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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자유의 몸이 되는 르브론 제임스를 두고 많은 팀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클리블랜드의 구단주 댄 길버트가 입을 열었다.

일찌감치 데뷔 전에 나이키와 계약을 맺은 르브론은 코카콜라, 스프라이트, 파워에이드와 같은 음료업계의 광고를 독식하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비스타 모델까지 광고판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시즌티켓 매진에도 영향을 끼친 ‘마이더스의 손‘으로서 코트 안팎에서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리그 최고의 실력과 상품가치를 겸비한 보기 드문 선수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르브론의 심중을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그가 대도시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는 알 수 있다. 특히 뉴욕을 연고지로 하고 있는 미 프로야구 양키스팀에 대한 열성팬을 자처하며 고향 팬들과 구단 관계자들의 속을 썩인 전력도 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양키스로 도배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양키 스타디움을 방문하는 것도 모자라 나이키 사(社)에서 양키스 컨셉으로 농구화도 제작할 정도니 그의 양키스팀 사랑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오하이오의 홈팬들은 불안감을 감추기 힘들다.

하지만 구단주 길버트의 생각은 다르다. 르브론이 NBA에서는 슈퍼스타지만 다른 젊은이들과 같이 야구 모자를 멋들어지게 쓰며 유행을 따르는 단순한 통과의례로 봐달라는 것이다. 그는 2년 뒤에 르브론이 클리블랜드를 떠날 것이라는 이야기에 대해 “클리블랜드와 나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다”라 덧붙이며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서 르브론은 뉴욕 행에 대한 어떠한 계획도 없으며 이는 스포츠계에 늘상 있는 날조된 보도기사라며 못을 박았다. 지난 2006년 7월 당시 르브론은 플레이어 옵션을 포함하여 4년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아직 2년의 시간이 남았다. 그는 당장은 어느 팀에도 갈 수 없다며 말을 아꼈지만 맹목적인 뉴욕사랑으로 일관한 처신은 잘했다고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뉴저지 네츠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힙합 뮤지션 제이-Z와 친구 이상의 우정을 과시하는 한편 야구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홈경기에서 뉴욕을 응원하는 대담함도 보였다. 구설수에 오를만한 원인을 자초한 것이다.

지역사회 여론조차도 그에게 뭇매를 가했다. 클리블랜드의 NFL팀인 브라운스의 와이드리시버 브레일런 에드워즈는 “르브론은 클리블랜드 사람이 아니었다. 캐벌리어스 조차 좋아할지 의문”이라며 실망감을 표했다. 에드워즈는 몇 일후 가벼운 농담이었다고 말을 바꾸었지만 그를 비난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뒤숭숭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향후 2년간은 걱정할 일이 없을 듯하다. 르브론은 이번 여름 베이징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여전히 위력적인 선수임을 증명했고 새 시즌을 앞둔 클리블랜드 입장에서 희소식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건만 된다면 2009-10시즌까지 언제든 우승도전이 가능하다. 당장 눈앞의 일정이 급한 현재로서는 2년 뒤의 일까지 신경 쓸 겨를도, 필요성도 없다는 얘기다.

길버트 구단주는 “클리블랜드는 NBA 최고의 팀 중 하나다. 내년과 그 다음해는 우승을 위해 경쟁해야 하며 르브론 걱정은 그 다음 여름이 찾아 올 때나 할 것”이라며 기강을 잡는 눈치였다.

구단 단장을 맡고 있는 대니 페리 역시 “2010년 제임스에 대한 타구단의 관심과 계획들은 이해하지만 우리의 현안과는 거리가 멀다”고 거드는 한편 “현재의 호기를 반드시 잡고 싶다”며 다가올 새 도전의 의지를 피력했다.

지난 시즌 보스턴 셀틱스와 최종 7차전의 혈투 끝에 고배를 든 클리블랜드는 오프시즌을 맞이하여 모 윌리엄스 영입과 신인 J.J. 힉슨의 합류로 재정비에 나섰다. 2007-08시즌 중반 파이널 진출 멤버까지 트레이드하는 강수를 둔 클리블랜드가 르브론의 입맛에 맞는 팀을 구축하기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는 이유는 역시 우승과 더불어 그와 오랫동안 함께 하기 위함일 것이다.

