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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률에는 불만이 없다

2008-2009 시즌을 기다리는 뉴올리언즈 호네츠의 팬들은 그야말로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유력 언론들은 뉴올리언즈를 우승 후보로 꼽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고 어느 덧 리그 MVP 후보로 성장한 크리스 폴과 그의 동료들이 보여줄 새로운 마법에 대한 기대는 하늘을 찔렀다.

헌데 지금까지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결과는 둘째 치고 경기의 내용이 너무나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결정적으로 지난 포틀랜드와의 시즌 2차전에서 션 막스의 3연속 공격 시도를 보는 순간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표류하는 뉴올리언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노라 마음먹었다. (세상에, 코트 위에 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봐도 믿어지지 않는 장면이다.)

지난 시즌 그토록 멋진 모습을 보였던 뉴올리언즈에게 도대체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일까?

사실 나는 뉴올리언즈의 승수에는 불만이 없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시기(한국 시각 12월 4일 01시)까지 뉴올리언즈는 총 15경기를 치루며 9승 6패를 기록 중이다. 개막 전, 나름대로 뉴올리언즈의 예상 승수를 세워두고 있었는데 내가 10~11월 동안 예상한 승수는 약 11~12승 정도였다.

"샬럿과의 시즌 다섯 번째 경기, 마이애미와의 시즌 여섯 번째 경기, 새크라멘토와의 시즌 열 번째 경기" 이상 세 경기는 모두 예상외의 패배를 기록했던 경기였다. 이 경기들 중 1~2 경기만 승리했다면 얼추 나의 예상 승수와 비슷하게 맞아떨어진 숫자를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즌 초반 타이슨 챈들러와 페야 스토야코비치가 부상으로 결장을 하는 등 크고 작았던 몇 몇 돌발 상황들을 감안하면 크게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개인적인 예상치 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이 정도 승률이라면 후반에 얼마든지 본궤도로 올라설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공격

지금까지의 승률이 기대치에서 '살짝' 어긋나고 있다면, 게임의 내용은 '왕창' 어긋나고 있다. 다들 눈치 채셨겠지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게임의 내용"에 대한 것이다. 특히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은 너무나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뉴올리언즈의 공격이다.

이번 시즌의 뉴올리언즈는 게임당 평균 93점을 실점하면서 평균 최소 실점 부문 리그 6위에 랭크되어 있다. 물론 수비의 내용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어찌되었든 결과론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공격은 이야기가 다르다. 게임당 평균 96.2점의 득점률은 고작 리그 21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지난 시즌 돌풍을 일으켰던 뉴올리언즈가 평균 최다 득점 9위, 평균 최소 질점 5위에 각각 랭크되었음을 떠올려본다면 공격의 부진함이 현재 뉴올리언즈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는 주요 요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이번 시즌 총 15경기를 치루는 동안 100점 이상의 득점을 기록했던 7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기록했고, 90점 이상 득점을 기록한 경기에서 패배한 경우는 단 한 번에 그치고 있으며, 90점 미만의 득점을 기록하고도 승리한 경우는 단 한 차례에 그쳤을 만큼 '공격이 잘 풀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경기의 결과가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뉴올리언즈의 공격에는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일까?


크리스 폴의 활용 - 의존도 줄이기? 그 어마어마한 착각과 폐해

이번 시즌 바이런 스캇 감독은 폴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리그 역사상 포인트 가드를 에이스로 하는 원맨팀으로 챔피언십을 차지한 경우가 전혀 없었음을 감안해본다면 분명 그 발상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아니 뉴올리언즈가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아이재이아 토마스의 디트로이트는 결코 원맨팀이 아니었다.)
헌데 이게 조금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스캇 감독의 의도가 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모습이 아니라, 폴을 게임에서 배제시키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의존도를 줄이는 것"과 그를 "배제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이번 시즌 뉴올리언즈의 경기를 보면 팀의 공격이 끝날 때까지 위크사이드에서 홀로 방황하고 있는 폴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위의 표는 폴의 커리어 스탯 중 필드골, 3점슛, 프리드로우에 관련된 수치들을 따로 정리한 것이다. 전체적인 변화의 추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일. 데뷔 이 후 꾸준히 증가해오던 필드골 시도 횟수가 크게 줄었다.
이. 데뷔 이 후 꾸준히 증가해오던 3점슛 시도 횟수가 크게 줄었다.
삼. 데뷔 이 후 꾸준히 감소해오던 자유투 시도 횟수가 크게 늘었다.

일.
필드골 시도 횟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이것은 말 그대로 폴이 시도하는 슛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폴은 어시스트를 해야 하는 포인트 가드니까 더 좋은 현상 아닌가?"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물론 시도는 줄었으나 전체적인 성공률은 높아지고 있는 지금이기에 그 모습이 보기에 흡족하기도 하다.
하지만 3점슛 시도 횟수와 폴의 플레이 스타일을 감안/조합해서 생각해보면 조금 다른 측면이 등장한다.

이.
올 시즌의 폴은 커리어 역사상 가장 적은 횟수의 3점슛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폴이 어떤 상황에서 3점슛을 시도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스크린을 타고 돌아 나와서 3점슛을 시도했던가? 아니다.
현란한 드리블로 수비수를 떨쳐내고 3점슛을 시도했던가? 아니다.
수비수를 앞에 두고 보란 듯이 3점슛을 시도했던가? 아니다.

폴이 주로 3점슛을 시도하는 장면들은 다음과 같다.

"스트롱 사이드(혹은 탑 부근)에서 동료 선수들과 공격을 세팅하는 과정 중" -> 수비수가 폴의 돌파 or 엔트리 패스 등을 염려해 거리를 두고 수비를 하는 상황. 혹은 -> 엔트리 패스를 받은 동료가 곧바로 폴에게 리턴 패스를 주는 상황.

주로 이런 장면들에서 비교적 여유롭게 시도하는 3점슛이 폴의 그것이다. 그리고 이번 시즌 들어 3점슛 시도 횟수가 급감한 이유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더 이상 폴이 있는 곳이 스트롱 사이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드골 시도 횟수가 줄어든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폴이 게임을 조율하고 거기에 맞춰 다른 선수들이 보다 많은 슈팅을 시도한 것이 아니다. 데이비드 웨스트와 스토야코비치의 필드골 시도 횟수가 나란히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만약 위와 같은 이유로 폴의 필드골 시도가 줄어들었다면 두 선수의 필드골 시도 횟수는 필연적으로 증가했어야 했다. 폴을 제외한 팀 내 가장 확실한 득점원들인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저 폴을 배제한 채 시도되는 공격 횟수가 늘어난 것이 폴의 슈팅 시도 횟수가 줄어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삼.
자유투 시도 횟수가 증가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지난 시즌처럼 동료들과 볼을 주고받으며 공격을 세팅할 수 있는 기회가 크게 줄어든 폴은 결국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해 직접 득점을 "마무리" 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야했고 그 결과 상대 수비수들로부터 파울을 얻는 횟수가 증가한 것이다. 이것이 자유투 시도 횟수가 늘어난 실질적인 이유다.

이런 식의 '의존도 줄이기'는 르브론 제임스 타입의 선수에게 어울리는 방법이다. 제임스처럼 "더블 팀을 몰고 다니며", 득점을 "마무리" 하는 선수는 이런 식으로 의존도를 줄이는 게 맞다. 제임스가 위크 사이드에 머무르는 경우, 스트롱 사이드에 있는 선수들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제임스는 결정적인 순간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파울을 얻고 득점에 성공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클리블랜드가 "2옵션 찾기"라는 염원을 품은 채 그토록 고생을 한 것 아니었나?

하지만 폴은 제임스의 그것과 같은 위협을 주는 선수가 아니다. 폴은 더블 팀을 몰고 다니는 선수도 아닐뿐더러 득점을 '마무리' 하는 선수가 아니라 득점의 '시발점'이 되어야 하는 선수다. 직접 득점에 성공하든, 어시스트를 기록하든, 먼발치에서 구경을 하든지 간에 공격의 시작은 폴의 손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폴이 위크 사이드에 머무르는 경우, 스트롱 사이드에 있는 선수들은 그 위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볼을 가지고 게임을 리딩하는 폴이 아니라면, 또한 그런 폴과 함께하는 뉴올리언즈가 아니라면 수비수들은 그저 고마울 뿐이다.

폴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없어도 득점을 올릴 수 있는 2옵션"이 아니다. 자신이 진두지휘하는 게임에 최적화 된 "4명의 동료들"이다. 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싶은가?  그렇다면 폴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어시스트를 기록할 수 있는 공격 전술을 구상해야 한다. 폴이 20-10 의 포인트 가드가 아니라 10-20 의 포인트 가드가 될 수 있는 팀을 만들어야 한다. 폴의 슈팅 시도 횟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폴의 출장 시간을 줄일 수 있어야한다. "폴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득점을 할 수 있는 전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아니, 그런 생각은 리그 탑 포인트 가드에 대한 모욕이다.


혼돈의 세트 오펜스 - 느려지고 무뎌지고

위의 표는 뉴올리언즈가 슛클락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왼쪽은 지난 07-08 시즌의 것, 오른쪽은 이번 08-09 시즌의 수치다.

07-08 시즌의 뉴올리언즈는 전체 공격 시도의 60%를 15초 이내에 실행했다.
08-09 시즌의 뉴올리언즈는 전체 공격 시도의 53%를 15초 이내에 실행하고 있다.
이것은 전년도대비 -7%에 해당하는 수치다.

얼마나 공격이 느려졌는지 느낌이 잘 오지 않는가?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하프 코트 게임을 즐기며 득점을 올리는 샌안토니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07-08 시즌의 샌안토니오는 전체 공격 시도의 56%를 15초 이내에 실행했다.
08-09 시즌의 샌안토니오는 전체 공격 시도의 55%를 15초 이내에 실행하고 있다.

이번 시즌의 뉴올리언즈는 샌안토니오 이상의 지공을 구사하는 팀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뉴올리언즈는 리그에서 가장 적은 필드골 시도 횟수를 기록 중인 팀이다.)

물론 07-08 시즌의 뉴올리언즈 역시 빠른 템포의 농구를 구사하는 팀은 아니었다. 다만 1차적인 세트 오펜스만으로도 신속한 득점이 가능했기에 체감 속도가 빠르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것은 잘나가던 뉴올리언즈와 표류하는 뉴올리언즈가 갖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잘나가던 뉴올리언즈에는 폴과 챈들러의 픽앤롤, 폴과 웨스트의 픽앤팝으로 대표되는 "필살기"가 있었다. 폴이 볼을 잡고 코트를 넘어오면 웨스트/챈들러는 스크린플레이를 준비했고 폴이 지체 없이 돌파를 시작하면 이것은 곧 앨리웁과 오픈 점퍼로 이어졌다. 이것은 지난 시즌 뉴올리언즈가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었던 가장 확실한 무기였다. 그리고 그것에 실패하더라도 재빨리 2차, 3차 세트 오펜스를 가동하며 득점을 이어갔다. 폴의 플로터, 페야의 외곽슛, 웨스트의 포스트 업 등이 그것이다. 결국 21초 이 후에 시도하는 공격의 비중은 전체 공격의 17%에 그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의 뉴올리언즈는 소위 "필살기"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세트 오펜스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런 이유로 전체 공격 시도에서 15초 이내에 이뤄지는 공격의 비중이 무려 전년도 대비 -7%의 수치를 보이고 있다. 득점을 위해 최적화 된 루트를 잃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1차적인 세트 오펜스가 막혀버리는 순간부터 이해할 수 없는 공격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챈들러가 하이 포스트로 나와서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수행하려 한다거나, 앞서 언급했듯 폴을 위크사이드에서 방치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거기에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볼을 갖지 않은 공격수들의 움직임이 제로에 수렴하고 있다.

결국 뚜렷한 방향성이 없는 공격으로 시간만 허비하게 되고, 그 결과 21초 이후에 시도하는 공격의 비중이 전년도 대비 4%나 증가해 전체 공격 시도의 21%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특히나 뉴올리언즈의 득점 패턴에 있어서 점프슛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상기해본다면 이것은 결코 유쾌한 상황이라고 볼 수 없다. 시간에 쫓겨 던지는 점프슛만큼 유쾌하지 못한 공격이 어디에 있을까?

정리해보자.

문제 일 : 폴을 공격에서 배제시켜버리고 있다.
문제 이 : 세트 오펜스가 버벅거리고 있다.

