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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의 스페인 대표팀은 막강 라인업을 자랑했다. 파우 가솔,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 호세 마뉴엘 칼데론을 시작으로 신성 마르크 가솔, 리키 루비오에 이르기 까지 그 네임벨류의 화려함이란 미국을 제외하면 단연 돋보이는 팀이었다.

그렇지만 이 중에서도 스페인의 진짜 알짜배기 허슬 플레이어가 있었다. 그 선수는 아주 눈에 돋보이지는 않지만 각종 세계 대회에서 비중은 실로 컸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살림꾼이자 소금 같은 역할로 늘 묵묵히 자기 몫을 해내던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카를로스 히메네즈다. 미국전에서 히메네즈를 잘 관찰했다면 알겠지만 예선전에서 스페인의 경기력이 가장 크게 바뀌었던 이유 중 히메네즈의 존재는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결정적일 때마다 강심장의 면모를 십분 발휘하며 미국의 런 앤 건을 기가 막히게 끊어내는 센스, 여기에 허슬 넘치는 플레이로 스페인의 상승세에 충분히 한 몫 했다. 르브론 제임스의 볼을 넘어지면서까지 스틸해내는 장면은 그야 말로 백미였고 이 선수의 근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이 히메네즈가 얼마 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물론 스페인 농구협회에서는 히메네즈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2009년 유로바스켓 참가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76년생인 이 선수를 계속 끌고 갈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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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히메네즈의 후계자로 지목받는 선수가 지금 소개할 86년생 6-8의 카를로스 수아레즈다. 빅토르 클레버와 함께.

카를로스 수아레즈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서 뛰고 있는 세르지오 로드리게즈와 함께 MMT 유소년 시절부터 콤비로서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2004년 유럽 U-18 대회에서는 스페인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2005년 유럽 U-20 대회에서는 실책으로 팀을 말아먹었던 세르지오를 대신해 마르크 가솔과 함께 스페인을 잘 이끌기도 했다.

MMT에서 수아레즈는 성인 무대로 올라온 이래 계속 경험을 쌓아 나갔다. MMT는 세르지오 로드리게즈가 나가면서부터 점점 성적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팀 역시 아슬아슬하게 강등권을 면하는 살얼음판 일정이 지속됐다.

비슷한 나이또래인 R&R 브라더스가 ACB를 장악하던 때에 수아레즈는 팀을 강등권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필사의 몸부림을 치며 희비가 교차했다. 성인 무대 데뷔 시절부터 청소년 레벨에서는 최고의 포워드로 손꼽혔던 그도 결국은 신인이였고 어렸기 때문에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한 때 NBA 드래프트넷이나 드래프트 익스프레스에서 이 선수의 순위도 오르 내렸지만, 출전 기회를 자주 못 잡았던 탓에 그의 이름은 어느새 잊혀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카를로스 수아레즈는 오프시즌 때마다 최선을 다해 연습에 매진했다. 이미 2005-2006 시즌부터 그의 피나는 노력은 시작되었고, 차츰 그의 실력은 향상됐다.

그 빛이 발한 것은 2006-2007시즌 리그 3년차가 되었을 때였다. ACB 정규시즌 31라운드 타우 세라미카전에서 그는 20득점 9리바운드(3오펜스),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타우는 ACB 최강팀이였고, 루이스 스콜라, 파블로 프리지오니, 티아고 스플리터 등 기라성같은 ACB의 스타들이 버티고 있는 팀이었다.

잊혀져가던 카를로스 수아레즈의 이름이 스페인 농구팬들의 머릿속에 다시금 강인하게 남기 시작했다. 20살 약관의 청년이 리그 최고 강호였던 타우 세라미카를 상대로 이 정도의 경기력을 보였던 것은 화려한 부활의 서곡을 울린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더욱 더 자신을 채찍질한다.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되겠다‘라고 말이다.
2007-2008시즌 드디어 그는 팀의 주축으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이 당시 MMT 성적 역시 강등권의 기로에 섰고, 수아레즈도 기복을 보이면서 다시 팀의 기대를 저버렸다. 하지만 뒤늦게 26라운드부터 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그의 늦바람은 스페인 농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MMT 2부 리그 강등을 막은 1등 공신이 됐다.

정규시즌 26라운드부터 34라운드까지 수아레즈는 단 3번의 한자리 득점을 기록했을 뿐 대부분의 경기에서 두 자리 득점을 넘기면서 평균 12.8득점 4.2리바운드의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그가 왜 카를로스 히메네즈의 후계자인가‘를 제대로 각인을 시켜준 것이다.
당시 세르지오 산체스라는 선수와 함께 카를로스 수아레즈는 더블 S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R&R 브라더스와 함께 이 콤비의 플레이는 정말 대단했다. DKV 유벤투트와의 27라운드 경기에서 수아레즈는 8점차 패배를 당했지만 아이토 가르시아 리네즈의 강한 팀 디펜스를 뚫어버리며 24득점 3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당시 아이토는 수아레즈를 두고 "내가 보기에는 같은 나이때의 히메네즈보다 더 뛰어나다.수아레즈는 한 번 놔주면 걷잡을 수 없는 선수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3라운드가 끝난 현재 수아레즈는 평균 12득점 6리바운드 1.4어시스트에 1스틸을 기록하면서 단번에 스페인 농구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팀 성적은 1승 2패로 저조하지만 2라운드까지 빌바오, 유벤투트 같은 비교적 전력이 강한 팀과 만나서 끝까지 접전을 펼치면서 5점차, 2점차 승부를 벌였던 걸 감안한다면 실로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해 2009년 유로바스켓부터 ‘히메네즈의 공백은 수아레즈와 클레버면 족하다‘라는 이야기가 솔솔 피어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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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레즈의 장점은 역시 뛰어난 허슬과 한번 터지면 겉잡을 수 없는 폭발적인 슈팅이다. 슛 거리는 말 그대로 전 방위일 정도로 뛰어난 슈팅력을 자랑한다. 다양한 공격루트는 그만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공격력만큼은 3번으로서 최적인 셈이다.
또한 공수리바운드 가담도 경기 당 두 자리 수를 거뜬히 기록할 만큼 뛰어나다. 그만큼 몸을 사리지 않고 리바운드 참가에 적극적이다. 탄력은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위치선정 능력이 타고난 선수이며 가드와의 2대 2 플레이 또한 뛰어난 편이다.

다만 역시 피지컬적으로 좀 약한 면모가 있고 수비력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허슬과 센스로 극복하고 있다. 잦은 기복도 그의 약점으로 꼽히며 아직까지 젊다 보니 마인드 컨트롤도 약하다는 평이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은 이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국에게 맞설 수 있는 사실상의 넘버원 대항마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굳혔다. 이제는 그 대항마를 목표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과도기에 들어섰다. 팔방미인 수아레즈를 꼭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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