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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 시즌까지 역대 NBA 선수 가운데 2만 득점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30명에 불과했다. 리그가 창설된 지 60년이 되도록 2만점의 고지를 밟아 본 선수가 그 정도라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기록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산술적으로 따져보면 12시즌 동안 단 한 경기도 빠짐 없이 20득점씩을 기록한다 해도 320점이 모자랄 정도이기 때문.

그 어려운 기록을 2007-08 시즌에는 2명의 선수가 달성했다. 바로 LA 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와 보스턴 셀틱스의 케빈 가넷. 뛰어난 농구선수들이 모인 NBA에서도 두 선수는 놀라운 기량을 과시하며 수 년째 수퍼스타로 남아 있다.

샘 카셀, 라트렐 스프리웰과 함께 뛰며 팀을 서부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시켰던 2003-04시즌을 제외하면 가넷은 동료복과는 거리가 먼 선수였다. 최근 몇 년간은 각종 트레이드 루머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미네소타라는 협소한 마켓을 떠나 보스턴으로 이적한 가넷은 팀 동료 레이 알렌, 폴 피어스와 함께 시즌 초부터 능력을 발휘, 팀을 동부컨퍼런스 1위 자리에 올려놓았다. 알렌과 가넷이 부상으로 결장하는 동안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건강을 회복한 이후 보스턴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매우 안정된 전력을 유지했다. 2월 이후 P.J. 브라운과 샘 카셀의 가세로 선수층은 더욱 두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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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오프에서 동부컨퍼런스 2라운드까지는 모두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며 언론과 팬들의 의구심을 자아내던 보스턴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디트로이트를, 파이널에서는 LA 레이커스를 각각 4승 2패로 물리치고 22년만에 NBA 최강팀의 자리에 올랐다. 가넷은 2007-08 시즌 올해의 수비수상 수상자답게 강력한 보스턴의 디펜스의 중심에 서서 팀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프로 데뷔 13시즌만에 처음으로 경험하는 감격적인 우승이었다.

레이커스의 코비는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완패한 이후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 리그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은 바 있다. 필 잭슨, 매직 존슨, 레지 밀러 등의 만류로 생각을 바꾸며 팀에 잔류, 3연패 시절의 동료 데릭 피셔의 가세와 어린 센터 앤드류 바이넘의 급성장 덕분에 한때 팀을 서부컨퍼런스 1위 자리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1월 중순 들어 바이넘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며 2006-07 시즌의 악몽이 재연되는듯 했다.

위기에 몰렸던 레이커스는 말그대로 대박 트레이드를 성공시키며 분위기와 전력을 한꺼번에 업그레이드시켰다.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올스타 빅맨 파우 가솔이 레이커스에 입단한 것이다. 이후 레이커스는 승승장구하며 서부컨퍼런스 1위로 시즌을 마쳤고, 플레이오프에서도 그 기세는 식을 줄 몰랐다. 덴버, 유타, 지난 시즌 우승팀인 샌안토니오 등 서부의 강호들을 연파하고 파이널에 진출, 21년만에 클래식 매치를 성사시키는 데 성공했다. 개인적으로도 프로 데뷔 후 12년만에 처음으로 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하지만 코비는 보스턴의 거미줄 같은 수비에 꽁꽁 묶여 제몫을 하지 못하며 우승을 눈앞에 두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고졸 출신 수퍼스타라는 공통점과 화려한 플레이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케빈 가넷과 코비 브라이언트. 폭발적인 운동능력으로 젊음을 자랑하던 그들은 산전수전을 다 겪고 이제는 30대에 접어들어 노련한 베테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코비는 8월 23일에 만 30세가 된다). 전통의 라이벌인 보스턴과 LA의 관계처럼 각자의 팀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펼칠 그들의 활약이 더욱 기대된다.


Rank Player PTS
1. Kareem Abdul-Jabbar 38387
2. Karl Malone 36928
3. Michael Jordan 32292
4. Wilt Chamberlain 31419
5. Moses Malone 27409
6. Elvin Hayes 27313
7. Hakeem Olajuwon 26946
8. Oscar Robertson 26710
9. Dominique Wilkins 26668
10. John Havlicek 26395
11. Shaquille O'Neal 26286
12. Alex English 25613
13. Reggie Miller 25279
14. Jerry West 25192
15. Patrick Ewing 24815
16. Charles Barkley 23757
17. Robert Parish 23334
18. Adrian Dantley 23177
19. Elgin Baylor 23149
20. Allen Iverson 22988
21. Clyde Drexler 22195
22. Gary Payton 21813
23. Larry Bird 21791
24. Kobe Bryant 21619
25. Hal Greer 21586
26. Walt Bellamy 20941
27. Bob Pettit 20880
28. David Robinson 20790
29. George Gervin 20708
30. Mitch Richmond 20497
  31. Kevin Garnett 20378
32. Tom Chambers 2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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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NBA 이적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조쉬 스미스가 9일(이하 한국시간)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러브콜을 받았다. 애틀랜타의 한 일간지에서 밝힌 오퍼시트 금액은 5년간 5800만 달러로 알려졌다.

하지만 멤피스의 애정공세는 무위로 그칠 공산이 크다. 애틀랜타의 릭 선드 단장은 여름방학에 돌입하며 ‘두 명의 조쉬‘는 어떠한 오퍼의 조건에도 지킬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게다가 조쉬 칠드레스의 충격적인 그리스 행으로 남은 이만은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비제한적 FA인 조쉬 스미스는 직접 필라델피아와 와초비아 센터에 방문하는 등 관계자의 애를 태우게 만들었지만 지난 달 엘튼 브랜드의 필라델피아 행으로 사실상 이적은 결렬됐다. 관심을 보였던 LA 클리퍼스도 파격가에 마커스 캠비를 영입함에 따라 조쉬 스미스 영입경쟁에서 발을 떼었다.

멤피스는 이미 지난 시즌 LA 레이커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프랜차이즈 스타 파우 가솔을 보내는 등 대대적인 리빌딩을 선언했다. 특히 가솔의 트레이드로 영입했던 콰미 브라운의 디트로이트 행과 지난 토요일 팀 내 FA인 케이시 재콥슨과 안드레 브라운의 재계약을 포기하며 이번 조쉬 스미스의 오퍼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암시했다. 프론트라인의 공백을 채우겠다는 것이다.

애틀랜타 호크스는 지난 시즌 염원하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루었고 디펜딩 챔피언 보스턴 셀틱스를 탈락 직전으로 몰아넣는 등 데뷔 이래 전력이나 분위기 면에서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스미스 입장에서는 이득 없는 모험을 감행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력보강이 이루어지는 서부지구에서 불확실한 멤피스행보다 프랜차이즈 스타로서의 명분과 플레이오프 안정권을 택하는 것이 누가 봐도 옳은 선택이기 때문. 상황이 이렇다보니 애틀랜타의 잔류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2004년 애틀랜타에 입단한 스미스는 대선배인 도미니크 윌킨스의 져지를 입고 슬램덩크 콘테스트에 우승하는 등 프랜차이즈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다. 지난 시즌에는 경기당 17.2점 8.2리바운드 2.8블락을 기록하며 공수에서 팀에 공헌하였다. 애틀랜타는 스미스의 활약에 힘입어 지난 시즌 9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다.

멤피스가 오퍼시트를 제시함에 따라 애틀랜타 측은 일주일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스미스의 에이전트인 월라스 프래더는 멤피스 측의 자세한 세부안을 검토하여 심사숙고 할 것이라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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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이하 한국시간) NBA의 차기시즌인 2008-09 시범경기 및 정규시즌의 스케줄이 발표 되었다. 30개 팀이 각각 82경기를 치르게 되는 정규시즌은 도합 1230경기다.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은 10월 28일 개막전을 시작으로 4월 15일 마침표를 찍는다. 사무국은 스케줄과 더불어서 ABC와 ESPN, TNT 등 굵직한 전국방송사들의 편성표도 공개하여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NBA와 연을 맺은지 25년째인 TNT는 올해도 알찬 편성으로 안방을 찾는다. 개막일인 10월 29일에는 더블헤더 중계를 통해 팬들의 오랜 갈증을 해소시켜줄 것이다. 첫 경기는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지난 시즌 챔피언 보스턴 셀틱스의 리턴 매치다. 양 팀은 지난 2007-08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파이널로 가는 마지막 티켓을 두고 치열한 승부를 펼친 바 있다. 이어지는 두 번째 경기는 MVP 코비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LA 레이커스와 서부지구의 신흥강호로 기대를 모으는 포틀랜드 블레이저스와의 한 판 승부가 될 예정이다. 특히 부상으로 전 시즌을 결장했던 그렉 오든이 건강하게 코트로 돌아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TNT는 31일에도 알토란같은 편성표를 확보하며 타 방송국의 부러움을 살 전망이다. 텍사스의 앙숙 휴스턴 로케츠와 댈러스 매버릭스의 경기를 시작으로 크리스 폴과 스티브 내쉬가 현역 최고의 포인트 가드 자리를 두고 자웅을 겨루게 된다. 특히 휴스턴은 새둥지를 튼 론 아테스트가 합류함에 따라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나 야오 밍같은 기존 스타들과의 시너지 효과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 할 수 있을 전망이다.

