 수가 없는 라인업이었다.

확실한 스윙맨이 없는 필라델피아 라인업의 특성상 빠른 템포를 계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기복을 최소화해줄 수 있는 안정적인 리딩 플레이어이다. 하지만 리딩 플레이어와는 거리가 먼 선수들인 윌리암스-그린의 동시 기용은 극심한 기복과 더불어 안정감 상실이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겨 주었다.(필라델피아 경기 중 턴 오버가 가장 많이 나온 시간이 바로 이 두 선수가 동시 기용되었을 때이다. 거기에 두 선수의 동시 기용은 치명적인 스몰 라인업의 문제점까지 보이면서 수비에서도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수 모두에서 안정감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결국 칙스 감독이 브랜드를 축으로 한 안정감 있는 하프 코트 오펜스를 주로 하리라 예상했던 주전 라인업에 맞추어서 준비했던 빠르고 돌파력이 뛰어난 벤치 라인업인 윌리암스-그린 라인업이 예상과는 달랐던 주전 라인업의 운용으로 인해서 오히려 팀에 독으로 작용하고 만 것이다. 지난 시즌과는 달리 역습을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런 앤 건을 사용한 상황에서 템포를 조절할 능력이 부족했던 윌리암스-그린의 동시 기용은 최대의 악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칙스 감독 경질의 가장 큰 이유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잠시 이야기가 다르게 흘러갔는데, 이쯤에서 다시 브랜드-밀러 콤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시종일관 빠르게만 흘러가던 런 앤 건 팀으로써의 변모로 인해서 브랜드는 그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더욱이 밀러-브랜드 콤비는 프리 시즌부터 철저히 하프코트 오펜스에 맞춰서 준비된 콤비였다. 그랬기에 두 선수의 부진은 더욱 크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팀컬러의 급격한 변화가 예상치 못한 두 선수의 부진으로 이어지고 만 것이다. 두 선수가 심각하게 부진했다고 보기 보다는 팀 차원에서 두 선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그러면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 보자.

브랜드와 밀러는 공존이 가능할까?

그 답은 간단하다. 현재까지는 생각보다 잡음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시즌 초반부터 계속적으로 악재가 겹치고 변수가 많았던 것을 고려하면 아직 시도해볼 여지는 충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시즌 초반만 해도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의 비중은 현저히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팀에서는 가장 적극적으로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를 활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고, 실제로 두 선수가 호흡을 맞추는 횟수 또한 많았다. 하지만 이궈달라의 부진으로 인해서 시작된 미세한 균열은 두 선수 간의 리듬 차이로까지 이어지면서 투맨 게임에도 조금씩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결국 두 선수의 투맨 게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미래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분명히 칙스 감독 체재 아래에서 두 선수가 추구했던 투맨 게임은 공간 창출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가능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두 선수의 스타일을 각기 분석하여 볼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그 것을 바탕으로 하여 비로소 두 선수를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투맨 게임 조합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고, 또한 그 가능성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 그것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상편이 끝났습니다. 이어지는 하편에서는 밀러와 브랜드의 스타일 분석. 그리고 그 것을 통한 두 선수의 투맨 게임 활용 여부에 대해서 다루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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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랩터스의 슈터 제이슨 카포노의 3점 슛이 림을 돌아 나오자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르브론 제임스와 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가 리바운드를 잡기 위해 점프했다. 토론토 선수들은 공격리바운드를 포기하고 모두 백코트 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분명히 리바운드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여 분 전 이미 클리블랜드의 프랜차이즈 스틸 기록을 경신한 르브론은 일가우스카스를 흘끔 바라본 후 손을 내렸고, 일가우스카스는 볼을 한 번 바운드한 후 경기 네 개째의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마이크 브라운 클리블랜드 감독은 곧바로 타임아웃을 신청해 경기를 중단시켰고, 2만여 명의 홈 관중들은 일가우스카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일가우스카스는 덤덤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통산 리바운드 5,228개. 구부정한 등을 지닌 리투아니아 출신의 이 센터가 프랜차이즈 통산 최다 리바운드 기록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일가우스카스는 큰 키(221cm)를 제외하면 그렇게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다 그는 르브론처럼 높이 점프하지도 않고 벤 월러스처럼 강렬하지도 않다. 득점도 호쾌한 슬램덩크보다는 점프슛이 대부분이다. 하다못해 팀 후배 앤더슨 바레장처럼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그의 인간성에 대한 찬사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2007년 클리블랜드의 첫 번째 파이널 진출이 확정된 직후 일가우스카스에게 달려가 안겼던 르브론은 ‘그런 인간성을 지닌 선수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고, 브라운 감독은 ’그를 지닌 우리 팀은 정말 운이 좋은 것‘이라며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한 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라 말했다. 

브라운의 말이 맞다. 일가우스카스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려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는 NBA에서 첫 경기를 치르는 것부터 실력에 비해 훨씬 가혹한 운명과 싸워야 했다.

일가우스카스는 1975년 발트 3국 중의 하나인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났다. 1990년 소련에서 독립한 인구 350만의 이 작은 나라는 어린아이들이 매 처음 농구선수를 꿈꾸고, 자신에게 가능성이 없다는 걸 깨달으면 의사나 변호사를 꿈꿀 만큼 농구의 인기가 높은 나라다. 일가우스카스는 농구의 나라인 이 나라에서 축구선수를 꿈꾸던 아이였다. 지금도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열혈 축구팬이고, 집에서 키우는 개 이름도 ‘베컴’이다.

하지만 너무 빨리 자란 키 때문에 축구를 포기해야 했던 일가우스카스는 고향 카우나스 선배이자 세계적인 농구선수였던 아비다스 사보니스의 경기를 보고 농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맨 처음 맡은 포지션은 포인트가드였다. 당시 유럽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했던 드림팀 I의 영향으로 NBA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었다. 리투아니아에서도 TV를 틀면 항상 NBA 경기를 볼 수 있었고, 이제 리투아니아의 농구소년들은 그냥 농구 선수가 아닌 NBA 선수를 꿈꾸게 되었다. 일가우스카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이미 210cm가 넘게 자란 일가우스카스는 NBA 선수가 되기 위해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일가우스카스는 미국 대학에 입학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경력을 얻고 영어를 익히기 위해 리투아니아의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일부러 유급하기도 했다. 미국에 있는 동안 그를 관리해줄 에이전트와도 계약했다.

하지만 리투아니아에 닥친 경제위기가 그의 꿈을 가로막았다. 버스 기사였던 아버지와 엔지니어였던 어머니가 모두 직장을 잃었고, 일가우스카스는 미국 대학에 다니기는커녕 부모님과 여동생의 생활을 돌보아야 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일가우스카스는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고향 카우나스의 신생 농구팀인 아틀레타스에 입단해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다행히 첫 팀에서의 경력은 순조로웠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리투아니아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그 무렵 리투아니아 대표 팀은 켄터키 대학의 초청을 받아 미국에서 시범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켄터키 대학의 홈구장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일가우스카스는 26득점 19리바운드 4블록슛 2스틸을 기록하면서 33점차 대승을 이끌었다. 깜짝 놀란 릭 피티노 당시 켄터키 감독은 친구인 마이크 프라텔로 당시 클리블랜드 감독에게 연락해서 ‘제2의 사보니스가 등장했다’며 흥분했고, 일가우스카스는 몇몇 NBA 관계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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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을 얻은 일가우스카스는 1995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했고, 켄터키 대학과의 경기 비디오를 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케빈 맥헤일 단장은 일가우스카스를 시험해보기 위해 미네소타 팀버울브즈의 워크아웃에 일가우스카스를 초청했다. 일가우스카스의 머리 위에서 카메라를 설치하던 촬영기사가 삼각대를 떨어뜨려 죽을 뻔 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그는 이틀 동안 진행된 워크아웃에서 맥헤일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지명 가능성을 높였다. 하지만 오른발에 갑자기 통증이 느껴졌고, 결국 발이 부러진 것으로 확인된 일가우스카스는 NBA 입성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프로 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겪은 부상이었다.

이듬해인 1996년 열린 드래프트는 앨런 아이버슨과 코비 브라이언트, 스티브 내쉬등이 참가한 NBA 역사상 최고의 드래프트 중 하나였다. 일가우스카스는 2라운드에라도 뽑히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프라텔로의 이야기를 들은 웨인 엠브리 클리블랜드 단장이 20번째 지명권을 그에게 사용했다. 12번째 지명권을 일가우스카스와 같은 센터인 비탈리 포타펜코에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다른 팀들은 미국 농구를 경험하지 못한 데다 부상 경력까지 있는 일가우스카스를 외면했지만, 엠브리는 큰 키에 걸맞지 않은 부드러운 슛터치에 주목했다. 일가우스카스의 NBA 경력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NBA 데뷔전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았다. 첫 시즌을 앞두고 맹연습을 하던 중 또다시 오른발이 부러진 일가우스카스는 NBA 데뷔전을 또다시 1년 후로 연기해야 했다.

그래도 일가우스카스가 크게 낙담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리그에 갓 입단한 신인으로써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였고, 팀 분위기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영어 실력도 많이 늘었다. 비록 가장 먼저 배운 게 욕이었지만 말이다. 일가우스카스와 함께 뛰었던 선수들은 누구든 그의 걸쭉한 농담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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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우스카스는 1997-1998시즌 마침내 첫 경기를 치렀다. 개막전에서 16득점 16리바운드 2블록슛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일가우스카스는 시즌 전 경기를 뛰며 평균 13.9득점과 8.9리바운드를 기록, 클리블랜드의 주전 센터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올스타 루키 챌린지에도 선발 출장해서 루키 챌린지 MVP가 된 첫 번째 클리블랜드 선수가 되었다.

이듬해, 순조롭게 흘러갈 것 같은 두 번째 시즌이었지만 또다시 부상 악령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왼쪽 발목이 부러진 일가우스카스는 단 6경기만 뛰고 시즌을 접어야 했고, 이듬해에도 코트에 나서지 못했다. 일가우스카스는 크게 낙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용기를 찾았다. 힘든 재활과정을 견뎌나가는 그의 성실함은 팀 관계자들을 감동시켰다.

2년여의 공백 끝에 코트에 돌아온 2000-2001 시즌, 일가우스카스는 첫 23경기에서 11.7점과 6.8리바운드를 올리며 부활을 알렸다. 팀도 15승 8패로 선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가우스카스는 시즌 최다득점인 24점을 올린 다음 경기였던 마이애미 전에서 점프슛을 던진 후 왼발에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수많은 부상을 당해봤지만 결코 느끼지 못했던 통증이었다. 의료진이 달려오는 짧은 시간 동안 일가우스카스는 공포에 질려있었다.

그의 왼발이 또다시 부러진 것이다. 이번에는 분쇄골절이었다. 발등 뼈가 산산조각 나버렸다.

