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스포츠 중계방송을 시청하면서 관심을 갖는 것 가운데 하나가 '어느 방송사에서 중계를 하며, 캐스터와 해설자는 누구인가'하는 점이다.
지난 베이징올림픽에서 공중파 3사 모두가 각자 야구경기를 중계방송한 가운데서도 한 방송사의 시청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부분에서 알 수 있듯, 같은 경기를 지켜보더라도 중계진이 어떻게 게임의 내용을 설명하느냐에 따라 시청자가 받아들이는 느낌은 달라지게 된다. 가령 상황전달에만 치중하는 캐스터보다 적당히 우스갯소리를 곁들여가며 맛깔나게 이야기하는 캐스터가 더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NBA의 경우에도 공중파, 케이블, 그밖에 수많은 지역방송사의 캐스터들이 중계를 담당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또 기억에 남는 이는 매우 드물다. 지금부터 그러한 캐스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나가도록 하겠다.
마브 앨버트(TNT, YES 메인 캐스터)
NBA Live 게임 시리즈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1941년에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1965년부터 NHL 팀인 뉴욕 레인저스의 라디오중계를 맡게 되면서 오랜 커리어를 시작했다. 2년 후에는 뉴욕 닉스의 라디오중계를 담당하며 NBA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농구 외에도 다양한 스포츠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앨버트는 라디오와 TV를 넘나들며 야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테니스, 복싱 등 여러 종목의 중계방송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명성을 쌓아나갔다.
1970년대에는 그런 능력을 인정받아 공중파 방송사인 NBC와 계약을 맺고 전국구 캐스터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하지만 당시에는 CBS가 NBA의 전국중계를 맡고 있었으므로 앨버트는 NBC에서 야구와 미식축구 경기에 중점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뉴욕에 기반을 둔 스포츠팀을 전담한 MSG 네트워크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며 뉴욕 닉스의 경기는 항상 그의 목소리를 통해 방송되었다.
1989년부터 NBC는 'NBA on NBC'라는 제목하에 NBA의 공중파 중계를 담당하게 되었고, 메인 캐스터로 마브 앨버트가 낙점되며 본격적으로 그의 시대가 열렸다.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Roundball Rock>이라는 테마송으로 시작되는 NBC의 NBA 중계방송은 그와 함께 신화를 써내려갔다. 적당히 탁한 목소리에 중요한 순간마다 약간의 흥분이 섞인 하이톤으로 '예스!'를 외쳤던 그의 음성은 수많은 명승부와 더불어 팬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마침 도래한 마이클 조던의 시대와 겹치면서 그가 맡고 있던 NBC의 시청률은 연일 기록을 경신해나갔다. 공교롭게도 그가 가장 사랑했던 뉴욕 닉스는 플레이오프에서 번번히 조던의 불스에 패해 무릎을 꿇었지만.
영원할 것 같던 마브 앨버트의 시대는 그가 1997년에 섹스스캔들에 휘말리게 되면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로 인해 그는 캐스터 인생에 있어 최악의 오점을 남겼으며, 1997 파이널이 끝난 후 NBC로부터도 해고를 당하며 큰 불행을 겪어야했다. 그를 대신해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경기 시작전에 프리게임을 진행하던 밥 코스타스였다. 1998 파이널 유타와 시카고의 대결 역시 나름대로 명진행자였던 코스타스가 중계를 담당했지만, 위대했던 농구황제의 '더샷'을 마브 앨버트가 특유의 하이톤으로 설명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불명예는 남겼지만 매력적인 목소리와 능력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케이블방송사인 TNT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1999년부터 커리어를 다시 이어나갔다. 조던의 은퇴 후 시청률 하락으로 고심하던 NBC는 2000-01 시즌에 앨버트를 메인 캐스터로 복직시켜 마이크를 잡게 했다. 이듬해 NBC가 NBA 중계에서 손을 뗄 때까지 마브 앨버트는 NBA on NBC의 처음과 끝을 함께 했다.
이후 2002-03 시즌부터 그는 다시 TNT의 메인 캐스터로서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2004-05 시즌까지 뉴욕 닉스와 함께 했던 그는 뉴욕의 부진한 성적의 원인을 놓고 구단 경영진에 대해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가 해고당하며 40년에 가까운 뉴욕 닉스와의 인연을 청산했다. 대신 2005-06 시즌부터는 YES 네트워크를 통해 뉴저지 넷츠의 경기를 중계해오고 있다.
