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티 피펜, 그리고 토니 쿠코치.

마이클 조던과 함께 쓰리핏을 해낸 불스의 주역들입니다.

불스의 제리 크라우스 GM이 유럽시절의 쿠코치에 반해 그를 드래프트하는 순간부터 이들의 견원지간은 시작됐습니다.

일단, 쿠코치의 공격에서의 역할이나 포지션이 피펜과 겹쳤다는 점이 피펜의 자존심을 건드렸죠.

역할이 완전히 겹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쿠코치의 유럽 전성기 시절의 역할이 "Initiator"(공을 소유한 채로, 지공이든, 속공이든, 자신이 팀의 공격을 풀어나가는 위치 - 장신 포인트 가드로 보시면 되겠습니다)였고, 제리 크라우스 매니저가 쿠코치에게 반한 점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는 점에서, 포인트 포워드 역할을 맡았던 피펜이 쿠코치의 불스입성을 반길 수 만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리그에서 크로아티아를 만난 미국팀의 조던과 피펜은 쿠코치를 대놓고 혼을 내줍니다.

그러나 이에 질세라 두 팀이 결승전에서 다시 만났을 때, 쿠코치는 자신에게만 유독 가해지는 피펜과 조던의 압박수비를 뚫고 18점, 8리바운드, 9어시스트로 맹활약을 했지요. 

이 경기가 끝났을 때 조던이 쿠코치에게 다가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Welcome to the NBA !" 


그러나 쿠코치의 루키시즌이 시작되기 직전에 조던이 은퇴를 발표하면서, 이들 둘을 묶어줄 구심점은 사라지고 맙니다.

불스의 리더가 된 피펜은 쓰리핏 우승팀에서 돌아온 다른 멤버들과 함께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팀을 이끌었고, 쿠코치는 나름대로 새 리그에 적응을 하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쿠코치는 특히 정규시즌 네 경기에서 클러치 결승골을 터뜨림으로써 '한 방'이 있는 강심장임을 리그 전체에 알렸으며, 그의 수비를 신용하지 못하던 필 잭슨 감독도 이 해결사 기질 부분만큼은 인정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1994년 플레이오프.

숙적 뉴욕 닉스와의 시리즈가 시작됐습니다.

1차전... 2차전... 거듭된 뉴욕 원정경기에서 완패를 하고 온 불스는 3차전부터의 반격을 위해 배수진을 쳤습니다.

그러나 패트릭 유잉이 이끈 닉스는 막강했고, 불스는 앞서나가던 큰 점수차를 모두 까먹은 채, 자칫하다간 3차전마저 닉스에게 내줄 지도 모르는 절대절명의 순간까지 왔습니다.

3차전 남은 시간은 1.8초.  점수는 동점.  공격권은 불스에게 있었습니다.

필 잭슨 감독은 정규시즌 네 경기에서 팀을 패배로부터 구해냈던 쿠코치를 마지막 슈터로 지목했습니다. 피펜은 분노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농구화를 벗고, 자신은 경기에 안 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필 잭슨 감독은 물론, 불스 선수들 전원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이 피펜의 행동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것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죠.

경기는 속개됐고, 쿠코치는 1.8초를 남기고 공을 어렵게 잡아 고난도의 페이더웨이 턴어라운드 점프슛을 꽂아 버립니다.

불스는 자칫 잘못하면 닉스의 스윕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던 시리즈의 흐름을 자기들 쪽으로 가져올 수 있었고, 결국 승부를 7차전까지 끌고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이 멋진 슛을 집어넣은 쿠코치는 관중석을 향해 주먹을 흔들며 보란 듯이 자신의 해결사 기질을 뽐냈습니다.

그러나...... 이 슛이 불발되고, 불스가 일찌감치 닉스 앞에 무릎을 꿇었다면... 피펜의 팀 내 입지는 과연 어찌 됐을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한 부분입니다.

스카티 피펜은 4차전이 시작되기에 앞서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했고, 팀 전체에 사과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가 맹활약함으로써, 불스는 4차전, 6차전, 홈에서의 승리도 나꿔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1994-95 시즌.

호레이스 그랜트를 올랜도 매직에게 보내고, 쿠코치가 선발 라인업의 파워포워드 포지션에서 시작한 시즌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파워포워드가 없었던 불스는 그동안 시스템 농구로 버텨오던 팀 전력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소위 "약빨"이 다 된 것입니다.

경기에서 자꾸 지기 시작하니, 팀원들 간의 불화도 심해졌고, 결국엔 팀 케미스트리가 붕괴되기 일보직전까지 오게 됐습니다.

팀 전체가 이토록 삐걱이던 차에, 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멋진 플레이 하나가 이 피펜과 쿠코치에 의해 만들어 졌습니다.

상대는 필라델피아 76ers였습니다.

자유투라인에서 리바운드를 잡은 쿠코치가 마치 이미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 자리에서 냅다 상대팀 림을 향해 빨래줄 같은 공을 패스해 줬고, 림으로 달려들어가던 피펜이 공을 잡음과 동시에 연속동작으로 림까지 올라가며 앨리우프 덩크를 꽂아버린 것입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지만, 너무도 멋진 그림같은 플레이였습니다.


 
80년대  쇼타임 레이커스 시절, 매직 존슨이 하프라인 근처에서 마이클 쿠퍼에게 넣어주는 앨리우프 플레이를 쿠퍼의 이름을 따 "Coop-a-Loop"이라 불렀습니다.

이 플레이는 그 수준을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쿠코치의 패스가 나간 지점이 하프라인이 아닌 자유투라인이었습니다.

그리고 피펜은 그 먼 거리에서 날아오는 빠른 공을 림으로 점프해 올라가는 동작에서 잡아 덩크로까지 연결시켰습니다.

평생 견원지간이었던 두 선수가 만들어낸 플레이였기에 더더욱 값져 보인 플레이였습니다.


2002년도에 나온 한 잡지에서 쿠코치는 자신의 불스 시절 피펜과의 관계를 이렇게 밝힌 적이 있습니다.

"스카티 피펜... 솔직히 처음엔 싫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도 알 수 있었다. 내가 NBA 리그에 들어온 이후로 나에게 가장 큰 영향과 배움을 준 선수는, 페트로비치도, 조던도 아닌, 스카티 피펜이었다."

아무튼... 둘 다 멋진 사나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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