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COLUMNS/헤드코치 2009. 10. 1. 17:24

댈러스 빅3 해체 그 이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여러분은 댈러스 매버릭스의 빅3라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아마 대부분 덕 노비츠키-제이슨 테리-조쉬 하워드나 노비츠키-하워드-제이슨 키드를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댈러스의 빅3의 간판은 노비츠키-마이클 핀리-스티브 내쉬의 차지였다. 엄청난 화력으로 NBA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던 ‘원조 빅3’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해보았다.
 

City of Champs
City of Champs by Janz Images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미약했던 시작

댈러스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선수는 핀리였다. 1996-1997시즌 도중에 피닉스 선즈에서 이적해온 핀리는 미래가 밝은 선수였다. 댈러스가 3J 시대의 종말을 고하면서 그 후를 이끌어갈 선수로 선택한 인물이 바로 핀리였다. 댈러스의 기대대로 핀리는 무럭무럭 성장해나갔다. 하지만 핀리 혼자만의 힘으로 팀을 쇄신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어느새 핀리는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지만 팀 성적은 늘 하위권을 맴돌았다.

댈러스는 변화를 모색했다. 팀이 좀 더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해선 핀리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조력자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데려온 인물들이 캐나다 출신의 내쉬와 독일에서 건너온 노비츠키였다. 1998-1999시즌 내쉬와 노비츠키 그리고 핀리는 처음 손발을 맞추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빅3의 윤곽은 그리 뚜렷하지 않았다. 팀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건 1999-2000시즌부터였다.  

특히 노비츠키의 성장세가 놀라웠다. 노비츠키는 루키 시즌과 비교해 일취월장해진 기량을 과시하며 유럽 농구의 위상을 만방에 알렸다. 팀 성적 또한 노비츠키의 활약에 힘입어 1989-1990시즌 이후로 가장 좋은 승률을 기록하며 내년 시즌 전망을 밝게 했다. 희망을 가득안고 맞은 2000-2001시즌, 댈러스는 예전의 바닥을 전전하던 그 팀이 아니었다.

인상적인 소포모어 시즌을 보냈던 노비츠키는 더욱 강력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핀리 역시 건재했다. 특히 눈여겨 볼만 했던 것은 내쉬의 발전이었다. 댈러스로 트레이드 된 후 첫 두 시즌까지 변변치 못한 성적을 올렸던 내쉬는 2000-01시즌을 기점으로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수준급 포인트가드로 올라섰다.

댈러스 빅3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올렸다.


리그 최고의 공격력 그리고 한계

핀리-노비츠키-내쉬의 조합은 가히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했다. 댈러스와 상대하는 팀들은 항상 100점 이상의 실점을 각오해야 했다. 이들을 막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 선수가 펼치는 다양한 기술과 공격은 많은 팀을 공포에 떨게 했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빅3의 위상은 커져갔고 댈러스는 서부지구를 대표하는 팀으로 급부상했다. 2000-2001시즌 전까지 무려 10년간 플레이오프는 꿈도 못 꿨던 팀이 단숨에 우승을 노리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물론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 데는 무엇보다 빅3의 공헌이 컸다. 어디에도 그들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빅3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공격 무기로서 상대 팀을 무차별하게 폭격했다. 과거 3J 시절과 비교해 봐도 전혀 꿀릴 것이 없었다. 빅3는 댈러스의 희망이자 얼굴이자 미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댈러스와 빅3는 2%가 부족했다. 공격 지향적인 팀이 그렇듯 우승 문턱에서 항상 고배를 마셨다. 사실 댈러스는 공수 밸런스가 좋은 팀이 아니었다. 뛰어난 공격력에 비해 약한 수비력은 중요한 순간에 댈러스의 발목을 잡았다. 단기전 승부에선 날카로운 창뿐만 아니라 단단한 방패도 필요했다. 공격에 올-인한 댈러스의 스타일은 매번 실패를 맛보게 했다.

우승권에 점점 멀어지자 댈러스는 빅3 해체라는 단호한 결정을 내린다. 제일 먼저 팀을 나간 선수는 내쉬였다. 내쉬는 2003-2004시즌이 종료된 후 피닉스로 팀을 옮긴다. 다음 차례는 핀리였다. 핀리는 내쉬가 팀을 나간 지 딱 한 시즌 만에 같은 州에 있는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이적한다. 2005-2006시즌이 시작할 때 쯤 남은 선수는 노비츠키가 유일했다. 댈러스는 팀의 사령탑 역시 돈 넬슨에서 에이버리 존슨으로 교체하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했다.

