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LA 레이커스전을 앞두고, 주전 포인트가드 모 윌리암스가 어깨 부상으로 최소 4주 결장 판정을 받았을 때만 해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연승을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지난 시즌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클리블랜드의 정규시즌 1위에 큰 공헌을 했고 이번 시즌 역시 변함없는 활약으로 클리블랜드의 가드진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윌리암스 대신 선발 포인트가드로 출전한 딜론테 웨스트마저 손가락 부상으로 결장하자 클리블랜드의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들이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웰리암스와 웨스트가 팀을 이탈한 이후 치른 8경기를 모두 이기며 리그 단독 1위로 치고 올라갔다. 시즌 초반 5할 승률을 넘나들며 우려를 자아냈지만 52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41승 11패를 기록, 66승 16패를 거뒀던 지난 시즌과 똑같은 페이스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클리블랜드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괴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지난 시즌 주전 가드진이 모두 빠진 공백을 나머지 선수들이 잘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클리블랜드의 연승 비결을 살펴보자.


부상 선수들의 역할

부상자 속출에 대한 클리블랜드의 대응책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 부상 선수들이 맡고 있던 역할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윌리암스는 에이스 르브론 제임스에 이은 명실상부한 제2 공격옵션이었다. 돌파가 주무기인 르브론과 조화를 이뤄 정교한 외곽슛(3점성공율 42.9%)으로 상대 수비진의 빈틈을 노렸다. 또한 지난 여름 영입한 샤킬 오닐을 비롯한 골밑 플레이어들에게 르브론 대신 패스를 넣어주는 역할도 수행했다. 윌리암스가 패싱플레이를 잘 수행해주면서 클리블랜드의 빅맨진뿐아니라 르브론의 컷인 빈도도 크게 늘었고, 그동안 르브론에게 집중되었던 볼소유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됐다.

뿐만아니라 르브론이 쉬는 2쿼터와 4쿼터 초반에는 스스로 슛찬스를 노리는 에이스 역할을 맡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포인트가드의 몸을 한 슈팅가드'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윌리암스에게는 최적의 역할이었다.

웨스트는 지난 시즌에는 선발 슈팅가드로 뛰었지만 이번 시즌에는 앤써니 파커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고 백업 포인트가드로 나오고 있다. 웨스트의 신장(191cm)은 슈팅가드 포지션에서는 약점이었지만 포인트가드 포지션에서는 오히려 강점으로 변했다. 운동능력과 기술, 터프함을 겸비한 왼손잡이 웨스트는 일반적으로 단신이거나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상대 백업 포인트가드를 상대로 포스트업을 통해 손쉬운 득점을 올릴 수 있었다. 작년 12월 밀워키의 루크 리드노어를 상대로 24분간 21득점을 몰아넣은 것이 좋은 예다.

근성있는 수비수인 웨스트는 상대가 공격형 가드를 중심으로 공격을 펼칠 때 이를 수비하는 역할도 맡고 있었다.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를 모두 수비할 수 있는 웨스트는 상대 공격을 백코트에서부터 압박하며 리듬을 무너뜨렸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두 선수가 모두 부상으로 물러나자, 마이크 브라운 감독은 주어진 자원을 가장 적절하게 재배치해 이들의 공백을 메우려 했다.


깁슨의 재기용



대니얼 깁슨에게 이번 시즌은 알다가도 모를 시간이었을것이다. 발가락 부상에 시달린 지난 시즌에는 중용됐지만 최고의 몸상태를 보인 이번 시즌에는 오히려 벤치를 지키는 일이 늘었기 때문이다. 파커와 자마리오 문 등이 영입되면서 포지션 경쟁이 심해졌고 슈팅가드를 보기에는 신장(188cm)이, 포인트가드를 보기에는 볼 핸들링 능력이 부족했던 깁슨이 슈팅 능력만으로 출장시간을 확보하기는 무리였다. 여름 내내 고향에서 수비력 향상에 주력했지만 이를 보여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결국 깁슨은 윌리암스와 웨스트가 부상당하기 전 8경기에서 평균 7분도 안되는 출장시간을 받아야 했다. 리그 3점성공율 1위(47.3%)를 기록하고 있는 깁슨에게는 납득하기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윌리암스와 웨스트가 빠지자 깁슨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지난달 23일(이하 현지시각) 오클라호마 시티와의 홈경기부터 선발 출장한 깁슨은 7경기 평균 36분간 코트를 누비며 12.4점을 올리고 있다. 3점성공율도 46%로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외곽슛에서는 윌리암스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깁슨은 전통적인 리딩가드 스타일의 가드는 아니다. 패스나 드리블보다는 볼 없이 움직인 후 점프슛을 노린다. 따라서 윌리암스가 수행했던 포인트가드 역할은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깁슨은 리그에서 르브론의 돌파력을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가드이기도 하다. 르브론의 패스를 받을 수 있는 위치로 향하는 능력은 깁슨의 신인 시즌이었던 2006-2007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3점슛 7개를 몰아넣으며 일찌기 검증된 바 있다. 이때문에 르브론의 두터운 신뢰를 얻어온 깁슨은 이번 시즌에도 변함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발로 나온 첫 경기였던 오클라호마 시티 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르브론의 패스를 받아 결승 3점슛을 넣은 장면은 시즌 최고 명장면중 하나였다.

슈터가 규칙적인 출장시간을 얻지 못하면 슛감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걸 감안할 때, 깁슨의 자기관리는 놀라운 수준이다. 브라운 감독과 르브론이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이유다.


돌아온 흑상어 오닐



시즌 초반 오닐이 부진한 모습을 보였을 때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72년생으로 다음달 6일 38세가 되는 오닐의 선수생명이 이제 끝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2천만 달러에 달하는 연봉을 감수해가며 오닐을 영입한 대니 페리 단장은 집중 성토의 대상이 됐고, 이번 시즌 만기 계약인 오닐이 올스타 휴식기 이전에 트레이드되리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오닐은 역시 오닐이었다. 윌리암스와 웨스트가 빠지고 더 많은 역할을 부여받자 오닐은 왕년의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8경기에서 평균 28분동안 출장해서 득점 16.7점, 야투율은 무려 65%에 달하고 있다. 골밑에서 자리잡는 과정이 한층 간결해졌고, 일단 볼을 받으면 '골밑에서 오닐을 1:1로 막는 것은 불가능'이라는 것이 변함없이 증명되고 있다. 신장 198cm에 불과한 척 헤이즈(휴스턴 로케츠)를 상대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던 시즌 초와는 딴판인 모습이다. 최근 르브론이 '오닐은 우리 모두를 속였다. 괜히 모두가 걱정하게 만들었으니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 단순한 농담은 아닌 것이다.

오닐 효과는 개인 성적뿐아니라 팀 성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NBA.com 칼럼니스트 존 슈만에 의하면 클리블랜드는 페인트존 평균득점 순위에서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시즌 28위에 비해 크게 오른 수치다. 오닐이 제 모습을 찾으면서 오닐에게 더블팀이 붙기 시작했고, 반대 사이드에서 뛰어드는 앤더슨 바레장과 J.J. 힉슨에게는 노마크 찬스가 연달아 주어지고 있다. 게다가 상대 수비진은 이제 골밑 돌파를 시도하는 르브론을 상대로 더이상 빅맨이 헬프디펜스를 하기 힘들어졌다. 바로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오닐에게 패스가 갈 경우 자동을 2점을 헌납하게 되기 때문이다.

헬프디펜스의 부담에서 벗어난 르브론은 이번 시즌 골밑슛 성공율 70.5%를 기록, 지난 시즌(68.5%)보다 높은 성공율을 보이고 있다. 오닐 영입 당시 제기된 '두 명 모두 골밑 중심 플레이를 펼치기 때문에 활동 반경이 겹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사실이 아니었음이 증명된 셈이다.

오닐 효과는 수비면에서도 뚜렷히 나타나고 있다. 클리블랜드는 팀 수비 성적 중요 부문인 최소실점, 최저 야투허용율, 최저 페인트존 실점 부문에서 모두 선두를 달리고 있다. 오닐이 커다란 몸을 이용해 상대 골밑 공격을 철저히 막음에 따라 상대팀이 골밑 공략을 통한 확률농구를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느린 발때문에 2:2 수비에서 문제를 보일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실보다는 득이 더 많았다.

오닐의 골밑 존재감은 빅 센터가 있는 강팀을 상대로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난 시즌 클리블랜드는 레이커스와의 정규시즌 두 경기를 통해 페인트존 득점에서 104-52로 큰 열세를 보였다. 파우 가솔과 앤드루 바이넘이 버티는 골밑을 공략할 선수가 사실상 르브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골밑에서 멀리 떨어져 슛을 던져야 했던 결과는 두 경기 모두 완패였다. 하지만 이번 시즌 오닐이 가세한 이후 치른 두 경기에서, 클리블랜드는 레이커스 골밑을 상대로 88-74 우세를 보였다. 오닐이 바이넘을 파울트러블로 몰아넣으며 골밑을 굳게 지킨 덕분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2전 전승이었다.

올랜도전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시즌 컨퍼런스 파이널 6경기에서 하워드는 평균 20.6득점 13.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올랜도가 승리한 네 경기에서 하워드의 평균득점은 30점을 웃돌았다. 클리블랜드의 골밑 자원으로는 하워드를 전혀 막지 못했고, 이를 돕기 위해 수비 진형을 좁히면 어김없이 올랜도의 3점슛이 폭발했다. 하지만 오닐이 가세한 이번 시즌 1차전에서 하워드는 파울트러블에 시달리며 11득점에 그쳤다. 하워드에게 통산 평균 13.6점만을 허용한 오닐의 존재감이 증명된 것이다.

오닐이 가져다 준 또 하나의 이점은 지난 시즌까지 선발 센터로 뛰었던 지드루너스 일가우스카스가 벤치에서 나올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221cm의 장신에 고감도 외곽 슈팅 능력(이번 시즌 3점성공율 55%)을 겸비한 일가우스카스는 지난 시즌에 평균 12.9득점을 기록한 준수한 선수다. 르브론의 신인 시절부터 함께 해온 유일한 선수로 팀 시스템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시즌 초반 익숙치 않은 벤치 출장으로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지만 금방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일가우스카스는 오닐과 번갈아 출전하며 변함없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가우스카스의 중장거리 슈팅 능력을 이용해 오닐과 함께 코트에 서는 '트윈 타워'가 가동될 때는 상대 빅맨진을 공포에 빠뜨리기도 한다. 오닐과 일가우스카스는 이번 시즌 평균 18.4득점, 12.2리바운드를 합작하며 최강의 센터진을 구축하고 있다.

각 팀의 수비가 강력해지고 골밑이 강한 팀이 우위를 갖는 플레이오프가 다가올수록 오닐의 가치는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Mr. Everything' 르브론



하지만 위의 모든 시도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르브론의 존재 때문이다. 윌리암스와 웨스트가 빠진 후 르브론은 차원이 다른 농구를 펼치고 있다.

르브론은 지단달 21일 레이커스전부터 9경기를 치르는 동안 6경기에서는 30점 이상을, 5경기에서는 두 자릿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 기간동안 르브론이 기록한 평균성적은 30.8득점 6.9리바운드 10.1어시스트에 달한다. 포지션을 알아맞히기 힘든 전천후 활약이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 나타나는 르브론의 다재다능함은 각종 수치를 능가한다. 르브론은 경기 초반에는 포워드로 출장, 리딩 능력이 떨어지는 깁슨을 대신해 포인트포워드 역할을 하며 오닐과 깁슨, 힉슨 등에게 찬스를 만들어준다. 르브론의 한 경기 어시스트 중 반 정도가 이 시간대에 나온다. 1쿼터 중반에 접어들어 빅맨 파트너가 일가우스카스와 바레장으로 바뀌면 6~7년간 호흡을 맞춰온 이들과 2:2 플레이를 통해 득점을 올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르브론의 모습이다.

1쿼터 후반이 되면 더욱더 놀라운 모습을 보인다. 이 시간대에 백업 포인트가드로 나오던 웨스트를 대신해 아예 포인트가드를 맡는 것이다. 윙 플레이어로 문과 자와드 윌리암스가 나오면 코트 위의 다섯 명이 모두 203cm를 넘는 초 장신 라인업이 완성된다. 신장 203cm에 몸무게 113kg이라는 파워포워드에나 어울리는 체구에도 불구하고 상대 포인트가드와의 스피드 경쟁에 밀리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대로 상대팀은 190cm 내외의 포인트가드가 르브론을 막아야 하므로 큰 고민에 빠지게 된다. 신장차를 이용해 상대 백업 포인트가드를 압박하던 웨스트의 역할을 더 크고 더 빠르며 더 높은 르브론이 맡는 것이다.

2쿼터 초반에 윌리암스의 역할을 대신해 공격을 이끌던 르브론은 2쿼터 말미에는 파워포워드로 변신한다. 3점 라인 주변에 슈터 3명을 세워놓고 바레장과 2:2 공격을 하는 이 공격시스템을 클리블랜드 코칭스태프들은 '네일(손톱) 공격'이라 부른다. 르브론과 바레장이라는 두 손톱으로 상대 수비진형을 찢어낸 후 르브론이 직접 득점을 시도하거나 패스를 통해 두 번째 찬스를 노린다. 최그 최고의 패서 중 하나인 르브론이 언제든지 외곽의 슈터들에게 패스를 해줄 수 있으므로 상대 수비진의 간격이 멀어질 수밖에 없고, 르브론이 돌파를 할 때 서로 도와 막아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르브론은 이렇게 24분 동안 포인트포워드-주득점원-순수 포인트가드-주득점원-파워포워드 등의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이 모두에서 완벽한 결과를 이끌어내고 있다. 리그 역사를 통틀어봐도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선수는 극히 드물다. 주전 포인트가드진 두 명이 모두 결장해도 볼 흐름이 오히려 좋아지는 이유고 이번 시즌 동부컨퍼런스 이달의 선수를 모두 휩쓸고 있는 이유다.


죽의 미학

클리블랜드는 핵심 선수 두 명을 잃었지만 남은 선수들이 역할을 조금씩 늘리며 무패 가도를 달려왔다. 웨스트는 6일 팀 훈련을 시작했고 올스타 휴식기간 후에는 그동안 재활에 힘쓰고 있던 리온 포우가 윌리암스와 함께 복귀한다. 위기를 넘긴 것이다.

벽돌을 차곡차곡 채운 상자에서 벽돌 한 장을 빼면 벽돌이 빠진 자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새 벽돌을 채워넣지 않는 이상 그 구멍은 막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릇에 죽을 가득 채운 후 한 숟가락을 떠내도 죽을 떠낸 자리는 금방 사라진다. 주위의 죽이 빈 공간을 메우면서 흔적을 지우는 것이다.

'죽의 미학'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클리블랜드가 창단 40주년을 맞아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볼 수 있을지에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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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HELTANT79 2009. 12. 31. 23:43

클리블랜드 2009년 결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창단 이래 가장 시끄러웠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2009년이 마무리됐다. 클리블랜드는 30일(이하 현지시각) 벌어진 애틀랜타 호크스와의 홈경기에서 이날 생일을 맞은 르브론 제임스가 48득점을 폭발시키고 앤더슨 바레장이 막판 극적인 3점슛을 집어넣으며 대역전승을 일궈냈다. 곧이어 벌어진 보스턴 셀틱스-피닉스 선즈 경기에서 보스턴이 패함에 따라 클리블랜드는 동부 컨퍼런스 1위의 성적으로 2010년을 맞게 됐다.

