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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률에는 불만이 없다

2008-2009 시즌을 기다리는 뉴올리언즈 호네츠의 팬들은 그야말로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유력 언론들은 뉴올리언즈를 우승 후보로 꼽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고 어느 덧 리그 MVP 후보로 성장한 크리스 폴과 그의 동료들이 보여줄 새로운 마법에 대한 기대는 하늘을 찔렀다.

헌데 지금까지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결과는 둘째 치고 경기의 내용이 너무나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결정적으로 지난 포틀랜드와의 시즌 2차전에서 션 막스의 3연속 공격 시도를 보는 순간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표류하는 뉴올리언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노라 마음먹었다. (세상에, 코트 위에 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봐도 믿어지지 않는 장면이다.)

지난 시즌 그토록 멋진 모습을 보였던 뉴올리언즈에게 도대체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일까?

사실 나는 뉴올리언즈의 승수에는 불만이 없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시기(한국 시각 12월 4일 01시)까지 뉴올리언즈는 총 15경기를 치루며 9승 6패를 기록 중이다. 개막 전, 나름대로 뉴올리언즈의 예상 승수를 세워두고 있었는데 내가 10~11월 동안 예상한 승수는 약 11~12승 정도였다.

"샬럿과의 시즌 다섯 번째 경기, 마이애미와의 시즌 여섯 번째 경기, 새크라멘토와의 시즌 열 번째 경기" 이상 세 경기는 모두 예상외의 패배를 기록했던 경기였다. 이 경기들 중 1~2 경기만 승리했다면 얼추 나의 예상 승수와 비슷하게 맞아떨어진 숫자를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즌 초반 타이슨 챈들러와 페야 스토야코비치가 부상으로 결장을 하는 등 크고 작았던 몇 몇 돌발 상황들을 감안하면 크게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개인적인 예상치 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이 정도 승률이라면 후반에 얼마든지 본궤도로 올라설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공격

지금까지의 승률이 기대치에서 '살짝' 어긋나고 있다면, 게임의 내용은 '왕창' 어긋나고 있다. 다들 눈치 채셨겠지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게임의 내용"에 대한 것이다. 특히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은 너무나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뉴올리언즈의 공격이다.

이번 시즌의 뉴올리언즈는 게임당 평균 93점을 실점하면서 평균 최소 실점 부문 리그 6위에 랭크되어 있다. 물론 수비의 내용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어찌되었든 결과론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공격은 이야기가 다르다. 게임당 평균 96.2점의 득점률은 고작 리그 21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지난 시즌 돌풍을 일으켰던 뉴올리언즈가 평균 최다 득점 9위, 평균 최소 질점 5위에 각각 랭크되었음을 떠올려본다면 공격의 부진함이 현재 뉴올리언즈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는 주요 요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이번 시즌 총 15경기를 치루는 동안 100점 이상의 득점을 기록했던 7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기록했고, 90점 이상 득점을 기록한 경기에서 패배한 경우는 단 한 번에 그치고 있으며, 90점 미만의 득점을 기록하고도 승리한 경우는 단 한 차례에 그쳤을 만큼 '공격이 잘 풀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경기의 결과가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뉴올리언즈의 공격에는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일까?


크리스 폴의 활용 - 의존도 줄이기? 그 어마어마한 착각과 폐해

이번 시즌 바이런 스캇 감독은 폴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리그 역사상 포인트 가드를 에이스로 하는 원맨팀으로 챔피언십을 차지한 경우가 전혀 없었음을 감안해본다면 분명 그 발상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아니 뉴올리언즈가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아이재이아 토마스의 디트로이트는 결코 원맨팀이 아니었다.)
헌데 이게 조금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스캇 감독의 의도가 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모습이 아니라, 폴을 게임에서 배제시키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의존도를 줄이는 것"과 그를 "배제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이번 시즌 뉴올리언즈의 경기를 보면 팀의 공격이 끝날 때까지 위크사이드에서 홀로 방황하고 있는 폴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위의 표는 폴의 커리어 스탯 중 필드골, 3점슛, 프리드로우에 관련된 수치들을 따로 정리한 것이다. 전체적인 변화의 추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일. 데뷔 이 후 꾸준히 증가해오던 필드골 시도 횟수가 크게 줄었다.
이. 데뷔 이 후 꾸준히 증가해오던 3점슛 시도 횟수가 크게 줄었다.
삼. 데뷔 이 후 꾸준히 감소해오던 자유투 시도 횟수가 크게 늘었다.

