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COLUMNS/SPECIAL 2009. 10. 19. 12:15

2009-10 NBA 싸우스웨스트 디비전 프리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글: 정진영(떠돌이 검사)

2008-2009 시즌의 사우스 웨스트 디비젼은 춘추 전국시대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치열했다.

싸우스 웨스트 소속 다섯 개 팀 중 네 팀이 모두 승률 6할 언저리의 성적을 내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디비전 1위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4위 뉴올리언스 호네츠의 경기차는 겨우 5게임이었던 만큼 시즌 끝까지 순위쟁탈전이 이루어졌었다. 이번 시즌 역시 다르지는 않을 듯 보인다.

팀 내 원투펀치를 모두 부상으로 잃은 휴스턴 로케츠의 추락이 예상되지만, 멤피스 그리즐리스는 오히려 눈에 띄는 전력보강으로 상위권 도약의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기 때문. 거기다 샌안토니오, 뉴올리언스, 그리고 댈러스 매버릭스는 아직까지 건재하다. 꾸준히 팀들 간 전력이 상향평준화 되어왔던 싸우스웨스트 디비젼. 올 시즌 역시 이러한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아마 우리들은 시즌 끝까지 치열한 순위경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샌안토니오 스퍼스 (2008-09시즌 : 54승 28패)


In_ 드후안 블레어, 난도 데 콜로, 마커스 헤이슬립, 리차드 제퍼슨, 잭 맥클린턴, 안토니오 맥다이스, 티오 레틀리프, 키스 보건스
Out_ 브루스 보웬, 드류 구든, 페브리시오 오베르토, 커트 토마스

팀 던컨, 마누 지노빌리, 토니 파커의 트리오는 올 시즌 역시 그 위력을 발휘할 것 이다, 지난 시즌, 팀의 한 축이었던 지노빌리가 부상으로 결장함에 따라 던컨과 파커만을 앞세운 스퍼스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댈러스 매버릭스에게 1승 4패로 무참히 탈락했다. 지노빌리의 결장도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던컨, 파커의 뒤를 받쳐줄 득점원이 전무했다는 것. 이는 스퍼스의 고질적 약점이기도 했다(그 단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포포비치 감독은 지노빌리를 주로 식스맨으로 중용했다).

하지만 올 시즌은 분명히 다르다. 리차드 제퍼슨의 합류로 인해 스퍼스는 또 다른 득점 옵션이 생겼으며, 안토니오 맥다이스와 테오 래트리프의 가세, 그리고 루키 포워드 드후안 블레어가 시범경기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줌에 따라, 스퍼스의 골밑은 더더욱 탄탄해질 것으로 보인다.

스퍼스의 수비력은 언제나 훌륭했다. 키쓰 보건스의 수비력은 떠나간 브루스 보웬의 공백을 메울 것이며, 이와 상관없이 던컨은 항상 골밑을 지키고 있다. 알찬 오프시즌을 보낸 스퍼스에게 더 이상의 약점은 보이지 않는다. 부상이라는 악재만 조심한다면 올 시즌 스퍼스는 싸우스웨스트 디비전의 강력한 1위 후보임과 동시에, 우승후보이기도 하다.


▷ 휴스턴 로케츠 (2008-09 시즌: 53승 29패)


In_ 트레버 아리자, 데이비드 안데르센, 팝스 멘사-본수, 채이스 버딘거, 세르지오 룰, 저메인 테일러, 액셀 허벨
Out_ 론 아테스트, 본 와퍼, 제임스 화이트

지난 시즌, 팀 내 주축이었던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와 야오밍이 번갈아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휴스턴 로케츠는 서부의 강자로 군림했다. 시즌 22연승을 기록했으며, 11년만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통과 등 휴스턴에게는 꽤나 의미 있는 시즌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의 휴스턴은 그리 밝아보이지는 않다. 주전센터 야오밍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선언했고, 맥그레이디 역시 무릎부상으로 언제 NBA에 복귀할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휴스턴은 올 시즌을 원투펀치(야오밍과 맥그레이디) 없이 시작하게 된다. 또 다른 악재는 론 아테스트의 이적이다. 훌륭한 수비수이자 좋은 공격수인 아테스트까지 잃은 휴스턴은 마치 선장 잃은 배와 같은 꼴이라 할 수 있다. 비록 트레버 아리자를 영입했다지만, 아리자는 아테스트 만큼의 득점력을 선사하지는 못한다. 젊은 포인트가드 애런 브룩스의 괄목한 성장이 눈에 띄지만, 그가 팀의 공격력을 책임지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또한 야오밍의 이탈로 인한 포스트 플레이어의 부재는 도대체 누가 메울 것인가?

하지만 희망을 잃지는 말자. 칼 말론의 이적과 존 스탁턴의 은퇴로 인해 역사상 최고의 찰떡 콤비를 잃은 2003-2004시즌의 유타 재즈는, 안드레이 키릴렌코라는 새로운 신데렐라의 활약에 힘입어 42승 40패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과연 올 시즌 휴스턴의 신데렐라는 누가 될 것인가?


▷ 댈러스 매버릭스 (2008-09 시즌: 50승 32패)


In_ 숀 매리언, 크리스 험프리즈, 퀸튼 로스, 팀 토마스, 드류 구든, 나단 자와이, 로드리그 뷰보이스, B.J. 뮬렌스, 아마드 니빈스
Out_ 브랜든 배스, 라이언 홀린스, 제리 스택하우스, 앤투완 라이트, 데븐 조지, 그렉 벅너

샌안토니오의 오프시즌 보강도 눈에 띄지만 댈러스 매버릭스 역시 알찬 여름을 보냈다.

제리 스택하우스, 데븐 조지, 앤투안 라이트를 트레이드로 내보냈지만, 토론토와의 2대 3 트레이드로 숀 매리언 영입에 성공했다. 이미 예전 피닉스 선즈 시절, 제이슨 키드와 같이 뛰어본 만큼 빠른 적응력이 기대된다. 특히 뛰어난 속공 마무리를 자랑하는 매리언의 능력은 댈러스의 속공은 그 위력이 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매리언의 진정한 가치는 앞으로 수비에서 평가될 전망이다. 수준급의 대인마크와 리바운딩 능력을 지닌 매리언으로 인해 댈러스의 수비력은 한층 안정적이게 될 것이다. 새로 합류한 파워포워드 드류 구든 역시 덕 노비츠키의 짐을 덜어줄 것이다. 댈러스는 위에 언급한 샌안토니오나 휴스턴과는 다르게 노비츠키 한명에게서 파생되는 효과를 살려야 하는 팀이다. 즉, 노비츠키를 보좌할 수 있는 선수들의 보강이 시급했는데, 이 점에서는 올 여름의 변화가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겠다.

단, 릭 칼라일 감독의 시스템에 얼마나 선수들이 적응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비록 지난 시즌에도 50승을 돌파하긴 했지만, 선수들이 자주 전술적으로 헤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많은 문제점들이 수비에서 지적되었는데, 수비를 우선적으로 지향하는 릭 칼라일 감독의 스타일에 적응하도록 선수들의 노력이 필요하다(2008-09 시즌, 댈러스는 경기당 99.8점을 허용했다. 리그 15위에 해당하는 기록) 제이슨 키드와 조쉬 하워드의 기복 역시 댈러스로써는 해결해야 할 문제다. 특히 하워드의 경기력이 승패와 직결된다는 것은 지난 시즌 덴버 너게츠와의 플레이오프 서부지구 준결승전에서 증명되었다.

골밑의 중량감이 적다는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댈러스는 공수 밸런스가 잘 맞춰진 팀이다. 키드의 노쇠화, 그리고 부상만 피할 수 있다면 싸우스웨스트 디비전에서 샌안토니오와 1위 다툼을 대등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뉴올리언즈 호네츠 (2008-09 시즌 : 49승 33패)


In_ 대런 콜리슨, 이케 디오구, 이메카 오카포, 마커스 쏜튼, 바비 브라운, 대리우스 송가일라
Out_ 라슈얼 버틀러, 타이슨 챈들러, 안토니오 다니엘스

싸우스웨스트 디비전 팀들 중 가장 팀 전력의 변화가 없던 팀이 바로 뉴올리언스 호네츠다.
주전 센터 타이슨 챈들러가 나가는 대신, 샬럿 밥캐츠의 주전 센터 이메카 오카포가 들어왔고 워싱턴의 후보 선수 대리어스 송가일라가 새로 합류했다. 미완의 대기 오카포는 챈들러를 대체할 것이고, 송가일라는 벤치의 깊이를 더해 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미미한 변화를 제외하면 뉴올리언즈의 전력은 사실상 작년과 비교해 볼 때 그다지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지난 시즌과 올 시즌의 전력 차이를 만들어 낼 요소는 분명히 있다. 바로 크리스 폴의 성장, 그리고 페쟈 스토야코비치의 부활이다. 이미 올스타 레벨의 선수이긴 하지만 폴은 이제 겨우 24살로 무궁무진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선수다. 전력의 50%를 차지하는 선수인 만큼 폴의 성장은 팀 성적에도 큰 영향을 끼칠게 분명하다. 스토야코비치는 지난 시즌 슈팅 성공률과 3점슛 성공률이 30%대에 머물면서 그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부진했다. 뉴올리언즈의 퍼리미터 오펜스를 책임져야할 선수이기에 팀의 선전을 위해서는 그의 부활이 절실하다.

뉴올리언즈의 가장 큰 단점은 스타팅 라인업은 강팀으로 보기에 손색이 없지만 벤치의 전력은 강팀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선수층이 얇다는 것이 뉴올리언즈의 최대 단점. 이 부분에서 루키 대런 콜리슨의 활약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 강력한 우승 후보가 되기에는 부족한 점들이 있지만 폴, 데이비드 웨스트, 오카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뉴올리언즈는 충분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는 서부의 강호다. 바이런 스캇 감독이 과연 팀을 어디까지 끌고 갈지 지켜보도록 하자.


▷ 멤피스 그리즐리스 (2008-09 시즌 성적 : 24승 58패)


In_ 하심 타빗, 드매어 캐롤, 샘 영, 알렌 아이버슨, 재크 랜돌프, 스티븐 헌터
Out_ 퀸튼 로스, 하킴 워릭, 다르코 밀리시치, 그렉 벅너, 퀸튼 리차드슨, 제리 스택하우스

오프시즌 최대 화두는 바로 앨런 아이버슨과 잭 랜돌프의 이적이었다. 이 두 명의 슈퍼스타는 멤피스의 전력을 한층 강화시켜 줄 것이며, 잃어버린 팬들 역시 되찾아 줄 것이다. 사실 이번 시즌 멤피스는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팀이다. 마이크 콘리, O.J. 메이요, 루디 게이, 마크 가솔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실력 있는 유망주 들이다. 이들의 성장과 함께 아이버슨과 랜돌프의 경험이 합친다면? 꽤나 즐거운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다.

디트로이트에서의 실패는 잠시 잊어버리자. 아이버슨은 여전히 볼만 지니면 무서운 득점원이 될 수 있으며 랜돌프 역시 여전히 매 경기 20득점-10리바운드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멤피스는 이들로 인해 퍼리미터와 골밑을 한꺼번에 보강하게 된다. 이들의 역할은 그 다음 문제다.