BASKETBALL/VORRUNDE: WM 2002, GER - USA 87:104


세 남자의 엇갈린 운명

재밌는 건 그 다음부터다. 서로 다른 팀에서 각자의 길을 걸어간 세 선수의 운명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간다. 우선 가장 충격을 안겨준 선수는 내쉬였다. 내쉬는 피닉스로 이적하자마자 팀에 전 시즌 대비 32승을 더 안겨주며 생애 첫 MVP 수상은 물론이고 리그의 트렌드까지 주도하는 영향력을 과시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쉬는 아마레 스타더마이어가 시즌 아웃 된 다음 시즌에도 팀을 54승으로 이끌며 리그 최고의 포인트가드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특이하게도 내쉬는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댈러스를 벗어나면서부터 더욱 일취월장한 기량을 뽐내며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특히 30대에 접어든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따름이었다.

노비츠키도 오히려 내쉬와 핀리가 팀을 옮기고 나서야 눈에 띌 만 한 활약을 보여줬다. 노비츠키는 내쉬와 핀리없이 맞이한 첫 시즌에 생애 첫 파이널 무대를 밟으며 괄목할 만 한 성과를 보여줬다. 마이애미 히트와의 대결에서 시리즈를 2-0까지 몰고 가며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리는 듯 했으나 뒷심 부족으로 스윕패를 당해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하지만 다음 시즌 노비츠키는 더 강력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난 시즌 준우승의 아픔을 되풀이하지는 않겠다는 듯 팀을 리그 전체 1위로 이끌며 굳은 각오를 보여줬다. 하지만 노비츠키의 꿈은 단 플레이오프 1라운드 만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옛 은사인 넬슨이 이끄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철저히 공략당하며 허무하게 시리즈를 내주고 만 것이다. 그 이후로 노비츠키는 여전히 변함없는 기량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우승의 적기를 놓친 팀들이 그렇듯 다시 패권에 도전하기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핀리 역시 샌안토니오로 둥지를 옮기고 나서 드라마틱한(?) 발자취를 보여주었다. 샌안토니오로 오고 나서는 출장시간도 줄고 역할도 축소되었지만 정작 우승은 제일 먼저 맛봤다. 2007년, 다행히 샌안토니오의 마지막 홀수 해 우승 징크스의 수혜자(?)가 되며 데뷔한 지 12시즌 만에 첫 우승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핀리 또한 빅3가 해체되고 나서 오히려 더 잘 풀리는(?) 결과를 맞았다. 물론 개인 성적은 떨어졌지만 어찌 그것을 우승에 비할 수 있을까.

이처럼 세 선수는 댈러스 빅3가 해체될 당시에 많은 팬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조금은 특별한 인상을 남기며 새로이 기억되고 있다. 내리막길을 걸을 것만 같았던 내쉬는 갑자기 약진했고, 노비츠키는 극단의 부침을 보였으며, 핀리는 롤-플레이어로 완연히 자리를 잡으면서 우승을 낚았다. 또한 내쉬와 노비츠키는 MVP를 세 번이나 나눠갔기도 했다. 여기서 누가 더 나은 경력을 쌓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건 여전히 세 선수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고 각자가 택한 노선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다. 이는 지금의 그들이 있기까지 빅3로 뭉쳤던 그 시절의 조각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주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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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AC'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가 또 쓰러졌다. 시즌이 개막한 지 겨우 15경기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번엔 무릎이다.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스포츠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무릎이 얼마나 중요한 부위인지를 잘 알고 있을 터. 역시 요 몇 년 간 그랬던 것처럼 ’당분간‘ 맥그레이디를 볼 수 없게 되었다. 휴스턴 로케츠 팬들은 시즌 전 하나 같이 동일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제발 부상만은...” 하지만 맥그레이디는 올 시즌에도 여지없이 팬들의 우려를 현실로 나타나게 했다. 팬들은 또 한 번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게 잘못되어가고만 있다

휴스턴의 올 시즌은 그 어느 해보다 희망적이었다. 다재다능하고 수비에서 전투적인 론 아테스트가 가세했기 때문이다. 어느 팀이든 아테스트, 맥그레이디, 야오 밍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것은 곤욕스러운 일이다. 단순히 빅3로 그 위력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왜냐면 이 팀에는 아테스트, 맥그레이디, 야오 밍을 비롯해서 셰인 베티에, 루이스 스콜라 등 훌륭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아테스트 없이도 서부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는 팀으로 살아남았다.