일.
필드골 시도 횟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이것은 말 그대로 폴이 시도하는 슛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폴은 어시스트를 해야 하는 포인트 가드니까 더 좋은 현상 아닌가?"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물론 시도는 줄었으나 전체적인 성공률은 높아지고 있는 지금이기에 그 모습이 보기에 흡족하기도 하다.
하지만 3점슛 시도 횟수와 폴의 플레이 스타일을 감안/조합해서 생각해보면 조금 다른 측면이 등장한다.

이.
올 시즌의 폴은 커리어 역사상 가장 적은 횟수의 3점슛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폴이 어떤 상황에서 3점슛을 시도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스크린을 타고 돌아 나와서 3점슛을 시도했던가? 아니다.
현란한 드리블로 수비수를 떨쳐내고 3점슛을 시도했던가? 아니다.
수비수를 앞에 두고 보란 듯이 3점슛을 시도했던가? 아니다.

폴이 주로 3점슛을 시도하는 장면들은 다음과 같다.

"스트롱 사이드(혹은 탑 부근)에서 동료 선수들과 공격을 세팅하는 과정 중" -> 수비수가 폴의 돌파 or 엔트리 패스 등을 염려해 거리를 두고 수비를 하는 상황. 혹은 -> 엔트리 패스를 받은 동료가 곧바로 폴에게 리턴 패스를 주는 상황.

주로 이런 장면들에서 비교적 여유롭게 시도하는 3점슛이 폴의 그것이다. 그리고 이번 시즌 들어 3점슛 시도 횟수가 급감한 이유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더 이상 폴이 있는 곳이 스트롱 사이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드골 시도 횟수가 줄어든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폴이 게임을 조율하고 거기에 맞춰 다른 선수들이 보다 많은 슈팅을 시도한 것이 아니다. 데이비드 웨스트와 스토야코비치의 필드골 시도 횟수가 나란히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만약 위와 같은 이유로 폴의 필드골 시도가 줄어들었다면 두 선수의 필드골 시도 횟수는 필연적으로 증가했어야 했다. 폴을 제외한 팀 내 가장 확실한 득점원들인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저 폴을 배제한 채 시도되는 공격 횟수가 늘어난 것이 폴의 슈팅 시도 횟수가 줄어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삼.
자유투 시도 횟수가 증가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지난 시즌처럼 동료들과 볼을 주고받으며 공격을 세팅할 수 있는 기회가 크게 줄어든 폴은 결국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해 직접 득점을 "마무리" 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야했고 그 결과 상대 수비수들로부터 파울을 얻는 횟수가 증가한 것이다. 이것이 자유투 시도 횟수가 늘어난 실질적인 이유다.

이런 식의 '의존도 줄이기'는 르브론 제임스 타입의 선수에게 어울리는 방법이다. 제임스처럼 "더블 팀을 몰고 다니며", 득점을 "마무리" 하는 선수는 이런 식으로 의존도를 줄이는 게 맞다. 제임스가 위크 사이드에 머무르는 경우, 스트롱 사이드에 있는 선수들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제임스는 결정적인 순간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파울을 얻고 득점에 성공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클리블랜드가 "2옵션 찾기"라는 염원을 품은 채 그토록 고생을 한 것 아니었나?

하지만 폴은 제임스의 그것과 같은 위협을 주는 선수가 아니다. 폴은 더블 팀을 몰고 다니는 선수도 아닐뿐더러 득점을 '마무리' 하는 선수가 아니라 득점의 '시발점'이 되어야 하는 선수다. 직접 득점에 성공하든, 어시스트를 기록하든, 먼발치에서 구경을 하든지 간에 공격의 시작은 폴의 손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폴이 위크 사이드에 머무르는 경우, 스트롱 사이드에 있는 선수들은 그 위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볼을 가지고 게임을 리딩하는 폴이 아니라면, 또한 그런 폴과 함께하는 뉴올리언즈가 아니라면 수비수들은 그저 고마울 뿐이다.

폴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없어도 득점을 올릴 수 있는 2옵션"이 아니다. 자신이 진두지휘하는 게임에 최적화 된 "4명의 동료들"이다. 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싶은가?  그렇다면 폴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어시스트를 기록할 수 있는 공격 전술을 구상해야 한다. 폴이 20-10 의 포인트 가드가 아니라 10-20 의 포인트 가드가 될 수 있는 팀을 만들어야 한다. 폴의 슈팅 시도 횟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폴의 출장 시간을 줄일 수 있어야한다. "폴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득점을 할 수 있는 전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아니, 그런 생각은 리그 탑 포인트 가드에 대한 모욕이다.


혼돈의 세트 오펜스 - 느려지고 무뎌지고

위의 표는 뉴올리언즈가 슛클락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왼쪽은 지난 07-08 시즌의 것, 오른쪽은 이번 08-09 시즌의 수치다.