그렇다면 퀴즈~ 두 가지 문제의 상관관계는?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 글의 요점을 정리해보면 뉴올리언즈의 가장 큰 문제는 공격이다. 공격에 문제가 생긴 것은 크게 두 가지의 이유로 분류할 수 있다. 이유 하나, 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시도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 이유 둘, 확실한 공격 전술의 부재로 인해 뚜렷한 방향성이 없는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

이렇게만 놓고 본다면 현재 뉴올리언즈 공격의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서 의외로 간단하고 원론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폴을 공격의 한 가운데 놓을 것. (덧붙여 '의존도 줄이기'와 '배제하기'를 혼동하지 말 것) 그리고 선수들은 보다 게임에 집중을, 코치진은 확실한 공격 전술의 개발과 선수들의 동기유발을 촉구해야 할 것이 그 해답이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12월 2일. 바이런 스캇 감독이 인터뷰를 가졌다. 최근 팀이 부진한 이유는 공격 기회를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공격의 템포를 끌어올리고 공격 리바운드 확보에 포커스를 두겠노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여러분들이 이 글을 읽으실 때쯤이면 뉴올리언즈와 피닉스의 시즌 2차전 경기가 끝이 났을 것이다. 자, 뉴올리언즈는 과연 얼마나 달라진 모습으로 게임에 임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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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POINT GUARD 2008. 11. 21. 02:05

『그 때 그 선수』샌안토니오의 닌자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0년대 최고의 명문팀으로 손꼽히는 샌안토니오 스퍼스. 샌안토니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데이비드 로빈슨이라는 이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리그 최고의 센터로 활약하며 언제나 샌안토니오의 골밑을 지키던 그는 여러모로 프랜차이즈의 복덩이였다. 특히 부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가 절묘한 시기에 시즌 아웃을 당하며 팀 던컨이라는 또 한 명의 전설이 팀에 합류할 수 있었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로빈슨의 개점휴업 덕분에 샌안토니오에 합류한 '전설'이 던컨 이외에도 또 한 명이 더 있다는 사실이다.

로빈슨은 1987년 드래프트에서 샌안토니오에 호명되었으나 군복무 문제로 1989-90 시즌에나 데뷔를 할 수 있었다. 그 탓에 샌안토니오는 드래프트 1순위 신인을 지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빈슨 없이 두 시즌을 더 고생해야 했는데 이 시기에 얻은 드래프트 픽으로 또 한 명의 '전설'을 지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89 드래프트를 통해 샌안토니오에 합류한 이 선수는 로빈슨과 함께 1989-90 시즌을 통해 데뷔했고, 이 둘의 데뷔를 기점으로 팀은 성공의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깔끔한 외모와 화려한 플레이로 로빈슨만큼이나 많은 팬을 보유했던 샌안토니오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NBA 역사상 최초로 신장 수술을 받고 난 뒤 복귀에 성공한 의지의 선수. 샌안토니오의 영원한 닌자.

이번에 만나볼 '그 때 그 선수'는 바로 션 엘리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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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의 전설, 샌안토니오에 등장

션 엘리엇은 애리조나 대학 시절, 팀을 대표하는 최고의 슈퍼스타였다. 졸업반 시절 평균 22.3득점 7.2리바운드 4.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맹활약한 그는 통산 2557점을 득점하며 학교 신기록을 작성했다. 지금도 애리조나 대학 출신으로는 유일한 존 우든 어워드 수상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같은 해 전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더해서 Pac-10 올해의 선수에도 2년 연속 이름을 올리는 등, 엘리엇은 NCAA에서도 손꼽히는 최고의 선수였다.

이처럼 엄청난 기량을 가지고 있었던 엘리엇은 졸업 후 당연스럽게 1989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로빈슨을 지명하고도 그의 합류가 늦어져 부진을 면치 못하던 샌안토니오는 당시 1라운드 3번 픽으로 엘리엇의 이름을 호명했다.

엘리엇이 데뷔하던 1989-90 시즌은 로빈슨이 팀에 합류한 시즌이기도 했고, 그들은 전년도 대비 +35승이라는 업적을 세우며 팀의 성적을 수직 상승 시켰다. 비록 괴물 중고 신인으로 등장한 로빈슨에 가려져 그 임팩트가 약했을지는 모르나 올 루키 세컨드 팀에 이름을 올리며
평균 10득점 3.7리바운드, 1.9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 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샌안토니오의 핵심 멤버로 활약한 엘리엇의 커리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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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엘리엇의 기량은 무르익어갔다. 데뷔 이 후 매년 성장을 거듭하며 1992-93 시즌 평균 17.2득점, 4.6어시스트, 3.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로빈슨과 함께 샌안토니오의 원투 펀치 콤비로 자리를 확고히 다졌다.
엘리엇은 타고난 공격수였다. 그의 다양한 공격 스킬은 매치업 상대를 곤욕에 빠뜨리기 일쑤였다. 그 중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페네트레이션. 현란한 드리블 실력을 자랑하던 선수는 아니었으나 그에게는 누구보다 빠른 퍼스트 스텝이 있었다. 좌우 베이스라인을 타고 들어가며 돌파를 시도할 때면 엘리엇의 수비수들은 스쳐지나가는 그의 뒷모습만을 바라봐야 했다.

페인트존에서의 움직임도 훌륭해 로빈슨이 만들어내는 공간을 활용하며 득점을 올리곤 했다. 또한 트랜지션 게임에 강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빠른 발을 이용한 속공 마무리 능력은 일품이었다. 스팟업 슈터로써의 능력도 훌륭해서 중거리 페이스업 점퍼는 물론이고 안정적인 3점슛 슈터로도 활약할 수 있었다. (생애 통산 3점슛 성공률 37.5%) 더해서 볼에 대한 욕심이 없고, 공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의 움직임이 훌륭했기에 그 어떤 선수와도 융화될 수 있는 공격수였다.

엘리엇은 수비에서도 적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비록 몸싸움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장신의 매치업 상대를 만나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워낙에 순발력이 좋고 BQ가 뛰어난 선수였기에 영리한 수비를 펼치는 선수였다. 무엇보다 결코 수비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매치업 상대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수비수였다. 특히 조용히 나타나 상대 공격수의 볼을 채가는 모습은 샌안토니오 팬로부터 "닌자"라는 별명을 얻게 해주었다. ("닌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유는 일본인 2세인 아내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렇듯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던 엘리엇이었으나 의외의 상황이 발생한다. 그의 기량이 절정에 오르기 시작했던 1992-93 시즌, 전통적인 수비팀이었던 샌안토니오의 수비가 무너진 것이다. 해당 시즌 팀은 평균 109.6득점 / 106.8실점을 기록했는데, 득점부분은 리그 6위의 성적을 올렸으나 실점부분에서 리그 10위를 기록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전년도였던 1991-92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평균 103.3실점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수비팀으로 기록되었던 그들이었다.
구단 프론트진은 그 이유를 골밑 장악 능력의 부재라는 결론을 내렸다. 1991-92 시즌 팀의 주전 파워 포워드로 활약하며 7.8개의 리바운드를 잡아주던 테리 커밍스가 부상으로 1992-93 시즌을 8경기 출장에 그치며 팀의 실점이 늘어난 것은 물론, 리바운드 마진이 마이너스 수치를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샌안토니오는 팀의 리바운드와 골밑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디트로이트의 데니스 로드맨을 영입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로드맨은 2년 연속 리바운드왕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리바운드 머신의 면모를 뽐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로드맨의 영입을 위해 샌안토니오가 제시한 카드는 바로 엘리엇이었다. 디트로이트로써는 아이재이아 토마스가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었기에 팀의 공격을 이끌어 줄 선수가 필요했고, 두 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로드맨과 엘리엇은 서로 유니폼을 갈아입게 되었다.


귀환, 샌안토니오

디트로이트 유니폼을 입은 엘리엇은 예전과 전혀 다른 선수 같았다. 모든 카테고리에서의 크게 성적이 떨어졌고, 디트로이트 농구에 적응하지 못했다. 시즌 도중 디트로이트는 휴스턴의 로버트 오리, 맷 불라드, 2라운드 2장과 엘리엇을 트레이드하려 했으나 엘리엇이 신체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며 트레이드가 무산되는 굴욕을 겪기도 한다. 단 한 시즌(1993-94)동안 디트로이트의 일원으로 플레이하던 그는 시즌이 종료되고 얼마 있지 않아 1994년 드래프트에서 샌안토니오가 1라운드에서 지명한 빌 커리, 미래(1997년)의 2라운드 픽과 트레이드 되어 친정팀으로 돌아온다.
샌안토니오로 돌아온 1994-95 시즌, 엘리엇은 거짓말처럼 부활했다. 1년 뒤인 1995-96 시즌에는 평균 20득점, 5.1리바운드, 2.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낸다.

그리고 운명의 1996-97 시즌이 샌안토니오를 찾아왔다. 팀의 중심인 로빈슨이 부상으로 단 6경기에 출장하는 것에 그치며 샌안토니오가 '던컨 드래프트'의 승자로 급부상 할 무렵, 엘리엇에게도 부상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시즌을 치루며 양 쪽 무릎에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것이다. 이 부상은 커리어 내내 엘리엇을 괴롭혔고, 그로 인해 엘리엇은 조금씩 하향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팀의 원투 펀치를 잃은 샌안토니오는 20승을 거두는데 그치고, 그 시련은 팀 던컨을 손에 넣는 것으로 보상 받았다.


Memorial Day Miracle

1997-98 시즌을 앞둔 엘리엇은 무릎 부상으로 인해 과거와 같은 플레이를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비록 폭발적인 퍼스트 스텝을 잃었지만, 던컨이라는 새로운 동료도 얻었기에 과거와 같이 골밑을 향해 돌격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외곽 위주의 공격을 구사하는 형태로 변화시켰고, 던컨에게 공격 옵션 2번의 자리도 양보했다. 로빈슨, 엘리엇 같은 선배들의 지원속에 던컨은 기대 이상으로 성장했고 신인왕에 등극했다.

직장 폐쇄로 인해 총 50경기를 치루는 단축 시즌으로 진행된 1998-99 시즌. NBA에 완벽히 적응한 던컨은 로빈슨과 짝을 이뤄 막강한 트윈 타워를 구축했고, 엘리엇 역시 전 경기에 선발 출장하며 두 선수의 뒤를 잇는 3번째 공격수로써 제 몫을 다했다. 샌안토니오는 37승 13패를 기록하며 유타와 함께 리그 최다승 팀으로 올라섰다. 플레이오프에 들어서도 그들의 쾌속 질주는 계속 됐다. 그들은 패배를 모르는 듯 계속해서 승리했고, 결국 파이널 무대에 올라 뉴욕을 4-1로 잠재우며 프랜차이즈 사상 첫 우승의 쾌거를 이루는 감격을 맛본다.

특히 엘리엇은 당시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2차전 포틀랜드와의 경기에서 훗날 "Memorial Day Miracle" 로 기억되는 클러치 슛을 성공시키며 팀을 구해내 커리어 사상 최고의 순간을 경험한다.
샌안토니오의 홈경기로 열린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2차전. 경기 종료까지 12초가 남은 상황. 83-85 로 포틀랜드가 2점을 리드하고 있었다. 샌안토니오는 타임 아웃을 요청한 뒤 하프 라인에서 공격이 시작했다. 치열한 몸싸움 중, 로빈슨의 스크린을 타고 엘리엇이 사이드 라인을 향해 달려나왔고, 당시 인바운드 패서였던 마리오 엘리는 엘리엇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당시 엘리엇의 수비수였던 스테이시 오그먼은 스크린에 걸려 잠시 엘리엇을 놓쳤으나 금새 그의 뒤를 쫓아왔고 엘리의 패스를 향해 몸을 날리며 스틸을 시도했다. 다행히 공은 아슬아슬하게 오그먼을 스쳐지나갔고 엘리엇이 힘겹게 공을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급하게 몸을 돌리느라 신체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졌고, 그의 몸은 사이드 라인 밖으로 쓰러지려 하고 있었다.
순간, 엘리엇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발은 이미 절반이 사이드 라인 밖으로 나가버렸지만 엘리엇은 극적으로 뒷꿈치를 들어올리며 라인 아웃을 피했다. 위기를 느낀 포틀랜드의 라쉬드 월라스가 재빨리 도움 수비에 나섰고, 동시에 엘리엇은 3점슛을 던졌다. 왈라스는 있는 힘껏 뛰어 올라 블록슛을 시도했지만 공은 그의 손보다 더 높은 궤적을 그리며 림을 향해 날아갔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자 점수는 86-85로 역전 되어 있었다. 샌안토니오는 그렇게 2차전을 승리할 수 있었고, 여세를 몰아 4연승으로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Miracle Again

창단 후 첫 우승의 감격이 채가시기도 전에 엘리엇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왔다. 자신은 그 동안 심각한 신장 질환을 겪어왔고, 이제는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그는 1999년 8월 16일, 친형인 노엘 엘리엇으로부터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파이널 무대에서 우승의 환희를 경험한 지 채 6개월도 되지 않은 때였다.

모든 이들은 그렇게 엘리엇이 은퇴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껏 그 누구도 신장 수술 이 후 코트로 돌아온 적이 없었으며, 수술 직 후 그의 선수생명은 끝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신장 수수을 받은 그가 다시금 치열한 NBA 무대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엘리엇은 강하게 복귀를 향한 의욕을 보이며 운동을 재개했다. 그리고 2000년 3월 14일. 샌안토니오 홈팬들은 또 한 번의 기적을 경험한다. 애틀란타와의 홈경기에서 엘리엇이 복귀한 것이다. 비록 12분만을 플레이하며 2득점, 1리바운드, 1어시스트에 그쳤지만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 경기에서 성공시킨 단 한 번의 득점은 무려 덩크슛으로 기록한 것이었는데, 훗날 팀의 감독인 그렉 포포비치는 "내가 기억하는 엘리엇의 가장 멋진 모습" 이었다며 이 날의 덩크슛을 회상하기도 했다. 이 후 2000-01 시즌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지만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몸놀림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조용히 은퇴를 선언했다.


