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블랜드의 2008년이 끝나가고 있다.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순항하고 있는 클리블랜드는 28일(이하 현지시각)과 30일 마이애미 히트와의 2연전을 마지막으로 2008년 일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클리블랜드는 두 번의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2005년 이후 이어져오던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고 2010년 이후를 위한 포석을 밟아나가기 시작했다. 2008년은 '팀 르브론' 클리블랜드가 진정한 리그 엘리트 팀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된 셈이다.
클리블랜드의 다사다난했던 2008년을 수놓은 사건 10가지를 살펴본다.
10. 2007-2008 플레이오프 2라운드 탈락
우승팀 보스턴을 상대로 7차전 승부를 펼치며 동부 디펜딩 챔피언의 저력을 보여줬지만 끝내 원맨팀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1차전 원정경기에서 클리블랜드는 에이스 르브론이 12득점 10턴오버로 철저히 틀어막히면서 패배를 맛보아야 했고 2차전 역시 대패해 조기 탈락하는듯 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홈에서 펼쳐진 3,4차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5,6차전을 나눠가져 승부를 최종전까지 끌고갔다.
보스턴에서 펼쳐진 운명의 7차전, 르브론은 45점을 올리며 분전했지만 상대팀 에이스인 피어스가 41점으로 함께 폭발하며 힘든 경기를 펼쳤고, 결국 막판 집중력 부족으로 2년 연속 파이널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시즌중 대형 트레이드로 팀워크를 완전히 다지지 못한 클리블랜드에게 '올해의 수비수' 케빈 가넷이 이끄는 보스턴의 수비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9. 바레장, 파블로비치의 난조-잘못 끼운 첫 단추
2007-2008 시즌이 개막했을 때 클리블랜드의 로스터에는 팀이 2007년 파이널에 진출하는 데 크게 공헌했던 두 선수의 이름이 없었다. 두 명 모두 팀과의 재계약 실패로 경기에 나서지 못한 것이다. 핵심 롤 플레이어인 두 사람의 공백은 클리블랜드의 시즌 운영에 굉장한 부담을 주었다.
앤더슨 바레장의 에이전트는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하기로 악명 높은 댄 페건이다. 페건은 겨우 20분 남짓 출전하는 바레장에게 연간 1,000만 달러를 지급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이것은 팀으로써는 받아들이기 힘든 금액이었다. 결국 12월 중순에야 복귀한 바레장은 프리 시즌을 소화하지 않은 몸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부상, 2월의 거의 모든 경기를 결장해야 했다. 바레장의 공백은 32살의 노장 센터 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의 체력 부담을 연결되었고, 결국 일가우스카스마저 부상을 겪에 되었다. 바레장이 초래한 클리블랜드 인사이드진의 이러한 부담은 프런트가 월러스와 스미스를 영입하는 블록버스터 트레이드를 단행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파블로비치는 바레장에 비해 빨리 계약을 마무리지어 시즌 초반부터 출장했지만, 연봉 협상 기간 동안 전혀 농구를 접하지 않은 몸은 NBA의 힘든 일정을 견뎌내지 못했다. 결국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1월 말부터 경기에 나서지 못한 파블로비치는 3월 중순에야 복귀할 수 있었고, 이것은 휴즈를 떠나보낸 클리블랜드 백코트진의 부담으로 이어졌다. 파블로비치는 이번 시즌에도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클리블랜드와 2010년까지 계약되어있다. 하지만 바레장은 이번 시즌이 끝나면 FA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고 파블로비치는 코칭스태프의 눈 밖으로 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앞으로도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게 될지는 미지수다.
8. 르브론, 마침내 생애 첫 득점왕 등극
2007-2008 시즌은 르브론이 또 한 단계 발전한 시즌으로 기록될 것이다. 경기당 30점을 기록하며 데뷔 5년만에 처음으로 득점왕에 오른 르브론은 야투율, 리바운드, 어시스트, 블록슛에서 모두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개인 기록 면에서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이것은 클리블랜드가 그만큼 원맨팀이라는 사실 역시 반증했다. 르브론 외에 확실한 득점원이 없었던 클리블랜드는 시종일관 답답한 경기를 펼쳐야 했고, 리그 득점왕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득점력 빈곤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주축 선수들의 잦은 부상과 블록버스터 트레이드로 인한 어수선한 팀 상황은 모두 리더 르브론의 부담으로 연결됐고, 르브론은 시즌이 진행될 수록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번 시즌 완벽하게 정비된 팀에서 확실한 조력자들과 함께 뛰고 있는 르브론은 지난 시즌에 비해 개인 기록이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르브론은 개인 기록에는 연연하지 않는 눈치다. 르브론에게는 4쿼터에 10점씩을 올리면서 힘든 경기를 해야 했던 지난 시즌보다 벤치에서 춤을 추며 동료들을 응원할 수 있는 이번 시즌이 더 행복할 것이다.
