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COLUMNS/MINWOOK 2008. 12. 7. 18:09

페트리 코포넨 스토리(下)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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훕 서미트(Hoop Summit)는 전통적으로 많은 스타들을 배출했다. 이 훕 서미트는 NBA 스카우터들뿐 아니라, 유럽 리그 스카우터들까지 와서 볼 정도로 그 관심이 대단하다. 미국 내 몇몇 골수 NBA 농구팬들은 이 “미래 스타들의 향연”을 보기 위해 멀리서 올 정도로 그 열기는 매우 뜨겁다.

O.J. 메이요, 마이클 비즐리, 데릭 로즈, 제리드 베일리스. 이번 2008년 NBA 드래프트에서 ‘스타급 대접‘을 받았던 선수들이 당시 미국 팀의 선수들로 나왔다. 또한 놀란 스미스, 카일 싱글러 등 당시 고교 최고의 레벨로 평가받았던 선수들도 참가한 바 있다.

월드 팀에서 가장 주목했던 선수는 니콜라스 바텀이었다. 바텀은 이미 수많은 유럽의 유소년 대회와 그리고 프랑스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선수였고, 사실 이 당시 바텀 외에 이스라엘 출신의 포워드 옴리 캐스피(Omar Casspi), 그리고 아진샤(Ajinca)정도가 이목을 끌었다. 코포넨은 분명 촉망받는 유망주였지만 바텀 정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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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리그의 소속팀 혼카 플레이보이즈(Honka Playboys)는 정규시중 중에 사실상 팀의 주전 리딩 가드이자 에이스 역할까지 했던 코포넨의 비중을 알면서도 그의 NBA 꿈을 위해 훕 서미트 참가를 허락해주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미국으로 날아간 코포넨은 시차 적응에 힘든 모습을 보이면서 최악의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월드 팀 연습 때부터 최선을 다한다. 코포넨의 플레이를 본 NBA 스카우터들은 하프코트 오펜스와 런앤건 게임에서 모두 강점을 보이면서 자신보다 크고 격렬한 선수가 있어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는 그를 ‘존 스탁턴‘에 비유했다. 스탁턴의 근성과 투지는 이미 많은 팬들이 잘 알거라 생각한다.

코포넨은 훕 서미트 본 게임에서 불안한 볼 운반과 미숙한 모습을 많이 보였지만 특유의 센스를 발휘하며 7득점, 6어시스트, 1실책의 기록을 만들었다. 많은 NBA 스카우터들은 분명 잠재력은 있는 선수라면서 차기 NBA 드래프트에 나온다면 1라운드에 뽑힐 만한 선수로 페트리 코포넨을 보드에 올려놓았다.

결국 코포넨은 내친 김에 2007년 NBA 드래프트 참가를 결정한다. 사실 이 NBA 드래프트 참가 결정은 페트리의 순간적인 판단이었다. ‘훕 서미트로 잠재력을 인정받았으니 이 기회에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나를 시험해보자’ 이런 생각으로 페트리는 NBA 드래프트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당시 코포넨에게 관심을 갖던 NBA 팀들은 멤피스 그리즐리스, 세크라멘토 킹스, 샌안토니오 스퍼스, 그리고 포틀랜드 블레이저스가 있었다.

멤피스 그리즐리스는 전 단장이었던 제리 웨스트가 스카우팅 목록에 페트리 코포넨을 올려놓았고, 새로 취임한 크리스 월러스 역시 코포넨에게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웨스트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가능성이 큰데, 월러스도 웨스트처럼 핀란드로 직접 날아가 코포넨의 경기 비디오 테잎을 가지고 올 정도로 코포넨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아마 2라운드쯤으로 생각했을 것이고 세크라멘토나 피닉스, 샌안토니오도 코포넨의 모습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워크아웃을 갖기도 했다. 이 팀들은 모두 백업 포인트가드가 필요한 팀이었고, 유럽 선수들에게도 비교적 우호적인 구단들이라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특히 유럽 유망주들에 대해 관심이 남달랐던 포틀랜드가 그러했다. 조엘 프리챠드와 네이트 맥밀란은 코포넨를 사실상 1라운드에서 뽑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프리챠드는 제리 웨스트와 마찬가지로 포틀랜드의 스카우터들을 유럽에 배치했기 때문에 코포넨의 활약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프리챠드는 그의 지인들에게 “코포넨은 이번 드래프트의 최고의 유망주”라는 말까지 하면서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코포넨은 후에 자신이 1라운드에서 뽑히기는 힘들 거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7년 6월 29일, 뉴욕에서 열린 NBA 드래프트에서 그는 1라운드 30번. 마지막 1라운드 지명자로 필라델피아 76ers에 뽑히고 나서 바로  유망주 군단 포틀랜드로 트레이드됐다.

