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LA 레이커스전을 앞두고, 주전 포인트가드 모 윌리암스가 어깨 부상으로 최소 4주 결장 판정을 받았을 때만 해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연승을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지난 시즌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클리블랜드의 정규시즌 1위에 큰 공헌을 했고 이번 시즌 역시 변함없는 활약으로 클리블랜드의 가드진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윌리암스 대신 선발 포인트가드로 출전한 딜론테 웨스트마저 손가락 부상으로 결장하자 클리블랜드의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들이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웰리암스와 웨스트가 팀을 이탈한 이후 치른 8경기를 모두 이기며 리그 단독 1위로 치고 올라갔다. 시즌 초반 5할 승률을 넘나들며 우려를 자아냈지만 52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41승 11패를 기록, 66승 16패를 거뒀던 지난 시즌과 똑같은 페이스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클리블랜드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괴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지난 시즌 주전 가드진이 모두 빠진 공백을 나머지 선수들이 잘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클리블랜드의 연승 비결을 살펴보자.
부상 선수들의 역할
부상자 속출에 대한 클리블랜드의 대응책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 부상 선수들이 맡고 있던 역할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윌리암스는 에이스 르브론 제임스에 이은 명실상부한 제2 공격옵션이었다. 돌파가 주무기인 르브론과 조화를 이뤄 정교한 외곽슛(3점성공율 42.9%)으로 상대 수비진의 빈틈을 노렸다. 또한 지난 여름 영입한 샤킬 오닐을 비롯한 골밑 플레이어들에게 르브론 대신 패스를 넣어주는 역할도 수행했다. 윌리암스가 패싱플레이를 잘 수행해주면서 클리블랜드의 빅맨진뿐아니라 르브론의 컷인 빈도도 크게 늘었고, 그동안 르브론에게 집중되었던 볼소유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됐다.
뿐만아니라 르브론이 쉬는 2쿼터와 4쿼터 초반에는 스스로 슛찬스를 노리는 에이스 역할을 맡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포인트가드의 몸을 한 슈팅가드'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윌리암스에게는 최적의 역할이었다.
웨스트는 지난 시즌에는 선발 슈팅가드로 뛰었지만 이번 시즌에는 앤써니 파커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고 백업 포인트가드로 나오고 있다. 웨스트의 신장(191cm)은 슈팅가드 포지션에서는 약점이었지만 포인트가드 포지션에서는 오히려 강점으로 변했다. 운동능력과 기술, 터프함을 겸비한 왼손잡이 웨스트는 일반적으로 단신이거나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상대 백업 포인트가드를 상대로 포스트업을 통해 손쉬운 득점을 올릴 수 있었다. 작년 12월 밀워키의 루크 리드노어를 상대로 24분간 21득점을 몰아넣은 것이 좋은 예다.
근성있는 수비수인 웨스트는 상대가 공격형 가드를 중심으로 공격을 펼칠 때 이를 수비하는 역할도 맡고 있었다.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를 모두 수비할 수 있는 웨스트는 상대 공격을 백코트에서부터 압박하며 리듬을 무너뜨렸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두 선수가 모두 부상으로 물러나자, 마이크 브라운 감독은 주어진 자원을 가장 적절하게 재배치해 이들의 공백을 메우려 했다.
깁슨의 재기용
대니얼 깁슨에게 이번 시즌은 알다가도 모를 시간이었을것이다. 발가락 부상에 시달린 지난 시즌에는 중용됐지만 최고의 몸상태를 보인 이번 시즌에는 오히려 벤치를 지키는 일이 늘었기 때문이다. 파커와 자마리오 문 등이 영입되면서 포지션 경쟁이 심해졌고 슈팅가드를 보기에는 신장(188cm)이, 포인트가드를 보기에는 볼 핸들링 능력이 부족했던 깁슨이 슈팅 능력만으로 출장시간을 확보하기는 무리였다. 여름 내내 고향에서 수비력 향상에 주력했지만 이를 보여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결국 깁슨은 윌리암스와 웨스트가 부상당하기 전 8경기에서 평균 7분도 안되는 출장시간을 받아야 했다. 리그 3점성공율 1위(47.3%)를 기록하고 있는 깁슨에게는 납득하기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윌리암스와 웨스트가 빠지자 깁슨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지난달 23일(이하 현지시각) 오클라호마 시티와의 홈경기부터 선발 출장한 깁슨은 7경기 평균 36분간 코트를 누비며 12.4점을 올리고 있다. 3점성공율도 46%로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외곽슛에서는 윌리암스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깁슨은 전통적인 리딩가드 스타일의 가드는 아니다. 패스나 드리블보다는 볼 없이 움직인 후 점프슛을 노린다. 따라서 윌리암스가 수행했던 포인트가드 역할은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깁슨은 리그에서 르브론의 돌파력을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가드이기도 하다. 르브론의 패스를 받을 수 있는 위치로 향하는 능력은 깁슨의 신인 시즌이었던 2006-2007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3점슛 7개를 몰아넣으며 일찌기 검증된 바 있다. 이때문에 르브론의 두터운 신뢰를 얻어온 깁슨은 이번 시즌에도 변함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발로 나온 첫 경기였던 오클라호마 시티 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르브론의 패스를 받아 결승 3점슛을 넣은 장면은 시즌 최고 명장면중 하나였다.