클리블랜드의 모든 팀 관계자들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일가우스카스가 다시 코트에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동료 선수들은 남은 시즌 결과에 신경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부상을 슬퍼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클리블랜드 관계자들은 그 일을 떠올릴 때면 눈물짓곤 한다.

하지만 일가우스카스 본인의 절망은 훨씬 컸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련도 잘 이겨내 왔지만 이번만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수술을 해도, 재활을 해도 다시 코트에 설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또다시 가만히 앉아서 동료들이 뛰는 모습을 구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농구선수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회의마저 들었다. 하지만 일가우스카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클리블랜드 프로 스포츠 역사에서 최악의 거품 선수로 기록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를 다시 분발케 했다. 그는 마침내 재건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왼발 뼈의 대부분을 금속제 인조 뼈대로 바꾸는 대수술이었다. 나중에 ‘의술이라기보다는 예술에 가까웠다’는 평을 받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다음에는 혹독한 재활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발의 고통은 이제는 친숙해질 정도였고, 진통제를 군것질거리처럼 달고 다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일가우스카스는 더 이상 발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가우스카스는 2001-2002 시즌 기적적으로 복귀했다. 처음에는 크리스 밈의 백업으로 출전했지만 금방 선발진으로 올라섰다. 그는 62경기에 출장하며 11.1득점 5.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이듬해에는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에도 선정됐다. 2003년 르브론이 입단하자 팀 전체가 르브론에 맞춰 개편됐지만 일가우스카스는 여전히 클리블랜드의 주전 센터로 남아있었다. 건강을 되찾은 일가우스카스가 르브론과 함께 힘을 발휘하면서 클리블랜드의 성적도 점점 나아졌다. 2004년 결혼한 일가우스카스는 2005년 다시 한 번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팀과 5년간의 장기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제 모든 시련은 끝난 듯했다.

2007년 2월, 클리블랜드 로스터에서 일가우스카스의 이름이 갑자기 사라졌다. 원정 3연전을 앞두고 그의 아내 제니퍼가 쌍둥이를 유산한 것이다. 일가우스카스 부부의 첫 아이들이었다. 일가우스카스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지금까지 당한 그 어떤 부상보다도 심한 아픔이 가슴을 때렸다. 아내가 고통 받을 때 같이 있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돌아왔다. 지금까지 그를 믿고 기다려준 팀을 어려움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아내가 일가우스카스가 코트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네 경기 만에 복귀한 일가우스카스는 클리블랜드의 첫 파이널 진출을 이끌었다.

NBA 13시즌 째를 맞고 있는 일가우스카스는 이번 시즌 26분간만 출장, 15.1득점과 7.5리바운드를 올리고 있다. 53%의 야투율은 생애 최고이고, 평소에도 넓었던 슈팅 범위를 더욱 늘려 올시즌에만 벌써 6개를 성공, 지난 시즌까지 성공시킨 3점슛 갯수(5개)를 이미 넘어섰다. 우리 나이로 35세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발전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가우스카스가 수많은 시련을 딛고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것은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 때문이다. 몇 주 전 필라델피아 원정 경기에서 왼발 부상을 당해 라커룸으로 향했을 때, 엑스레이 사진을 찍은 필라델피아 의료진들은 깜짝 놀랐다. 재건 수술을 받을 때 집어넣은 인공뼈가 발을 온통 뒤덮고 있어서 부상 부위가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는 의료진들에게 일가우스카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음, 그거 설명하자면 좀 긴데요."
지난 주 미네소타 원정 경기에서 일가우스카스는 맥헤일 미네소타 단장과 재회했다. 맥헤일이 사진기사의 실수로 일가우스카스가 죽을 뻔했던 것을 떠올리자 일가우스카스가 대답했다. "만약 그때 제가 죽었으면, (미네소타 홈 구장인) 타겟 센터는 이름이 (저를 기념해서) Z 센터로 바뀌었을 걸요?" 일가우스카스에게는 시련조차도 유머의 소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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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우스카스는 스스로가 동료들의 모범이 될 뿐 아니라 어린 선수들이 리그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특히 외국인 선수들이 겪는 문화적 어려움을 잘 이해하고 그들이 미국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앤더슨 바레장이나 사샤 파블로비치같은 선수들은 일가우스카스가 베푼 엉망진창 유머가 섞인 따뜻한 배려 덕분에 팀에 쉽게 녹아들 수 있었다. 유순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상대팀과 몸싸움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달려가 동료들을 보호하기도 한다.

일가우스카스의 따뜻한 시선은 팀 동료뿐 아니라 자신에게 기회를 준 지역사회까지 미친다. 팀 내 지역봉사활동 모임의 일원으로써 클리블랜드와 오하이오 주를 돌며 봉사활동을 펴기도 하고, 특히 건강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돌보는 데 관심이 많다. 클리블랜드 아동병원을 방문하는 것은 그가 자주 하는 활동 중 하나다. 일가우스카스는 클리블랜드 홈 팬들의 마음에 이미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일가우스카스가 클리블랜드에서 선수 생활을 한 13년 동안 그는 2명의 구단주, 2명의 단장, 7명의 감독, 그리고 118명의 선수들과 함께했다. 일가우스카스 개인적으로나 팀으로써나 쉽지만은 않은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클리블랜드의 각종 통산 기록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얼마 전 일가우스카스는 내년에 FA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고 클리블랜드에 남기로 했다. 르브론이 말한 것과 같이, 일가우스카스는 클리블랜드에서 영구 결번될 것이다.

일가우스카스가 2010년 후에도 선수생활을 계속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언제 은퇴하건, 클리블랜드 팬들은 그가 겪은 시련과 이를 극복한 그의 열정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도, 거듭된 부상도, 아이를 잃은 아픔조차도 농구에 대한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일가우스카스가 마지막 경기를 마치는 날, 팬들은 그가 보여준 것만큼의 열정을 담아 박수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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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는 현재 4승 21패라는 극악의 성적을 기록하는 중이다. 물론 누구도 이번 시즌 미네소타가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릴거라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오프시즌 기간 동안 제법 충실하게 전력을 보강했음을 고려하면 기대에 너무나 미치지 못하는 성적임은 부인할 수 없다.

어쨌든, 그들은 현재보다는 미래에 더 기대를 거는 팀이고, 당장 이번 시즌보다는 다음시즌에 승부를 보려고 할 것이다. 랜디 위트먼 감독 해임 이후 오히려 더욱 곤두박질치고 있는 경기력은(특히 랜디 포이의 경기력 저하는 정말 끔찍스러울 정도다.) 차라리 그들이 이번 시즌을 완전히 버리고 높은 픽을 노린 후 다음 시즌을 기약함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엄청나게 긁어모은 드래프트 픽과 꾸준한 트레이드로 얻은 높은 샐러리 유동성은, 그들을 소위 말하는 '2010 플랜'의 선두주자 중 하나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다음 시즌, 그리고 그 이후...미네소타가 걸어갈 길은 어떤 것일까. 필자의 예상은 다음과 같다.


미네소타의 잔치가 될 2009 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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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는, 다음 드래프트에서 무려 4개의 1라운드 픽과 1개의 2라운드픽을 가지고 있다.

우선 그들 자신의 픽. 현재 미네소타의 성적과 페이스를 생각해 볼 때....Top3는 거의 확실하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마이애미의 1라운드픽도 가지고 있다. Top10보호가 되어있는데, 드웨인 웨이드가 부상으로 쓰러지지 않는 이상 마이애미가 Top10안으로 들어갈 확률은 낮아보인다. 현재 성적은 17픽. 최종적으로도 15~20픽 정도가 되리라 생각한다.

유타의 1라운드픽도 미네소타의 겻이다. Top15보호. 역시 보호될 확률은 희박하다. 현재 유타의 성적대로라면 20픽. 최종적으로도 이 근처가 되리라 본다. 보스턴의 1라운드픽 역시 미네소타의 것인데, Top3보호가 되어있다. 이는 거의 100% 미네소타의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1라운드 끝자락의 픽이 될 것이다.

한 드래프트에서 4명의 1라운더를 로스터에 추가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매력이다. 로스터에 부족한 퍼즐을 골라 채울 수 있으니까. 현재 미네소타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포인트가드이다. 랜디 포이의 포인트가드 컨버젼은 실패로 판명났고, 위트먼 해임 이후 포이의 모습은 도저히 그를 주전 포인트가드로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다음 드래프트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포인트가드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스페인의 농구신동 리키 루비오. 주전급 PG가 없고 백코트 수비에 문제가 있는 미네소타에게 리키 루비오는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다만, 그는 다음 드래프트에 참가할지 안할지가 아직은 불투명하고 드랩이 되더라도 유럽무대에 남아있다가 건너올 확률도 있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브랜든 제닝스. 현재 유럽무대에서 뛰고 있지만 다음 드래프트에 참가할 것은 거의 확실하다. 사이즈는 작지만 무지막지한 운동능력에 훌륭한 볼핸들링, 그리고 좋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고졸 PG라는 점, 유럽무대에서의 활약이 미비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데이빗슨 대학의 슈팅머신, 스테판 커리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이번 시즌 PG로의 컨버젼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대학시절 JJ레딕 이상의 무시무시한 슈팅력의 소유자다. 또한 볼핸들링과 패싱에 있어서도 큰 약점을 보이지 않는다. 부족한 운동능력은 걸림돌이지만, 포인트가드의 첫째가는 미덕인 민첩성에 있어서는 수준급이다.

미네소타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퍼즐은 장신 센터. 알 제퍼슨은 공수에 걸쳐 대단한 실력을 보여주지만 그는 4번에서 뛸 때 가장 편안한 6-10의 빅맨이다. 대단한 브레이크아웃 시즌을 보내고 있는 7-3의 거인, 하심 타빗은 미네소타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선수다. 엄청난 신장과 무지막지한 윙스팬을 바탕으로한 샷 블라킹과 정말 상대 입장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높이에서 잡아내리는 리바운드는 진품이다. 약점으로 꼽히던 공격력에 있어서도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고 (기본적으로 손이 좋은 선수는 아니다.) 7-3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기동력도 갖추고 있다. 제2의 디켐베 무톰보가 될 수 있는 선수다.

필자가 생각하는 미네소타 최고의 무브는, 우선 본연의 픽으로 타빗을 확보한 후 나머지 1라운드 픽 세장을 잘 조합한 픽업을 통해 제닝스 혹은 커리를 얻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좀더 낮은 픽에서 뽑힐 가능성이 높고 미네소타에 좀더 잘 맞는 퍼즐이라 보는 커리가 끌린다.