둘째 날인 30일은 ESPN이 후발주자로 나선다. TNT와 마찬가지로 ESPN은 더블헤더 중계를 편성하여 2배의 즐거움을 팬들에게 선사할 예정이다. 첫 번째 선택으로 뉴-클래식 더비를 택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빅3‘와 피닉스 선즈의 ’빅3‘가 격돌하는 이 경기는 수년간 이어온 라이벌 관계를 회상하면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어서 개막전답지 않은 치열한 승부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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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경기 역시 빅 매치로 일찌감치 채널고정을 예약했다. 이번 여름 이적 시장을 뜨겁게 달군 배런 데이비스는 클리퍼스 소속으로 정식 데뷔전을 전국방송으로 알리는 행운을 누리게 됐다. 스테이플 센터의 진정한 안방자리를 두고 레이커스와 승부를 펼치게 될 LA 클리퍼스는 정말 오랜만에 개막전 방송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11월 첫째 날에 열리는 더블헤더(ESPN)의 첫 경기는 이번 드래프트 1번 픽에 빛나는 데릭 로즈의 시카고 불스로 낙점됐다.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보스턴 셀틱스. 첫 전국방송 데뷔치고는 힘겨운 일전이 되겠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좋은 활약을 펼친다면 값진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TNT와 ESPN 못지않게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ABC도 빼놓을 수 없다. ABC는 10월 26일 샌안토니오와 피닉스, 보스턴과 레이커스의 파이널 리턴매치 등 굵직한 시범경기를 더블헤더로 편성하여 벌써부터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 있다. 특히 총 18차례의 정규시즌 독점중계를 계약을 비롯하여 2월 22일부터 정규시즌 폐막까지 8차례 일요일 안방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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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08년 10월 10일부터 21일(이하 한국시간) 사이에 치러질 2008-09 NBA 시범경기에 유로리그 명문 팀들이 방문한다. 데이비드 스턴 총재는 “전 세계 농구 저변을 넓히기 위한 일환으로 유로리그와 경기를 추진하게 됐다”며 이벤트 배경에 대해 밝혔다.

이번 시범경기 스케줄에 포함된 유로리그 팀은 러시아의 CSKA 모스크바,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 리투아니아의 리투보스 라이타스로 총 3개 팀이다. 이들은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LA 레이커스, 동부지구의 올랜도 매직과 토론토 랩터스를 포함하여 LA 클리퍼스와 자존심 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NBA팀들과 그들의 경기장에서 함께 플레이하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라며 운을 뗀 유로리그의 CEO 조르디 베르토뮤는 “미국의 다양한 팬들에게 우리만의 플레이 스타일로 즐거움과 국제 농구의 진수를 보여 줄 수 있으리라 확신 한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말 그대로 시범경기이지만 상호간에 오랜 시간 문화와 기술을 다양한 방법으로 교류하며 관계를 돈독히 해왔다. 지난 시즌에는 EA 스포츠의 후원을 받으며 NBA팀의 유럽투어를 성공리에 마친 바 있다. 지난 1978년 워싱턴 불리츠(現 워싱턴 위저드)는 이스라엘로 날아가 텔 아비브와 역사적인 첫 유럽투어를 가졌고 1987년에는 프랑스에서 주관한 맥도널드 대회가 생겨나며 NBA팀과 유로리그간의 연결고리가 확장되기도 했다.  

‘유로리그 아메리칸 투어’는 10월 11일 통산 6회 우승에 빛나는 러시아의 강호 CSKA 모스크바와 올랜도 매직의 경기를 시작으로 그 화려한 막을 올릴 예정이다. 이후 CSKA는 15일 캐나다로 장소를 옮겨 토론토와 2번째 시합을 갖는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스페인의 명문구단 FC 바르셀로나는 19일 LA의 스테이플 센터에서 서부지구 챔피언 레이커스와의 첫 경기를 시작으로 다음날인 20일 클리퍼스나 토론토와 마지막 시합을 벌인다. 2005 ULEB 우승과 리투아니아 리그 통산 5회 우승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리투보스 라이타스는 21일 골든스테이트와의 경기를 끝으로 아메리칸 투어는 막을 내린다.

초대 손님을 맞이하는 NBA 역시 유럽으로 친선대사를 파견할 예정이다. 유럽투어에 낙점된 행운의 팀은 마이애미 히트, 뉴저지 네츠, 뉴올리언즈 호네츠 그리고 워싱턴 위저드로 바르셀로나와 베를린을 비롯하여 런던과 파리 등 유럽의 대도시들을 순회하며 각각 한 차례씩 경기를 갖는다. 

유로리그는 최근 인지도 있는 NBA 선수를 적극적으로 유입시키며 세계적인 리그의 입지를 다져가는 중이다. 지난 2006년에는 중국리그인 CBA와 파트너십을 맺음으로서 아시아로 영역을 확장하였다. 유럽인의 축제에서 세계인의 축제로 뻗어나가며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 농구계의 동향은 마치 EPL이나 프리메라리가, 세리에 등 범세계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축구리그의 시스템과 같이 다양화되고 있다. 만약 주도면밀하게 꾸준히 글로벌화를 진행해온 NBA의 노하우와 마케팅 전략이 유로리그의 잠재가능성과 조화를 이룬다면 지구촌 농구열풍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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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부에서 장기집권 하던 미국의 독주가 끝나며 세계 농구판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금메달이 미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이 전파되며 희망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생긴 것이다. 한편 농구의 올림픽 등장과 더불어 끊임없는 시도와 변화를 모색해온 FIBA는 여성 농구 종목을 채택함에 따라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아우를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번 2부에서는 최초 금메달의 탈환을 위한 미국의 새 출발과 찬란했던 드림팀의 업적, 우여곡절 끝에 리딤팀으로 명명된 2008 베이징 올림픽 사단의 탄생배경 전까지를 짚어봤다.


여성 농구 신기원 이룩한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뮌헨 올림픽에서 최대 이변을 일으키며 세간의 관심을 모은 미국-소련전의 리매치는 끝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전통의 강호 소련이 유럽의 신흥강호로 비상하던 유고슬라비아에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었다. 한편 미국은 금메달을 되찾겠다는 일념 하에 비장한 각오로 떠오르는 신예감독 노스캐롤리아나의 딘 스미스를 지휘관에 앉힘으로서 초석을 다졌다.

미국 농구협회는 스미스에게 전반적인 팀 운영권을 맡기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고 스미스 감독은 이에 보답하듯(?) NBA 신인왕 출신인 월터 데이비스를 포함하여 노스캐롤라이나 선수만 4명을 선발하는 등 끈끈한 사제관계를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의 금메달 탈환을 이끈 이는 다름 아닌 노틀담대의 득점기계인 에이드리언 댄틀리였다. 미국은 댄틀리의 활약 속에 다시 한 번 성조기를 경기장에 드높이며 명예회복을 할 수 있었다. 한편 마퀫 대학의 부치 리는 조국 푸에르토 리코 소속으로 미국전에서 35득점으로 맹활약하며 95-94의 짜릿한 승부를 연출했다. 라이벌 소련의 예기치 못한 탈락으로 결정적 동기가 사라진 미국에게 좋은 자극제가 된 셈이다.