클리블랜드의 2009년을 돌아본다.



1월_ 발목 부상을 당한 주전 센터 지드루너스 일가우스카스 없이 2009년을 맞이한 클리블랜드 앞에는 서부 원정 4경기를 포함한 험난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1월을 거치며 진지하게 우승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9일 벌어진 보스턴과의 홈경기에서 르브론이 완벽하게 경기를 장악하며 완승을 거둔 클리블랜드는 곧이어 주전 파워포워드 벤 월러스가 독감으로 한동안 나오지 못했고, 가드 딜론테 웨스트가 손목 골절을 당하는 등 며 정상 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LA레이커스와 올랜도 매직 원정에서의 완패는 장신팀에 약하다는 과제를 던져줬다.

하지만 모든 악재에도 불구하고 10승 4패를 올린 클리블랜드는 여전히 동부 컨퍼런스 선두권을 달리며 리그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즌 개막 전 46승이 예상됐던 팀이 일약 우승후보로 올라선 한 달이었다.


2월_ 부상 문제는 계속해서 클리블랜드를 괴롭혔다. 웨스트 없이 치른 레이커스전에서 시즌 첫 홈경기 패배를 당한데 이어 다음날 인디애나 페이서스에게도 석패하며 시즌 첫 연패를 맛봤다. 트레이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실제로 여러 팀과 교섭했지만, 대니 페리 단장의 선택은 현상유지였다. 이때 논의된 트레이드 중 하나인 샤킬 오닐 영입은 시즌이 끝난 뒤 현실화된다.

한편 모리스 윌리암스가 르브론과 함께 생애 첫 올스타에 선발되면서 클리블랜드는 2005년 이후 4년 만에 르브론 이외의 올스타를 배출하게 됐다. 르브론은 4일 뉴욕 닉스전에서는 52득점 11어시스트 9리바운드, 20일 밀워키 벅스전에서는 3쿼터 2분여 동안 16점을 몰아넣으며 55득점 9어시스트를 올리는 등 역사에 남을 경기를 펼쳤다.


3월_ 웨스트가 복귀했지만 이번에는 월러스가 정강이 골절을 당하며 이탈했다. 페리 단장은 오클라호마 썬더에서 바이아웃된 조 스미스를 영입하며 구멍을 메우려 했지만 벤치 핵심 빅맨인 앤더슨 바레장이 선발로 올라간 빈자리를 완전히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보스턴 셀틱스 원정경기에서 졌지만 나머지 16경기를 모두 승리하며 팀 역사상 월별 최다승을 올렸다. 시즌 60승 돌파와 원정 경기 23승 돌파 역시 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보스턴과 올랜도의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동부 컨퍼런스 1위 독주 체제를 굳혔다.

시즌 초반 팀 통산 리바운드 신기록을 세운 일가우스카스는 22일 뉴저지 네츠와의 홈경기에서 4개의 블록슛을 기록하며 팀 통산 블록슛 신기록도 수립했다.


4월_ 충격의 2연패로 4월을 시작했다. 특히 플레이오프 상대가 될 수도 있었던 올랜도와의 원정경기에서 당한 29점차 대패는 불행의 전주곡과도 같았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이후 치른 5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정규시즌 한 경기를 남겨두고 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창단 이후 처음 맞는 경사였다. 동부 컨퍼런스 1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임한 클리블랜드는 1라운드 상대인 디트로이트를 평균 15점 이상의 점수차로 4경기만에 일축해버렸다.

팀의 정규시즌 66승 16패를 이끈 마이크 브라운 감독은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며 1976년 빌 피치 이후 창단 이후 이 상을 받은 두 번째 클리블랜드 감독이 됐다.


5월_ 환호와 탄식이 어우러진 한 달이었다. 르브론은 6일 생애 첫 MVP를 수상했다. 리그 역사상 웨스 언셀드(전 워싱턴 불리츠), 모지스 말론(전 휴스턴 로케츠) 다음으로 어린 나이의 수상이었다. 르브론은 모교인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가족과 친지, 팀 동료들의 박수를 받으며 MVP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애틀랜타와 가진 플레이오프 2라운드도 르브론을 위한 무대였다. 르브론은 애틀랜타 수비진을 완벽하게 농락하며 클리블랜드의 평균 18점차 4전 전승을 이끌었다. 클리블랜드의 경기력은 완벽해보였고 누구나 르브론과 코비 브라이언트의 결승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동부컨퍼런스 결승에서 만난 올랜도는 이런 꿈을 무참히 깨버렸다. 드와이트 하워드가 골밑을 장악한 올랜도는 라샤드 루이스 등 슈터진이 외곽포를 폭발시키며 클리블랜드를 압도했고, 모 윌리암스가 최악의 부진을 보인 클리블랜드는 르브론의 생애 최고 활약에도 불구하고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탈락 확정 직후 르브론은 상대팀 선수와의 악수와 공식 기자회견을 거부하며 구설수에 올랐고 시즌 내내 이어졌던 클리블랜드에 대한 찬탄은 비관으로 바뀌었다. 긴 여름방학의 시작이었다.


6월_ 페리 단장이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올랜도와의 플레이오프 시리즈를 치르면서 골밑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페리 단장은 벤 월러스와 사샤 파블로비치, 2010년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과 약간의 현금을 피닉스로 넘기고 샤킬 오닐을 영입하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리그 관계자들을 충격에 빠뜨린 대형 트레이드였다.

다음날 벌어진 드래프트에서 페리 단장은 콩고 출신의 무명 선수 크리스천 아옝가를 1라운드에서 지명하며 다시 한 번 리그를 놀라게 했다. 애시당초 이번 드래프트에서 뽑은 신인은 다음 시즌 계획에 없을 정도로 오프시즌 선수 수집에 전념하겠다는 선언이었다.


7월_ 페리 단장 취임 이래 가장 바쁜 여름이 시작됐다. 찰리 빌라누에바, 론 아테스트, 트레버 아리자 등 대어급 FA 사냥에 연달아 실패한 페리 단장은 대신 앤써니 파커와 자마리오 문을 영입하며 장신 윙 플레이어를 확보했다. 바레장과 6년 재계약을 맺으며 팀과 미래를 함께 할 것임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한편 오닐은 워싱턴에서 벌어진 WWE 프로레슬링에 일일 단장으로 출연해 쇼맨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8월_ 클리블랜드는 선수영입을 멈추지 않았다. 라이벌 보스턴의 주력 빅맨 리온 포우를 영입한 것이다. 무릎 수술 회복 여부가 불투명해 보스턴과의 재계약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포우는 클리블랜드가 최소연봉만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클리블랜드행을 선택했다. 이듬해 2월에나 복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기다릴 가치는 충분하다는 것이 페리 단장의 생각이었다.

오닐은 NBA 선수 중 처음으로 자신만의 전국방송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됐다. ABC 방송에서 'Shaq VS'란 이름으로 방영된 이 프로그램에서 오닐은 야구의 앨버트 푸홀스, 권투의 오스카 델라호야, 수영의 마이클 펠프스 등 각 종목을 대표하는 슈퍼스타들과 맞대결을 펼쳤다.


9월_ 르브론의 고등학교 시절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More than a game'이 공개됐다. 7년여에 걸친 제작기간 끝에 만들어진 영화였다. 이 영화는 각종 독립영화제에서 호평받았다. 동시에 출간된 르브론의 자서전 'Shooting Star' 역시 화젯거리였다.

클리블랜드 선수들은 28일 열린 미디어 데이 행사에서 처음으로 모두 모여 새 시즌을 시작했다. 며칠 전 총기소지 혐의로 체포됐던 웨스트 역시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하지만 밝은 분위기는 다음날 곧바로 뒤집혔다. 평생 조울증을 앓아온 웨스트가 사전 통보 없이 팀을 이탈한 것이다. 웨스트를 선발 슈팅가드감으로 여기고 있던 브라운 감독의 시즌 구상에 위기가 찾아왔다.


10월_ 웨스트는 이탈 몇 주 뒤 팀에 복귀했지만 여전히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시범경기를 치르는 동안 A형 독감이 팀을 덮쳤다. 르브론을 비롯해 선수단의 거의 절반과 브라운 감독이 독감에 걸렸다. 이때문에 르브론이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클리블랜드는 거의 2주 동안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했고, 시즌 준비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브라운 감독이 '정규시즌 첫 2주는 시범경기와 같음'을 선언할 정도였다.

브라운 감독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27일 보스턴과의 개막전과 다음날 토론토 랩터스 원정에서 충격의 2연패를 당한 클리블랜드는 당초 우승전력으로 평가받았던 것과는 달리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선수들간에 호흡이 전혀 맞지 않았고 브라운 감독의 선수 기용 방식 역시 들쭉날쭉했다.

르브론은 개막전에서 역대 최연소 통산 13,000점을 기록했지만 팀 패배로 빛이 바랬다.

11월_ 지난 시즌 홈에서 2패만 당한 클리블랜드는 정규시즌 6경기만에 벌써 홈 2패째를 기록했다. 설상가상으로 오닐이 어깨 부상으로 6경기를 결장했다. 하지만 올랜도 원정경기에서 오닐은 하워드를 잘 막아내며 클리블랜드의 완승에 큰 공헌을 했다. 페리 단장이 오닐을 영입한 이유가 증명된 경기였다.

시즌 7번째 경기였던 뉴욕 닉스 원정부터 2년차 J.J. 힉슨이 선발로 기용되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 주전 멤버였던 일가우스카스와 바레장을 벤치에서 출격시켜 경기 내내 고른 경기력을 유지하겠다는 브라운 감독의 복안은 이후 계속 지켜져 오고 있다.

10승 3패로 11월을 마감한 클리블랜드는 동부 컨퍼런스 선두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평균 30.5득점을 올린 르브론은 동부 컨퍼런스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12월_ 14승 3패를 올리며 창단 이후 12월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브라운 감독은 12월 반격의 한 달로 선언했고, 클리블랜드는 새로 들어온 선수들이 서서히 자리를 잡으며 경기력을 회복해갔다. 22경기 연속으로 상대 야투율을 50% 미만으로 묶으며 수비팀의 면모를 되찾았고 오닐을 이용한 작전수행능력도 크게 향상됐다. 조울증으로 고생하던 웨스트가 제 자리를 찾으면서 벤치 경기력도 크게 나아졌다. 크리스마스에 레이커스를 상대로 거둔 대승은 이러한 자신감을 잘 보여주는 경기였다.

2010년 르브론이 FA로 나올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클리블랜드는 창단 이후 첫 우승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창단 40주년을 맞는 2010년 클리블랜드의 발걸음을 주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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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크리스마스 메인무대의 주연으로 우뚝 섰다. 클리블랜드는 26일(한국시간) 스테이플센터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매치에서 LA 레이커스를 102-87로 제압하고 짜릿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겼다.

이로서 레이커스는 역대 NBA 크리스마스 최다 승리(現 20승) 기록경신을 내년으로 미루게 됐고, 코비 브라이언트는 샤킬 오닐과의 12월 맞대결을 4연패로 늘리며 유쾌하지 못한 크리스마스 밤을 보내게 됐다.

초반 분위기를 제압한 것은 클리블랜드였다. 클리블랜드는 레이커스의 잇따른 실책을 착실히 골로 연결시키며 일찌감치 앞서 나갔다. 간판스타 르브론 제임스는 1쿼터에만 9점을 집중시켰고, 오닐은 덩크슛만 3개를 터트리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한 번 넘어간 기세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오른손 검지 손가락 부상을 안고 있는 코비가 야투 난조에 빠진데다가, 앤드류 바이넘과 파우 가솔간의 2대2 플레이는 사전봉쇄 되며 공격의 활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때 20점 이상 벌어졌던 격차는 전반 종료와 함께 크게 좁혀져 있었다.

반전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다름 아닌 론 아테스트. 르브론의 전담마크를 담당한 아테스트는 호수비와 함께 2쿼터에만 8점을 몰아넣으며 존재감을 발휘했다. 여기에 코비의 적극적인 골밑공략까지 뒤따르며 레이커스는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한편 휴식을 마친 르브론은 전반 종료 부저소리와 함께 하프라인 3점 슛을 성공시켰지만, 비디오 판독 끝에 무효처리 되어 아쉬움을 자아냈다.

후반전은 더욱 치열한 분위기속에 전개됐다.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한 코비와 르브론 역시 코트바닥에 몸을 던지는 등 승리에 대한 의지를 감추지 않았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쏟아내는 인기팀간의 대결이기 때문에 플레이오프를 방불케 했다. 때문에 휘슬 소리 하나에도 민감한 반응이 뒤따르며 선수들과 주심들의 움직임도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클리블랜드는 리드를 놓치지 않았다. 윌리엄스가 후반전을 알리는 신호탄을 연거푸 쏘아 올린데 이어, 오닐의 파워 넘치는 덩크슛과 르브론의 득점포가 계속됐다.

클리블랜드는 리그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바이넘과 가솔 트윈타워에 맞서 오닐과 일가우스카스로 높이 경쟁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 레이커스의 골밑 공격력이 무력화되자 자연스레 코비에게 공격부담이 가중된 것이다. 여기에 최근 레이커스의 아킬레스건으로 거론되는 벤치 지원사격이 오늘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주전 선수들의 체력안배도 패인으로 작용하였다.

승부의 분수령인 4쿼터에서도 결국 활기 넘치는 움직임을 보여준 클리블랜드 벤치가 승부를 마무리 지었다. 벤치에너자이저이지만 사실상 잉여전력에 속하는 자마리오 문은 호쾌한 슬램덩크와 3점슛을 터트리며 레이커스의 추격의지를 꺾는데 일조했다.

한편 경기종료를 4분여 앞두고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은 일부 관중들이 응원도구를 코트에 투척하며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 저녁에 눈살을 찌뿌리게 만들었다.

이밖에 전통의 라이벌전으로 관심을 모았던 마이애미 히트와 뉴욕 닉스의 경기는, 30점 9리바운드로 활약한 드웨인 웨이드의 마이애미가 성탄 자축포를 올렸다. 뉴욕은 무려 7년 만에 크리스마스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홈팬들에게 실망만을 안겼다.

동부컨퍼런스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보스턴 셀틱스는 숙적 올랜도 매직과 접전 끝에 86-77으로 승리했다. 양 팀은 강력한 수비를 앞세우며 많은 득점을 바랐던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진 못했다.

보스턴은 식스맨으로 출장한 라쉬드 월라스를 포함하여 5명이 두 자리 득점을 올리는 등 고른 공격분배가 이루어졌지만, 올랜도는 3할에 그친 팀 필드골 성공률로 악몽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특히 간판스타 드와이트 하워드의 부진이 뼈아팠다.

하워드는 리바운드를 20개나 걷어내며 골밑을 장악했지만, 7개의 야투만을 시도하며 이 중 6개를 허공에 날리는 등 적극적인 공격참여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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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간으로
26일 오전 7, NBA 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LA 레이커스의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가 벌어진다.

플레이오프를 빼놓고는 리그 흥행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크리스마스 매치에 이들 두 팀이 배정된 것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   



레이커스와 캐벌리어스가 만나야만 하는 이유

1. 리그 최고 선수의 대결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리그 최고 선수는 코비 브라이언트와 르브론 제임스 둘 중 한명일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에 나란히 선발돼 미국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일조하기도 했던 둘은 만나는 경기마다 승부욕을 불태우며 멋진 경기를 해 왔다. 브라이언트는 제임스를, 제임스는 브라이언트를 서로 칭찬하기 바쁜 그 두명이 경기장에서 만날 때는 눈빛부터 달라진다.

