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COLUMNS/MINWOOK 2008. 12. 5. 23:48

페트리 코포넨 스토리(上)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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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리 요한네스 코포넨(Petteri Johannes Koponen). 이것이 페트리 코포넨의 풀 네임이다. 유럽에서도 농구 불모지로 불리는 핀란드. 겨울 스포츠인 아이스하키와 대다수 유럽 국가의 메인 스포츠라고 볼 수 있는 축구보다 떨어지는 인기, 저변도 열악한  핀란드 농구에서 코포넨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핀란드 농구천재의 탄생과 불우했던 유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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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4월 13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난 코포넨은 홀어머니의 큰 사랑 속에서 자랐다. 그는 심성이 매우 착하고 선한 아이였지만 동네 아이들과 싸움을 많이 해서 어머니의 속을 정말 많이 썩혔다고 회고한다. 아버지없는 자식이라며 놀려대던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보다 나이가 많았다. 이 못된 동네 형들은 심지어 꼭두새벽에까지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고 '아버지없는 자식'이라고 놀리는 끈기를 발휘했으니, 그 고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인 쏘냐 코포넨(Sonja Koponen)은 페트리가 7살이 될 때까지 핀란드 프로리그에서 뛰었던 여자농구 선수였다. 핀란드의 여자농구 리그는 사실 환경이 핀란드 남자농구보다 더 열악했다. 팀에서 블루컬러 워커로 상당히 각광받았던 선수였던 쏘냐는 자신의 아들이 농구에 재미를 붙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코포넨은 축구에만 열을 올렸다. 당시 핀란드의 최고 스포츠중 하나가 축구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를 속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축구가 지겨웠는지는 몰라도 어머니가 가끔 보여주던 NBA 경기에 흥미를 갖게 된 코포넨은 존 스탁튼, 제이슨 키드같은 선수들을 보면서 농구 선수로의 꿈을 갖게 된다. 특히나 코포넨은 자신이 어렸을 때 티비로만 보던 스탁턴과 말론의 픽앤롤 경기가 가장 인상깊었다고 회고 했다. 그는 후에 핀란드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짜릿한 플레이였다"고 밝힐 정도로 유타 재즈의 플레이에 심취해있었다.

코포넨이 10살이 되던 해, 유소년 농구팀 코치였던 에르키 코이비스토 라잘라(Erkki Koivisto Rajala)는 그의 어머니인 쏘냐의 소개로 코포넨을 만나게 된다.

당시 코포넨은 농구공을 들고, 여러 동네의 농구 코트를 전전하면서 열심히 농구에 열중했다. 헌데 농구를 하는 코포넨은 아이들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당시 핀란드에서는 농구가 비인기 종목이였고, 농구 코트는 동네에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을 정도로 먼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코포넨은 농구를 즐기는 극소수의 아이들이나 청년들과 함께 아침 일찍 농구를 하러 갔다가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그러나 어머니 쏘냐는 그런 그를 대견하게 여겼고, 라잘라 코치에게 소개를 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또래보다 키가 훨씬 컸던 코포넨의 신체조건을 보고 라잘라는 그에게 유소년 팀에 들어와 달라고 이야기했고, 코포넨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헬싱키의 외로운 꽃이 활짝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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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잘라 코치와의 운명적 만남 후에 코포넨의 농구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그의 재능은 유소년 리그에서 단연 빛이 났었고, 사실상 또래들이 아닌 3~4살 정도는 많은 선수들과 플레이해야 수준이 맞을 정도로 “천재급” 실력을 보여준다. 당시 수많은 핀란드 방송사는 앞다투어 코포넨을 취재했고, 여자농구에서 나름의 스타였던 '쏘냐 코포넨의 아들'이라는 타이틀도 빼놓지 않았다. 또한  몇몇 유럽농구 전문가들은 핀란드에서 농구 천재가 나왔다면서 이 선수의 미래를 주목하라는 취지에서 유럽농구에 코포넨을 소개했다.

