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COLUMNS/MINWOOK 2009. 1. 28. 22:08

유로리그 16강 관전포인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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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리그와 유로컵. 이 두개 컵 대회는 농구의 챔피언스리그, 유에파컵(UEFA) 경기다.

거두절미하고 관전포인트를 살펴보자. 먼저 유로리그를 소개하겠다.


파르티잔의 돌풍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이미 여러번 설명해서 말이 필요없는 세르비아의 명문클럽 파르티잔.

지금 이 팀이 유로리그  Top 16에  이름을 올린 지도 3년째가 되어간다.

유럽 빅 리그의 초호화 멤버군단들도 속절없이 탈락하는, 그리고 올해는 DKV 유벤투트의 리키 루비오도 넘지 못했던 유로리그 예선전의 벽을 이 팀은 다시 한 번 넘었다. 그것도 전년도 우승팀 메시나 매직이 작렬하는 CSKA 모스크바를 꺾으면서 말이다.

파르티잔은 밀렌코 테피치, 유로스 트립코비치, 알렉산드르 라시치로 이어지는 백코트 라인이 강점이다. 이들 중 밀렌코 테피치의 경우 1~3번을 오고 가면서 득점부터 리딩, 어시스트, 수비까지 전 방위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올해 드래프트에서 주가를 높이려면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CSKA 모스크바의 우승은 이루어질까?

지금부터 본선이니 모스크바의 초 절정 경기력이 나올 때도 됐다. 모스크바는 이번 시즌 종료 후 토론토 랩터스 차기 감독으로 거론되고 있는 유럽 최고의 명장 에토르 메시나 감독이 이끌고 있으며 조직력과 개인기가 잘 어우러진 팀이다.

여전히 유럽 최강팀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문제는 그리스 국가대표팀의 큰 형님이자 팀의 기둥이나 마찬가지였던 파파루카스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파루카스의 진가는 전략적으로 벤치로 나와 말 그대로 탑에서 자신의 역할을 120%소화하내며 팀의 응집력을 높이는 것이었는데, 올해는 그 구심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조란 플라니니치는 좋은 가드지만 파파루카스의 공백을 대신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며, 트라젠 랭던 역시 예전에 비해서는 파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홀든도 부상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팀의 가장 큰 강점은 메시나가 지휘봉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큰 경기에는 그 어떤 감독보다도 강한 메시나가 이번에도 마술을 부려 이 팀을 우승으로 이끌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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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코스, 파나시타이코스의 선전은 이루어질까?

파나시타이코스는 작년 파르티잔에게 패하여 탑16에서 탈락한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리스 농구팬들에게도 상당한 실망감을 안겨줬다.

그 좋은 스쿼드를 놔두고, 도대체 왜?라는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올해도 역시 쓰리 가드체제다. 사루나스 야시케비셔스-스파놀리스-디아맨티디스로 이어지는 가드진은 유럽 최고의 라인이지만, 문제는 이들의 조화가 생각보다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언터쳐블이라 일컬어지는 그리스 자국 리그에서조차 브레드 뉼리가 이끄는 파넬리니오스에게 패할 정도로 이들의 조합은 사실상 실패작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이로 인한 의구심들을 타파하려면 이번 유로리그에서의 성적이 정말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니콜라 페코비치가 작년 파르티잔 8강 돌풍 때보다 좀 소프트해졌다는 것도 문제다.

올림피아코스의 경우 뉴욕 닉스의 스테판 마버리의 영입설로 시끄러운데, 제발 구단주가 돈 가지고 선수 영입에 열 올리지 말고 현재 팀의 조직력부터 다지길 바란다.

파파루카스,칠드레스가 팀에 합류했는데도 자국 리그에서 파나시타이코스에게 왜 무릎꿇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선수들간의 조화가 파파루카스를 제외하고 확실하게 팀을 잡아줄 선수가 없다. 파파루카스 의존도 역시 다소 높은 편이다.

린 그리어같은 볼호그부터 1대1에 열올리는 선수까지 모두 처리를 하고, 세르비아 출신의 87년생 유망주 포인트가드 밀로스 테오도시치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줘야 한다. 요탐 헬퍼린은 개인적으로 완전히 올림피아코스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선수라고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분명 자질은 있지만, 볼 소유시간부터 줄여야 하는 법을 배워야할 것이다.

랩터스의 알박기 유망주 85년생 포워드 프린테지스가 이럴 때 힘을 내줘야 한다.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힘을 내줘야한다. 프린테지스의 가장 안 좋은 점 중 하나는 바로 기복이고, 팀 내에서 역할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올림피아코스의 ‘차재영‘같은 느낌이 강한데, 아직도 더 다듬어야 할 재목이다.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 이번에는 유로리그 정상정복 가능?

나바로는 2002-03시즌 유로리그 우승을 차지한 이후 아직 유로리그에서의 우승 경험은 없다. 4강까지는 팀을 올려봤지만 말이다.

F.C 바르셀로나의 전력은 여전히 우승권이지만, 문제는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의 부담을 더 덜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에르산 일야소바의 다재다능함이나 빅토르 사다의 수비력이 바로 여기서 빛을 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란 바스케스의 경우에는 아직 유니카야 시절의 모습을 4~5년째 되찾지 못하고 있는데, 바르셀로나가 자꾸 바스케스를 제한시키기보다는 좀 더 그의 공격능력을 살려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듯 싶다.

일단 이 4가지로 축약해봤고, 유로컵 관전 포인트는 빠른 시일 내에 찾아뵙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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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MINWOOK 2009. 1. 16. 13:18

왜 밀렌코 테피치를 주목해야 하는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요즘 한창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유로리그. 그 유로리그에서 현재 가장 잘 나가고 있는 유망주는 누구일까? 필자는 87년생 이하 유망주중 가장 잘 나가는 선수로 세르비아 명문클럽 파르티잔의 밀렌코 테피치를 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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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렌코 테피치는 1987년생 세르비아 골든 제너레이션 세대다.

