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8/12/1942 바스트랍, 루이지애나 키: 6-8 (203cm) 몸무게: 215 lbs.(98kg) 학력: 사우던 LA 대학교 포지션: 가드/포워드 드래프트: 1965년 4라운드 (7번픽) 뉴욕 닉스 주요수상: 올 NBA 2nd팀 2회 선정 (1971~1972) ... NBA 2nd 수비팀 3회 선정 (1972, 1974~1975) ... NBA 올스타 3회 선정 (1971~1973)
●통산 성적
시즌
팀
경기
시간
FG%
3P%
FT%
REB
AST
STL
BLK
TO
PF
PTS
66/67
CIN
66
16.3
.429
-
.633
3.9
0.7
-
-
-
2.3
6.7
67/68
CIN
72
14.8
.424
-
.684
2.9
0.8
-
-
-
2.0
6.4
68/69
CHI
49
11.1
.397
-
.740
3.1
0.3
-
-
-
1.2
5.9
69/70
CHI
82
38.1
.466
-
.842
8.7
1.8
-
-
-
3.2
21.0
70/71
CHI
81
43.0
.447
-
.829
8.5
2.3
-
-
-
3.2
25.2
71/72
CHI
79
39.3
.442
-
.784
6.6
1.6
-
-
-
3.0
25.8
72/73
CHI
82
37.0
.431
-
.824
6.5
1.5
-
-
-
2.9
23.1
73/74
CHI
82
40.1
.417
-
.818
6.0
1.6
1.0
0.3
-
2.7
21.8
74/75
CHI
61
39.4
.429
-
.830
6.3
1.7
1.0
0.2
-
3.4
22.0
75/76
CHI
76
37.1
.390
-
.801
6.7
1.9
0.8
0.1
-
3.1
19.1
76/77
SEA
59
19.9
.379
-
.826
3.4
0.8
0.4
0.1
-
2.0
7.3
총합
-
789
31.8
.429
-
.805
5.9
1.4
0.8
0.2
-
2.7
17.6
● Did you know?
● 밥 러브 전기 (Biograph)
시카고 불스의 초대 스타 중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이 밥 러브다. 러브는 왼손과 오른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아는 전천후 포워드로 기억된다.
러브는 루이지애나의 작은 시골 마을인 바스트랍의 모어하우스 고교(훗날 폐교)에서 스타 플레이어로 명성을 날렸다. 이 후 사우던 대학교에 입학한 러브는 1965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4라운드 7번픽으로 간신히 빅리그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신시내티 로얄스에 러브가 설 자리는 없었다. NBA 진출에 대한 기쁨도 잠시, 결국 러브는 EBL(Eastern Basketball League)에서 프로 데뷔를 하게 된다.
EBL에서 보낸 첫 번째 시즌은 성공적이었다. 러브는 경기 당 25점을 올리며 EBL 올해의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자신감을 얻은 러브는 다시 한 번 신시내티와 트라이아웃을 가지며 두 시즌 동안 키-식스맨으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하지만 러브의 인생 최고의 전환점은 다시 한 번 찾아왔다. 1968년 확장드래프트를 통해 러브를 지명한 밀워키 벅스는, 곧바로 러브를 시카고 불스로 트레이드 하게 된다. 경기 당 20분도 못뛰던 러브는 졸지에 풀타임을 보장 받았다.