르브론의 이른바 ‘2010 프로젝트’는 지난 1996년 마이클 조던의 이적설을 방불케 할 만큼 뜨거운 감자다. 당시 코트로 돌아온 조던은 1년 단위 계약으로 시카고 불스의 가슴을 애타게 만들었고 여름마다 뉴욕이나 LA 유니폼을 입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었다. 결국 집으로 돌아온 조던이었지만 시카고를 제외한 전 구단은 설레는 가슴으로 한 번쯤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것이다. 지금 르브론을 보면 과거의 형국과 진배없다.

‘프랜차이저‘라는 말이 무색하고 사라지고 있는 요즘 르브론의 뉴욕 행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문제지만 그가 어디에 있던 최고의 활약을 보고 싶은 것이 팬심이자 농구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희망사항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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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일반 뉴스 2008. 9. 29. 05:54

뉴욕 닉스 구단주 도니 월시 암수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전통의 명가 뉴욕 닉스 구단주인 도니 월시가 지난 6월 말에 암수술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주치의는 진단서를 통하여 발병 부위였던 혓바닥의 암세포를 조기에 발견하여 전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 4월 해고된 아이제이아 토마스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월시는 “주치의가 모든 암세포가 제거됐다고 말했다. 만약 내 혀를 제거했다면 당장 짐을 싸야 했을 것”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수술로 경미하게 미각을 잃은 월시는 세계 최고의 치료기관으로 꼽히는 뉴욕의 슬론케터링 암센터에서 건강을 돌볼 계획이다. 그는 수술을 마친 후 50년간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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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혜성처럼 등장하여 수많은 묘기로 팬들의 시선을 끌었던 포인트가드 제이슨 윌리엄스가 돌연 은퇴하였다. 이번 여름 마이애미 히트를 떠나 LA에서의 새 출발을 준비하던 그였기에 팬들과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데뷔 후 총 10시즌을 소화한 윌리엄스는 32세의 젊은 나이로 조기 은퇴하며 아쉬움을 남기게 됐다.

그의 경력을 뒤돌아보면 이렇다할만한 굴곡 없이 완만한 성장그래프가 눈에 띈다. 2005-06시즌 마이애미 히트의 우승에 일조하며 빛나는 이력을 추가하였지만 정작 개인적인 성장은 제자리걸음을 거듭하며 수많은 팬들은 아쉬움을 샀다.

플로리다 시절부터 화려한 패스기술로 관중들을 매료시킨 윌리엄스는 1998년 세크라멘토 킹스에 의해 전체 7번으로 NBA에 입문하였다. 특히 길거리 농구에서나 볼 수 있었던 현란한 묘기를 코트위에 선보이며 소속팀과 함께 전국적인 인기를 구가하였다. 8년 전 오클랜드에서 열린 루키 올스타전에서는 팔꿈치를 이용한 절묘한 비하인드 패스로 수년간 회자되기도 하였다.

과거 세크라멘토의 동료들은 “정신을 놓고 있으면 윌리엄스의 패스를 놓치기 쉽상”이라며 “항상 그를 보고 있어야 한다. 윌리엄스에게 언제 볼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라며 과거를 회상하곤 했다. 레이커스의 전설적인 가드 매직 존슨에 비견되는 후문이 아닐 수 없다. 

한때는 상대방의 발목을 다치게 할 만큼 뛰어난 드리블 기술을 지닌 선수들을 일컫는 ‘앵클브리커‘의 수식어도 달았었다. 신인 시절에는 수비의 달인으로 불리는 게리 페이튼을 농락할 정도로 동작 하나하나가 리그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던 것이다.

아쉬운 것은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윌리엄스지만 농구 격언에 의하면 분명 감독과 팀에 환영받는 선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데뷔 초부터 지적받아온 실책은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었고 포인트가드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어시스트 부문에서는 준수한 성적을 남겼지만  필드골 성공률은 완벽한 낙제점이다. 통산 성공률이 39.6%로 4할을 채 넘기지 못하였다. 맥을 끊는 무리한 3점 슛과 잦은 기복은 지역방어 도입 후에 그의 설자리를 더욱 좁히게 만들었다.  

