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부터... 마이클 쿠퍼, 놈 닉슨, 커림 압둘자바, 밋치 컵첵, 폴 웨스테드, 자말 윌크스, 매직 존슨
런-앤-건 농구.
공격권만 넘어오면, 달리고 뛰고 점프해서 빠른 속도로 공격을 하고, 기회만 된다면 호쾌한 덩크까지 꽂아버리는 매력적인 농구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봐도 이 스타일로 우승까지 한 NBA 팀은 잘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60년대에 첫 농구 왕조를 세웠던 보스턴 셀틱스
빌 러셀과 밥 쿠지를 중심으로 한 이 팀은 런-앤-건 팀은 아니었지만, 런-앤-건 농구를 곧잘 구사했던 팀이었습니다.
러셀이 이끈 셀틱스 골밑과 수비진은 몹시 두터웠고, 그래서 이 팀에는 속공기회도 많이 주어졌습니다. 전성기 때 경기당 8~9개의 블락샷을 했다고 전해지는 러셀은 블락샷을 할 때도 무작정 쳐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팀의 가드들 손에 공이 떨어질 수 있도록 쳐낼 곳을 정확하게 조준해서 블라킹을 하던 선수입니다. 이런 공은 영락없이 빠른 속공으로 이어졌고, 셀틱스는 아주 쉬운 득점들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기 위해선 러셀 뿐 아니라 시대를 앞서갔던 포인트 가드, 밥 쿠지의 역할 또한 매우 컸습니다.
그러나 60년대의 셀틱스는 속공기회를 잘 살려 팀의 전력에 보탬이 되는 농구를 한 팀이지 정통 런-앤-건 농구팀은 아니었습니다. 1972년에 69승을 거두며 우승을 했던 체임벌린과 웨스트의 레이커스도 런-앤-건 농구를 자주 하던 팀입니다. 그러나 이 팀도 정통 런-앤-건 팀은 아니었습니다.
60년대 중반에 창립된 NBA의 라이벌, ABA 리그
ABA 리그는 대놓고 NBA와는 모든 면에서 구별되는 농구를 하겠다고 천명하며 시작된 리그였습니다.
리그 전체가 뛰고 덩크하는 농구를 구사한 흥미만점의 리그였으나, NBA 리그의 강한 텃세와 훼방공작 등으로 미국 프로 스포츠 계에 깊은 뿌리를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방송 중계권도 NBA가 완전히 독점을 하는 바람에 ABA 경기는 지방 방송국을 통해서만 시청이 가능했습니다.
줄리어스 어빙이 이끈 뉴저지 넷츠를 포함해 이 때 우승한 ABA 팀들은 모두 런-앤-건 농구를 구사했던 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의 취지가 ABA 리그가 아닌 정통 느림보(?) 농구만을 고집했던 NBA 리그 역사에서 런-앤-건 농구로 우승까지 한 팀이 어떻게 우승까지 가능했느냐는 것이기 때문에, ABA 리그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NBA로 돌아오겠습니다.
보스턴 셀틱스 왕조가 천수를 다 누린 이후인 70년대는 골밑을 지배하는 자가 우승한다는 기본 취지 아래 센터들 중심의 농구가 펼쳐지며 수많은 명예의 전당급 센터들이 군웅할거하던 춘추전국 시대였습니다.
이러던 시기에 리그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선수가 하나 등장했으니... 그의 이름이 바로 매직 존슨입니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부터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코트를 누비며 소속학교들을 우승으로 이끈 이 농구천재는 타고난 센스와 농구 아이큐, 뛰어난 승부근성과 강심장은 물론, 수비하기가 무척 힘들었던 엇박자의 드리블 기술, 206cm라는 신장에 떡 벌어진 어깨와 근력, 농구하기에 딱 좋은 긴 팔과 긴 다리, 그리고 큰 손까지 보유한 괴물이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선수가 당시 리그 MVP였던 커림 압둘자바의 레이커스에 합류를 한 것입니다.