세르비아 골든 제너레이션이란 현재 1986년생인 유로스 트립코비치를 필두로 최근 3년간 유럽 U-16, 18, 20대회를 우승으로 쓸어 담았던 1986년~1989년생 사이의 세르비아 선수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리고 2007년 당시 세르비아 노비셰드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미국 청소년 대표팀(당시 이 청소년 대표팀에는 스테판 커리, 마이클 비즐리가 있었다.)을 이기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블라디 디바치가 이 경기를 보고 "이제 우리(세르비아)의 미래는 더 이상 어둡지 않다. 특히나 미국을 우리 땅에서 이겨서 더욱 기분이 좋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이들에 대한 극찬을 늘어놓았다.

이들의 활약상은 전 유럽농구 전문가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밀렌코 테피치역시 2006년 유럽 U-20대회에서 사실상 리더역할을 하면서 올림피아코스의 가드인 밀로스 테오도시치와 함께 세르비아 U-20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테피치가 파르티잔 이적 초기에는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잘 살리지 못하고 무척 맴도는 모습이었지만, 니콜라 페코비치의 이적과 유로스 트립코비치의 잦은 부상 등 악영향 속에서도 파르티잔을 현재 Top 16(유로리그 16강) 컨텐더로 이끌고 있는 22세의 에이스로 성장했다.

밀렌코 테피치를 왜 주목하냐고 물어본다면 필자는 이 선수의 다재다능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테피치는 이렇게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슈팅가드가 최적 포지션이지만, 팀에서 포인트가드나 스몰포워드를 주문하면 그 역할을 80%정도는 소화해낼 수 있는 선수."라고 말이다. 바로 이것이 지노빌리가 유럽에서 가졌던 장점 중 하나였다. 테피치가 별로 가슴에 와닿지 않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한 마디는 이것이다.

여담으로 테피치는 현재 파르티잔의 팀 사정상 소화해야할 역할이 너무 많아서 자신의 플레이를 완벽하게는 보여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전의 폭발력 있는 모습보다는 팀의 안정과 꾸준함에 더 집중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했기에 팀플레이 면에서 돋보이는 테피치다. 하지만 개인적인 명성이나 기록에는 손해를 보고 있어 다소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밀렌코 테피치의 공격에서 장점은 장신 선수라고 보기 힘든 엄청난 코트 비전, 그리고 좋은 운동능력과 리딩력, 또한 양손을 자유자재로 쓰면서 언제든지 유로스텝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드라이브인에 있다. 파울을 얻어내는 능력은 이제 완전히 도가 튼 것 같다.

밀렌코 테피치를 돋보이게 하는 또 다른 점은 바로 수비다. 201cm~204cm의 좋은 신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수비에 대한 기본기가 매우 탄탄하다. 테피치의 수비는 결코 스틸이나 블록 노리고는 맹목적인 수비가 아니다. 이 점은 사실 젊은 선수들에게서 찾기 힘든 것인데,  테피치는 그 사실을 깨우치고 있다는 것이 수비에서 많은 플러스 요인을 받고 있다.

이런 테피치를 두고 한 유럽농구 전문가는 "그가 유럽리그 최고 수비수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라 이야기한다. 필자 역시 이를 공감하는데, 이때 생각나는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가? 바로 NBA 드래프트에서 비교대상으로 이야기하는 마르코 야리치다.

하지만 야리치와 테피치는 분명 틀리다고 생각한다. 테피치의 스피드나 운동능력이 훨씬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무엇보다 테피치의 슈팅력이 많이 올라왔다. 그리고 패스 장면을 보면 테피치는 진짜 완벽한 포인트가드 같다.

테피치가 2009년 NBA 드래프트에 나온다면 필자가 단장이라는 가정 하에 1라운드 중, 후반픽을 가지고 있다면 과감하게 테피치를 선택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토론토 랩터스나 필자 가 팬으로 있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정말 최적화된 선수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젊디젊은 단장이다. 욕심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이 선수를 노리고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포틀랜드를 강하게 만들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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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의 여름은 두 선수에게 특별한 여름이 되었다.

마르코 벨리넬리는 2009 유로바스켓 예선전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뛰기를 거부하면서까지 NBA 적응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시작한다. 2008년 여름에 말이다.

"그는 매일 우리 팀 연습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선수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주전 센터 안드레스 비엔드리쉬의 말이다.

비엔드리쉬의 인터뷰는 바로 마르코 벨리넬리의 노력을 보고 이야기한 것이다. 마르코 벨리넬리가 처음 농구를 시작할 때 비르투스 볼로냐의 유소년 코치는 유달리 몸이 약한 벨리넬리에게 농구를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하지만 벨리넬리는 철저히 자신의 노력만으로 그 코치의 말을 단번에 뛰어넘어버린 적이 있다.

2008년 여름은 마르코 자신에게 있어서 과거의 아픔을 떠올리게 만든 시기였을 것이다.

어쨌든 섬머리그 참가와 약점으로 지적받은 수비, 그리고 돌파에 의한 다양한 슈팅 기술(플로터 포함)을 배우면서 벨리넬리는 NBA 정규시즌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올림픽에서 스페인 대표팀으로 참가하고 있던 루디 페르난데스는 결승전에서 17분 동안 22득점을 몰아넣는 괴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포틀랜드의 감독인 네이트 맥밀란 감독의 마음을 또다시 사로잡았다. 맥밀란은 "그는 언제 어디서든지 공격할 수 있는 선수다. 우리 팀에 엄청난 임팩트를 몰고 올 선수임을 확신 한다"며 페르난데스에 대한 신뢰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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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작된 2008~2009 NBA 시즌.