마이애미 히트 이적 후에는 달라진 시스템과 주변 환경으로 이타적인 플레이를 펼쳤지만 경기력은 오히려 고유의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과 함께 저하됐다. 하프코트 게임과 약속된 패턴 플레이가 리그에 정착하며 트랜지션 게임에서 강점을 보였던 윌리엄스의 부진에 한몫했다.

윌리엄스가 NBA에 남긴 통산 성적은 총 679경기에 출장해 11.4득점 6.3어시스트 2.4리바운드다. 한편 배런 데이비스와 윌리엄스의 조합으로 새 시즌 준비를 마쳤던 LA 클리퍼스는 윌리엄스의 예기치 못한 은퇴로 백코트 구성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비록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하였지만 윌리엄스의 서커스 농구는 별명인 ‘화이트 초콜렛’만큼이나마 달콤한 추억으로 팬들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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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NBA스타 앨런 휴스턴이 다시 한 번 리그입성에 도전한다. 25일(이하 한국시간) 뉴욕 포스트의 전언에 따르면 휴스턴은 다음 주 수요일 뉴욕 사라토가에서 열리는 트레이닝 캠프에 참가하여 복귀를 타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휴스턴은 뉴욕 닉스 측의 캠프 초대를 기꺼이 수락하며 여전히 식지 않은 농구열정을 드러냈다.

무릎골절 부상을 당했던 휴스턴은 지난 2004-05시즌을 끝으로 모습을 감추었지만 오프시즌이 찾아올 때마다 빅리그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시즌에는 시범경기 개막과 함께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지만 본인이 포기하며 정규시즌이 채 시작하기도 전에 중도하차하였다.  

이번 캠프참가는 사실 예견된 행보였다. 휴스턴은 지난 3월 2008-09시즌 컴백을 계획하고 있으며 오른쪽 무릎도 완벽하게 치료됐다고 밝힌 바 있다. 확실한 몸 상태에서 복귀하고 싶은 마음에 1년을 미룬 그는 과거 팀 동료였던 패트릭 유잉의 아들 유닝 주니어을 포함하여 후배들과의 살벌한 경쟁준비를 마쳤다.

현재 17명의 명단이 구성되어있는 뉴욕은 트레이닝 캠프를 거쳐 시범경기를 마친 후 최종 15명의 정예멤버를 가리게 된다. 뉴욕은 올 여름 새로 가세한 크리스 듀혼과 앤쏘니 로버슨을 비롯하여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스테판 매버리까지 포화상태의 백코트 정리가 시급한 시점이다. 때문에 휴스턴의 도전 역시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특히 거액의 몸값과 현저하게 떨어진 경기력으로 뉴욕 언론과 팬들의 뭇매를 맞아온 매버리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뉴욕이 매버리에게 2천만 달러를 상회하는 금액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뉴욕 구단주 도니 월시는 “매버리는 트레이닝 캠프에 올 것이다. 그와의 결별은 사실무근”이라 일축하며 최근 90kg으로 감량한 매버리의 몸 상태에 만족감을 표하였다. 매버리 역시 적극적인 잔류의사를 밝히며 변함없는 뉴욕사랑을 과시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뉴욕의 정예멤버 오디션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치열한 각축전이 될 공산이 크다. 일각에서는 이번 도전마저 실패할 경우에는 마이크 댄토니 사단의 축으로 코치의 길을 걷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깨끗하게 림을 가르던 그의 3점 슛과 교과서 슈팅 폼을 코트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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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이하 한국시간) 세크라멘토 킹스의 샤리프 압둘라힘이 은퇴를 선언했다. 불과 32세에 때 이른 이별을 고한 이유는 그를 괴롭히던 오른쪽 무릎부상 때문이었다.