수많은 미국의 농구팬들은 훕 서미트에서 페트리 코포넨이 뛰기는 했었지만 그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았다. 많은 팬들에게 생소했던 것이다. 당시 1라운드에 뽑힌 마르코 벨리넬리, 루디 페르난데스는 유럽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어린 나이임에도 팀의 에이스였다. 국제 대회에서의 위상이 상당히 높은 선수들이라 어느 정도의 정보가 있어 알려졌지만 코포넨이란 이름은 물음표가 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코포넨이 몸담고 있던 핀란드 리그가 다른 나라 리그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한편, 핀란드가 농구 강국의 대열에 서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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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19세의 휜칠한 미소년은 포틀랜드의 유니폼을 입으면서 2007년 섬머리그 출전도 감행했다. 당시 아주 큰 활약은 아니었지만 남다른 패싱 감각과 센스, 그리고 노련한 리딩을 잠깐 잠깐씩 보여주었는데, 당시 프리챠드의 평이 매우 흥미롭다.

“그는 커크 하인릭과 같은 스타일의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하인릭과 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고, 괜찮은 볼핸들링, 그리고 공격성과 패싱력을 모두 가지고 있다. 수비가 문제라고 하는데, 그는 커크 하인릭과 같이 1, 2번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수비 잠재력을 가진 선수다. 수비 자세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매우 좋다. 다른 코치들도 코포넨의 수비 잠재력이 좋다는 내 생각에 동의한다. 당장 수비가 문제라고 해도 두고 보라. 그는 NBA에서 잘 성장하면 하인릭과 같은 최고의 수비수가 될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페트리 코포넨은 2007년 섬머리그가 끝나고 유럽에서 더 경험을 쌓기 위해 다시 핀란드로 날아간다. 핀란드 농구계는 코포넨의 기대 이상의 성과에 크게 고무되어 있었고, 핀란드 국민들 역시 그에게 많은 찬사를 보내면서 핀란드 농구에도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핀란드 리그는 이미 리그 시작 전부터 ‘코포넨 효과‘에 휩싸였다.

코포넨은 2007-08시즌 팀의 슈팅가드를 담당하였다. 포인트가드로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던 지난 시즌과 달리 07~08시즌은 팀에 포인트가드가 영입이 되면서 보직이동이 된 것이다. 사실 슈팅가드로 뛰는 이유에는 NBA 진출을 위한 포석이라는 말도 많았다. 어쨌든 코포넨은 지난 시즌 핀란드 리그 최고의 ‘리딩가드‘라는 찬사에 이어 최고의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라는 수식어까지 등에 업었다. 그의 소속팀 혼카는 전 해에 이어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우승을 일궈내면서 2연패에 성공한다. 코포넨은 파이널 도중 부상을 입어 끝까지 뛰지는 못했지만 계속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정규 시즌에는 19.4득점, 4.0어시스트, 3.9리바운드, 1.8스틸로 포인트가드치고 상당히 준수한 성적을 냈다. 2점 슛은 56.4%, 3점 슛은 42.6%,자유투 성공률은 78.6%의 성공률을 보여주었다. 또한 소속팀을 2연속 우승으로 이끄는데 일등공신을 담당하기도 했다.