고향: 02/02/1940 벤튼 하보, 미시건 키: 6-8 (203cm) 몸무게: 212 lbs.(96kg) 학력: 브래들리 대학교 포지션: 포워드 드래프트: 1962년 2라운드 (5번픽) 시라큐스 내셔널스 주요수상: NBA 우승 1회 (1967) ... NBA 올스타 7회 선정 (1964, 1966~1967, 1970~1971, 1973~1974) ... NBA 1st 루키팀 선정 (1963)
고향: 3/28/1942 맥리안스보로, 일리노이스 현직: 유타 재즈 감독 키: 6-5 (195cm) 몸무게: 195 lbs.(98kg) 학력: 에반스빌 대학교 포지션: 가드/포워드 드래프트: 1965년 1라운드 (4번픽) 시카고 불스 주요수상: NBA 올스타 2회 선정 (1967, 1969) ... NBA 1st 수비팀 4회 선정 (1969, 1972, 1974~1975) ... NBA 2nd 수비팀 2회 선정 (1970~1971)
●통산 성적
시즌
팀
경기
시간
FG%
3P%
FT%
REB
AST
STL
BLK
TO
PF
PTS
65/66
BAL
59
16.1
.415
-
.705
3.9
1.9
-
-
-
3.0
5.7
66/67
CHI
80
36.8
.432
-
.796
9.1
2.1
-
-
-
3.7
17.4
67/68
CHI
77
31.9
.385
-
.749
7.7
3.0
-
-
-
3.8
13.3
68/69
CHI
78
37.7
.417
-
.745
7.9
3.5
-
-
-
4.0
16.8
69/70
CHI
53
34.4
.421
-
.651
7.0
3.1
-
-
-
3.4
15.6
70/71
CHI
80
39.3
.441
-
.715
8.8
3.5
-
-
-
3.6
18.3
71/72
CHI
82
37.0
.444
-
.660
8.4
2.6
-
-
-
3.8
16.2
72/73
CHI
69
35.0
.411
-
.707
6.9
2.2
-
-
-
3.4
10.1
73/74
CHI
77
37.1
.447
-
.711
7.2
1.9
2.4
0.1
-
3.5
13.2
74/75
CHI
78
33.0
.439
-
.748
6.9
2.1
2.2
0.2
-
3.4
12.2
75/76
CHI
22
28.0
.400
-
.705
5.3
1.0
1.2
0.2
-
3.5
10.1
총합
-
755
34.1
.453
-
.722
7.4
2.5
2.2
0.2
-
3.6
14.0
*코치경력
시즌
팀
경기
승
패
승률
결과
PG
PW
PL
결과
79/80
CHI
82
30
52
.366
디비전 3위
-
-
-
P.O 진출실패
80/81
CHI
82
45
37
.549
디비전 2위
6
2
4
지구준결승 탈락
81/82
CHI
51
19
31
.373
해고
-
-
-
-
88/89
UTA
82
40
25
.615
디비전 1위
3
0
3
1라운드 탈락
89/90
UTA
82
55
27
.671
디비전 2위
5
2
3
1라운드 탈락
90/91
UTA
82
54
28
.659
디비전 2위
9
4
5
지구준결승 탈락
91/92
UTA
82
55
27
.671
디비전 1위
16
9
7
지구결승 탈락
92/93
UTA
82
47
35
.573
디비전 3위
5
2
3
1라운드 탈락
93/94
UTA
82
53
29
.646
디비전 3위
16
8
8
지구결승 탈락
94/95
UTA
82
60
22
.732
디비전 2위
5
2
3
1라운드 탈락
95/96
UTA
82
55
27
.671
디비전 2위
18
10
8
지구결승 탈락
96/97
UTA
82
64
18
.780
디비전 1위
20
13
7
결승 탈락
97/98
UTA
82
62
20
.756
디비전 1위
20
13
7
결승 탈락
98/99
UTA
50
37
13
.740
디비전 2위
11
5
6
지구준결승 탈락
99/00
UTA
82
55
27
.671
디비전 3위
10
4
6
지구준결승 탈락
00/01
UTA
82
53
29
.646
디비전 3위
5
2
3
1라운드 탈락
01/02
UTA
82
44
38
.537
디비전 4위
4
1
3
1라운드 탈락
02/03
UTA
82
47
35
.573
디비전 4위
5
1
4
1라운드 탈락
03/04
UTA
82
42
40
.512
디비전 7위
-
-
-
P.O 진출실패
04/05
UTA
82
26
56
.317
디비전 5위
-
-
-
P.O 진출실패
05/06
UTA
82
41
41
.500
디비전 2위
-
-
-
P.O 진출실패
06/07
UTA
82
51
31
.622
디비전 1위
17
9
8
지구결승 탈락
07/08
UTA
82
54
28
.659
디비전 1위
12
6
6
지구준결승 탈락
08/09
UTA
82
48
34
.585
디비전 3위
5
1
4
1라운드 탈락
총합
1883
1136
747
.603
-
187
93
94
-
● Did you know?