“NBA에서 뛰기 위해 필요한 건강을 되찾기 힘들 것 같다”는 압둘라힘의 인터뷰에서는 만감이 교차하였다. 세크라멘토의 구단주 제프 페트리는 “그는 부상으로 인해 안타까운 경력을 보냈다. 압둘라힘의 탁월한 능력과 성취욕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라며 마지막 인사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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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서 압둘라힘은 NBA에서 대표적인 불운의 스타로 남으며 아쉬운 경력을 마치게 됐다.

지난 1996년 전체 3번 픽으로 밴쿠버(現 멤피스) 그리즐리스에 지명된 압둘라힘은 준수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소속팀의 부진으로 도통 빛을 보지 못하였다. 특히 같은 해 지명되었던 드래프트 동기들은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하며 승승장구해 희비가 엇갈렸다.

그가 남긴 통산 기록은 경기당 18.1점 7.5리바운드다. 올스타 급 포워드라 칭해도 손색이 없는 성적표다. 하지만 이는 약체 팀에 소속되었기에 누린 반사이익이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6차례나 평균 20점을 넘을 정도로 출중한 골 감각을 자랑했지만 올스타 선정은 단 한차례다. 그나마 남을 이력으로는 지난 2000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이다.

밴쿠버와의 관계를 청산했던 지난 2001년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애틀랜타에 새둥지를 틀었지만 디켐베 무톰보나 스티브 스미스, 크리스찬 레이트너 등 90년대를 군림했던 주축멤버는 모두 팀을 떠나며 대대적인 팀 개편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결국 밴쿠버와 다를 바 없는 시간을 보낸 그는 2003-04시즌 도중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로 전격 이적하였다.

하지만 압둘라힘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했다. 새로운 레이커스 왕조를 위협하며 밀레니엄 시대의 강호로 부상한 포틀랜드 역시 주전들의 노쇠화와 세대교체로 과도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승권에서 멀어진 포틀랜드였지만 압둘라힘은 벤치에 앉아 생애 처음으로 식스맨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농구경력의 종착역이 된 세크라멘토 행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크라멘토는 고득점 신바람 농구로 전국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예전의 모습을 감추었고 크리스 웨버와 페자 스토야코비치 등 주요 전력들이 모두 팀을 떠난 상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크라멘토 이적 후 곧바로 진출했던 2005-06시즌 플레이오프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플레이오프 무대가 되었다.

디펜딩 챔피언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고배를 들며 후일을 기약했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렇게도 염원하던 플레이오프 무대였지만 그동안 흘려보낸 세월과 부상이 야속했다. 부상과 줄어든 출장시간, 기량감퇴 등 모든 악재가 겹친 그에게 주역의 기회는 없었다.

“NBA에서 뛸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었다. 그리고 고맙다”며 운을 뗀 압둘라힘은 “프로생활을 거치면서 연을 맺은 모든 감독님들과 트레이너, 구단 관계자분들께도 감사드린다” 마지막 이별을 고했다. 

비록 그가 남긴 업적들은 보잘 것 없고 평가절하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소리 소문 없이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진 수많은 선수 중에 하나로 기억될지 모를 압둘라힘이다. 하지만 오늘은 기나긴 여정을 마친 그에게 박수를 보내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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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 NBA 트레이닝 캠프 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몇몇 팀들이 소속 선수와의 계약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동부지구의 시카고 불스 역시 계약문제로 고심 중이다. 수단 출신의 포워드 루올 뎅과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아직 남아있는 선수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주인공은 바로 듀얼가드 벤 고든이다. 식스맨으로 출장하면서도 2005-06시즌부터 세 시즌동안 팀 내 득점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은 그는 타고난 득점머신이다. 데뷔 첫 해에는 신인임에도 식스맨 상을 타는 기염을 토해냈다.

적어도 공격적인 측면에서 볼 때 코트위에 서있는 시간 대비 효율성은 최고라 할만하다. 특히 위기 때 강한면모를 보인다하여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이름을 믹스한 ‘벤 조든’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다. 그 정도로 승부사의 기질도 다분하다.