라펜란타(Team Lappeenranta)와의 준결승(4강전) 2차전에서 오른쪽 손가락 부상을 당해 파이널 출장이 불투명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작년과 비교 불가일 정도로 발전된 모습을 보이면서 평균 18.0득점, 2.5리바운드, 5.2어시스트, 2.3스틸의 엄청난 기록지를 작성하고 있다. 2점 슛 성공률은 57.6%, 3점 슛 성공률은 48.7%, 자유투 성공률은 작년에 비해 12%정도 감소됐다. 그리고 MVP 후보에 오르면서 바야흐로 코포넨은 최고의 핀란드 선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페트리는 영광스러운 핀란드 리그에서의 활약을 접어두고 또 하나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2008년 NBA 리그 입성이다. 그는 이제 자신이 준비되었다고 믿는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지금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신이 07-08시즌 핀란드 리그를 준비하면서 수없이 연습했던 볼핸들링과 수비연습을 재개했고 섬머리그 참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수많은 핀란드 국민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말이다.

2008년 섬머리그에서 코포넨은 제리드 베일리스와 함께 백코트를 이루었다. 이미 둘은 2007년 훕 서미트에서 만난 경험이 있어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실력도 언어도 확실히 2007년도에 비해 업그레이드 되어 돌아온 코포넨은 첫 경기부터 베일리스와 함께 두각을 나타내며 프리챠드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섬머리그 내내 코포넨은 포틀랜드에서 베일리스, 바텀과 함께 가장 주목받는 선수로 각광을 받았다.

13.2득점, 3.4어시스트, 2.6리바운드는 그가 섬머리그에서 남긴 성적표다. 볼핸들링과 수비는 분명 개선됐지만 아직 프레스에 대응하는 것이 미숙(이것은 유럽 리그와의 수비 강도 차이가 가장 크다. 경험이 쌓이면 더 나아질 것이다)하고, 슈팅의 기복이 있다는 것을 지적받았다. 때문에 이 아킬레스건은 아직까지 프리챠드와 네이트 맥밀란을 고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코포넨은 현재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의 클럽들로부터 장기계약(거의 대부분 5년 정도로 잡고 있다고 전해진다)과 함께 거액을 제시받고 있지만 올 시즌 반드시 포틀랜드의 15인 로스터에 들기를 바라고 있다. 저 유명 클럽들의 콜은 일단 포틀랜드의 답을 들을 때까지 거절한 상태다. 혼카와의 계약은 올 시즌으로 끝날 것이다.

“이번에 포틀랜드의 15인 로스터에 들지 못한다면 유럽리그의 팀들 중 한 팀과 장기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크다. 유럽 리그가 현재 더 많은 돈을 NBA보다 줄 수 있고, 계약 조건이 좋을지 몰라도 지금 당장은 NBA 입성을 원한다. 유럽 리그의 콜들을 모두 거절하고 미국으로 왔다. NBA는 저의 평생 꿈이였고, 너무 어렸을 때부터 큰돈을 만지면서 뛰고 싶지 않다. 지금이 아니면 NBA 입성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른다. 단 1분을 뛰어도 좋다. 25세쯤 됐을 때는 이 곳 NBA에 다시 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페트리의 말이다.

개인적으로 유럽리그에 가서 경험을 더 쌓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이번이 코포넨의 마지막 NBA 입성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코포넨의 견해에도 상당부분 동의한다. 오히려 트레이드를 시도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코포넨의 몸값은 사실상 현재 유럽 리그의 수많은 빅 리그 팀들에 의해 엄청나게 폭등 중이고 미화로 4백만 달러까지 줄 수 있다는 구단까지 나타날 정도다. 대부분의 팀들이 장기계약을 요구하고 있지만 코포넨은 모두 거절한 상태다. 그가 농구를 시작하던 꼬마였을 때부터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 꿈이 당장 중요하다는 것이고, 그 정도로 코포넨의 NBA 입성에 대한 욕망은 강하다.

돈으로 농구하고 싶지 않다는 20세의 핀란드 청년. 조국에서 외면 받는 종목이지만 마이클 조던, 존 스탁턴, 제이슨 키드, 스티브 내쉬같은 스타 선수들을 보면서 NBA에 대한 꿈을 키워온 NBA 키드다. 물론 포틀랜드와 계약을 맺을 수 있을지는 장담키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필자는 코포넨의 돈보다는 자신의 순수한 열정을 이루려는 모습을 보면서 이 20세 청년이 꼭 NBA 입성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돈을 쫓기 보다는 자신의 꿈을 위해 운동을 하는 선수에게는 어떻게 끌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수많은 NBA 팬들도 코포넨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주기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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