칙 헌(1916~2002. LA 레이커스 전담 캐스터)
LA 레이커스, 피닉스 선즈, 댈러스 매버릭스, 마이애미 히트에서 활약했던 A.C. 그린은 역대 최고인 1,192경기 연속출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MLB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스타였던 칼 립켄 주니어는 2,632경기 연속출전으로 이 부문 최고기록을 가진 선수이다. 두 선수 모두 각자의 종목에서 철인으로 불릴만큼 경이적인 기록을 남긴 이들이지만, 지금 소개할 칙 헌은 그보다도 더 위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1965년 11월 21일부터 2001-02 시즌 중반까지 3,338경기를 연속으로 중계하며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무려 36년간 단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마이크를 잡은 것이다.
그밖에도 칙 헌은 농구용어 창안에 있어서도 선구자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슬램덩크, 앨리웁, 에어볼, 가비지 타임, 핑거롤, 트리플더블, 기브 앤 고 등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를 만들어냈으며, 각종 비유적인 표현으로 경기를 더욱 재미있게 중계하는 데 있어 1인자였다. 게임이 레이커스의 승리로 기울어졌다고 판단됐을 때 그가 즐겨 사용했던 멘트인 "This game's in the refrigerator, the door is closed, the lights are out, the eggs are cooling, the butter's getting hard, and the Jell-O's jigglin'!"은 그의 팬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문구로 뽑힌바 있다.
훨씬 나이가 어렸던 선수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냈고, 윌트 체임벌린에게 'The Stilt'라는 별명을 지어준 것도 그였으며, 제임스 워디에게 'Big Game James'라는 닉네임을 선사한 것도 그였다. 1961년에 처음 레이커스와 인연을 맺게 되어 2002 파이널에서 레이커스가 뉴저지 넷츠를 꺾고 3연패에 성공할 때까지 칙 헌은 엘진 베일러, 제리 웨스트, 윌트 체임벌린, 게일 굿리치, 카림 압둘자바, 매직 존슨, 제임스 워디,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등 레이커스를 빛낸던 스타, 레전드들과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다.
3연패의 기쁨이 채 가시지않았던 8월, 칙 헌은 자택에서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두 차례나 뇌수술을 받았으나, 8월 5일에 향년 85세로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그는 전국방송의 캐스터는 아니었지만, 탁월한 자기관리와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으로 4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LA 레이커스와 함께 하며 전설적인 캐스터로서 이름을 날렸다. 1991년에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던 그의 이름은 스포츠 캐스터의 귀감으로서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쟈니 모스트(1923~1990. 보스턴 셀틱스 전담 캐스터)
이외에도 1953년부터 1990년까지 보스턴 셀틱스의 경기를 중계했으며, 1965년 동부컨퍼런스 파이널 필라델피아 76ers와의 7차전에서의 "Havlicek stole the ball! Havlicek stole the ball! It’s all over! It’s all over!"이라는 코멘트로 잘 알려진 쟈니 모스트는 보스턴의 팬들이 TV로 경기를 지켜보면서도 소리를 끄고 그의 라디오 중계를 들었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캐스터였다.
현재 보스턴 경기의 중계진은 중립적이기보다는 편파적이기로 악명이 높은데, 이는 모스트가 캐스터를 맡았던 시절부터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일이다. 게다가 그는 매우 공격적이기까지 했다.
1980년대 배드보이스 시절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선수들이 피지컬한 플레이로 보스턴 선수들을 넘어뜨릴 때마다 그는 디트로이트 선수들을 맹비난했으며, 보스턴과 레이커스의 경기에서 매직 존슨이 심판에게 장시간동안 어필하자 모스트는 매직에게 '울보'라는 별명을 붙이고 80년대 내내 이를 써먹었다. "울보가 노룩패스를 했습니다", "울보가 리바운드를 잡았습니다"하는 식이었다.
다 쉰듯하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셀틱스 왕조의 승리를 전달했던 쟈니 모스트는1990년 마이크를 놓을 때까지 열정적으로 방송에 참여했던 캐스터계의 레전드였다. 1993년 1월 3일, 심장마비로 인해 69세의 나이로 타계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앞으로도 보스턴의 영광스러운 장면들과 함께 팬들의 뇌리에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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