그렇다면 확실한 원 맨 옵션의 부재를 안고 있는 시카고 입장에서 이러한 고든에게 선뜻 지갑을 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든은 현대 농구에서 각광받고 있는 이른바 ‘듀얼가드’지만 신장에서 비롯되는 단점들이 재계약에 족쇄가 됐다. 실제로 이러한 고든의 아킬레스 건은 경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주전 포인트가드를 담당하고 있는 커크 하인릭은 고든의 신장열세를 만회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경기에서 매치업의 변화를 겪어야 했다. 이는 하인릭에게 빠르고 강한 피로 누적을 가져왔고 부상과 함께 수비에서 중노동을 겪은 그의 성적하락을 야기 시켰다. 숫자가 전부는 아니지만 하인릭은 지난 시즌 대부분의 카테고리에서 데뷔 이래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시너지는 커녕 마이너스가 되다보니 시카고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드래프트 전체 1번 픽에 빛나는 데릭 로즈의 합류와 하인릭을 보좌했던 크리스 듀혼의 뉴욕 행은 답보상태를 이어가던 계약 협의는 장기화 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시즌 클리블랜드와의 트레이드로 영입한 래리 휴즈의 거액 장기계약도 부담이다. 백코트를 살펴보면 그 누구도 잉여자원으로 남기기엔 아까운 선수들로 혼란성만 가중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카고의 단장인 존 팩슨은 고든에 관한 인터뷰를 일절 아끼며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심사숙고 하고 있다”며 운을 뗀 구단주 제리 레인스돌프는 “알다시피 돈과 관련된 사업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고든은 여전히 시카고 소속이고 우리와 함께 뛰길 기대한다”며 속내를 밝혔다.

시카고는 제한적 FA 신분인 고든에게 제시되는 타 구단의 어떠한 오퍼금액에 매치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퀄리파잉 오퍼로 해결한다면 고든은 이번 2008-09시즌을 시카고 소속으로 뛴 후 내년 여름 비제한적 FA로서 자유를 얻게 된다.

트레이닝 캠프까지 약 10일 정도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레인스돌프 구단주는 “그가 시카고를 위해 뛰어주길 기대하다”며 재차 잔류희망 의사를 밝혔지만 기간 내에 과연 재계약에 성공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고든은 지난 9월 초 경에 러시아 리그 소속인 CSKA 모스크바로부터 5백 50만 달러의 금액을 제시받았지만 그리스로 떠난 조쉬 칠드레스의 7백만 달러 선으로 조정을 원했다. 본인 역시 여름 FA시장 개막과 함께 소속팀 잔류의사를 밝혀왔지만 ‘적당한 대우‘ 역시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난 시즌 대대적인 팀 개편에 나선 시카고가 과연 고든과 함께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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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가 농구변방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그간 리그의 글로벌화를 위해 해마다 전 대륙을 방문해온 NBA지만 인도네시아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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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친선대사로 낙점된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대니 그레인저는 머무르는 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레인저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매우 훌륭했다”며 만족감을 표하며 “시종일관 우리에게 카메라를 꺼내며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들은 이곳 인도에서 정말로 NBA를 보고 있다. 나를 알고 있더라”며 웃음을 지었다.
    
그레인저는 지난 시즌 인디애나의 주득점원으로 간판스타 자리를 꿰찼다. 레지 밀러 이후 확실한 리더부재로 고심해온 인디애나는 이번 오프시즌 저메인 오닐과 이별을 고하며 사실상 그레인저에게 키를 쥐어주었다.

최고 리그에서 준비한 행사니만큼 내용도 알찼다. 그레인저는 아이들에게 골밑 스핀무브와 속공 훈련을 가르친 후 사인회를 열어 시간을 보냈다. 그는 행사를 통해 여독을 풀었지만 즐겁지만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정말 열악하다”라며 운을 뗀 후 “나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이곳에 와서 본 것들은 믿을 수가 없다. 한 달에 20달러로 생활이 어떻게 가능 하겠는가"며 안타까워했다.

3일 일정으로 편성된 이번 행사는 인도네시아 제2의 도시인 수라비야의 DBL(인도네시아 리그) 농구 경기장에서 클리닉은 계속됐다. 이번 행사는 각각 25명의 소년과 소녀들로 구성된 50명의 청소년 참가자와 함께 챔피언 결정전 경기가 진행됐고 하프타임에는 3점 슛 대회를 준비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그밖에 미 대사관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의 고아 30명과 함께 클리닉을 가지기도 했다.