기적의 사나이로 영원히 기억되다

2005년 3월 6일. 유타와의 홈경기에서 샌안토니오는 엘리엇의 백넘버인 32번을 영구 결번하는 행사를 가졌다. 그의 유니폼은 자신과 함께 샌안토니오를 이끌던 로빈슨의 50번 유니폼과 나란히 걸리게 되었다.
샌안토니오에서 시작된 커리어 내내 로빈슨의 뒤를 잇는 2번 옵션으로 혹은 던컨의 뒤를 받쳐주는 세 번째 선수로 활약해왔다. 덕분에 그는 그 어떤 개인 트로피도 들어올리지 못했다. 단 두 차례의 올스타 게임 출장 경험만이 엘리엇의 유일한 족적으로 남을 것 같다. 전미 최고 수준의 선수로 손꼽히던 대학 시절에 비해 너무나 조연에 익숙해져버린 자신의 프로 경력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을까? 자신의 영구 결번식에서 가진 인터뷰 내용으로 이 궁금증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며 마친다.

"15년 전, 스퍼스에 입단할 때는 저의 유니폼이 조지 거빈, 데이비드 로빈슨과 같은 선수들과 함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정말로 기쁩니다. 무엇보다 저의 가족, 저와 함께했던 동료들, 코치, 그리고 많은 추억을 주신 팬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Sean Elliott (199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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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통산 742경기 출장(712선발)
평균 14.2득점, 4.3리바운드, 2.6어시스트, 33분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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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크리스 폴의 활약이 대단하다. 개인적으로 앤퍼니 하더웨이 이 후 이렇게나 번뜩이는 센스를 보여주는 포인트 가드는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다. 작은 키로 인간 장대 숲을 헤치고 다니며 상대 수비진을 와해하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다.

그런 폴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선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그는 레지 밀러처럼 단 한 팀만을 위해 플레이했던 선수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위대한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로 손꼽힌다. 그의 컴백은 마이클 조던처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감동을 주었다.

"불꽃 선즈"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피닉스=공격" 이라는 공식을 처음 성립한 선수. 제이슨 키드, 스티브 내쉬가 활약하기 이전에 이미 피닉스의 돌격 대장으로 적진을 누비던 포인트 가드. 절정의 기량을 뽐내던 하킴 올라주원에게 6-1 이라는 작은 키로 인 유어 페이스 덩크슛을 작렬시킨 선수. 그리고 얼마 전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무렵, 새크라멘토 역사상 최초의 흑인 시장으로 등극한 선수.

이번에 만나볼 '그 때 그 선수'는 바로 케빈 존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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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그리고 트레이드

1987년 NBA 드래프트. 당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1라운드 7번 픽을 가지고 있었다.
앞서 5, 6번 순위로 훗날 전설이 될 스카티 피펜과 케니 스미스의 이름이 호명된 직후, 클리블랜드의 팬들과 전문가들은 팀이 취약 포지션인 스몰 포워드의 선수를 호명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고의 적임자로 앨라배마 출신의 데릭 맥키가 손꼽혔고 아직 그는 어느 팀에게도 지명되지 않은채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이 지나고, NBA 커미셔너 데이비드 스턴이 단상으로 올라와 입을 열었다.
"1987년 NBA 드래프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케빈 존슨을 지명했습니다."

순간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고, 클리블랜드 팬들은 야유를 쏟아냈다. 드래프트 중계진들도 다소 의외의 선택이었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클리블랜드에는 이미 지난 드래프트에서 두 명의 공격형 가드를 선발했었기 때문이다. 바로 1년 전 1라운더 신인으로 영입했던 론 하퍼는 평균 22.9득점을 기록하며 신인왕 투표 2위를 차지했고, 2라운더 신인이던 마크 프라이스 역시 리그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었다.

1년 앞서 MLB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서 유격수로 지명되기도 했던 만능 스포츠맨이었으나 과감히 농구의 길을 선택한 존슨의 리그 데뷔는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1라운드 2번의 지명권으로 아몬 길리엄을 선발했던 피닉스 선즈는 야유를 받으며 클리블랜드의 모자를 받아든 작은 선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니 지켜보기는 한 것일까? 훗날 피닉스의 전설이 될 그 선수의 등장을 말이다.

그렇게 데뷔한 존슨은 모두의 예상대로 난관에 부딪혔다. 특히 프라이스의 눈부신 성장은 존슨의 입지를 좁게만 만들었다. 신인으로써 준수한 활약을 보이고 있었음에도 좀처럼 그에겐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클리블랜드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에게 커리어를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포인트 가드의 부재로 힘들어하던 피닉스 선즈가 부상으로 신음하던 스타플레이어 래리 낸스에 마이크 샌더스를 패키지로 클리블랜드의 케빈 존슨, 타이론 코빈, 마크 웨스트와의 2 : 3 트레이드에 합의했던 것이다. 신인 시즌을 마치기도 전에 새로운 팀으로 이적하게 된 존슨은 피닉스에서 눈부신 비상을 시작한다. 이적과 동시에 팀의 주전 가드 자리를 꿰찬 그는 연일 맹활약을 펼쳤고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불꽃 선즈의 돌격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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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작된 두 번째 커리어 1988-89 시즌. 존슨은 81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하며 결국 사고를 치고 만다. 시즌 평균 20.4 득점, 12.2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이전까지 단 세 명만이 성공했던 '20-10 슈퍼 포인트 가드' 패밀리의 일원이 된 것이다. 존슨 이전에 시즌 평균 20득점-10어시스트를 기록했던 세 명의 선수들은 오스카 로버트슨, 매직 존슨, 아이재이아 토마스였다.
2008년 11월 현재까지도 시즌 평균 20득점-10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는 단 다섯 명뿐이다. 존슨 이 후 팀 하더웨이(1991-92, 1992-93)와 크리스 폴(2007-08)만이 20-10 클럽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단연 압도적인 활약을 펼친 존슨은 당당히 MIP(최고 기량 발전상)을 수상하며 NBA 세컨드 팀에 이름을 올렸고, MVP 투표에서도 8위에 이름을 올리며 당당히 자신의 전성시대를 열어가기 시작했다. 이어진 1989-90, 1990-91 시즌에서도 연속으로 평균 20득점-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로버트슨, 토마스와 함께 리그 역사상 단 세 명뿐인 '세 시즌 연속 20-10에 성공한 선수'로 기록 되었다.

존슨의 20-10 기록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앞서 말했듯이 세 시즌 연속 20-10을 달성했고, 1989-90 시즌에는 매직 존슨과 더불어 유이하게 50+%의 필드골 성공률을 기록한 20-10 멤버가 되었으며 (50.5%), 1990-91 시즌에는 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20-10을 달성하는 동시에 2개 이상의 스틸을 기록한 선수로 기록되기도 했다. (2.1개)
(훗날 2007-08 시즌의 크리스 폴이 20-10과 함께 2.7개의 스틸을 기록하며 존슨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런 존슨의 눈부신 성장과 함께 피닉스의 성적도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존슨을 영입한 이 후 28승을 기록하던 팀은 단숨에 55승을 기록하며 전년도 대비 +27 승을 기록했고, 플레이오프에 출전조차 하지 못했던 팀이 곧바로 2년 연속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는 강팀으로 성장했다. "불꽃 선즈"로 일컬어지며 런앤건을 주 무기로 하는 리그 최고의 공격 팀으로 거듭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존슨이 처음 피닉스에 합류하던 1987-88 시즌 당시, 팀은 평균 107점을 득점하며 팀득점 부문 리그 1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으나 바로 이듬해인 1988-89 시즌에 평균 113.1점을 득점하며 단숨에 리그 2위의 득점력을 자랑하는 공격 팀으로 거듭났다. 그 중심에 케빈 존슨이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존슨의 공격은 오직 "돌파"였다. 그의 커리어 통산 3점슛 성공률은 30.5%에 그칠 만큼 정교한 외곽 슛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겐 리그 역사상 최고로 손꼽히는 돌파 능력이 있었다. 지금도 그의 돌파를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는 팬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현란한 드리블링과 번개와도 같았던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전장과도 같았던 골밑을 향해 돌격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작은 체구의 존슨은 몇 번이고 넘어지고 넘어지면서도 돌파를 감행했고, 이는 곧 득점으로 이어졌다.

평균 10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던 만큼 그는 훌륭한 패서이기도 했다. 상대 수비진을 완벽히 농락하는 돌파를 성공시킨 뒤 킥아웃 패스를 연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노룩 패스, 비하인드 백패스 같은 고난이도 패스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운동 능력 역시 엄청난 것이어서 리그 최고의 스피드와 순발력을 자랑했고, 고무공 같은 탄력을 뽐내며 상대팀의 장신 센터들을 앞에 두고 폭발적인 덩크슛을 터뜨리기도 했다.

훌륭한 플레이메이커이기도 했던 존슨은 수비수로써도 훌륭한 선수였다. 상대팀 가드들은 빠른 발과 엄청난 활동량을 앞세운 존슨의 프레싱에 곤욕을 치르곤 했다. 퍼리미터 디펜스 능력도 준수해서 상대 선수의 외곽 슛을 효과적으로 봉쇄했으며 패싱레인을 자르는 가로채기 능력도 훌륭했다. 작은 키에 비해 훌륭한 리바운더이기도 했다.

돌파를 시도할 때면 시선을 아래로 향하는 버릇이 있어 코트 비전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전성기의 존슨이 보여주던 돌파는 그런 것쯤은 가볍게 상쇄하고도 남을 위력을 가진 것이었다.

그가 가진 문제는 외곽슛 능력과 기복이 있었던 득점력, 그리고 부상뿐이었다. 특히 작은 체구를 이끌고 인간 장대 숲을 향해 돌격하고 돌격하던 플레이 스타일 탓에 크고 작은 부상은 언제나 그를 괴롭혔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부족한 외곽슛 능력은 더욱 아쉽게 다가온다. 만약 존슨에게 예리한 외곽슛 능력이 있었다면 그의 커리어가 조금은 더 길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빛과 그림자

피닉스는 존슨을 중심으로 성장하며 서부 컨퍼런스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챔피언십을 노리기에는 어딘지 부족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1992-93 시즌을 앞둔 피닉스는 엄청난 결단을 내린다. 새로운 사령탑으로 폴 웨스트폴 감독을 선임함과 동시에 팀의 스코어링 리더였던 제프 호너섹, 스타팅 빅맨이었던 팀 페리와 앤드류 랭을 트레이드 패키지로 하여 필라델피아의 찰스 바클리와 3:1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이다. 물론 바클리가 엄청난 스타플레이어이긴 했으나,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던 세 선수와 단 한 명의 선수를 트레이드 시킨 것은 당시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이 엄청난 도박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팀은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62승 20패를 기록, 정규 시즌 우승팀이 되었고 바클리는 피닉스가 NBA에 가입한 이 후 최초의 MVP 수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피닉스의 상징과도 같았던 존슨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데뷔 이 후 가장 많은 결장을 기록해야 했다. 시즌 초반부터 부상으로 인해 잦은 결장을 계속해야 했고, 이는 결국 커리어 내내 그를 괴롭히던 부상 악몽의 시작이 되었다.
(이 후 그는 1996-97 시즌을 제외하고, 단 한 차례도 70경기 이상 출장하지 못한다.)
더해서 1993년 3월 23일 뉴욕과의 경기에서 언쟁을 일으켜 두 경기 출장 정지를 당하기도 하는가 하면, 팀의 중심이 자신에게서 바클리로 이동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하지만 존슨은 진정한 팀플레이어였고 누구보다 강한 선수였다. 그는 조금도 팀에 불만을 갖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되레 조금씩 다가오는 챔피언십 트로피를 향한 각오를 다질 뿐이었다.
피닉스의 기세는 플레이오프에서도 계속됐다. 1라운드에서 레이커스를 맞아 3-2로 승리한 그들은, 2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를 상대로 4-2의 승리를 기록했고,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시애틀을 만나 최종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꿈에 그리던 파이널 진출에 성공한다. 그들의 마지막 상대는 그 어마어마한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당시 바클리와 조던의 격돌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두 팀은 연일 혈전을 펼쳤다.