루디 페르난데스는 맥밀란의 신임아래 영건 군단 포틀랜드에 없어서는 안 될 키-식스맨으로 자리 잡았다.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클러치까지 성공시키면서 25득점을 몰아넣었고, 그와 스페인 대표팀 동료인 세르지오 로드리게즈의 ‘스페니쉬 커넥션‘ 플레이는 포틀랜드의 광적인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하면서 성공적인 NBA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다.

마르코 벨리넬리는 몬타 엘리스의 부상으로 출장시간이 늘어나는 듯 보였지만, 앤써니 모로우의 등장과 함께 돈 넬슨 감독과의 불화로 초반 작년과 마찬가지로 벤치를 달구면서 여러 가지 트레이드 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코리 매거티의 부상과 함께 다시 한 번 출장기회를 잡으며 최근 2경기에서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마누 지노빌리나 포틀의 루디 페르난데스처럼 4쿼터에 유독 강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최근 골든스테이트의 2연승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냈다.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전에서는 18분 동안 13득점 2리바운드 2스틸을 기록했고, 밀워키 벅스전에서는 4쿼터 풀타임을 뛰면서 14분 28초 동안 15득점 3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4쿼터에만 11득점을 몰아넣으며 말이다.

특히 밀워키전에서는 3쿼터에만 15득점을 몰아넣으며 NBA 최고 슈팅가드들 중 한 명이였던 마이클 레드를 4쿼터에 2득점으로 틀어막는 수비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르코 벨리넬리의 오클라호마시티전 하이라이트


벨리넬리의 밀워키전 Top10급 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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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벨리넬리와 루디 페르난데스는 이제 22세, 23세밖에 안 되는 젊은 선수들이다. 하지만 NBA에서 드라젠 페트로비치 이후 유럽에서 NBA로 건너간 가장 재능 넘치는 젊은 슈팅가드들이다. 둘은 아직 드라젠에 비견할만한 실력을 가진 선수는 아니지만 그들은 향후 10년간 NBA에서 유러피언 슈팅가드들 중 엄청난 실력을 보여줄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그들의 활약을 보고 있는 유럽 사람들은 아마도 매우 즐거울 것이다" 포틀랜드에서 활약한 바 있는 리투아니아의 전설적인 센터 아비다스 사보니스의 말이다.

드디어 제가 올 시즌 제가 바라던 대결구도인 루디 페르난데스 대 마르코 벨리넬리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 지켜보라. 분명 이들은 수많은 국내 NBA 팬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만한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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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말 많은 유럽리그 관련 글들을 준비 중인데 먼저 이 글로 스타트를 끊으려 한다. 과거에 이 둘의 대결을 시즌 전에 쓴 적이 있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써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 글을 보완하여 써본다. 그리고 예전에 제가 썼던 마르코 벨리넬리 글과 루디 페르난데스 글을 참조하였으니 그 점 양해 부탁드린다.

이 둘의 라이벌 대결은 사실 NBA에서부터 시작이 아니다. 바로 2005-06 유럽농구 시즌부터 이 둘에 관한 끊임없는 라이벌리 논쟁은 시작됐다. 유럽농구 팬 포럼을 가는 곳마다 마르코가 낫다 루디가 낫다는 둥 여기저기서 이탈리아와 스페인 네티즌들 간의 감정싸움도 치열했다.

이 감정싸움의 이유는 당시 유럽농구의 형세를 봐야 이해하기가 쉽다.

당시 유럽농구에서는 바로 차세대를 이끌고 갈 유로피언 영건 슈팅가드 3인방이 유럽농구를 아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때문에 NBA 스카우터들도 이들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세간의 관심을 모은 트리오를 살펴보면 파르티잔 소속의 86년생 6-5의 슈팅가드 유로스 트립코비치, DKV 유벤투트의 6-5의 슈팅가드 루디 페르난데스, 그리고 클리마미오 볼로냐의 6-5의 마르코 벨리넬리가 그 3명의 주인공이다.

당시 임팩트 면에서는 트립코비치가 먼저 치고 올라왔다. 사실 지금 트립코비치는 파르티잔에서 기량이 많이 쇠퇴한 느낌도 드는데, 당시에는 팀에서 거의 에이스급에 준하는 선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로스를 제외한 나머지 둘이 서서히 유럽 리그에서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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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마르코 벨리넬리가 유럽 리그에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경기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2005-06시즌 이탈리아 리그 파이널 4에서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이탈리아 농구 역사상 길이 남을 34득점 퍼포먼스 쇼를 보여주었다. 이 경기는 아직도 수많은 이탈리아 농구팬들이 꼽는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당시 몇몇 유럽리그 농구 팬 사이트에서 꼽는 최고의 명장면 순간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 경기에서 상대의 집중수비를 받는 거친 경기를 치렀음에도 불구하며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마르코 벨리넬리의 모습을 보고, 전성기 시절의 드라젠 페트로비치를 봤다며 엄청나게 흥분했다.

이 시즌에서 토론토의 명품 GM 브라이언 콜란젤로와 당시 피닉스의 감독이었던 마이크 댄토니의 마음을 사로잡은 벨리넬리는 세계 선수권에서 20세라고 믿기 어려운 활약을 펼쳤다. NBA 스카우터들의 애간장을 태웠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2006-07시즌은 벨리넬리에게는 시련의 시즌이었다.


 벨리넬리의 34득점 퍼포먼스

동료들의 부상, 그리고 여러 겹으로 집중된 상대팀의 수비는 벨리넬리를 힘들게 만들었고, 부상까지 겹쳐서 사실 평균 득점은 유로리그에서 12.8득점에 그쳤다. 이탈리아 리그에서 평균 17.6득점을 기록하며 표면적으론 준수한 듯 보였지만 전체적인 플레이는 실망스러웠다.