올림픽 사상 첫 걸음마를 내딛은 여자 농구 종목에서는 남자 농구와 상반된 판도를 보였다. 미국의 독주와 소련의 2강 구도로 대변됐던 남자부와는 달리 여자부는 소련의 강세가 두드려졌기 때문이다. 소련은 미국을 112-77로 대파하는 등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했다. 당시 라트비아 공화국 출신으로 소련의 간판센터였던 우자나 세조노바는 협회 측의 출전시간 제한에도 불구하고 경기당 19점과 12리바운드를 보태며 여성 올림픽 최초의 금메달을 소련 품에 안겼다. 


정치적 대립으로 반쪽 된 1984 LA 올림픽   

서방국가와 동유럽 국가 간의 정치적 대립은 1980 모스크바 올림픽 대규모 보이콧이라는 역사상 최악의 사태로 몰아넣었다. 결국 LA 올림픽은 4년 전의 불상사를 그대로 재현함으로서 세계인의 축재라는 올림픽 슬로건을 무색하게 하였다. 동유럽권 국가들이 보복성 보이콧으로 대거 이탈하며 응수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여전히 강력한 전력을 보유했던 미국은 한결 쉽게 남-여부 금메달이라는 쾌거를 달성하며 안방잔치의 흥을 돋우었다.

84 LA 올림픽은 한국 여자 농구사와 나아가 대한민국 농구사에 있어 큰 획을 그은 해로 기억된다. 농구의 변방으로 치부됐던 대한민국이 사상 최초로 메달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대한의 여전사들은 미국에게 30점차로 대패했지만 은메달을 목에 걸며 가능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전설적인 스타 레지 밀러의 누나로도 잘 알려져있는 셰릴 밀러는 WNBA의 마이클 조던이라 불리는 리사 레슬리 이전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여제로서 올림픽 우승의 히로인이 됐다. 당시 밀러의 수비를 전담하던 대한민국의 성정아 선수는 밀러를 16점으로 묶으며 블락까지 성공시키는 등 인상적인 호수비로 분전했다. 

남성부에서는 NCAA의 명장 바비 나이트가 지휘봉을 잡으며 일찌감치 지휘체계를 굳건히 했고 ‘농구 황제’ 조던과 조지타운의 패트릭 유잉, ’제 2의 래리 버드‘로 떠올랐던 크리스 멀린이 출전하며 일약 글로벌 스타도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거친 언행과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로 명성이 자자했던 나이트 감독은 당시 어번대의 슈퍼스타 찰스 바클리의 반항적인 태도를 지적하며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시키는 결단력을 보였다. 조던은 인터뷰에서 “정말로 훌륭한 감독이지만 제발 욕만 안했으면 좋겠다”며 기자회견장을 폭소로 빠트린 일화는 나이트 감독의 이중성을 뒷받침 해주는 좋은 사례다. 나이트 감독은 인터뷰 직후 제자의 애교 섞인(?) 불만에 미소만 머금었다는 후문이다.

불같은 성격과 온갖 구설수에 오르며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이었지만 빛나는 금메달은 명장의 반열에 좋은 가산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나이트 감독은 스페인과의 결승전을 승리로 이끈 후 인터뷰에서 “2년이나 소련을 지켜봐왔다. 헌데 소련은 이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며 운을 뗀 뒤 “그들은 토너먼트에서 시종일관 무기력했고 수비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우리와 붙길 원한다면 어느 장소에서든 박살을 내줄 것”이라며 오랜 라이벌을 자극 시켰다. 4년 뒤에 찾아올 재앙도 모른 채 말이다.


뮌헨 악몽의 재림 1988 서울 올림픽 

미국 농구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추억을 꼽으라면 지난 1972년 뮌헨 올림픽과 함께 1988 서울 올림픽이 자웅을 겨루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서울에는 심판의 편파 판정도 시원찮은 전자 스코어보드도 없었다. 미국과 유럽의 좁아진 전력 차만이 확인됐을 뿐이었다. 이는 우월주의에 젖은 미국에 경각심을 울리는 한편 프로선수 참여와 함께 미국 원조 드림팀을 발족시킨 계기가 되었다. 

철천지원수인 대 소련전의 패배라는 사실과 편파 판정 없이 공정한 여건 속에 치러진 경기였기에 미국의 통산 첫 동메달이 주는 충격은 더욱 컸다. 당시 미국은 해군사관학교에 다니던 데이비드 로빈슨을 위시하여 미치 리치몬드, 대니 매닝, 댄 멀리, 허시 호킨스 등 미래의 NBA 올스타들로 가득한 팀이었다. 패를 기록하지 않고 준결승에 안착할 때까지 만해도 미국의 금메달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국민영웅 아비다스 사보니스와 소련은 미국의 장밋빛 꿈을 산산조각 내며 은메달조차 허락지 않았다. 유고슬라비아는 NBA 유로피언 전성시대를 열은 주역들이 대거 출연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 후 드라젠 페트로비치, 블라디 디박 등 유럽선수들은 NBA 진출의 물고를 틀며 글로벌화의 시동을 걸기도 했다.

한편 대한민국은 이충희와 김현준 신예 허재까지 당대 최고의 슛쟁이들로 이루어진 호화진용을 구축하며 12개국 중 9위를 차지하였다. 특히 허재는 외국의 장신 숲을 뚫고 시원시원한 돌파를 시도하며 내외각을 넘나드는 천부적 득점감각을 뽐냈다. 마치 인천 전자랜드의 정영삼처럼 말이다.

여자부에서는 미국이 소련을 꺾고 우승을 차지해 남자부의 저조한 성적으로 떨어진 미국농구의 위상을 살렸다. 신시아 쿠퍼와 카트리나 맥클레인이 이끈 미국 여자대표팀은 6전 전승으로 지난 84 LA 올림픽에 이어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위대한 탄생 ‘원조 드림팀’ 92 바르셀로나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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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NBA의 데이빗 스턴 총재는 실추된 명예 회복의 일환으로 ‘프로선수 올림픽 참여’를 IOC 설득시키기 시작했다. 변호사 출신의 스턴 총재는 수완을 발휘하여 결국 안건을 통과시켰고 미국 농구는 사상 초유의 팀을 발족시키는 신호탄을 쏘아 올릴 수 있었다. ‘꿈의 팀‘이라 명명된 드림팀은 그렇게 탄생했다.

당시 미국은 80년대 NBA를 주도했던 매직 존슨-래리 버드의 베테랑 라인을 시작으로 마이클 조던까지 각 포지션 마다 최고의 선수들로 배치가 됐다. 크리스 멀린을 제외한 10명의 선수들은 모두 ‘위대한 50명의 NBA 선수’에 뽑혔고 명예의 전당 출신이나 가까운 시일내에 입성을 기다리는 선수들이다. NBA에서는 쓸쓸한 말년을 보냈지만 대학최고의 선수였던 듀크의 크리스찬 레이트너도 신-구 조화의 마지막 퍼즐로 최고의 선택이라는 평이었다.

일부 포지션의 선발에서 잡음이 들렸지만 NBA선수들이라면 하나같이 경험해보고 싶은 무대가 올림픽일 정도로 열기는 뜨거웠다. 프로선수 참가를 불허했던 종전의 룰은 실력뿐 아니라 ‘운’까지 따라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과거에는 4년을 주기로 하는 올림픽 특성상 대학무대와 프로데뷔 사이의 시간을 비켜 가면 평생 올림픽 출전은 불가능 한 것이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개인과 조국의 명예라면 여름방학도 고사하는 것이 당시 NBA의 분위기였고 이러한 정신적 동기가 최근 대표팀에 요구되는 점이기도 하다.

시카고 불스의 간판스타 마이클 조던은 사실 처음부터 대표팀 참여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조던은 각종 언론매체에서 “내 관심사는 언제나 말했지만 오프시즌에는 충분한 휴식을 가지는 것”이라며 출전을 고사하였다. 매직 존슨과 버드의 설득으로 결국 출전을 받아들인 조던은 스페인의 휴양도시 몬테카를로에서 P.J. 칼리시모와 로드 쏜 등 코칭스태프와 함께 골프를 즐기며 회포를 풀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최고의 프로답게 연습만큼은 실전을 방불케 하며 공과 사를 구분하였다. 팀 전원이 마찬가지였다.   