2. 옛 동료간의 재회

2000,2001,2002년 레이커스의 일원으로 리그를 3연속 제패했던 코비 브라이언트와 샤킬 오닐은 이제 각각 레이커스와 캐벌리어스에 자리하고 있다. 이 둘은 단순히 동료였을 뿐 아니라, 친구였으며 라이벌이기도 했다. 2004년 샤킬 오닐이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한 이후, 그 둘은 리그에서 대표적인 라이벌 관계로 회자됐으며 결국 2004, 2005, 20063년 연속으로 코비의 레이커스와 오닐의 히트가 크리스마스 매치에서 만나기도 했었다.

3. 리그 최강팀끼리의 진검승부

서부를 대표하는 강팀이 레이커스라면, 동부를 대표하는 팀 중 하나는 바로 캐벌리어스라 할 수 있다. 지난 시즌 캐벌리어스는 66, 레이커스는 65승을 거두며 나란히 리그 1,2위의 승률을 기록했던 양 팀은 파이널에서 만날 수 있었지만, 캐벌리어스가 올랜도 매직에게 아깝게 동부 결승에서 패배하면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과연 이번 시즌에는 NBA 파이널에서 두 팀이 만날 수 있을까.




양팀 전력 분석
 

 

-

승률

-실 마진

순위

최근10경기

레이커스

23 - 4

85.2%

+8.52

서부 1

9 - 1

캐벌리어스

21 - 8

72.4%

+5.48

동부 4

7 - 3

 

 

필드골%

3%

필드골허용%

3점 허용%

실점

레이커스

46.2%

33.1%

42.4%

30.1%

95.0

캐벌리어스

47.9%

42.1%

43.5%

32.2%

94.1

현재까지는 레이커스가 안정적인 전력을 뽐내며 캐벌리어스와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를 내며 앞서가고 있다. -실 마진과 승패에서 볼 수 있듯, 레이커스는 현재 리그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는데 비해, 캐벌리어스는 지난해의 상승세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캐벌리어스 경기력의 원동력은 역시 수비력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수비력은 여전히 리그 수위권의 모습이다. 문제는 레이커스가 리그 최고 수비팀 반열에 오를 정도로 수비에서 발전했다는 것.

완연한 공격팀의 이미지였던 지난해와는 달리, 올시즌의 레이커스는 공격보다 수비력이 돋보이는 팀이 되었다. 야투율과 3점이 지난해에 비해 모두 하락했지만, 야투허용%3점 허용%가 지난해에 비해 확연히 좋아진 모습이다. 각팀의 페이스를 보정해서 수비력을 평가하는 도구인 디펜시브 레이팅30개구단 통틀어 유일하게 두자릿수를 기록하며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캐벌리어스는 모든 면에서 지난 시즌만 못한 전력이지만 공격에서 필드골, 3점 확률이 모두 증가했고, 특히 3점은 무려 40%를 웃도는 고확률을 보여주고 있다. 캐벌리어스가 특히 나아진 것은 바로 페인트 존 득점. 지난해 리그 25위에 불과했던 페인트존 득점이 이제는 18위로 중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오프시즌에 영입한 샤킬 오닐의 효과인데, 부상에서 돌아올 리온 포우가 제 역할을 해낸다면 리그 상위권으로의 도약도 가시화 될 전망이다.




키 매치업

르브론 제임스 vs 론 아테스트

트레버 아리자가 있었지만 르브론 제임스에게 힘에서 압도적으로 밀렸기에 중요 순간엔 팀의 에이스 코비 브라이언트가 직접 수비를 나서야만 했던 어려움을 론 아테스트의 영입으로 어느정도 털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론 아테스트는 기본적으로 리그 최고 수준의 외곽 수비수일 뿐 아니라, 힘과 노련미를 겸비한 대 제임스 최적 병기라 할 만한 선수다. 반대로 제임스는 수비수가 그 누구이든 간에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는 기량을 가지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이 매치업에서 아테스트가 제임스를 적절하게 막을 수 있다면 캐벌리어스로서는 손쓸 새 없이 레이커스에게 당할 가능성이 높다.
 

샤킬 오닐 vs 앤드류 바이넘

리그에서 가장 무거운 사나이와 그에 버금가는 덩치를 가진 젊은 센터의 매치업이다. 샤킬 오닐은 전성기에 비해 매우 느려졌지만, 아직도 그 힘만큼은 당할 자가 없다. 바이넘 역시 신체조건이 아주 좋은 편인데, 문제는 오닐이 바이넘에게, 바이넘이 오닐에게 가하는 공격을 서로 막지 못하고 파울을 범해서 한쪽이 코트 위를 떠나야 하는 경우 각 팀의 경기력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샤킬 오닐이 없는 경우 일가스커스가 센터를 보게 되지만 인사이드 지배력에서 오닐에 미치지 못한다. 반대로 바이넘이 없는 경우 오덤이 파워포워드로, 가솔이 센터로 뛰게 되지만 오덤은 공격적으로 부진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모리스 윌리엄스 vs 데릭 피셔

아마 실질적으로 위의 두 매치업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매치업이 될 것이다. 데릭 피셔는 팀디펜스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여전히 대인 방어에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단신의 빠른 가드들에게 일선 돌파를 많이 허용하면서 상대 공격의 물꼬를 틔워주고 있다. 윌리엄스는 지난 시즌보다는 득점에서 하락했지만, 여전히 위력적인 3점포와 돌파를 보여주고 있어 컨디션이 정상적이라면, 피셔를 상대로 평소보다도 더 좋은 활약을 기대할 만하다. 윙이나 인사이드에서 우위를 기대하기 힘든 캐벌리어스가 윌리엄스의 활약을 통해 공격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가 이 게임의 관건이 될 것이다.


키 포인트

# 레이커스

 * 3점포의 가동 여부
 *
수비 리바운드 사수
 * 파마-브라운의 벤치 선수 활약 여부

# 캐벌리어스

 * 인사이드의 활약 여부
 *
제임스의 꾸준한 활약 여부
 * 윌리엄스의 돌파-
외곽



그러나 이 모든 조건-분석에도 불구하고 NBA 팀들 끼리의 대결은 쉽사리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토니 델크의 53점을 경기전에 예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듯이. 가장 좋은 방법은 아침 일찍 일어나 결과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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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브론 제임스는 오늘날 NBA에서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선수들 중 하나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뉴스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고 매년 르브론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나온다. 고등학교 시절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More Than A Game'은 올가을 각종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본 칼럼에서 소개될 'LeBron James: The Making of an MVP'는 그동안 발표된 르브론의 전기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기존 전기들이 전기 전문 작가들의 헐리우드식 영웅주의에 따라 르브론의 일생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훑어냈다면, 'The Making of an MVP'는 르브론의 고향인 오하이오 주 스포츠 기자들이 르브론의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그대로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공동 저자인 테리 플루토와 브라이언 윈드호스트는 클리블랜드 지역일간지이자 이 책의 출판사인 '플레인 딜러'에서 스포츠 전문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플루토는 지난 30여 년간 클리블랜드 지역의 스포츠 뉴스를 다루며 다수의 기자상을 받았고, 윈드호스트는 르브론의 고등학교 선배로 오직 르브론에 대한 전문기사만으로 25세라는 나이에 미국 최연소 프로팀 전국 수행 기자가 됐다. 르브론의 고등학교 시절 경기들을 직접 취재한 바 있는 이들은 르브론의 출생부터 2008-2009 시즌 MVP 수상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뛰어에서는 'The Making of an MVP'의 내용 중 르브론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몇 가지를 요약해 소개한다.


르브론의 숨겨진 가족 워커 가

르브론은 16살의 미혼모였던 글로리아 제임스에게서 태어났다. 글로리아는 미용사였던 홀어머니 밑에서 르브론이 세 살때까지 함께 살았지만,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뒤로는 르브론과 함께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5년 동안 10번이나 집을 옮겼고, 집은 옮길 때마다 작아지고 나빠져갔다. 이사할 때마다 학교를 옮겼으며 그나마도 결석하는 일이 잦았던 르브론도 제대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아들을 키워야 하는 부담으로 히스테리를 부리는 어머니와 함께 오전 늦게까지 TV만 보던 르브론은 생활의 안정도, 본보기가 될 어른도, 삶의 비전도 갖지 못한 채 자라고 있었다.

그런 르브론이 초등학교 풋볼팀에서 경기하는 모습이 풋볼팀 감독인 프랭키 워커의 눈에 띄었다. 워커는 이 비쩍 마른 소년에게 안정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글로리아에게 자신이 르브론을 맡겠다고 제안했다. 아들을 보고 싶으면 아무 때나 찾아와도 좋으며 일자리와 거처를 마련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르브론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프랭키 워커와 부인 팸 워커, 그리고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됐다. 워커 부부는 르브론에게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기, 학교에 제 시간에 가기, 옷 단정히 입기 등을 가르쳤고, 르브론은 워커 집안 3남매와 함께 집안일을 하며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갔다. 정에 굶주렸던 르브론은 워커 부부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 했고, 처음으로 가정의 따뜻함을 맛볼 수 있었다. 지역 명사이던 워커 집안에서 처음으로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며 1년 후에는 개근상과 전과목 B 이상을 받는 모범생이 됐다.

르브론은 '부모님이 항상 주위에 있고 형과 누나가 있는 일상생활은 믿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며 그 경험이 자신을 슈퍼스타로 이끌었고 현재 자신의 태도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르브론은 프로 입단 후 동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새로 입단한 선수들을 편하게 해주려 노력하는 자세로 NBA에서 가장 친밀한 팀 문화를 이끌고 있는데, 정에 굶주렸던 어린 시절 경험이 큰 작용을 했다는 것이다.



군기반장 르브론


애크런 시에 위치한 가톨릭 고등학교인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SVSM)에 진학한 르브론은 사람들의 사랑과 가정의 안정을 바라는 소년으로 성장해있었다. 르브론은 학교 도서관 컴퓨터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곤 했는데, 2학년때 19건에 불과했던 검색 결과는 졸업반 때는 수만건으로 늘어났다.

학교 농구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수업에 자주 빠져야 했지만 르브론은 절대 숙제를 거르지 않는 학생이었다.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친구들에게 모범생으로 기억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르브론의 은사 중 한 명인 도서관 관리인 바버라 우드에 따르면, 르브론은 매일 아침 6시 30분에 학교 도서관에 와서 공부하고 방과후 농구 훈련을 하기 전에도 도서관에서 숙제를 했다. 르브론은 쉬는 시간마다 우드의 책상에 걸터앉아 잡담을 나누는 것을 즐기곤 했다

르브론은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의 수업시간에는 스스로 열심히 수업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을 도와주려 했다. 르브론이 가장 좋아했던 베스 하몬의 영어 시간에는 항상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주의를 주기도 했다. 언젠가 르브론을 야단친 하몬 선생님이 맹장염으로 몇 주를 결근한 뒤 돌아오자, 다시는 선생님을 잃지 않겠다는 듯 수업의 모든 과정을 도우려 했다. 난폭한 학생 두어 명이 하몬을 위협했을 때는 르브론이 이들을 제압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정에 굶주렸던 르브론은 학교를 워커 씨 집안과 같은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고등학교때 이미 슈퍼스타가 된 르브론은 해마다 중요한 상을 휩쓸었지만 트로피를 들고 집에 가도 축하해줄 가족이 없었다. 어머니인 글로리아는 돈을 버느라 항상 집을 비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르브론은 학교를 돌아다니며 트로피를 자랑하곤 했다. 한 집의 자녀가 받은 상이 그 집 전체의 기쁨이듯이 자신의 수상으로 학교 전체가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NBA 직행이 현실화되고 부와 명성이 눈앞에 있었지만 르브론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르브론은 마지막 학기까지 평점 3.0 이상 학생에게 주는 'Honor Roll'을 받았고 다른 친구들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방과 후에는 하몬 선생님의 사무실에 캔디를 한 움큼 안고 들러 성적표 처리를 도와주기도 했다. NBA에서 발표한 드래프트 참가자 공동 인터뷰 날짜가 학교 졸업식과 겹치자 르브론은 졸업식에 참석하겠다고 선언했다. NBA보다 그동안 가족과도 같았던 선생님, 친구들과의 졸업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르브론은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된 지금도 이따금 혼자서 학교를 찾는다. 고등학교 시절과 똑같이 도서관을 찾아 바버라 우드의 책상에 걸터앉고 베스 하몬의 방에 캔디를 가져간다. SVSM 고등학교는 르브론의 '마음의 고향'인 것이다.



신인 시절 왕따를 당하다



르브론이 2003년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돼 고향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향했을 때, 클리블랜드는 리그 최악의 팀이었다. 지난 5년간 감독을 4번이나 갈아치웠고 그동안 승률 50% 이상이나 플레이오프 진출은 꿈도 꾸지 못했다. NBA 선수 중 클리블랜드에서 뛰고 싶거나 클리블랜드에 남고 싶어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을 정도로 외면받고 있었다.

선수들의 정신상태도 엉망이었다. 2002-2003시즌  팀의 간판으로 내세웠던 대리어스 마일스와 리키 데이비스는 시즌 첫 기자회견장에 각각 '늦잠 자서' '클리블랜드에 없어서'라는 이유로 무단 결석했다. 팀의 기둥으로 키우려던 지드루너스 일가우스카스는 부상에서 막 회복한 상태였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패배의식에 빠져있었다. 시즌 17승 65패에 그치며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한 것도 당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NBA 역사상 최고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입단한 르브론은 몇몇 선배들의 질시를 한몸에 받아야 했다. 그들은 팀 승리보다는 올해 좋은 활약을 펼쳐 내년에 다른 팀과 좋은 계약을 맺기만을 바랐기 때문에 자신들이 활약할 기회를 빼앗아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들은 훈련 첫날부터 겨우 18세에 불과한 르브론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보이며 대화를 거부해버렸다. 고등학교까지 자신이 속한 팀이 가족이란 생각으로 농구를 해온 르브론은 농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외톨이가 되었다.

사실 선배들의 불만에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었다. 르브론은 고등학교때부터 프로 선수들을 제치고 지역 최고 스타 자리를 지켜왔고 선수들은 홈 경기에서 '르브론을 위해(1순위 지명권을 얻으려면) 져라!'라는 응원(?)을 들으며 뛰어왔던 것이다. 당시 르브론은 나이키로부터 이미 1억달러에 가까운 돈을 받기로 결정되어있었으며 18세의 나이에 '킹'이라 불리고 있었다. 르브론을 우쭐한 꼬마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리가 있었다.

짐 팩슨 단장은 르브론을 팀 승리의 중심으로 키워내려면 르브론과 나머지 선수들 모두를 다잡을 수 있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필요하다고 판단, 얼마전 뉴올리언즈 호네츠 감독직을 사임한 폴 사일러스를 새 감독으로 임명했다. 선수시절부터 터프가이로 유명했던 사일러스는 선수들에게 반론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의 엄격한 카리스마로 유명한 감독이었다. 팩슨은 사일러스에게 르브론의 인성 교육과 팀 분위기 쇄신을 명령했다.