멤피스의 성공열쇠는 다름 아닌 수비에 있다. 현재 팀의 로스터를 살펴보면 수비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아니나 다를까, 작년 멤피스의 수비력은 가히 최악이라 할 만큼 엉성했다. 감독 리오넬 홀린스가 러닝게임을 중시하는 만큼, 팀의 수비력은 올 시즌에도 취약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의 공격력에 안정적인 수비가 더해진다면? 멤피스는 아마 올 시즌 큰 사고를 칠 수 있지 않을까.

< 저작권자 ⓒ 뛰어(www.ddueh.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NEWS & COLUMNS/JEFFREY23 2009. 4. 30. 10:40

NBA 역사 속의 오늘

BY jeffrey23

사용자 삽입 이미지

April 30, 1956
보스턴 셀틱스가 에드 맥컬리와 클리프 하간을 세인트 루이스 호크스로 트레이드 하며 드래프트 1번 픽을 얻었다. 보스턴은 이 픽으로 빌 러셀을 지명하였다.

April 30, 1971
떠오르는 신성 카림 압둘자바와 베테랑 오스카 로벗슨 콤비가 볼티모어 불리츠와의 파이널 4차전(118-106) 승리를 견인하며 스윕을 거두었다. 밀워키 벅스는 구단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이었다.

April 30, 1975

래리 오브라이언이 J.월터 케네디에 이어 3번째로 NBA 커미셔너에 부임하였다.

April 30, 1988
서부컨퍼런스 1라운드 2차전에서 83점을 합작한 슬리피 플로이드와 하킴 올라주원(각각 42점, 41점)의 휴스턴 로케츠가 댈러스에 119-108, 승리를 거두었다. 이들은 NBA 플레이오프 역사상 두 번째로 2명이 40점 이상을 뽑아낸 주인공이 되었다.

April 30, 2002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게리 페이튼이 역사상 2번째로 올 NBA 퍼스트 수비팀에 9번 당선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이 기록은 앞서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 불스 시절 세운 바 있다.

< 저작권자 ⓒ 뛰어(www.ddueh.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NEWS & COLUMNS/HELTANT79 2009. 4. 25. 00:03

킨샤사의 성자-세계인 무톰보 이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아프리카 한가운데 위치한 콩고 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사. 오랜 내전으로 황폐해진 이곳에는 300석의 병상을 보유한 초현대식 병원이 세워져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2007년 개관한 이 병원은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와 전염병 연구 센터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년 5세 이하 어린이 중 20%가 에이즈 등 전염병으로 죽어가며 평균 수명이 50살도 안 되는 이 나라의 의료/보건 환경을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병원의 설립자는 이 나라 출신의 노장 NBA 선수로, 그는 무려 1500만 달러를 기부해서 조국에 세운 이 병원에 어머니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NBA가 키워낸 세계인, 디켐베 무톰보의 이야기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디켐베 무톰보 무폴론도 무캄바 장 자크이 워무톰보,' 아프리카 출신
 
Dikembe Mutombo는 1966년 6월 25일, 아프리카의 신생국 콩고의 수도 레오폴드빌에서 학교 교장이었던 사무엘 무톰보와 비암바 마리 무톰보의 10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속한 부족은 태어난 아이에게 친족의 이름을 물려주는 것이 관례였고, 결국 무톰보는 ‘디켐베 무톰보 무폴론도 무캄바 장 자크이 워무톰보(Dikembe Mutombo Mpolondo Mukamba Jean Jacque Wamutombo)'라는 터무니없이 긴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무톰보의 아버지는 월수입이 37달러로 당시 콩고에서는 중산층에 속했지만, 10명이나 되는 자녀를 부양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무톰보 부부는 굶주린 이웃을 어떻게든 도우려 항상 노력했고, 소년 무톰보는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갔죠.

당시 콩고는 1960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이래 5년 동안 무려 세 번이나 정변이 일어나는 혼란 끝에, 미국 CIA가 후원하는 모부투 군사 정권이 권력을 잡은 직후였습니다. 국민들은 국가의식보다는 약 200개에 달하는 부족의식이 더 강했으며,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다른 많은 아프리카 국가의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풍족한 자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고 있었고, 서구 세계가 착취의 대가로 뿌려주는 원조 물자에 의지해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영특한 두뇌를 자랑했던 소년 무톰보는 이런 환경 속에서 병에 걸려 죽어가는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약사가 되기로 다짐했고, 미국의 경제 원조 정책인 USAID 장학금을 받으며 학문을 쌓아갔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미 7피트에 가까울 정도로 키가 크고 운동신경이 좋았던 무톰보는 모든 운동, 특히 농구와 축구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미군 원조 학교인 Salvation Army School과 Jesuit-run Institut Boboto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집안 식구 모두가 키가 컸던 관계로 형 일로와 함께 농구 청소년 대표 팀에 뽑히기도 했죠. 그 사이에 모부투 정권은 국명을 자이르로, 수도 이름을 킨샤사로 바꿨지만 소년 무톰보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무톰보의 장학금 담당관이 무톰보를 찾아왔습니다. 미국에서 왔다는 담당관은 무톰보를 유심히 관찰하더니, 미국에서 공부해볼 생각은 없냐고 물었죠. 언젠가는 미국에서 공부해보고 싶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무톰보 자신도 그 기회가 그렇게 일찍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무톰보는 망설일 것도 없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죠.

 세계인 무톰보의 첫걸음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Rejection Row’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톰보와 모닝, 1991년


무톰보는 조지타운 대학교에 입학해서 약학 전공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미국에서 약사로 성공한 후 고국으로 돌아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약을 지어주고 싶었기 때문이죠. USAID 프로그램에서는 학비만 대주었기 때문에, 무톰보는 친구들과 함께 미 의회와 세계은행에서 여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함께 아르바이트를 한 친구들 중에는 무톰보처럼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고, 무톰보는 그들과 대화하면서 국제적인 감각을 익혀나갔습니다. 그가 영어나 콩고의 공용어인 불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죠. 조지타운에서 보낸 1년 동안, 무톰보의 시야에 담긴 세계는 그의 영어 실력만큼이나 죽죽 자라났습니다.


                               조지타운 새내기 시절의 무톰보

‘세계인’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무톰보의 인생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조지타운 농구부의 명장 존 톰슨이 무톰보를 찾아온 것이죠. 애당초 무톰보가 미국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학업능력과 함께 농구 실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농구 원로인 자리드 헐버스타트가 경제원조 담당관이던 허먼 헤닝에게 무톰보의 비디오를 보여줬고, 헤닝이 조지타운의 톰슨 감독에게 추천서를 보냈던 것이죠. 1985년에 패트릭 유잉이 졸업한 후 센터 난에 시달리고 있던 톰슨 감독은 무톰보에게 선뜻 농구장학금을 주기로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무톰보는 농구 선수가 된다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았습니다. 고국에 있었을 때도 NBA라는 프로리그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몸을 부딪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무톰보는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농구 경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톰슨 감독은 ‘프로 농구 스타가 되면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으며 무톰보는 프로 농구 스타가 될 자질이 충분하고 자신은 프로 농구 스타를 만들 가능성이 가장 높은 대학 감독 중 하나’라며 무톰보를 설득했습니다.

마침내 마음을 정한 무톰보는 조지타운 호야스 농구부에서 본격적으로 농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농구부 입단 후에는 전공도 바꿨습니다. 외교학과 언어학의 복수 학위로 졸업한 무톰보는 영어, 불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와 아프리카 5개 부족 언어를 구사하는 국제적 인재가 되어있었죠. 무톰보는 정말로 ‘세계적인’ 농구선수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 무톰보는 이미 7피트가 넘는 장신에 엄청난 윙스팬과 유연성까지 갖췄지만, 기본기나 전술 이해도는 아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정도로 형편없었습니다. 톰슨 감독은 끈기를 가지고 하나하나 기본기를 전수해갔죠. 특히 무톰보를 수비형 센터로 키우기로 결정하고 리바운드와 블록 기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쳤습니다. 톰슨 감독은 심지어 NBA 레전드인 빌 러셀까지 동원했습니다. 농구부에 러셀을 닷새 동안 초청했는데, 그중 사흘을 무톰보에게 붙인 거죠. 러셀은 그때까지 프로 선수가 될지 망설이고 있던 무톰보에게 ‘자네는 할 수 있어. 자네는 농구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라며 설득했고, 마침내 무톰보는 프로 선수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습니다.

2학년이 되던 해부터 1년 후배 알론조 모닝의 백업으로 출전하기 시작한 무톰보는 3학년부터 주전으로 출장, 모닝과 함께 공포의 골밑 수비를 자랑했습니다. 그는 세인트존스와의 경기에서 무려 12개의 슛을 걷어내며 대학농구 역대 신기록을 세웠고, 강팀이 즐비한 빅 이스트 컨퍼런스에서 공동 수비왕을 수상했습니다. 무톰보와 모닝의 더블포스트는 상대에게서 골밑 득점 기회를 앗아가 버렸고, 조지타운 대학교의 팬들은 그들에게 ‘Rejection Row’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졸업반이 되자 무톰보의 골밑 수비는 경이적일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모닝이 부상으로 시즌 대부분을 결장하는 바람에 골밑 부담을 혼자 짊어지게 되었지만, 그는 평균 15.2점과 12.2리바운드, 그리고 4.71블록을 기록했으며 수비왕과 컨퍼런스 퍼스트 팀에 선정되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1년 조지타운 멤버들, 아랫줄 가운데가 무톰보, 뒷줄 오른쪽에서 6번째가 모닝


당시 무톰보의 수비력을 가장 잘 보여준 경기는 1991년 빅 이스트 컨퍼런스 토너먼트 8강에서 펼쳐진 코네티컷과의 경기였습니다. 조지타운은 야투율 25퍼센트의 슛난조에 시달렸지만 11점차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골밑에서 27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낸 무톰보가 있었기 때문이죠. 긴 팔과 높이,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무톰보의 골밑 수비는 금세 NBA 스카우트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수비력에서 학교 선배 패트릭 유잉의 대를 이을 선수로 평가받곤 했죠. 1991년 졸업한 무톰보는 드디어 NBA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1년 학위수여식의 무톰보


    런&건 팀의 골키퍼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1년 NBA 드래프트, 무톰보는 자이르에서 날아온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전체 4순위로 덴버 너게츠에 지명되었습니다. 1번 픽의 영광은 차지한 래리 존슨을 비롯해서 케니 앤더슨, 스티브 스미스, 스테이시 오그먼, 테럴 브랜든, 그렉 앤써니 등 가드나 포워드들이 대세를 이룬 그 해 드래프트에서 무톰보는 루크 롱리, 데일 데이비스 등과 함께 몇 안 되는 인사이드 자원이었습니다.