철통 호위 속에 락 밴드 급 인기를 구가하며 대회기간 내내 화제가 된 드림팀은 남자농구 팀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며 승리보다 ’몇 점차로 이기나‘에 중점을 둘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했다. 아프리카의 강호 앙골라전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장에서 찰스 바클리는 “앙골라가 무슨 나라인지는 모르겠으니 시끄러운 곳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며 충만한 자신감과 입담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한편 1991년 구소련의 해체와 유고슬라비아의 내전은 남자농구 판도에 급진적 변화를 주었다. 유고슬라비아 소속의 선수들은 독립 선언을 외친 크로아티아 대표팀으로 출전했으며 구소련의 영웅 아비다스 사보니스는 리투아니아에 새 뿌리를 뻗었다. 하지만 꿈의 팀 미국과의 전력 차도 문제였지만 정치적인 문제로 국가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 유럽 팀들에게 큰 짐이 되었다.

여자부에서는 미국 여자농구 역사상 최대 이변으로 기억되는 불상사가 연출 되 희비가 엇갈렸다. 예선 개막과 함께 첫 3경기에서 평균 45.7점차의 대승을 이어갔던 미국대표팀이 준결승전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한 것. 상대는 소련 주변 연합국가 팀이었다. CIS(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라고 불리던 연합팀은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연방, 리투아니아로 이루어졌는데 소련의 해체 직후 바로 금메달을 따는 쾌거를 일궈냈다.      


그 명성 그대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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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팀’이라 명명된 미국 남자 농구대표팀은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한 번 NBA의 별들을 끌어 모았다. 역대 최고의 센터 진을 구성하며 코트 제일의 격전지인 로포스트를 강화하여 유럽 장신숲에 대항하겠다는 계산이었다. 미국은 90년대 NBA를 주름잡았던 ‘4대 센터’중 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 그리고 샤킬 오닐을 끌어들임으로서 호화골밑을 구축할 수 있었다. 한편 코트에서 돌아온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미치 리치몬드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대표팀의 세대교체를 예고했다. 

이번 드림팀은 트랜지션 게임을 중심으로 속공을 지향했던 원조 드림팀과는 달리 하프코트 오펜스도 활용하는 전략을 펼쳤고 무게감 있는 로포스트 옵션이 이를 가능케 했다. 내전의 여파가 가시며 재정비한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은 결승전까지 7연승을 달리며 부활을 알렸지만 처음이자 마지막 패를 기록하며 아쉽게 은메달에 만족했다. 미국대표팀은 통산 11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음으로서 명실상부 농구강국의 입지를 다시 한 번 세계에 확인시킴과 동시에 ‘드림팀’이라는 제2의 이름에 걸 맞는 위용을 과시할 수 있었다. 한편 서울 올림픽 이후 8년 만에 출전한 대한민국 남자대표팀은 숙소이탈과 음주사건으로 지울 수 없는 얼룩을 남겼다. 국내 농구인기가 정점에 달하며 KBL 프로리그의 출범을 앞둔 시기였기에 협회와 팬들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미국은 여자부에서도 전승 금메달을 달성하며 겹경사를 맞이했다. KBL과 마찬가지로 WNBA 프로리그 출범을 앞둔 미국 여자농구에게 있어 애틀랜타 올림픽은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악몽과 함께 고됐던 지난 1년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순간이었다. 충격적인 지난대회를 타산지석으로 삼은 여자대표팀은 소집기간을 1년 앞당겨 담금질에 들어갔다.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였다. 창단 이후 9개월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이 기간 동안 치룬 평가전만 해도 52경기. 16만Km에 해당하는 대장정이었다. 리사 레슬리는 팀 득점을 주도하며 최종 결승전에서 29점을 기록 히로인이 되었다.


존경심과 공포는 옛말 2000 시드니 올림픽
 
지난 바르셀로나의 아련한 추억은 사그라지고 말았다. 경외의 대상이자 꿈이라 불렸던 남자 미국대표팀은 망국의 전조를 암시했다. 미국은 표면적으로 8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했지만 그들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높아진 유럽농구의 수준이 미국의 진땀 승을 만들어 낸 것이다. 사인과 사진촬영을 요구하는 외국선수는 온대간데 없고 오로지 승리하겠다는 살기어린 눈빛만 보였다.

‘드림팀4‘로 불려진 이번 대표팀의 명단은 훌륭한 선수로 가득했지만 로포스트의 열세가 두드러진 점이 아쉬웠다. 전성기에 접어든 LA 레이커스의 샤킬 오닐은 필 잭슨 감독의 입김과 이미 두 차례 대표팀 경험을 맞본 본인에게도 동기를 주지 못해 긴 여름을 집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는 데이비드 로빈슨도 마찬가지였다. 하킴 올라주원이나 패트릭 유잉은 뚜렷한 노쇠기미가 발목을 잡으며 NBA에서 조차 예전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7풋 센터와 정통센터의 기근현상으로 협회 측은 나름의 심사숙고로 가용선수를 선발 했지만 높이의 한계는 여실했다. 

토너먼트에서는 경기부저가 울리기 전까지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치며 고전을 면치 못하며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은 대표팀은 그렇게 대회를 마쳤다.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는 85-75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미국 남자대표팀 결승전 역사상 최저 점수 차의 기록을 남기는 등 ‘드림팀 최저’기록을 갈아치우기에 바쁜 한해였다. 빈스 카터의 경이로운 덩크슛은 시드니 올림픽의 하이라이트로 남았지만 경기 중 상대선수와 언쟁을 벌이며 테크니컬 파울을 받는 등 비난의 한 축도 담당하여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한편 여자부에서는 미국이 WNBA의 원년을 주도한 리사 레슬리를 앞세워 가볍게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대한의 여전사들은 ‘미녀가드‘ 전주원과 정은순-정선민의 트윈타워 등 한국 여자농구의 대들보가 총 출격 종합 4위의 성적을 남겼다. 특히 전주원은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트리플더블을 작성하는 등 1984 LA 올림픽 이래 가장 만족스러운 성적표를 남겼다.    
   

드림팀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4 아테네 올림픽
      
미국 남자농구 역사상 금메달에 실패한 대회는 한손으로 꼽는다. 하지만 아테네 올림픽의 실패는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미국 농구의 패배’이전에 ‘NBA 농구의 패배’였기 때문이다. 언론은 패배가 익숙해진 드림팀을 빚 대어 ‘드럼팀’이라 비꼬았고 안이한 정신 상태와 단조로운 전술패턴과 국제농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미국대표팀에 뭇매를 가했다.

선수단 소집단계에서 불균형한 로스터로 우려를 샀던 대표팀은 예고됐던 불안요소들이 올림픽을 맞이하며 수면위로 떠올랐다. 유럽과 남미의 견고한 지역방어로 돌파는 꿈도 못 꾸었고 전문 슈팅가드의 부재는 미국의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꼴이 돼버렸다. 결국 예선에서 리투아니아와 푸에르토 리코에게 덜미를 잡힌 미국은 비극의 서곡을 울리며 조4위로 간신히 토너먼트에 합류하였다. 8강에서 파우 가솔이 이끄는 무적함대 스페인을 102-94로 따돌린 미국은 4강전에서 마누 지노빌리를 앞세운 아르헨티나에 일격을 당하고 만다. 4강전 탈락은 지난 서울올림픽 이후로 16년만이었다. 리투아니아전에 승리하며 동메달로 체면치례를 했다지만 시상대 구석에 오른 미국의 굴욕은 절대 잊지 못할 추억이었을 것이다.

결국 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대표팀에 가치를 느끼지 못함에 따라 최고전력을 구축할 수 없게 된 점과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수박 겉햝기 식의 훈련체제는 드림팀을  NBA의 부속팀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여자부는 리사 레슬리, 셰릴 스웁스 등 WNBA 스타들이 여전한 기량을 과시하며 3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어 고개 숙인 남자부 대표팀과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대한민국 여자대표팀은 지난 아테네 올림픽의 선전을 이어가는데 실패하며 5전 전패로 세계의 벽을 실감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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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 올림픽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국대표팀이 아쉽게 탈락했지만 한편으로는 NBA 농구팬에게 있어 지루한 오프시즌을 달래줄 또 하나의 이벤트라는 점에서 기다려지는 행사다.

농구와 지구인의 최대 축제인 올림픽과의 연결고리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프로리그 NBA선수들의 참가배경을 비롯 치열했던 미국-소련의 라이벌 구도를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올림픽 농구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이번 1부에서는 시범종목으로 채택됐던 세인트루이스 올림픽부터 뮌헨 올림픽까지를 다루었다.
 