사일러스는 곧바로 '르브론 길들이기' 작업에 착수했다. 기자들 앞에서 르브론에 대한 칭찬을 최대한 삼가며 엄격한 개인지도에 들어갔다. 훈련이 끝난 후에도 '나쁜 취미'에 빠져있던 몇몇 팀 선배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특별대우는커녕 르브론을 훨씬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사일러스 앞에서는 그동안 르브론에게 불평을 쏟아내던 선배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사일러스가 르브론 왕따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또다른 방법은 르브론을 포인트가드로 기용하는 것이었다. 팀에 제대로 된 포인트가드가 없었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기도 했다. 덕분에 르브론은 생소한 포지션인 포인트가드 역할에 적응해야 했지만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많은 득점을 올리고 싶어 르브론을 왕따시켰던 선수들이 이제 르브론의 패스를 받아야 득점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하나둘 르브론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고, 이들의 서슬에 질려 르브론을 가까이 하지 못했던 다른 선수들도 르브론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르브론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리키 데이비스같은 선수들은 시즌중 트레이드됐다.

농구 인생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던 18세의 신인 르브론은 사일러스의 지도력 아래 빠른 속도로 자리잡아갔으며, 덴버 너게츠의 고교 시절 라이벌 카멜로 앤써니를 제치고 신인왕에 선정됐다.



언론을 상대하다


지난 2009년 플레이오프에서 올랜도 매직에 패배한 후 악수와 기자회견을 거부해 비난을 받은 르브론이지만 평소에는 NBA에서 언론을 가장 잘 다루는 선수로 유명하다. 24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노련한 언론 대응법을 익힐 수 있었던 이유는 르브론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언론과 빚어온 크고작은 갈등에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하이오 지역 유망주에 불과했던 르브론이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한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때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 지의 표지모델로 선정된 것이었다. '지금 당장 NBA 드래프트에 나와도 1순위로 지명받을 수 있다'는 전문가의 극찬과 함께 '선택받은 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 사건이었다.
르브론이 유명해지자 각지에서 인터뷰 요청이 밀려들었고, 학교 선생님과 농구팀 감독은 르브론을 앉혀놓고 기자들의 질문에 공손하게 대답하는 법을 가르쳤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좋아했던 르브론은 인터뷰를 즐겼고 사람들이 우편물로 사인을 요청해도 오히려 기뻐하며 모두 들어줬다.

하지만 르브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의 쓴맛을 봐야 했다. 르브론에게 사인을 받아낸 몇몇 어른들이 인터넷에 사인을 팔기 시작했고 르브론이 이를 알아챈 것이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가족을 부양하는 문제를 일찍부터 고민하고 있던 르브론의 눈에 자기 이름을 팔아 엉뚱한 곳에서 이익을 가로채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은사 바버라 우드 앞에서 인터넷 화면을 가리키며 울부짖던 르브론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고, 카메라 앞에서 거친 행동을 일삼기 시작했다.

전국 언론과의 불화도 겪었다. 졸업반을 맞은 르브론이 농구계 최고의 화제가 되자 미국 최고의 스포츠 언론사 중 하나인 ESPN이 SVSM 고등학교의 경기를 생중계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르브론과 학교측은 별 생각 없이 승락했지만 곧 크게 당황해야 했다. 중계진이 경기 직전 라커룸에 허가없이 들어가 집중을 방해했고 경기전 분석 시간에는 '고등학교가 중계권료를 벌기 위해 학생을 착취한다'는 말이 방송됐던 것이다. ESPN측에서 요청한 대로 해줬을 뿐인 르브론과 학교측으로써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르브론의 어머니 글로리아는 NBA 입성을 앞두고 있던 아들이 받을 부담을 염려해 공개적으로 중계를 반대하기도 했다. 결국 학교는 ESPN의 다음 경기 중계 요청을 거부해야 했다.

ESPN은 전국 언론의 잔인함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글로리아의 반대로 중계가 무산됐다고 판단하자 곧바로 글로리아의 사생활을 문제삼기 시작한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아들을 키워야 했던 글로리아는 몇 가지 사소한 사건에 연루되어있었다. ESPN은 이를 근거로 글로리아가 슈퍼스타의 어머니로써 자격이 없다고 공격했으며, 나아가 르브론의 인성마저 폄하했다.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ESPN이 연일 르브론을 공격하자 르브론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이 갑자기 싸늘해졌고, 학교측은 한동안 르브론의 언론 노출을 금지해야 했다.

르브론이 클리블랜드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부담은 사라지지 않았다. 당시 클리블랜드는 3년 동안 전국 중계를 한 번도 타지 못하며 관중 동원 꼴찌를 달리던 최악의 비인기 구단이었다. 매달 백만 달러에 가까운 손해를 보고 있던 클리블랜드에게 르브론은 구세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구단은 르브론을 언론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 노출시키려 했고, 르브론은 프로 첫 경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유례 없는 플래시 세례에 시달려야 했다. 시즌이 시작되자 그때까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경기일마다 3회 인터뷰'가 기다리고 있었다. 18세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짐이었다.

고등학교까지 좋은 스승들에게 교육받은 인성과 고향팀에 대한 책임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던 르브론은 한동안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가끔은 피로를 못이겨 폭발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경기에서 올랜도를 상대하게 된 르브론은 당대 최고 스타 트레이시 맥그래디를 상대로 선전했지만 팀은 연장 끝에 패하고 말았다. 기분이 상한 르브론은 ABC 방송과 가지기로 돼있던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 인터뷰는 다음 경기 직전 전국방송인 ABC 전파를 타고 중계될 예정이었다. ABC는 NBA와 중계권료 협상을 맺은지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사색이 된 구단 관계자가 뛰어내려와 르브론을 설득했지만 르브론은 요지부동이었다.

르브론은 이와 같이 언론과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른 나이에 겪은 어려움은 르브론에게 나이에 걸맞지 않은 언론 대처 능력을 심어줬다. 르브론은 자신의 매니지먼트 회사인 LRMR을 설립해 죽마고우들을 경영자로 앉혔고 홍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오프라 윈프리 쇼를 비롯해 미국 유수의 토크쇼에 출연해 노련한 입담을 과시했으며 유명 시사 프로그램 '60분'에서는 스티브 크로프트 기자를 상대로 인터뷰의 정석을 보이기도 했다. GQ 등 남성 패션지에도 모습을 드러낸 르브론은 2008년 보그 지 116년 역사상 세 번째, 운동선수 중에는 처음으로 남자 표지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오늘날 르브론은 이미지 관리를 위해 언론을 가장 잘 이용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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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HELTANT79 2009. 11. 5. 15:45

2010년 여름, 르브론의 선택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이 주제가 지겹다는 걸 알고 있다. 솔직히 필자도 지겹다.

하지만 르브론 제임스의 2010년 거취는 벌써 2년째 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다. 뉴욕의 거대 언론들은 매일같이 '르브론 뉴욕행 가능성' 기사를 쏟아내고 있고, 많은 팬들이 그런 기사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말이 말을 낳으며 잘못된 사실에 기반한 어이없는 소문이 만들어지고, 이런 소문이 또다시 기사로 재포장되는 일이 되풀이된다. 여기에 르브론 본인이 어떤 방식으로도 확답을 주지 않고 있어 논란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뜨거운 감자' 르브론의 2010년 여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일단 억측은 배제하자

Lebron James with halo
Lebron James with halo by Craig Hatfield 저작자 표시

'부자 구단' 뉴욕 닉스는 르브론에게 훨씬 많은 연봉을 안겨줄 수 있다
- 사실이 아니다. NBA 규정상 한 선수에게 무한정 많은 연봉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연차별로 연봉 상한액이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뉴욕이나 클리블랜드나 르브론에게 줄 수 있는 연봉은 리그 규정에 의한 최고 연봉 뿐이고, 양측 모두 기꺼이 최고 연봉을 줄 용의가 있다.

르브론이 뉴욕으로 가면 나이키가 거액의 보너스를 선사할 것이다
- 몇 년 전까지는 사실이었지만 지금은 사실이 아니다. 2003년 데뷔할 때 나이키와 맺은 계약에는 '뉴욕 등 대도시로 이적할 경우 인센티브 제공'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2006년 여름 재계약을 맺을 때는 위의 조항이 삭제되었다. 다시 말해 르브론이 뉴욕으로 이적한다 해도 나이키가 르브론에게 보너스를 줘야 할 이유는 없다.

르브론이 뉴욕 양키스를 좋아하므로 뉴욕으로 갈 것이다
- 르브론이 좋아하는 스포츠 팀을 꼽아보자. 물론 르브론은 양키스의 팬이다. 고향 팀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양키스와 경기를 할 때 양키스 모자를 쓰고 나타났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양키스는 르브론이 좋아하는 팀의 일부에 불과하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 풋볼 선수로도 활약했던 르브론이 가장 좋아하는 NFL 팀은 댈러스 카우보이스다. 르브론은 댈러스 원정을 갈 때마다 카우보이스의 열성 팬임을 밝혀왔다. 만약 대학을 갔다면 어느 대학으로 갔을 것이냐는 질문에는 무려 10개 이상의 대학 이름을 댔다.
자, 르브론은 2010년 어디로 향할 것인가? 뉴욕인가, 댈러스인가? 아니면 미시건 대학의 디트로이트? 오레건 주립대의 포틀랜드는 어떤가?

르브론은 친구 제이 지가 지분을 갖고 있는 뉴저지 네츠나 C.C. 사바시아가 추천한 뉴욕으로 갈 것이다
- 친구는 클리블랜드에도 많다. 얼마 전 다큐멘터리 영화에도 함께 나온 죽마고우들은 모두 클리블랜드가 속한 오하이오 주에 살고 있다. 그들은 제이 지나 사바시아보다 르브론과의 관계가 훨씬 깊은 친구들이다.
설사 르브론이 우정을 중시한다 해도, 자신의 인생이 걸린 문제를 단지 우정에 따라 결정할까? 단지 친구가 있기 때문에 직장을 옮기려 하는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다. 당사자인 제이 지부터가 '우정과 비즈니스는 별개'라고 말하고 있다.

르브론은 줄곧 뉴욕이란 도시에 호감을 표시해왔다. 르브론 뉴욕행의 강력한 증거다.
- 르브론은 뉴욕을 사랑한다. 대다수의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게다가 뉴욕은 NBA 선수에게 가장 큰 시장이다. 그런데 뉴욕에 원정 가서 '뉴욕이 싫다'라고 말하는 선수가 있을까?
지난 여름 르브론은 뉴욕에서 자신의 다큐멘터리 영화 '모어 댄 어 게임' 시사회를 가지면서 '(뉴욕 홈구장인)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뛰는 것은 커다란 영광'이라고 말했고, 뉴욕 언론은 이를 일제히 대서특필하며 르브론이 뉴욕행을 선택할 징조라고 보도했다. 글쎄, 적어도 필자는 우리나라에 영화 홍보하러 와서 '한국 극장은 별로군요'라고 말하는 헐리우드 스타를 본 적이 없다.

르브론은 이번 오프시즌에 클리블랜드와 계약 연장을 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했다. 또한 2010년 이후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도 함구하고 있다. 이것은 르브론의 마음이 클리블랜드에서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2010년에 FA 자격을 얻는 다른 선수들은 어떻게 했는지 알아보자.
드웨인 웨이드: 연장 계약 거절, 2010년은 생각지 않고 일단 이번 시즌에 집중하겠다고 답변.
크리스 보쉬: 연장 계약 거절, 팀의 현 상황에 만족하며 이적 가능성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연장 계약 논의하지 않음, 정말로 피닉스 선즈를 사랑하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이므로 2010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답변.
마이애미 히트와 토론토 랩터스, 피닉스는 내년 여름에 웨이드, 보쉬, 스타더마이어를 잃게 되는 걸까?
이들이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뒤에 설명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들이 팀에서 마음이 떠났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위의 소문들은 르브론의 2010년 거취에 대해 알려진 소문 중 사실과 다른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런 사실무근의 소문들이 아니더라도 뉴욕이 르브론 영입을 부르짖을 이유는 충분히 있고, 클리블랜드 역시 르브론을 지킬 수 있다고 자신할 이유가 있다. 먼저 르브론의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르브론이 밝힌 '르브론 계약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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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AA2633 by Keith Allison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르브론이 어떤 선택을 하겠다고 공언한 적은 없지만 몇 가지 단서는 남긴 바 있다. 르브론이 밝힌 자신의 계약 조건은 다음과 같다.

우승 가능성이 있을 것
- 르브론은 NBA 우승을 열망하고 있다. 특히 마이클 조던이 처음으로 우승한 데뷔 7년째를 맞는 이번 시즌은 더더욱 그렇다. 르브론은 클리블랜드가 우승권 전력을 갖추도록 팀 프런트에 계속해서 압력을 가해왔고 이는 르브론을 영입하려 하는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작년 인터뷰에서 '팀 선택의 기준은 다년간 우승 가능성'임을 언급한 바 있다.

자신이 리더일 것
- 지난 시즌 MVP에 오른 르브론은 다음 계약 기간이 자신의 전성기임을 알고 있다. 르브론은 이 기간 동안 NBA 역사에 영원히 남을 업적을 올리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팀이 필요하다.

경제적 이익이 최고 수준일 것
- 르브론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꿈이 세계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억만 장자(Billionaire)임을 밝힌 바 있다. 르브론은 자신이 갖는 상품 가치를 잘 알고 있으며 이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조던이 그랬던 것처럼 스포츠 스타의 범주를 뛰어넘는 경제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면 르브론의 마음도 움직일 것이다.

클리블랜드와 뉴욕 모두 르브론이 밝힌 위와 같은 조건들을 자신들이 충족시켜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이들이 르브론 계약을 자신하는 이유를 알아보자.



뉴욕이 르브론 영입을 자신하는 이유


NBA 규정상 르브론은 현 속팀인 클리블랜드에 남을 경우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뉴욕이 줄 수 있는 돈은 연봉 뿐이 아니다.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시장이다. 아무리 성적이 떨어져도 입장 수익, 방송 중계권료, 광고료 등으로 항상 흑자를 챙긴다. 선수도 마찬가지로, 뉴욕에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던 스테픈 마버리조차 미국 저지 판매 5위로 만들어준 바 있다. 리그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르브론이 뉴욕에 입성한다면 그 경제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뉴욕 닉스의 모기업에서는 벌써부터 르브론에게 케이블 채널 하나를 통째로 안겨주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비록 2010년을 위해 당장의 전력 강화를 포기해 팀 성적이 떨어져 있지만, 2010년 이후 뉴욕의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높은 잠재력을 지닌 다닐로 갈리날리와 윌슨 챈들러 등이 루키 계약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0년 확정 연봉이 2,700만 달러에 불과해 르브론에게 최고 연봉을 안겨준 후에도 추가 선수 영입이 가능하다. 또한 야오 밍, 카멜로 앤써니 등이 FA로 풀리는 2011년에는 자레드 제프리스와 에디 커리의 합계 1,800만 달러의 연봉도 빠진다. 게다가 뉴욕은 농구선수에게 클리블랜드보다 훨씬 매력이 큰 시장이다. 클리블랜드는 이번 여름 소속 도시의 매력이 떨어져 론 아테스트와 트레버 아리자를 모두 놓친 바 있다.

르브론은 뉴욕에서 1년만 기다리면 된다. 1년만 기다리면 프런트가 최고의 FA들을 영입해줄 것이고, 르브론은 최고의 프랜차이즈에서 최고의 전력으로 최고의 부와 명예를 향해 달려나갈 수 있다. 1년을 기다리는 보상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클리블랜드가 르브론 재계약을 자신하는 이유

뉴욕에 간다고 해서 무조건 부와 명예를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큰 기대를 받고 간 선수들 중에는 오히려 자신의 상품가치를 추락시킨 선수도 있다. MLB 월드 시리즈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작년까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르브론도 뉴욕에 가서 지금보다 많은 승리를 거두지 못할 경우 '돈 때문에 고향팀을 저버린 선수'로 이미지가 추락할 수도 있다.

