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 시즌을 앞두고 LA 레이커스가 가진 목표는 오직 우승뿐이었고, 현재도 그들은 우승을 향해 매경기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도 레이커스를 이번 시즌의 우승후보로 꼽고 있으며, 팬들의 관심사도 올해의 주인공이 레이커스일지 아니면 다른 팀일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런 분위기와 조건 속에서 만약 그들이 올시즌에 챔피언이 되지 못한다면, 곧 치솟게 될 코비 브라이언트와 앤드루 바이넘의 연봉, 그리고 라마 오덤의 계약 문제를 고려할 때 다음 시즌에도 우승에 도전할만한 전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우승을 해야 본전인 현재의 상황 속에서 레이커스는 12월 9일까지 17승 2패로 서부컨퍼런스 1위를 달리고 있는데, 이는 보스턴 셀틱스에 이어 전체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보스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더불어 8할 이상으로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주전과 벤치의 조화도 훌륭한 편이다. 이대로 간다면 목표했던 우승도 꿈에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즌이 진행될수록 초반의 압도적인 모습이 사라지면서 서서히 약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록을 살펴보면서 하나둘씩 파헤쳐보도록 하자.
늘어난 실점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 일컬어지던 2008 파이널에서 패한 후 레이커스에게 주어진 과제는 수비였다. 그들이 자랑했던 공격력은 상대의 수비벽에 철저히 가로막혔던 반면 상대는 허약한 레이커스의 수비를 파고들며 챔피언이 되었다.
이때의 참담했던 결과를 잘 기억하고 있던 레이커스의 코칭스탭과 선수들은 수비전술을 연마하며 08-09 시즌을 준비했다. 이들은 1-2-2 지역방어를 기본으로 공을 가진 선수를 협력수비로 에워싸고, 당황한 나머지 비어있는 위크사이드로 패스하면 중간에서 이를 가로채 속공으로 연결하는 식이다. 이때 패스가 위크사이드에 있는 선수에게 제대로 도달하면 재빠른 수비로테이션으로 오픈 찬스가 생기는 것을 막는다. 게다가 골밑에는 블락능력이 좋은 앤드루 바이넘이 버티고 있어 페인트존에서의 수비도 어느 정도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레이커스의 전술은 시즌 초반 7경기에서 단 한 차례도 세자리수 실점을 허용하지 않으며 대단한 효과를 보였다. 이때까지 레이커스는 104.7득점과 86.7실점로 무려 18점이나 되는 득실 마진을 창출해내며 7연승을 거뒀고, 전문가와 팬들은 강력해진 레이커스의 수비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이번 시즌이야말로 레이커스가 주인공이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하지만 이후 12경기에서 레이커스는 무려 7차례나 상대에 100점 이상을 내줬고, 이 가운데 2경기에서 패배를 기록했다. 시즌 초반 좋았던 레이커스의 수비가 무너진 까닭은 무엇일까.
① 상대팀에 돌파에 능한 플레이어가 있다
샤킬 오닐이 있을 때부터 레이커스는 상대 포인트가드를 효율적으로 막지 못했다. 스무쉬 파커가 주전으로 활약하던 2005-06, 2006-07 두 시즌은 자동문으로 여겨질 정도로 참혹한 모습이었고, 이는 그나마 수비에 대한 마인드가 있는 베테랑 데렉 피셔가 돌아왔던 지난 시즌에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발이 느린 피셔가 여전히 주전 1번을 맡고 있는 이번 시즌 역시 발빠른 상대 가드에 대한 수비는 제자리걸음이다. 발빠른 조던 파마라고 해서 다를건 없다. 마크맨 개인에게 모든 것을 맡겼던 작년보다 협력수비로 차단하는 올시즌은 전술상으로는 발전된 모습이지만, 팀 디펜스 자체가 오밀조밀한 편이 아니다보니 상대 가드에게 킥아웃을 허용해 외곽에서 더 큰 것을 얻어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② 상대가 더많은 리바운드를 따냈다
각각 레이커스를 무너뜨린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패배 직전까지 몰아넣은 워싱턴 위저즈는 강한 리바운드로 승부를 뒤집었거나 뒤집을뻔 했다. 레이커스의 앤드루 바이넘, 파우 가솔, 라마 오덤은 모두 리바운드가 괜찮은 빅맨이지만, 박스아웃을 철저히 하지 않아 상대에게 공격리바운드를 허용하는 모습을 자주 연출한다. 경기 중 혹은 경기 후에 이런 점에 대해 지적을 받으면 곧 나아지기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잘못된 습관을 반복하고 있다.