위대한 시작 1904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제임스 네이스미스 박사가 농구를 고안하며 13년 뒤 올림픽에 농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의 YMCA에 농구가 전파된 해이기도하다. 만국 박람회의 부속 행사로 전락했던 올림픽이었지만 시범종목으로 농구를 전 세계에 알리는 성과를 이루어냈기에 농구인 들에게는 뜻 깊은 해였다고 볼 수 있다.

현대와 같은 신식 체육관은 꿈도 못 꿀 시기였고 세인트루이스의 야구장에서 3개의 베이스위에 코트를 얹혀 경기를 진행하였다. ‘올림픽 세계 농구 챔피언십’이라 불렸던 토너먼트는 5개의 미국 아마추어 클럽 팀만이 참가하며 올림픽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반영됐다. 우승은 버팔로 YMCA 클럽이 차지했으며 2위에 랭크된 시카고 YMCA는 2번의 부전승으로 행운을 챙겼다. 당시 부전승의 스코어는 ‘2-0‘으로 처리됐다.


정식종목 채택된 1936 베를린 올림픽    

베를린 올림픽은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 쾌거와 함께 농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기념비적인 해다. 또한 일제텃세를 이겨내며 장이진, 이성구, 염은현 선수가 일본 대표 팀에 선발되는 쾌거를 이룩한 해이기도 하다. 이는 대한민국 출신의 농구선수로서는 최초다.

21개국이 참여하며 제법 올림픽다운 규모가 갖추어졌고 흙과 모래를 단단히 다져놓은 테니스 코트를 사용하며 경기장의 질도 발전을 이루었다. 재밌는 사실은 이 경기장이 제 기능을 발휘 하려면 반드시 맑은 날씨여야 한다는 것. 조금이라도 비가 오는 날에는 코트가 진흙탕으로 돌변해 드리블을 포함한 전반적인 플레이에 애를 먹었던 것이다. 사상 첫 우승은 조 포튼베리가 이끈 미국이 캐나다를 19-8로 물리치며 네이스미스 박사의 이름을 딴 메달을 획득했다.


2차 세계대전의 끝 평화의 시작 1948 런던 올림픽

냉전으로 꺼졌던 성화가 다시금 화려한 불꽃을 일으키며 런던 올림픽의 시작을 알렸다. 대한민국은 해방이후 첫 출전에서 23개국 중 8위에 랭크되며 가능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종주국인 미국은 59-57로 승리했던 아르헨티나전을 제외하고 경기당 38점의 득실마진으로 손쉽게 금을 손에 쥐었다. 특히 미국은 6피트 5인치 이상의 장신선수를 5명이나 보유하며 압도적인 경기로 타 국가를 제압했다.

런던 올림픽은 갖가지 진풍경과 진기록을 남긴 대회로도 유명했다. 당시 100점 이상의 고득점이 꿈만 같던 농구계에서 이라크는 필리핀과 대한민국에 이어 중국에게 100점을 내주며 체면을 구겼다. 아일랜드는 경기당 17.5점이라는 엽기적인 팀 득점을 기록했고 영국심판이 경기 도중 충돌로 기절하는 사건도 있었다. 중국 선수가 7피트의 미국 선수인 밥 컬랜드의 다리사이로 드리블을 하는 묘기를 선보이기도 했고 브라질 선수가 팬츠를 잃어버리는 진풍경을 하며 경기 외적인 볼거리도 많았던 런던 올림픽이었다.


운명적인 만남 1952 헬싱키 올림픽

구소련은 올림픽 처녀출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금 전쟁에서 호각세를 보이며 화려한 등장을 만천하에 알렸다. 국제 농구계 최대 라이벌이 될 양국의 만남도 여기서 시작됐다. 미국은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現 LA 레이커스)와 보스턴 셀틱스에서 우승을 경험한바 있는 캔자스 주립대의 클라이드 러브렛을 앞세워 3연속 금 행진을 이어갔다. 구소련은 무한한 잠재력을 선보이며 신흥강호로 급부상했다.  

구소련은 본선예선에서 멕시코와 불가리아 개최국 핀란드를 차례로 꺾으며 파죽지세를 이어갔지만 미국의 벽을 넘는데 실패하며 은메달로 만족했다. 당시 구소련은 강력한 조직력을 앞세워 전반전 17-15로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다운템포로 흐름을 되찾은 미국에 리드를 내주며 36-25로 석패하였다. 경기 후 구소련 선수들은 코트에 앉아 항의를 했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헬싱키 올림픽에서 특이할만한 점은 농구경기가 드디어 스타디움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협회는 예선전은 도시 중심에 위치한 테니스 코트를 사용하도록 하고 준결승전과 결승전에 한해서는 스타디움에서 치르도록 하였다.  


빌 러셀의 올림픽 데뷔 1956 맬버른 올림픽

샌프란시스코의 슈퍼스타 빌 러셀이 올림픽에 등장했다. NBA와 보스턴 셀틱스의 전설적인 인물로 기억되는 러셀은 동문후배이자 훗날 보스턴의 동료가 될 K.C. 존스와 함께 미국의 4연패에 공헌하였다. 미국대표팀은 러셀을 앞세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기력을 펼치며 올림픽 기간 동안 승승장구했다.

강력한 라이벌로 예상됐던 구소련은 7피트 3인치에 달하는 라트비아 공화국 출신의 목수를 공수하며 미국의 높이에 대항했지만 완벽한 실패로 돌아갔다. 키는 컸지만 기술과 기동력은 0에 가까운 선수였기 때문이다. 구소련은 예선에서 30점차로 대패하며 자존심을 구겼고 결승전에서도 71-62로 분투했지만 한층 업그레이드 된 미국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금메달 1960 로마 올림픽      

사상최초로 위성 중계된 로마 올림픽에서 미국이 다시 한 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미국대표팀에 소집된 명단을 보면 혀를 내두를만한 호화진용으로 감히 ‘고전 드림팀‘이라 부를만하다.

시즌 평균 트리플더블에 빛나는 오스카 로벗슨과 NBA 로고의 주인공이자 클러치 슈터의 원조 제리 웨스트를 시작으로 올해의 신인왕에 오른 월트 벨라미와 제리 루카스까지 일찌감치 명예의 전당자리를 예약한 불세출의 스타들이었다. 경기당 102점의 화력을 뽐낸 미국은 결승전에서 81-57로 구소련을 대파하며 라이벌을 좌절시켰다. 


멈추지 않는 골드러쉬 1964 도쿄 올림픽

도쿄 올림픽은 미국과 유럽이 양분했던 올림픽 개최를 아시아가 가져갔다는 의미에서 매우 뜻 깊은 대회라 할 수 있다. 정치적인 전략으로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시킨 대한민국은 실로 오랜만에 농구대표팀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7전 전패로 세계의 벽을 실감해야 했고 미국과 유럽의 메달잔치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특히 12년 동안 3번 연속 금메달을 내준 구소련의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구소련의 감독인 알렉산더는 대회전 인터뷰에서 “미국의 선수들은 모두가 놀라운 실력을 지녔다. 하지만 우리는 전력증강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실제 구소련은 전 대회에 비하면 네임밸류가 다소 떨어지는 미국대표팀을 거칠게 몰아붙이며 한풀이에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미국의 뒷심은 예상외로 거셌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빌 브래들리와 루크 잭슨을 필두로 래리 브라운(現 샬럿 밥캐츠 감독)을 앞세운 미국은 18-4로 경기막판 스퍼트를 내며 최종 스코어 73-59로 다시 한 번 구소련의 4연속 은메달을 도왔다.

브라운은 당시 메달 수여식 인터뷰에서 “이 메달이 12달러에 불과하지만 당신이 100만 달러를 준다 해도 사지 못할 것”이라며 소감을 밝혔다. 브라운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금사냥에 실패하며 선수-감독 금메달의 대기록에 실패한 바 있다.


농구변방 유고의 부상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올림픽 개최 전인 1967년 당시 UCLA의 루 앨신더(카림 압둘자바의 개명 前 이름)는 학업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보이콧을 선언하였다. 이어서 휴스턴대의 엘빈 헤이즈는 샌디에고 로케츠(휴스턴 로케츠의 전신)와 계약을 맺은 상태였기 때문에 프로선수 참가가 허용되지 않는 올림픽 규정에 따라 소집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두 명의 대학스타를 선수명단에 포함시키지 못한 미국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조조 화이트와 스펜서 헤이우드라는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로도 금 사냥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남자농구대표팀 역사상 최연소 출전 기록(19세)을 보유하고 있는 헤이우드는 보스턴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거듭나게 될 화이트와 함께 5번째 금메달을 조국에 안기는데 공헌하였다.  