레이커스엔 이미 리딩과 득점력, 스피드가 모두 리그 정상급이었던 놈 닉슨이란 가드가 있었지만, 레이커스는 매직 존슨을 중심으로 팀 칼라를 아예 바꿔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닉슨을 좋아했던 폴 웨스테드 감독은 매직을 중심으로 팀 칼라를 완전히 바꾸는 것에 대해 약간 미온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신인답지 않게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레이커스를 우승시켜버린 매직 존슨 앞에서 큰 소리만 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입장이었죠.
이러한 묘한 팀 내 갈등은 1981-82 시즌이 시작되면서 표면화되기 시작했고, 닉슨과 매직은 시즌 중에 서로를 대놓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폴 웨스테드 감독이 사퇴를 했고, 어시스턴트였던 팻 라일리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레이커스의 농구 스타일엔 일대 대변혁이 일어나게 됩니다.
팻 라일리 감독은 놈 닉슨과 매직 존슨이 경기 중에 서로의 포지션을 바꿔가며 뛰게 하는 "스위치 리딩 가드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그리고 기회만 나면 속공으로 속전속결해버리는 "뛰는 농구"를 선수들에게 주문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팀 수비"와 "디펜스 리바운드"가 그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압둘자바를 도와 골밑에서 궂은 일만 전문으로 해줄 수 있는 커트 램비스를 영입해 옵니다.
비록 불협화음과 함께 시작한 시즌이었으나, 이 런-앤-건 농구로 매직의 레이커스는 또 다시 리그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런 80년대 초중반 레이커스의 쇼우타임 런-앤-건 농구의 위력이 잘 보여졌던 경기가 1984년 파이널 3차전입니다.
참패를 한 후, 래리 버드가 "셀틱스 선수들이 모두 계집애들처럼 뛰었다" 며 굴욕으로 받아 들였던 경기이기도 하지요.
먼저 제가 편집한 짧은 동영상을 감상해 보십시오.
어떠셨습니까? 정말 엄청난 공격력 아닙니까?
수비가 좋기로, 특히 상대팀의 속공을 잘 저지하기로 유명했던 당시의 보스턴 셀틱스가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린 레이커스의 런-앤-건 농구였습니다.
당시의 레이커스엔 작고 빠른 가드들이 없었습니다. 놈 닉슨은 이미 클리퍼스로 트레이드가 된 이후였습니다. 루키였던 바이런 스캇도 193cm에 윙스팬과 운동능력이 뛰어났던 선수였고, 매직 존슨은 206cm, 그리고 두 가드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던 만능 식스맨이자 에이스 스타퍼였던 마이클 쿠퍼가 198cm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팀은 틈만 보이면 속공으로 화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 경기 하일라이트만 잘 관찰해서 보더라도 어떻게 해야 런-앤건 농구로 리그 정상에 올라설 수 있는 지를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 강력한 팀 수비는 필수입니다.
나이를 먹었으나 엄청난 내구력과 체력을 자랑하던 압둘자바가 페인트 존 수비를 장악했고, 팻 라일리 감독이 82년 시즌부터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던 "함정 수비" (공을 가진 상대 수비수에게 기습적으로 두 세 선수가 붙으면서 패스할 루트를 차단하거나 상대선수의 턴오버를 유발시키는 수비)로 상대팀의 볼 무브먼트가 원활하게 돌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을 했습니다.
둘째, 제공권 장악입니다.
노장이었던 압둘자바, 그리고 체력이 왕성했던 블루칼라 워커, 커트 램비스, 파워 포워드의 힘과 사이즈를 지니고 있었던 제임스 워디, 센터를 봐도 괜찮았을 매직 존슨의 수비 리바운드 가세 등으로 당시의 레이커스는 어느 팀에게도 수비 리바운드에서 밀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단, 모제스 말론이 이끌던 식서스는 예외였습니다). 이런 수비 리바운드가 재빠른 아울렛 패스로 이어지면서 수많은 속공 기회가 자연스럽게 발생했던 것이죠.
셋째, 선수들의 사이즈와 상관없이 팀 전체적으로 뛰어난 기동력과 페이스업 기술이 중요합니다.