1980년대 명감독 더그 모의 지휘 아래 알렉스 잉글리시, 팻 레버 등을 앞세워 쇼타임 레이커스를 제치고 팀 득점 1위를 독점할 정도로 빠른 농구를 펼쳤던 덴버는, 무톰보가 입단하던 무렵에는 선수들의 노쇠화로 리빌딩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폴 웨스트헤드 감독은 기존의 런&건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속공이 특기인 포워드와 가드를 중심으로 러닝플레이를, 무톰보에게 골밑 수비 하프코트 공격을 맡기기로 했죠. 무톰보는 루키 시즌 평균 16.6점과 12.3리바운드, 3블록을 기록하는 활약으로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며 단숨에 팀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올 루키 퍼스트 팀은 물론이고 올스타에 선발되기도 했는데, 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과 함께 미드웨스트 디비전에서 뛴 루키 센터로써는 준수한 성적이었죠.
다른 모든 루키와 마찬가지로 무톰보도 ‘황제’ 조던과 만나야 했습니다. 자신의 대학 시절 라이벌이었던 유잉의 뒤를 잇는 조지타운 센터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무톰보를 눈여겨보고 있던 조던은, 자유투 라인에 서자 눈을 감은 채 자유투를 던지고는 무톰보에게 외쳤죠. “NBA에 온 것을 환영하네!” 프로 농구 선수의 생활은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이듬해 프랜차이즈 스타인 댄 아이슬 감독을 새로 영입한 덴버는 루키 라폰소 엘리스와 브라이언트 스티스를 영입하고 마흐무드 압둘 라프가 본격적으로 스타팅 라인업에 합류하면서 전 시즌보다 15승이나 향상된 성적을 올렸습니다. 무톰보는 여전히 팀의 기둥이었고, 이제 많은 득점원들과 함께하게 된 그는 득점 비중을 줄이고 수비에 집중하게 되었죠.
그들은 이듬해에도 성적을 끌어올려 시즌 42승을 거두며 4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덴버 팬들로써는 환호할 만한 일이었지만, 1라운드 상대는 그 해 최고 승률 팀인 시애틀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애틀과의 그 시리즈는 무톰보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시대로 기록되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

그 해 시애틀의 성적은 63승 19패로 1번 시드, 덴버는 42승 40패로 8번 시드. 1984년 컨퍼런스 7,8위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 시작한 이래 8번 시드가 1번 시드를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1라운드 따위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던 거죠. 심지어 덴버의 아이슬 감독마저도 시리즈 시작 전에 ‘우리의 목표는 경험을 쌓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적지에서 치른 두 경기에서 평균 15점차로 완패하자, 덴버의 플레이오프 경험은 세 경기로 끝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누구도 기대하지 않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3차전을 110-93으로 승리하며 기사회생한 덴버는 4차전마저 연장 접전 끝에 승리하며 시리즈를 최종전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제야 슬슬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 아이슬 감독은 ‘이런 큰 경기에 우리 어린 선수들이 긴장할까봐 걱정’이라고 했지만, 그의 팀 센터는 조지타운 출신이었습니다. 무톰보는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건 플레이오프다. 어떤 바보가 홈에서 승리를 내주고 싶겠냐? 걔네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댈 것은 뻔한 일이다. 우린 그냥 가서 편안히 경기하면 된다.’며 동료들을 독려했습니다.

마침내 벌어진 운명의 5차전, 무톰보에게는 상대 에이스인 숀 켐프를 상대로 골밑을 사수하라는 특명이 내려졌고, 그는 라폰소 엘리스, 브라이언 윌리엄스와 함께 켐프를 묶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전반까지는 시애틀이 앞서나갔지만 시애틀의 포인트가드 게리 페이튼이 발에 경미한 부상을 입으면서 리듬이 흐트러졌고, 후반 들어 제 타이밍에 공을 공급받지 못하게 된 켐프는 번번이 무톰보에게 가로막히기 시작했습니다. 그 틈을 타서 로버트 팩과 엘리스가 득점포를 가동했고, 마침내 경기는 또다시 연장으로 가게 됐습니다.
연장전에서 무톰보는 수비력만으로 최고의 경기지배력을 보여줬습니다. 시애틀 선수들은 완벽한 돌파를 해내고도 무톰보의 블록슛 때문에 공을 밖을 뺄 수밖에 없었고, 데틀레프 슈렘프나 네이트 맥밀란 등 시애틀의 슈터들은 수비를 앞에 두고 외곽 슛을 던져야 했습니다. 림을 돌아 나온 공은 모조리 무톰보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고, 덴버는 속공으로 손쉬운 득점을 올렸죠.

마침내 종료 휘슬이 울리고, 98-94로 승리한 덴버 선수들은 환호했습니다. 엄청난 활약을 펼친 무톰보는 코트 위에 벌렁 누워 공을 쥐고 포효했습니다. 그 장면은 지금도 플레이오프 하이라이트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곤 하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기 하이라이트 보기

덴버는 리그 역사상 최초로 1라운드에서 1번 시드를 꺾은 8번 시드 팀이 되었고, 팬들은 전국에 방송된 이 시리즈를 통해 ‘수비형 센터 무톰보’의 진가를 깨닫게 됐죠. 다섯 경기를 통해 그가 기록한 블록슛은 무려 31개. 경기당 6개가 넘는 슛을 막아낸 것입니다. 비록 덴버는 2라운드에서 유타에게 4-3으로 아깝게 탈락했지만, 무톰보는 이 시리즈에서도 칼 말론을 상대로 7경기에서 38개의 블록을 기록하며 선전했습니다.

덴버는 이듬해에도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2년 연속으로 기적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이 무렵부터 무톰보는 블록슛을 성공시킨 후 집게손가락을 좌우로 흔드는 세리모니를 시작했는데, 당시 막 복귀해 45번을 달고 뛰던 조던도 이 세리모니의 희생양이 됐죠. 여담이지만, 몇 년 후 조던은 무톰보에게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먹인 후 손가락 세리모니를 하며 보기 좋게 설욕했습니다.
그 해 무톰보는 리바운드 2위와 블록슛 1위를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올해의 수비수 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제 무톰보는 리그를 대표하는 수비형 센터로 자리매김한 것이죠.

그러자 덴버 구단의 걱정이 커졌습니다. 무톰보의 계약 기간은 1995~96 시즌으로 만료될 예정이었고, 구단 살림은 무톰보에게 거액을 안겨줄 정도로 풍족하지 못했으니까요. 마침 1995년 드래프트에서 빅맨 유망주였던 안토니오 맥다이스를 얻고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자, 덴버는 맥다이스를 중심으로 팀을 리빌딩하기로 했습니다.

무톰보는 덴버에서의 추억을 뒤로 하고 자유계약선수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팀들이 그를 원한 끝에, 결국 애틀랜타가 무톰보의 새 팀으로 결정되었죠.
무톰보는 애틀랜타에서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애틀랜타에는 무키 블레일락과 스티브 스미스 등 덴버 시절보다 득점력이 뛰어난 선수가 많았고, 수비에 전념한 무톰보는 거의 매 경기 골밑을 자신의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올스타전에도 꼬박꼬박 나갔으며 2년 연속 올해의 수비상 수상과 생애 최초 올 NBA팀 선정 등 무톰보는 1990년대 후반 동부를 대표하는 센터로 군림했습니다. 팀도 매년 50승 이상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죠. 애틀랜타는 마이애미, 인디애나와 함께 최강 시카고에 동부에서 가장 근접한 팀 중 하나였고, 당대 최고의 수비 팀이었습니다.

2001시즌 중에 동부지구 1위 팀이었던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된 후에도, 무톰보는 아이버슨 원맨 팀이었던 필라델피아의 수비라인을 총지휘하며 팀을 83년 이후 처음으로 파이널에 진출시켰습니다. 비록 파이널에서는 최고의 포스를 자랑하고 있던 샼의 레이커스에게 4-1로 무릎을 꿇었지만, 그 해의 필라델피아는 가장 위대한 패자였죠.

그는 이제 평균 천만 달러 이상을 받는 슈퍼스타가 되었습니다. 애틀랜타에 큰 집도 샀고 간호사 지망생이던 자이르 미녀 로즈와 결혼하면서 결혼하라고 성화를 대던 어머니에게 체면도 세웠죠. 그들은 나중에 아이 셋을 낳았고 조카 넷을 입양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선 행사에 참석한 무톰보 부부

무톰보는 이제 본격적으로 주위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출전을 위해 미국을 찾은 조국 자이르의 여자농구 대표 팀의 경비를 대주기도 했고, 1993년에는 국제 구호단체인 CARE의 대변인 자격으로 소말리아 난민 캠프를 찾았습니다. 매년 오프시즌 아프리카를 방문해 매일 2000명 이상의 아이들을 상대로 농구를 가르쳤죠. NBA 총재 데이비드 스턴과 조지타운 동문인 유잉, 모닝과 함께 막 인종차별에서 벗어나고 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고향의 가족들과 친척들도 호강시켜줄 일만 남았었죠.
 이야기가 이것으로 끝난다면, 이 이야기는 후진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슈퍼스타가 된 한 농구선수의 아메리칸 드림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애틀랜타에서 첫 시즌을 보내고 있던 여름, 고향에서 일어난 비극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비극

1997년 5월, 자이르의 수도 킨샤사에서는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30여 년간 자이르를 철권통치해온 모부투 정권에 맞서 로랑 카빌라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죠. 킨샤사의 모든 시민들에게는 통행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물론 총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밖으로 나갈 만큼 정신 나간 시민도 몇 없었지만 말이죠.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반드시 외출해야 하는 사람은 있었습니다.

사무엘 무톰보는 뇌졸중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아내 비암바 마리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습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병원이 있었지만 통행금지령 때문에 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는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사무엘은 결코 그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죠. 사무엘은 가족들의 만류를 마다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사무엘은 평소 같으면 10분이면 도착했을 병원에 30여분 만에 도착했습니다. 의사를 부르려던 사무엘은 그제야 병원이 텅 비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킨샤사에서도 의료인들은 항상 부족했고, 내전을 벌이고 있는 양 세력은 그들을 가장 먼저 데려가 버린 것이죠.
그 병원은 모부투가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마마 예모’라 이름붙인 2000병상의 큰 병원이었습니다. 모부투는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 병원 운영에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래서 ‘마마 예모’는 중앙아프리카 지역의 자랑이었죠. 하지만 그 병원은 가장 도움이 필요한 때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모든 희망을 잃고 집으로 돌아온 사무엘이 맨 처음 들어야 했던 것은, 아내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는 가족들의 울음소리였습니다.

불스 왕조의 플레이오프 홈경기 14연승을 저지하는 등 선전한 끝에 아쉽게 탈락한 무톰보는 TV 뉴스를 통해 고국의 정변을 알았습니다. 무톰보는 검은 연기로 뒤덮인 킨샤사를 보면서 고향 집에 전화를 해보려 노력했지만 전화가 될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톰보는 어머니의 부음을 모든 소동이 진정된 후 들어야 했습니다. 임종은커녕, 무톰보가 간신히 비행기를 구해 돌아갔을 때는 장례식까지 마친 뒤였던 것이죠.

무톰보는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오열했습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친절했던, 죄와는 가장 거리가 멀었던 어머니가 왜 그렇게 세상을 떠야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도 납득할 수 없었죠.
하지만 납득할 수 있든 없든, 무톰보는 움직여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생전에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 했었습니다. 단돈 3센트짜리 예방주사를 못 맞아서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었죠.
 