구소련의 복수심이 낳은 1972 뮌헨 올림픽 비극사

팔레스타인 게릴라 단체의 테러로 얼룩졌던 뮌헨 올림픽은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남자 농구부 결승전에서 노골적인 편파판정을 등에 업은 구소련이 20년 만에 염원하던 금메달을 손에 쥐었기 때문이다. 올림픽에 이래 멈출 줄을 몰랐던 미국의 금메달 독주는 그렇게 막을 지었다.

그 유명한 ‘한번 더’의 사건은 경기종료 3초전에 시작됐다. 극적인 스틸에 이어 자유투를 얻어낸 덕 콜린스는 2점 차로 뒤진 상황에서 동점 내지는 역전으로 갈 수 있는 찬스를 손에 넣었다. 콜린스는 침착하게 모두 성공을 시켰고 구소련은 인바운드 패스를 시작으로 하프코트를 넘으려 시도했다. 그때 브라질 출신인 리나토 라이또 주심의 휘슬이 울렸다. 전광판이 가리킨 시간은 종료 1초전. 심판진은 논의 끝에 구소련이 타임아웃을 부른 것으로 판정을 지었다. 미국 측의 항의는 거셌지만 경기는 속행됐고 구소련의 장거리 3점 슛은 림을 외면했다. 모두가 코트위로 달려 나왔고 미국의 6번째 금메달은 실현된 것처럼 보였다.

당시 중계를 맡은 ABC사의 방송로고에 조차 선명하게 'FINAL'이란 문구를 내보내며 경기 종료를 알렸고 사진기자들은 미국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분위기는 종결된 듯 했다. 하지만 주심의 휘슬이 다시 한 번 울리며 경기는 중단됐다. 이번에는 전광판 스코어가 잘못 체크 되었다는 것 이었다. 3초가 돼 있어야할 전광판에는 50초라는 숫자가 기록돼있었고 이는 분명 재경기의 사유가 될 수 있었지만 구소련의 공격이 무위로 그칠 때마다 경기가 중단됐기에 의심이 증폭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구소련은 길게 던진 인바운드 패스를 풋백 득점으로 연결시키며 금메달의 숙원을 풀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철두철미한 판정으로 일관했던 심판진이 구소련의 마지막 인바운드 패서의 발이 라인을 넘어선 것에 대해서는 잡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FIBA 상소배심 투표에서는 이탈리아와 푸에르토 리코는 미국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폴란드와 헝가리, 쿠바는 구소련의 편에 섰다. 미국대표팀의 소송이 기각되자 언론의 반응은 동정론부터‘미국은 패배를 받아들여야한다‘는 자숙의 말까지 나올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26년 전 당시 그 3초는 아마 ‘지구 스포츠 역사상 가장 긴 3초’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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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호크스의 조쉬 칠드레스(25, 203cm)가 그리스의 명문 팀 올림피아코스와 계약을 맺었다. 이는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유럽 리그의 명성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 NBA 출신의 젊은 유망주가 20대 중반에 건너 갈 정도의 매력이 있는가’에 대한 공통된 대답은 ‘No'였기 때문이다.

칠드레스는 지난 2004년 애틀랜타에 입단하며 약 1200만 달러의 신인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번에 올림피아코스가 제시한 금액은 3년간 2천만 달러로 제법 구미가 당기는 금액이다.

제한적 FA인 칠드레스는 애틀랜타가 해당 금액을 매치 시켰다면 NBA 잔류가 가능했지만 릭 선드 단장은 인터뷰에서 “칠드레스와 절충안을 찾으려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이는 NBA 시장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라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정작 현지 언론의 입장은 냉담하기만 하다. “칠드레스의 에이전트인 론 바비는 최근 3년 동안의 미국시장에서 유럽리그가 갖고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으로 시선을 돌렸다. 러시아에서 대형 사업가들이 적극적인 투자도 리그에 개입하는 것도 그 예다. 이제 유로리그는 어떤 선수에게도 더 나은 환경을 제공 할 수 있다”며 안이한 구단대응을 꼬집었다.

칠드레스가 이룬 성과가 기대이상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이루어진 NBA선수들의 유럽행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번 계약을 선뜻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기량 미달로 자국 하부리그 대신 수준 높은 유럽리그를 택하며 강도 높은 실전경험을 쌓는 젊은 선수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또는 노쇠화와 함께 떨어지는 연봉과 벤치를 전전하는 대신 확실한 노후보장(?)을 제시하는 유럽 측의 조건을 수락하여 전성기 못지않은 대접을 받으며 케이스도 있다.

하지만 칠드레스의 경우는 로스터의 과부하로 기회를 갖지 못 했을 뿐 일반적인 유럽행의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여 유로피언들의 NBA 침공이 득세를 보였지만 불과 10년도 채 되기 전에 미국에서 유럽으로 노선을 변경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미국선수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 용변선수들도 ‘컴백 홈’을 외치며 금의환향에 앞장서고 있다. 뉴저지 네츠의 보스찬 나크바와 프리모즈 브레첵은 각각 러시아와 이탈리아 비행기에 몸을 실었으며 호르헤이 가바호사 역시 모스크바행이 유력시 되고 있다. 스페인의 영웅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는 일찌감치 스페인으로 돌아간 상황.

이는 최근 환율동향과 무관하지 않다. 유가반등과 함께 고개를 들고 있는 미국 경기 침체의 우려로 달러가치의 하락이 이어지고 유로가치가 상종가를 치는 현주소를 보면 고개가 끄떡여진다. 보다 많은 잠재력과 가능성. 더 젊고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겠다는 선수들의 인식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 개막과 함께 37경기나 결장한 칠드레스에게 돈에 눈이 멀었다는 비난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이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국 선수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빌미를 제공 할 수 발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생각일지 모르나 하나의 리그는 그 나라를 대변하는 색깔을 갖출 때 비로소 완벽한 리그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이는 NBA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글로벌화와 개방을 한 이후로 확고해졌다. 물론 세계 정상급의 기량을 최고의 리그에서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데이빗 스턴 총재의 전략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유럽의 전설 드라잔 페트로비치나 토니 쿠코치, 블라디 디박 등 불세출의 용병들은 성공적인 평가를 받으며 경력을 마쳤고 덕 노비츠키나 마누 지노빌리같은 2세대 용병들은 현 리그를 주름잡으며 명성을 떨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행태는 그러한 바람과 역행하고 있다. 마치 현대인들이 조미료로 인해 미각을 잃어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고유의 맛은 잊은 지 오래다. 무분별하고 맹목적인 유럽 용병 발굴은 정작 본토 선수들의 입지를 좁혀놨으며 MVP는 더 이상 미국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국제무대에서도 미국은 수년간 종이호랑이에 그치며 자존심을 구긴지가 오래다.

최근 KBL은 하승진의 데뷔와 함께 용병 키 제한 해제를 발효시키는 강수를 두었다. 장신의 하승진을 견제하려는 협회 측의 의지가 반영된 것은 불을 보듯 뻔하지만 가뜩이나 좁은 토종 빅맨들의 입지를 더욱 더 좁히는 결과가 우려된다. 농구 팬들이 국내 선수들의 활약을 등에 업는 리그 분위기가 조성될 때 경기장과 TV를 찾을 것임은 자명하다. 용병 중심의 경기라는 굴레를 10년 이상 벗어나지 못하고 90년대의 농구인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국내실정이다. 결국 자국 선수들의 힘을 실어 주여야 한다는 점은 국경을 막론하고 일맥상통한다.