FA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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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브론 제임스, 크리스 보쉬 등 소위 말하는 '대박 FA'들이 쏟아져 나오는 2010년이 되면, 미네소타는 둘 이상의 맥시멈 계약을 맺을 만한 샐러리 여유를 가지게 된다. GM인 짐 스택은 최근 르브론과 보쉬 둘 모두를 노리겠다는 인터뷰를 한 바 있다. 스몰마켓에 추운 날씨를 가진 미네소타의 특성상 슈퍼스타들이 선뜻 계약을 해줄지는 의문이지만, 순수하게 샐러리 상황으로만 보자면 가장 유리한 팀 중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다. 르브론과 보쉬 둘 모두 위력적인 퍼러미터 게임이 가능한 선수들이라, 이미 골밑의 지배자인 (오늘도 야오밍과의 골밑 대결에서 완승을 거두었다.) 알 제퍼슨과의 궁합이 대단히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네소타 팬들 역시 르브론 제임스의 합류를 기대하고 있다. 클리블랜드가 미네소타에 원정을 왔을 때, 르브론은 30+를 기록하며 미네소타에게 패배를 안겨주었고 4쿼터 후반 교체되었다. 그러자 미네소타 팬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고 르브론은 수줍은 미소를 띄며 연신 답례를 했다. 큰 의미를 두기는 힘든 일이지만, 적어도 르브론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자 하는 팬들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현재 극악의 승률을 거두고 있는 미네소타가 선뜻 트레이드 시장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역시 미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몇 승을 바라보고 샐러리 유동성 및 픽을 포기하는 트레이드를 한다면, 리빌딩 기간만 길어질 뿐이다. 보다 진중한 무브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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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에서 L.A로 연고지를 옮긴 클리퍼스는 트레이드로 지역 스타 마퀴스 존슨을 데려오며 야심차게 첫 시즌(84-85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 뒤에 연패에 빠지는 젊은 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큰 성적 향상은 이뤄내지 못했다. 이듬해엔 보스턴의 스타 세드릭 맥스웰을 데려왔지만, 주전 슈팅가드 데릭 스미스가 부상으로 쓰러지며 또다시 좋지 못한 성적에 그쳤다.

엘진 베일러를 새 단장으로 임명한 클리퍼스는 86-87시즌을 앞두고 놈 닉슨이 부상당한데 이어 마퀴스 존슨마저 쓰러지며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고작 12승에 그친 클리퍼스는 이듬해 명장 진 슈를 감독으로 임명했지만 놈 닉슨이 재차 부상당하는 등 악재가 끊이지 않으며 또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88 드래프트에서 프랜차이즈 사상 최초로 1픽을 거머쥔 클리퍼스는 대학 최고의 스타 대니 매닝을 지명했고 찰스 스미스, 게리 그랜트마저 뽑으며 최고의 드래프트 데이를 보냈지만, 부상의 악몽은 그치지 않았다. 매닝마저 시즌-아웃당한 클리퍼스는 무려 19연패에 빠지며 또다시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듬해엔 89 드래프트 전체 2픽으로 뽑은 대니 페리가 클리퍼스로의 합류를 거부하며 이탈리아 리그로 가버리자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그를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하고 대신 론 하퍼를 받아왔는데 하퍼가 대활약을 펼치며 전화위복이 되었다. 하지만 하퍼 역시 잘나가다가 부상으로 중도에 아웃되었고 팀 성적 또한 동반 추락하며 끝없는 부진의 터널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Donald Sterling)의 열망으로 인해 클리퍼스는 중소도시 샌디에이고(San Diego)를 떠나 빅 마켓 로스 앤젤레스(Los Angeles)에 새 둥지를 틀게 되었다. 바로 로스 앤젤레스 클리퍼스(Los Angeles Clippers)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970-1971시즌 버팔로 브레이브스(Buffalo Braves)란 이름으로 리그에 첫 발을 디딘 이 프랜차이즈는 창단한 지 근 14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말년 하위팀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밥 맥아두(Bob McAdoo)와 잠깐 함께 했던 시절엔 플레이오프에 3년 연속 진출하기도 했지만, 호환, 마마보다도 더 나쁜 구단주 존 브라운(John Brown)이 맥아두를 팔아먹은 이후로 그들은 줄곧 플레이오프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연고지를 버팔로에서 수천마일 떨어진 샌디에이고로 옮기고, 클리퍼스(Clippers - 쾌속선)라는 멋들어진 새 이름까지 달았지만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못했고, 샌디에이고에서 머문 6년 동안 끝끝내 홈팬들에게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들려주지 못한 채 씁쓸히 그들은 L.A로 이삿짐을 꾸려야 했다.

1984-1985시즌, 드디어 L.A 클리퍼스 호가 역사적인 진수식(進水式)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들 앞에 펼쳐질 항로가 밝을지 어두울 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지만...

새 팀에 부임한 신참 단장 칼 쉬어(Carl Scheer)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진부한 명언을 실천하기 위해 빅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바로 지난 2년간 팀의 리딩 스코어러 역할을 해 온 신예 포워드 테리 커밍스(Terry Cummings)를 보내고 대신 올스타 경력의 베테랑 포워드 마퀴스 존슨(Marques Johnson)을 데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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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퀴스 존슨은 원조 "포인트 포워드(Point Foward)"로 불리는 다재다능한 선수로, 돈 넬슨(Don Nelson)이 이끌던 80년대 강호 밀워키 벅스(Milwaukee Bucks)에서 시드니 몽크리프(Sidney Moncrief)와 함께 선봉대장 역할을 해왔다. 4번이나 올스타에 오른 경력이 있는 실력자기도 했지만 또한 UCLA 대학 출신의 지역 스타라는 점이 쉬어 단장의 눈길을 끌었다.

클리퍼스는 이전 연고지인 버팔로 시절부터 만성적인 흥행 부진에 시달렸다. 버팔로에서 샌디에이고로 연고지를 옮기게 된 것도 흥행 부진이 한 몫을 했고, 샌디에이고 시절에도 부진은 여전했다.  

대도시 L.A로 연고지를 이전했으니 예전보다 상황은 좀 나아 보였지만, 단독 연고지도 아니고 L.A 레이커스(L.A Lakers)라는 터줏대감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상황이니 L.A 시민들에게 어필할 만한 뭔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던진 비장의 흥행 카드가 바로 지역 출신 올스타 포워드 마퀴스 존슨이었던 것이다.

강력한 백코트 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골밑이 약해 고전해야 했던 밀워키로선 20득점-10리바운드가 가능한 젊은 빅맨인 커밍스를 마다할 리 없었고, 결국 두 팀 간의 트레이드가 단행되었다. 클리퍼스는 테리 커밍스, 리키 피어스(Ricky Pierce), 크레익 호지스(Craig Hodges)를 밀워키로 보내고, 대신 마퀴스 존슨과 주니어 브릿지맨(Junior Bridgeman), 하비 캐칭스(Harvey Catchings)와 약간의 현금을 받아왔다.

이로써 전열을 정비한 클리퍼스는 베테랑 포인트가드 놈 닉슨(Norm Nixon)과 '포인트 포워드' 마퀴스 존슨, 그리고 전도유망한 슈팅가드 데릭 스미스(Derek Smith)로 1-2-3번 라인업을 꾸렸고, 건강을 되찾은 빌 월튼(Bill Walton)과 장신 센터 제임스 도날드슨(James Donaldson)이 골밑을 책임지게 되었다. 연고지도 옮겼겠다, 로스터도 갈아치웠겠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변화는 루징 팀을 위닝 팀으로 만드는 것 하나뿐이었다.

출발은 순탄했다. 첫 원정 두 경기에서 1승 1패를 거둔 클리퍼스는 그들의 홈구장인 L.A 메모리얼 스포츠 아레나(Los Angeles Memorial Sports Arena)에서 역사적인 첫 홈경기를 갖게 되었다. 1984년 11월 1일, 만 2천명의 홈팬들이 그들의 새 친구를 구경하기 위해 운집한 가운데, 클리퍼스는 동부의 강호 뉴욕 닉스(New York Knicks)를 107-105로 누르며 홈 승리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후 클리퍼스는 잠시 주춤하다가 12월 중순에 내리 6연승을 달리며 14승 14패로 5할 승률을 기록, 일약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의 질주는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내리 7연패에 빠지며 상승세가 꺾인 클리퍼스는 한때 11연패까지 당하며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이 와중에 감독인 짐 라이넘(Jim Lynum)이 경질되고, 어시스트 코치인 돈 체이니(Don Chaney)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체이니는 그나마 남은 시즌을 9승 12패로 마치며 나름대로 선전했다. 최종 팀 성적은 31승 51패. 야심차게 시즌을 시작했지만 전년도 샌디에이고에서의 마지막 시즌(30승 52패)과 비교해 고작 1승을 추가하는 데 그친 것이다. 클리퍼스는 내리 연승을 하다가도 이내 연패를 하는 등 전형적인 젊은 팀의 한계를 드러내며 첫 데뷔 시즌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 팀은 젊었고 희망이 있었다.

특히나 데릭 스미스의 활약은 눈부셨다. 3년차 슈팅가드인 그는 평균 22.1득점으로 팀 내 1위를 기록하며 일약 신성으로 떠올랐다. 전년도(9.8득점) 보다 득점을 두 배 이상 상승시켰으니 만약 이때 MIP 상이 있었으면 그가 따 놓은 당상이었을 것이다. 스미스에 대한 기대치가 어느 정도였냐면 당시 루키로서 돌풍을 일으킨 시카고 불스(Chicago Bulls)의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과 신흥 라이벌로 불릴 정도였다.

빌 월튼은 커리어 최다인 67경기에 출장하며 부상의 악령은 이제 툴툴 털어버린 듯 했고, 놈 닉슨은 올스타로 선발되었다. 베테랑과 신예들이 잘 조화를 이룬 클리퍼스는 지금 당장보다 내후년이 기대되는 팀이었다.

1985-1986시즌을 앞두고 클리퍼스는 1985 드래프트 전체 3번픽으로 크레이튼(Creighton) 대학 출신의 7푸터 베누와 벤자민(Benoit Benjamin)을 지명했다. 당시만 해도 벤자민은 리그의 탑 센터로 성장할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던 대단한 유망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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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미래를 책임질 센터감을 구한 쉬어 단장은 또 한 번 과감한 트레이드를 감행했다. 클리퍼스 시절 내내 부상 악몽에 시름했던 빌 월튼을 보스턴 셀틱스(Boston Celtics)로 보내고 대신 1980-1981 파이널 MVP 출신이자 보스턴의 주전 파워 포워드인 세드릭 맥스웰(Cedric Maxwell)을 데려온 것이다.

클리퍼스와 월튼이 함께 한 지난 6년은 애증의 세월이었다. 월튼은 심각한 부상으로 두 시즌이나 통째로 쉬어야 했고, 나머지 시즌에서도 부상으로 제대로 출장하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6년 동안 169경기... 부지런한 선수가 2년 남짓 뛰면 출장할 수 있는 경기 수였지만 월튼에겐 무려 6년이 걸렸다.

그나마 막판엔 건강이 좀 나아지며 출장 경기수가 좀 늘어났지만, 잦은 부상은 한때 리그 MVP였던 그의 재능을 다 갉아먹은 채 평범한 주전 센터로 만들어버렸다. 요즘 팬들이 보기엔 그랜트 힐(Grant Hill)과 올란도 매직(Orlando Magic)의 관계라고 치면 이해가 빠를 거다.