무톰보는 그들을 돕기로 결심했습니다.


디켐베 무톰보 재단

미국에 돌아온 무톰보가 맨 처음 한 일은 에이전트에게 구호 기금 설립을 지시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훗날 ‘디켐베 무톰보 재단’이라 불리게 된 이 기금을 통해, 다시 콩고로 이름이 바뀐 조국의 비극적인 상황을 세계에 알리고 가능한 모든 도움을 주려 했습니다. 그는 인터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콩고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참상에 대해 이야기했고, 시즌 오프 후 모금 계획을 짜 나갔습니다. 2003년에는 아프리카에 다녀온 후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맨 적도 있었죠.

어머니를 기리고 고국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작은 움직임은 서서히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CBS는 인기 프로그램 ‘60분’ 특파원과 무톰보가 내전 후유증에 시달리는 킨샤사의 참상을 취재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했고, 각종 유수 언론사들이 인권 및 복지 관련 상의 수상자로 무톰보를 선정했죠. 리그 역시 2001년 NBA 인도주의상 수상자로 무톰보를 선정했으며 선수협회와 구단주 모임도 무톰보의 움직임을 지지했습니다.
미국 정부와 국제 여론도 무톰보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켐베 무톰보 재단’의 모금활동에 카터, 아버지 부시, 클린턴 등 전직 대통령과 콜린 파월, 콘돌리자 라이스 등의 정부 각료가 참여했고,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이던 배럭 오바마와 제프 블룸버그 뉴욕 시장 등이 미국 정부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1999년 미국에서 봉사자에게 주는 가장 큰 상인 ‘대통령 봉사상’ 수상자로 무톰보를 선정했습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도 무톰보의 모금 활동에 기꺼이 참여했으며,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이끌던 유엔에서는 유엔 개발 프로그램(UNDP)의 초대 대사로 무톰보를 임명하며 그를 공식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전 세계가 무톰보의 꿈에 공감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시절 존 톰슨 감독이 예언한 대로, 무톰보는 정말로 ‘세계를 움직이는 농구선수’가 된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무톰보의 소속팀은 뉴저지, 뉴욕, 시카고, 그리고 사흘 후 휴스턴으로 변해갔고 기록도 점점 나빠졌지만, 그의 인류 평화에 대한 신념과 의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무톰보는 재단이 모금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미국 시민권도 얻었습니다. 그는 리그의 ‘국경 없는 농구’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려 노력했으며, 남아프리카의 불우 어린이들에게 15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NBA와 유니세프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United for Children, Unite against AIDS’ 캠페인에도 참가하여 부모의 잘못으로 날 때부터 에이즈로 고통 받아야 하는 어린이들을 돕기도 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프리카 아이들과 함께 한 42세의 무톰보


하지만 무톰보가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인 사업은 고향에 병원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치료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조국의 의료 환경을 향상시킬 수 있는 병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언제든지 도움을 줄 수 있는 병원 말이죠.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무톰보는 꼭 그런 병원을 짓고 싶었습니다.


비암바 마리 무톰보 병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사진은 병원을 짓기 전에 있던 구식 병원입니다. 이 허름한 병원 터에 새 병원을 짓는 데 드는 예산은 약 2천9백만 불로 추산되었습니다. 무톰보는 이를 위한 기금 중 첫 1500만 불을 자신의 개인 기부로 충당했습니다. 그것은 그때까지 무톰보가 벌어들인 연봉의 1/3에 육박하는 거액이었죠. 하지만 나머지 반을 채우는 데는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무톰보는 기금 마련을 위해 누구든 만났고 어디든 갔습니다. 처음 병원 설립을 결심한 1997년부터 2006년까지 무톰보가 기금 마련을 위해 이동한 거리는 무려 80만 5천 킬로미터에 이릅니다. 지구를 20바퀴나 돌 정도로 엄청난 거리죠. 오프시즌 동안 다른 선수들은 대부분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만, 무톰보는 일주일에 2~3일은 기금 마련을 위해 밖에 나가있어야 했습니다. 무톰보 스스로가 ‘아내가 도망가지 않고 기다려줘서 정말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죠.
그는 시즌 중에도 다른 선수들이 아직 자고 있을 이른 아침에 일어나 기부자들을 만나는 일이 많았습니다. 시애틀에 원정을 가면 아침에 빌 게이츠 재단을 다녀오는 식이었는데, 어느 날인가는 빌 게이츠를 만나다 팀 연습에 늦어서 택시를 타고 시애틀 시내를 질주한 적도 있었죠.
물론 좌절도 여러 번 겪어야 했습니다. 1999년에 야심차게 추진한 첫 모금 바자는 4만9천 달러 적자라는 처참한 결과로 끝나기도 했죠. 하지만 이 노장 선수의 꺾이지 않는 의지는 리그의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휴스턴 팀메이트였던 쥬완 하워드는 10만 달러를 기부했고, 덕 노비츠키나 레안드로 발보사등 여러 선수들이 무톰보 재단에 모두 50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휴스턴 구단에서는 연말 자선 바자회로 모금한 49만 달러를 모두 기부했고, 새크라멘토의 패트리 단장도 25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구단주 및 단장 모임에서도 지원을 약속했죠. 마침내 리그 사무국에서 공식적으로 지원을 선언했고, 재정적 지원과 함께 병원 설립 후 운영비 모금을 위해 ‘10만 기부자 모집’ 캠페인을 펼치기로 했습니다. 10만 명이 한 달에 10달러씩 1년 동안 1200만 달러를 모으자는 캠페인이죠. 이 캠페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무톰보의 어머니 이름을 딴 ‘비암바 마리 무톰보 병원’은 몇 번이나 개관을 연기하는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2007년 6월 17일, 아버지 사무엘을 모시고 개관식을 가졌습니다. 무톰보 일생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죠.

“이 뜻 깊은 날, 사랑하는 저희 어머니, 비암바 마리 무톰보를 떠올려봅니다. 어머니는 제 인생 최고의 선생님이셨습니다. 죽음이 어머니를 데려가서, 어머니는 당신 두 눈으로 당신의 꿈이 이뤄진 이 모습을 보지 못하십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천국에서 웃음 지으며 우리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축사를 읽는 무톰보의 목소리가 탁했던 건 단지 그의 평소 목소리가 그랬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비암바 마리 무톰보 병원' 개관식 모습


같은 해 12월에 첫 환자를 받은 이 병원의 병실에는 ‘트레이시 맥그래디’나 ‘야오 밍’, ‘알론조 모닝’같은 동료들의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아직 의사나 연구원, 각종 기자재가 많이 부족하지만, 무톰보의 열정이 살아있는 한 콩고와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에 반드시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


세월도 비켜간 '마운틴'

사용자 삽입 이미지


휴스턴에서 퇴물 선수로 은퇴할 것 같았던 무톰보가 다시 한 번 빛을 발한 것은 2006-07시즌이었습니다. 야오 밍이 부상으로 한동안 돌아오지 못한 것이죠. 절체절명의 위기해서 무톰보가 일어났습니다.
선발로 나선 첫 경기에서 18분 동안 5리바운드로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시작한 무톰보는 두 번째 경기에서는 19분 동안 10리바운드를 잡아냈습니다. 그리고 14개, 11개, 12개...... 계속해서 두 자릿수 리바운드를 잡아낸 무톰보는 11경기 연속 두 자릿수 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노익장을 과시했죠.
1월 10일, 레이커스와 가진 홈경기에서 무톰보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스물한 살이나 어린 바이넘의 원핸드 덩크를 블록하며 NBA 통산 블록슛 2위에 오른 것이죠. 이 경기에서 무톰보는 무려 34분을 소화하며 7득점 19리바운드 5블록의 괴물 같은 활약을 펼쳐 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두 달 후 덴버와의 홈경기에서는 22리바운드를 잡아내며 40대 나이에 한경기 20리바운드 이상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톰보가 조국에 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팀에서도 최후의 희망 같은 존재였습니다. 비록 지난 시즌도 야오 밍이 시즌아웃 당하며 우승반지를 끼는 데 실패했지만, 무톰보는 그가 뛰고 있는 동안에 수비진의 최후의 보루로, 라커룸의 큰형님으로 그 역할을 다했습니다.


제게 농구는 끝났습니다.’

2008-2009 시즌, 미계약 상태로 시즌 개막을 맞은 무톰보는 몇 달 후 휴스턴과 계약했습니다. 이번 시즌이 정말로 마지막이라는 다짐과 함께 맞은 시즌이었습니다. 야오 밍의 백업으로 시즌 후반부터 9경기에 출장하며 플레이오프에 대비한 무톰보는 여전히 관록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는 포틀랜드를 상대로 18분 동안 리바운드 9개, 블록슛 2개를 기록하며 노익장을 과시했습니다.

그리고 맞은 2차전, 야오 밍을 대신해서 1쿼터 종료 3분여 전 투입된 무톰보는 포틀랜드의 그렉 오든과 리바운드 볼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농구공을 처음 잡은 이래 수만 번이나 잡아내온 수비 리바운드 점프였습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무톰보의 왼쪽 무릎이 이상한 방향으로 비틀렸고, 무톰보는 뛰어오르지 못한 채 코트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쓰러지는 와중에도 오든에게 파울을 해서 쉬운 득점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관중석에 갑자기 정적이 흘렀습니다. 휴스턴 벤치에 있던 선수들이 모조리 일어섰고,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무톰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해설자들은 무톰보가 NBA에서 18년간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코트에 쓰러져 무릎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무톰보에게 아주 나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경기장의 모든 사람들이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빨리, 똑똑히 깨달은 것은 무톰보 자신이었습니다. 의료진이 달려오고 이동 침대가 운반돼 오는 동안, 43세를 맞은 노장 선수의 눈에서는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무톰보에게 내려진 판정은 ‘무릎 인대 손상’이었습니다. 무톰보는 그의 이번 시즌이 끝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슬픈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아뇨, 내 커리어가 끝났습니다. 전 아마 수술을 받아야 할 겁니다. 일단 남은 플레이오프 경기에는 함께 할 것입니다. 후배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응원하고, 그들이 나에게 보여줬던 사랑에 보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내게 농구는 이제 끝났습니다.”

이동 침대에 실려 나가는 무톰보에게 로즈 가든의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원정팀에게 가혹하기로 유명한 포틀랜드 홈구장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지난 18년 동안 무톰보가 보여준, 농구 이상의 그 무엇을 향한 박수였습니다.





다음날,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한 무톰보에게 리그 사무국은 리그 역사상 최초로 인도주의상 2회 수상의 영예를 선사했습니다.


킨샤사의 성자

무톰보는 1991년부터 18시즌동안 6개의 팀에서 1196경기를 출장, 평균 9.8득점과 10.3개의 리바운드, 2.8개의 블록슛을 기록했습니다. 그의 통산 블록슛 3289개는 역대 2위의 기록이며, 수비왕 4회와 디펜시브팀 6회, 리바운드왕 2회, 블록슛왕 3회로 수비수로써 위대한 업적을 남겼죠. 그가 코트 위에서 펼친 활약만으로도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할 이유는 충분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위대함은 경기장 밖에서 더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수많은 자선 활동을 통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우려 애썼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능으로 인한 성공의 결과를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썼습니다.