2007년 NBA 진출을 선언한 후 골든스테이트에서 힘겨운 생활이 시작됐다. 섬머리그 37득점 퍼포먼스는 그를 섬머리그 조던 혹은 섬머리그 페트로비치로 만들어주었고 많은 NBA 농구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게끔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팀 동료인 몬타 엘리스의 벽이 너무도 컸다. 게다가 한때 벨리넬리의 선발 출장도 고려한 돈 넬슨 감독이 정규시즌 전 치러지는 시범경기에서 벨리넬리의 경기력을 보고 아직 NBA에서 많은 것을 고쳐야 될 선수라며 그의 벤치 행을 결정했다. 백업으로도 당시 프리시즌 최고 스타 중 한 명이였던 아주부케에게 밀려버렸다. 골든스테이트의 팀 칼라인 런앤건 시스템에 고전한 이유도 컸다.

그러는 사이 유럽에서는 루디 페르난데스가 스페인 리그에서 대박을 치고 있었다. 2007-08 ACB 시즌에서 루디 페르난데스는 마르크 가솔, 리키 루비오와 함께 말 그대로 ACB를 접수해버린다. 용병들조차도 루디와 마르크의 기량에 혀를 내두르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로 루디의 기량은 2007-08 시즌을 기준으로 엄청나게 도약한 것이다.

2007년 자신을 사치세 문제로 외면해버린 피닉스 선즈를 보란 듯이 말이다.


페르난데스의 2007 유로바스켓 전 평가전 때의 하이라이트

유럽리그에서 정말 전무후무한 평균 21.2득점이라는 기록을 보이면서 이미 루디의 주가는 폭등했고 그를 피닉스로부터 데려왔던 포틀랜드는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구단주 폴 앨런은 스페인으로 날아가서 직접 페르난데스의 아버지를 만나는 등, 그를 2008-09 시즌에 NBA에 합류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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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MINWOOK 2008. 12. 7. 18:09

페트리 코포넨 스토리(下)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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훕 서미트(Hoop Summit)는 전통적으로 많은 스타들을 배출했다. 이 훕 서미트는 NBA 스카우터들뿐 아니라, 유럽 리그 스카우터들까지 와서 볼 정도로 그 관심이 대단하다. 미국 내 몇몇 골수 NBA 농구팬들은 이 “미래 스타들의 향연”을 보기 위해 멀리서 올 정도로 그 열기는 매우 뜨겁다.

O.J. 메이요, 마이클 비즐리, 데릭 로즈, 제리드 베일리스. 이번 2008년 NBA 드래프트에서 ‘스타급 대접‘을 받았던 선수들이 당시 미국 팀의 선수들로 나왔다. 또한 놀란 스미스, 카일 싱글러 등 당시 고교 최고의 레벨로 평가받았던 선수들도 참가한 바 있다.

월드 팀에서 가장 주목했던 선수는 니콜라스 바텀이었다. 바텀은 이미 수많은 유럽의 유소년 대회와 그리고 프랑스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선수였고, 사실 이 당시 바텀 외에 이스라엘 출신의 포워드 옴리 캐스피(Omar Casspi), 그리고 아진샤(Ajinca)정도가 이목을 끌었다. 코포넨은 분명 촉망받는 유망주였지만 바텀 정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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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리그의 소속팀 혼카 플레이보이즈(Honka Playboys)는 정규시중 중에 사실상 팀의 주전 리딩 가드이자 에이스 역할까지 했던 코포넨의 비중을 알면서도 그의 NBA 꿈을 위해 훕 서미트 참가를 허락해주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미국으로 날아간 코포넨은 시차 적응에 힘든 모습을 보이면서 최악의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월드 팀 연습 때부터 최선을 다한다. 코포넨의 플레이를 본 NBA 스카우터들은 하프코트 오펜스와 런앤건 게임에서 모두 강점을 보이면서 자신보다 크고 격렬한 선수가 있어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는 그를 ‘존 스탁턴‘에 비유했다. 스탁턴의 근성과 투지는 이미 많은 팬들이 잘 알거라 생각한다.

코포넨은 훕 서미트 본 게임에서 불안한 볼 운반과 미숙한 모습을 많이 보였지만 특유의 센스를 발휘하며 7득점, 6어시스트, 1실책의 기록을 만들었다. 많은 NBA 스카우터들은 분명 잠재력은 있는 선수라면서 차기 NBA 드래프트에 나온다면 1라운드에 뽑힐 만한 선수로 페트리 코포넨을 보드에 올려놓았다.

결국 코포넨은 내친 김에 2007년 NBA 드래프트 참가를 결정한다. 사실 이 NBA 드래프트 참가 결정은 페트리의 순간적인 판단이었다. ‘훕 서미트로 잠재력을 인정받았으니 이 기회에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나를 시험해보자’ 이런 생각으로 페트리는 NBA 드래프트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당시 코포넨에게 관심을 갖던 NBA 팀들은 멤피스 그리즐리스, 세크라멘토 킹스, 샌안토니오 스퍼스, 그리고 포틀랜드 블레이저스가 있었다.

멤피스 그리즐리스는 전 단장이었던 제리 웨스트가 스카우팅 목록에 페트리 코포넨을 올려놓았고, 새로 취임한 크리스 월러스 역시 코포넨에게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웨스트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가능성이 큰데, 월러스도 웨스트처럼 핀란드로 직접 날아가 코포넨의 경기 비디오 테잎을 가지고 올 정도로 코포넨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아마 2라운드쯤으로 생각했을 것이고 세크라멘토나 피닉스, 샌안토니오도 코포넨의 모습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워크아웃을 갖기도 했다. 이 팀들은 모두 백업 포인트가드가 필요한 팀이었고, 유럽 선수들에게도 비교적 우호적인 구단들이라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특히 유럽 유망주들에 대해 관심이 남달랐던 포틀랜드가 그러했다. 조엘 프리챠드와 네이트 맥밀란은 코포넨를 사실상 1라운드에서 뽑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프리챠드는 제리 웨스트와 마찬가지로 포틀랜드의 스카우터들을 유럽에 배치했기 때문에 코포넨의 활약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프리챠드는 그의 지인들에게 “코포넨은 이번 드래프트의 최고의 유망주”라는 말까지 하면서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코포넨은 후에 자신이 1라운드에서 뽑히기는 힘들 거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7년 6월 29일, 뉴욕에서 열린 NBA 드래프트에서 그는 1라운드 30번. 마지막 1라운드 지명자로 필라델피아 76ers에 뽑히고 나서 바로  유망주 군단 포틀랜드로 트레이드됐다.