아무튼 월튼은 부상으로 얼룩진 파란만장한 커리어를 뒤로 한 채 수천마일 떨어진 보스턴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가 떠났어도 한 천재의 커리어를 망가뜨린 잔인한 '인저리 데빌(Injury Devil)'은 클리퍼스를 떠나지 않았다. 그 사악한 악마는 이제 월튼을 놓아둔 채 새로운 숙주를 찾아 L.A의 밤거리를 호시탐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끔찍한 클리퍼스 부상 병동의 암흑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85-86 시즌 클리퍼스의 시작은 특급 모터를 달은 듯 했다. 개막전 이후 무려 5연승을 달린 클리퍼스는 그 기간 동안 평균 116점을 퍼부으며 만인들을 놀라게 했지만, 5연승 뒤 다시 8연패라는 극악의 반전으로 전년도의 악습을 못 버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8연패보다도 더 뼈아픈 건 송두리째 잃어버린 팀의 미래였다. 떠오르는 스타 데릭 스미스가 11경기 만에 무릎 부상으로 쓰러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냥 단순한 부상이 아니라 스미스의 커리어를 통째로 망쳐버릴 만한 심각한 부상이었다.

팀의 리딩 스코어러이자 미래를 잃어버린 그들이 호성적을 거둘 리는 만무했다. 베테랑 마퀴스 존슨이 스미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생애 5번째로 올스타에 오르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클리퍼스는 32승 50패를 기록하며 전년도보다 1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데릭 스미스가 건강하던 때 팀이 파죽의 연승을 달렸다는 걸 감안하면 그의 공백은 너무나도 뼈아팠다. 하지만 이게 앞으로 닥칠 클리퍼스의 끔찍한 부상 악몽의 전주곡이란 사실은 아직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팀이 2년 연속 부진한 성적에 그치자 단장인 칼 쉬어도 졸지에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새 단장으로 예전 L.A 레이커스의 레전드인 엘진 베일러(Elgin Baylor)가 부임했다. 베일러와 클리퍼스 구단 간의 길고 긴 20여년의 악연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신임 단장 베일러가 부임하자마자 팀에 숭례문 화재급 악재가 일어났다. 주전 포인트가드 놈 닉슨이 공원에서 소프트볼을 즐기다가 무릎 부상을 당한 것이다. 상태가 심각해 수술이 불가피했고, 결국 닉슨은 시즌-아웃 판정을 받고 말았다. 그리고 이 황당한 부상은 과거 레이커스 시절 매직 존슨과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다투기도 했던 민완 가드 닉슨의 커리어를 꺾어버리고 말았다.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가 졸지에 공석이 되어버리자 베일러는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결국 부상 중인 젊은 스타 데릭 스미스와 베테랑 스윙맨 주니어 브릿지맨, 백업 가드 프랭클린 에드워즈(Franklin Edwards)를 새크라멘토 킹스(Sacramento Kings)로 보내고, 대신 포인트 가드 래리 드류(Larry Drew), 슈팅 가드 마이크 우드슨(Mike Woodson)과 미래의 1라운드 픽, 2라운드 픽을 각각 1장씩 받아왔다.

드류와 우드슨도 킹스에서 오랜 기간 활약한 베테랑들이지만 올스타 레벨의 닉슨과 스미스의 공백을 메우기엔 2% 부족했다. 그래도 일단 급한 불은 끈 클리퍼스는 뭔가 불안한 가운데 1986-1987 시즌을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데릭 스미스가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진지 불과 1년여 만에 또 다른 부상의 악몽이 그들을 찾아왔다.

세번째 비극의 주인공은 마퀴스 존슨이었다. 존슨은 불과 시즌 10번째 경기에서 팀 동료 베누와 벤자민과 강하게 충돌하며 목 부위에 심각한 충격을 입었고, '원조 포인트 포워드'였던 그의 커리어도 이렇게 끝을 맺고 말았다.

너무나도 끔찍했다. 불과 1년 여만에 팀의 간판스타 세 명이 모두 커리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부상을 당하며 쓰러져버렸으니 말이다. 스미스는 부상 이후 평범한 스윙맨으로 전락한 뒤 29살의 젊은 나이에 리그를 떠나야 했고, 닉슨과 존슨은 부상 이후 두 시즌 넘게 재활과 씨름하다가 겨우 복귀했지만 예전의 기량을 다 잃어버린 채 둘 다 1년 만에 은퇴해야 했다. 이 정도라면 저주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없다.

빌 월튼과 함께 했던 샌디에이고 시절부터 따라다니던 지긋지긋한 부상 악령... 이제 연고지도 L.A로 옮기고 월튼도 떠났건만 여전히 악성 댓글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클리퍼스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황당한 부상으로 두 명의 간판스타를 연이어 잃은 클리퍼스는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12승 70패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1972-1973 시즌 필라델피아 76ers가 9승 73패를 거둔 이후 두 번째로 나쁜 시즌 성적이었다. 훗날 달라스(1992-1993시즌)와 덴버(1997-1998시즌)가 각각 11승을 기록하며 나중엔 2위 자리를 내주게 되지만 말이다.

팀이 헤어 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진 가운데 베일러는 대놓고 리빌딩을 시작했다. 어차피 그른 시즌이라고 보고는 팀의 간판 베테랑들을 팔아버리고 대신 드래프트 픽을 잔뜩 얻어온 것이다.

주전 파워포워드 세드릭 맥스웰은 휴스턴 로케츠의 1라운드 픽, 2라운드 픽과 엿바꿔먹었고, 백업 빅맨 커트 님피우스(Kurt Nimphius)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1라운드 픽, 2라운드 픽과 엿바꿔먹었다. 안그래도 팀이 어려운데 베테랑들을 이렇게 시즌 도중에 팔아먹었으니 12승이란 성적도 감지덕지할 정도다.

팀이 최악의 퍼포먼스를 펼친 와중에 감독의 모가지가 온전할 리 만무했다. 결국 돈 체이니는 경질되었고 베일러는 새 선장을 찾아 나섰다. 전임 감독들인 짐 라이넘과 돈 체이니가 감독 경력 초짜들이라 어리버리댔던 점을 감안해 이번엔 노련한 베테랑 감독을 노려보기로 했고, 그 대상은 바로 진 슈(Gene Shue)였다.

슈는 리그에서 무려 20년의 경력을 지닌 명장 중의 명장이었다. 통산 757승으로 그때 당시만 해도 통산 승리 4위에 랭크되어 있었고, 올해의 감독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바 있었다. 또한 예전에 성적이 바닥권이었던 볼티모어 불레츠(Baltimore Bullets)와 필라델피아 76ers(Philadelphia 76ers)를 모두 파이널로 이끌며 이른바 '리빌딩의 거장'으로 불리던 감독이었다. 또한 슈는 이전 샌디에이고 클리퍼스에서도 잠깐 지휘봉을 잡으며 1978-1979 시즌엔 5할 이상의 호성적을 기록한 적도 있었다. 이처럼 슈는 당시 클리퍼스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 줄 구세주처럼 보였다.

한편 베일러의 적극적인 세일즈 덕에 1987 드래프트에서 클리퍼스는 무려 3장의 1라운드 픽(4번, 13번, 19번)을 쥐고 있었다.

우선 4픽으로 클리퍼스는 조지타운(Georgetown) 대학의 에이스 레지 윌리엄스(Reggie Williams)를 선발했다. 윌리엄스는 1984년 패트릭 유잉(Patrick Ewing)과 함께 조지타운 호야스(Georgetown Hoyas)를 NCAA 챔피언으로 이끌었으며, 유잉이 떠난 뒤로는 팀의 독보적인 에이스로 활약했다. 13픽으론 노스 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대학의 조 울프(Joe Wolf)를, 19픽으론 일리노이(Illinois) 대학의 켄 노먼(Ken Norman)을 각각 지명하며 알찬 신인 보강을 마쳤다.

그러나 1987-1988 시즌 개막을 앞두고 클리퍼스에겐 또다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부상에서 회복해 절치부심하던 놈 닉슨이 시즌 개막 이틀을 앞두고 연습 도중에 아킬레스건이 파열되고 만 것이다.

부상의 악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특급 신인으로 큰 기대를 받았던 레지 윌리엄스마저 무릎 부상으로 고작 35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고, 조 울프도 42경기 출장에 그쳤다.

부상자들이 속출하며 팀이 어지럽게 표류하자 명장 진 슈 감독도 속수무책이었다. 야심찬 감독 영입과 신인 지명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간 클리퍼스는 17승 65패로 2년 연속 리그 최하위에 머물러야 했다.

그나마 이런 암울한 가운데 클리퍼스 팬들에게 한 줄기 등불은 주전 파워포워드 마이클 케이지(Michael Cage)의 폭풍 리바운드 쇼였다. 케이지는 시카고의 찰스 오클리(Charles Oakley)와 리바운드 타이틀을 놓고 마지막까지 피말리는 승부를 벌렸고, 결국 시즌 최종 경기에서 30리바운드를 기록한 케이지가 오클리를 누르고 소수점 차이로 리바운드 왕에 올랐다. (케이지 13.03개, 오클리 13.00개)

감독도 바꿔보고 트레이드도 해보고 드래프트 픽도 모아보고... 어떻게든 루징 팀에서 벗어나보려는 클리퍼스의 노력은 눈물겨웠지만 결과는 또다시 최악이었다.

그러던 중 프랜차이즈 역사상 일생일대의 찬스가 찾아왔다. 바로 1988 드래프트 전체 1번 픽을 클리퍼스가 거머쥐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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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드래프트는 이른바 '매닝 드래프트'였다. 당시 대학 최고의 선수인 대니 매닝(Danny Manning)이 바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1픽 후보였던 것이다.

매닝의 소속팀 캔자스(Kansas) 대학은 그야말로 매닝의 원맨팀이었고 매닝 이외의 나머지 동료들은 형편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닝은 캔자스 대학을 NCAA 우승으로 이끄는 대파란을 연출했다.

4학년 때 시즌 평균 24.8득점과 9리바운드를 기록한 매닝은 코트 위에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최고의 올라운더였다. 6-10의 빅맨이 가드처럼 드리블하고 패스하고 슛을 하며 그야말로 대학 농구 코트를 지배했으니 말이다. 결국 네이스미스 상(Naismith Award), 우든 상(Wooden Award) 등 최고의 대학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들을 싹쓸이한 매닝은 1988 드래프트에서 전체 1픽으로 클리퍼스의 지명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베일러 단장은 최고의 대학 스타를 얻은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전년도 리바운드 1위였던 마이클 케이지를 시애틀 슈퍼소닉스(Seattle Supersonics)로 보내는 대신 1988 드래프트 전체 15번 픽으로 지명한 게리 그랜트(Gary Grant)와 미래의 1라운드 픽을 얻어왔고, 6번 픽으로 지명한 허시 호킨스(Hersey Hawkins)와 시애틀로부터 얻은 1라운드 픽을 필라델피아로 보내고, 대신 전체 3번 픽으로 지명한 찰스 스미스(Charles Smith)를 데려왔다.