“이건 살아오면서 얻은 지혜입니다. 모두가 삶의 목적이 있죠? 제 삶의 목적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겁니다. 그냥 혼자서 좋은 사람으로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에 기여하는 겁니다. 저는 제가 돌보는 사람들의 생명과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려 하고 있죠.
 만약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그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도 있겠죠. 제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겁니다.“
 
2007년 1월 부시 미국 대통령은 신년 담화문 발표장에 무톰보를 초대했습니다. 그는 영부인 로라 부시의 옆에 앉은 무톰보를 가리키며 ‘이 콩고의 아들을 미국 시민이라 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말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7년 대통령 신년 담화 현장에서 기립박수를 받고 있는 무톰보


그는 나이지리아에 컨설팅 회사를 차리고 아프리카에 새 집을 짓는 사업을 시작하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 채널‘ TV 방송국을 설립해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한 홍보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죠. 농구선수로써 경력은 끝났지만, 세계와 인류를 향한 무톰보의 발걸음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무톰보는 훗날 NBA 팬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을까요?

이런 모습일 수도 있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는 이런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제 생각에는, 무톰보가 진정으로 기억되길 원하는 모습은 이런 것일 것 같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톰보가 살려낸 저 아이들 중에는 미래의 위대한 자선사업가, 아프리카의 현실을 개선할 위대한 정치인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혹은 저 중 위대한 NBA 선수가 나와서, 우리 아이들이 그를 보고 열광할 수도 있겠죠. 그럼 우리는 아이들에게 '바로 저 선수가 아버지 때의 위대한 수비수 무톰보가 키워낸 선수란다' 하고 말해줄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친구들에게 NBA를 자랑할 때 말할 수 있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마이클 조던이라는 이름의 신이 하늘을 날아다녔고 매직과 버드의 전설이 만들어진 곳, 샤킬 오닐이라는 괴수가 바스켓을 습격하며 코비라는 불세출의 스타가 폭발하는 곳,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들이 최고의 경기를 펼치며 수많은 명장면이 만들어지는 곳..... 모두 좋은 얘깁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죠.

"우리가 보고 있는 NBA는, 아프리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나라 출신의 비쩍 마른 소년에게 인류애를 실현할 기회를 줄 수 있는 리그다"

그리고 무톰보 역시 리그에게 옳은 일을 할 기회를 주었죠.

그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 자신이 속한 무대에 더욱 특별한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그의 신념과 열정은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그의 위대한 여정에 동참하도록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NBA는 지나치게 상업화되었고 선수들은 돈만 밝힌다’는 비판을 들었을 때 조용히 무톰보를 가리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무톰보가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게 하나 있죠.

언제 어디서든, 우리가 볼 수 있든 없든 무톰보는 인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을 것이며, 우리는 그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디켐베 무톰보 재단 링크

< 저작권자 ⓒ 뛰어(www.ddueh.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휴스턴 로케츠와 덴버 너게츠, 2라운드 숙원 풀 수 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2004년,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가 휴스턴에 합류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로케츠가 가까운 미래에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 내다봤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이들은 4년 연속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지만 번번이 1라운드에서 고배를 마셨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특급듀오의 부상소식이 문제의 근원이었다. 올해 역시 맥그레이디가 시즌아웃으로 이탈하여 전력에 차질을 빚었지만 상황은 전과 다르다. 휴스턴은 이번시즌 영입한 악동 론 아테스트와 ‘인간 만리장성‘ 야오밍의 활약으로 플레이오프 티켓을 끊었다. 특히 맥그레이디 없이 거둔 정규시즌 4위의 성적은 간판스타 없이도 그들이 얼마만큼 경쟁력을 갖추었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대목이다.
수년간 주전 포인트가드를 담당하던 래퍼 앨스튼을 보내면서 기존의 젊은 가드진들에 대한 기용폭이 넓어졌다. 최근 오른발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야오밍의 부상도 호전되고 있어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한국나이로 불혹을 훌쩍 넘긴 무톰보의 존재도 든든하다. 무톰보는 여전히 리바운드와 블락에서 공헌해줄 수 있는 선수기 때문에 로포스트의 비중이 높은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적잖은 힘이 될 전망이다.

덴버 너게츠 역시 1라운드 잔혹사에서 빠질 수 없는 팀이다. 덴버는 간판스타 카멜로 앤쏘니와 함께 지난 5년간 플레이오프 무대에 빠짐없이 출석도장을 찍었다. 부상에 울었던 휴스턴과는 달리 덴버는 대진운이 좋지 않았다. 우승공식이나 진배없는 샌안토니오의 홀수 해에만 두 차례나 맞닥트렸고 지난 시즌에는 준우승 팀 LA 레이커스와 만나는 불운을 겪은 바 있다. 덴버는 수년간 전통의 강호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한계점에 이른 덴버는 결국 이번 시즌 슈퍼스타 알렌 아이버슨을 디트로이트에 보내며 파이널 MVP 출신 첸시 빌럽스를 영입하는 강수를 두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손익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트레이드 이후의 행보만 놓고 보면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빌럽스는 수년간 디트로이트에서 쌓은 노련함과 승리의 노하우를 덴버에 가져오며 돌풍을 주도했다.

오랜만에 얻은 홈코트 어드벤테이지도 호재다. 이번 시즌 리그에서 덴버보다 홈 승리가 많은 팀은 클리블랜드와 레이커스, 그리고 보스턴이 유일하다. 특히 4월 들어 연패를 거듭하며 불안한 전력을 보이고 있는 유타가 1라운드 파트너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징크스 해방 가능성은 그 어느 해보다 높을 전망이다.


플레이오프의 백미 ‘업셋(Upset)’ 기상이변 감도는 시리즈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종목을 막론하고 플레이오프 무대에서는 이변에 울고 웃는 팀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변을 일컫는 이 업셋은 이제 플레이오프에서 빠질 수 없는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희생양이 되는 선수들 및 구단관계자들의 속은 썩어 들어가겠지만 말이다.
가까이 지난 시즌에는 신흥강호 애틀랜타 호크스가 챔피언 보스턴 셀틱스를 탈락직전까지 몰고 가며 많은 팬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2006-07시즌에는 무차별 화력을 앞세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정규시즌 챔피언 댈러스를 침몰시키며 수많은 팬들을 경악시킨 바 있다. 서부컨퍼런스는 사실 최근 몇 년 동안 이변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시리즈마다 근소한 전력 차를 보이고 있다. 하위시드의 팀이 승리한다하더라고 큰 화젯거리가 못 되는 것이 서부컨퍼런스의 현주소다. 레이커스와 유타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서부 팀들이 5경기 내외의 승차를 유지하고 있어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반면 상대적으로 전력편차가 큰 동부컨퍼런스는 각본 없는 드라마에 더 없이 좋은 장소다. 확률적으로 나오기 힘든 각본인 만큼 반전의 짜릿함은 클 것이다. 특히 3강으로 분류되는 클리블랜드와 보스턴, 올랜도는 거센 저항을 준비해야한다.

시카고의 주전 슈팅가드를 담당하고 있는 벤 고든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 세 팀은 정말 막강하다. 특히 홈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는 클리블랜드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대전 파트너에 대한 의사를 피력했다. ‘뒤엎는다(Upset)’라는 의미를 지닌 업셋의 주인공이 누가 되던 웃는 것은 결국 승자와 팬들인 만큼 귀추가 주목된다.

< 저작권자 ⓒ 뛰어(www.ddueh.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용자 삽입 이미지

‘T-MAC'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가 또 쓰러졌다. 시즌이 개막한 지 겨우 15경기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번엔 무릎이다.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스포츠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무릎이 얼마나 중요한 부위인지를 잘 알고 있을 터. 역시 요 몇 년 간 그랬던 것처럼 ’당분간‘ 맥그레이디를 볼 수 없게 되었다. 휴스턴 로케츠 팬들은 시즌 전 하나 같이 동일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제발 부상만은...” 하지만 맥그레이디는 올 시즌에도 여지없이 팬들의 우려를 현실로 나타나게 했다. 팬들은 또 한 번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게 잘못되어가고만 있다

휴스턴의 올 시즌은 그 어느 해보다 희망적이었다. 다재다능하고 수비에서 전투적인 론 아테스트가 가세했기 때문이다. 어느 팀이든 아테스트, 맥그레이디, 야오 밍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것은 곤욕스러운 일이다. 단순히 빅3로 그 위력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왜냐면 이 팀에는 아테스트, 맥그레이디, 야오 밍을 비롯해서 셰인 베티에, 루이스 스콜라 등 훌륭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아테스트 없이도 서부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는 팀으로 살아남았다.

단지 아테스트라는 퍼즐이 추가된 것뿐이지만 그 퍼즐은 너무나 매력적인 것이었다. 휴스턴은 시즌에 대한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티맥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테스트의 휴스턴 입성을 가장 반긴 사람이 바로 티맥이었다. “준비는 완벽하다” 자신감에 가득찬 티맥의 말이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과연 오프 시즌에 완벽한 몸상태를 만들었는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인저리 프론. 언젠가부터 티맥은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 티맥의 전성기는 올랜도 매직에서 꽃을 피웠다.

빈스 카터의 그늘을 벗고자 새로운 도전에 나섰던 맥그레이디는 물 만난 고기나 다름없었다. 리그 최고의 선수를 논할 때 티맥은 빠져서는 안 될 선수로 분류되었다. 조연이었던 티맥은 어느덧 어엿한 주인공이 되었다. 2000년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 카터를 빛내주었던 ‘들러리’ 티맥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았다. ‘고졸 유망주’ 로서의 티맥은 거기까지였다. 한 팀의 에이스로서 티맥이 가져야 할 목표 의식은 좀 다른 것이었다. 우승. 그것은 티맥에게 있어 보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티맥은 이상한 징크스에 허덕이게 된다. 1라운드. 그것은 티맥이 결코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았다. 매시즌 플레이오프만 되면 힘없이 발길을 돌리는 티맥을 지켜봐야만 했다. 팬들은 매번 반복되는 장면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지만 티맥이 꼭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티맥 스스로에게도 반드시 뚫어야만 하는 일종의 관문이었다. 하지만 팬들이 바라던 ‘이상’ 은 펼쳐지지 않았다. 이를 갈을 것만 같았던 티맥은 점점 나약해져 갔다. 지쳐있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열정의 소진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건 마치 올랜도와의 작별을 미리 준비하는 것만 같았다.

올랜도는 계속해서 졌다. 지고 또 졌다. 기대했던 티맥의 마법은 그 기운조차 느끼기 힘들었다. 티맥을 떠받들던 사람들은 그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티맥은 당당히 맞서지 못했다. 반성하기 보다는 외려 올랜도의 한계를 탓했다. 화려하게 떠올랐던 티맥은 온데간데 없고 꼴찌팀의 비겁한 에이스만 남아있었다. 그렇게 티맥은 올랜도를 떠났다.