“많은 아이들이 영어를 하지 못했지만 통역을 통해 대화를 나누었다. 클리닉 외에 질문시간을 가졌는데 돈을 얼마나 버냐는 식의 질문을 해서 하는 만큼 번다고 얘기해주었다”고 말한 그레인저는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 누구라도 NBA에 진출할 수 있다”며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NBA 행정이사 스키 오스틴은 “이 행사는 NBA 저변확대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라 말하며 “우리는 그레인저같이 선수를 데려와 행사에 참여하는 팬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방식을 투어에 쓰고 있다. 참가하는 선수들은 오프시즌 개인시간을 투자하는 것이지만 하나같이 유용한 시간이라고 입을 모으다”며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대회의 취지와 궁극적 목표는 그레인저에게도 전달이 된 것 같다. 그는 내년에 다시 한 번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다소 들뜬 목소리로 “가능하다면 또 오고 싶다”며 말한 그레인저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나는 정말 축복받은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이번 여행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며 이번 행사의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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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한 우물만 파야 하는 우리나라나 일본의 학원 스포츠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재능만 있다면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자신이 원하는 복수의 종목에 참여하고 활동하는 것이 자유롭게 보장되는 편이다. 알렌 아이버슨이 고교 시절 농구와 미식축구에서 팀을 주 챔피언으로 이끌었던 것은 이러한 환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학창시절에는 여러 종목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미국이라도, 졸업 후 프로로 진출할 때에 선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다재다능한 선수만이 경험할 수 있는 비애라고 보면 될까. 하지만 끝내 두 가지의 꿈 모두를 포기하지 못하고 두 종목 모두에 발을 들여놓은 NBA 선수들이 있다. 지금부터 그 주인공들을 만나보도록 하자.


데이브 드부셔

NBA 선수로 12시즌을 뛰는 동안 2차례의 우승을 경험했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위대한 50인'에 선정될 정도로 NBA 역사에 이름을 남겼던 선수이다.

그랬던 그조차도 야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투수로 활약했던 시기가 있었다. 1962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계약하고 2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것.

NBA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선수로서 처음 데뷔를 한 것은 그해 겨울이었으니, 오히려 데뷔는 야구 쪽이 빨랐다. 하지만 농구에서와는 달리 야구에서는 그리 뛰어난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2년간 36경기에 등판, 3승 4패를 기록한 것이 전부였다. 이후 그는 화이트삭스 산하 마이너리그팀에서 2년을 더 활동했지만, 디트로이트의 플레잉 헤드코치가 된 후 야구의 길을 포기하고 말았다.


대니 에인지


현재 보스턴 셀틱스의 단장으로 팬들에게 친숙한 대니 에인지도 여러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고교 시절에는 야구, 풋볼, 농구 모두 퍼스트팀에 선정되어 미국 스포츠 역사에서도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바 있는 선수다. 스스로의 다재다능함을 주체하지 못한 그는 고교 졸업 후에도 특이한 경력을 가졌는데, 1977년부터 브리검 영 대학에서 농구선수로 활약함과 동시에 같은 해 드래프트에서 MLB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지명을 받아 1979년부터 3시즌간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선수로 활동했다.

투수와 포수, 1루수를 제외한 모든 수비 포지션을 경험해 언뜻 보면 대단한 수비능력을 가진 것으로 오인하게 하지만, 사실 상당히 많은 에러를 범했던 선수였다. 팀이 1977년에 창단되어 선수층이 얇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통산 타율은 2할 2푼에 불과했고, 1981년에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투수 렌 바커의 퍼펙트 게임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NCAA에서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4년 평균 20.9 득점이라는 기록과 1981년도 존 우든 어워드 수상자라는 경력이 말해주듯 농구선수로서의 에인지는 점점 스스로의 주가를 높여갔다. 그는 결국 1981년을 끝으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NBA로 발길을 돌렸다.