수많은 미국의 농구팬들은 훕 서미트에서 페트리 코포넨이 뛰기는 했었지만 그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았다. 많은 팬들에게 생소했던 것이다. 당시 1라운드에 뽑힌 마르코 벨리넬리, 루디 페르난데스는 유럽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어린 나이임에도 팀의 에이스였다. 국제 대회에서의 위상이 상당히 높은 선수들이라 어느 정도의 정보가 있어 알려졌지만 코포넨이란 이름은 물음표가 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코포넨이 몸담고 있던 핀란드 리그가 다른 나라 리그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한편, 핀란드가 농구 강국의 대열에 서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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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19세의 휜칠한 미소년은 포틀랜드의 유니폼을 입으면서 2007년 섬머리그 출전도 감행했다. 당시 아주 큰 활약은 아니었지만 남다른 패싱 감각과 센스, 그리고 노련한 리딩을 잠깐 잠깐씩 보여주었는데, 당시 프리챠드의 평이 매우 흥미롭다.

“그는 커크 하인릭과 같은 스타일의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하인릭과 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고, 괜찮은 볼핸들링, 그리고 공격성과 패싱력을 모두 가지고 있다. 수비가 문제라고 하는데, 그는 커크 하인릭과 같이 1, 2번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수비 잠재력을 가진 선수다. 수비 자세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매우 좋다. 다른 코치들도 코포넨의 수비 잠재력이 좋다는 내 생각에 동의한다. 당장 수비가 문제라고 해도 두고 보라. 그는 NBA에서 잘 성장하면 하인릭과 같은 최고의 수비수가 될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페트리 코포넨은 2007년 섬머리그가 끝나고 유럽에서 더 경험을 쌓기 위해 다시 핀란드로 날아간다. 핀란드 농구계는 코포넨의 기대 이상의 성과에 크게 고무되어 있었고, 핀란드 국민들 역시 그에게 많은 찬사를 보내면서 핀란드 농구에도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핀란드 리그는 이미 리그 시작 전부터 ‘코포넨 효과‘에 휩싸였다.

코포넨은 2007-08시즌 팀의 슈팅가드를 담당하였다. 포인트가드로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던 지난 시즌과 달리 07~08시즌은 팀에 포인트가드가 영입이 되면서 보직이동이 된 것이다. 사실 슈팅가드로 뛰는 이유에는 NBA 진출을 위한 포석이라는 말도 많았다. 어쨌든 코포넨은 지난 시즌 핀란드 리그 최고의 ‘리딩가드‘라는 찬사에 이어 최고의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라는 수식어까지 등에 업었다. 그의 소속팀 혼카는 전 해에 이어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우승을 일궈내면서 2연패에 성공한다. 코포넨은 파이널 도중 부상을 입어 끝까지 뛰지는 못했지만 계속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정규 시즌에는 19.4득점, 4.0어시스트, 3.9리바운드, 1.8스틸로 포인트가드치고 상당히 준수한 성적을 냈다. 2점 슛은 56.4%, 3점 슛은 42.6%,자유투 성공률은 78.6%의 성공률을 보여주었다. 또한 소속팀을 2연속 우승으로 이끄는데 일등공신을 담당하기도 했다.

라펜란타(Team Lappeenranta)와의 준결승(4강전) 2차전에서 오른쪽 손가락 부상을 당해 파이널 출장이 불투명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작년과 비교 불가일 정도로 발전된 모습을 보이면서 평균 18.0득점, 2.5리바운드, 5.2어시스트, 2.3스틸의 엄청난 기록지를 작성하고 있다. 2점 슛 성공률은 57.6%, 3점 슛 성공률은 48.7%, 자유투 성공률은 작년에 비해 12%정도 감소됐다. 그리고 MVP 후보에 오르면서 바야흐로 코포넨은 최고의 핀란드 선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페트리는 영광스러운 핀란드 리그에서의 활약을 접어두고 또 하나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2008년 NBA 리그 입성이다. 그는 이제 자신이 준비되었다고 믿는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지금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신이 07-08시즌 핀란드 리그를 준비하면서 수없이 연습했던 볼핸들링과 수비연습을 재개했고 섬머리그 참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수많은 핀란드 국민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말이다.

2008년 섬머리그에서 코포넨은 제리드 베일리스와 함께 백코트를 이루었다. 이미 둘은 2007년 훕 서미트에서 만난 경험이 있어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실력도 언어도 확실히 2007년도에 비해 업그레이드 되어 돌아온 코포넨은 첫 경기부터 베일리스와 함께 두각을 나타내며 프리챠드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섬머리그 내내 코포넨은 포틀랜드에서 베일리스, 바텀과 함께 가장 주목받는 선수로 각광을 받았다.

13.2득점, 3.4어시스트, 2.6리바운드는 그가 섬머리그에서 남긴 성적표다. 볼핸들링과 수비는 분명 개선됐지만 아직 프레스에 대응하는 것이 미숙(이것은 유럽 리그와의 수비 강도 차이가 가장 크다. 경험이 쌓이면 더 나아질 것이다)하고, 슈팅의 기복이 있다는 것을 지적받았다. 때문에 이 아킬레스건은 아직까지 프리챠드와 네이트 맥밀란을 고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코포넨은 현재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의 클럽들로부터 장기계약(거의 대부분 5년 정도로 잡고 있다고 전해진다)과 함께 거액을 제시받고 있지만 올 시즌 반드시 포틀랜드의 15인 로스터에 들기를 바라고 있다. 저 유명 클럽들의 콜은 일단 포틀랜드의 답을 들을 때까지 거절한 상태다. 혼카와의 계약은 올 시즌으로 끝날 것이다.