제리 슬로안은 고교시절부터 사귀어 온 바비 슬로안과 41세가 되던 해에 결혼을 하였다. 이들 부부는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었다 ... 6년간 유방암으로 투병하던 아내 바비 슬로안은 결국 2004년 6월, 췌장암으로 유명을 달리하였다 ... 첫 번째 아내를 잃은 슬로안은 2006년, 타미 제숍이란 여인과 재혼하였다. 제숍은 솔트레이크 시티의 레스토랑에 음식공급을 담당하는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 제리 슬로안 전기 (Biograph)
제리 슬로언하면 떠오르는 것은 오랜 세월 유타 재즈와 함께 한 훌륭한 코치 경력이다. 셀수도 없는 승리와 16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등의 빛나는 업적들이 이를 방증해준다.
2008-09시즌까지 기록한 통산 승수는 NBA 역대 코치 4위에 올라있고, 한 팀에서 통산 1000승을 달성한 인물은 오직 슬로안뿐이다. 또한 10시즌 동안 50승 이상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거장 필 잭슨과 팻 라일리, 그리고 슬로안만이 보유한 대기록이다.
그리고 2008년 11월 7일, 슬로안은 마침내 NBA 역사상 한 구단에 가장 오래 몸담은 코치로 이름을 올렸다. 이는 비단 NBA뿐 아니라 미국 프로스포츠 역사에서도 1위다. 종전 기록은 미 프로야구 MLB의 미네소타 트윈스 감독으로 활약했던 톰 켈리였다. (전 세계 최장 기록은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다. 퍼거슨은 1986년부터 현재까지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선수경력도 훌륭하게 보냈지만, 빛나는 그의 코치경력은 결국 메사추세츠 스프링필드 입성으로 이어졌다. 슬로안은 그의 오랜 제자 존 스탁튼과 함께 2009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그야 말로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Player_ 슬로안의 전설은 일리노이스주에 소재한 맥리안스보로라는 작은 동네에서 시작됐다.
유년시절부터 남다른 농구실력을 보유했던 슬로안은 1960년 주 최고의 고교선수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일리노이스 대학에 입학을 했던 슬로안은 향수병으로 학교를 그만두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의 가족이 인디애나로 이주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슬로안은 석유 생산일로 시간을 보냈지만 시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인디애나에 소재한 에반스빌 대학으로 전학을 하며 생기를 되찾은 것이다. 슬로안은 2시즌을 NCAA 칼리지 디비전 토너먼트(現 디비전Ⅱ)로 이끌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볼티모어 불리츠는 1964년 3라운드 드래프트권을 행사하길 원했지만, 학교 잔류의사를 원했던 슬로언의 뜻을 굽히지 못했다.
슬로안의 결정은 옳았다. 이듬 해 볼티모어는 다시 한 번 슬로안에게 드래프트 픽을 행사하였다. 1라운드 4번 픽으로 1년 전보다 그의 가치는 수직상승하여 있었다.
하지만 볼티모어와의 인연은 단 한 시즌으로 끝났다. 가슴 속에서 일리노이의 추억과 열정이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1966년 시카고 불스의 확장 드래프트에서 첫 번째로 지명되는 행운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그에게 "원조 황소(The Original Bull)"라는 별명을 지어주며 환영했다.
슬로안의 플레이에는 끈기와 투지가 담겨져 있었다. 밥 러브와 채트 워커 등 비교적 화려했던 불스 스코어러 1세대들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슬로언. 시카고의 블루칼라 워커 시민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냉철한 승부사 기질은 그의 감독시절까지 이어졌음은 물론이요, 데니스 로드맨 이 전에 가장 많이 코트에서 넘어진 이도 바로 슬로안이었다.