마크 헨드릭슨

206cm의 큰 키를 자랑하는 플로리다 말린스의 투수 마크 헨드릭슨은 고교 시절 야구와 농구, 테니스에서 수준급의 실력을 가졌던 선수였다.

농구에서는 팀을 두 차례나 주 챔피언으로 이끌었고, 야구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다재다능함을 과시했던 것. 워싱턴 주립대학에 진학한 후 매년 드래프트에서 MLB 팀들의 지명을 받으며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끌었던 그는 일단 NBA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1996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31순위로 필라델피아 76ers에 지명된 그는 새크라멘토 킹스, 뉴저지 네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등 여러 팀을 전전한 끝에 평균 3.3 득점, 2.8 리바운드라는 초라한 성적만을 남긴 채 4시즌만에 꿈을 접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헨드릭슨은 1998년에 MLB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입단 계약을 체결하고 마이너리그에서 투수로 활동을 해오던 상황이었고, 본격적으로 야구에 전념하기 시작하면서 등판 기회를 늘려나가며 한 계단 한 계단씩 발전해나갔다. 마침내 2002년에 MLB 무대에 입성한 그는 선발과 롱릴리프를 오가며 현재까지 통산 50승 63패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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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버 너게츠의 센터 네네 힐라리오가 최근 팀 상황과 새 시즌의 각오를 털어놓았다. 허벅지에 생긴 악성종양 제거수술로 베이징 올림픽도 고사한 네네는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오며 최근 강도 높은 훈련을 감행하며 담금질에 들어갔다.

네네의 자신감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지만 마음한 구석은 무겁기만 하다. 덴버는 이번 FA시장에서 2006-07시즌 수비왕 마커스 캠비를 샐러리 정리차원에서 헐값에 트레이드하였다. 멕시코 출신의 허슬 플레이어 에드왈도 나헤라와의 재계약 역시 실패하며 가뜩이나 보강이 필요한 골밑의 무게감이 떨어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네네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는 캠비의 트레이드에 관해 “솔직히 말해 트레이드 당시에 정말 화가 났었다. 그는 내 형제와도 같은 존재였고 정말 많은 것을 도와주었다”며 아쉬운 감정을 토로했다.

알렌 아이버슨을 영입했던 순간부터 잠재적인 재정난은 예상되어왔지만 그는 카멜로 앤쏘니와 함께 팀의 미래에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다음시즌 두 올스타 듀오에게 지급될 금액은 300억을 상회하며 사치세가 불가피했다. 살생부 1순위로 캠비의 이름을 올린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한편으로 네네에 보내는 구단의 신뢰는 상상이상이다.

건강만 유지한다면 네네의 올스타 급 재능은 꽃을 피울 것이며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구단의 기대는 연간 천만 달러라는 잭팟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좋은 신체조건을 지닌 네네는 벤치에서 팀의 활력소를 자처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잔부상이 늘어나던 시기에 고환함이라는 악재마저 겹쳤다. 덕분에 사람들은 비난의 화살을 아끼지 않으며 ‘먹튀’라는 간판을 그에게 달아주었다.

하지만 브라질에서 건너온 이 25세의 청년은 더 이상 고개를 떨구지 않을 것이다. 올 여름 완벽한 컨디션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의 오프시즌은 대부분 브라질에서 보낸 그였지만 올해는 지난 7월 보름간만 머물며 각오도 새롭게 다졌다.

이제는 9월 30일에 열릴 트레이닝 캠프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부상이나 재활같은 것들에 대하여 정말 많이 생각해봤다”며 운을 뗀 네네는 “이번시즌에는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여름은 뼈를 깎는다는 생각으로 전력을 다 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네네는 부상으로 점철된 지난 세월이 팬들만큼이나 아쉽고 한편으로 걱정되는 눈치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던 불청객은 이제 완전히 떠난 것일까? 고환암과 악성종양제거 수술을 받았던 그는 “아직도 미세한 통증을 느낀다. 암이 제거되길 바랐었는데 지금은 훨씬 나아졌다. 하지만 연습을 많이 할 때면 가끔씩 위에 고통을 느낀다”며 아직 100% 컨디션은 아니라고 밝혔다.