풀지 못한 숙제를 남겨두고 떠난 티맥

티맥이 올랜도를 떠나 당도한 곳은 휴스턴이었다. 그곳엔 야오 밍이 있었다. 휴스턴이 스티브 프랜시스를 포기하고 택한 인물은 다름 아닌 티맥이었다. 세 번의 우승을 차지했던 코비 브라이언트 - 샤킬 오닐 콤비의 전례대로라면 이보다 더 좋은 조합은 없었다. 티맥 역시 굳은 의지를 나타내며 우승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휴스턴이 티맥을 영입해 거둔 최고의 성적은 티맥의 징크스와도 같은 플레이오프 1라운드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던 휴스턴의 계획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록이다.

프랜시스도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킬 수 있는 능력은 있었다. 티맥이 로케츠 맨이 된 이후로 팀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휴스턴에서의 전성기라고 해봐야 숀 브래들리 위로 덩크를 내리꽂았던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플레이오프(역시 결과는 1라운드 탈락이었다)와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대결에서 보여주었던 미칠 듯한 클러치 3점슛 폭발이 전부다. 오히려 팀은 성적보다도 티맥의 건강에 더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티맥을 위한 휴스턴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즌 내내 티맥은 쓰러졌지만 팀은 그 때마다 기회를 주고 시간을 감내했다. 하지만 티맥은 이러한 팀의 노력을 매번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고 올 시즌도 변함이 없었다. 팀의 희망이 될 것만 같았던 티맥은 어느새 팀의 골칫거리로 자리 잡았다. 얼마 전에는 팀 내 입지도 불분명한 프랜시스에게 훈계까지 들어야 했다. 그만큼 현재 티맥의 위치는 무척 위태롭다. 부상이 원수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매번 닥쳐오는 시련에 티맥도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매번 눈 감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티맥이 벌여놓은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팀은 충분히 할 만큼 했다. 티맥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남은 것이라면 티맥의 보답인데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뉴저지 네츠의 카터를 한 번 보라. 그도 티맥과 비슷한 상황에 놓일 때가 있었다. 토론토 랩터스에서의 말년은 티맥의 그것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태업을 하며 대놓고 팀을 향해 시위를 벌였다. 카터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뉴저지로 옮겼다. 과연 토론토에서의 아쉬웠던 마무리는 뉴저지에서 만회되었을까?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카터의 위상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줄곧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올스타 투표에서는 떨어진 인기를 실감해야 했고 자신을 든든하게 받쳐주던 제이슨 키드와 리차드 제퍼슨은 팀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카터는 이런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 오히려 젋은 선수들과 뛰는 것이 즐겁다며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카터의 긍정적인 마인드는 팀 성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12월 5일(한국시간) 현재 뉴저지는 9승 8패의 좋은 성적으로 동부 6위에 올라 있다.

카터의 리더쉽은 티맥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티맥은 현실을 보다 진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티맥에겐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고 이번에야 말로 신중한 판단을 해야만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티맥이 회피했던 풀지 못한 숙제, ‘올랜도의 한계’ 는 영원히 티맥의 허물로 남게 될 것이다. 제발 자업자득이 되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 저작권자 ⓒ 뛰어(www.ddueh.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NEWS & COLUMNS/일반 뉴스 2008. 11. 27. 20:12

인디애나, 휴스턴 4연승 저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대니 그레인저가 연패의 늪에서 팀을 구해냈다. 인디애나는 28일(이하 한국시간) 도요타센터에서 열린 원정경기에서 휴스턴에 91-90으로 신승을 거두었다. 이로서 휴스턴은 4연승을 마감했고, 인디애나는 3연패의 사슬을 끊게 됐다.

휴스턴은 간판스타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의 결장에도 불구하고 끈끈한 수비조직력을 앞세워 연승을 눈앞에 두는 듯 했다. 시종일관 리드를 놓치지 않은 휴스턴은 10점차로 4쿼터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4쿼터에만 14점을 집중시킨 트로이 머피의 뒷심에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금일 경기의 수훈갑인 그레인저는 3점 슛 7개가 모두 림을 외면할 정도로 경기 내내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 막판 황금 같은 팁인 슛을 성공시킨데 이어 야오밍의 마지막 결승 슛을 막아내, 활짝 웃었다. 파워포워드를 담당하고 있는 트로이 머피는 21점 14리바운드로 팀의 승리에 힘을 보탰다.

‘걸어 다니는 만리장성‘ 야오밍은 인디애나의 집중견제 속에서도 19점 10리바운드로 제 몫을 해냈지만 고비 때마다 실책을 저질러 아쉬움을 남겼다. 아르헨티나 용병 루이스 스콜라는 생애 최다인 18리바운드를 보태며 분전했지만 팀의 패배로 빛이 바랬다. 

오늘 패배에도 불구하고 휴스턴은 사우스웨스트 디비전 단독 1위를 지켰으며, 인디애나는 센트럴디비전에서 밀워키 벅스를 제치고 탈꼴찌에 성공했다.

27일 NBA 전적
밀워키 96-102 애틀랜타
오클라호마시티 82-117 클리블랜드
샬럿 86-93 토론토
골든스테이트 111-119 보스턴
올랜도 96-94 필라델피아
뉴욕 96-110 디트로이트
피닉스 110-102 미네소타
인디애나 91-90 휴스턴
시카고 88-98 샌안토니오
멤피스 100-117 유타
마이애미 68-106 포틀랜드
뉴저지 116-114 세크라멘토
덴버 106-105 클리퍼스 

< 저작권자 ⓒ 뛰어(www.ddueh.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NEWS & COLUMNS/일반 뉴스 2008. 11. 7. 18:22

브랜든 로이 결승골, 휴스턴 2연패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은 올스타 가드 브랜든 로이의 날이었다. 포틀랜드는 7일(이하 한국시간) 로즈가든에서 열린 홈경기에서 로이의 막판 결승골에 힘입어 101-99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었다.

4쿼터 한때 신인 루디 페르난데즈의 맹공으로 두 자리 점수 차의 리드를 이어갔던 포틀랜드는 막판 9점을 집중시킨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의 뒷심을 막아내지 못해 결국 연장전을 맞이했다. 4쿼터 종료직전 로이의 볼을 가로채며 포틀랜드의 기회를 무산시킨 아테스트의 공도 컸다.

연장전에 들어서 침묵하던 양 팀의 주포들이 살아난 것은 경기 종료가 1분도 채 남지 않은 박빙의 승부처였다. 먼저 포문을 연 쪽은 맥그레이디였다. 맥그레이디는 94-94 동점상황에서 황금 같은 점프슛을 성공시키며 살얼음판 분위기를 종결시키는 듯 했다. 

하지만 포틀랜드의 라마커스 알드리지가 슈팅 파울로 얻은 자유투를 모두 성공시키며 경기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연장 종료 10초전. 휴스턴은 예상대로 해결사 맥그레이디가 마지막 공을 잡았지만 회심의 점프슛이 림을 외면하였다.

포틀랜드는 타임아웃 없이 곧바로 공격을 전개하였고 그 선택은 옳았다. 수비전열을 가다듬지 못한 휴스턴은 종료 1초전 로이에게 뼈아픈 페이드어웨이 슛을 허용하며 패색이 짙었다.

절체절명에 몰린 휴스턴은 작전 타임을 요청하였고 왼쪽 베이스라인에서 야오밍의 턴어라운드 슛이 적중하며 다시 한 번 기사회생 하였다. 로이의 슈팅파울로 얻은 보너스 자유투마저 성공시키자 휴스턴은 승리를 확신했고 남은 시간은 불과 0.8초로 포틀랜드의 기회는 없어보였다.

마지막 작전타임을 소진한 포틀랜드는 인바운드 패스로 기회를 엿보던 로이에게 결정권을 주었다. 스크린을 이용하여 마크맨을 떨쳐낸 로이는 인바운드 패스를 받아 곧바로 기대에 부응하였다. 9미터에 달하는 짜릿한 장거리포를 적중시키며 승부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야오밍에게 파울을 저질렀을 때 정말 실망했고 블레이크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고 운을 뗀 로이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쇼였다”며 승리를 자축했다. 이로서 포틀랜드는 2승 3패로 노스웨스트 디비전 2위에 오르게 됐다. 반면에 개막 이후 3연승을 달리던 휴스턴은 연패의 늪에 빠지며 뉴올리언즈 호네츠에 디비전 1위를 내주고 말았다.

한편 동부 컨퍼런스에서는 올랜도 매직이 주전들의 고른 활약에 힘입어 필라델피아 76ers를 꺾고 3연승을 질주하였다.

7일 NBA 전적
필라델피아 88-98 올랜도
휴스턴 99-101 포틀랜드

< 저작권자 ⓒ 뛰어(www.ddueh.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작성 : DreamTime, Point Guard, Doctor J

2007-08 시즌 사우스웨스트 디비전 리뷰

지난 시즌에도 사우스웨스트 디비전의 치열한 순위 경쟁에는 변함이 없었다. 2004-05 시즌 디비전 개편 이래 처음으로 사우스웨스트 디비전 1위를 차지한 뉴올리언스 호넷츠의 돌풍과 함께 기존 강팀들의 순항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50승 이상을 기록한 11팀 중 무려 4팀이 사우스웨스트 디비전 소속이었을 정도로 팀 간 전력이 더욱 상향평준화됐고, 덕분에 디비전 소속팀들 간의 경기는 플레이오프를 방불케 할 만큼 뜨거운 열기를 발산해냈다.

결국 50승 이상을 거둔 4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그 중 서부 컨퍼런스 2위를 차지한 뉴올리언스와 7위 댈러스가 1라운드에서 맞붙었다. 댈러스를 4승 1패로 제압한 뉴올리언스는 컨퍼런스 준결승전에서 샌안토니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으나 아쉽게 패배했고, 2년 연속 우승을 노리던 샌안토니오도 컨퍼런스 결승전에서 패하며 시즌을 끝마쳤다.  

오로지 시즌 도중 팀의 간판스타 파우 가솔을 헐값에 내준 멤피스만이 이러한 경쟁과 무관해 보였다. 멤피스는 2006-07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22승에 머물렀고 같은 디비전 팀들과의 전적은 2승 14패로 참담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리빌딩 체제에 돌입한 멤피스는 일찌감치 플레이오프 진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 판 짜기에 돌입한 상태였기 때문에 달리 억울해할 일은 아니었다.


2008-09 시즌 전망

뉴올리언스 호넷츠 (2007-08시즌 성적 56승 26패, 디비전 1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점 - 뉴올리언즈 최고의 강점은 역시 탄탄한 주전 라인업이 구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뉴올리언즈의 주전 멤버들은 총 69경기에 동반 출격하며 지난 2007-08시즌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 주전 라인업으로 기록 되었다. 2008-09시즌에도 뉴올리언즈의 주전 멤버가 되어 활약할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꾸준함과 환상의 호흡으로 팀의 선봉에 설 것이다.

이들의 위력이 강력하다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많은 경기를 꾸준히 함께 출장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섯 명의 선수 모두가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 서로의 강점을 극대화 시키고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조합이라는 것이 이들의 진정한 힘이다. 골밑에서는 리그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는 타이슨 챈들러는 상대적으로 행동 반경이 좁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강력한 미들슛을 무기로 하는 데이비드 웨스트와 함께 뛴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반대로 파워 포워드임에도 터프한 골밑에서의 움직임이 적은 웨스트는 챈들러가 있음에 마음껏 자신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게 되는 식이다.