이렇게 드래프트 데이에 무려 3명의 대학 스타를 데려오며 희망차게 1988-1989 시즌을 시작한 클리퍼스는 하지만 또 한 번 부상 악령에 눈물을 삼켜야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로 얻은 1번 픽으로 뽑은 특급 신인 대니 매닝이 고작 26경기만 뛴 채 아킬레스 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고만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정말 무당 불러 굿이라도 한판 했을 것이다. 아니면 어메리칸 스타일로 엑소시즘이라도 하던가... 도대체 팀의 간판스타 내지는 미래를 책임질 슈퍼 루키들이 벌써 몇 시즌 째 부상으로 연달아 쓰러지는 건지...

매닝의 부상 소식과 함께 이 팀의 희망도 다 사라져버린 듯 보였다. 매닝 부상 전까지 10승 19패를 거두며 그나마 3할대 승률을 기록하고 있던 클리퍼스는 충격의 연패 행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보는 이들을 애처롭게 했다. 결국 11연패 만에 감독인 진 슈가 짤리고 어시스턴트 코치 돈 케이시(Don Casey)가 주저주저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이후로도 8패를 더해 무려 19연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다행히 돈 케이시 감독대행이 연패 뒤에 팀을 잘 추스려 마지막 20경기에서 5할 승률을 거두며 21승 61패로 시즌을 마친 클리퍼스는 신생팀 마이애미 히트(15승 67패), 샬럿 호네츠(20승 62패)라는 착한 동생들 덕에 다행히 3년 연속 리그 꼴찌는 면하게 되었다.

그래도 젊은 선수들의 분전은 인상적이었다. 2년차 포워드 켄 노먼은 평균 18.1득점, 8.3리바운드로 팀을 이끌었고, 루키인 찰스 스미스는 16.3득점을 보태며 올-루키 퍼스트 팀에 올랐다. 매닝의 부상과 19연패의 악몽은 팀을 또 한 번 나락으로 떨어뜨렸지만 시즌 후반에 보여준 선전과 젊은 선수들의 활약은 침몰해가는 클리퍼스 호에게 한 줄기 희망의 등대불이었다.

NBA는 참 공평한 리그이다. 클리퍼스처럼 몇 년 째 바닥에서 허덕이는 팀들을 구제하기 위해 귀중한 로터리 픽들을 마구잡이로 풀어주니 말이다. 대학 최고의 스타를 뽑고도 부상에 울어야 했던 클리퍼스는 1989 드래프트에선 전체 2픽을 손에 넣으며 한 번 더 대박을 터뜨릴 기회를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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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선택은 듀크 대학의 에이스인 대니 페리(Danny Ferry)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돌발 사태가 벌어졌다. 페리가 "클리퍼스같은 팀에선 뛰기 싫다."며 계약을 거부하더니 급기야 이탈리아 리그로 날라버린 것이다.

세상에 얼마나 싫었으면 모든 선수들이 선망하는 L.A같은 빅 마켓을 연고지로 둔 팀을 다 마다했을까. 그만큼 당시 클리퍼스는 리그에서 공인된 최악의 팀이었다. 또한 클리퍼스에서 뛰는 선수들 마다 끔찍한 부상에 시달리는 것도 꽤나 꺼림칙했을 것이다.

게다가 클리퍼스에는 페리의 포지션에 이미 대니 매닝, 찰스 스미스, 켄 노먼같은 젊은 유망주들이 득실거렸다. 듀크대같은 명문 팀에서 웰빙 선수 생활을 하던 페리로선 부상신의 저주를 받은 클리퍼스같은 깜깜한 동네에서 가뜩이나 벤치 노릇을 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리라. 머리로는 괘씸해도 마음으로는 이해가 간다.

페리의 도주 퍼포먼스에 당황하던 베일러 단장은 결국 못 먹는 감 남 주는 수밖에 없었다. 클리퍼스는 도주범 대니 페리와 부상 이후 영 시원찮던 레지 윌리엄스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보내고, 대신 민완 가드 론 하퍼와 2장의 1라운드 픽, 1장의 2라운드픽을 받아왔다.

하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던가. 여태껏 트레이드로 별 재미를 못 본 클리퍼스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한 이번 트레이드만큼은 결과가 꽤 좋았다.

페리는 클리블랜드 이적 후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했지만 그저 그런 평범한 선수에 그치며 대학 시절 명성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반면에 론 하퍼는 이후 클리퍼스의 에이스로 올스타급 활약을 펼쳤다. 비록 운이 따르지 않아 끝내 올스타에 선발되진 못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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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시절부터 탁월한 기량을 과시하던 만능 가드 론 하퍼는 이적하자마자 일약 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또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저번 시즌 아킬레스 건 부상으로 시즌-아웃되었던 대니 매닝이 건강한 모습으로 이번 시즌 초반에 복귀한 것이다. 매닝은 복귀 뒤에도 부상 악령을 완전히 떨친 듯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며 팀 관계자들의 시름을 한 숨 놓게 했다.

2년차 포인트가드 게리 그랜트가 팀을 전두 지휘하는 가운데 론 하퍼와 찰스 스미스가 내외곽에서 평균 20점 이상의 고감도 득점포를 가동하고, 대니 매닝, 켄 노먼 등 준수한 포워드들이 뒤를 받쳤으며, 베테랑 센터 베누와 벤자민이 골밑을 든든하게 지킨 클리퍼스는 말년 동네북 신세에서 벗어나 이제 제법 주목할 만한 젊은 팀으로 거듭난 듯 보였다. 시즌 초반 16승 19패를 기록한 그들에게는 어느덧 5할 승률도 꿈 속 이야기가 아닌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해피하다면 절대 클리퍼스 스토리가 아니다. 대놓고 클리퍼스만 다굴하는 지긋지긋한 부상의 악령은 이번엔 평균 23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던 에이스 론 하퍼의 무릎을 탁 걷어차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한 달도 채 못 되어 평균 두 자릿수 어시스트를 기록하던 주전 포인트가드 '제네랄(General)' 게리 그랜트마저 악령에게 피격당하고 말았다.

지난 몇 년간의 암흑의 터널에서 모처럼 빠져나오나 싶었던 클리퍼스의 야심찬 89-90시즌도 결국 이처럼 비극으로 끝을 맺고 말았다. 최종 성적은 30승 52패. 전년도보다 9승을 더하긴 했지만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시즌이었다.

4대 비극보다 더 슬픈 클리퍼스의 부상 악몽은 과연 언제쯤 끝나는 것일까? 어쨌든 클리퍼스는 이렇게 암흑의 80년대를 마치고 90년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버팔로 브레이브스 시절인 1975-1976 시즌 이후로 무려 14년간 계속되어온 플레이오프 탈락의 징크스는 과연 90년대에는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인지... 새로운 시대가 왔지만 여전히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검은 안개는 쉽사리 걷히지 않을 듯 보였다. (3부에서 계속됩니다)


L.A 클리퍼스 80년대 성적

1984-1985시즌 31승 51패 승률 .378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감독 짐 라이넘(22-39), 돈 체이니(9-12)
1985-1986시즌 32승 50패 승률 .390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감독 돈 체이니(32-50)
1986-1987시즌 12승 70패 승률 .146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감독 돈 체이니(12-70)
1987-1988시즌 17승 65패 승률 .207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감독 진 슈(17-65)
1988-1989시즌 21승 61패 승률 .256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감독 진 슈(10-28), 돈 케이시(11-33)
1989-1990시즌 30승 52패 승률 .366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감독 돈 케이시(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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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일반 뉴스 2008. 12. 19. 00:04

보너의 슛난사, 웨스트의 3점, 패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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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폴의 106경기 연속 스틸 기록을 축하합니다.

제목 그대로입니다.

경기 내내 계속된 보너, 핀리의 슛난사와 웨스트의 3점 두 방으로 다 잡은 경기를 놓친 스퍼스였습니다.

스퍼스는 1쿼터 시작하자마자 보너 (7점, 7리바운드)의 오펜스 리바운드가 메이슨의 3점으로 이어지며 매끄러운 출발을 했습니다. 경기 초반에는 호넷츠의 픽앤롤 공격이 잘 먹혀들었고, 스퍼스 또한 덩컨과 파커 (20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의 슛이 호조를 보이면서 대등하게 나갔습니다. 1쿼터 중반으로 들어가면서, 스퍼스로서는 좋지 않은 징조인 오픈 점프슛 불발이 계속됐습니다. 다행히 죠지 힐의 막판 코너 3점이 들어가면서 리드를 지킨 채 1쿼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팽팽하던 경기가 스퍼스의 분위기로 넘어온 것은 2쿼터 지노빌리(17점, 9리바운드, 5어시스트)의 활약과 때를 같이 했습니다. 스퍼스가 25대 26으로 뒤지고 있을 때, 마누는 디펜스 리바운드에 이은 플로터를 성공시켰고, 곧이어 폴을 블락함과 동시에 파커에게 어시스트를 연결해줘서 파커의 앤드원도 만들어 냈습니다. 지노빌리는 2쿼터에만 10득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 1블락샷으로 스퍼스의 공수를 이끌었습니다.

2쿼터까지 스퍼스의 스위치 디펜스와 트랜지션 디펜스는 나무랄 데 없이 완벽했습니다. 덕분에 호넷츠의 속공 득점을 단 4점으로 막아낼 수 있었지요. 스퍼스는 42 대 37로 리드한 가운데 하프타임을 맞이했습니다.

3쿼터 시작하자마자 멋진 플레이가 하나 나왔습니다. 코트 좌중간에서 공을 잡은 덩컨이 뱅크샷을 하려다가 훼이크를 주며 노-룩 패스를 해준 것이 보너의 덩크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3쿼터 종료 3분여를 남기고부터는 스퍼스가 정말 눈이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볼무브먼트를 가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보웬의 코너 3점슛이 터졌고, 곧이어 정말 보기 드문 보웬의 드라이브인 왼 손 레이업까지 나왔습니다. 스퍼스는 3쿼터도 70 대 63으로 리드하며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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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개의 삼점도 성에 안 차 결정적인 상황에서 '노마크' 덩크까지 불발시켜버린  보너

4쿼터가 시작하면서 보너와 토마스가 웨스트에게 함정수비를 걸었고 턴오버가 유발됐습니다. 그리고 이를 속공으로 연결하며 파울을 얻어낸 힐이 자유투 두 개를 모두 성공시켰습니다. 스퍼스의 리드는 72 대 63, 9점 차까지 벌어졌고, 호넷츠 선수들이나 팬들의 눈에는 약간의 패배감까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3쿼터 후반부터 4쿼터 초반까지 펼쳐진 스퍼스의 볼무브먼트는 예술이었습니다. 사실, 이 정도의 패스웤으로 오픈 점프슛 찬스가 그토록 많이 났으면, 적어도 15~20점 차의 리드를 가져 갔어야만 했습니다. 점수차를 9점차 이상으로 벌이지 못하도록 혁혁한 공을 세운(?) 선수들이 바로 맷 보너와 마이클 핀리였습니다.