슬로안의 열정은 올 NBA 1st 수비팀 선정 4회, 2nd 수비팀 2회로 입증됐다. 또 한 역대 NBA 평균 스틸 10위에도 여전히 그의 이름이 올라있다. 또한 가드로서 그리 크다고 할 수 없는 신장으로 리바운드를 곧잘 잡아냈다. 시카고에서 보낸 첫 해에는 경기 당 무려 9.1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냈고, 통산 리바운드는 무려 7.4개에 달한다.
슬로안은 조던 세대 이전에 디비전 타이틀과 수 차례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끈 장본인이다. 조던이 활동했던 시대 이전에는 시카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프랜차이즈 선수로 기억된다.
비록 계속된 무릎 부상으로 선수경력을 일찍 마쳤지만, 코치로서 농구경력을 이어갔다. 구단은 시카고에 그가 미친 영향력에 큰 기대를 걸었으며, 프랜차이즈 최초로 영구결번을 결정하였다. 하지만 시카고에서의 감독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Coach_ 슬로안은 NBA 은퇴 후, 모교 에반스빌 대학교의 감독직을 수락하며 지도자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대학 은사인 애러드 맥어챈 감독의 제안이었기에 수락했지만, 슬로안은 단 5일만에 이를 철회하였다. 대학농구 감독보다는 NBA의 밑바닥부터 경험을 쌓겠다는 각오였다.
시카고 불스에서 그가 담당한 첫 번째 보직은 스카우터였다. 1년만에 어시스턴트 코치로 승격된 슬로안은 1979년, 마침내 헤드코치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시카고는 1970년대 중흥기를 이끌었던 밥 러브와 놈 반 리어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지면서, 리빌딩에 접어든 중요한 시점에 있었다.
ABA 최고의 센터로 군림했던 아티스 길모어와 신예 레지 시어스를 영입하며 재도약을 꿈꿨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두 번째 시즌에는 컨퍼런스 준결승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지만, 세 번째 시즌에서는 연패를 거듭하며 결국 해고통보를 받았다.
이는 슬로안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준 밑거름이 되었다. 해고 후에 유타 재즈의 스카우터로 한 시즌을 보낸 슬로안은 1985년 어시스턴트 코치로 돌아오기 전까지 NBA의 대표 2부 리그로 꼽히던 CBA의 에반스빌 썬더 감독을 지내며 재기를 꿈꿨다.
1988년 프랭크 레이든 감독이 퇴임하면서, 슬로안의 오랜 여정이 시작되었다. 해고의 아픔을 겪었던 시카고 감독 시절의 아픔은 빠르게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사상 최고의 찰떡콤비, 칼 말론과 존 스탁튼 콤비는 슬로안의 지휘봉에 맞춰 아름다운 선율을 자랑했다.
6번의 디비전 우승, 50승 시즌 10회 달성 등 수많은 업적을 세웠지만, 그가 이루지 못한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우승이다. 유타 재즈는 1997년과 1998년, 두 차례 파이널 무대에 올랐지만 모두 접전 끝에 석패하였다. 운명의 장난인지 상대는 젊은 날 그의 모든 것을 바쳤던 시카고 불스였다.