따라서 100% 확실한 수입인 연봉이 불확실한 '빅마켓 효과'보다 중요해진다. 현행 NBA 규정은 원 소속팀과 재계약할 경우 더 많은 연봉과 더 긴 계약기간을 보장한다. 르브론이 2010년 여름 FA선언을 한 후 클리블랜드와 5년간 재계약할 경우 뉴욕으로 가는 것에 비해 764만 달러를 더 받을 수 있다. 또한 뉴욕행을 선택할 경우 보장받을 수 없는 6년째 계약도 맺을 수 있으며, 그 해의 연봉은 최고 2,615만 달러에 달한다. NBA는 연차 수에 비례해 최고연봉액이 높아지므로 2010년 FA 선언 후 2년간 재계약하고 10년차 기준 최고연봉액을 받을 수 있을 때 또다시 재계약하면 훨씬 많은 연봉을 받을 수도 있다.

클리블랜드는 2010년 이후 팀 전력도 결코 뉴욕에 뒤지지 않는다. 모 윌리암스, 딜론테 웨스트, 앤더슨 바레장 등 지난 시즌 정규리그 1위를 함께 했던 선수들이 고스란히 남는다. 여기에 새로 영입한 자마리오 문과 앤써니 파커의 계약 역시 남아있게 된다. 경험이 쌓인 J.J. 힉슨은 팀의 핵심 빅맨으로 성장할 것이다. 2011년에는 르브론에게 최고 연봉을 주더라도 총연봉이 4,000만 달러에 불과해 2011년 FA인 야오, 앤써니, 파우 가솔, 데이비드 웨스트 등을 최고 연봉으로 입할 수 있다. 또한 뉴욕이 FA 선수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인 것과 마찬가지로 르브론이 재계약한 클리블랜드 역시 매력적인 팀이 될 것이다. 뉴욕이 2010년 이후 FA 영입 여유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수비를 중시하는 르브론의 취향으로 볼 때 뉴욕은 별로 매력적인 팀이 아니다. 게다가 뉴욕은 2010년 신인 지명권도 없다.

르브론은 이미 2006년 클리블랜드와 연장 계약을 해본 경험이 있다. 만약 르브론이 확고하게 뉴욕행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연장 계약을 하지 않고 2008년 비제한 FA가 됐을 것이다. 르브론이나 웨이드, 보쉬 등이 2006년 단기 재계약에 그친 이유는 자신의 미래 가치를 믿고, 당장의 안정성보다는 몇 년 후의 '빅 딜'이나 현 소속팀에 대한 무언의 압력 가능성을 높이려 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클리블랜드와 토론토는 르브론과 보쉬를 지키려 이번 여름 공격적인 투자를 했으며 웨이드의 마이애미 역시 2010년을 노리고 준비중이다.

르브론은 바보가 아니다. 지금까지 르브론이 보인 행보는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아니라 차라리 노련한 비즈니스맨을 떠오르게 했다. 불확실한 대박을 위해 모든 것이 갖춰진 현실을 외면하는 것, 자신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며 미래를 못박아버리는 것 등은 모두 '비즈니스맨' 르브론이 할 일이 아니다.



2010년의 경쟁자, 우리도 있다


뉴저지는 클리블랜드와 뉴욕을 제외한 르브론 영입 경쟁팀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르브론의 절친한 친구인 제이 지가 지분을 소유한 뉴저지는 최근 러시아 재벌이 대주주가 되며 뉴욕 브루클린으로 연고지를 옮길 예정이다. 뉴욕행을 원하는 선수들에게 뉴욕 닉스 말고도 대안이 생기는 셈이다. 올스타 가드 데빈 해리스를 비롯해 브룩 로페즈, 코트니 리 등 젊고 재능있는 선수들이 포진한 뉴저지는 르브론이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팀이다.

저메인 오닐의 계약이 끝나는 마이애미도 2010년의 큰 손이 될 것이다. 웨이드, 마이클 비즐리, 마리오 찰머스 등을 모두 데리고도 총연봉이 2,800만 달러에 불과하다. 게다가 마이애미가 속한 플로리다 주는 소득세율이 낮기로 유명하다. 르브론이 웨이드와 리더십을 공유할 생각만 있다면 마이애미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데릭 로즈와 루올 뎅, 커크 하인릭 등이 건재한 시카고 불스도 요주의 대상이다. 마이클 조던의 업적을 뛰어넘으려 하는 르브론이 조던의 그늘이 가장 강한 곳에서 뛰려 할 지는 의문이지만 팀 연봉 상황과 현재 전력 면에서는 결코 매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밖에 트레이시 맥그래디의 계약이 만료되는 휴스턴 로케츠, 한때 클리블랜드의 숙적이었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등이 르브론에게 최고 연봉을 줄 수 있으면서도 팀 전력을 유지할 수 있는 팀으로 꼽힌다.



'2010년 기사'를 즐기는 팬의 자세


르브론은 2010년 여름 어떤 선택을 할 지 아직까지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미 결정을 내려놓고도 자신의 상품 가치를 위해 확언을 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 단지 뉴욕행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시그니처 농구화인 '줌 르브론' 시리즈의 뉴욕 양키스 버전을 발매, 뉴욕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르브론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이런 식의 마케팅에 본능적인 감각을 보여왔다.

르브론 말고도 많은 스타들이 FA로 풀리는 2010년이기 때문에 소위 '2010년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높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르는 법. 수많은 매체들이 2010년 FA가 되는 선수들의 한 마디라도 따내기 위해 혈안이 돼 있고,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크고 작은 과장을 거쳐 기사화된다. 7일(한국시각) 이번 시즌 한 번밖에 없는 뉴욕 원정을 떠난 르브론 역시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각오해야 한다.

이렇게 쏟아져나오는 2010년 기사들을 접한 NBA 팬은 자칫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한 선수에게서 나온 똑같은 발언이 전혀 다르게 해석돼 기사화되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에 르브론이 '고향 애크런에 대한 내 충성심은 확고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클리블랜드 언론은 '(애크런 옆에 위치한) 클리블랜드 잔류 의사를 밝힌 것'으로, 뉴욕 거대 언론은 '르브론의 고향은 애크런이지 클리블랜드가 아니므로 클리블랜드에는 아무 의무감이 없음을 시사한 것'으로 각각 보도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2010년 기사'의 당사자를 응원하는 팬들이 이런 기사에 혼란을 받거나 오해를 갖지 않으려면 먼저 출처를 정확히 살펴야 한다. 지역지가 출처인 경우 자기 지역 팀에 유리하게 해석된 기사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미국 현지의 인터넷 팬 포럼에서 나온 트레이드 아이디어가 '트레이드 임박' 기사로 둔갑하는 어이없는 일도 종종 벌어지기 때문에 출처를 살피는 일은 큰 도움이 된다. 기사 내용 중 선수가 직접 한 말과 이를 통한 기자의 평론 및 추측을 구분해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10년 여름, 하지만 팬들은 그만큼 즐겁다. 머리를 싸쥐는 일은 선수와 프런트, 그리고 기자들에게 맡기고, 최고의 선수로써 2010년 여름을 맞이하기 위해 모든 것을 코트에 쏟아붓는 르브론의 열정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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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HELTANT79 2009. 10. 26. 00:00

창단 40주년 클리블랜드, 40개의 추억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창단 40주년을 맞는다. 1970년 버펄로 브레이브스(L.A. 클리퍼스의 전신),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함께 첫 발을 내딛은 클리블랜드는 지난 40년간 팬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눠왔다. 4명의 구단주와 18명의 감독을 맞이하는 동안 1460승 1706패를 기록한 클리블랜드는 컨퍼런스 우승 1회, 디비전 우승 2회를 경험했다.

클리블랜드 공식 홈페이지(http://www.nba.com/cavaliers)는 창단 40주년을 맞아 팀 역사 속 40개의 순간을 선정해 발표했다. 클리블랜드 팬들을 울리고 웃겼던 추억 속으로 들어가보자.


1. 2006-2007 시즌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5차전, 르브론 제임스가 팀의 마지막 30득점 중 29점을 혼자 올렸다. 특히 마지막 25점은 모두 르브론의 득점이었다. 이날 2차 연장 끝에 109-107의 짜릿한 승리를 이끌어낸 르브론은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활약 중 하나를 펼쳤다. 48득점으로 경기를 마친 르브론은 6차전에서도 승리, 클리블랜드를 창단 이후 첫 파이널 무대로 이끌었다.

2. 전 시즌을 15승 67패로 끝낸 클리블랜드는 인근 애크런 출신의 한 소년에게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히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 소년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의 세대 중 최고’로 평가 받고 있었다. 드래프트 순위 발표장에서 NBA 총재 대리 러스 그래닉이 멤피스 그리즐리스가 2순위 지명권을 얻었음을 발표했을 때(클리블랜드가 1순위를 따낸 순간), 클리블랜드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었다.

3. 1992년 동부컨퍼런스 세미파이널 6차전에서 보스턴 셀틱스에게 일격을 당한 후, 클리블랜드는 60퍼센트에 육박하는 야투 성공률을 보이며 122-104로 대승을 거뒀다. 클리블랜드가 동부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을 확정 지은 이 경기는 래리 버드의 화려했던 경력이 막을 내린 경기이기도 했다.

4. 1976년 4월 29일 ‘리치필드의 기적’이 완성됐다. 베테랑 가드 딕 스나이더가 워싱턴 불리츠의 웨스 언셀드를 제치고 5피트 슛을 성공시켰고, 87-85로 앞선 클리블랜드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진출한 플레이오프에서 동부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게 됐다.

5. 휴스턴에서 열린 제 55회 올스타 전에서 르브론 제임스가 21점차로 뒤져 있던 동부컨퍼런스의 역전승을 이끌었다. 29득점 6리바운드를 기록한 르브론은 NBA 역사상 최연소인 21세에 올스타 전 MVP에 올랐다.


6. 66승 16패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2008-2009 시즌, 르브론 제임스는 경기당 28.4득점 7.6리바운드 7.2어시스트를 올리며 팀 역사상 처음으로 MVP를 수상했다.

7. 르브론 제임스가 48득점을 올리며 승리를 거둔 다음 치른 2007년 동부컨퍼런스 파이널 6차전, 이번에는 신인 ‘부비’ 깁슨이 디트로이트를 침몰시켰다. 6차전 31득점 중 19점을 4쿼터에 집중시킨 깁슨의 활약으로 98-82 승리를 거둔 클리블랜드는 팀 역사상 처음으로 파이널 무대를 밟게 됐다.

8. 1986년 6월 19일, 클리블랜드는 웨인 엠브리를 단장으로 영입했다. 엠브리는 나중에 로이 힌슨과 현금을 필라델피아 76서스로 보내고 그 해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그리고 이 지명권으로 노스캐롤라이나 대의 센터 브래드 도허티를, 8순위 지명권으로 마이애미 대 가드 론 하퍼를, 그리고 나중에 얻은 2라운드 지명권으로 조지아 공대 가드 마크 프라이스를 지명했다. 이 선수들은 1980년 말 클리블랜드의 중흥기를 일구어냈다.

9. 1984-1985 시즌, 클리블랜드는 9연패를 포함해 2승 19패로 최악의 부진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33세에 불과했던 조지 칼이 임시 감독에 오른 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마치 드라마와 같은 대역전극을 이뤄낸 클리블랜드는 4월 9일 7시즌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 지었다.

10. 1979-1980 시즌, 클리블랜드는 홈경기 역사상 최고의 승리 중 하나를 거뒀다. 4차 연장의 혈전 끝에 승리한 상대는 그 해 우승팀 LA 레이커스였다. 클리블랜드의 마이크 미첼, 데이브 로비쉬, 랜디 스미스는 모두 30점 이상을 올렸다.

 
11. 창단 첫 시즌에서 단 15승에 그친 뒤 열린 1971년 드래프트에서 클리블랜드는 노틀담 대 출신의 득점기계 오스틴 카를 1순위로 지명했다. 대학 시절 경기당 34.5득점을 올렸던 카는 데뷔 후 첫 세 시즌 동안 경기당 21.2득점을 올렸다.

12. 개막 15연패로 창단 첫 시즌을 시작한 클리블랜드는 1970년 11월 12일 마침내 팀 역사상 첫 승리를 차지했다. 클리블랜드와 마찬가지로 창단 첫 시즌을 보내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클리블랜드는 바로 다음 경기부터 또다시 15연패를 당했다.

13. 첫 네 시즌을 클리블랜드 시내에 위치한 클리블랜드 아레나에서 치른 클리블랜드는 구단주 닉 말리에티가 직접 지은 리치필드 콜로세움으로 홈 구장을 이전했다. 클리블랜드는 1974년 10월 29일에 열린 개장 경기에서 챔피언 보스턴에게 졌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그 해 41회의 홈경기 중 29경기에서 승리를 거뒀다.

14. 팀이 암흑기를 보내던 1981년 포워드 마이크 미첼이 올스타에 뽑히며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리치필드 콜로세움에서 열린 올스타 전에서 미첼은 15분 동안 14득점을 올리며 홈 팬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15. 1975-1976시즌 49승 33패를 거두며 팀을 창단 이후 첫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 빌 피치가 올해의 코치상을 수상했다.


16. 창단 후 리그 최약체를 벗어나지 못하던 빌 피치의 클리블랜드는 1976년 3월 31일 뉴올리언즈 재즈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팀 역사상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 지었다. 클리블랜드는 2주 뒤 전국 방송 경기에서 뉴욕 닉스에게 승리를 거두며 센트럴 디비전 1위에 올랐다.

17. 워싱턴 불리츠를 상대로 치른 1976년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는 초창기 클리블랜드를 미라클 팀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바비 ‘빙고’ 스미스가 종료 2초를 남기고 30피트 거리에서 던진 슛이 림을 가르며 80-79를 만들었고, 클리블랜드는 팀 역사상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서 승리를 거뒀다.

18. ‘NBA 위대한 50인’이 클리블랜드의 홈 구장 군드 아레나에서 소개된 1997년 올스타 전은 농구 역사상 위대한 선수들의 모습이 가장 많이 보인 경기였다. 제리 웨스트, 줄리어스 어빙, 오스카 로버트슨 등 살아있는 전설들이 마이클 조던이나 샤킬 오닐 같은 새로운 세대의 선수와 자리를 함께 했다. 본 게임에서는 클리블랜드 가드 테럴 브랜든이 벤치에서 출격, 17분 동안 10득점을 올렸다.

19. 르브론 제임스와 부비 깁슨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디트로이트를 침몰시킨 클리블랜드는 팀 역사상 처음으로 파이널에 진출했다. 하지만 파이널 상대는 마이크 브라운 감독의 전 소속팀인 샌안토니오 스퍼스였고, 샌안토니오는 클리블랜드를 4-0으로 일축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20. 조지 군드와 고든 군드 형제가 팀을 인수한 후 새롭게 태어난 클리블랜드는 최고의 득점원 중 하나였던 월드 B. 프리와 계약했다. ‘공중의 왕자’는 클리블랜드에서 보낸 4시즌 동안 경기당 23득점을 기록하며 클리블랜드의 농구 인기를 유지했다.