맷 보너는 오늘 경기에서 무려 15개의 야투를 시도했습니다. 덩컨이 14개, 파커가 13개, 지노빌리가 12개 시도한 것과 비교해보면 정말 믿어지지 않는 야투 시도입니다만, 작전타임 때 들으니, 포포비치 감독이 보너에게 마음껏 3점을 쏴도 좋다는 지령을 내리더군요. 그 15개의 야투 중 8개가 3점슛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공시킨 야투는 고작 2개, 3점슛도 고작 1개였습니다. 센터로 뛰는 선수가 이토록 외곽에서 슈팅만 날려대니, 리바운드 싸움에서 밀릴 수 밖에요. 지노빌리 복귀 후, 한 번도 리바운드 싸움에서 진 적이 없는 스퍼스는 오늘 호넷츠 전에서는 48 대 39로 열세를 면치 못 했습니다. 하지만, 보너의 웨스트 수비는 (기대치가 낮아서였는지)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좋았습니다.

마이클 핀리 (5점, 1리바운드, 0어시스트)를 보면 한숨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핀리는 스스로 공격을 창출해내거나 플레이메이킹을 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수비력이 좋은 것도 아니죠. 그렇다면, 오픈 점퍼를 넣어주기 위해 스퍼스에서 주전으로 뛴다는 얘기인데.... 오늘도 9개의 슈팅 시도 중 단 2개만 성공시켰고, 3점은 5개 시도해서 1개만 넣었습니다. 그래도 보너는 수비와 골밑 몸싸움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뛰어줬지만 핀리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보너와 핀리 덕분에 스퍼스의 4쿼터 야투율은 19% (4-21)였습니다.

오늘의 승부를 가른 것은 4쿼터 후반부에 터진 데이빗 웨스트 (21점, 9리바운드)의 3점슛 두 방이었습니다. 패색이 짙어가던 호넷츠는 4쿼터 종료 5분을 남기고 터진 웨스트의 3점 두 방으로 다시 살아났고, 막판에 포지 (8점, 7리바운드)의 삼점슛이 쐐기를 박았습니다.

스퍼스는 쉴 새 없이 오픈 점프슛 상황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유는 호넷츠 선수들이 마누와 파커에게 계속 더블팀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4쿼터에만 발생한 오픈 삼점슛 8개 모두를 보너와 핀리 둘이서 다 날려버렸습니다. 바로 이것이 패인이었습니다.

포포비치 감독의 용병술은 전체적으로 좋았습니다. 초반에는 수비대형을 변칙적으로 가져 감으로써, 호넷츠가 홈에서 큰 리드를 잡지 못하게 했습니다. 덩컨을 중심으로 한 픽앤롤 수비도 좋았습니다. 오픈 점퍼는 많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좋은 수비력과 빅 3의 활약으로 4쿼터 중반까지도 스퍼스가 승기를 잡고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4쿼터에 핀리와 보너를 너무 오래 출장시켰고, 또 둘에게 너무 많은 외곽슛을 허락했습니다. 오늘 수비가 좋았던 컷 토마스와, 3점 적중률이 좋아 보였던 힐과 보웬은 벤치에만 앉아 있었습니다. 4쿼터에 약간 늦었던 선수교체 타이밍이 아쉬운 경기였습니다. 우연일지는 모르겠으나... 그토록 수비를 잘하던 보웬이 벤치에 앉으면서부터 호넷츠의 15-0 런이 시작됐습니다.

스퍼스의 팬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패배였습니다. 한두 가지 지적할 부분은 지노빌리의 턴오버입니다. 오늘 범한 다섯 개의 턴오버 중, 2~3개는 호넷츠의 함정 수비에 걸려든 결과였고, 나머지 두어 개는 판단미스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호넷츠같은 팀을 상대로는 이러한 턴오버가 나오면 안 되지요. 또 하나, 파커의 수비력입니다. 오늘 파커의 수비는 한마디로 "게을렀고 참담"했습니다. 또한, 파커가 벤치에 앉아있을 때에 스퍼스의 볼무브먼트가 오히려 좋았었다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파커로부터 얻는 것도 상당하니....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오늘의 경기로부터 레슨을 받아 다음 경기에서는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이번 시즌 스퍼스 경기력의 진정한 평가는 내일 있을 대 올랜도 전이 끝나면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obody, nobody bu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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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폴 (19점, 12어시스트, 3스틸)은 2쿼터 중반에 파커로부터 스틸을 하나 기록함으로써, 106경기 연속 스틸 기록을 세웠습니다. 종전의 기록은 80년대 스퍼스의 '수비 대마왕' 앨빈 로벗슨이 1986년에 새운 105경기였습니다. 크리스 폴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건 정말 대단한 기록입니다. 오늘 폴을 중심으로 한 호넷츠의 트랩 디펜스 (함정 수비)도 상당히 위력적이었습니다.

팀 덩컨 (16점, 11리바운드) 또한, 18,000점, 10,000리바운드, 2,000블락샷을 기록한 7인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린 경기였습니다. 나머지 6인은 모두 센터들입니다. 마이클 핀리 또한 NBA 1,000 경기 출장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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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호넷츠 승리의 히어로, 데이빗 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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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정규 시즌 상반기 최고의 흥행 카드, 크리스마스 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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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2008년의 크리스마스도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연휴는 연중 가장 큰 축제 기간의 하나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시기이다. 이는 NBA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크리스마스에 펼쳐지는 ‘크리스마스 매치’는 NBA 정규 시즌 상반기의 최고 흥행 카드이다. 그렇기에 리그에서도 매년 크리스마스의 매치업 카드를 결정하는데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크리스마스 매치에 초청을 받게 되는 팀들은 슈퍼스타가 포함되어 있음을 넘어 리그 전체에서 가장 흥행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팀, 혹은 팬들의 이목을 가장 끌어당기는 라이벌전 등의 경우에 해당된다. 실제로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이나 상대적으로 흥행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는 샌안토니오의 팀 던컨은, 2008-2009시즌을 포함해 총 12번의 시즌을 보내는 동안 언제나처럼 리그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으나 크리스마스 매치 경험은 단 두 차례에 그치고 있다(2003년, 2005년). 반면 언제나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LA 레이커스의 경우 올 해 크리스마스에도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며 10년 연속 크리스마스 매치에 등장하고 있다(1999년~2008년).


그 때의 크리스마스를 기억하나요?


그렇다면 최근 NBA 팬들을 가장 가슴 설레게 했던 크리스마스 매치는 언제였을까? 신세대 NBA 팬들에게 가장 많이 추억되고 있는 크리스마스 매치는 역시 2003년에 있었던 클리블랜드와 올랜도의 경기가 아닐까.

당시 클리블랜드에는 괴물 신인 르브론 제임스가 데뷔하여 연일 멋진 활약을 보이고 있었고, 올랜도에는 마이클 조던 이 후 최초로 시즌 개인 평균 30득점의 벽을 무너뜨리며 리그 역사상 최연소 득점왕의 자리에 오른 트레이시 맥그레디가 버티고 있었다. 겁 없이 선배들에게 도전해오던 괴물 신인과 전년도 득점왕의 대결은 전 세계 NBA팬들의 이목을 끌기에 모자람이 없었고, 두 선수 역시 그 기대에 부족함이 없는 대활약을 펼쳤다.

2003년의 크리스마스, 처음 선전포고를 날린 선수는 제임스였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오른쪽 베이스라인을 돌파하며 플로터로 첫 득점에 성공한 제임스는 곧이어 3점 슛까지 작렬시키며 연속 5득점을 기록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맥그레디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어진 두 번의 공격에서 엄청난 슬램덩크를 연이어 터뜨리며 이 날의 명승부를 예고했다. 이 후부터 두 선수의 화려한 쇼다운이 펼쳐진다. 제임스가 맥그레디에게 가는 공을 뺏어내며 2연속 점프슛을 성공시키자 맥그레디는 곧바로 환상적인 공중동작을 뽐내며 득점에 성공했고, 제임스가 앨리웁 덩크를 터뜨리면 맥그레디는 정교한 외곽슛으로 맞불을 지폈다.

경기를 지켜보던 이들이 숨을 죽이며 바라보던 정면 승부의 최종 승자는 ‘선배’ 맥그레디였다. 맥그레디는 연장전까지 가는 대접전을 펼친 끝에 무려 50분을 플레이하며 41득점 11어시스트 8리바운드를 기록,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반면 제임스 역시 47분 동안 코트를 누비며 34득점 6어시스트로 부족함이 없는 활약을 펼쳤지만 크리스마스 매치라는 중압감에 긴장한 탓인지 루키 시즌 한 경기 최다인 8개의 실책을 기록했으며 몇 차례 에어볼을 던지는 등 평소 그답지 못했던 작은 실수로 패배의 쓴맛을 봐야만 했다.


NBA의 케빈, 크리스마스 최고의 단골 손님은?

이토록 화려한 슈퍼스타들의 대결이 펼쳐지는 크리스마스에 가장 많이 등장한 현역 선수는 누구일까? 앞서 크리스마스의 단골손님으로 언급했던 레이커스를 이끌고 있는 코비 브라이언트가 그 주인공이다.

브라이언트는 루키 시즌이었던 1996년 크리스마스에 첫 등장을 했으나 당시에는 단 5분을 플레이하는데 그쳤다. 팀의 주축으로 성장한 그는 1999년 다시금 크리스마스 매치에 복귀했는데 이 후 9년 연속 크리스마스의 부름을 받았으며 올 해 2008년에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매치에 등장하게 됨으로써 10년 연속 크리스마스 매치 출장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그 성적은 그리 신통치 못한데, 루키 시즌의 것을 포함해 총 10번의 크리스마스 매치를 경험하는 동안 4승 6패를 기록하는데 그치고 있다.

특히 2003년부터 2006년에 걸쳐 기록한 크리스마스 3연패는 뼈아픈 것이었다. 가장 강력한 파트너였던 동시에 팀의 에이스 자리를 놓고 끊이지 않는 불화설을 양산했던 샤킬 오닐에게 당한 패배들이었기 때문이다.

리그 4연속 우승에 실패한 뒤 팀을 떠나게 된 오닐은 드웨인 웨이드와 함께 마이애미를 순식간에 리그 우승 후보로 끌어올렸다. 희비가 교차되는 두 선수의 라이벌전을 리그에서 놓칠 리 없었고 이는 레이커스와 마이애미의 3연속 크리스마스 매치라는 결과물을 낳게 되었다. 브라이언트는 2004년과 2005년에 각각 42득점과 37득점을 퍼부었지만 끝내 오닐을 무릎 꿇게 하진 못했다. 전성기를 지났다는 평가를 듣던 오닐이 유독 브라이언트와의 맞대결에서는 힘을 냈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 옆에서 오닐을 보좌했던 웨이드의 맹활약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매치였던 2006년에는 오닐이 결장을 했는데, 오닐의 결장으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던 탓인지 브라이언트는 신인 시절의 크리스마스를 제외한 9번의 경기들 중 가장 적은 16득점에 그친 반면 어느덧 마이애미의 에이스로 우뚝 선 웨이드는 홀로 40득점을 기록하며 손쉬운 승리를 기록했다.