“이번에 포틀랜드의 15인 로스터에 들지 못한다면 유럽리그의 팀들 중 한 팀과 장기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크다. 유럽 리그가 현재 더 많은 돈을 NBA보다 줄 수 있고, 계약 조건이 좋을지 몰라도 지금 당장은 NBA 입성을 원한다. 유럽 리그의 콜들을 모두 거절하고 미국으로 왔다. NBA는 저의 평생 꿈이였고, 너무 어렸을 때부터 큰돈을 만지면서 뛰고 싶지 않다. 지금이 아니면 NBA 입성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른다. 단 1분을 뛰어도 좋다. 25세쯤 됐을 때는 이 곳 NBA에 다시 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페트리의 말이다.

개인적으로 유럽리그에 가서 경험을 더 쌓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이번이 코포넨의 마지막 NBA 입성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코포넨의 견해에도 상당부분 동의한다. 오히려 트레이드를 시도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코포넨의 몸값은 사실상 현재 유럽 리그의 수많은 빅 리그 팀들에 의해 엄청나게 폭등 중이고 미화로 4백만 달러까지 줄 수 있다는 구단까지 나타날 정도다. 대부분의 팀들이 장기계약을 요구하고 있지만 코포넨은 모두 거절한 상태다. 그가 농구를 시작하던 꼬마였을 때부터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 꿈이 당장 중요하다는 것이고, 그 정도로 코포넨의 NBA 입성에 대한 욕망은 강하다.

돈으로 농구하고 싶지 않다는 20세의 핀란드 청년. 조국에서 외면 받는 종목이지만 마이클 조던, 존 스탁턴, 제이슨 키드, 스티브 내쉬같은 스타 선수들을 보면서 NBA에 대한 꿈을 키워온 NBA 키드다. 물론 포틀랜드와 계약을 맺을 수 있을지는 장담키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필자는 코포넨의 돈보다는 자신의 순수한 열정을 이루려는 모습을 보면서 이 20세 청년이 꼭 NBA 입성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돈을 쫓기 보다는 자신의 꿈을 위해 운동을 하는 선수에게는 어떻게 끌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수많은 NBA 팬들도 코포넨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주기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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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MINWOOK 2008. 12. 5. 23:48

페트리 코포넨 스토리(上)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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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리 요한네스 코포넨(Petteri Johannes Koponen). 이것이 페트리 코포넨의 풀 네임이다. 유럽에서도 농구 불모지로 불리는 핀란드. 겨울 스포츠인 아이스하키와 대다수 유럽 국가의 메인 스포츠라고 볼 수 있는 축구보다 떨어지는 인기, 저변도 열악한  핀란드 농구에서 코포넨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핀란드 농구천재의 탄생과 불우했던 유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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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4월 13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난 코포넨은 홀어머니의 큰 사랑 속에서 자랐다. 그는 심성이 매우 착하고 선한 아이였지만 동네 아이들과 싸움을 많이 해서 어머니의 속을 정말 많이 썩혔다고 회고한다. 아버지없는 자식이라며 놀려대던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보다 나이가 많았다. 이 못된 동네 형들은 심지어 꼭두새벽에까지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고 '아버지없는 자식'이라고 놀리는 끈기를 발휘했으니, 그 고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인 쏘냐 코포넨(Sonja Koponen)은 페트리가 7살이 될 때까지 핀란드 프로리그에서 뛰었던 여자농구 선수였다. 핀란드의 여자농구 리그는 사실 환경이 핀란드 남자농구보다 더 열악했다. 팀에서 블루컬러 워커로 상당히 각광받았던 선수였던 쏘냐는 자신의 아들이 농구에 재미를 붙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코포넨은 축구에만 열을 올렸다. 당시 핀란드의 최고 스포츠중 하나가 축구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를 속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축구가 지겨웠는지는 몰라도 어머니가 가끔 보여주던 NBA 경기에 흥미를 갖게 된 코포넨은 존 스탁튼, 제이슨 키드같은 선수들을 보면서 농구 선수로의 꿈을 갖게 된다. 특히나 코포넨은 자신이 어렸을 때 티비로만 보던 스탁턴과 말론의 픽앤롤 경기가 가장 인상깊었다고 회고 했다. 그는 후에 핀란드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짜릿한 플레이였다"고 밝힐 정도로 유타 재즈의 플레이에 심취해있었다.

코포넨이 10살이 되던 해, 유소년 농구팀 코치였던 에르키 코이비스토 라잘라(Erkki Koivisto Rajala)는 그의 어머니인 쏘냐의 소개로 코포넨을 만나게 된다.

당시 코포넨은 농구공을 들고, 여러 동네의 농구 코트를 전전하면서 열심히 농구에 열중했다. 헌데 농구를 하는 코포넨은 아이들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당시 핀란드에서는 농구가 비인기 종목이였고, 농구 코트는 동네에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을 정도로 먼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코포넨은 농구를 즐기는 극소수의 아이들이나 청년들과 함께 아침 일찍 농구를 하러 갔다가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그러나 어머니 쏘냐는 그런 그를 대견하게 여겼고, 라잘라 코치에게 소개를 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또래보다 키가 훨씬 컸던 코포넨의 신체조건을 보고 라잘라는 그에게 유소년 팀에 들어와 달라고 이야기했고, 코포넨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헬싱키의 외로운 꽃이 활짝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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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잘라 코치와의 운명적 만남 후에 코포넨의 농구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그의 재능은 유소년 리그에서 단연 빛이 났었고, 사실상 또래들이 아닌 3~4살 정도는 많은 선수들과 플레이해야 수준이 맞을 정도로 “천재급” 실력을 보여준다. 당시 수많은 핀란드 방송사는 앞다투어 코포넨을 취재했고, 여자농구에서 나름의 스타였던 '쏘냐 코포넨의 아들'이라는 타이틀도 빼놓지 않았다. 또한  몇몇 유럽농구 전문가들은 핀란드에서 농구 천재가 나왔다면서 이 선수의 미래를 주목하라는 취지에서 유럽농구에 코포넨을 소개했다.