단지 아테스트라는 퍼즐이 추가된 것뿐이지만 그 퍼즐은 너무나 매력적인 것이었다. 휴스턴은 시즌에 대한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티맥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테스트의 휴스턴 입성을 가장 반긴 사람이 바로 티맥이었다. “준비는 완벽하다” 자신감에 가득찬 티맥의 말이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과연 오프 시즌에 완벽한 몸상태를 만들었는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인저리 프론. 언젠가부터 티맥은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 티맥의 전성기는 올랜도 매직에서 꽃을 피웠다.

빈스 카터의 그늘을 벗고자 새로운 도전에 나섰던 맥그레이디는 물 만난 고기나 다름없었다. 리그 최고의 선수를 논할 때 티맥은 빠져서는 안 될 선수로 분류되었다. 조연이었던 티맥은 어느덧 어엿한 주인공이 되었다. 2000년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 카터를 빛내주었던 ‘들러리’ 티맥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았다. ‘고졸 유망주’ 로서의 티맥은 거기까지였다. 한 팀의 에이스로서 티맥이 가져야 할 목표 의식은 좀 다른 것이었다. 우승. 그것은 티맥에게 있어 보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티맥은 이상한 징크스에 허덕이게 된다. 1라운드. 그것은 티맥이 결코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았다. 매시즌 플레이오프만 되면 힘없이 발길을 돌리는 티맥을 지켜봐야만 했다. 팬들은 매번 반복되는 장면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지만 티맥이 꼭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티맥 스스로에게도 반드시 뚫어야만 하는 일종의 관문이었다. 하지만 팬들이 바라던 ‘이상’ 은 펼쳐지지 않았다. 이를 갈을 것만 같았던 티맥은 점점 나약해져 갔다. 지쳐있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열정의 소진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건 마치 올랜도와의 작별을 미리 준비하는 것만 같았다.

올랜도는 계속해서 졌다. 지고 또 졌다. 기대했던 티맥의 마법은 그 기운조차 느끼기 힘들었다. 티맥을 떠받들던 사람들은 그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티맥은 당당히 맞서지 못했다. 반성하기 보다는 외려 올랜도의 한계를 탓했다. 화려하게 떠올랐던 티맥은 온데간데 없고 꼴찌팀의 비겁한 에이스만 남아있었다. 그렇게 티맥은 올랜도를 떠났다.


풀지 못한 숙제를 남겨두고 떠난 티맥

티맥이 올랜도를 떠나 당도한 곳은 휴스턴이었다. 그곳엔 야오 밍이 있었다. 휴스턴이 스티브 프랜시스를 포기하고 택한 인물은 다름 아닌 티맥이었다. 세 번의 우승을 차지했던 코비 브라이언트 - 샤킬 오닐 콤비의 전례대로라면 이보다 더 좋은 조합은 없었다. 티맥 역시 굳은 의지를 나타내며 우승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휴스턴이 티맥을 영입해 거둔 최고의 성적은 티맥의 징크스와도 같은 플레이오프 1라운드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던 휴스턴의 계획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록이다.