Happy Holiday! 크리스마스가 가장 즐거운 팀은?

그러면 그 동안 가장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팀은 어떤 팀일까?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매직 존슨의 레이커스? 래리 버드의 보스턴? 정답은 다소 의외인 포틀랜드다.

포틀랜드는 1972년 시애틀에게 3점차 승리를 기록한 이 후 2007년 시애틀에게 89-79의 승리를 거두며 크리스마스 12연승을 기록 중이다. 그들은 이번 2008년에도 댈러스와의 크리스마스 매치가 예정되어 있다. 과연 그들이 크리스마스 13연승을 기록할 수 있을까?
덧붙여 포틀랜드는 1983년 레이커스와의 크리스마스 매치에서 무려 141득점을 기록하며 크리스마스 최다 득점 팀의 영예마저 독차지했다.


산타 클로스의 선택을 받은 자, 누구인가?

이번에는 크리스마스가 가장 즐거웠던 선수에 대한 이야기다.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쳐가는 선수는 역시 조던. 조던은 총 6번의 크리스마스 매치 경험이 있는데 1986년 커리어 첫 번째 크리스마스 매치에서 뉴욕에게 패배를 당한 이 후 모든 경기에서 승리하며 5승 1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6번의 크리스마스 매치 동안 평균 28.3득점 8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다소 평범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쳤다.

그러나 진짜 산타의 선택을 받은 선수는 바로 그 옆에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조던의 영원한 파트너 스카티 피펜. 피펜은 총 7번의 크리스마스 매치를 치루며 단 한 차례의 패배도 기록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매치 승률 100%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피펜의 크리스마스 매치는 1994년 뉴욕과의 경기다. 조던의 충격적인 은퇴 발표 이 후 ‘타도 시카고’를 외치며 이를 갈고 있던 뉴욕과 크리스마스에 처음으로 맞대결을 하게 된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두 팀의 경기는 명승부로 이어졌고, 언제나 그랬듯이 승리의 여신은 시카고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피펜은 자신이 단순한 ‘조력자’ 이상의 선수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무려 53분을 플레이하며 경기 최다인 36득점을 기록한 동시에 16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한 것이다. 뉴욕의 패트릭 유잉은 30득점 12리바운드로 맹활약했으나 ‘조력자’였던 존 스탁스가 단 8득점에 그치며 패배의 쓴맛을 봐야만 했다.


2008년의 크리스마스 메뉴

올 해 2008년의 크리스마스에는 총 다섯 경기가 준비되어 있다.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경기는 역시 전통의 라이벌이자 강력한 우승 후보들인 보스턴과 레이커스의 경기. 브라이언트의 10년 연속 크리스마스 매치이기도한 이 경기는 미리 보는 결승전이라 해도 무방한 만큼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동부 컨퍼런스의 새로운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워싱턴과 클리블랜드의 경기도 흥미진진하지만 워싱턴의 길버트 아레나스가 출장하지 못하는 탓에 기대만큼의 명승부는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마스 매치의 시작을 알리는 뉴올리언즈와 올랜도의 경기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크리스 폴과 드와잇 하워드라는, 리그의 미래를 짊어질 포인트 가드와 센터의 대결이 펼쳐질 이 경기는 신세대 NBA 팬들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폴과 하워드의 경기가 신세대 NBA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면 10년 이상 NBA를 지켜봐온 중견 팬들을 위한 경기도 준비되어 있다. 2000년대 초반을 양분했던 오닐과 던컨의 대결이자 대표적인 공격 팀과 수비 팀의 만남이기도 한 피닉스와 샌안토니오의 경기가 그것이다. 오닐과 던컨의 맞대결 말고도 마누 지노빌리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의 득점 대결, 토니 파커와 스티브 내쉬의 만남 등 여러 가지 재미있는 요소들을 갖고 있는 경기이기에 결코 소외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했듯 크리스마스 매치 13연승에 도전하는 포틀랜드와 이를 저지하려는 댈러스의 경기가 크리스마스 매치의 대미를 장식할 것이다.

과연 2008년 크리스마스에는 어떤 선수가 대활약을 할 지, 어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겨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아! 크리스마스 매치는 시차로 인해 우리 시각으로 12월 26일에 방송 된다. 여자친구와의 약속으로 재미있는 경기를 놓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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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떠돌이검사 2008. 12. 11. 06:07

악동들의 숨겨진 영향력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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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 없이는 NBA도 없다”

오래전 NBA 커미셔너 데이빗 스턴이 언론에 했던 말이다.

그렇다. 여타 다른 스포츠 리그들이 그러하듯, NBA 역시 팬 서비스를 중요시 한다. 미국 내 다른 스포츠 리그중에서도 NBA는 특히 팬 서비스에 신경을 많이 쓰는 리그로 거듭나고 있다.

선수들의 의무적 봉사활동, 정장 착용 등 팬들을 위한 여러가지 정책을 시도중에 있다. 이러한 변화에 팬들 역시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다.

NBA가 근래 들어 여러가지 제도에 변화를 주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NBA의 이미지 때문이다.

그동안 NBA에서 풍겼던 힙합과 갱스터류의 이미지를 순화시켜 더욱 많은 팬들을 끌어모으자는것이 스턴과 NBA의 주 목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과연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잠시 후에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필자가 NBA의 이미지 개선 관련 정책을 언급한 이유는 바로 팬 서비스의 아이러니함을 토론해 보고자 함이다.

2000년대 들어 NBA의 이미지는 최악에 이르렀다.

코트 내에서의 격한 싸움이 잦았으며, 코트 밖에서의 여러가지 트러블까지, 선수들은 자신들이 공인이라는것을 마치 잊은 듯 행동하였다. 물론 모든 선수들이 그러한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소위 “악동” 들이 NBA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바꿔놓았다.(최소한 스턴은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물론 팬들에게 진정한 농구의 묘미와 맛을 선보이는것이 이상적인 팬 서비스라 할수 있다. 이것과 더불어 팀들간 혹은 선수들간의 라이벌 관계(예: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 스타 플레이어들의 탄생(예: 마이클 조던), 신기록 수립 등등, 여러가지 요소들 역시 NBA가 팬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이기도 하다. 이 모든것들이 팬들의 NBA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있다. 좋은 예가 바로 한국의 NBA 팬들이다. 마이클 조던이나 앨런 아이버슨과 같은 스타 플레이어들 때문에 NBA에 발을 들여놓은 팬들이 있는가 하면, 농구 자체의 아름다움에 감탄해 NBA를 두드려보는 팬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NBA의 또다른 흥미유발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악동” 이다.

실제로 신체접촉이 불가피한 농구같은 스포츠에서는 선수들간의 말다툼, 몸싸움, 크게로는 난투극이 종종 일어난다. 선수와 심판간의 트러블 역시 유발될 수 있으며 팬들과 선수들간의 다툼 역시 일어날 수 있다. 코트 외에서도 마찬가지다. 구단과 선수간의 트러블이 있는가하면, 서로 불만을 품는 선수와 감독들 역시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자주 연결되는 선수들을 우리는 “악동” 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악동 출현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언론이 대중화 된 시대에서는 악동의 일거수일투족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쉽다. 이들이 일으키는 문제는 NBA 팬들이 아닌 사람들의 이목을 이끌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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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론 아테스트와 한 팬과의 난투극


수년 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 인디애나 페이서스 선수들간의 난투극을 기억하는가?

경기 종료 직전 피스톤스의 벤 월러스와 페이서스의 론 아테스트의 몸싸움에서 시작한 이 난투극은 여러 선수들의 주먹다툼으로 번졌고, 결국 아테스트가 팬을 가격하는 사태로 번졌다. 아테스트는 이 사건 이후로 전 경기 출장정지라는 무거운 징계를 받았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크게 화자되고있다. 그 사건 이후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에 관심을 기울였고, 이는 한동안 잠잠했던 NBA의 또다른 흥미로움을 유발했다. 실제로 난투극이 벌어진 이후 몇주동안 NBA 전국방송 시청률이 크게 올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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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시절의 라시드 월러스는 어떠한가? 당시 월러스는 2000-2001 시즌에 40개의 테크니컬 파울을 받는 진기록(?)을 세웠다.

한 시즌이 82경기임을 감안하면, 40개의 테크니컬 파울은 정말 진귀한 기록이다. 월러스를 비롯, 본지 웰스와 데이먼 스타더마이어등 악동 이미지로 굳어버린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트레일블레이저스를 미국 언론은 감옥이라는 뜻을 지닌 제일블레이저스(Jailblazers) 라고 풍자하곤 했다. 월래스는 농구에 관심없는 사람들도 NBA를 대표하는 악동이라고 알만큼 그 유명세를 떨쳤었다.

팀 내에서의 트러블 역시 대중들에게 노출되곤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앨런 아이버슨이다. 아이버슨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시절 팀 훈련에 자주 불참하곤 했다. 감독이었던 래리 브라운이 언론에 불만을 토로하자 아이버슨 역시 그 유명한 “Practice? Practice?” 라는 말과 함께 자신은 연습에 불참해도 경기력에는 아무런 영향을 안받는다는 인터뷰를 했었다. 당시 아이버슨은 NBA 최고의 스타였으므로 스타와 감독간의 마찰은 대중들에게도 유명해졌고, 아이버슨을 생각하면 “Practice” 라는 문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같이 NBA에서 일어나는 작은 트러블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물론 악동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NBA 광팬이 된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가끔씩 일어나는 트러블은 잠시만이라도 사람들이 NBA에 관심을 가질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른 스포츠 리그가 그러하듯, NBA의 현실적 목표는 무엇이겠는가? 사람들의 관심을 최대한 끌어모아 이익을 있는대로 창출하는 것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대로 스타 플레이어, 팀들과 플레이어들간의 상관관계, 순수한 농구의 아름다움 등, 모두 NBA가 제공하는 최상의 팬서비스다. 이것들로 인해 NBA는 오늘날 거대한 팬들을 보유할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악동들 역시 NBA의 인기를 위해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가끔씩 터지는 악동들의 기이한 행동들은 팬들에게 새로운 흥미를 제공할 수 있으며, 대중들에게 NBA를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스턴이 원하는 방향은 아니지만 말이다.

현재 NBA가 추구하는 이미지 순화와 악동들이 제공하는 새로운 흥미요소, 스턴이 추구하는 이미지 순화를 통한 팬 베이스를 구축하는 것과 NBA 내외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트러블들이 가져오는 팬들의 관심, 정말 아이러니 한 상황이다.