그러나 정작 존슨은 꿈에 그리던 파이널 무대에서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었다. 파이널 6게임을 치루는 동안 존슨의 평균 필드골 성공률은 시즌 기록에 한참 못 미치는 42%에 머물렀고 평균 17.1 득점, 3 리바운드, 6.5 어시스트와 함께 4.3 개의 턴오버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1992-93 시즌 당시 부진하다는 평을 듣던 존슨의 정규 시즌 기록이 16.1 득점, 2.1 리바운드, 7.8어시스트, 3.1 턴오버, 필드골 성공률 49.9% 였음을 감안해본다면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활약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팬들의 야유를 사게 된 것은 파이널의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다. 흔히 1993년 파이널은 시카고 존 팩슨의 역전 3점슛과 함께 끝이 난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 뒤에 아주 조금의 이야기가 더 남아 있다.
팩슨의 역전 슛이 성공되고 나서도 경기 종료까지는 3.9초가 더 남아있었다. 타임아웃 이 후 하프 라인에서 공격을 시도한 피닉스의 선택은 케빈 존슨이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존슨의 돌파를 믿은 것이다. 파울로 슛을 끊어버린다 하더라도 걱정 없었다. 존슨은 정확한 자유투 슈터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연출됐다. 경기 내내 1득점 7리바운드를 잡는데 그쳤던 호레이스 그랜트가 존슨의 공을 블록한 것이다. 존슨은 슛을 제대로 시도해보기도 전에 공을 빼앗겨 버렸고 피닉스의 시즌은 그대로 종료되고 말았다.

팬들은 존슨을 향해 커다란 야유를 보냈다. 바클리는 "존슨을 욕하는 이들은 팬이 될 자격이 없다. 존슨이 없었다면 우리는 파이널까지 올라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라며 존슨을 옹호했지만 결국 그 이 후 바클리도, 존슨도 다시는 파이널 무대를 밟지 못했다.


조용히 돌아서다

아쉬운 파이널을 뒤로 하고 맞이한 1993-94 시즌. 마이클 조던의 은퇴와 함께 춘추 전국 시대가 열렸다.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는 단연 전년도 준우승 팀 피닉스.
비록 그들은 2년 연속 휴스턴의 벽에 가로막혀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눈물을 삼켜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빈 존슨은 지난 파이널의 부진을 씻어내며 1993-94 시즌을 통해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1994년 여름에는 드림팀 2의 일원으로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을 마지막으로 조금씩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부상이었다.

1996-97 시즌을 앞두고, 더 이상 피닉스에서 우승을 노릴 수 없음을 직감한 바클리는 휴스턴으로 떠나갔다. 존슨은 다시 한 번 팀의 중심이 되어 평균 20.1 득점, 9.3 어시스트를 기록, 전성기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치지만 이듬해인 1997-98 시즌을 부상으로 인해 50경기에 출장하는 것에 그치며 쓸쓸히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피닉스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에게 패배하며 시즌을 마감했고, 팀의 중심은 댈러스에서 이적해온 제이슨 키드의 몫이었다.


불타는 석양

새로운 밀레니엄을 여는 1999-2000 시즌, 피닉스는 올랜도로부터 슈퍼스타 앤퍼니 하더웨이를 영입하며 다시 한 번 우승에 도전했다. 특히 당시 키드와 하더웨이의 만남은 "백코트 2000" 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큰 기대를 받았다. 두 선수가 번갈아가며 잦은 부상에 시달리느라 그들의 조합을 자주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가 함께 했던 42경기에서 무려 30승을 거두며 7할대의 승률을 기록, 기대에 부응하고 있었다.

그러던 2000년 3월 22일. 새크라멘토와의 경기에서 사고가 나고 말았다. 키드가 부상을 당하며 남은 정규 시즌을 포기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남은 잔여 시즌 경기는 무려 15경기에 달했다. 하더웨이와 콤비를 이룰 주전 포인트 가드는 고사하고 백업 자원조차 부족했던 피닉스에겐 작지 않은 위기였다.

이 때 조용히 나타난 선수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2년 전에 은퇴를 선언했던 케빈 존슨이었다. 팀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홀연히 컴백한 그는 남은 15경기 중 6경기에 출장하며 6.7 득점,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활약했다. 비록 전성기와 같은 모습을 보여 주진 못했지만, 팀의 전설과도 같은 그의 합류는 선수들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다.
이 후 플레이오프에서는 키드의 복귀로 경기당 3분여의 시간만을 출장할 수 있었고, 훗날 결국 우승을 차지한 레이커스에게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패배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종료 후, 다시 한 번 피닉스를 위해 뛰어주길 원하는 팬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존슨은 조용히 두 번째 은퇴를 선언하며 영원히 코트를 떠났다.


영원한 피닉스의 태양 KJ

두 번째 은퇴 직 후인 2000-01 시즌. 피닉스는 존슨의 고향 팀인 새크라멘토와의 경기가 열린 2001년 3월 7일, 그의 영구 결번식 행사를 가졌다. 얄궂게도 당일 경기에서 피닉스는 크리스 웨버에게 무려 41점을 내어주며 89-100 으로 대패했는데, 도무지 존슨과 피닉스의 궁합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클리블랜드에서 가려있던 존슨이 피닉스로 이적하며 화려하게 비상한 것을 보면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는 것 같지만, 정작 팀이 파이널 무대에 진출했을 때 존슨이 극악의 부진을 보인 것이나 영구 결번식 행사를 가진 날에 팀이 대패하는 등 묘하게 어긋나고 있는 것도 같다.

은퇴 직 후인 2000-01 시즌에 NBA on NBC 중계 진으로 활약하기도 했던 존슨은, 이 후 자신의 재단을 설립하여 청소년들의 교육과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자선 사업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정계에도 진출해 얼마 전 새크라멘토 사상 최초의 흑인 시장이 되었다고 한다. 코트 밖에서도 열정적인 그의 '돌파'는 계속 되고 있는 셈이다.

화려한 돌파로 대표되는 자신의 플레이처럼 짧지만 강렬한 커리어를 보낸 케빈 존슨. 수상 경력이라고는 MIP 트로피가 전부인 그이기에, 어쩌면 코트 위 그의 모습이 조금은 빠르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그의 모습을 또렷하게 간직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불꽃 선즈"의 초대 돌격 대장이 코트를 질주하던 모습을 말이다.


Kevin Johnson (1988-199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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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통산 1051경기 출장(727선발)
평균 17.9득점, 3.3리바운드, 9.1어시스트, 34.1분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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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들어가며, 오프 시즌 다시 보기
2부 - 누가, 얼마나 뛸 것인가?
3부 - 일문 일답
4부 - 스케줄 정리

*모든 시각은 현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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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월 29일 ~ 11월 28일)
총 15경기 - 홈: 7 (동부:3, 서부:4), 원정: 8 (동부:1, 서부:7) // 동부:서부 = 4:11 

시즌 초반 스케줄이 그리 친절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백투백(이틀 연속 경기를 갖는 것) 원정 경기로 시즌을 시작하게 될 호네츠다. ("골든스테이트-피닉스")
이 기간 동안 호네츠는 무려 5번의 백투백을 치러야 한다. 이것은 총 15경기 중 10경기가 백투백로 치러진다는 말이다.
앞서 언급한 골든스테이트-피닉스 이 후로도 "샬럿-마이애미"(11월 7, 8일), "포틀랜드-휴스턴"(11월 14, 15일), "오클라호마-오클라호마"(11월 21일, 22일), "덴버-포틀랜드"(11월 27일, 28일) 를 상대하게 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전력의 우세를 자신할 수 있는 오클라호마와의 경기가 연이어 백투백 경기로 배정되어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한 차례의 백투백 스케줄을 편하게 치룰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포틀랜드와 백투백 스케줄이 두 번 겹쳐있는 것도 재미있는 일정.

원정 2연전으로 이 달을 시작하여, 원정 3연전으로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체력적인 부담이 크다는 지적일 뿐, 전력상으로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팀들과의 경기가 많이 준비되어 있기에 스타팅 멤버들의 출장 시간을 원활하게 조절 할 수 있다면, 초반 승수 챙기기에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관심 경기 : 11월 21일 vs 오클라호마 (원정)

불과 두 시즌 전까지만 하더라도 오클라호마 시티를 임시 연고지로 사용했던 호네츠.
열광적인 환호를 뒤로 한 채 뉴올리언즈로 돌아온 그들은 어느 덧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팀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원정팀이 되어 오클라호마를 다시 방문할 것이다. 이날의 경기는 뉴올리언즈가 원정 경기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오클라호마를 방문하는 날이다.
오클라호마 팬들은 원정팀이 되어 돌아온 뉴올리언즈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까?


12월 (12월 3일 ~ 30일)
총 13경기 - 홈: 8 (동부:2, 서부:6), 원정: 5 (동부:4, 서부:1) // 동부:서부 = 6:7

다소 여유 있는 홈3연전으로 시작되는 12월이다. 피닉스와의 첫 경기만 잘 이겨낸다면 3연승을 기대해볼 수 있는 스케줄.
하지만 그 뿐이다. 이 후로 "보스턴-토론토-멤피스"(12월 12일, 14일, 16일) 로 이어지는 3연속 원정 경기가 예정되어 있으며 그 직 후에 샌안토니오와의 시즌 첫 경기가 준비되어 있다.
샌안토니오를 만나기 직전 백투백의 첫 경기로 멤피스와의 경기를 갖는다는 것 정도가 위안거리.
피닉스, 보스턴, 토론토, 샌안토니오, 레이커스, 올랜도, 휴스턴을 모두 만날 수 있는 12월은 다소 난항이 예상되는 한 달이다.

관심 경기 - 12월 25일 vs 올랜도 (원정)

뉴올리언즈가 전국구 인기 팀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경기.
올랜도와의 크리스마스 데이 경기가 준비되어 있다. 당연히 전국 중계가 예정된 경기로 드와잇 하워드와 타이슨 챈들러의 골밑 싸움이 볼 만할 것이다. 하지만 쉽게 승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바, 과연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길 팀은 어느 쪽이 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크리스 폴은 자신의 크리스마스 데뷔 무대를 승리로 장식할 수 있을까?


1월 (1월 2일 ~ 31일)
총 16경기 : 홈: 7 (동부:4, 서부3:), 원정: 9 (동부:2, 서부:7) // 동부:서부 = 6:10

NBA 보는 재미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점인 1월. 하지만 뉴올리언즈 팬들에게는 가장 힘든 한 달이 될 지도 모르겠다. 서부 4연속 원정 경기로 시작하는 1월은 이 후 3연속 원정 경기를 포함, 총 9차례의 원정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
1월의 시작을 여는 "포틀랜드-덴버-레이커스-유타"(1월 2일, 3일, 6일, 7일) 와의 원정 경기는 쉬어갈 곳이 하나 없는 힘든 스케줄이며 이들 외에 원정 경기를 갖게 될 팀들 역시 "댈러스, 클리블랜드, 디트로이트, 샌안토니오" 등 리그의 강호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댈러스와의 경기 직 후 "클리블랜드-디트로이트" 와의 백투백 경기가 예정된 1월 14일 ~ 17일 동안의 3연속 원정 경기는 그야말로 악전고투가 예상된다.
지난 시즌의 1월은 9연승을 포함하여 12승 2패를 기록, 뉴올리언즈의 순위 싸움에 가장 큰 공헌을 했던 시기로 기억되고 있으나 올 시즌의 1월은 시련의 시기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관심 경기 - 1월 7일 vs 유타 (원정)

어느새 리그 최고의 포인트 가드 자리를 두고 다투게 된 폴과 데론 윌리암스의 라이벌전. 뉴올리언즈와 유타의 첫 경기가 펼쳐진다.
만장일치에 가까운 득표로 신인왕을 거머쥐며 크리스 폴이 한 발 앞서나가자, 두 번째 시즌에는 PO에서의 엄청난 활약을 통해 데론 윌리암스가 그 평가를 뒤집었고, 세 번째 시즌에는 MVP 포스를 보이며 리그 최고의 선수로 급부상한 폴이 다시 한 발 앞서나가는 형국이다.

과연 올 시즌 그들의 첫 만남은 어떤 승부가 펼쳐질 것인지, 수많은 NBA 팬들의 시선이 모아질 법한 경기다.


2월 (2월 2일 ~ 27일)
총 13경기 : 홈: 8 (동부:5, 서부:3), 원정: 5 (동부0:, 서부5:) // 동부:서부 = 5:8

2월에는 올스타 주간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에 흔히 시즌 전, 후반의 경계로 삼는 무렵이 바로 2월이다. 뉴올리언즈의 2월은 다소 편안한 올스타 주간 이전의 스케줄과, 다소 까다로운 올스타 주간 이후의 스케줄로 나눠 볼 수 있겠다.
올스타 주간 이전에는, 비록 보스턴과의 경기가 포함되어 있으나 6경기 중 5경기를 홈에서 치르게 되어, 차분히 승수를 챙길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그러나 올스타 주간 이후에는, 7경기 중 4경기가 원정 스케줄로 예정되어 있으며 올랜도, 레이커스, 유타, 디트로이트 같은 강호들과의 경기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관심 경기 - 2월 11일 vs 보스턴 (홈)

디펜딩 챔피언 보스턴이 뉴올리언즈를 방문한다. 이 날이 지나면, 그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파이널 무대까지 진출해야 한다. 그나마도 보스턴이 파이널 진출에 실패하면 다시는 홈코트에서 PGA 투어 멤버들을 볼 수 없다. 지난 시즌 양 팀은 각각 홈경기의 승리를 챙겨갔다.