프랜시스도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킬 수 있는 능력은 있었다. 티맥이 로케츠 맨이 된 이후로 팀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휴스턴에서의 전성기라고 해봐야 숀 브래들리 위로 덩크를 내리꽂았던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플레이오프(역시 결과는 1라운드 탈락이었다)와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대결에서 보여주었던 미칠 듯한 클러치 3점슛 폭발이 전부다. 오히려 팀은 성적보다도 티맥의 건강에 더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티맥을 위한 휴스턴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즌 내내 티맥은 쓰러졌지만 팀은 그 때마다 기회를 주고 시간을 감내했다. 하지만 티맥은 이러한 팀의 노력을 매번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고 올 시즌도 변함이 없었다. 팀의 희망이 될 것만 같았던 티맥은 어느새 팀의 골칫거리로 자리 잡았다. 얼마 전에는 팀 내 입지도 불분명한 프랜시스에게 훈계까지 들어야 했다. 그만큼 현재 티맥의 위치는 무척 위태롭다. 부상이 원수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매번 닥쳐오는 시련에 티맥도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매번 눈 감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티맥이 벌여놓은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팀은 충분히 할 만큼 했다. 티맥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남은 것이라면 티맥의 보답인데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뉴저지 네츠의 카터를 한 번 보라. 그도 티맥과 비슷한 상황에 놓일 때가 있었다. 토론토 랩터스에서의 말년은 티맥의 그것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태업을 하며 대놓고 팀을 향해 시위를 벌였다. 카터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뉴저지로 옮겼다. 과연 토론토에서의 아쉬웠던 마무리는 뉴저지에서 만회되었을까?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카터의 위상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줄곧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올스타 투표에서는 떨어진 인기를 실감해야 했고 자신을 든든하게 받쳐주던 제이슨 키드와 리차드 제퍼슨은 팀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카터는 이런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 오히려 젋은 선수들과 뛰는 것이 즐겁다며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카터의 긍정적인 마인드는 팀 성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12월 5일(한국시간) 현재 뉴저지는 9승 8패의 좋은 성적으로 동부 6위에 올라 있다.

카터의 리더쉽은 티맥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티맥은 현실을 보다 진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티맥에겐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고 이번에야 말로 신중한 판단을 해야만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티맥이 회피했던 풀지 못한 숙제, ‘올랜도의 한계’ 는 영원히 티맥의 허물로 남게 될 것이다. 제발 자업자득이 되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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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시대를 찬란하게 보낸 이후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레이커스가 새 왕조 건설의 기반을 다지는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절대 이익이라고 해도 다름없는 파우 가솔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며 파죽지세로 달리고 있는 레이커스가 과연 그들의 바람대로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LA 레이커스 베스트 5
C_ 파우 가솔
PF_ 라마 오돔
SF_ 블라디미르 라드마노비치
SG_ 코비 브라이언트
PG_ 데릭 피셔
식스맨_ 조덤 파머, 로니 튜리아프, 샤샤 부야치치, 루크 월튼
키 식스맨_ 특별한 선정이 무의미
* 앤드류 바이넘, 트레버 아리자, 크리스 밈 등 부상 중인 선수들은 제외.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가솔은 레이커스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플레이오프 컨텐더 팀을 우승 후보 팀으로 격상시켰으니 전혀 과장된 말도 아니다. 기존의 코비, 오돔, 그리고 부상 중인 바이넘에 가솔의 가세는 천군만마나 다름없었다. 레이커스는 찾고 있던 퍼즐을 이제야 찾은 듯, 무섭게 돌진하고 있다. 골밑에서 범상치 않은 존재감을 보여줬던 바이넘의 공백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레이커스의 조직력은 가솔에 의해 한층 두꺼워졌다. 샤킬 오닐 이후 최고의 빅맨을 파트너로 맞은 코비 역시 강력한 MVP 후보로까지 거론되며 최근 몇 년간 가장 이상적인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가솔이 가져다 준 파급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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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솔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정말 감탄할 정도로 레이커스와 환상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가솔은 팀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시너지 효과가 비단 코비와의 내, 외곽 조화에 그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레이커스는 가솔이 합류한 이후로 전혀 다른 차원의 농구를 구사하고 있다.

서서히 팀이 궤도에 오르는 과정에 가솔을 데려옴으로서 팀이 더욱 짜임새를 갖추게 된 것이다. 페인트 존 밖에서도 얼마든지 플레이가 가능한 가솔은 로테이션에 유연성을 더해줬고, 팀에 다양성을 불어 넣어줬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팀 오펜스에 대한 개념을 체득했기 때문에 가솔이 무리하게 공격을 풀어갈 필요가 없었다.

기존에 있던 선수들이 해를 거듭하면서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가고 있는 시점에 가솔이 가세하게 된 점도 호재였다. 그동안의 연습과 경험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오히려 "레이커스 선수들이 가솔에 너무 훌륭히 잘 적응하고 있다" 라는 표현이 알맞을 만큼 주전, 벤치 멤버 할 것 없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이미 바이넘의 괄목할 만 한 성장을 통해 경기에서 어떻게 빅맨을 이용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던 선수들에게 바이넘보다 활동 반경이 넓고, 패싱력이 더 좋고, 픽 앤 팝까지 가능한 가솔은 학습 효과를 키우는 데 더없이 좋은 교사였다.