그 어떤 팬들도 르브론 제임스가 전성기를 스페인에서 보내는 것을 지켜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유럽이나 타국 선수들의 진출을 무작정 막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리그 비중의 무게가 기울어지고 있다면 리그가 발 벗고 나서기 전에 기본적인 내 집단속이 선행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번 칠드레스 계약이 NBA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비록 지금은 미국 출신의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하지만 언젠가 유럽에서 올스타 급의 NBA 선수들이 뛰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NBA 중심의 글로벌 리그를 꿈꾸는 스턴 총재의 야망은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날아갈 지도 모를 일이다. 한 때 지구상의 모든 농구선수들의 꿈이자 목표였던 NBA지만 매리트가 사라진 현시점에서 오만함을 버리고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변화는 한순간이다.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창출해내는 스포츠 스타들의 본능을 배금주의로 치부 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운동선수라는 틀에서 본인의 능력은 어디서든 발휘 될 수 있고 이는 권리다. 하지만 NBA가 NBA다울 때는 미국선수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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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각국 농구 대표팀들은 담금질에 여념이 없다. 최종 예선을 위해 비지땀을 흘리는 대한민국 대표팀만큼이나 NBA 스타들로 가득한 종주국 미국대표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포함하여 최근 두 차례의 세계 농구 선수권대회에서 고배를 든 미국대표팀은 절실한 입장이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유럽과 남미의 전력도 문제지만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지적돼 왔던 기강해이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 때문에 협회는 어린 선수들의 독려와 함께 동기부여 차원에서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은퇴 선수들을 초빙하여 근본적인 문제를 뿌리 뽑고자 나섰다. 더없는 영광이요 꿈이었던 올림픽 참여가 평범한 오프시즌의 연례행사쯤으로 퇴색해버린 근래의 인식을 바꾸겠다는 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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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코트의 마술사 매직 존슨은 대표팀이 한자리에 모인 강당에서 “당시에는 정말 믿기지 않았다. 우린 어떻게 이 많은 스타들을 소집했는지에 대해 흥분됐지만 금메달이라는 하나의 목표만 생각했다”라며 운을 뗐다. 현역 시절에 비해 몸은 많이 불었지만 매직의 진심어린 강연에 선수들은 하나같이 경청했다.

마이크 슈셉스키 감독 역시 당시의 추억이 누구보다 가슴에 와 닿는다. 지난 1992년 바르셀로나 원조 드림팀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헤드코치였던 척 데일리의 보조관으로 어시스턴트 코치직을 수행한 슈셉스키는 “기대도 안했던 호응에 놀랐다. 하늘엔 헬리콥터가 떠있고 우린 마치 비틀즈를 방불케 하는 인기를 과시했다”며 당시의 기억을 떠 올렸다.

하지만 범세계적인 열풍 속에 드림팀의 뜻 그대로 ‘꿈’같은 성과를 거둔 미국대표팀의 명성은 채 10년도 가지 못했다. 압도적인 경기력은 세계 강호들과의 벽이 낮아지며 자연스레 실종됐으며 개인기량은 월등할지 모르나 조직력만큼은 더 이상 세계 최고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다.

매직 존슨은 “우리 때는 누가 몇 점을 넣을까? 내일 신문 일면에는 누가 실릴까? 따위의 생각은 일체 안했다. 오로지 이기는 것에만 집중했다. 일사불란한 컷인이나 적시적소의 패스들은 정말 환상적 이었고 이것이 미국농구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었다”며 유기적인 팀플레이를 거듭 강조했다. 역사상 최고의 득점기계로 꼽히는 마이클 조던 조차도 원조 드림팀 내에서는 넘버원 스코어러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그 자리는 조던의 라이벌이자 둘도 없는 벗인 찰스 바클리가 경기당 18점으로 차지했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조던과 바클리는 코트나 숙소에서 자주 어울리며 끈끈한 우정을 과시한 바 있다. 바클리는 “정말 특별한 시간들이었다. 서로 잘 아는 절친한 친구들과 몇 달간 함께 플레이 할 수 있다는 것은 꽤 멋진 일이다”며 회고했다. 제 아무리 올스타 군단일지라도 일개 팀으로서 최소한의 공동체 의식은 필수 조건인 셈이다.

선배들의 이러한 업적은 이번 베이징 올림픽 선수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마이애미 히트의 드웨인 웨이드는 “역사상 모든 스포츠 팀을 통틀어도 92바르셀로나의 드림팀만큼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것”이라며 선배들을 치켜세웠다. 카멜로 앤쏘니는 “내가 12살이나 13살 때 TV를 통해 과거 드림팀의 경기를 봐왔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대표팀 선수다”라며 출사표를 던졌다.

FIBA룰에 대한 적응과 그에 따른 전술적 준비도 탄탄히 해야겠지만 세계 최고의 기량을 지닌 선수들인 만큼 정신적 무장과 화합이 수반된다면 금메달 획득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꿈의 팀을 뜻 했던 ‘Dream Team'에서 동네북을 뜻하는 ’Drum Team'으로의 전락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미국 국가대표팀이다. 만약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목표 달성을 이룬다면 새로 명명된 리딤팀(Redeem Team)의 의미는 금메달과 함께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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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의 관심사로 열기를 더해갔던 27일(이하 한국시간) NBA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는 울고 웃는 이들로 가득 찼다. 기쁨의 눈물도 있을 것이고, 아쉬움의 눈물도 있을 것이다. 로터리 추첨식 이후 메이저 언론사에서 제공하는 모의 드래프트 순위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선수의 지명부터 상위권 입성을 예상한 신인들의 미끄럼까지 희비가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원하는 신인선수를 얻기 위해 ‘픽 업&다운’을 도모하며 발 빠른 거래를 추진하는 팀을 비롯하여 옥석 고르기에 한창인 오늘 간판스타들의 트레이드를 통해 일찌감치 숨 가쁜 오프시즌 일정을 진행하는 팀들도 눈에 띄었다. 주어진 기회로 최대의 실속을 차린 팀들을 살펴보자.


엇갈린 운명 O.J. 메이요와 케빈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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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3번 픽에 지명되며 미네소타 팀버울브즈 미래의 축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메이요가 불과 몇 시간 만에 모자를 바꿔 썼다. 상대는 멤피스 그리즐리스가 지명한 케빈 러브. 두 신인 외에도 6명이 포함된 4대4 대형 트레이드다. 

미네소타는 이미 랜디 포이와 라샤드 맥칸츠가 포진해 있고 알 제퍼슨을 보좌할 빅맨 자원이 절실했다는 점에서 고심 끝에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네티즌들은 벌써부터 케빈 맥헤일 단장을 맹비난하며 원색적인 반응이다. 로스터의 균형을 맞추려는 구단 의지는 수긍이 가지만 올랜도에서 열린 신체검사와 워크아웃을 토대로 상승해온 메이요의 최근 주가에 따른 아쉬움도 반영된 것이다. 과거 레이 알렌과 브랜든 로이라는 정상급 선수를 뽑아놓고 남 좋은 일에 앞장 선 미네소타기에 징크스가 되풀이 될지에 대한 불안감도 제기 되고 있다.       

어쨌든 메이요는 주전 출장이 불투명해 보이던 미네소타에서 벗어나 멤피스에서 보다 많은 출장시간을 부여 받을 것이다. 벤치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언더 독‘ 팀이라도 코트위에 서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메이요에게 득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지난 시즌 케빈 듀란트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특히 루디 게이-마이크 콘리로 이어지는 젊고 재능 넘치는 라인업에 공수 짜임새와 무게감을 줄 수 있어 멤피스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신인왕 출신에 올스타 선발과 국가대표에서 활약하며 순수 미국 백인 선수로 남부럽지 않은 경력을 쌓아온 밀러의 공백을 걱정할 수 없는 이유다.

고교시절부터 르브론 제임스에 버금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메이요는 이기적인 마인드의 플레이어라는 비난도 받아오며 USC시절 동료들에게도 외면받는 등 시작부터 순탄치 않은 굴곡을 겪어왔다. 이번 트레이드를 기회삼아 더 나은 선수로 거듭나길 기대해보자.

멤피스 그리즐리스 Get_O.J 메이요, 앤트완 워커, 마코 자릭, 그렉 버크너
미네소타 팀버울브즈 Get_케빈 러브, 마이크 밀러, 브라이언 카디날, 제이슨 콜린스
 

두 마리 토끼 잡은 포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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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만 따져보면 이번 드래프트 최고의 알짜를 고른 포틀랜드가 진정한 승자가 아닌가 싶다. 포틀랜드는 로터리 픽에서 뽑은 브랜든 러쉬를 인디애나로 보내며 대학 최고의 듀얼가드로 꼽히는 제리드 베일리스라는 수확을 얻었다. 재럿 잭과 잭 로버츠가 매물임을 감안하면 수혈이 아쉽지만은 않다.