3월 (3월 1일 ~ 31일)
총 16경기 - 홈:8 (동부:0, 서부:8),  원정: 8 (동부:7, 서부:1) // 동부:서부 = 7:9

지금까지 글을 읽어 내려온 뉴올리언즈 팬 분이 계신다면 슬슬 짜증을 느끼실 지도 모르겠다. "그럼 도대체 편안한 한 달은 언제란 말이야?" 자! 기다리던 시기가 드디어 왔다! 시즌 후반기의 엑기스라 할 수 있는 3월은 뉴올리언즈에게 희망의 한 달이 되어줄 것이다.

16경기라는 적지 않은 숫자를 소화하는 동안 b2b 경기는 단 두 차례. 비록 4연속 동부 원정 경기가 예정되어 있으나 그리 부담스러운 상대는 찾아볼 수 없다. ("애틀란타-워싱턴-밀워키-시카고")
필라델피아, 댈러스, 휴스턴, 샌안토니오 같은 강호들과의 경기도 예정되어 있으나 각각 2일, 5일, 16일, 29일로 넉넉한 기한을 두고 경기를 대비할 수 있는 상황. 한 경기 한 경기에 전력을 다할 수 있을 전망이다.
3월 동안 얼마나 많은 승수를 챙길 수 있느냐에 따라 이번 시즌 플레이오프에서의 홈코트 어드밴티지와 시드 배정에 대한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관심 경기 - 3월 14일 vs 시카고 (원정)

데릭 로즈와 크리스 폴의 두 번째 대면식이 시카고에서 있을 예정이다. 루키인 로즈가 어느 정도 리그에 대한 적응을 마친 상태에서 맞붙게 될 경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해서 폴과의 1차전이 끝난 뒤에 펼쳐질 경기이기에 좀 더 재미있는 승부를 기대해도 될 것이다.
물론 당장의 대결에서 폴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뉴올리언즈의 4연속 동부 원정 마지막 경기로 치러질 예정이니 베테랑인 폴에게 적절한 페널티가 주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21세기 최고의 가드 자리를 두고 펼치는 두 젊은 선수들의 경쟁을 지켜보자.


4월 (4월 1일 ~ 15일)
총 9경기 - 홈: 3 (동부:0, 서부:3), 원정: 6 (동부:1, 서부:5) // 동부:서부 = 1:8

앞서 1월을 시련의 계절이라 이야기 했었다. 하지만 시련을 넘어 처절한 스케줄이 준비되어 있는 4월은 많은 뉴올리언즈 팬들을 한숨짓게 할지도 모른다. "피닉스-댈러스(원)-댈러스-휴스턴(원)-샌안토니오(원)" 로 이어지는 시즌의 마지막 5연전은 단연 압권.

지나치게 상향평준화 되어있는 서부 컨퍼런스의 특성상 시즌이 끝나는 순간까지 플레이오프 시드 배정과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놓고 치열한 순위 싸움이 계속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앞서 언급한 팀들은 모두 그 치열한 싸움의 한 가운데 있을 확률이 높은 팀들. 결국 마지막 5경기는 상황에 따라서 서로가 사력을 다해 맞부딪힐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Wild Wild West, 그 끝은 어디인가...

관심 경기 - 4월 15일 vs 샌안토니오 (원정)

뉴올리언즈의 시즌 최종전은 샌안토니오와의 원정 경기로 결정되었다. 82경기라는 엄청난 스케줄의 마지막 경기이며, Wild Wild West 힘겨루기의 정점 서있는 경기이고,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의 패배를 설욕할 수 있는 경기이기에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한 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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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들어가며, 오프 시즌 다시 보기
2부 - 누가, 얼마나 뛸 것인가?
3부 - 일문 일답
4부 - 스케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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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뉴올리언즈의 목표는?

최종 목표는 당연히 우승 아닐까?
리그에 참가하는 모든 팀들의 최종 목표는 결국 우승이다. 누구도 패배를 위해 플레이하진 않는다. 뉴올리언즈는 팀 내 에이스로 강력한 MVP 후보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 시즌 디비전 챔피언에 오른 팀이고, 그 치열한 서부 컨퍼런스 2위를 기록한 팀이며, 플레이오프에서 강호 샌안토니오를 맞아 최종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친 팀이다. 이런 팀이 우승을 넘보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팀들이 우승을 목표로 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좀 더 겸손한 목표를 제시하라고 한다면,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결승 진출이라고 대답하겠다.
어찌 보면 지난 시즌 PO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아쉬운 패배를 당한 팀이기에 당연한 목표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은 문제다. 뉴올리언즈는 치열한 서부 컨퍼런스에 속한 팀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숨이 막힌다는 Southwest 디비전에 소속되어 있는 팀이다. 뉴올리언즈는 우선 레이커스, 샌안토니오, 유타, 휴스턴, 피닉스, 댈러스 등의 강호들과 함께 플레이오프 홈코트 어드밴티지 쟁탈전부터 치러야 할 형편이다. 바꿔 말하면, 저들 중 최소한 세 팀 이상은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아니 좀 더 냉정히 말하면 저들 모두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것이라고 장담 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서부 컨퍼런스다.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결승전 진출. 실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목표다.


크리스 폴, 한계점에 도달한 것인가?

80경기 출장, 21.1 득점, 11.6 어시스트, 4.0 리바운드, 2.7 스틸, 2.5 턴오버, 필드골 48.8%, 자유투 85.1%, 리그 어시스트 1위, 리그 스틸 1위, 올스타 멤버, 올 퍼스트 팀 멤버, 디펜시브 세컨드 팀 멤버.

2007-08 시즌 크리스 폴이 이뤄낸 것들이다. 리그 최고의 포인트 가드라는 타이틀은 당연한 것이었고, '전설'들과의 비교도 심심찮게 이어졌다. 이런 폴의 지난 시즌 활약을 보며 "자신의 능력을 120% 발휘한 것이다." 라는 평가를 내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지난 시즌이 '기록상'으로는 최고의 시즌으로 남을지 모르겠으나, '농구 선수 크리스 폴'에게 있어서는 아직도 보완되고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가장 쉽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외곽슛 능력이다.
그의 약점을 지적 할 때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폴의 외곽슛은 매년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성공률도 성공갯수도 데뷔 이 후 계속해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외곽슛 능력은 평이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시즌 그의 3점슛 성공률은 36.9% 로 리그 65위에 그쳤으며 3점슛 시도 개수 (249회, 67위), 성공 개수(92개, 68위) 모두 그저 그런 레벨에 그쳤다.
아이재이아 토마스, 케빈 존슨. 이들은 종종 폴과 비교되는 전설적인 선수들이다. 작고 빠르며 화려한 돌파를 즐기던 그들은 커리어 내내 수많은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작은 체구로 끝없이 돌파를 시도해야 했으며, 수없이 코트를 나뒹굴었다. 그들의 통산 3점슛 성공률은 각각 29%. 30.5% 에 그쳤다. 만약 그들에게 정확한 외곽슛이라는 옵션이 더해졌다면, '전설'들의 커리어가 아주 조금이나마 더 길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는 것은 나뿐일까?
이미 폴의 통산 3점슛 성공률은 '전설'들의 그것을 뛰어넘고 있다.(33.7%) 하지만 여기서 만족해서는 안된다. 새로운 전설을 써내려가기 위해서는 보다 예리한 외곽슛 능력을 반드시 보완해야 할 것이다. 상상해보라, 3점슛을 자유자재로 성공시키는 크리스 폴을.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왼손 돌파에 대한 것이다.
조금 의아할 지도 모르겠다. 리그 최고의 드리블러인 폴에게 무려 "돌파"에 대한 지적을? 하지만 분명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물론 이것이 단순한 왼손 드리블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왼손 드리블은 오른손 드리블과 전혀 차이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수준에 올라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왼손을 이용해 돌파를 "마무리"하는 기술이다. 폴의 주요 득점 루트는 현란한 돌파을 이용한 것들이다. 하지만 득점으로 이어지는 마무리 동작의 대부분은 오른손을 이용해서, 혹은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이뤄진다. 힘들게 왼쪽으로 돌파를 성공한 뒤에도 슛을 시도할 때면 다시금 공을 오른손으로 바꿔잡거나, 몸을 오른쪽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보인다. 예컨대, 속도를 살려서 왼손으로 레이업을 시도해야 하는 장면에서도 다시금 몸을 오른쪽으로 비틀면서 힘들게 리버스 레이업을 시도하는 식이다. 그의 왼손 볼컨트롤이 리그 최고 수준에 올라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어떤 버릇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보다 완벽에 가까운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돌파를 마무리하는 동작에 있어서 보다 자연스럽게 왼손/왼쪽을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수비에 있어서도 몇 가지 단점을 지적 받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순간적인 수비 로테이션 상황이 생길 경우, 마크맨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폴의 스틸은 패스나 드리블을 뺏어내는 경우도 많지만 골밑으로 파고드는 선수나, 포스트 무브 중에 있는 장신 선수들의 볼을 뺏는 숫자가 굉장히 많은데, 그렇게 스틸을 위해 볼을 쫒아 움직이다가 순간적인 패스로 수비 로테이션이 생길 경우 볼을 노리던 폴은 자연스럽게 약간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수비에서의 문제는 경험이 쌓이며 자연스레 보완될 수 있는 것들이니 큰 걱정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구도 완벽 무결한 농구 선수가 될 수는 없다. 폴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폴이 완성형 선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23살의 어린 선수에 불과하다.


또 한 번의 허리케인, 흥행에는 문제없나? (연고지 이전 가능성?)

카트리나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당시에는 허리케인에 대한 대응이 워낙 미비하여 그 피해 규모가 거대했고, 뉴올리언즈 구단은 리그 최약체 팀에 머무르고 있던 시기였기에 경기장을 찾는 팬들의 발걸음이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2007-08 시즌 초반, 뉴올리언즈는 리그에 돌풍을 일으켰으나 그들의 경기장은 언제나 많은 빈 자리를 채우지 못했다. 그런 뉴올리언즈를 바라보며, 전문가들은 시애틀이나 오클라호마로의 연고지 이전 가능성과 그 필요성에 대한 칼럼을 쏟아냈다.
하지만 뉴올리언즈 구단이 적극적으로 피해 복구를 위한 봉사 활동에 참여하면서 지역 팬들과 뉴올리언즈 선수들의 유대감이 강해졌고, 조금씩 피해가 복구되는 동시에 팀의 돌풍이 계속면서 서서히 매진 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또 다시 구스타브라는 허리케인이 뉴올리언즈를 강타했지만, 재빠른 대응과 예상외로 약해진 허리케인의 위력 탓에 치명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뉴올리언즈 구단은 또 한 번 적극적인 봉사 활동 참여를 펼쳤고, 이제 지역 주민들은 선수들에게 가족 같은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이번 시즌의 뉴올리언즈는 챔피언 컨텐더로 손꼽히는 레벨의 팀이다. 팬들이 경기장을 찾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더해서 뉴올리언즈는 NBA 30개 팀들 중 가장 저렴한 티켓 가격을 자랑한다.) 게다가 이미 시즌 티켓이 10,500장 가까이 팔려나간 상황이고, 불확실한 소스에 의하면 NBA 커미셔너인 데이비드 스턴이
이런 뉴올리언즈 구단과 지역 팬들의 모습에 크게 흡족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흥행에 대한 걱정이나 그에 따른 연고지 이전 가능성은 잠시 접어둬도 좋을 듯하다.


2008 드래프트 권리 포기,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래프트 데이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서 뉴올리언즈가 27번 픽을 $2m의 현금과 트레이드 시켜 포틀랜드에게 권리를 이양했다는 소식을 듣고 적지 않게 실망했었다.
그리고 드래프트 당일, 본디 뉴올리언즈의 것이었던 27번 픽이 전미 대학 우승팀의 주역이자 로터리 플레이어로 평가받던 데릴 아써로 둔갑하는 순간 그 실망의 크기는 더욱 커졌다.

만약 드래프트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라인업에 데릴 아써가 가세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아써(27번 픽)를 포기한 대가로 제임스 포지와 데빈 브라운을 영입할 수 있었으나, 브라운 영입 자금을 아껴서 아써를 로스터에 추가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게 들려오고 있다. 만약 뉴올리언즈가 이번 드래프트에서 27번 픽을 행사하여 신인을 지명하려 했다면, 그들이 호명할 수 있었던 선수들은 다음과 같다.

데릴 아써(27번), 돈테 그린(28번), 마리오 챌머스(34번)...

모두 팀이 필요로 하는 슬롯에서 플레이 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드래프트 픽의 권리 포기에 아쉬운 측면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팀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뉴올리언즈는 단기간 내에 챔피언 컨텐더 팀으로써의 입지를 굳히려는 계획을 세운 듯하다. 즉, 이번 드래프트 픽의 트레이드는 단기간에 확실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의 드래프트 포기는 결코 나쁜 선택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검증되지 않은 신인보다는 확실한 기량을 가진 베테랑을 위주로 팀을 꾸리는 것은, 단기간에 우승을 차지하기 위한 팀으로써 당연한 움직임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와 같은, 드래프트 픽을 포기하는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향후 몇 년간 로터리 픽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어차피 뉴올리언즈의 주축 멤버들은 이미 탄탄한 전력을 완성시켜가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체 선수들이며, 1라운드 후반 픽으로도 얼마든지 양질의 교체 선수들을 호명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드래프트 픽의 권리 행사에 대해 좀 더 신중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드래프트 권리를 베테랑과 트레이드 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현금과 트레이드를 계속하는 것은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애석하게도, 뉴올리언즈 같이 리그에서 손에 꼽히는 스몰 마켓 팀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바이런 스캇,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감독인가?