07-08 시즌의 뉴올리언즈는 전체 공격 시도의 60%를 15초 이내에 실행했다.
08-09 시즌의 뉴올리언즈는 전체 공격 시도의 53%를 15초 이내에 실행하고 있다.
이것은 전년도대비 -7%에 해당하는 수치다.

얼마나 공격이 느려졌는지 느낌이 잘 오지 않는가?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하프 코트 게임을 즐기며 득점을 올리는 샌안토니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07-08 시즌의 샌안토니오는 전체 공격 시도의 56%를 15초 이내에 실행했다.
08-09 시즌의 샌안토니오는 전체 공격 시도의 55%를 15초 이내에 실행하고 있다.

이번 시즌의 뉴올리언즈는 샌안토니오 이상의 지공을 구사하는 팀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뉴올리언즈는 리그에서 가장 적은 필드골 시도 횟수를 기록 중인 팀이다.)

물론 07-08 시즌의 뉴올리언즈 역시 빠른 템포의 농구를 구사하는 팀은 아니었다. 다만 1차적인 세트 오펜스만으로도 신속한 득점이 가능했기에 체감 속도가 빠르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것은 잘나가던 뉴올리언즈와 표류하는 뉴올리언즈가 갖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잘나가던 뉴올리언즈에는 폴과 챈들러의 픽앤롤, 폴과 웨스트의 픽앤팝으로 대표되는 "필살기"가 있었다. 폴이 볼을 잡고 코트를 넘어오면 웨스트/챈들러는 스크린플레이를 준비했고 폴이 지체 없이 돌파를 시작하면 이것은 곧 앨리웁과 오픈 점퍼로 이어졌다. 이것은 지난 시즌 뉴올리언즈가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었던 가장 확실한 무기였다. 그리고 그것에 실패하더라도 재빨리 2차, 3차 세트 오펜스를 가동하며 득점을 이어갔다. 폴의 플로터, 페야의 외곽슛, 웨스트의 포스트 업 등이 그것이다. 결국 21초 이 후에 시도하는 공격의 비중은 전체 공격의 17%에 그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의 뉴올리언즈는 소위 "필살기"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세트 오펜스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런 이유로 전체 공격 시도에서 15초 이내에 이뤄지는 공격의 비중이 무려 전년도 대비 -7%의 수치를 보이고 있다. 득점을 위해 최적화 된 루트를 잃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1차적인 세트 오펜스가 막혀버리는 순간부터 이해할 수 없는 공격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챈들러가 하이 포스트로 나와서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수행하려 한다거나, 앞서 언급했듯 폴을 위크사이드에서 방치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거기에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볼을 갖지 않은 공격수들의 움직임이 제로에 수렴하고 있다.

결국 뚜렷한 방향성이 없는 공격으로 시간만 허비하게 되고, 그 결과 21초 이후에 시도하는 공격의 비중이 전년도 대비 4%나 증가해 전체 공격 시도의 21%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특히나 뉴올리언즈의 득점 패턴에 있어서 점프슛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상기해본다면 이것은 결코 유쾌한 상황이라고 볼 수 없다. 시간에 쫓겨 던지는 점프슛만큼 유쾌하지 못한 공격이 어디에 있을까?

정리해보자.

문제 일 : 폴을 공격에서 배제시켜버리고 있다.
문제 이 : 세트 오펜스가 버벅거리고 있다.

그렇다면 퀴즈~ 두 가지 문제의 상관관계는?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 글의 요점을 정리해보면 뉴올리언즈의 가장 큰 문제는 공격이다. 공격에 문제가 생긴 것은 크게 두 가지의 이유로 분류할 수 있다. 이유 하나, 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시도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 이유 둘, 확실한 공격 전술의 부재로 인해 뚜렷한 방향성이 없는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

이렇게만 놓고 본다면 현재 뉴올리언즈 공격의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서 의외로 간단하고 원론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폴을 공격의 한 가운데 놓을 것. (덧붙여 '의존도 줄이기'와 '배제하기'를 혼동하지 말 것) 그리고 선수들은 보다 게임에 집중을, 코치진은 확실한 공격 전술의 개발과 선수들의 동기유발을 촉구해야 할 것이 그 해답이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12월 2일. 바이런 스캇 감독이 인터뷰를 가졌다. 최근 팀이 부진한 이유는 공격 기회를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공격의 템포를 끌어올리고 공격 리바운드 확보에 포커스를 두겠노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여러분들이 이 글을 읽으실 때쯤이면 뉴올리언즈와 피닉스의 시즌 2차전 경기가 끝이 났을 것이다. 자, 뉴올리언즈는 과연 얼마나 달라진 모습으로 게임에 임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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