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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이하 한국시간) 전 NBA 스타였던 케빈 덕워쓰(44, 213cm)가 4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두 차례 올스타에 선발되며 대부분의 전성기를 포틀랜드 블레이저스에서 보낸 견실한 센터였다. 링컨 주 보안관 당국이 덕워쓰의 사망을 발표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덕워쓰는 평소 포틀랜드가 주관하는 무료 어린이 농구클리닉에 참여해왔으며 지역 방송국인 FOX12의 웹사이트 리포터로 활약하는 등 왕성한 코트 밖 활동을 이어와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1986년 드래프트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의해 2라운드 지명을 받은 덕워쓰는 곧바로 포틀랜드에 트레이드 됐다. 주전 센터 샘 보위의 부상으로 자리를 메운 스티브 존슨을 보좌하며 첫 시즌을 마친 덕워쓰는 이듬해 보위의 부상이 재발하며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불과 1년 만에 주전 자리를 차지한 덕워쓰는 경기당 15.8점과 7.4리바운드로 리그에서 가장 기량이 향상하는 선수에게 부여하는 MIP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후 덕워쓰는 ‘블루컬러 워커‘ 벅 윌리엄스와 제롬 커시의 가세로 강력한 프론트 코트를 구축하는 한편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테리 포터가 버티는 백코트와 함께 서부지구의 신흥강호로 떠오른 포틀랜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유럽 최고의 가드 드라젠 페트로비치와 헤드밴드 유행을 몰고 온 클리포드 로빈슨의 데뷔로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게 된 포틀랜드는 1989-90시즌과 1991-92시즌 파이널에 올랐지만 ’배드보이즈’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의 아성을 넘지 못하며 해체됐다.

1992-93시즌 종료후 덕워쓰는 워싱턴 불리츠(現 워싱턴 위저드)의 하비 그랜트와 트레이드를 통해 새둥지를 틀었지만 1995년 밀워키 벅스로 전격 이적하며 방황의 시작을 알렸다. 비대한 체중으로 야기된 잔부상으로 이미 전성기의 기량은 잃은 뒤였다. 결국 1996-97시즌 LA 클리퍼스를 끝으로 짧고도 아쉬운 NBA 경력에 마침표를 찍었다.

은퇴 후 고향인 오레건의 타이가드에 정착한 덕워쓰는 약혼녀와 두 명의 자녀를 유족으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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