코포넨은 13세때 핀란드 유소년 대표로 뽑혔고, 16세때 당시 핀란드 리그 최고의 팀중 하나였던 혼카 플레이보이즈(Honka Playboys)와 계약을 맺는다. 혼카의 감독이였던 미하일로 파비체피비치(Mihailo Pavicevic)는 코포넨의 상당한 팬이였고, 그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본다.

U-16대회에서 디비전-B(유럽의 유소년 대회는 디비전-A와 디비전-B로 운용되는데 국가의 수준은 디비전-A가 높다. 한마디로 아이스하키의 A리그, B리그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에서 평균 15.7득점, 4.9리바운드, 3.7어시스트, 2.3스틸로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팀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이대로 묻혀지나 싶었다.

그러나 코포넨의 고공행진은 2006년 18세의 나이로 나간 유럽 U-20대회에도 이어졌다. 자기보다 2살이 많은 선수들 가운데에서도 코포넨의 실력은 수많은 NBA 스카우터들의 눈에 군계일학이었다. 코포넨은 유럽 U-20대회 디비전-B에서 평균 12.6득점, 3.4리바운드, 3.4어시스트, 2.5스틸로 대활약을 했다. NBA 스카우터들은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라면서 그를 극찬했고, 이 중에는 NBA의 전설 제리 웨스트도 있었다.

결국 코포넨은 이 활약을 인정받아 핀란드 성인 대표팀에 18살의 나이로 뽑히게 된다.


미국 농구와의 운명적 만남 

한편 멤피스 단장이었던 제리 웨스트는 U-20 대회 참관 이후에 핀란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코포넨을 스카우팅하고, 직접 만나기 위한 포석이었다. 비행기에 몸을 실은 웨스트는 핀란드 리그에서의 코포넨의 플레이를 보고, 자신이 유럽 U-20대회에서 본 것보다 더 큰 잠재력을 발견한다. 나이답지 않은 폭넓은 시야, 적재적소에 찔러주는 패스, 그리고 강력한 승부근성까지.

그를 스카우팅하면서 웨스트는 이런 말을 했다. “코포넨은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근래 본 유럽 선수들 중에 이만한 재능을 가진 선수는 찾기가 매우 어렵다. 그는 NBA에서 '벤치'의 내쉬, 혹은 스탁턴이 될 수 있는 선수다. 또한 이런 최고 선수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게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강한 승부근성과 실력을 가졌으며 스타 기질이 있는 선수다. 이런 선수들은 미리 NBA로 데리고 와서 경험을 쌓아줘야 한다. 그는 거품이 아니다. 그가 거품이 아니라는 건 그의 현재 경력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유럽의 청소년 대회에서 기본적으로 2~3살 많은 선수들과 플레이를 하고 있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18살 때 이미 성인 국가대표의 꿈을 이뤘다. 코포넨이 언제 드래프트에 나오든지 우리는 그를 꼭 뽑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야말로 선수보는 눈도 그의 선수시절만큼이나 '전설'급인 웨스트의 찬사를 받은 코포넨은 더욱 더 고무되어 있었다. '세상에 내가 웨스트의 인정을 받다니'라며 말이다. 티비에서나 보던 영웅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코포넨은 혼카의 상승세 역시 이끌어 낸다.

2006-07 핀란드 리그 시즌은 코포넨에게 상당히 큰 의미가 있었다. 먼저 선발로 발탁됐고, 조금씩 그의 잠재력이 리그에서 인정을 받던 시절이며 그의 소속팀 혼카가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코포넨은 06-07시즌 라티(Lahti)와 Pyrinto전에서 각각 28점 10어시스트, 22점 10어시스트로 최고의 플레이를 펼쳤고, 정규시즌에서는 평균 12.4점, 2.5리바운드, 4.1어시스트의 활약을 선보였다. 또한 플레이오프 11경기동안 평균 12.8점, 2.2리바운드, 2.3어시스트로 활약을 하면서 팀의 리딩가드뿐 아니라 핀란드 최고의 포인트가드 칭호를 받을 정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와중에 2007년 미국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라왔고 바로 '훕 서미트(Hoop Summit)' 초청장이었다. 2006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유럽 U-20대회에서의 활약이 수많은 NBA 스카우터들과 유럽리그 스카우터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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