21. 1998년 올스타 주간에 열린 루키 챌린지에는 클리블랜드의 지드루너스 일가우스카스, 세드릭 핸더슨, 브레빈 나이트, 데릭 앤더슨이 출전했다. 한 팀에서 네 명의 루키가 출전하는 루키 챌린지가 시작된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게임에서는 18득점 7리바운드를 올린 일가우스카스가 MVP를 수상했다.

22. 클리블랜드 사령탑을 맡은 지 4년 만에 마이크 브라운 감독이 2008-2009 시즌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며 빌 피치 이후 이 상을 받은 두 번째 클리블랜드 감독이 됐다. 브라운의 팀은 수비 여러 부문에서 리그 1위에 오르며 전 시즌에 비해 21승을 더 거두는 괴력을 발휘했다.

23. 1991년 12월 23일, 크레이그 일로가 팀 역사상 손꼽히는 명 장면을 만들어냈다. 일로는 유타 재즈와의 홈경기에서 짜릿한 3점 버저비터로 113-112 승리를 일궈내며 홈 팬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선사했다. 일로의 이날 활약은 클리블랜드 라디오 캐스터 조 태이트의 다음 멘트에 의해 영원히 기억 속에 남게 됐다. “그래요, 버지니아! 산타클로스는 있습니다! 텍사스 주 러벅(일로의 고향) 출신이라죠, 아마?”

24. 2009년 동부컨퍼런스 파이널 2차전, 종료 1초 전 히도 터콜루의 러닝 점프 슛으로 올랜도 매직이 95-93으로 앞서갔다. 하지만 인바운드 패스를 받은 르브론 제임스가 버저비터 3점 슛을 터뜨렸고, 96-95로 이긴 클리블랜드는 시리즈를 1-1 동률로 만들었다. 홈 구장을 가득 채운 20,562명의 홈 관중들을 열광에 빠뜨린 순간이었다.

25.  데뷔 후 두 시즌 동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던 르브론 제임스는 더크 노비츠키와댈러스 매버릭스를 상대로 46점을 폭발시키며 107-94 승리를 이끌었다. 지드루너스 일가우스카스의 데뷔 시즌 이후 8년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 짓는 순간이었다. 클리블랜드는 이후 세 시즌 연속으로 1라운드에서 워싱턴을 상대하게 된다.



26.  오직 마이클 조던과 오스카 로버트슨만이 르브론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데뷔 시즌에 경기당 20득점 5리바운드 5어시스트 이상을 기록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르브론은 리그 역사상 최연소이자 팀 역사상 유일한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르브론은 첫 시즌에 평균 21득점 6어시스트에 육박하는 기록을 올렸고 팀은 전년도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승리를 거뒀다.

27. 1975년 11월 27일, 훗날 명예의 전당에 오른 올스타 7회 출전자 네이트 써몬드가 영입되자, 클리블랜드의 젊은 선수들은 급격한 성장을 경험했다. 클리블랜드 인근 애크런 출신인 써몬드는 그러잖아도 강력했던 팀의 프런트라인에 힘을 더했고 팀 역사상 최초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28. 가드 마크 프라이스가 1993년과 1994년 올스타 전 3점슛 대회를 2연패하며 래리 버드, 크레이그 허지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프라이스가 기록한 24점은 14년 후인 2008년 전 클리블랜드 선수인 제이슨 카포노가 25점을 기록할 때까지 대회 기록이었다.

29. 1993년 솔트레이크 시티 올스타 전, 전날 3점슛 대회에서 우승한 프라이스는 3점슛 9개 중 6개를 성공시키며 19득점을 올렸다. 래리 낸스와 브래드 도허티도 동부 올스타로 출전하며 지난 4년 동안 두 번째로 3인방이 모두 올스타에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30. 2006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클리블랜드 홈 구장인 퀴큰 론즈 아레나는 거의 10년 만의 플레이오프 경기로 열광에 싸여있었다. 생애 첫 플레이오프 경기에 출전한 르브론 제임스는 첫 슈팅을 에어볼로 시작했으나 32득점 11리바운드 11어시스트로 트리플 더블을 거두며 워싱턴을 상대로 97-86 승리를 이끌어냈다. 르브론은 1라운드 평균 35.7득점을 올렸다.


31. 2005년 1월 5일, 미국 최대의 온라인 모기지 업체 퀴큰 론즈의 소유주인 댄 길버트가 전 구단주 고든 군드로부터 3억 7천 5백만 달러에 팀을 인수했다. 이 모기지 재벌은 초보 감독과 단장인 마이크 브라운과 대니 페리를 고용하며 팀 문화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길버트가 새 구단주가 된 후 재건축한 홈 구장이 퀴큰 론즈 아레나로 이름을 바꿨고 연습 구장이 새로 지어졌다. 결과는 팀이 처음 경험하는 성공이었다.

32. 2008년 3월 26일, 팀 창단 이래 ‘클리블랜드의 목소리’로 불렸던 조 태이트가 통산 3,000번째 클리블랜드 게임을 중계했다. 뉴저지와 시카고에서 각각 한 시즌씩을 보낸 후 1983-1984 시즌에 복귀한 태이트는 이후 줄곧 라디오 중계를 진행하고 있다.

33. 조지 칼의 지휘 아래 시즌 초반 2승 19패의 부진을 극복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클리블랜드는 1985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전년도 우승팀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했다. 월드 B. 프리의 경기당 26.3득점에도 불구하고 클리블랜드는 보스턴에게 네 경기만에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클리블랜드가 진 세 경기는 모두 3점차 이내의 패배였다.

34. 1986년 6월 16일, 루이지애나 주 배심원단은 존 ‘핫로드’ 윌리암스의 승부조작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윌리암스는 전년도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의 지명을 받은 상태였다. 윌리암스는 클리블랜드에서 9시즌을 뛰며 리바운드, 블록슛, 출장 시간 등에서 팀 내 기록을 세웠다.

35. 1982-1983 시즌에 거둔 23승 59패의 성적은 구단주 테드 스테피엔이 팀을 팔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4월 7일, 콜로세움 구장의 소유자인 조지와 고든 군드 형제는 옵션을 행사해서 클리블랜드를 매입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리그 구단주들이 최악의 상황을 맞은 클리블랜드를 돕기 위해 1983, 84, 85, 86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추가로 주기로 했고, 군드 형제는 이 권리를 모두 행사했다.


36. 데이먼 존스는 클리블랜드에서 세 시즌만을 뛰었지만 팀 최고의 순간에 포함될 자격이 있다. 2006년 5월 5일 워싱턴과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6차전, 벤치에서 출전한 존스는 연장전 종료 4.8초를 남기고 슛을 성공시키며 114-113 승리를 이끌었다. 1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둔 클리블랜드는 13년 만에 2라운드에 진출했다.

37. 여러 번 발에 수술을 받은 지두르너스 일가우스카스는 한때 다시는 농구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기적과 같이 재활에 성공한 일가우스카스는 2002-2003 시즌에 그의 경력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팀은 17승 65패에 그쳤지만, 경기당 17.2득점 7.5리바운드를 올린 일가우스카스는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됐다.

38. 새크라멘토에서 열린 개막전을 시청하던 회의주의자들은 매스컴의 집중 조명이 르브론 제임스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2003년 10월 29일에 벌어진 이 경기에서 ‘선택 받은 자’는 첫 공식 경기부터 모두의 입을 다물게 했다. 르브론은 25득점 6리바운드 9어시스트를 올렸는데, 25득점은 고졸 선수가 데뷔 전에서 세운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39. 팀 창단 25주년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직후인 1994년 11월 8일, 클리블랜드는 새로 지은 군드 아레나로 홈 구장을 옮겼다. 20,562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군드 아레나는 훗날 퀴큰 론즈 아레나로 이름을 바꿨고, 현재까지 클리블랜드 홈 구장으로 쓰이고 있다.

40. 드와이트 하워드의 올랜도에게 동부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무릎을 꿇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드래프트 하루 전 대형 사고를 쳤다. 클리블랜드는 벤 월러스와 사샤 파블로비치를 내보내고 15회 올스타이자 미래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 샤킬 오닐을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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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SPECIAL 2009. 10. 19. 12:05

2009-10 NBA 센트럴 디비전 프리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글: 신호섭(heltant79)

센트럴 디비전은 샤킬 오닐을 영입해 다시 한 번 우승을 노리는 클리블랜드의 독주를 데릭 로즈가 2년차를 맞는 시카고가 추격하는 가운데 팀 재건중인 디트로이트와 인디애나, 진퇴양난에 빠진 밀워키가 경합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08-09 시즌 성적 : 66승 16패)


In_ 앤쏘니 파커, 자마리오 문, 리온 포우, 샤킬 오닐, 다니엘 그린, 크리스찬 아잉가
Out_ 조 스미스, 벤 월라스, 샤샤 파블로비치, 태렌스 킨세이

지난 시즌 르브론 제임스가 MVP를, 마이크 브라운 감독이 올해의 감독상을 각각 수상하며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던 클리블랜드는 마지막에 웃지 못했다.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올랜도를 만나 팀 수비가 붕괴되며 4-2로 패하고 만 것이다. 인사이드에서 드와이트 하워드를 전혀 제어하지 못했고, 히도 터콜루 등 장신 윙 플레이어를 막아내기에 클리블랜드의 윙 플레이어들은 너무 작았다.

이에 따라 클리블랜드는 빅맨과 윙 플레이어를 보강하기 위해 많은 변화를 주었다. 트레이드로 샤킬 오닐을 영입한 데 이어 앤써니 파커와 자마리오 문, 리온 포우를 FA로 영입한 것이다.

오닐의 가세는 클리블랜드의 게임을 근본부터 바꿀 것이다. 클리블랜드는 지금까지 인사이드 득점원이 사실상 제임스 하나뿐이었고 패싱 루트 역시 제임스의 돌파에 이은 킥아웃 패스로 한정됐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가장 압도적인 골밑 득점원인 오닐은 제임스의 득점 부담을 크게 덜어줄 것이다. 또한 하워드의 올랜도, 파우 가솔과 앤드루 바이넘의 레이커스 등을 상대해야 하는 클리블랜드로서는 오닐의 사이즈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파커와 문은 지난 시즌까지 각각 토론토와 마이애미에서 주전으로 뛴 장신 윙 플레이어로 제임스의 수비 부담을 덜어줄 것이며 부상 재활중인 포우는 공수에서 인사이드에 힘을 더해줄 것이다.

제임스는 이번 시즌이 끝나면 FA 자격을 얻는다. 벌써부터 뉴욕 등 많은 구단이 제임스를 노리고 있다. 댄 길버트 구단주와 대니 페리 단장, 브라운 감독이 취임 5년째를 맞는 이번 시즌, 이들은 이번 시즌 우승이 제임스를 잡아놓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심판의 시즌‘을 맞은 클리블랜드의 선전을 기대해보자.


▷ 시카고 불스 (2008-09 시즌 성적 : 41승 41패)


In_
제임스 존슨, 타지 깁슨
Out_ 벤 고든, 팀 토마스, 앤쏘니 로버슨

지난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디펜딩 챔피언 보스턴과 역사에 남을 명승부를 치른 시카고는 이번 시즌에는 그 이상을 노린다. 2년차를 맞는 데릭 로즈를 중심으로 지난 10년 동안 지지부진하게 끌어온 팀 재건 과정을 마침내 마무리 짓겠다는 것이다. 지난 시즌 신인왕을 차지하며 순식간에 팀의 희망으로 자리 잡은 로즈는 이번 시즌에는 올스타 가드를 노리고 있다.

시카고의 최대 강점은 풍부한 백코트진이다. 지난 3년간 팀내 스코어링 리더였던 벤 고든이 팀을 떠났지만 로즈, 커크 하인릭, 존 샐먼스 등으로 이뤄진 백코트진은 리그 수위권을 자랑한다. 여기에 중거리슛의 대가 루올 뎅이 부상에서 돌아오는 시카고는 이번 시즌에도 이들 백코트진의 득점에 공격을 의존할 것이다.

시카고의 약점은 인사이드 득점 능력이다. 타이러스 토마스의 성장이 정체되면서 인사이드에서 1:1로 득점할 수 있는 자원이 크게 부족하다. 호아킴 노아와 애런 그레이는 수비형 선수고 브래드 밀러는 페인트존 밖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많다. 중장거리 슛에만 의존하는 농구는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206cm의 신인 타지 깁슨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지난 시즌 초보 감독에 대한 의구심을 말끔히 씻어버렸던 비니 델 니그로 감독은 취임 2년째를 맞아 한층 안정된 지도력을 보여줄 것이다. 강팀들의 전력이 한층 강해진 동부 컨퍼런스에서 별다른 전력 강화 없이 여름을 보낸 시카고는 젊은 감독 및 선수들의 성장과 융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2008-09 시즌 성적 : 39승 43패)


In_ 오스틴 데이, 드후안 섬머스, 찰리 빌라누에바, 벤 고든, 크리스 윌콕스, 벤 월라스
Out_ 알렌 아이버슨, 라쉬드 월라스, 안토니오 맥다이스, 아미르 존슨, 애론 아프랄로, 월터 샤프, 페브르시오 오베르토

2000년대 센트럴 디비전을 지배했던 디트로이트는 과도기를 지나는 중이다. ‘어느 정도의 전력을 유지하면서 팀을 재구축 하겠다’는 조 듀마스 사장의 계획에 따라 지난 시즌부터 팀을 대폭 개편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4년 우승 멤버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선수는 리처드 해밀턴과 테이션 프린스, 그리고 여러 팀을 전전한 끝에 이번 시즌부터 다시 디트로이트 유니폼을 입게 된 벤 월러스 뿐이다.

팀 중심도 공격에서 수비로 옮겨졌다. FA로 영입한 벤 고든과 찰리 빌라누에바는 모두 공격 전문 선수이고 신임 존 쿠스터 감독도 클리블랜드에서 공격 코치를 역임한 바 있다. 적어도 슛을 던질 선수가 부족하지는 않은 셈이다. 문제는 이들에게 안정적으로 볼을 공급해야 할 포인트가드진의 부재다. 로드니 스터키와 윌 바이넘은 모두 공격형 포인트가드로 리딩 능력은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듀마스 단장이 이들을 믿고 천시 빌럽스를 트레이드했고 쿠스터 감독도 볼 흐름을 중시하는 만큼 젊은 스터키와 바이넘이 분발해야 한다.

공격에 비해 수비에선 문제가 더 심각하다. 특히 지난 몇 년간 디트로이트의 인사이드를 지켜온 라시드 월러스와 안토니오 맥다이스가 팀을 떠나며 골밑 수비에 큰 구멍이 뚫렸다. 콰미 브라운과 닉 칼리슨으로는 역부족이고 벤 월라스는 더 이상 수비왕 시절의 월라스가 아니다.

따라서 이번 시즌 디트로이트의 목적은 공수 비율을 적절히 조합해서 디트로이트만의 팀 컬러를 확립하는 일이 될 것이다.


▷ 인디애나 페이서스  (2008-09 시즌 성적 : 36승 46패)


In_
타일러 핸스브로, A,J. 프라이스, 단테이 존스, 얼 왓슨, 솔로몬 존스
Out_ 마퀴스 다니엘스, 재럿 잭, 라쇼 네스트로비치

서부에 골든스테이트가 있다면 동부에는 인디애나가 있다. 지난 시즌 극단적인 공격 농구를 펼치며 홈에서 레이커스, 클리블랜드, 보스턴, 올랜도를 모두 잡는 기염을 토했다. 전 포지션에 슈팅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슛이 한 번 터지면 막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런앤건에만 의존하는 농구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디트로이트에 3게임을 뒤지며 아깝게 플레이오프행에 실패했다.