물론 선수들이 코트 외에서의 트러블로 인해 대중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스티븐 잭슨과 자말 틴즐리는 예전 클럽에서 총기난사 사건에 연류됬었다.

왕년의 리바운드 스타 제이슨 윌리엄스는 총기난사로 인한 살인 혐의를 받기도 했다.

이는 스턴이 제기하는 문제이며, 이로 인해 생긴 NBA의 어두운 이미지는 당연히 순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농구로 인한, 농구에 관련된 악동들은 팬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해 줌과 동시에 NBA가 농구뿐만이 아닌 심오한 시스템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실제로 NBA는 악동들을 마케팅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난투극의 주인공 론 아테스트가 학교 교장실로 끌려가는 광고가 있다.

아테스트를 학교의 문제아로 가장한 이 선전은 NBA가 아테스트의 악동기질을 NBA가 제공하는 또다른 흥미요소로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 위에 언급했던 문제의 답을 한번 찾아보자.

스턴이 추구하는 이미지 순화만이 NBA가 팬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팬서비스라고 볼수 있을까? 물론 큰 틀에서 볼때 답은 맞다.

하지만 악동은 단순한 필요악이 아니다. 악동은 NBA가 팬들에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서비스라고 말하고 싶다.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악동은 충분히 대중들의 이목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악동의 출현을 절대 부정적으로 보지 말자. 또다른 볼거리가 생겼다는 시각으로 본다면 NBA를 보는 즐거움이 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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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궈달라와 영. 이대로 괜찮은가?

브랜드의 결장이 길어지고 있다.

일단 다음 주까지는 경과를 지켜봐야 하며(햄스트링 부상이다.) 그 이후 확실한 부상 정도와 결장 기간 등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즉, 다음 주까지 브랜드는 정상 컨디션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브랜드 없이 치른 두 경기에서 필라델피아의 경기력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전에서는 승리를 거두었고, 뉴저지 넷츠 전에서는 접전 끝에 아쉬운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브랜드의 결장 시기와 맞물려 두 선수의 변화가 눈에 띈다.

바로 이궈달라와 영이다.

일단 이궈달라는 최근 컨디션의 회복세가 눈에 띈다. 특히 최근 네 경기에서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불확실했던 자신의 역할을 다시 재정립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확실한 플레이의 변화가 눈에 띈다.여전히 턴 오버는 많이 범하고 있고, 슈팅 컨디션 또한 좋지 않지만, 공격에서 자신의 역할을 새로이 찾은 느낌이다.

밀러가 리딩을 주도하고, 그 외의 다양한 선수들이 볼 배급을 도와주면서 주전 멤버 전원이 볼 배급에 참여하고 있다. 심지어 레이커스 전에서는 사무엘 달렘베어가 환상적인 바운드 패스로 코트를 가로지르는 어시스트를 넣어줄 정도로 팀원들 전체가 볼 배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달렘베어와 브랜드를 축으로 한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가 간간히 쓰이고 있으며(예전 크리스 웨버 시절에 사용했던 적이 있다), 영 또한 적극적으로 볼 배급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이궈달라의 서브 리딩은 여전히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이궈달라의 리딩 부담이 줄어든 것이 큰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즉, 필요 이상으로 리딩에 주력하던 이궈달라가 리딩 부담을 벗으면서 비로소 득점 옵션으로써의 플레이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슈팅 컨디션은 좋지 못하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돌파를 시도하면서, 슈팅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자유투를 얻는 게임 방식을 보여주는 등 상당히 적극적인 공격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 그의 득점력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네 경기 필드골 성공률이 49.2%에 육박하며, 평균 득점 또한 19.5점에 이르고 있다.

여전히 외곽 슈팅은 좋지 못하지만(네 경기 3점 슛 성공률 : 25%), 적극적인 돌파 시도가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궈달라는 지난 시즌에도 에이스의 중책을 맡았던 시즌 초반에는 돌파 시도가 줄어들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전력이 있다. 하지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밀러가 완연히 팀의 중심으로 올라선 이후 그의 돌파 횟수는 늘어났고, 이는 그의 경기력 안정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도 마찬가지로 밀러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이궈달라의 경기력이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즉, 이궈달라는 돌파가 늘어나야지만 위력을 발휘하는 슬레셔 형의 선수라는 점이고, 이것이 리딩 부담과 득점 부담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어찌 보면 필라델피아의 차기 에이스급 선수인 그의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최근 경기에서의 이궈달라는 분명히 상승세인 것도 사실이다. 다만 여전히 많은 턴 오버는 옥의 티라 할 수 있다. 지난 시즌 이궈달라는 2006-07시즌에 3개를 넘어서던 턴 오버를 2.61개까지 줄이면서, 플레이의 안정감을 살리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초반부터 이어진 극심한 외곽 슬럼프로 인해서 턴 오버 횟수 또한 눈에 띄게 늘어난 상태이다.

현재까지 대부분의 경기에서 팀 턴 오버의 거의 1/3 이상이 그에게서 나오고 있다. 보다 분발이 요구되는 부분이라 하겠다.

반면, 영은 최근 네 경기에서 완연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네 경기 득점이 4-17-9-8점에 그치고 있으며, 특히 브랜드가 결장한 최근 두 경기에서는 3점 슛 성공률 0%의 극도의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더욱이 그는 슈팅 컨디션이 나쁠 경우에 이궈달라나 밀러처럼 돌파로 자유투를 얻어낼 수 있는 성향의 선수도 아니다. 그렇기에 그의 득점 부진은 더욱 눈에 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플레이가 전반적으로 부진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궈달라가 부진하고, 브랜드가 부진했던 과거에는 분명히 그가 득점 리더였다. 그리고 영은 그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슈팅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면 무리하게 돌파를 시도하곤 하다가 무수히 많은 턴 오버를 범하곤 하였다.(턴오버는 많았지만 좋은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경기들에서는 턴 오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최근 네 경기에서 그가 범한 턴 오버는 단 네 개에 불과하다. 즉, 플레이의 안정성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과거에 영이 득점리더로써 지금보다 위협적인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공격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을 한 바 있다.

볼 배급에도 참여하고, 풀업 점퍼도 시도하고, 돌파도 시도하면서 수비수들을 자신에게 끌어 모으는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영의 플레이는 이런 모습을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돌파 시도는 많이 줄었지만(밀러와 이궈달라, 거기에 윌리암스와 그린까지 워낙 많은 돌파 횟수를 자랑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이 돌파할 필요성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 외의 플레이에서 영의 보다 다양한 시도 들이 눈에 띈다.

일단 볼 배급에 참여하는 횟수가 초반 대비 많이 늘어났다.

탑에서 볼을 잡고 볼을 돌려주는 횟수도 많아졌으며, 엔트리 패스를 넣어주는 횟수는 여전히 많다. 또한 풀업 점퍼 시도가 조금씩 눈에 띄고 있다. 많은 시도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런 시도는 눈에 띄며, 이것은 차후 그의 성장을 위해서 매우 긍정적인 시도이다. 더욱이 그의 슈팅 폼은 여전히 매끄럽고, 안정적이다.

최근 몇 경기에서 다소 부진한 슈팅 컨디션을 보이고 있지만, 그 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또한 영은 부진할 때에는 슈팅을 자제하고 다른 것에 집중할 줄 아는 선수이다. 그의 현재 경기력에 큰 우려를 나타내지 않는 이유이다.

이번 시즌 브랜드 효과를 가장 크게 본 것은 영이었다.

로우 포스트에서 더블 팀을 유발하는 브랜드로 인해서 가장 많은 오픈 찬스를 맞이하였으며, 이것은 그동안의 고득점에 큰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브랜드가 빠진 두 경기에서 한 자릿수 득점에 그친 것 또한 이런 상황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영은 그 와중에도 발전하고 있다. 진정으로 팀의 미래를 책임질 영건으로 천천히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빌리 킹의 마지막 선물다운 활약이라 하겠다.


마치며...

필라델피아는 최근 네 경기에서 상당히 힘든 일정을 소화하였고, 그 결과 나름대로 좋은 성과를 얻는 데 성공하였다.

최근 네 경기가 하루의 휴일만을 낀 두 번 연속의 백 투 백이었음을 감안하면, 그리고 그 상대로 동-서부를 대표하는 강호인 레이커스와 디트로이트가 끼어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2승 2패 50%의 승률은 상당히 선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연승을 가지 못했던 점이라든지, 홈경기에서 두 번 모두 패한 것은 아쉬웠지만 그런 것을 감안해도 분명히 반전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는 시점이 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4일을 쉰 후 12월 10일 클리블랜드 캐빌리어스를 홈에서 맞으면서 클리블랜드와의 2연전을 시작한다.

그 첫 경기가 클리블랜드 입장에서는 백 투 백 2번째 경기이며, 필라델피아는 반면 4일을 쉰 후 홈에서 맞이하는 첫 경기이기 때문에 이번 2연전은 그동안의 부진을 털어내는 새로운 도약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이 2연전만 무사히 넘기면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쉬운 4경기가 필라델피아를 기다리고 있다.(브랜드가 클리블랜드와의 첫 경기에 복귀하고자 한다는 언급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정상적으로 복귀할 수 있다면 그의 복귀는 팀에 큰 힘이 될 것이다)

필라델피아는 23일을 시작으로 험난한 원정 6연전을 시작한다. 첫 상대는 보스턴이며, 이후 5경기는 서부에서 치러지는 서부 원정 5연전이다.

험난한 일정이지만, 클리블랜드 2연전을 시작으로 하여, 이어지는 동부 팀과의 4경기를 잘 마무리 지어 상승세를 이어갈 수만 있다면, 다시금 도약을 노릴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한 것이다.

클리블랜드와의 2연전. 그 중에서도 첫 경기가 중요한 이유이다.(현재까지 필라델피아는 홈경기 4연패 중이다. 이것을 끊기 위해서도 이 첫 경기는 중요하다)

칙스 감독은 시즌 중 변화에 인색하지 않은 감독이다. 하지만 또한 그만큼 자신이 믿는 선수에 대한 신뢰가 유달리 깊은 감독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는 시즌 초반부터 자신이 믿고 있는 선수들이 부진했음에도 제외하지 않고 꾸준히 기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윌리암스나 이궈달라, 달렘베어가 여전히 중용되었던 이유와도 상통한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결국 칼을 뽑아 들었다. 밀러를 중심으로 다시금 팀을 재편하였고, 벤치 멤버들을 다양하게 기용하면서 여러 가지 조합을 시험해보기 시작했다.

그는 시즌 중 큰 변화에 인색하지 않은 감독이다. 그리고 이런 시도들은 많은 경우 팀의 성적 상승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렇기에 이번에 내린 그의 결단 또한 팀의 성적 상승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해 본다.

앞으로 발전할 필라델피아의 미래를 위해서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칙스 감독의 선택이 올바른 것이길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3부를 마쳤습니다. 이 글은 12월 11일 클리블랜드와의 경기 이전에 쓰여진 것입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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