1961년 생, 쇼타임 레이커스 주역 출신의 젊은 감독. 정규 시즌 통산 300승 316패, 승률 48.7%, PO 통산 32승 20패, 승률 61.5%.

그는 젊은 나이에 감독이 된 만큼 어린 선수들과의 친화력도 훌륭하고 선수단을 장악하는 능력도 나쁘지 않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반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소 보수적이며 공격보다는 수비에 많은 공을 들이는 스타일의 감독이라는 평이다. 더해서 선수 시절에는 매직 존슨, 뉴저지의 감독이던 시절에는 제이슨 키드, 현재 뉴올리언즈에서는 크리스 폴이라는 명 포인트 가드와 함께 하고 있는 포인트 가드 복이 많은 사람이기도 한 그는, 개인적으로 퍽 훌륭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타이슨 챈들러의 포텐셜을 폭발시켰으며, 각 선수들의 장점을 최대한 조합하는데 성공하여 조화로운 공격 전술들을 만들어냈다. 더해서 적극적인 더블팀과 그에 이어지는 정교한 수비 로테이션으로 대표되는 수비 전술은 스캇 감독이 뉴올리언즈와 함께 일궈낸 최고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팀의 에이스인 폴과의 관계도 돈독하며 GM인 제프 바워와도 깊은 신뢰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스캇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감독이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단연코 부상이다. 특히 주력 선수들이 모두 부상 전력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팀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폴의 경우 2006-07 시즌에 부상으로 인해 18경기를 결장해야 했고, 챈들러 역시 커리어 세 번째 시즌을 부상으로 인해 47경기에 결장하는 등 큰 부상 전력이 있는 선수이며 현재도 발가락 부상으로 고생 중이다. 데이비드 웨스트도 2004-05 시즌에 52경기, 2006-07 시즌에 30경기를 결장했으며 지난 2008 플레이오프에서도 허리 부상으로 인해 팀의 시즌 최종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페야 스토야코비치 역시 2006-07 시즌을 거의 통째로 쉬어야 했고, 2007-08 시즌 내내 허리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며 백투백 일정(이틀 연속 경기를 갖는 것)을 소화할 때면 늘상 부진을 겪어왔다. 뉴올리언즈 최고의 유망주로 손꼽히는 줄리안 라이트마저 이번 프리 시즌 경기 도중 발목 부상을 당한 상태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전력을 구축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 그들이지만 부상으로 그 전력을 제대로 운용할 수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어느 팀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주력 선수들과 교체 선수들 사이의 전력 편차가 심한 뉴올리언즈로써는 특히 선수들의 부상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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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들어가며, 오프 시즌 다시 보기
2부 - 누가, 얼마나 뛸 것인가?
3부 - 일문 일답
4부 - 스케줄 정리


누가, 얼마나 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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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팅 멤버 이야기 - 주전 슈팅 가드 쟁탈전?!

뉴올리언즈 호네츠의 스타팅 라인업은 총 63경기에서 가동 되며, 지난 시즌 가장 많은 경기를 치룬 선발진으로 기록됐다. 그만큼 스타팅 멤버의 변화 폭이 적었던 뉴올리언즈였고, 그것은 곧 이미 강력한 전력의 스타팅 라인업을 보유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이번 시즌 역시 동일한 선발진이 가동될 것이다.
크리스 폴 - 모리스 피터슨 - 페야 스토야코비치 - 데이비드 웨스트 - 타이슨 챈들러

사실 뉴올리언즈의 선발 라인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어디에도 빈틈을 찾을 수 없다. 단지 은근히 부상 전력들이 화려한 주축 멤버들의 출장 시간을 조절해주는 정도가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피터슨이 뛰고 있는 슈팅 가드 포지션에 대한 이야기는 약간의 시간을 할애해도 좋을 것 같다.

주전 슈팅 가드 쟁탈전 참가자 :
모리스 피터슨 vs 제임스 포지 vs 데빈 브라운 vs 줄리안 라이트 vs 라슈얼 버틀러


① 모리스 피터슨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터슨이 최후의 승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본디 바이런 스캇 감독은 라인업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스타일의 지도자가 아니다. 뉴저지 네츠에 처음 부임하여 제이슨 키드를 만나 안정적인 전력을 구축한 2001-02 시즌 이래,
줄곳 동일한 스타팅 라인업을 고집하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런 성향은 뉴올리언즈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비록 피터슨이 커리어 로우 시즌을 보내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출장 시간을 짧게 가져갈 지언즉, 스타팅 라인업에서 그의 이름을 제외시키는 일은 없었다. 결국 피터슨은 자신이 출장한 76경기를 모두 선발 멤버로 치룰 수 있었고, 이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다음 시즌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단순히 감독의 성향 덕분에 피터슨이 주전으로 출장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비록 부진했다고는 해도 코너에서 던지는 3점슛의 정확도는 40%에 가까운 확률로 림을 통과했으며 (39.6%) 퍼리미터 수비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공헌을 했던 피터슨이다. 게다가 이번 오프 시즌 동안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며 훈련에 임했다고 하니 한 번 더 믿음을 줘야 할 것 같다.


② 제임스 포지

항간에는 포지를 주전 슈팅 가드로 기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 피터슨이 부상을 당하는 등의 예외적인 상황에서도 포지의 스타팅 출장은 좋지 않아 보인다. 포지의 메인 포지션이 슈팅 가드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가득이나 벤치와 스타팅 멤버 사이의 전력 편차가 심한 상황에서 포지마저 선발 출장을 한다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포지가 해야 할 일은 주전 슈팅 가드의 역할이 아니다. 벤치 에이스로써 주전들의 휴식 시간 동안 상대팀의 공세를 막아내야 하고 슈팅 가드를 포함한 스몰 포워드, 나아가 파워 포워드 포지션의 백업까지 수행해야 하는 다목적 벤치 몹의 역할을 소화해야 한다. 이런 저런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는 스토야코비치와 데이비드 웨스트의 출장 시간 관리는 포지가 얼마나 활약해주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


③ 데빈 브라운, 줄리안 라이트, 라슈얼 버틀러

데빈 브라운은 뉴올리언즈에 흔치 않은 슬래셔 타입의 공격수이다. 최소한의 볼 핸들링 능력도 갖추고 있기에 되레 포지보다 더욱 어울리는 주전 슈팅 가드 후보자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외곽슛 능력이 떨어지고, 팀 내에서도 슈팅 가드보다는 폴의 백업 가드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에 브라운의 주전 슈팅 가드 출장 역시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줄리안 라이트 역시 한 때 폴의 백업 가드로 기용할 것이라는 루머가 떠돌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되레 그는 스몰 라인업에서의 백업 파워 포워드 역할을 수행하게 될 확률이 더 높을지도 모르겠다. 라이트는 장차 스토야코비치가 팀을 떠나면 뉴올리언즈의 스타팅 스몰 포워드가 되어야 할 선수이다. 향후 몇 년간 가드 슬롯에서 플레이하기 보다는 백업 포워드로 출장하며 포지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시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라이트가 스타팅 멤버에 포함된다면 그것은 2번이 아닌, 3번 혹은 4번 슬롯에서의 선발 출장이 될 것이다.

라슈얼 버틀러? 무리다.

백업 멤버 이야기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벤치 멤버들의 운용에 대한 이야기다.

5개 포지션 별로 백업 멤버들을 분류하여 이야기 할 수 있었다면 참 좋겠지만 아시다시피 그 뎁스가 얕기로 유명한 뉴올리언즈의 벤치이기에, ①백업 스윙맨, ②백업 가드, ③백업 빅맨 으로 나눠 살펴보도록 하겠다.


① 백업 스윙맨 : 제임스 포지, 줄리안 라이트, 라슈얼 버틀러

이번 시즌 뉴올리언즈의 백업 스윙맨 자리는 제임스 포지를 위한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지는 그만큼 훌륭한 기량을 가진 선수이고, 그만한 공을 들여 영입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페야 스토야코비치의 백업으로 주로 출장하며 스타팅 멤버 못지않은 출장 시간을 얻을 것이다. 물론 모리스 피터슨이나 데이비드 웨스트와 교체 되어 코트로 들어서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전망.

만약 뉴올리언즈가 미래지향적인 팀이었다면 넘버원 백업 스윙맨의 자리는 포지가 아닌 줄리안 라이트의 차지였을 것이다. 그는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미래에는 팀의 주전 스몰 포워드로 활약해줘야 할 선수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장의 챔피언 타이틀을 노리는 뉴올리언즈이기에 아직은 배우는 단계에 만족해야 하는 라이트다. 그렇지만 포지와 마찬가지로 2번, 4번 슬롯에서의 활용도도 적지 않은 선수이며 미래의 뉴올리언즈를 위해 반드시 성장해줘야 할 선수이기에 적지 않은 출장 시간을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두 선수에 비해 라슈얼 버틀러의 미래는 조금 암담한 것이 사실이다. 워낙에 강력한 경쟁자들을 만난 탓에 많은 기회를 얻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지난 시즌보다도 더 줄어든 출장 시간을 기록할 지도 모르겠다.

포지와 라이트로 대표되는 백업 스윙맨 진영의 선수들은 본인의 메인 포지션인 스몰 포워드는 물론이고 상황에 따라서 슈팅 가드나 파워 포워드로도 출장하게 될, 뉴올리언즈 벤치의 핵심이 되어줄 선수들이다.


② 백업 가드 : 마이크 제임스, 데빈 브라운

바이런 스캇의 특징 중 한 가지는, 팀 내 두 번째 볼핸들러를 굉장히 중용한다는 것이다. 더해서 그는 중요한 순간이면 언제나 보조 볼핸들러를 코트 위에 내보내 두 명의 드리블러를 기용하곤 했다. 뉴저지 시절 제이슨 키드의 옆에는 언제나 루셔드 해리스, 케리 키틀즈가 볼 핸들링의 부담을 덜어줬고 뉴올리언즈 초창기에는 스피디 클렉스턴이, 최근에는 자네로 파고가 그 역할을 소화하며 20+-분의 출장 시간을 보장 받았다. (이는 모리스 피터슨이 중요한 순간 벤치를 지켜야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올 시즌에도 이런 성향은 지속될 것이다.

데빈 브라운과 마이크 제임스 모두 준수한 볼핸들러들이다. 제임스는 본디 포인트 가드이며 브라운 역시 포인트 가드로 뉴올리언즈에서 플레이한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선수는 브라운이지만, 시즌 초반에는 제임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브라운에 비해 외곽슛 능력이 좋은 제임스를 폴의 보조 볼핸들러로 둠으로써, 폴이 돌파에 이은 득점/어시스트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본인은 볼을 운반하고 외곽에서 오픈 슛을 던지는 역할이 부여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브라운은 컷인 등의 공이 없는 상태의 움직임이나 슬래싱을 통한 공격이 주를 이루는 선수다. 무엇보다 외곽슛 능력에서 제임스에 비해 부족함이 있는 선수이기에 보조 볼핸들러로 코트에 나설 경우, 공격(득점)에 주력하고 있을 폴과의 상성이 상대적으로 좋지 못하다. 그런 이유로 일단은 슈팅 가드 성향의 백업이나 폴이 벤치를 지키고 있는 시간을 책임지는 형태로 출장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백업 슈팅 가드 자리는 제임스 포지와 줄리안 라이트는 물론이고 라슈얼 버틀러와도 경쟁을 해야 하는 슬롯이다. 고로 폴의 보조 볼핸들러 역할을 부여 받은 상황 보다는 제한적인 출장 시간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누가 폴의 보조 볼핸들러로 낙점되느냐에 따라 두 선수의 출장 시간 배분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써는 어느 한 선수를 지목하기가 쉽지 않다. 진행 중인 프리 시즌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선수가 바로 이 둘이다.

③ 백업 빅맨 : 멜빈 일라이, 힐튼 암스트롱, 라이언 보웬, 션 막스

백업 빅맨이라고 써뒀지만 사실상 백업 센터라고 분류해도 좋을 것이다. 제임스 포지, 줄리안 라이트의 백업 파워 포워드 기용이 적지 않게 발생할 것이기에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백업 센터 부분이기 때문이고, 두 선수 모두 센터로 플레이가 가능한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앞서나가는 선수는 멜빈 일라이로 보인다. 이번 트레이닝캠프에서 연일 바이런 스캇의 호평을 받은 일라이다. 지난 시즌에도 가장 많은 출장 시간을 배분 받았던 백업 빅맨은 그의 몫이었다. 프리 시즌 경기를 통해서도 가장 가벼운 몸놀림을 보여주고 있다.