인디애나의 에이스는 대니 그레인저다. 지난 시즌 마침내 기량이 만개하며 MIP를 수상한 그레인저는 코트 어느 곳에서든 슛을 노릴 수 있는 전천후 득점기계가 됐다. 이번 시즌에도 트로이 머피와 함께 인디애나의 공격을 이끌 것이다. 부상으로 신음하던 마이크 던리비 주니어까지 돌아온다면 이들은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공격 트리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인디애나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센터진의 분발이 필수적이다. 로이 히버트는 2년 전 그렉 오든의 대항마로 각광받으며 입단했으나 성장이 정지한 느낌이다. 이번 시즌에도 라쇼 네스테로비치와 주전 경쟁을 벌여야 하는 히버트가 25분 이상씩 뛰며 수비리바운드를 책임져준다면 인디애나의 공격은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다.


▷ 밀워키 벅스  (2008-09 시즌 성적 : 34승 48패)


In_
브랜든 제닝스, 조디 믹스, 하킴 워릭, 어산 일랴소바, 카를로스 델피노, 커트 토마스, 월터 샤프, 로코 우킥
Out_ 페브르시오 오베르토, 찰리 빌라누에바, 라몬 세션스, 리차드 제퍼슨, 말릭 알렌, 아미르 존슨, 소니 윔스, 브루스 보웬

지난 몇 년간 연달아 잘못된 장기계약을 맺으며 수렁으로 빠져들어간 밀워키는 여름 내내 줄타기를 되풀이했다. 어렵게 얻은 리처드 제퍼슨을 샌안토니오로 보내고 받아온 선수들 중 커트 토마스만을 남기고 모두 방출했다. 지난 시즌 에이스 역할을 했던 찰리 빌라누에바를 조건 없이 풀어줬고 모 윌리암스를 포기할 정도로 기대를 걸었던 라몬 세션스도 미네소타로 보내버렸다. 밀워키가 재건 과정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무렵 카를로스 델피노와 하킴 워릭을 영입했다.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팀이 되어버린 것이다.

밀워키가 이런 움직임을 보인 것은 사치세 때문이다. 경제 한파로 인해 홈 관중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시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밀워키는 기존 선수들로 인한 사치세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지난 시즌 팀내 평균득점 2, 3, 4위를 모두 내보낸 밀워키는 이번 시즌 전력 약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밀워키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시즌에는 팀의 두 기둥인 마이클 레드와 앤드루 보거트가 나란히 40경기 이상씩을 결장하며 경기력을 100% 발휘하지 못했다. 외곽 슛으로는 리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레드와 언젠가는 20득점-10리바운드를 기록할 것으로 기대되는 보거트가 건강하게 시즌을 소화할 수 있다면 지난 시즌처럼 쉽게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레드의 부상으로 출장 기회를 잡으며 수비력을 인정받은 루크 음바무테와 해외파 델피노, 에르산 일야소바도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

취임 2년째를 맞은 스캇 스카일스 감독이 시카고 시절만큼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다면 밀워키는 센트럴 디비전의 다크호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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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 4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연습 구장은 침묵에 싸여 있었다. 클리블랜드는 4월의 첫 두 경기에서 워싱턴과 올랜도에게 잇따라 완패했다. 특히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높았던 올랜도 원정에서의 29점차 대패는 이 팀이 시즌 내내 유지해왔던 자신감을 근본부터 뒤흔든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다음날 상대는 서부의 강호 샌안토니오였다. 4월 초에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으려던 클리블랜드에게 최대 위기가 닥친 것이다. 떠들썩하기로 유명한 클리블랜드의 연습 코트에 적막함만 감도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침통한 표정으로 훈련을 기다리고 있던 선수들 앞에서 한 선수가 상의를 벗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벤 월러스를 대신해서 주전 파워포워드로 뛰고 있던 앤더슨 바레장이었다. 특유의 장난기 섞인 웃음을 띠며 옷을 벗은 바레장은 뒤로 돌아 등을 내보였다. 등에는 검은 색 매직 펜으로 'Chosen2'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씌어 있었다. 자신의 별명인 'Chosen One(선택받은 자)'를 등에 문신한 르브론을 패러디한 것이었다.


코트에 흐르던 침묵은 패러디 당사자인 르브론이 킥킥거리며 깨졌다
. 곧이어 모리스 윌리암스가 웃기 시작했고 지드루너스 일가우스카스와 멜빈 헌트 코치가 폭소를 터뜨렸다. 굳은 표정으로 연습장 문을 들어서던 마이크 브라운 감독은 바레장의 등을 보자마자 배꼽을 움켜쥐고 다시 뛰쳐나갔다. 선수들의 얼굴에 여유가 돌아왔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다음날 샌안토니오에게 대승을 거두며 정규시즌 1위를 위해 순항할 수 있었다.



 

바레장의 장난은 이 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브라운 감독의 통산 300승 경기 때는 브라운 감독과 맥도날드 캐릭터 'Grimace'를 합성한 이메일을 감독에게 보내 뚱뚱한 몸매를 놀려댄 적도 있다. 바레장은 일가우스카스와 함께 팀에서 가장 지독한 장난을 즐기는 선수다.

 

'Wild Thing' 바레장은 클리블랜드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 중 하나다. 팀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항상 에너지를 불어넣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레장의 고국이 브라질이라는 점 때문에 그의 열정은 가끔 '내킬 때만 열심히 하는 선수'로 비춰질 때도 있다. 하지만 바레장을 아는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오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바레장은 그 어떤 것보다도 농구를 먼저 생각하는 선수다. 그리고 자신의 농구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다. 아주 오래 전, 그가 농구를 시작하던 무렵부터 그랬다.




형을 동경한 소년

 

바레장은 브라질 에스피리투 산토 주에 속한 카리아시카라는 도시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얼마 뒤 산타 테레사로 옮겼다가 열 살때부터 비토리아에서 살게 됐다. 그곳에서 처음 농구 팀에 들어갔고 지금도 가족이 그곳에 살고 있으니 바레장의 고향은 비토리아인 셈이다. 부모님은 프로 선수로 뛴 적은 없지만 각기 농구와 배구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래서 바레장 집안 남매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농구를 익힐 수 있었다.

 

그 무렵 농구를 좋아하는 모든 아이들의 우상은 마이클 조던이었지만 바레장에게는 우상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레장보다 11살이 많은 맏형 산드로였다. 산드로는 바레장이 유소년 농구팀에 들어가던 무렵에는 이미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으로 농구 유학을 가 있었다. 막 농구에 재미를  붙여가던 바레장에게 산드로는 마이클 조던만큼이나 대단해보였다. 비싼 국제전화비 때문에 한 달에 두어 번 산드로에게서 전화가 올 때면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가장 먼저 전화로 달려가곤 했다. 농구를 하다 궁금해진 것도 묻고 NBA 관련 용품을 보내달라고 조르기 위해서였다. 바레장이 부탁한 조던 브로마이드 대신 산드로가 보내준 것은 훗날 클리블랜드에서 한솥밥을 먹기도 한 도넬 마샬의 브로마이드였다.


방학을 맞아 산드로가 집을 찾으면 여지없이 바레장의 차지가 됐다
. 여독에 지친 형을 농구장으로 끌고 나가 하루 종일 농구를 한 것이다. 산드로는 어린 동생의 어리광 섞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차근차근 슛과 리바운드를 가르쳤다. 훗날 바레장 연합군은 국가대표 베테랑과 신참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덩크를 하고 싶었던 미운 오리새끼

 

바레장이 처음 들어간 농구팀은 고향 비토리아의 유소년 농구팀이었다. 훈련장에 천장이 없어 비가 오면 훈련이 취소될 정도로 시설이 열악한 팀이었다. 또래들 중에서는 키가 큰 편이었던 바레장은 첫 해에는 센터를 맡았지만 비쩍 마른 몸 때문에 몸싸움에서 밀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쑥쑥 자라는 친구들에 비해 성장이 더뎌 어느새 팀에서 작은 편에 들어가게 돼버렸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형에게 배운 드리블 실력은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듬해부터는 포인트가드로 뛰게 됐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어린 시절의 바레장은 패스와 3점 슛이 장기인 명 포인트가드였다. 이런 전력을 알고 있는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지금도 바레장을 이용한 패스 플레이를 많이 시도한다.


간신히 몸에 익힌 포인트가드 역할에 슬슬 재미를 붙여가고 있을 무렵
, 바레장의 몸이 또다시 말썽을 부렸다. 이번에는 순식간에 키가 커버린 것이다. 더 이상 포인트가드는 무리였다. 다시 센터 자리로 돌아간 바레장은 골밑 몸싸움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익혀야 했다. 하지만 급하게 자라느라 근육이 전혀 붙지 못한 몸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었다.

 

16살이 된 바레장은 198cm까지 자랐지만 여전히 팀에서 가장 마르고 약한 선수였다. 큰 키에도 불구하고 덩크를 하지 못해 친구들의 단골 놀림감이었다. 어느 날 청소년 대표팀이 바레장의 팀에 연습경기를 왔는데, 그들마저도 바레장을 놀려댔다.


그날 밤 바레장은 소파에 앉아 어떻게 하면 덩크를 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했다
.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한 바레장은 새벽 일찍 훈련장을 찾았다. 아무도 없는 코트에서 계속해서 덩크를 시도했지만 볼은 계속해서 림을 돌아나올 뿐이었다. 한 시간이 넘게 진땀을 흘리던 중 적절한 타이밍에 점프가 이뤄졌고, 바레장은 마침내 생애 첫 덩크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훈련 시간에 바레장은 마침내 덩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지만 친구들은 거짓말 하지 말라며 비웃었다. 결국 점심 내기까지 건 뒤 멋지게 덩크를 성공시킨 바레장은 친구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렸다. 이런 근성은 청소년 대표팀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고, 바레장은 그의 추천으로 상 파울로 주에 위치한 프랑카 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프랑카는
브라질 농구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전통이 깊은 팀이었다. 바레장은 이 팀에서 3년간 뛰며 농구를 배워갔다. 그 무렵에는 신장에 어울릴 만큼 체격도 자랐기 때문에, 바레장은 가드 수준의 드리블과 패스를 할 수 있는 전천후 센터가 됐다. 어린 시절 가드도 센터도 아니었던 미운 오리새끼가 이제 올 어라운드 능력을 갖춘 백조로 변신한 것이다. 청소년 대표팀에서 맹활약하며 마침내 스페인 리그 스카우트의 눈에 띈 바레장은 강호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하게 됐다. 바레장 인생 최초의 외국 경험이었다.

 


Magic-Cavs

기사단의 야생동물


바레장은  바르셀로나에서 성인 팀과 유소년 팀을 오가며 실력을 쌓아나갔다. 파우 가솔을 배출한 바 있는 바르셀로나는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 로베르토 두에녜즈, 로드리고 델라 푸엔테 등 유럽 농구의 영웅들이 즐비했고, 여기에 사루나스 야시케비셔스와 드쟌 보디로가 등을 영입해 유로리그 우승을 노리는 강팀이었다. 바르셀로나는 바레장에게 득점력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선수로 성장해갔다. 오늘날 클리블랜드에서 볼 수 있는 바레장의 플레이 스타일은 이때 확립된 것이다. 바레장은 바르셀로나에서 3년간 뛰며 2003년에는 스페인 리그와 유로리그 동시 우승에 공헌했다.

그 무렵 바레장을 눈여겨보던 한 NBA 스카우트가 그에게 NBA 행을 제안하자 바레장은 두말 없이 승낙했다. NBA 선수로 뛰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온 꿈이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리그를 뒤로 하고 2004년 NBA 드래프트의 문을 두드린 바레장은 2라운드 1순위로 올랜도 매직에 지명됐지만 곧바로 드류 구든, 스티븐 헌터와 함께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됐다. 클리블랜드는 여름에 팀을 떠난 카를로스 부저를 대신해 르브론과 호흡을 맞출 빅맨을 찾고 있었고, 바레장 역시 구든 등과 함께 클리블랜드의 부름을 받게 된 것이다.

센터와 파워포워드를 모두 소화하며 일가우스카스와 구든의 백업으로 첫 시즌을 보낸 바레장은 평균 16분을 뛰며 4.9득점과 4.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 플레이를 펼친 덕분에 특히 공격 리바운드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그의 48분당 평균 리바운드 기록(6.1개)은 리그 4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바레장은 야성미 넘치는 플레이와 독특한 곱슬머리는 금세 클리블랜드 팬들의 눈길을 끌었고 팬들은 바레장에게 'Wild Thing'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바레장이 NBA에 빨리 적응한 데는 일가우스카스의 도움이 컸다. 1996-1997 시즌부터 줄곧 클리블랜드에서만 뛰어온 터줏대감 일가우스카스는 팀에 새로 들어온 외국인 선수들에게 멘토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바레장 역시 입단하자마자 일가우스카스의 특별 관리에 들어가 미국 생활과 NBA, 그리고 영어를 배워나갔다. 어떤 영어를 배웠을까? 일가우스카스가 팀에서 걸쭉한 욕을 가장 잘 하는 선수라는 것만 밝히겠다.

바레장은 이듬해부터 조금씩 팀내 비중을 늘려나갔다. 가드를 보던 시절 익힌 빠른 풋워크와 다소 과장된 동작을 바탕으로 공격자 파울을 유도해냈다.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4차전에서 디트로이트의 천시 빌럽스를 상대로 얻어낸 결정적인 공격자 파울은 이후 바레장의 수비를 상징하는 플레이가 되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말이다.
2006-2007 시즌에는 경기당 24분만 뛰면서도 무려 99개의 공격자 파울을 얻어내 리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출장시간 대비 리바운드 갯수도 점점 늘려간 바레장은 입단 3년만에 클리블랜드의 핵심 수비수가 되었다.


Anderson Varejao, aka Wild Thing
Anderson Varejao, aka Wild Thing by emotionaltoothpast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오해와 비난

2007년 여름 제한적 FA가 된 바레장은 클리블랜드와 재계약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바레장의 에이전트 댄 페건과 대니 페리 클리블랜드 단장 사이에는 커다란 의견 차이가 있었다. 페건이 바레장을 주전 선수급으로 대우해줄 것을 요구한 반면 페리 단장은 쏠쏠한 벤치 선수 이상 대우해줄 생각은 없음을 못박은 것이다. 둘의 의견 차이는 여름 내내 좁혀지지 않았고, 바레장은 결국 트레이닝 캠프에 참가하지 못했다.

재계약 불발은 바레장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페건이 협상용 허풍으로 언론에 흘린 '바레장은 연봉 천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 선수'라는 발언 때문에 돈만 밝히는 선수라는 비난을 받은 것이다. 그때까지 바레장을 응원하는 팬들이 모두 등을 돌렸다. 바레장이 성적 못지 않게 이미지에도 신경써야 하는 프로 선수인 것을 감안하면 정말로 천만 달러의 연봉을 받더라도 만회할 수 없는 손해를 본 셈이다.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던 재계약 공방은 시즌이 개막하고도 한참이 지난 12월에야 마무리됐다. 클리블랜드를 제외하고 바레장과 계약해줄 팀을 찾던 페건이 샬럿 밥캐츠와 2년간 1천 1백만 달러의 계약을 맺자, 같은 금액만 보장하면 바레장을 잡아둘 수 있었던 페리 단장이 다음날 바레장 잔류를 선언한 것이다.