코포넨은 13세때 핀란드 유소년 대표로 뽑혔고, 16세때 당시 핀란드 리그 최고의 팀중 하나였던 혼카 플레이보이즈(Honka Playboys)와 계약을 맺는다. 혼카의 감독이였던 미하일로 파비체피비치(Mihailo Pavicevic)는 코포넨의 상당한 팬이였고, 그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본다.

U-16대회에서 디비전-B(유럽의 유소년 대회는 디비전-A와 디비전-B로 운용되는데 국가의 수준은 디비전-A가 높다. 한마디로 아이스하키의 A리그, B리그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에서 평균 15.7득점, 4.9리바운드, 3.7어시스트, 2.3스틸로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팀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이대로 묻혀지나 싶었다.

그러나 코포넨의 고공행진은 2006년 18세의 나이로 나간 유럽 U-20대회에도 이어졌다. 자기보다 2살이 많은 선수들 가운데에서도 코포넨의 실력은 수많은 NBA 스카우터들의 눈에 군계일학이었다. 코포넨은 유럽 U-20대회 디비전-B에서 평균 12.6득점, 3.4리바운드, 3.4어시스트, 2.5스틸로 대활약을 했다. NBA 스카우터들은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라면서 그를 극찬했고, 이 중에는 NBA의 전설 제리 웨스트도 있었다.

결국 코포넨은 이 활약을 인정받아 핀란드 성인 대표팀에 18살의 나이로 뽑히게 된다.


미국 농구와의 운명적 만남 

한편 멤피스 단장이었던 제리 웨스트는 U-20 대회 참관 이후에 핀란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코포넨을 스카우팅하고, 직접 만나기 위한 포석이었다. 비행기에 몸을 실은 웨스트는 핀란드 리그에서의 코포넨의 플레이를 보고, 자신이 유럽 U-20대회에서 본 것보다 더 큰 잠재력을 발견한다. 나이답지 않은 폭넓은 시야, 적재적소에 찔러주는 패스, 그리고 강력한 승부근성까지.

그를 스카우팅하면서 웨스트는 이런 말을 했다. “코포넨은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근래 본 유럽 선수들 중에 이만한 재능을 가진 선수는 찾기가 매우 어렵다. 그는 NBA에서 '벤치'의 내쉬, 혹은 스탁턴이 될 수 있는 선수다. 또한 이런 최고 선수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게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강한 승부근성과 실력을 가졌으며 스타 기질이 있는 선수다. 이런 선수들은 미리 NBA로 데리고 와서 경험을 쌓아줘야 한다. 그는 거품이 아니다. 그가 거품이 아니라는 건 그의 현재 경력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유럽의 청소년 대회에서 기본적으로 2~3살 많은 선수들과 플레이를 하고 있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18살 때 이미 성인 국가대표의 꿈을 이뤘다. 코포넨이 언제 드래프트에 나오든지 우리는 그를 꼭 뽑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야말로 선수보는 눈도 그의 선수시절만큼이나 '전설'급인 웨스트의 찬사를 받은 코포넨은 더욱 더 고무되어 있었다. '세상에 내가 웨스트의 인정을 받다니'라며 말이다. 티비에서나 보던 영웅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코포넨은 혼카의 상승세 역시 이끌어 낸다.

2006-07 핀란드 리그 시즌은 코포넨에게 상당히 큰 의미가 있었다. 먼저 선발로 발탁됐고, 조금씩 그의 잠재력이 리그에서 인정을 받던 시절이며 그의 소속팀 혼카가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코포넨은 06-07시즌 라티(Lahti)와 Pyrinto전에서 각각 28점 10어시스트, 22점 10어시스트로 최고의 플레이를 펼쳤고, 정규시즌에서는 평균 12.4점, 2.5리바운드, 4.1어시스트의 활약을 선보였다. 또한 플레이오프 11경기동안 평균 12.8점, 2.2리바운드, 2.3어시스트로 활약을 하면서 팀의 리딩가드뿐 아니라 핀란드 최고의 포인트가드 칭호를 받을 정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와중에 2007년 미국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라왔고 바로 '훕 서미트(Hoop Summit)' 초청장이었다. 2006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유럽 U-20대회에서의 활약이 수많은 NBA 스카우터들과 유럽리그 스카우터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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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의 스페인 대표팀은 막강 라인업을 자랑했다. 파우 가솔,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 호세 마뉴엘 칼데론을 시작으로 신성 마르크 가솔, 리키 루비오에 이르기 까지 그 네임벨류의 화려함이란 미국을 제외하면 단연 돋보이는 팀이었다.

그렇지만 이 중에서도 스페인의 진짜 알짜배기 허슬 플레이어가 있었다. 그 선수는 아주 눈에 돋보이지는 않지만 각종 세계 대회에서 비중은 실로 컸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살림꾼이자 소금 같은 역할로 늘 묵묵히 자기 몫을 해내던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카를로스 히메네즈다. 미국전에서 히메네즈를 잘 관찰했다면 알겠지만 예선전에서 스페인의 경기력이 가장 크게 바뀌었던 이유 중 히메네즈의 존재는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결정적일 때마다 강심장의 면모를 십분 발휘하며 미국의 런 앤 건을 기가 막히게 끊어내는 센스, 여기에 허슬 넘치는 플레이로 스페인의 상승세에 충분히 한 몫 했다. 르브론 제임스의 볼을 넘어지면서까지 스틸해내는 장면은 그야 말로 백미였고 이 선수의 근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이 히메네즈가 얼마 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물론 스페인 농구협회에서는 히메네즈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2009년 유로바스켓 참가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76년생인 이 선수를 계속 끌고 갈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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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히메네즈의 후계자로 지목받는 선수가 지금 소개할 86년생 6-8의 카를로스 수아레즈다. 빅토르 클레버와 함께.