3달마다 받는 화학치료는 네네의 체중이 감량할 정도로 괴롭혔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전망이다. 지난 2006-07시즌 다이어트를 통하여 20키로 감량에 성공했던 그는 본 포지션인 파워포워드 자리에서 더욱 빛을 발휘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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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는 덴버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의 부상전력에 대해 안 좋게 본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 관점에서는 잘 된 일이었다. 암과 고된 수술, 재활 등을 통하여 값진 경험과 정신적인 수양을 쌓았다. 그 누가 이런 경험을 쉽게 접하고 견딜 수 있겠는가”며 자랑스러워했다.

병마를 이겨낸 네네의 정신력은 분명 그의 코트 위 활약을 떠나서 본보기가 될 만한 일이다. 만약 이번시즌 덴버의 전력누수를 훌륭하게 메워 어엿한 팀의 전력으로 거듭난다면 먹튀의 오명을 벗을 뿐 아니라 NBA 올스타에도 한걸음 가까워질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구단과 팬을 막론하고 건강하게 그가 시즌을 소화한다면 그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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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008 NBA 드래프트에서 2번 픽으로 뽑힌 마이클 비즐리가 에이전트 문제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NBA와 미 대학농구인 NCAA 소식통에 의하면 그동안 비즐리의 에이전트를 담당했던 조엘 벨이 해고됐다고 전했다. 특히 벨은 지난 14일(이하 한국시간) 문자메시지를 통하여 “지금은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며 구체적인 회신을 피해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다가오는 2008-09 시즌의 강력한 신인상 후보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비즐리의 문제이니만큼 타 에이전트들의 관심도 뜨겁다. 선수 노조 규약에 의하면 에이전트의 해고 처리문서가 해결되기까지 보름간 새 계약을 금하고 있지만 벌써부터 벨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전쟁이 시작됐다. 정상급 스타들을 고객들을 다수 관리하고 있는 애런 굿윈이나 앤디 밀러는 이미 물밑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유소년 선수 프로그램으로 저명한 D.C 어썰트사의 설립자 커티스 말론은 최근 비즐리가 에이전트 벨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새 에이전트에 관해 자문을 구했다고 밝혔다. 비즐리의 성장기를 함께한 말론의 인터뷰라는 점을 감안하면 루머의 실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현지 농구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제 막 빅리그에 발을 내딛은 신인이 농구 외적인 일로 여론의 관심을 모았다는 점과 과거 ‘악동이미지’가 한몫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비즐리가 말론도 내칠 것이며 이번 에이전트 해고는 시작일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말론의 측근은 익명으로 “비즐리는 벨과 말론, 셋 모두를 추락시키고 있다.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비즐리는 벨보다 ‘큰 손’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즐리의 새 파트너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굿윈은 비즐리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큰 손 중에 큰 손이다. 특히 유년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이자 지난 시즌 신인왕인 오클라호마시티의 케빈 듀란트가 굿윈의 고객이라는 점은 최대 이점으로 꼽힌다. 비즐리와 남다른 우정을 과시하고 있는 듀란트의 조력자이기에 굿윈과의 새 출발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두 선수들의 어머니들이 굿윈과의 계약을 위해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어 사실상 결정된 것이 아니냐는 다소 섯부른 예측도 내놓고 있다.

굿윈과 각축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 밀러의 입장은 조심스럽다. 케빈 가넷과 첸시 빌럽스같은 대고객을 보유한 밀러는 “비즐리는 정말 빼어난 재능을 지녔다”며 운을 뗀 후 “비즐리의 어머니는 물론 그의 어떠한 측근들에게도 받은 연락이 없다”며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비즐리는 지난 7월 드래프트에서 전체 2번 픽으로 마이애미 히트에 지명 받았었다. 재능과 실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서 끊임없는 지적을 받아와 지명 후 트레이드 옵션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돌았던 그였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들은 기우에 불과했다. 최근 썸머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즉시 전력감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주었고 정신적으로도 성숙했다는 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에이전트 문제를 해결하고 코트위에서 빛날 비즐리를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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