레이커스 선수들이 워낙에 커서 얼핏 보면 속공이 그리 빨라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이즈가 크면서도 잘 달릴 수 있었던 레이커스 선수들이었기에 리바운드에서도 밀리지 않으며 런-앤-건 농구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매직 존슨은 차치하고라도, 압둘자바, 워디, 쿠퍼, 램비스, 밥 맥카두 등이 모두 포지션 대비 월등한 사이즈를 갖고 있던 선수들이었지만, 속공 시에도 항상 최전방에 나가 활약을 하는 것이 보이실 겁니다. 이들은 웬만한 수비는 일대일 페이스업으로 따돌릴 수 있는 기술이 있었고, 또 코트를 계속 왕복으로 달릴 수 있는 체력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넷째, 하프코트 오펜스에도 능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간단한 요건입니다. 경기 내내 달리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플레이오프같이 수비가 더 강해지는 시기엔 누구나 지공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지요. 80년대 레이커스는 압둘자바와 제임스 워디, 자말 윌크스 등이 이끈 지공 또한 뛰어났던 팀입니다.
다섯째는...... 매직 존슨입니다.
이런 농구는 아무리 머리를 짜내고 연구해 봐도, 결국 매직 존슨 같은 특급 포인트 가드가 있어야만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매직 존슨은 본인이 리바운드를 잡고 코스트-투-코스트 공격으로 상대팀 수비진을 마음먹은대로 무너뜨릴 수 있었던 선수입니다. 르브론 제임스와 같은 하드웨어로 유연하고도 빠른 속도로 드리블을 치고 들어오는 이 거인을 상대팀 수비수들은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이즈가 되는 선수들이 막기엔 너무 빨랐고, 스피드가 되는 선수들이 막기엔 신장과 힘이 너무도 월등했습니다.
이런 선수가 코트 정중앙을 가로질러 달려나가면, 나머지 레이커스 선수들은 마치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 대형처럼 코트 양 사이드로 넓게 퍼져서 V자 형태로 그 뒤를 따르는 형국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상대팀 수비진은 파울로 속공을 끊는 수 밖엔 별다른 방법이 없어집니다. 일단 매직 존슨의 파워넘치는 중앙 돌파를 막기도 버거울 뿐더러, 그나마 매직 존슨의 길목을 막는다 치면, 매직이 기동력 좋은 양 사이드의 다른 레이커스 선수들에게 완벽한 어시스트를 넣어주니까요.
혹, 이들의 속공을 노련한 수비로 막는다 하더라도, 매직 존슨 같은 패싱력이 좋은 선수들이 상대팀의 수비대형이 완전히 갖춰지기 전에 "얼리 오펜스"로 득점할 수 있도록 빼어난 어시스트 패스를 찔러 넣어주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막는다는 것도 실상은 별 효용이 없습니다.
결국, 매직 존슨 한 선수로부터 파생되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80년대 레이커스의 런-앤-건 농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던 셈입니다.
이상, 위의 글에서 살펴본 바, 역사를 자세히 돌아봐도 런-앤-건 농구로 현 NBA에서 우승을 하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런-앤-건 농구로 우승까지 하며 십년 가까이 그 위세를 떨쳤던 레이커스에는 매직 존슨이라는 거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매직 존슨 하나 때문에 가능한 공격대형은 아니었습니다. 탄탄한 수비와 팀워크, 강력한 제공권 장악, 훌륭한 감독의 전술, 그리고 모든 팀원들이 갖추고 있었던 기동력과 페이스업 기술 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잘 달리는 농구를 한 팀들은 그 당시에도 있었고 (어빙의 식서스, 거빈의 스퍼스, 잉글리쉬의 너겟츠), 또 현재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셋째 요건을 제외한 나머지 사항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우승까지는 힘들었던 것이죠.
매직 존슨같은 선수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겁니다. 그러나 속공을 잘 이끌 수 있는 특급 포인트 가드를 보유한 팀이 위의 나머지 네 가지 사항도 잘 준수한다면, 런-앤-건 농구로 우승할 수 있는 팀이 NBA에 또 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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