7. 기록의 시대-일가우스카스와 르브론의 프랜차이즈 기록 수립
2008년 12월 9일은 클리블랜드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같은 날 두 개의 프랜차이즈 통산 신기록이 수립됐기 때문이다. 12월 9일 토론토와의 홈경기에서 르브론은 경기 시작 1분여만에 두 개의 스틸을 기록, 마크 프라이스가 가지고 있던 734개의 통산 스틸 기록을 넘어섰다. 그로부터 20여분 뒤, 이번에는 팀의 터줏대감 일가우스카스가 그날 4개째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브래드 도허티가 가지고 있던 5,227개의 통산 리바운드 기록을 2위로 밀어냈다.
르브론과 일가우스카스는 클리블랜드의 통산 기록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름들이다. 르브론은 2월 27일 보스턴 원정경기에서 도허티의 통산 득점 기록(10,389점)을 넘어섰고, 9672점을 기록하고 있는 일가우스카스도 이번 시즌 내로 팀 통산 4번째로 1만점을 돌파할 전망이다.
6. 르브론 올림픽 금메달 획득-더이상 르브론'즈'가 아니다!
르브론이 국제대회 도전 세 번째만에 마침내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르브론은 베이징 올림픽의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미국에 8년만의 금메달을 안겼다.
르브론은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던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동메달에 그쳤다. 2년 뒤 미국 대표팀의 공동 주장을 맡아 세계선수권에 출전했지만 이번에도 준결승에서 그리스에 패하며 동메달에 그쳐야 했다.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써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르브론에게 이번 올림픽은 반드시 우승할 필요가 있는 대회였다. 시즌 MVP 코비 브라이언트와 국제대회 무패 제이슨 키드등 최고의 라인업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대표팀은 매경기 상대를 압도하며 결승에 진출, 스페인을 명승부 끝에 제압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팀 리더 중 한 명이었던 르브론은 대회 평균 18.2득점과 3.6리바운드 4.7어시스트를 기록했고, 팀내 최고인 76%의 야투 성공율과 62.2%의 3점 성공율을 기록했다.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하며 리더로써 한 단계 발전했다고 말하는 르브론은 대표팀에서 얻은 자산을 이번 시즌 소속팀에서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5. 딜론테 웨스트, 우울증으로 팀 이탈-전화위복
10월 중순 웨스트가 팀을 갑자기 이탈했을 때 팬들은 우려 섞인 시선으로 그를 기다렸다. 팀에서는 웨스트의 이탈 이유를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온갖 소문들이 돌아다녔다.
사실 웨스트는 우울증을 앓아오고 있었다. NBA 선수가 된 다음에도 우울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팀 자체 청백전을 뛰고 있었던 웨스트는 갑자기 심판과 크게 싸우기 시작했고, 우울증이 심각해졌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치료를 위해 팀을 떠났다.
웨스트가 우울증과 싸운 2주 동안 클리블랜드의 팀 동료들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 그를 염려해줬다. 또한 웨스트 스스로 밝힐 때까지는 웨스트의 증상을 언론으로부터 철저히 감싸줬다. 마침내 우울증을 극복하고 시즌 개막 직전 복귀한 웨스트는 클리블랜드의 주전 슈팅가드로써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또한 웨스트를 배려하는 과정에서 팀 전체가 똘똘 뭉치게 됐다. 지난 시즌에 비해 로스터 대부분이 교체되어 서로가 생소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웨스트의 이탈은 팀 캐미스트리를 다지는 좋은 계기가 됐다.
현재 클리블랜드의 팀 분위기는 최고다. 르브론이 '내가 입단한 이래 이렇게 분위기가 좋았던 적은 없었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 시즌에는 래리 휴즈등 몇몇 선수가 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선수들이 경기 끝나고 어디를 함께 갈지가 화제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개인적으로도 친해진 상태다. 클리블랜드의 이번 시즌 전망을 밝게 하는 이유다.
4. 블록버스터 트레이드 단행-2010 프로젝트의 초석
좀처럼 대형 트레이드를 하지 않는 대니 페리 단장이 모처럼 '한 건'을 터뜨렸다. 클리블랜드는 2월 22일 시카고 및 시애틀과의 3각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클리블랜드는 래리 휴즈와 드류 구든, 섀넌 브라운, 세드릭 시몬스를 시카고 불스로 보내고 벤 월러스, 조 스미스,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을 받았으며 도넬 마샬, 이라 뉴블을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보내고 딜론테 웨스트와 월리 저비악을 받았다.
클리블랜드의 이 트레이드는 2005-2006시즌부터 진행해온 '래리 휴즈 2인자 프로젝트'의 포기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클리블랜드에서 팀 시스템 적응 실패와 부상으로 제 몫을 하지 못하던 휴즈를 보내면서 휴즈와 함께 계약한 마샬 등을 처분한 것이다. 대신 수비왕 4회에 빛나는 월러스를 비롯해서 클리블랜드 시스템에 잘 맞는 선수들을 모아왔다. 이 트레이드로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 중 조 스미스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현재 클리블랜드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한편 이같은 블록버스터 트레이드와 잦은 부상 등의 여파로 클리블랜드는 2007-2008시즌에만 리그에서 가장 많은 23명의 선수가 로스터에 이름을 올려, 조직력을 다지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3. '모 윌' 영입-마침내 르브론의 조력자를 얻다?