카를로스 수아레즈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서 뛰고 있는 세르지오 로드리게즈와 함께 MMT 유소년 시절부터 콤비로서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2004년 유럽 U-18 대회에서는 스페인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2005년 유럽 U-20 대회에서는 실책으로 팀을 말아먹었던 세르지오를 대신해 마르크 가솔과 함께 스페인을 잘 이끌기도 했다.

MMT에서 수아레즈는 성인 무대로 올라온 이래 계속 경험을 쌓아 나갔다. MMT는 세르지오 로드리게즈가 나가면서부터 점점 성적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팀 역시 아슬아슬하게 강등권을 면하는 살얼음판 일정이 지속됐다.

비슷한 나이또래인 R&R 브라더스가 ACB를 장악하던 때에 수아레즈는 팀을 강등권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필사의 몸부림을 치며 희비가 교차했다. 성인 무대 데뷔 시절부터 청소년 레벨에서는 최고의 포워드로 손꼽혔던 그도 결국은 신인이였고 어렸기 때문에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한 때 NBA 드래프트넷이나 드래프트 익스프레스에서 이 선수의 순위도 오르 내렸지만, 출전 기회를 자주 못 잡았던 탓에 그의 이름은 어느새 잊혀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카를로스 수아레즈는 오프시즌 때마다 최선을 다해 연습에 매진했다. 이미 2005-2006 시즌부터 그의 피나는 노력은 시작되었고, 차츰 그의 실력은 향상됐다.

그 빛이 발한 것은 2006-2007시즌 리그 3년차가 되었을 때였다. ACB 정규시즌 31라운드 타우 세라미카전에서 그는 20득점 9리바운드(3오펜스),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타우는 ACB 최강팀이였고, 루이스 스콜라, 파블로 프리지오니, 티아고 스플리터 등 기라성같은 ACB의 스타들이 버티고 있는 팀이었다.

잊혀져가던 카를로스 수아레즈의 이름이 스페인 농구팬들의 머릿속에 다시금 강인하게 남기 시작했다. 20살 약관의 청년이 리그 최고 강호였던 타우 세라미카를 상대로 이 정도의 경기력을 보였던 것은 화려한 부활의 서곡을 울린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더욱 더 자신을 채찍질한다.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되겠다‘라고 말이다.
2007-2008시즌 드디어 그는 팀의 주축으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이 당시 MMT 성적 역시 강등권의 기로에 섰고, 수아레즈도 기복을 보이면서 다시 팀의 기대를 저버렸다. 하지만 뒤늦게 26라운드부터 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그의 늦바람은 스페인 농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MMT 2부 리그 강등을 막은 1등 공신이 됐다.

정규시즌 26라운드부터 34라운드까지 수아레즈는 단 3번의 한자리 득점을 기록했을 뿐 대부분의 경기에서 두 자리 득점을 넘기면서 평균 12.8득점 4.2리바운드의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그가 왜 카를로스 히메네즈의 후계자인가‘를 제대로 각인을 시켜준 것이다.
당시 세르지오 산체스라는 선수와 함께 카를로스 수아레즈는 더블 S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R&R 브라더스와 함께 이 콤비의 플레이는 정말 대단했다. DKV 유벤투트와의 27라운드 경기에서 수아레즈는 8점차 패배를 당했지만 아이토 가르시아 리네즈의 강한 팀 디펜스를 뚫어버리며 24득점 3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당시 아이토는 수아레즈를 두고 "내가 보기에는 같은 나이때의 히메네즈보다 더 뛰어나다.수아레즈는 한 번 놔주면 걷잡을 수 없는 선수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3라운드가 끝난 현재 수아레즈는 평균 12득점 6리바운드 1.4어시스트에 1스틸을 기록하면서 단번에 스페인 농구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팀 성적은 1승 2패로 저조하지만 2라운드까지 빌바오, 유벤투트 같은 비교적 전력이 강한 팀과 만나서 끝까지 접전을 펼치면서 5점차, 2점차 승부를 벌였던 걸 감안한다면 실로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해 2009년 유로바스켓부터 ‘히메네즈의 공백은 수아레즈와 클레버면 족하다‘라는 이야기가 솔솔 피어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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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레즈의 장점은 역시 뛰어난 허슬과 한번 터지면 겉잡을 수 없는 폭발적인 슈팅이다. 슛 거리는 말 그대로 전 방위일 정도로 뛰어난 슈팅력을 자랑한다. 다양한 공격루트는 그만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공격력만큼은 3번으로서 최적인 셈이다.
또한 공수리바운드 가담도 경기 당 두 자리 수를 거뜬히 기록할 만큼 뛰어나다. 그만큼 몸을 사리지 않고 리바운드 참가에 적극적이다. 탄력은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위치선정 능력이 타고난 선수이며 가드와의 2대 2 플레이 또한 뛰어난 편이다.

다만 역시 피지컬적으로 좀 약한 면모가 있고 수비력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허슬과 센스로 극복하고 있다. 잦은 기복도 그의 약점으로 꼽히며 아직까지 젊다 보니 마인드 컨트롤도 약하다는 평이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은 이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국에게 맞설 수 있는 사실상의 넘버원 대항마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굳혔다. 이제는 그 대항마를 목표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과도기에 들어섰다. 팔방미인 수아레즈를 꼭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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