고향: 9/1/1935 필라델피아, 펜실베니아 사망: 2/19/2001 키: 6-0 (182cm) 몸무게: 185 lbs.(88kg) 학력: 템플 대학교 포지션: 가드 드래프트: 1958년 지역연고 지명 필라델피아 워리어스 주요수상: NBA 올스타 4회 선정 (1963~1964, 1966~1967)
●통산 성적
시즌
팀
경기
시간
FG%
3P%
FT%
REB
AST
STL
BLK
TO
PF
PTS
58/59
PHW
45
34.8
.394
-
.545
6.2
5.8
-
-
-
2.9
10.7
59/60
PHW
68
36.5
.389
-
.613
5.8
7.1
-
-
-
2.9
11.6
60/61
PHW
78
37.2
.386
-
.687
6.5
8.7
-
-
-
3.4
12.8
61/62
PHW
80
33.1
.356
-
.665
4.4
8.0
-
-
-
3.9
8.2
62/63
SFW
79
41.1
.387
-
.727
5.0
10.4
-
-
-
3.7
13.9
63/64
SFW
79
34.1
.365
-
.707
4.2
7.0
-
-
-
3.1
11.0
64/65
SFW
79
34.2
.380
-
.686
4.1
7.2
-
-
-
3.2
14.6
65/66
SFW
79
36.7
.373
-
.727
5.3
10.7
-
-
-
3.1
18.6
66/67
CHI
81
37.8
.391
-
.806
4.3
11.2
-
-
-
3.0
18.0
67/68
CIN
79
19.6
.347
-
.805
1.9
4.8
-
-
-
2.1
5.1
68/69
MIL
81
26.6
.377
-
.793
2.8
6.9
-
-
-
2.6
10.3
69/70
MIL
64
11.7
.356
-
.744
1.2
3.3
-
-
-
1.1
3.2
총합
-
892
32.1
.378
-
.721
4.3
7.8
-
-
-
2.9
11.7
● 거이 로저스 전기 (Biograph)
거이 로저스는 60년대 초,중반 리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통산 어시스트왕 2회, 6차례 리그 어시스트2위의 기록이 이를 잘 뒷 받침 해 준다.
로저스는 필라델피아 워리어스와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 시절, 전설적인 센터 윌트 체임벌린과 다섯 시즌을 보냈다. 이제는 신화가 되버린 체임벌린의 100점 기록이 바로 이 로저스의 손에서 작성됐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체임벌린의 괴력이 받춰주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말이다.
로저스는 당시 그 경기에서 무려 20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1962년 3월 14일, 이 역사적인 경기에서 스포팅 뉴스를 통하여 체임벌린은 "로저스의 활약을 잊지 못할 것"이라며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로저스는 "그 날보다 더 어시스트를 쉽게 올릴 수 있는 경기는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공을 잡는 족족 모두 체임벌린에게 주었다"며 화답했다. 그리고 익살스러운 어조로 체임벌린에게 농을 던졌다. "이봐, 난 남은 생을 정신적 충격으로 살아가야 할 것 같네. 난 오늘 8개의 필드골을 모두 성공시켰는데 아무도 언급을 않더군"
특히 1962-63시즌은 여러가지로 로저스에게 기념비적인 한 해로 남았다. 생애 첫 어시스트왕과 올스타 선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1963년 3월 14일, 보스턴의 전설적인 가드 밥 쿠지가 보유하고 있던 28개의 어시스트와 타이를 이루었다. 이 기록은 훗날 뉴저지 네츠의 케빈 포터가 29어시스트를 기록하기 전까지, 무려 15년동안 봉인되었다.
이듬해 처음으로 파이널 무대를 밟은 로저스는 왕조 보스턴 셀틱스에게 패하며 생애 첫 우승의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1966년에 실시된 신생팀 시카고 불스의 확장드래프트로 보금자리를 옮기게 된다.
NBA 최고의 블록버스터 트레이드 중 하나로 꼽히는 체임벌린의 필라델피아 이적으로 생기를 잃었던 차에 커리어 최고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이다.
또 한 명의 확장드래프티 밥 부저와 나란히 팀 내 득점 1위를 기록한 로저스는 생애 2번째 어시스트왕을 비롯하여 4번째 올스타까지 선정되는 등 다시 한 번 비상하였다. 로저스가 시카고 창단 첫 해에 작성한 908개의 어시스트는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프랜차이즈 기록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승승장구 할 것 같던 로저스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967-68시즌에 돌입하며 시카고와의 인연은 단 4경기로 끝났기 때문이다. 신시내티 로얄스로 트레이드 된 로저스는 순식간에 벤치맨으로 전락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시내티에는 전설의 트리플더블러 오스카 로벗슨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
로저스의 말년은 지독하게도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확장 드래프트로 밀워키 벅스에 새 보금자리를 찾은 로저스는, 시카고에서 한솥밥을 먹은 플린 로빈슨에게 선발자리를 내주며 초라하게 커리어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밀워키는 이듬해 로저스 없이 루 앨신더(카림 압둘자바)와 로벗슨을 앞세워 구단 첫 우승을 일궈냈다. 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