훨씬 자유로워진 오돔과 월튼

가솔의 영입으로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선수는 오돔과 월튼이다. 코비-가솔 콤비가 형성되면서 상대적으로 입지가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오돔은 이 전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 관계자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 월튼 역시 식스맨 보직이 확실해지면서 출장시간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존재감은 변함이 없다.

월튼이 벤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비교적 큰 편이다. 가솔의 존재와는 별개로 이미 정평이 난 코트 비전은 프리 오펜스든 팀 오펜스든 간에 유효하기 때문이다. 패스의 영역이 따로 제한이 없는 월튼의 능력이 마무리가 출중한 가솔을 만나면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직접 공격을 시도하지 않더라도 득점으로 연결해줄 수 있는 매개 역할을 해줄 수 있기에 레이커스의 경기 운영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월튼의 뛰어난 플레이 메이킹 감각이 여타 선수들로 하여금 본연의 포지션에서 보다 다양한 플레이를 구현할 수 있게 한 점도 잊어선 안 된다.


피셔-파머-부야치치로 이어지는 신구 조화

언젠가 토론토 랩터스의 샘 미첼 감독은 TJ 포드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정상급 활약을 펼쳐준 호세 칼데론을 두고 "우리는 리그 최고의 포인트가드 조합을 자랑하는 팀이다" 라고 자랑삼아 말한 적이 있다. 비록 네임벨류는 그에 미치지 못하지만 레이커스의 포인트가드진도 조합 면에선 뒤떨어질 것이 없다.

레이커스 형편에 빠삭한 피셔를 비롯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파머, 부야치치 라인은 어느 팀과 견주어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 딸의 치료 목적으로 어쩔 수 없이 레이커스로 오게 된 피셔는 녹슬지 않은 노련미를 과시하며 제 몫 이상을 해주고 있고, 파머와 부야치치도 나날이 향상된 기량으로 팀에 공헌하고 있다.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선수는 없지만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안정감을 높

여주고 있다. 이렇다 할 주도권 다툼 없이 팀플레이에만 집중하는 자세는 본인들 뿐 아니라 동료에게까지 더 많은 플레이를 생산시키게 했다. 공 소유 시간을 최소화하면서 기회를 만드는 플레이를 기초로 둔 점은 어느 선수와 코트에 있어도 쉽게 융화되게 하였다. 또한 세 선수 모두 리딩과 외곽슛에 고루 능해 투 가드 운용에도 별다른 어려움을 주지 않았다.


새로운 발견, 튜리아프


팀의 기대대로 잠재력을 폭발한 바이넘의 활약은 레이커스가 가야 할 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해주었다. 바이넘은 서로 손발이 잘 맞아가기까지 밑거름을 제공해준 인물이었다. 하지만, 레이커스의 변화는 가솔 영입 전, 후로 나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가솔이 팀에 준 임팩트는 급진적이었고, 지배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것에 대한 방증으로 선수들은 매 공격마다 패스의 향연을 보여주면서 놀라운 조직력을 과시했다. 때에 따라서 코비가 1 대 1 공격으로 직접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모든 플레이가 팀플레이의 경계를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특별히 키 식스맨을 선정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연관성에 무게를 두는 플레이를 우선시하여 모두가 키 식스맨에 근접할 정도로 빼어난 활약을 펼쳐주었기 때문이다.

그 중 간과해서는 안 될 선수가 바로 튜리아프다. 허슬, 리바운드, 수비에 국한되었던 생동감이 다른 능력에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동료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중거리 슛이 많이 다듬어지면서 튜리아프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레이커스가 전개하는 공격의 한 일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로버트 호리가 지나치게 각인된 승부사 이미지 때문에 수비나 패싱력 등의 다른 능력이 가려지는 것처럼 튜리아프도 데뷔 때부터 줄곧 이어져 온 '에너자이저' 이미지로 인해 다양한 재능이 묵인되고 있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낼 레이커스의 베스트 5

부상의 정도가 생각보다 심해 정규 시즌이 끝나야 복귀가 가능할 것 같았던 바이넘이 빠르면 3월 말이나 4월 초쯤에 경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레이커스로선 플레이오프에 돌입하기 전에 미리 바이넘의 컨디션을 점검해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가솔 영입 이후 처음으로 레이커스의 베스트 5를 볼 기회가 생겼다는 점이다. 벌써부터 최상의 라인업으로 상대와 마주하게 될 레이커스의 위용이 어떨 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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