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댈러스 매버릭스의 빅3라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아마 대부분 덕 노비츠키-제이슨 테리-조쉬 하워드나 노비츠키-하워드-제이슨 키드를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댈러스의 빅3의 간판은 노비츠키-마이클 핀리-스티브 내쉬의 차지였다. 엄청난 화력으로 NBA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던 ‘원조 빅3’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해보았다.
City of Champs by Janz Images |
미약했던 시작
댈러스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선수는 핀리였다. 1996-1997시즌 도중에 피닉스 선즈에서 이적해온 핀리는 미래가 밝은 선수였다. 댈러스가 3J 시대의 종말을 고하면서 그 후를 이끌어갈 선수로 선택한 인물이 바로 핀리였다. 댈러스의 기대대로 핀리는 무럭무럭 성장해나갔다. 하지만 핀리 혼자만의 힘으로 팀을 쇄신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어느새 핀리는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지만 팀 성적은 늘 하위권을 맴돌았다.
댈러스는 변화를 모색했다. 팀이 좀 더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해선 핀리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조력자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데려온 인물들이 캐나다 출신의 내쉬와 독일에서 건너온 노비츠키였다. 1998-1999시즌 내쉬와 노비츠키 그리고 핀리는 처음 손발을 맞추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빅3의 윤곽은 그리 뚜렷하지 않았다. 팀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건 1999-2000시즌부터였다.
특히 노비츠키의 성장세가 놀라웠다. 노비츠키는 루키 시즌과 비교해 일취월장해진 기량을 과시하며 유럽 농구의 위상을 만방에 알렸다. 팀 성적 또한 노비츠키의 활약에 힘입어 1989-1990시즌 이후로 가장 좋은 승률을 기록하며 내년 시즌 전망을 밝게 했다. 희망을 가득안고 맞은 2000-2001시즌, 댈러스는 예전의 바닥을 전전하던 그 팀이 아니었다.
인상적인 소포모어 시즌을 보냈던 노비츠키는 더욱 강력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핀리 역시 건재했다. 특히 눈여겨 볼만 했던 것은 내쉬의 발전이었다. 댈러스로 트레이드 된 후 첫 두 시즌까지 변변치 못한 성적을 올렸던 내쉬는 2000-01시즌을 기점으로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수준급 포인트가드로 올라섰다.
댈러스 빅3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올렸다.
리그 최고의 공격력 그리고 한계
핀리-노비츠키-내쉬의 조합은 가히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했다. 댈러스와 상대하는 팀들은 항상 100점 이상의 실점을 각오해야 했다. 이들을 막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 선수가 펼치는 다양한 기술과 공격은 많은 팀을 공포에 떨게 했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빅3의 위상은 커져갔고 댈러스는 서부지구를 대표하는 팀으로 급부상했다. 2000-2001시즌 전까지 무려 10년간 플레이오프는 꿈도 못 꿨던 팀이 단숨에 우승을 노리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물론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 데는 무엇보다 빅3의 공헌이 컸다. 어디에도 그들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빅3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공격 무기로서 상대 팀을 무차별하게 폭격했다. 과거 3J 시절과 비교해 봐도 전혀 꿀릴 것이 없었다. 빅3는 댈러스의 희망이자 얼굴이자 미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댈러스와 빅3는 2%가 부족했다. 공격 지향적인 팀이 그렇듯 우승 문턱에서 항상 고배를 마셨다. 사실 댈러스는 공수 밸런스가 좋은 팀이 아니었다. 뛰어난 공격력에 비해 약한 수비력은 중요한 순간에 댈러스의 발목을 잡았다. 단기전 승부에선 날카로운 창뿐만 아니라 단단한 방패도 필요했다. 공격에 올-인한 댈러스의 스타일은 매번 실패를 맛보게 했다.
우승권에 점점 멀어지자 댈러스는 빅3 해체라는 단호한 결정을 내린다. 제일 먼저 팀을 나간 선수는 내쉬였다. 내쉬는 2003-2004시즌이 종료된 후 피닉스로 팀을 옮긴다. 다음 차례는 핀리였다. 핀리는 내쉬가 팀을 나간 지 딱 한 시즌 만에 같은 州에 있는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이적한다. 2005-2006시즌이 시작할 때 쯤 남은 선수는 노비츠키가 유일했다. 댈러스는 팀의 사령탑 역시 돈 넬슨에서 에이버리 존슨으로 교체하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했다.
재밌는 건 그 다음부터다. 서로 다른 팀에서 각자의 길을 걸어간 세 선수의 운명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간다. 우선 가장 충격을 안겨준 선수는 내쉬였다. 내쉬는 피닉스로 이적하자마자 팀에 전 시즌 대비 32승을 더 안겨주며 생애 첫 MVP 수상은 물론이고 리그의 트렌드까지 주도하는 영향력을 과시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쉬는 아마레 스타더마이어가 시즌 아웃 된 다음 시즌에도 팀을 54승으로 이끌며 리그 최고의 포인트가드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특이하게도 내쉬는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댈러스를 벗어나면서부터 더욱 일취월장한 기량을 뽐내며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특히 30대에 접어든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따름이었다.
노비츠키도 오히려 내쉬와 핀리가 팀을 옮기고 나서야 눈에 띌 만 한 활약을 보여줬다. 노비츠키는 내쉬와 핀리없이 맞이한 첫 시즌에 생애 첫 파이널 무대를 밟으며 괄목할 만 한 성과를 보여줬다. 마이애미 히트와의 대결에서 시리즈를 2-0까지 몰고 가며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리는 듯 했으나 뒷심 부족으로 스윕패를 당해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하지만 다음 시즌 노비츠키는 더 강력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난 시즌 준우승의 아픔을 되풀이하지는 않겠다는 듯 팀을 리그 전체 1위로 이끌며 굳은 각오를 보여줬다. 하지만 노비츠키의 꿈은 단 플레이오프 1라운드 만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옛 은사인 넬슨이 이끄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철저히 공략당하며 허무하게 시리즈를 내주고 만 것이다. 그 이후로 노비츠키는 여전히 변함없는 기량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우승의 적기를 놓친 팀들이 그렇듯 다시 패권에 도전하기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핀리 역시 샌안토니오로 둥지를 옮기고 나서 드라마틱한(?) 발자취를 보여주었다. 샌안토니오로 오고 나서는 출장시간도 줄고 역할도 축소되었지만 정작 우승은 제일 먼저 맛봤다. 2007년, 다행히 샌안토니오의 마지막 홀수 해 우승 징크스의 수혜자(?)가 되며 데뷔한 지 12시즌 만에 첫 우승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핀리 또한 빅3가 해체되고 나서 오히려 더 잘 풀리는(?) 결과를 맞았다. 물론 개인 성적은 떨어졌지만 어찌 그것을 우승에 비할 수 있을까.
이처럼 세 선수는 댈러스 빅3가 해체될 당시에 많은 팬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조금은 특별한 인상을 남기며 새로이 기억되고 있다. 내리막길을 걸을 것만 같았던 내쉬는 갑자기 약진했고, 노비츠키는 극단의 부침을 보였으며, 핀리는 롤-플레이어로 완연히 자리를 잡으면서 우승을 낚았다. 또한 내쉬와 노비츠키는 MVP를 세 번이나 나눠갔기도 했다. 여기서 누가 더 나은 경력을 쌓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건 여전히 세 선수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고 각자가 택한 노선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다. 이는 지금의 그들이 있기까지 빅3로 뭉쳤던 그 시절의 조각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주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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