베일리스는 일찌감치 마이크 비비나 길버트 아레나스 등 최고의 동문선배들과 비교돼왔고 리그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은 듀얼가드의 흐름을 따라가는 선수다. 후일을 기약해야겠지만 인디애나가 입맛을 다실지도 모를 일이다.

뉴올리언즈와의 현금 트레이드로 얻은 또 다른 1라운드 픽도 행운을 가져왔다. 무려 26번까지 진행된 1라운드에서 대릴 아써가 호명이 되지 않았던 것. 캔자스 대학을 우승으로 이끈 아써의 가세로 포틀랜드는 겹경사를 맞이할 수 있었다. 로터리 픽에 지명될 것으로 예상됐던 아써이기에 포틀랜드는 그야말로 대박 드래프트로 남게 됐다.

올스타 레벨로 거듭난 브랜든 로이와 그에 준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라마커스 알드리지의 존재와 지난 시즌 1번 픽에 빛나는 그렉 오든의 합류를 기다리고 있는 포틀랜드는 이번 드래프트를 계기로 서부강호들의 틈바구니 속에 살아남을 경쟁력을 손에 넣었다.

과연 다음 시즌 리그 최강의 팀을 두고 자웅을 겨루던 8~90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신데렐라로 거듭난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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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픽 예상자를 모시는 VIP 대기실, 이른바 그린 룸에 초청받지 못한 선수가 로터리 픽에 당첨됐다면? 아마 그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오늘밤 NBA 드래프트장의 신데렐라로 낙점 된 주인공은 세크라멘토 킹스에 지명 된 제이슨 탐슨이다.

데이빗 스턴 총재의 호명이 끝나면 보통 가족들과 지인 혹은 동료 선수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쏟아지기 마련이지만 탐슨의 지명은 이와 상반된 반응이었다. 다행이도(?) 탐슨은 이날 드래프트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굴욕을 면할 수 있었다. 그만큼 탐슨의 로터리 픽 당첨은 예상외였다.

하지만 세크라멘토 킹스의 주 전술이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임을 감안하면 고개가 끄떡여진다. NBA급 하드웨어를 지녔다는 평을 받고 있는 탐슨은 단순한 공격루트나 기술미달이 평가절하에 한몫했지만 동포지션에서 비교적 긴 슈팅거리와 준수한 패스센스를 지니고 있어 세크라멘토에 잘 어울릴 전망이다. 블라디 디박이나 브래드 밀러같은 팀 선배들이 수행했던 역할을 돌이켜보면 탐슨은 준비된 자원이다.

55번 픽으로 포틀랜드에 지명된 마이크 테일러는 D-리그 출신 최초의 NBA 드래프트 선수가 됐다. NBA의 공식 2부 리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왔던 D-리그는 그간 시즌 중 콜업을 통해 왕성한 교류를 펼쳐왔지만 드래프트에 선수가 뽑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이다호 스탬피드 소속이었던 테일러는 식스맨으로 활약하며 2008 D-리그 파이널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 바 있다. 아이다호의 브라이언 게이츠 감독은 “테일러는 언제 경기에 투입되어도 생기 넘치고 활발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NBA에서도 그 재능을 가져갈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보통 언드래프트 출신이나 하부리그의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선수들은 환경이 동기부여가 되어왔다. 이는 끈기와 성실함으로 대변되는 수많은 선수를 배출시켜왔고 리그에서 장수하는 원동력으로 알려진 것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훗날 이러한 통념이 맞는지에 확신을 주는 선수가 되기를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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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자 프로농구계를 들썩 거리게 하는 신인이 나타났다. 한국 프로농구와 같은 해 출범하며 13년째 명맥을 유지해온 WNBA는 이 미모의 신인의 등장으로 전에 없는 호황을 누릴 전망이다. 피플지가 선정한 2007 세계최고의 미녀 100인에 이름을 올리며 에바 롱고리아, 드류 배리모어, 할 베리 등 헐리우드 최고의 여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그녀. 켄디스 파커를 소개한다.

파커는 일찍이 국가대표와 NCAA 무대에서 진가를 발휘하며 엘리트의 길을 걸어왔다. 2004년 세계 청소년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파커는 지난해 2007 아메리칸 지역예선에서 미국의 베이징 올림픽 본선진출을 도왔다.

같은 해 모교인 테네시 대학을 우승으로 이끌며 전국 토너먼트 4강전을 칭하는 ‘Final Four(파이널 포)’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는 등 명실상부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NCAA 여성부 토너먼트 역사상 첫 덩크슛을 선보인데 이어 한경기에서 두 번의 덩크슛을 꽂아 주위를 경악케 했다. 파커의 덩크슛 능력은 이미 전설로 남았다.

지난 2004년 전미 유망주들의 등용문으로 꼽히는 ‘맥도날드 올 아메리칸 올스타전’에 초청받아 기라성 같은 남성 참가자들을 모조리 탈락시키며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바 있다. 2005년 NBA 슬램덩크 챔피언인 애틀랜타 호크스의 조쉬 스미스와 탄력 넘치는 덩크슛이 일가견인 덴버 너게츠의 J.R. 스미스가 명단에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여성 참가자들은 덩크의 난이도나 기술의 완성도, 창의성 보다는 단순 성공여부에 따라 채점이 되었다지만 오랫동안 회자 될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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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2008 WNBA 신인드래프트 1번 픽으로 당당하게 LA에 지명되며 화려한 프로무대의 첫발을 내딛은 파커는 피닉스 머큐리와의 개막전에서 다시 한 번 농구계를 놀라게 했다. 파커는 이날 WNBA 데뷔전 역사상 최고기록인 34점과 12개의 리바운드 8개의 어시스트를 보태며 트리플 더블 급의 활약을 펼쳤다. 종전 기록은 신디아 쿠퍼의 25점으로 무려 9점을 앞질렀다.

“기대했었던 것보다 훨씬 좋은 플레이를 선보였다. 동료들이 잘 해주었기 때문에 승리했다“며 겸손함도 잊지 않는 파커다. 1980년대 LA 레이커스에서 전문 수비수로 이름을 날린 마이클 쿠퍼 감독은 ”파커는 정말 대단한 선수다. 공만 잡으면 내가 바라는 것을 해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파커는 현재 경기당 17.8점 10.8개의 리바운드와 5.2어시스트의 기록은 그녀가 왜 팔방미인인지 말해준다. 수비에서도 발군의 센스를 자랑하는 파커다. 1.6개의 스틸과 경기당 3개의 블락을 뽑아내며 다재다능함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파커의 존재는 WNBA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리사 레슬리와 강력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 리바운드는 현재 리그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는 파커에 이어 레슬리가 3위에 랭크돼 있다. 블락 부문에서는 자리를 바꾸어서 1위에 레슬리 3위에 파커가 자리하고 있다. 

이른바 스팍스의 ‘트윈 타워‘는 개막이후 원정 5경기에서 4승 1패로 이끌며 올해도 변함없는 우승후보의 위용을 과시할 전망이다. 이달의 신인에 선정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지금의 기세를 시즌 마지막까지 이어간다면 신인왕은 물론 정규시즌 MVP까지 바라볼만한 성적과 팀 공헌도다.

파커의 굴곡 없는 농구경력은 집안내력이 말해주고 있다. 로와 대학에서 현역 농구 선수로 활동한 아버지 래리 파커와 치어리더로 활동했던 어머니 사라 파커의 과거는 그녀의 남다른 재능과 미모를 대변해준다. 늦은 나이에 NBA에 입성해 주전을 꿰찬 장남 앤쏘니 파커부터 고교 시절까지 선수로 뛴 마커스 파커까지 가족 모두가 농구와 끈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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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파커의 꿈은 ABC 방송국에서 ‘굿모닝 아메리카‘의 진행을 맡고 있는 로빈 로버츠나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같은 방송인이 되는 것이다. 지금껏 행보를 보면 그녀의 포부에서 오만함과 불가능은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색다른 모습의 파커보다는 그녀가 쌓아갈 농구 경력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더 할 것은 분명하다.

최근 그녀의 얼굴은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NBA 세크라멘토 킹스에서 포워드로 활약 중인 셸든 윌리엄스와 약혼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두 프로 선수의 만남은 작년 7월 ESPN 매거진이 2차례의 데이트를 보도하며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어디까지나 신인이기에 미디어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자칫 반짝 스타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하지만 앞으로 꾸리게 될 가정에서 안정을 찾고 대선배 레슬리의 노하우를 전수받는다면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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