더해서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리그 최고의 슈퍼 스타 대열에 합류한 크리스 폴은 그 존재만으로도 뉴올리언즈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약점 - 주전 선수들의 강력함이 뉴올리언즈의 강점이었다면 교체 선수들의 약한 전력은 이들의 가장 큰 약점이다. 지난 시즌 우승팀인 보스턴으로부터 제임스 포지를 영입하며 벤치를 강화했지만 여전히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으로써 부족함이 많은 뉴올리언즈의 교체 선수들이다.
특히 유럽으로 떠나간 자네로 파고의 빈자리를 채우고 팀의 중심인 폴의 교체 선수로 활약해야 할 가드 포지션과 챈들러의 뒤를 받쳐줄 센터 포지션의 교체 선수들은 이번 시즌에도 뉴올리언즈의 가장 큰 약점이 될 것이다.

지난 시즌 샌안토니오와의 플레이오프 2라운드 최종전. 4쿼터 초반이 지나면서 폴의 체력이 완전히 고갈 되었음에도 바이런 스캇 감독은 그를 벤치로 불러들이지 못했다. 48분을 모두 소화한 폴은 경기 후반 눈에 띄게 느려진 모습을 보였으며 결국 팀은 패배해야 했다. 현재 뉴올리언즈의 교체 선수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번 시즌에도 같은 장면이 재현되지 않으리란 장담을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전망 - 구단 창단 이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던 뉴올리언즈. 구단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을 작성하며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상처받은 지역 주민들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줬다. 그리고 리그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하다는 사우스 웨스트 디비전의 챔피언 자리에 오른 뉴올리언즈는 어느새 손꼽히는 강팀의 반열에 올랐고, 이번 시즌 당당히 리그 우승을 목표로 내세웠다.
보다 성장한 모습으로 등장할 천재 가드 폴과 보스턴에서 날아온 포지의 가세만으로도 이미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시즌 가장 큰 약점이었던 특정 포지션 교체 선수의 취약함은 여전히 뉴올리언즈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X-팩터로 남아있다.

새로운 유니폼과 구단 로고를 발표하며 의욕적으로 시즌 개막을 기다리고 있는 뉴올리언즈. 지난 시즌의 놀라운 성공이 뉴올리언즈가 가진 실력 이상의 것이었다고 말하는 몇 몇 전문가들에게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을까? 뉴올리언즈를 바라보는 팬들의 기대치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샌안토니오 스퍼스 (2007-08시즌 성적 56승 26패, 디비전 2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들어가는 말 - 샌안토니오의 새 시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승을 못하면 실패작이라는 소리를 듣던 21세기의 강팀 스퍼스. 지난 10년간 스퍼스의 매 시즌은, 별 특별한 일이 절대로 발생하지 않았던 오프시즌의 행보 덕분에(?), 팬들 입장에서는 큰 기대를 걸지 못하게 해왔다. 이번 오프 시즌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지노빌리의 부상 때문에 또 다시 절호의 백투백 우승 기회를 날려버린 스퍼스. 아마도 앞으로의 두 시즌 정도가 그들이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이제 대부분의 주전들이 30살을 훌쩍 넘긴 팀. 그러나 어느 감독들보다도 출장시간 관리를 철저히 해주는 그렉 포포비치 감독 덕분으로, 주전 선수의 큰 부상으로 인해 타 선수에게 걸리는 과부하 상황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아직도 체력 걱정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팀이다. 우승을 많이 해본 스퍼스 선수들은 스스로 체력관리 하는 법에 있어서도 통달을 한 팀이다. 시즌 중에 언제쯤 느슨하게 뛰고, 언제쯤부터 시동을 걸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느끼며 플레이한다. 이는 다른 여타 팀들에서 보기 힘든 스퍼스만의 재산이자 장점이다.

팀의 기둥, 팀 던컨_그는 아직도 건재하다. 물론 예전에 비해 상대팀 선수들이 던컨을 상대로 좀 더 쉽게 득점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수비 시에 헬핑을 들어가는 속도도 약간은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백코트에서 팀의 수비 전체를 지휘하는 그의 모습은 더욱 더 위협적인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블락샷 을 많이 찍는다고 더 좋은 수비를 펼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던컨은 스탯과 상관없이 수비에 있어서 현재 도인의 경지에 올라서고 있다. 운동능력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 덕분에 던컨은 앞으로도 몇 년 간은 더 스퍼스 공수 시스템의 기초석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를 백업하는 임무를 맡은 맷 보너톨리버에게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스퍼스의 팬 입장에서는 정신건강상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오히려 지난 시즌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단신의 이메이 유도카가 던컨의 백업으로서 훨씬 더 듬직해 보인다.
30세의 유도카는 스퍼스가 스몰라인업 을 돌릴 때 파워 포워드와 리바운더로서의 역할을 믿음직스럽게 해주는 선수다. 그리고 론 아테스트나 본지 웰스, 폴 피어스와 같이 힘이 좋은 상대팀 득점형 포워드들을 어떻게 수비해야 할 지 그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스퍼스의 비밀병기이기도 하다.

마누 지노빌리는 부활할 것인가_많은 스퍼스 팬들을 울리고 웃기는 존재다. 스퍼스 팬들이 잘 모르는 것이 하나 있는데 이번 올림픽에서 마누가 재부상을 당해 수술하게 된 것이 오히려 스퍼스에게는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누는 원래부터 고질적인 발목부상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플레이오프에서 급격히 악화된 발목은, 많은 전문가들에 의하면 앞으로 몇 개월 안에 커리어를 끝낼 수도 있는 심각한 부상으로 재발할 발목이라 했다.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았더라도, 지노빌리는 절대로 수술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가, 시즌 말미에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었다면? 스퍼스 팬으로서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오히려 이렇게 된 것이 스퍼스 입장에서는 더 낫다.
시즌 초반에 몸을 완벽히 만들어서 시즌 후반과 플레이오프에 팀을 이끌 승부사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All-NBA Third팀과 올해의 식스맨상 에 빛나는 클러치 플레이어. 그만 건재하다면 두려울 것 이 없는 스퍼스다.

토니 파커, 다시 한 번 비상하라_계속해서 점퍼가 안정되어 가고 있는 파커는 현 스퍼스 시스템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비정통 포인트 가드다. 비교적 느린 팀에서 원 맨 속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내구력도 좋은 편이고 이번 오프시즌은 작년과 달리 푹 쉴 수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배짱이 좋고 이제 큰 경기에서도 꾸준히 자기 실력을 발휘한다.
이번 시즌에 파커가 해줘야 할 중요한 역할이 하나 또 있다. 스퍼스가 1라운드 드래프트 픽으로 뽑은 죠지 힐을 선배로서 잘 이끌어줘야 하는 역할이다. 죠지 힐이 스퍼스에 의해 뽑힌 이유는 그의 뛰어난 운동능력과 수비력, 그리고 파커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그의 겸손한 마인드 때문이었다. 죠지 힐과 같은 젊은 피의 수혈은 파커의 체력적인 부담을 많이 덜어줄 것이다.

노쇠화를 모르는 브루스 보웬_사각지대에서나, 코너에서나, 베이스라인에서나.... 그의 수비력은 한결같다. 이제 37세. 철저한 자기관리와 잡초 같은 근성으로 자신보다 더 빠르고, 자신보다 더 크고 강한 상대팀 에이스들을 줄기차게 따라 다닌다. 그러나 예전처럼 그 상대선수들을 자신이 원하는 쪽 (예를 들면, 덩컨 쪽)으로 몰아나가는 능력은 조금 떨어졌다. 덩컨과 마찬가지로 작년에 아주 약간의 노쇠화 기미가 보이기는 했으나 역시 덩컨과 마찬가지로 경험과 수비 BQ에서 나오는 그만의 노하우로 이를 메꿔버리는 선수다.
이 보웬을 백업해줘야 할 선수가 바로 로져 메이슨이다. 스퍼스가 메이슨을 데려온 이유는 그의 삼점 능력과 공격 창출능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프리시즌에서 보여진 그의 활용도는 이번 정규시즌에서 그가 에이스 스타퍼로서 의 보웬 백업 역할 을 맡을 가능성을 높게 했다 . 메이슨은 시즌 초반 지노빌리의 결장 덕분에(?) 예상 외로 스퍼스의 시스템에 적응할 시간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까지 잡았다. 현재 15인 로스터에는 들지 못했지만 말릭 헤어스톤도 자신에게 주어진 수비 역할만큼은 확실히 해주는 선수다.

마이클 핀리의 역할_핀리의 역할은 자명하다. 브랜트 베리와 로버트 오리가 없는 스퍼스다. 무조건 오픈 3점들을 넣어줘야만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지난 오프시즌 동안에 핀리는 체중까지 5~6kg을 줄이며 새 시즌에 대한 각오를 새로이 했다. 그가 체중을 줄인 이유는 수비에서 더 큰 활약을 하기를 스스로 원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12월쯤에 돌아올 지노빌리의 공백을 막아줄 선수는 현 스퍼스의 로스터에서 핀리 밖에 없다. 고참으로서 덩컨과 함께 라커룸의 정신적 지주인 핀리가 다시 한 번 훨훨 날아주기를 스퍼스 프런트는 기대하고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올 시즌에 가장 기대가 많이 되는 스퍼스 선수다.

센터 3인방_오프시즌 동안에 왜 스퍼스가 던컨을 보좌해줄 빅맨을 구하지 않았느냐는 몇몇 스퍼스 팬들의 아우성이 있었다. 사실 스퍼스는 아주 확실한 빅맨을 구했다. 지난 시즌 중반에 영입한 컷 토마스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는가? 어차피 타 팀에서 뛰던 센터들은 데려와 봐야 복잡한 스퍼스의 공수 시스템을 이해 못하면 무용지물 일 수밖에 없다. BQ와 경험이 많은 토마스도 작년 시즌에 많은 고생을 하지 않았는가? 최근 인터뷰를 들으니 이제서야 제대로 스퍼스의 시스템을 파악했다고 한다.
컷 토마스는 던컨과 파브리시오 오베르토를 백업할 것이다. 오베어토도 작년부터 그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잔부상에서 드디어 헤어 나왔다. 탁월한 센스와 전술 이해도,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는 픽과 스크린을 걸어주는 특이한 능력 때문에 3시즌 연속으로 선발진에 있는 선수다. 이번 오프시즌에 몸도 불렸고, 근력도 많이 강화시켰다한다. 21세의 이안 마힌미는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선수다. 이번 시즌에 벤치에서 토마스와 던컨, 오베르토의 장점들만을 잘 선별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수만 있다면, 내년 시즌부터는 전력감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이번 시즌을 맞이하는 스퍼스 선수들의 면면을 대충 훑어보았다. 그러면 올 시즌 스퍼스는 과연 다른 서부 컨퍼런스 강팀들과의 대결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일 것인가? 어느 팀들에게 스퍼스가 강세를 보이고, 어느 팀들에게 스퍼스가 위협을 당할까?