슈터가 규칙적인 출장시간을 얻지 못하면 슛감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걸 감안할 때, 깁슨의 자기관리는 놀라운 수준이다. 브라운 감독과 르브론이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이유다.
돌아온 흑상어 오닐
시즌 초반 오닐이 부진한 모습을 보였을 때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72년생으로 다음달 6일 38세가 되는 오닐의 선수생명이 이제 끝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2천만 달러에 달하는 연봉을 감수해가며 오닐을 영입한 대니 페리 단장은 집중 성토의 대상이 됐고, 이번 시즌 만기 계약인 오닐이 올스타 휴식기 이전에 트레이드되리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오닐은 역시 오닐이었다. 윌리암스와 웨스트가 빠지고 더 많은 역할을 부여받자 오닐은 왕년의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8경기에서 평균 28분동안 출장해서 득점 16.7점, 야투율은 무려 65%에 달하고 있다. 골밑에서 자리잡는 과정이 한층 간결해졌고, 일단 볼을 받으면 '골밑에서 오닐을 1:1로 막는 것은 불가능'이라는 것이 변함없이 증명되고 있다. 신장 198cm에 불과한 척 헤이즈(휴스턴 로케츠)를 상대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던 시즌 초와는 딴판인 모습이다. 최근 르브론이 '오닐은 우리 모두를 속였다. 괜히 모두가 걱정하게 만들었으니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 단순한 농담은 아닌 것이다.
오닐 효과는 개인 성적뿐아니라 팀 성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NBA.com 칼럼니스트 존 슈만에 의하면 클리블랜드는 페인트존 평균득점 순위에서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시즌 28위에 비해 크게 오른 수치다. 오닐이 제 모습을 찾으면서 오닐에게 더블팀이 붙기 시작했고, 반대 사이드에서 뛰어드는 앤더슨 바레장과 J.J. 힉슨에게는 노마크 찬스가 연달아 주어지고 있다. 게다가 상대 수비진은 이제 골밑 돌파를 시도하는 르브론을 상대로 더이상 빅맨이 헬프디펜스를 하기 힘들어졌다. 바로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오닐에게 패스가 갈 경우 자동을 2점을 헌납하게 되기 때문이다.
헬프디펜스의 부담에서 벗어난 르브론은 이번 시즌 골밑슛 성공율 70.5%를 기록, 지난 시즌(68.5%)보다 높은 성공율을 보이고 있다. 오닐 영입 당시 제기된 '두 명 모두 골밑 중심 플레이를 펼치기 때문에 활동 반경이 겹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사실이 아니었음이 증명된 셈이다.
오닐 효과는 수비면에서도 뚜렷히 나타나고 있다. 클리블랜드는 팀 수비 성적 중요 부문인 최소실점, 최저 야투허용율, 최저 페인트존 실점 부문에서 모두 선두를 달리고 있다. 오닐이 커다란 몸을 이용해 상대 골밑 공격을 철저히 막음에 따라 상대팀이 골밑 공략을 통한 확률농구를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느린 발때문에 2:2 수비에서 문제를 보일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실보다는 득이 더 많았다.
오닐의 골밑 존재감은 빅 센터가 있는 강팀을 상대로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난 시즌 클리블랜드는 레이커스와의 정규시즌 두 경기를 통해 페인트존 득점에서 104-52로 큰 열세를 보였다. 파우 가솔과 앤드루 바이넘이 버티는 골밑을 공략할 선수가 사실상 르브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골밑에서 멀리 떨어져 슛을 던져야 했던 결과는 두 경기 모두 완패였다. 하지만 이번 시즌 오닐이 가세한 이후 치른 두 경기에서, 클리블랜드는 레이커스 골밑을 상대로 88-74 우세를 보였다. 오닐이 바이넘을 파울트러블로 몰아넣으며 골밑을 굳게 지킨 덕분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2전 전승이었다.
올랜도전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시즌 컨퍼런스 파이널 6경기에서 하워드는 평균 20.6득점 13.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올랜도가 승리한 네 경기에서 하워드의 평균득점은 30점을 웃돌았다. 클리블랜드의 골밑 자원으로는 하워드를 전혀 막지 못했고, 이를 돕기 위해 수비 진형을 좁히면 어김없이 올랜도의 3점슛이 폭발했다. 하지만 오닐이 가세한 이번 시즌 1차전에서 하워드는 파울트러블에 시달리며 11득점에 그쳤다. 하워드에게 통산 평균 13.6점만을 허용한 오닐의 존재감이 증명된 것이다.