③ 스틸을 노리는 레이커스의 수비
이는 최근에 나타나는 레이커스 수비 자체의 문제이다. 앞서 이번 시즌 레이커스는 공을 가진 상대 선수를 코너에 몰아넣고 패싱레인을 차단하는 수비를 펼친다고 언급한바 있다. 지금까지 잘 먹혀들어가면서 레이커스는 현재까지 리그에서 경기당 스틸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이것이 바로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트레버 아리자, 코비 브라이언트는 상대의 턴오버를 유발하는 것보다 스틸 그 자체에 치중하고 있는데, 스틸 실패로 인해 마크맨이 비고 수비 전체가 무너지면서 오히려 더 쉽게 점수를 허용하는 상황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또한 스틸을 유도하기 위해 어설프게 헬프를 하다 정작 마크해야 할 상대에게 오픈찬스를 허용해 손쉬운 득점을 내주는 상황 또한 빈번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줄어든 벤치 득점
벤치 멤버들의 득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백업으로 뛰는 선수들의 득점력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승률이 높은 팀의 경우는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어 경기 막판을 가비지타임으로 만들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레이커스는 피셔, 코비, 블라디미르 라드마노비치, 가솔, 바이넘으로 구성된 스타팅라인업을 내세우고, 로스터에 등록된 나머지 7명 가운데 오덤, 아리자, 파마, 사샤 부야치치를 백업으로 출전시킨다. 만약 사실상 승부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졌다면 크리스 밈, 조쉬 파월, 룩 월튼이 코트 위로 나오게 된다.
한 시즌 내내 경기당 48.5분을 소화했던 윌트 체임벌린같은 괴물도 존재하지만, 대다수의 NBA 선수들은 체력적으로 완벽하지 못할 뿐더러 82게임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위해서는 적절한 휴식시간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주전들이 휴식을 취하는 시간대는 1쿼터 후반부터 2쿼터 초반, 3쿼터 후반부터 4쿼터 후반이다. 레이커스 역시 이 시간대에는 백업멤버들을 내보내며 주전들의 체력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으며, 시즌 초반에는 벤치멤버들이 주전에 버금가는 스탯을 쌓아올리며 연승행진의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시즌 초반 7연승을 달릴 때의 레이커스는 1쿼터에는 다소 열세를 보이다가도 주전과 벤치가 혼합된 2쿼터에 수비를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다시 주전이 등장하는 3쿼터에 강력한 공수로 20점차 이상의 리드를 만들고 4쿼터를 백업멤버만 출전시키는 여유를 보였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실종된지 오래다.
백업멤버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2쿼터 초반과 4쿼터 초반에 팀 공격력 자체가 답답해지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이때는 보통 파마-부야치치-아리자-오덤-바이넘의 라인업이 가동되는데, 어떻게 보면 수비도 괜찮고 내외곽이 비교적 고른, 적절한 라인업이라고 평할 수도 있겠지만, 득점을 믿고 맡길만한 인재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파머_ 오픈찬스에서 패스를 받아 3점을 시도하거나 페네트레이션 후 레이업 혹은 덩크를 통해 득점을 올리지만, 3점은 기복이 심한 편이다.
부야치치_ 오로지 3점만이 장기이지만 이번 시즌 들어 이마저도 개점휴업 상태이다. 사실 부야치치는 2004년에 데뷔한 이후 '연습 때는 코비보다 슛감각이 좋다'는 평을 받았어도 정작 경기에서는 오픈찬스를 놓치기 일쑤였지만, 지난 시즌에 환골탈태하며 파이널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보인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2년쯤 전으로 돌아간듯한 모습.
아리자_ 시즌 초반 한때 여러 차례 3점을 성공시키며 드디어 외곽슛을 장착한듯 했지만 이후 완벽한 찬스가 생겨도 3점을 넣지못하고 있다. 여전히 점프슛에는 자신없는듯 득점으로 연결된 69개의 필드골 가운데 무려 52개가 인사이드에서 나왔다.
오덤_ 반대로 성공률은 좋지만 3점을 잘 시도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상황인지라 상대편으로서는 외곽은 적절하게 견제만 해주고 페인트존을 철저히 지키면 레이커스의 공격을 차단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가.
한때 35점은 가볍게 넘기던 벤치득점이 최근에 와서는 30점을 넘기기도 버겁다보니 20점에 가까운 리드도 백업멤버들이 코트에 있는 동안 다 날아가고 어느 틈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주전들이 나가서 위기를 수습하는 것이 최근 레이커스의 경기 패턴이다. 필 잭슨 감독은 시간을 정해놓고 백업멤버들을 투입시켜 적응력을 키워보려했지만 이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바 있다.
코비의 경우 지난 여름 올림픽 출전으로 인한 과부하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바이넘은 아직 무릎부상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출전시간이 조금 줄어든 것이 사실이고, 벤치자원들의 성장을 위해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군은 지나친 휴식으로 감각을 잃게 하고 상대의 기를 살려주면서까지 벤치멤버들을 가동시켰던 것은 잭슨 감독 자신의 말대로 실수였다. 앞으로 주전의 비중이 얼마나 늘어나게 될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마치며
레이커스는 현재까지 성적과 득실마진에서 보스턴, 클리블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좋지않은 모습이 계속 이어진다면 레이커스의 패배는 더욱 늘어나고 득실마진은 점점 줄어들어 결국 지난 시즌으로 되돌아갈 공산이 크다.
가장 시급한 것은 수비다. 벤치득점이 줄어들더라도 실점을 더욱 줄일 수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지난 파이널에서 뼈저리게 느꼈듯 우승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디펜스다.
레이커스 선수들은 워싱턴 위저즈와의 경기에서 가까스로 승리를 거둔 후 라커룸에서 피셔가 칠판에 적었던 '보스턴 파이널', '24'라는 숫자를 가슴 속에 새기고 매경기에 임해야 할 것이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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