계속해서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게 됐지만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팬들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팬들은 바레장이 복귀하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홈경기에서 바레장을 야유할 것임을 공공연히 밝히고 다녔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료들이 바레장을 돕기로 했다.

바레장의 복귀전은 지난 6경기 동안 손가락 부상으로 결장했던 르브론의 복귀전이기도 했다. 클리블랜드는 르브론이 결장한 6경기를 모두 졌기 때문에 그의 복귀는 관중들의 큰 환호를 받을 것이 확실했다. 르브론은 이 점을 이용, 마이크 브라운 감독에게 자신을 바레장과 함께 벤치에서 내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에게 환호를 보내면서 동시에 바레장에게 야유를 보낼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문제는 그럴 경우 르브론이 데뷔 이후 332경기째 이어오던 연속 선발 출장 기록이 깨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르브론은 동료를 위해 자신의 기록을 기꺼이 희생했다.

르브론의 계획은 멋지게 적중해서, 바레장은 르브론이 평소보다 과장된 몸짓으로 관중에게 인사를 보내는 사이 야유 없이 코트에 들어설 수 있었다. 바레장은 이날 경기에서 23분간 리바운드 9개를 잡아내며 속죄와 보답을 동시에 해냈다.

그 무렵 바레장은 고국 브라질 국민들로부터도 비난을 받았다. 재계약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부상으로 선수 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국가대표 소집을 거부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듬해에도 계약 마지막 시즌임을 들어 올림픽 참가를 거부하자 팬들의 비난은 극에 달했다. 리안드로 발보사(피닉스 선즈), 네네 힐라리오(덴버 너게츠) 등과 함께 브라질의 황금 세대로 불리던 바레장이었기에 팬들의 실망은 이만전만이 아니었다. 아예 바레장을 국가대표에서 영구 제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바레장은 이 모든 비난을 실적으로 극복해나갔다. 2007-2008 시즌 48경기 중 13경기에서 선발로 나와 평균 10.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재계약 협상 기간 동안 놀고 있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바레장과 마찬가지로 재계약이 지연되는 동안 고향의 휴양지에서 일광욕을 즐겼던 팀 동료 사샤 파블로비치와는 달랐다. 지난 시즌에는 부상당한 벤 월러스를 대신해 주전 파워포워드로 올라서며 6년간 4천 2백만 달러의 장기 계약에 성공했다.

국가대표에도 복귀한 바레장은 지난 여름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FIBA 미주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10경기에 모두 선발 센터로 출장한 바레장은 평균 30.4분 동안 13.6득점(전체 14위) 8.4리바운드(전체 5위) 1.9블록슛(전체 1위) 1.9스틸(전체 6위)을 올렸다. 득점은 에이스 발보사에 이은 팀내 2위고 리바운드, 블록슛, 스틸은 모두 팀내 1위였다. 예선에서 맞붙은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대회 MVP 루이스 스콜라를 상대로 대등한 활약을 펼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바레장과 발보사, 티아고 스플리터 등이 맹활약한 브라질은 결승에서 홈팀 푸에르토리코를 1점차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바레장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후 처음 맛본 우승이었다.

국가대표에 복귀하자 브라질 국민들의 원성도 다시 응원으로 바뀌었다. 지난 8월 리우 데 자이네이루에서 바레장과 발보사가 공동 주최한 자선 농구대회에서는 10만 달러를 모금했다. 성금은 브라질 아이들을 위한 농구장을 짓는 데 사용될 것이다. 바레장은 조만간 브라질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책의 주인공으로도 그려질 예정이다.  



르브론의 파트너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은 지 6년째를 맞는 이번 시즌, 바레장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주전 보직을 받고 트레이닝 캠프에 참가했다. 벤치에서 바레장 대신 나올 J.J. 힉슨과 대럴 잭슨이 모두 2년차로 경험이 적고 리온 포우는 무릎 수술로 2월 이후에나 출장할 수 있기 때문에 바레장의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일부에서는 바레장의 중거리슛 능력이 없음을 들어 르브론과 새로 영입한 샤킬 오닐의 파트너로는 부적합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레장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언제나 제가 해야 하는 일을 할 겁니다. 이 팀에서 제 역할은 수비와 리바운드지 슛이 아니죠. 그리고 공격시에는 르브론과 오닐을 막느라 비어있는 틈으로 달려들면 되는 겁니다."

르브론 역시 이에 동의하고 있다. 그는 클리블랜드에서 바레장을 가장 좋아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지난 5년간 자신의 수비부담을 덜어주고 공격시에는 자신이 움직이기 편하도록 좋은 스크린을 걸어준 점을 높이 사고 있다. 이번 바레장 재계약이 일사천리로 이뤄진 것도 르브론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82년생으로 곧 27세를 맞는 바레장은 앞으로 르브론의 파트너로써 전성기를 보내게 될 것이다.

형을 동경하며 NBA를 꿈꿔왔던 소년은 어느새 형을 뛰어넘어 NBA 최고 스타의 파트너가 되었다. 천장도 없는 농구장에서 땀을 흘리며 키운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된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도전을 뛰어넘기 위해 최선을 다해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바레장은 클리블랜드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다. 그리고 그동안 흘려온 땀과 눈물이 우승으로 보답받는 날, 바레장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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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클리블랜드의 '히트 상품' 이었던 딜론테 웨스트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웨스트는 지난 9월 총기소지 혐의로 체포된 데 이어 트레이닝 캠프에 무단 불참하는 등 계속해서 사건의 중심이 되고 있다. 작년 여름 재계약 체결 후 주전 슈팅가드로써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클리블랜드의 정규시즌 우승에 큰 공헌을 했던 웨스트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Cavs Introdu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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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웠던 여름

웨스트에게 지난 시즌은 NBA에서 자신의 입지를 완전히 다진 시즌이었다. 주전 슈팅가드 자리를 굳히며 자신을 믿어준 팀에 100% 보답했고, 플레이오프에서는 르브론 제임스를 포함한 팀내 어느 선수보다도 많은 출장시간을 소화하며 마이크 브라운 감독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다. 웨스트는 프리 시즌 도중 지병인 조울증으로 2주간 팀을 떠났던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준 동료들에게 큰 감명을 받았고, 2년 전 자신이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된 것은 운명이었다고 할 정도로 팀에 애착을 보였다.

리그에서의 입지가 안정되자 개인 생활도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 클리블랜드와 3년간 총액 1270만 달러 재계약을 맺은 웨스트는 어머니에겐 새 집을, 여동생에겐 대학 등록금을, 자신을 키워준 외삼촌에겐 의치를 할 돈을 벌 수 있었다. 여름에는 라스베가스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클리블랜드에 집도 구입했다. 팀과의 관계는 최고였고 개인적으로도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로웠던 여름이었다.


Delonte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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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총기 소지로 체포되다

9월 18일, 웨스트가 체포됐다는 기사가 ESPN을 비롯한 언론사 대문을 장식했다. 하루 전인 17일 고향 메릴랜드 주 외곽 도로를 3륜 오토바이로 달리던 웨스트가 과속으로 조사를 받던 중 무면허 총기 3정이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체포 당시 웨스트의 허리에는 9mm 베레타, 다리에는 루거 357구경 매그넘, 그리고 기타 케이스에는 샷건이 담겨 있었고, 세 자루 모두 무면허에 실탄이 장전돼있었다. 메릴랜드 주 형법에 따르면 이런 경우 2,500 달러의 벌금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된다.
웨스트는 아무 저항 없이 조사에 응했고 곧 석방됐지만 주 경찰은 웨스트가 장전된 총기를 지닌 채 달리고 있었던 이유를 조사할 계획이며, 11월 26일에 열리는 재판에서 최종 판결을 받게 될 예정이다.

웨스트가 이런 문제를 일으킨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두 건의 총기법 위반과 여러 번의 교통 법규 위반으로 소환된 전력이 있다. 하지만 총기로 누군가를 해치는 등의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적은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선수생활을 계속 해올 수 있었다. 이번 역시 징역형을 받을 가능성은 낮고 2,500 달러의 벌금은 NBA 선수들에겐 큰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팀 입장에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먼저 클리블랜드의 시즌 초반 운영에 차질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NBA에서는 총기관련 범죄에 대해서는 엄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총기 관련 혐의가 유죄로 판결받을 경우 대부분 출장정지로 연결된다. 최근 몇 년 사례만 봐도 세바스찬 텔페어가 총기법 위반으로 3경기 징계를 받았고, 스티븐 잭슨은 주차장에서 발포한 후 7경기동안 출전하지 못했다. 웨스트 역시 유죄 판결을 받거나 유죄를 인정할 경우 상당 기간 결장이 불가피하다.

물론 클리블랜드는 이번 여름 앤써니 파커와 자마리오 문을 보강하며 스윙맨 진용을 강화했으므로, 웨스트가 출장정지를 당하더라도 그리 큰 피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포인트가드다. 웨스트의 두 번째 역할은 모리스 윌리암스와 르브론이 없는 동안 리딩을 맡는 보조 포인트가드기 때문이다. 191cm로 슈팅가드로는 단신이지만 포인트가드로는 장신에 속하는 웨스트는 상대 포인트가드에게 미스매치 부담을 안길 수 있으며, 클리블랜드 가드진 중 포인트가드 롤을 맡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수다. 따라서 웨스트가 결장할 경우 르브론의 리딩 부담이 커질 수 있으며, 이는 지난 시즌부터 클리블랜드가 견지해온 방침과 어긋나는 일이다. 지난 주부터 돌기 시작한 클리블랜드의 베테랑 가드 영입설도 웨스트의 출장정지를 염두에 둔 움직임이라는 평가가 있다.

웨스트가 뛰지 못할 때도 문제지만 돌아와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웨스트가 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작년 여름에는 재계약을 눈앞에 두고 마리화나 소지가 적발됐고, 프리시즌에는 훈련 도중 심판과 다툼을 벌인 후 팀을 떠나있기도 했다. 시즌 중에도 가끔 증세가 심해져서 피닉스 원정경기 직후에는 말없이 라커룸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만약 이번 사건이 조울증과 관련돼있다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웨스트의 생명을 위협하는 자들이 있을 수도 있다. 웨스트의 양부가 '딜론테는 단지 자신을 보호하려 했을 뿐'이라 말한 것이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 웨스트가 어린 시절 갱스터와 어울린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순탄한 성장과정을 거친 것도 아니다. 마치 영화 '매드 맥스'의 주인공 같은 중무장을 해야 밤거리를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거나 최소한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시즌 중에도 농구에 전념하기는 힘들 것이다.

웨스트는 9월 말 클리블랜드로 돌아와 페리 단장과 만남을 갖고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지만, 웨스트는 어쨌든 28일 클리블랜드 미디어 데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체포 사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일단 농구에 전념하고 싶다'는 말로 일관했다. 그리고 다음날 훈련에 나오지 않았다.


Delonte West Arr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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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 결근

미디어 데이 다음날인 29일, 아침 훈련을 모인 클리블랜드 선수들 중에 웨스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오후 훈련도 마찬가지였다. 웨스트는 하루종일 집에 머물러있었으며 팀에 아무 통보도 하지 않았다. 저녁 늦게야 웨스트와 통화에 성공한 대니 페리 단장은 '웨스트는 개인적인 문제로 불참했으며 나머지는 나중에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웨스트는 30일 훈련에도 불참했다가 사흘 만에 복귀했다.

웨스트의 훈련 불참 이유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조울증이 재발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평생동안 조울증과 싸워오고 있는 웨스트는 몇 년 전부터 정식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지만 가끔씩 의학적인 보호에서 벗어나 있을 때가 있다.

작년 프리시즌에도 장시간 팀을 이탈한 바 있는 웨스트지만 이번같이 아무 연락 없이 '무단 결근'을 한 것은 처음이다. 팀에서는 벌금 등의 징계를 고려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팀 분위기다. 모두가 의욕적으로 훈련에 임하는 트레이닝 캠프 첫날 훈련에 불참한 것은 팀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이번 시즌 클리블랜드같이 핵심 멤버가 대거 교체된 팀은 프리 시즌에 서로를 알아갈 기회를 잃는 것이 향후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웨스트 개인적으로도 불이익을 피할 수 없다. 지난 시즌 주전 슈팅가드 경쟁에서 사샤 파블로비치를 눌렀던 웨스트지만 올해는 앤써니 파커라는 강적과 경쟁을 해야 한다. 198cm의 베테랑 파커는 웨스트가 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면서도 슈팅가드에 더 알맞는 신장을 지녔다. 마이크 브라운 감독이 슈팅가드 포지션의 경쟁 체제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지금, 웨스트의 방황은 예상보다 빨리 경쟁을 끝낼 수도 있다.

웨스트의 방황을 받아주고 있는 동료들과의 관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웨스트와의 친분이 없는 상태에서 팀에 합류한 새 멤버들은 웨스트에게 경미한 징계만 내려질 경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일단 리더인 르브론이 '웨스트가 돌아오면 환영받을 것'이라 선언하며 진화가 되기는 했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Delonte West
Delonte West by Keith Allison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웨스트 문제, 해법은?

웨스트의 체포 및 무단 훈련 불참은 우승을 노리는 클리블랜드에게 처음부터 적지 않은 부담을 안기게 됐다. 지난 시즌 팀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이었고 올 시즌에도 중요한 역할을 맡을 웨스트가 제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페리 단장과 브라운 감독의 전체 시즌 구상이 어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웨스트를 트레이드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슈팅가드 자리에는 파커라는 대체 선수가 있으므로 웨스트를 트레이드 카드로 써서 약점인 파워포워드 포지션을 보강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웨스트가 트레이드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페리 단장도 하지 않을 것이고 대상 팀에서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웨스트는 기량에 비해 연봉이 낮은 선수다. 조울증이 없을 때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뛴다. 게다가 웨스트의 내년 시즌 연봉은 대부분이 비보장이다. 이미 웨스트의 조울증을 훌륭히 다스린 경험이 있는 페리 단장은 이번 시즌 웨스트를 잘 추슬러 쓴 후 트레이드 가치가 극대화되는 내년에 트레이드를 노릴 가능성이 높다. 시즌 구상을 마치고 프리시즌에 들어선 다른 팀들도 이제 와서 정서상 결점이 있는 선수를 받기 위해 팀을 흔들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웨스트는 이번 시즌에도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페리 단장과 브라운 감독은 지난 3일에 있었던 자체 청백전에 웨스트를 출전시키지 않았다. 'Wine & Gold Scrimmage'라 불리는 클리블랜드의 자체 청백전은 선수들이 현지 팬들에게 시즌 첫 선을 보이는 중요한 행사다. 하지만 웨스트는 청백전이 열리고 있던 시간 연습 코트에서 코치와 함께 개인 훈련을 했다. 페리 단장은 앞으로도 당분간 웨스트의 미디어 노출을 금지시킬 예정이다.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눈에 띄게 불편해한 후 다음날 훈련에 무단 불참한 웨스트이니만큼 체포 사건이 일단락될 때까지 웨스트를 카메라 앞에서 떼어놓는 게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팀 구성원들은 작년 웨스트가 팀을 이탈했을 때도 거의 2주일 동안 철저히 침묵을 지킨 바 있다.

지난 시즌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웨스트는 이번 프리시즌에는 농구 외적인 문제로 투지를 발휘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웨스트가 27일 보스턴과의 개막전에 100% 상태로 나올 수 있을지가 올시즌 우승을 노리는 클리블랜드에게 주어진 첫 시험인 셈이다. 프런트와 코칭스태프, 동료 선수 모두의 분발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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