차기 주자는 역시 힐튼 암스트롱이다. 적지 않은 기대를 받으며 데뷔했던 그였지만 도통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한 박자 느린 타이밍의 포스트 무브를 선보이고 있으며 스킬, 근력과 같은 부분에 있어서도 큰 발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부디 이번 시즌에서는 그 가능성을 실현시켜 넘버원 백업 빅맨으로 거듭나주길 바라지만 당장은 일라이에게 뒤쳐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시즌, 두 선수는 일라이가 4~5 경기에 출장한 뒤 신통치 않다 싶으면 그 다음 4~5 경기를 암스트롱에게 맡겨보는 식으로 코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시즌 역시 이렇다 할 발전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돌려막기 출장 정도를 기대해야 할 것 같다.

라이언 보웬은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극히 제한된 출장 시간을 얻게 될 것이고, 션 막스 역시 커다란 기회를 주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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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들어가며, 1. 오프 시즌 다시 보기

2부 - 누가, 얼마나 뛸 것인가?
3부 - 일문 일답
4부 - 스케줄 정리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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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08 시즌은 여러모로 뉴올리언즈 호네츠에겐 기억에 남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그들에게 지난 시즌은 팀 창단 2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한 해였던 동시에,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로 인해 오클라호마를 임시 연고지로 플레이하던 그들이 다시금 뉴올리언즈로 돌아와 풀 시즌을 치르게 된 해이기도 했다.

이토록 많은 의미 부여가 되었기 때문일까.
뉴올리언즈 호네츠는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56승 26패를 기록하며 단일 시즌 프랜차이즈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웠고 창단 이 후 최초의 디비전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올스타 게임을 유치하여 성황리에 행사를 치러내는가 하면, 크리스 폴을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 자리에 올려놓으며 어느 덧 전국구 인기 팀으로 성장하게 된 시즌이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PO 2라운드 최종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쉬운 패배를 당하며 시즌을 마감해야 했지만 뉴올리언즈 호네츠의 팬들은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가온 2008-09 시즌.

뉴올리언즈 호네츠는 어느 덧 리그 챔피언 후보로 전문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구단 자체적으로도 'Rebirth of a Brand'라는 모토 아래 새로운 로고, 새로운 유니폼을 선보이며 시즌을 향한 기대와 각오를 새로이 다졌다.


오프 시즌 다시 보기

in_ 제임스 포지, 데빈 브라운, 션 막스
out_ 본지 웰스, 자네로 파고, 크리스 앤더슨

뉴올리언즈의 이번 오프 시즌 움직임은 크게

ㄱ. 제임스 포지의 영입과
ㄴ. 자네로 파고의 이적에 이은 데빈 브라운의 영입,
ㄷ. 크리스 폴과의 연장 계약이라는 3개의 사건으로 축약할 수 있다.


제임스 포지의 영입

이번 오프 시즌의 뉴올리언즈는 한 마디로 "Only Posey" 모드였다고 할 수 있겠다.
시즌을 치루면서 탄탄한 스타팅 멤버에 비해 그 깊이가 얕은 벤치가 약점으로 지적되던 그들이었기에 FA가 된 챔피언 팀의 벤치 에이스 플레이어인 제임스 포지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많은 팀들이 포지의 영입을 위해 쟁탈전을 벌였으나 결국 최후의 승자는 뉴올리언즈였다.
4년간 총 2500만 달러에 달하는 규모의 작지 않은 계약을 체결시키며 포지는 뉴올리언즈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포지는 팀에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이다. 우선 그는 스타팅 멤버들 중 가장 취약한 포지션으로 손꼽히는 슈팅 가드의 모리스 피터슨을 대체할 수 있는 벤치 자원이다. 피터슨 역시 슈팅 가드 포지션의 강화를 위해 힘들게 영입했던 선수였으나 어딘지 노쇠화 된 느낌을 주며 부진했던 터였다. 가득이나 타 포지션의 벤치 뎁스가 얕은 상황에서 스타팅 라인업의 구멍이 되어버린 피터슨은 전력상 적지 않은 부담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포지의 메인 포지션이 슈팅 가드는 아니지만 2번 슬롯에서의 변칙적인 기용이 가능한 선수이다. 게다가 스몰 라인업에서의 파워 포워드 포지션의 커버까지 가능하다. 이것은 데이비드 웨스트의 휴식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벤치 몹으로써 2~3개의 포지션을 원활히 커버할 수 있는 선수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더해서 제임스 포지는 뉴올리언즈가 필요로 하던 에이스 스윙맨 디펜더로 활약할 수 있는 선수다. 뉴올리언즈의 스윙맨 디펜스는 주로 피터슨, 페야 스토야코비치, 자네로 파고 등이 도맡아왔으나 리그 우승권에 근접했다는 평을 듣는 팀의 에이스 디펜더로써 부족함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세에 있는 팀과의 경기에서도 에이스 스윙맨에게 수비진이 크게 휘둘리는 모습을 몇 차례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포지가 영입된 지금, 그런 장면들을 최소화 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포지는 팀에 끈끈한 허슬맨이 되어줄 수 있다.
지난 시즌 뉴올리언즈는 굉장히 "예쁜 농구" 를 구사하는 팀이었다. 다이나믹하고 화려한 플레이로 승리해나갔지만 터프하고 끈적끈적한 느낌은 덜했다. 공을 향해 몸을 날리고, 상대 공격수를 찰거머리 수비하고, 거친 몸싸움을 걸어줄 선수가 부족했다. 이런 부분 역시 제임스 포지가 도맡아 줄 수 있는 영역이다.


자네로 파고의 이적에 이은 데빈 브라운의 영입

지난 시즌 뉴올리언즈 벤치의 에이스 플레이어는 단연 자네로 파고였다.
80경기에 출장, 20분에 가까운 시간을 플레이하며 크리스 폴의 백업이자 벤치 스코얼러로 활약했다. 이번 오프 시즌에 FA가 된 파고는 팀과의 재계약을 원한다는 인터뷰를 갖기도 했으나 결국 유럽으로 떠나고 말았다. 이는 뉴올리언즈가 파고를 놓쳤다기 보다는, 파고를 놓아줬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파고가 소중한 벤치 자원으로 활약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이해할 수 없는 슛셀렉션과 기복 심한 플레이로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파고를 내보낸 뒤, 뉴올리언즈가 선택한 선수는 클리블랜드의 FA 데빈 브라운이었다.

지난 시즌의 파고는 벤치의 에이스 스코어러이기도 했지만, 폴의 백업 가드로 활약했던 선수이기도 하다. 그런 선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영입한 선수인 브라운은 클리블랜드에서 유틸리티 스윙맨으로 활약하던 선수다.과연 그가 파고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까?

사실 브라운이 뉴올리언즈의 유니폼을 입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이미 지난 2006-07 시즌에 뉴올리언즈의 일원으로 활약했었다. 1년 만에 다시 뉴올리언즈로 돌아온 셈이다. 그 시절 브라운은 현재의 코칭스태프 아래에서 폴의 백업 포인트 가드로도 플레이 했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썩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었다.
어차피 파고 역시 정통 포인트 가드 스타일의 선수는 아니었다. 슈팅 가드에 가까운 듀얼 가드로, 벤치 내에서 볼 운반이 가능한 선수가 몇 없었기에 볼핸들러로 활약했을 뿐 실상 포인트 가드스러운 플레이를 펼친 것은 아니었다.
브라운 역시 정통 포인트 가드의 역할을 소화할 수는 없겠지만 벤치 볼핸들러로 활용하기엔 충분한 선수이다. 되레 파고에 비해 차분한 슛셀렉션을 가지고 있기에 안정성 측면에 있어서는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다.

더해서 브라운은 뉴올리언즈가 애타게 찾다가 포기한, 돌파형 스윙맨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해 줄 수 있는 선수다. 지난 시즌 클리블랜드의 경기를 저화질 인터넷 중계로 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르브론 제임스와 브라운을 착각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비슷한 체형조건과 백넘버, 헤드 밴드를 착용한 브라운의 외형적 유사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위력적인 베이스 라인 무브를 선보이거나 뛰어난 탄력으로 멋진 덩크를 성공시키기도 했던 그의 플레이 때문이기도 했다.

클리블랜드가 시즌 후반 들어 대형 트레이드를 성사시키기 전까지, 브라운은 제임스를 제외한 클리블랜드 선수들 중 가장 위협적인 베이스 라인 무브를 보여주던 선수였다. 뉴올리언즈가 그토록 원하던 바로 그 플레이 말이다.


크리스 폴과의 연장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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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보다 중요한 오프 시즌의 과제는 단연 크리스 폴과의 연장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벤치 멤버들을 모아온 들, 폴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번 2008-09 시즌을 끝으로 루키 계약이 종료되는 폴은 계약 기간 3년에 플레이어 옵션 1년을 포함한 총 6천 8백만 달러에 달하는 연장 계약을 맺었다. 최근 이 계약에 15%의 트레이드 키커가 포함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계약 기간이 3+1년에 그치는 것을 보며 폴의 이적행에 대한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면, CBA 룰을 한 번 살펴보고 오는 것을 권한다. 3년차 계약이 끝난 뒤 다시 한 번 재계약을 맺어 보다 큰 금액의 Maximum contract 을 염두에 둔 계약으로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는 물론 라이벌인 데론 윌리암스 역시 3+1년 계약을 맺었다.
이로써 뉴올리언즈 팬들은 최소한 2011-12 시즌까지 마음놓고 폴의 플레이를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며, 뉴올리언즈 호네츠는 2011-12 시즌까지의 서부 컨퍼런스 PO행 티켓을 예약해 둘 수 있게 되었다.

정리해보면 이번 오프 시즌 동안 뉴올리언즈는 자네로 파고와 본지 웰스를 내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데빈 브라운과 제임스 포지가 새로이 가세했다.
크리스 폴과의 재계약으로 지난 시즌의 주력 스타팅 라인업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벤치 에이스 플레이어들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는 팀의 전력을 보다 상향 조정 시켜준 움직임들이었다.

비록 여전히 크리스 폴의 백업 가드 문제나, 타이슨 챈들러의 백업 센터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지만, 지난 시즌의 뉴올리언즈보다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2008-09 시즌의 뉴올리언즈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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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NBA의 인기가 몰아치기 시작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NBA의 글로벌화에 가장 크게 공헌했던 마이클 조던의 1차 은퇴 이 후였다고 생각한다. 앤퍼니 하더웨이, 그랜트 힐 등의 스타들은 한국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매 주 공중파를 통해 NBA 경기를 시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리그의 미래를 책임질 것으로 손꼽히던 스타들은 유난히 그 빛을 허무하게 잃어간 경우가 많았다. 하더웨이와 힐을 비롯해서 자말 매쉬번, 래리 존슨 같은 선수들은 그 재능을 채 꽃피우기도 전에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잃어갔다.

오늘 만나볼 선수 역시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던 선수로 절정의 기량을 뽐내다가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선수다. 앞서 언급한 선수들과는 달리 부상이 아닌 다른 이유로 무너져내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NBA 공중전의 최강자로 군림했고, 미국을 대표하여 세계에 NBA 농구의 화려함을 전파하기도 했다. 그 위대한 조던을 상대로 파이널에서 진검 승부를 펼치기도 했으며 국내 NBA 팬들에게는 하더웨이, 힐 만큼이나 커다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이기도 하다.

골밑이라는 정글을 누비는 한 마리 야수와도 같았던, 리그를 대표하는 하이라이트 필름. 오늘 만나볼 '그 때 그 선수' 는 바로 숀 켐프다.


고졸 신인? 얼리 엔트리?


켐프의 엄청난 운동능력은 고교시절부터 유명한 것이었다.리바운드를 위해 뛰어올랐다가 림에 머리를 부딪쳐 부상을 입었던 일화는 잘 알려진 사실.

이토록 훌륭한 신체조건에 무시무시한 운동능력을 지닌 유망주 포워드를 리쿠르팅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대학은 없을 것이다. 켐프 역시 농구 명문 켄터키 대학교에 리쿠르팅 되어 NCAA 무대 데뷔를 준비한다.

그러나 데뷔를 하기도 전에 크고 작은 농구 외적인 일들로 학교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버린 켐프는 트니리니티 밸리 컬리지로 전학을 가게 된다. 하지만 이미 시즌을 치루기 위한 선수등록 기간이 지나버린 뒤였고, 켐프는 NCAA 프레쉬맨 시즌을 날려버릴 위기에 처한다. 리그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1년을 기다려야만 했던 것이다. 결국 1년을 기다린 뒤 NCAA에 데뷔를 하기 보다는 곧장 프로행을 결심한 켐프는 그렇게 1989년 드래프트에 참가를 신청한다.

보통 모제스 말론 이 후 최초의 고졸루키라는 단어로 숀 켐프를 설명하고는 하는데, 어떻게 보면 극단적인 얼리 엔트리 케이스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대학교에 입학을 했었던 선수였으니. (실제로 드래프트 참가 당시 켐프의 출신 학교는 Trinity Valley Community College 로 표기되었다.)

이런 저런 말썽이 많았던 켐프였지만 그의 가능성은 프로 무대에서도 높이 평가되어 시애틀 수퍼소닉스에 의해 1라운드 17번째로 이름이 호명되며 NBA 무대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당시로써는 대학무대 경험이 전무했던 그에게 굉장히 높은 순위의 지명권이 행사된 것이었다.