클리블랜드의 팀 개편 노력은 오프시즌에도 이어졌다.
베이징 올림픽이 한창이던 8월 13일, 클리블랜드는 공격형 포인트가드인 모리스 윌리암스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클리블랜드는 조 스미스를 오클라호마 시티에, 데이먼 존스를 밀워키에 보내고 밀워키는 윌리암스를 클리블랜드에, 데스먼드 메이슨을 오클라호마 시티에 보냈으며, 오클라호마 시티는 루크 리드노어와 애드리언 그리핀을 밀워키에 보내는 삼각 트레이드였다.
트레이드의 핵심은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게 된 모리스 윌리암스였다. 유타와 밀워키에서 선수생활을 한 6년차 포인트가드 윌리암스는 뛰어난 볼핸들링과 공격력으로 그간 원맨팀의부담을 혼자 짊어져왔던 르브론의 조력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베이징에서 트레이드 소식을 들은 르브론 역시 '윌리암스는 매우 뛰어난 포인트가드'라며 트레이드에 'A'를 주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시즌이 1/3 정도 진행된 시점에서 윌리암스는 이러한 팀의 기대를 100% 만족시켜주고 있다. 윌리암스는 르브론과 함께 뛸 때는 르브론의 리딩 부담을 덜어주고, 르브론이 벤치에서 휴식을 취할 때는 스스로 공격 찬스를 만들어내며 르브론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워주고 있다. 윌리암스의 가세로 클리블랜드는 르브론 외에 또다른 '컨트롤 타워'를 얻게 되어 르브론만 막으면 이길 수 있는 팀이라는 소리를 더이상 듣지 않게 되었다.
2. '2010 프로젝트' 파동-리그의 이목을 모은 르브론의 거취
11월 내내 리그를 후끈 달군 이슈는 레이커스의 엄청난 상승세도 보스턴의 여전한 강세도 아니었다. 심지어 이번 시즌에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20개월이나 남은 2010년 이적시장에 대한 기사가 홍수처럼 쏟아졌고, 그 모든 논란 한가운데 르브론이 있었다.
리그의 몇몇 팀들은 벌써부터 2010년을 대비해서 샐러리캡을 비우고 있고, 공공연히 르브론을 노리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르브론 자신이 2010년 이후 자신의 거취에 대해 확답을 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각 팀의 '2010 프로젝트'는 점점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그 와중에 TNT 해설위원인 찰스 바클리가 '르브론은 입을 닥쳐야 한다. 2010년 거취에 대해 자꾸 떠드는 것은 팀 동료와 팬들을 생각치 않는 처사'라며 르브론을 비난했고, 르브론이 '난 두 아이의 아버지다. 바클리에게 그런 소릴 들을 이유가 없다. 바클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다. 끝!'이라며 받아치는 사건까지 있었다.
르브론에게도 2010년의 거취를 질문받는 것은 고역임에 틀림없다. 프로 선수가 지금 당장도 아닌 2년 후의 계약 문제에 대해 못박아 대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르브론은 어린 나이답지 않은 노련한 언론 플레이로 오히려 언론을 가지고 놀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기회로 삼고 있다.
이미 여러 팀이 '2010 프로젝트'를 선언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르브론의 행보에 대한 추측은 계속될 것이다. 르브론 스스로가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만큼, NBA 팬은 '2010 프로젝트'를 향한 각 팀 단장들의 머리싸움을 2년간 즐길 수 있을 전망이다.
1. 팀 역사상 최고의 시즌?
클리블랜드는 12월 28일 현재 25승 4패로 보스턴에 1경기 뒤진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다. 25승 4패의 성적은 당연히 팀 역사상 최고의 초반 성적이고, 득실 마진(+12.72), 최소실점(89.24) 등에서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또한 홈경기 15승 무패로 리그 유일의 홈경기 무패팀으로 남아있다. 시즌 개막 전 50승도 안되는 성적으로 동부 4위권에도 오르지 못할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예측을 무색케 하는 선전이다.
클리블랜드가 리그 엘리트 팀으로 발돋움한 것은 지난 시즌 대폭 물갈이된 선수들이 프리시즌 캠프를 함께하면서 팀워크를 다졌고, 모리스 윌리암스의 합류로 공격이 훨씬 부드러워졌으며, 마이크 브라운 감독이 수비에서뿐 아니라 공격에서도 뛰어난 지도력을 보이며 한단계 성장했기 때문이다. 팀 스타일이 탄탄한 수비력과 결실한 팀 플레이에 의존하기 때문에 남은 시즌도 기복없는 경기력을 유지할 전망이다.
클리블랜드는 르브론 입단 후 꾸준히 발전해왔지만 지금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르브론 본인도 예상 밖이라고 말할 정도로 큰 발전을 이뤘다. 시즌 MVP 후보 0순위로 꼽히고 있는 르브론이 이끄는 클리블랜드가 이번 시즌 어디까지 발전할지, 과연 르브론의 선언대로 파이널 우승을 달성할 수 있을지, 모든 것이 결정될 2009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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