오닐이 가져다 준 또 하나의 이점은 지난 시즌까지 선발 센터로 뛰었던 지드루너스 일가우스카스가 벤치에서 나올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221cm의 장신에 고감도 외곽 슈팅 능력(이번 시즌 3점성공율 55%)을 겸비한 일가우스카스는 지난 시즌에 평균 12.9득점을 기록한 준수한 선수다. 르브론의 신인 시절부터 함께 해온 유일한 선수로 팀 시스템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시즌 초반 익숙치 않은 벤치 출장으로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지만 금방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일가우스카스는 오닐과 번갈아 출전하며 변함없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가우스카스의 중장거리 슈팅 능력을 이용해 오닐과 함께 코트에 서는 '트윈 타워'가 가동될 때는 상대 빅맨진을 공포에 빠뜨리기도 한다. 오닐과 일가우스카스는 이번 시즌 평균 18.4득점, 12.2리바운드를 합작하며 최강의 센터진을 구축하고 있다.
각 팀의 수비가 강력해지고 골밑이 강한 팀이 우위를 갖는 플레이오프가 다가올수록 오닐의 가치는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Mr. Everything' 르브론
하지만 위의 모든 시도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르브론의 존재 때문이다. 윌리암스와 웨스트가 빠진 후 르브론은 차원이 다른 농구를 펼치고 있다.
르브론은 지단달 21일 레이커스전부터 9경기를 치르는 동안 6경기에서는 30점 이상을, 5경기에서는 두 자릿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 기간동안 르브론이 기록한 평균성적은 30.8득점 6.9리바운드 10.1어시스트에 달한다. 포지션을 알아맞히기 힘든 전천후 활약이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 나타나는 르브론의 다재다능함은 각종 수치를 능가한다. 르브론은 경기 초반에는 포워드로 출장, 리딩 능력이 떨어지는 깁슨을 대신해 포인트포워드 역할을 하며 오닐과 깁슨, 힉슨 등에게 찬스를 만들어준다. 르브론의 한 경기 어시스트 중 반 정도가 이 시간대에 나온다. 1쿼터 중반에 접어들어 빅맨 파트너가 일가우스카스와 바레장으로 바뀌면 6~7년간 호흡을 맞춰온 이들과 2:2 플레이를 통해 득점을 올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르브론의 모습이다.
1쿼터 후반이 되면 더욱더 놀라운 모습을 보인다. 이 시간대에 백업 포인트가드로 나오던 웨스트를 대신해 아예 포인트가드를 맡는 것이다. 윙 플레이어로 문과 자와드 윌리암스가 나오면 코트 위의 다섯 명이 모두 203cm를 넘는 초 장신 라인업이 완성된다. 신장 203cm에 몸무게 113kg이라는 파워포워드에나 어울리는 체구에도 불구하고 상대 포인트가드와의 스피드 경쟁에 밀리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대로 상대팀은 190cm 내외의 포인트가드가 르브론을 막아야 하므로 큰 고민에 빠지게 된다. 신장차를 이용해 상대 백업 포인트가드를 압박하던 웨스트의 역할을 더 크고 더 빠르며 더 높은 르브론이 맡는 것이다.
2쿼터 초반에 윌리암스의 역할을 대신해 공격을 이끌던 르브론은 2쿼터 말미에는 파워포워드로 변신한다. 3점 라인 주변에 슈터 3명을 세워놓고 바레장과 2:2 공격을 하는 이 공격시스템을 클리블랜드 코칭스태프들은 '네일(손톱) 공격'이라 부른다. 르브론과 바레장이라는 두 손톱으로 상대 수비진형을 찢어낸 후 르브론이 직접 득점을 시도하거나 패스를 통해 두 번째 찬스를 노린다. 최그 최고의 패서 중 하나인 르브론이 언제든지 외곽의 슈터들에게 패스를 해줄 수 있으므로 상대 수비진의 간격이 멀어질 수밖에 없고, 르브론이 돌파를 할 때 서로 도와 막아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르브론은 이렇게 24분 동안 포인트포워드-주득점원-순수 포인트가드-주득점원-파워포워드 등의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이 모두에서 완벽한 결과를 이끌어내고 있다. 리그 역사를 통틀어봐도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선수는 극히 드물다. 주전 포인트가드진 두 명이 모두 결장해도 볼 흐름이 오히려 좋아지는 이유고 이번 시즌 동부컨퍼런스 이달의 선수를 모두 휩쓸고 있는 이유다.
죽의 미학
클리블랜드는 핵심 선수 두 명을 잃었지만 남은 선수들이 역할을 조금씩 늘리며 무패 가도를 달려왔다. 웨스트는 6일 팀 훈련을 시작했고 올스타 휴식기간 후에는 그동안 재활에 힘쓰고 있던 리온 포우가 윌리암스와 함께 복귀한다. 위기를 넘긴 것이다.
벽돌을 차곡차곡 채운 상자에서 벽돌 한 장을 빼면 벽돌이 빠진 자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새 벽돌을 채워넣지 않는 이상 그 구멍은 막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릇에 죽을 가득 채운 후 한 숟가락을 떠내도 죽을 떠낸 자리는 금방 사라진다. 주위의 죽이 빈 공간을 메우면서 흔적을 지우는 것이다.
'죽의 미학'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클리블랜드가 창단 40주년을 맞아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볼 수 있을지에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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