스퍼스 대 재즈_데론 윌리암스와 칼로스 부저의 조합은 실로 대단하다. 하지만, 스퍼스는 그래도 현재의 재즈보다는 나은 전력을 갖추고 있다. 유타는 무언가 모를 약점들이 보이는데 그 부분들이 몇 년이 지나도록 채워지지 않는 팀이다.

스퍼스 대 블레이저스_경험 면에서 비교가 안 되는 두 팀이다. 그렉 오든과 알드리지가 포진한 프로트 코트는 막강 할 것이 다. 정규시즌에서 블레이저스가 스퍼스에 우위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에서 팀에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사이즈와 젊음이 아니고 경험과 수비다.

스퍼스 대 매버릭스_새로운 감독 릭 칼라일과 함께 팀 칼라 자체가 바뀔 지도 모르는 매버릭스다. 이제 조쉬 하워드, 덕 노비츠키, 제이슨 키드를 중심으로 엄청난 화력을 뿜어댈 팀이다. 하지만 매버릭스는 더 이상 스퍼스에 특화된 팀이 아니다.

스퍼스 대 선즈_마이크 댄토니 감독의 런앤건 농구에 오랫동안 길들여졌던 선수들이 이제 테리 포터라는 새로운 감독과 새 시스템에 적응을 해야 한다. 스퍼스에게 좋은 소식은 스티브 내쉬, 샤킬 오닐, 그랜트 힐이 한 살씩 더 먹었다는 사실. 나쁜 소식은 나날이 발전해가는 아마레 .

스퍼스 대 로케츠_지노빌리에 대한 수비를 잘하는 아테스트가 영입됐다. 스콜라는 스퍼스만 만나면 날아다니는 선수. 이 두 선수가 스퍼스에 큰 골치를 안겨줄 것이 다. 로케츠로서는 과연 얼마나 티맥과 야오 밍이 ‘함께’ 건강을 유지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이들이 모두 건재하더라도 정작 플레이오프에서 스퍼스와 맞닥뜨려지면 포스트 시즌 경험이 풍부한 스퍼스가 약간의 우세를 보일 것이다.

스퍼스 대 호네츠_지난 두 팀 간의 플레이오프 대결에서 스퍼스가 7차전에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스퍼스의 풍부한 경험 때문이었다. 물론 크리스 폴에 대한 해법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고, 지노빌리의 발목 부상 때문에 스퍼스가 1, 2차전에 몹시 부진했던 것도 시리즈가 길어진 간접적인 이유들이 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이제 플레이오프 경험을 쌓은 호네츠가 2회 우승 경험이 있는 노련한 제임스 포지까지 합류시켰다. 지노빌리에 대한 수비가 가능한 선수다. 스퍼스에 큰 위협을 줄 팀이 바로 이 호네츠다.

스퍼스 대 레이커스_일단 뚜껑이 열려봐야 알 수 있는 것이 두 팀 간의 대결이다.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도 지노빌리만 건재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를 시리즈였다. 이제 리그의 MVP 코비는 파우 가솔과 함께 풀 시즌을 소화하게 됐고, 여기에 앤드류 바이넘까지 가세한다. 이 레이커스의 빅 3가 얼마나 조화를 이루며 팀의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호네츠와 마찬가지로 스퍼스에 가장 큰 장벽으로 다가올 강팀이다.

전망 - 스퍼스는 올해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규시즌 초 중 반에는 승수관리는 하되 여러 전법을 시험가동하며 상대팀들의 전력을 파악하는 데에 주로 보낼 것이다. 그리고 팀 전력을 극대화하는 시간은 내년 4월쯤에 맞춰두고 플레이하는 스타일을 고수할 것이다. 작년과 달리 빅 3가 플레이오프가 시작되는 시점에 모두 건재하고, 새로 영입된 젊은 선수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맡아 팀 시스템에 녹아들 수만 있다면, 올해도 스퍼스는 대권에 도전해볼만한 역량이 되는 팀이다. 항상 시스템 농구를 하기에 그 시스템이 읽혀지면 곤경에 빠지기도 하지만, 바로 그 시스템이 여간해서는 무너지지 않는 스퍼스만의 견고한 승리 방정식이라는 것. 이것이 또한 스퍼스의 장점이다.

2002년에 새시즌이 시작될 때, 스퍼스의 우승 가능성을 얘기한 전문가는 없었다. 2006년에도 댈러스 매버릭스의 우승을 예상한 팬들과 전문가들은 많았지만, 스퍼스의 우승을 말한 이들은 소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우승을 해낸 팀이 바로 스퍼스다. 이번에도 스퍼스의 우승 가능성을 예측하는 전문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가넷과 던컨이 파이널에서 맞붙는 모습을 꼭 한 번 보고 싶고, 또 볼 것이라고 믿는 필자의 바람은 터무니없는 공상일까?


휴스턴 로켓츠 (2007-08시즌 성적 55승 27패, 디비전 3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점 -
지난 시즌 휴스턴이 22연승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수비였다. 당초 휴스턴은 제프 밴 건디 감독 대신 릭 아델만 감독을 선임해 ‘수비력은 다소 약화, 공격력은 상승’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수비에서의 강력함이 더욱 두드러졌다. 일사 분란한 조직력과 선수 개개인의 수비력 향상이 가져온 결과였다.
 거기에 더해 휴스턴은 오프시즌 동안 리그 최고의 퍼리미터 디펜더 중 한 명인 론 아테스트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포인트 가드부터 파워 포워드까지 완벽하게 수비할 수 있는 아테스트의 가세는 쉐인 베티에의 뛰어난 팀 디펜스 응용능력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휴스턴 수비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약점 - 매년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1라운드 징크스와 부상 악령을 제외한다면, 두드러진 그들의 약점은 포인트 가드 포지션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레퍼 알스톤은 지난 시즌 한층 더 발전된 수비력과 안정된 경기 운영으로 자신의 역할을 100% 수행했지만, 그 뒤를 받쳐줄 수 있을 만한 안정적인 포인트가드가 71년생인 브랜트 배리 밖에 없다는 점은 다소 위험하다. 맥그레디가 플레이 메이킹을 보조할 수도 있지만, 이는 그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전망 - 아테스트의 영입 하나만으로도 이미 휴스턴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가 됐다. 물론 호흡을 맞추고 팀 케미스트리에 녹아들어가는 데는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주전 멤버의 강력함이나 벤치의 깊이 등 여러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특히, 지난 시즌 후반기에 야오 밍을 잃은 상황에서 보여준 투지와 조직력은 휴스턴의 새 시즌을 기대할만한 분명한 이유가 된다. 한 가지 염려되는 부분은 역시 맥그레디와 야오 밍의 부상 재발 가능성인데, 이미 휴스턴은 두 기둥 중 하나가 쓰러진다 해도 결코 쉽게 지지 않는 팀이 되었지만 서부 컨퍼런스의 플레이오프를 뚫고 파이널까지 진출하기 위해서는 둘 다 부상 없이 시리즈에 임할 수 있어야 한다.


댈러스 매버릭스 (2007-08시즌 성적 51승 31패, 디비전 4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점 -
불과 2시즌 전만 해도 댈러스는 딱히 약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균형을 갖춘 팀이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 중반 트레이드로 인해 서부 컨퍼런스를 제패하고 NBA 파이널까지 진출했던 완벽한 모습에 균열이 생기고 말았다. 더 이상 ‘완벽함’을 그들의 최대 강점으로 내세울 수는 없지만, 06-07시즌 MVP 덕 노비츠키와 올스타 포워드 조쉬 하워드가 이끄는 포워드 라인은 현재의 댈러스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힘임에 틀림없다.
 제이슨 키드 영입의 부정적 효과로 인해 모든 동료들이 혼란에 빠졌을 때도 매 경기 연달아 클러치 플레이를 성공시키며 팀을 이끈 노비츠키는 08-09시즌에도 댈러스 부동의 에이스로서 맹활약이 예상된다. 키드 합류 후 극도의 부진에 빠졌던 하워드의 경우 플레이스타일 상 곧바로 키드의 게임 전개에 녹아들기는 어렵겠지만, 다재다능한 선수인 만큼 릭 칼라일 감독의 조련에 따라 얼마든지 부활할 여지가 남아 있다.

에이버리 존슨 전 감독의 통제에서 벗어나 본연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게 된 베테랑 키드의 존재 역시 든든하다. 지난 시즌엔 시즌 도중 팀에 합류한데다 약속된 전략과 전술 위주의 팀에서 뛰느라 제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했지만, 트레이닝 캠프부터 착실히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며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는 키드이기에 ‘키드효과’도 기대해봄직 하다.

약점 - 지난 수년간 댈러스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였던 로스터의 ‘깊이’가 어느새 댈러스의 발목을 잡는 약점이 되고 말았다. 제리 스택하우스의 기량이 눈에 띄게 저하되고 있는데다 데븐 조지 역시 기대 이하의 활약에 그쳐 브랜든 배스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거저  얻다 시피 한 제럴드 그린이 있긴 하지만 효용 가치는 미지수다.

전망 - 다소 취약한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댈러스의 전력은 최 상위권에 해당한다. 그러나 정상 문턱까지 도달했다가 끝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기세가 꺾여버린 팀들이 이전의 전력을 회복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팀을 리그 1위로 이끌었던 사령탑의 교체, 시스템의 전면 수정을 고민하게 만든 대형 선수의 영입 등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이 산적한 가운데 릭 칼라일 감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멤피스 그리즐리스 (2007-08시즌 성적 22승 60패, 디비전 5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점 -
대부분의 리빌딩팀이 그러하듯이 멤피스 역시 젊음과 패기, 가능성이 가장 큰 강점이자 약점이다. 가솔 이적 후 팀의 새로운 에이스가 된 루디 게이를 비롯하여 마이크 콘리 주니어, 하킴 워릭, 자바리스 크리텐튼 등 선수들 대부분이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는 유망주들이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뿐만 아니라 2008 드래프트 최대어 중 하나인 O.J 메이요를 트레이드로 데려온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약점 - 성공적인 리빌딩을 위해서는 팀의 중심 역할을 할 핵심 선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멤피스에는 비슷한 또래의 유망주만 넘쳐날 뿐,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 지주가 전무한 상황이다. 베테랑 앤투완 워커가 있지만 리더십과는 거리가 먼 선수이기 때문에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압도적인 기량을 지닌 개인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확실한 축, 진정한 리더의 부재는 장기적인 침체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경기력 측면에서는 약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문제점은 프런트 코트 수비력이다. 다르코 밀리시치와 워릭이 주전을 맡게 될 프런트 코트는 전 구단을 통틀어 가장 취약한 인사이드 주전 라인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공격적인 측면에서는 둘의 조합도 나쁘지 않지만 서부 컨퍼런스 인사이더들의 높이와 기량을 감안했을 때 상당한 고전이 예상된다.
 
전망 - 이제 막 리빌딩에 돌입한 멤피스에겐 당장의 승리보다 미래가 더욱 중요하다. 이번 시즌은 유망주들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옥석을 가리기 위한 기초 자료를 수집하는 데 주안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시즌 후반엔 로터리픽 순위 경쟁을 위해 벤치 멤버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할 가능성도 높다.

< 저작권자 ⓒ 뛰어(www.ddueh.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