시애틀의 잠못드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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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 시즌 벤치 멤버로 플레이하며 가능성을 보인 켐프는 2년차 시즌을 보내며 본격적으로 시애틀의 스타팅 포워드로 발돋움한다. 그리고 놀라운 운동능력으로 매 경기마다 하이라이트 필름을 양산하며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특히 그의 2년차 시즌이었던 1991-1992 시즌, 팀의 헤드코치로 조지 칼 감독이 부임하면서 켐프와 시애틀의 고공비행이 서서히 시작된다.단지 하늘을 날아다니던 유망주에서 더블더블을 기록하는 빅 맨으로 성장한 켐프와 함께 시애틀은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큰 키에 민첩함과 점프력, 천부적인 포스트 무브 감각을 앞세운 켐프는 시애틀 골밑의 지배자로 떠올랐다. 역대 최고의 덩커를 논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인 만큼 파워풀하고 다이나믹한 덩크는 상대팀을 파괴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성장해갔던 켐프는 단순한 덩커가 아닌 훌륭한 로우 포스트 득점원으로 성장했다. 그런 그에게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 바로 Reign Man. 시애틀의 골밑에 군림하며 팀을 이끌던 그에게 딱 맞는 별명이 아닌가 생각한다.

좌우 베이스 라인에서 보여주는 폭발적인 무브에 이은 골밑 슛, 림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솟구쳐 올라 성공시키던 페이스 업 점퍼는 위력적이고 확실한 득점루트였다. 수비 센스도 훌륭한 선수여서 1:1 포스트 디펜스는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어마어마한 탄력을 자랑하는 블록슛은 그의 덩크만큼이나 화려한 볼거리를 만들어냈고, 박스 아웃과 보드 장악력도 훌륭해서 켐프가 코트위에 있는 동안만큼은 시애틀의 골밑을 쉽게 공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학 무대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인지 기본기에 있어 문제를 드러내기도 했던 켐프였다. 그의 가장 커다란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것은 볼 핸들링이었는데, 볼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던 켐프였지만 그의 볼 핸들링은 굉장히 투박한 것이어서 생애 통산 A/T rate 가 0.4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볼 핸들링 만큼이나 커다란 단점은 바로 파울 관리가 미숙하다는 점이었다.

리그 최고수준의 기량을 갖춘 빅 맨이었던 켐프였지만 단 한 번도 시즌 평균 20득점-10리바운드를 기록하지 못했던 것은 다름 아닌 파울 트러블 때문이었다. 최절정의 기량을 자랑하던 시절에도 평균 플레잉 타임이 35분을 넘지 못했던 것은 평균 4개에 육박하는 파울 숫자 때문이었는데, 만약 켐프가 파울 관리만 철저히 할 수 있었다면 전성기 내내 20득점-10리바운드를 손쉽게 기록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선수였다는 점을 떠올려 봤을 때 볼 핸들링의 미숙함보다도 더욱 아쉽게 다가오는 단점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이런 단점을 안고 있던 선수였음에도 너무나 출중한 실력과 매력을 가진 선수였기에 홈팬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특히 1990년 드래프트를 통해 팀에 합류한 게리 페이튼과의 콤비 플레이는 시간이 갈수록 그 위력을 더했고 지난 시즌을 뜨겁게 달궜던 크리스 폴과 타이슨 챈들러의 "CP to TC" 앨리웁 콤비가 있기 훨씬 이전에, 켐프와 페이튼의 "GP to SK" 앨리웁 콤비는 리그를 뒤흔들며 서서히 리그 정상을 향해 달려갔다.

두 명, 세 명의 블로커를 뚫고 in your face 를 작렬시킨 뒤, 마치 이소룡을 연상케 하는 포즈를 취하며 포효하던 켐프의 모습은 전율 그 자체였다.


초음속 비행, 리그의 "Reign Man" 이 되다.

1993-1994 시즌, 켐프는 어느 덧 시애틀의 에이스 플레이어가 되어 있었고 팀은 63승 19패를 기록한 서부 컨퍼런스 챔피언이 되어 있었다. 1번 시드를 받은 채 돌입했던 PO의 상대는 덴버 너게츠. 모두가 시애틀의 우세함을 인정하고 있었고, 그들의 손쉬운 승리가 점쳐지던 시리즈. 그러나 시애틀은 리그 역사상 최초의 8번 시드 업셋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디켐베 무톰보가 공을 잡고 코트에 누워 환희에 찬 소리를 지르는 장면으로 유명했던 이 시리즈는 시애틀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비록 실패로 끝나버린 PO였지만 켐프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 1994년의 여름에 있었던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에 미국은 리그를 대표할 젊은 스타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드림팀2 를 출격시켰고, 숀 켐프는 국가 대표가 되어 전 세계에 NBA의 화려함을 널리 알렸다. 그야말로 자타공인 리그의 미래를 빛낼 빅 맨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어진 1994-1995 시즌, 57승 25패를 기록하며 서부 컨퍼런스 4번 시드를 받은 시애틀은 1라운드에서 5번 시드의 LA 레이커스를 만나게 된다. 역시나 대부분 시애틀의 우세함을 점쳤던 시리즈였으나, 그들은 또 다시 업셋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1995-1996 시즌을 맞이하는 시애틀의 각오는 남다른 것이었다. 두 번이나 업셋의 희생양이 된 그들은 더 이상의 패배를 원하지 않았다. 한 때 넥스트 조던이라고까지 불리던 켄들 길을 보내고 허시 호킨스를 영입하며 "게리 페이튼-허시 호킨스-데틀리프 슈렘프-숀 켐프-샘 퍼킨스" 로 이어지는 스타팅 라인업을 결성했다. 내외곽과 공수의 조화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라인업을 앞세운 시애틀은 다시금 고공비행을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파이널이었다. 엄청난 트랩 디펜스와 켐프-페이튼 콤비를 주축으로 하는 화려한 공격을 앞세워 얻은 성적은 64승 18패. 홈에서의 성적이 38승 3패에 이를 만큼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며 착실히 승수를 쌓아갔던 결과였다. 지금까지도 시애틀의 프랜차이즈 최다승으로 기록되어 있는 성적을 거두며 서부 컨퍼런스 우승을 차지한 켐프와 동료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새크라멘토 킹스, 휴스턴 로케츠, 유타 재즈를 차례로 격파하며 꿈에 그리던 파이널 진출에 성공한다.

파이널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상대는 무려 72승을 기록했던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 켐프와 시애틀은 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승리를 기록한 팀을 상대로 최선을 다해 맞섰다. 하지만 2승 4패를 기록하며 아쉬운 준우승에 머물고 만다. 페이튼은 조던과 스카티 피펜에게, 켐프는 데니스 로드맨에게 막히며 공수 양면에서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냈던 파이널이었다.


충격의 이적

준우승이라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시즌을 뒤로한 채 맞이한 1996-1997 시즌. 시애틀은 짐 맥길베인이라는 백인 센터와 거액의 계약을 체결한다. 자존심이 강했던 켐프는 큰 계약을 따낸 맥길베인과 구단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맥길베인이 "먹튀"로 이름을 날릴수록 켐프와 구단 사이의 골은 깊어져 갔다.

물론 그런 배경과 무관하게 켐프와 시애틀의 위력은 여전했다. 그들은 57승 25패를 기록하며 서부의 강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PO 2라운드에서 휴스턴에게 7차전 접전 끝에 패배한 이 후 시애틀은 결단을 내린다. 지금의 선수 구성으로는 리그의 패권을 차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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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의 오프 시즌, 시애틀 수퍼소닉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밀워키 벅스 간의 3자 트레이드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밀워키의 빈 베이커를 받아온 시애틀은 켐프를 클리블랜드로 보내버린다. (하지만 훗날 이 트레이드의 승자는 타이론 힐과 테런 브랜든을 얻은 밀워키 단 한 팀이었을 뿐, 모두에게 상처만을 안긴 트레이드로 기억된다.)

숀 켐프의 실망은 엄청난 것이었다. 높은 점프력만큼이나 커다란 자존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프랜차이즈에서 버림 받았다는 상실감을 크게 느꼈다. 그러나 그의 실력은 흔들리지 않았다. 클리블랜드에서의 초창기에는 여전히 위력적인 Reign Man 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특히 장신 센터 지두르나스 일가우스카스와 세드릭 핸더슨, 데릭 앤더슨, 브래빈 나이트로 이어지는 루키 3인방에 숀 켐프가 가세하면서 클리블랜드는 동부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그들은 47승 35패를 기록하며 PO에 나섰고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1라운드에서 만났지만 1승 3패로 패배하고 만다.

비록 시리즈는 내주었지만 켐프의 위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당시 인디애나의 골밑을 책임지던 데일 데이비스-안토니오 데이비스 콤비는 켐프에게 무차별 폭격을 당했다. 두 명의 데이비스가 돌아가며 켐프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켐프는 무주공산에서 플레이하듯 인디애나의 골밑을 맹폭했다.

차기 시즌을 기다리는 동안, 켐프와 루키 3인방이 이끄는 클리블랜드는 동부의 새로운 강자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예측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직장 폐쇄의 여파로 단축 시즌이 되었던 1998-1999 시즌, 일가우스카스는 부상으로 쓰러졌고 팀은 예전 같지 않았다. 22승 28패라는 성적을 기록하며 5할 승률을 달성하는 것마저 실패한 그들은 PO 진출에 실패하고 만다.

이어진 1999-2000 시즌에는 어설픈 리빌딩을 시도한 구단의 판단 미스로 팀의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켐프는 평균 17.8득점, 8.8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이름값을 했지만 조금씩 시애틀에서의 포스를 잃어갔다. 스폰서였던 리복과의 계약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이키 농구화를 신고 경기에 나서며 문제를 일으켰고, 리복의 농구화는 쓰레기일 뿐이라며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조금씩 가치가 하락하던 켐프에게 손을 뻗은 것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였다. 당시 드림팀에 가까운 화려한 멤버를 구축하던 포틀랜드로의 이적은 켐프의 부활을 알리는 전주곡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절망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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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포틀랜드 유니폼을 들고 나타난 켐프의 모습에 전 세계 NBA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샤프한 몸매와 탄탄한 근육질을 자랑하던 켐프는 온데간데없어지고, 늘어지는 턱살과 튀어나온 뱃살의 켐프가 나타난 것이다. 극명한 데피니션을 자랑하던 두 팔의 근육과 섹시하다는 표현이 어울릴법했던 날렵한 발목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화려한 멤버를 자랑하던 포틀랜드에서 폐인이 되어버린 켐프의 자리는 없었다. 엎친데 덥친격으로 술과 코카인에까지 손을 대면서, 그야말로 밑바닥으로 추락을 하게 된 켐프였다. 이 후 올랜도 매직으로 이적하여 재기를 노려보지만, 이미 그의 몸은 예전의 야성미 넘치는 세포들이 모두 죽어 사라져버린 뒤였다.

떠밀리다시피 하게 된 은퇴 이 후에도 술을 달고 살았으며 마약 소지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 후 복귀를 타진하며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켐프의 훈련 장면이 인터넷에 공개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더 이상 그를 원하는 팀은 나타나지 않았다. 


숀 켐프를 그리며

엄청난 스피드로 coast to coast 에 이은 슬램덩크를 찍어 내리고, 상대팀의 골밑슛을 스파이크 하듯 쳐내며, 페이튼의 앨리웁 패스를 받아 림이 부서져라 내리치고, 현란한 스핀 무브로 상대팀의 골밑을 유린하던 숀 켐프의 말로는 너무나 어이없는 것이었다. 치명적인 부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며, 노화에 의한 자연스러운 위력감소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사생활을 절제하지 못하고, 자기 관리에 실패하며 NBA 역사에 손꼽힐 만한 운동능력이라는 축복 받은 재능을 스스로 태워버렸던 것이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산타 복장을 하고 시애틀의 어린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기도 했으며, 매직 존슨의 따뜻한 미소를 가장 닮고 싶다고 말했던 켐프였기에 그 충격은 더할 수밖에 없었다.

흔히 역대 최고의 덩커를 논할 때면 빈스 카터, 도미닉 윌킨스, 마이클 조던, 줄리어스 어빙 등의 이름이 나온 뒤에야 켐프의 이름이 거론되곤 한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역대 최고의 덩커는 그 누구도 아닌 숀 켐프다. 켐프의 덩크에서 카터, 윌킨스가 보여주는 화려함이나 조던, 어빙이 보여주는 우아함은 찾아볼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온 몸의 세포가 본능적으로 반응하여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듯 한 동작으로 림을 내려치던 켐프의 모습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전율을 불러일으키던 것이었다.

날렵한 몸매와 험상궂은 얼굴, 터프한 매너와 놀라운 운동능력으로 리그의 골밑을 지배하던 숀 켐프.

갈수록 세련된 몸놀림과 유려한 스킬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리그를 지배해나가는 요즘, 켐프의 그것과 같은,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반응하여 터져 나오는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선수를 다신 볼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 아쉽게 무너져버린 그를 향한 향수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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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wn Kemp (1990-2003)



생애통산 1051경기 출장(727선발)
평균 14.6득점, 8.4리바운드, 1.6어시스트, 27.9분 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