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승자 새 챔피언 

스퍼스 팬의 입장에서 스퍼스 선수들의 경기력 위주로 되짚어 본 경기리캡입니다. 


지난 덴버 원정경기에서 주전들을 모두 벤치에 앉히고 많은 비난을 받았던 포포비치 감독. 그의 결정은 옳았습니다. 6일이라는 오래된 휴식으로 인해 주전선수들의 리듬감이나 경기감각이 악영향을 받지는 않을까 우려했던 것도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자존심과 프라이드, 시즌 후반기의 분위기 조성 등, 많은 이슈들이 걸려 있는 스퍼스의 셀틱스 원정경기는 근 일주일을 푹 쉴 수 있었던 팀 덩컨과 마누 지노빌리가 경쾌하고 가벼운 몸동작을 선보이며 허슬과 수비 면에서 맹활약, 스퍼스가 105 대 99의 귀중한 1승을 챙길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4쿼터 종료 2분 30초를 남겨 두고 양 팀이 보여준 투혼과 근성은 왜 이 두 팀이 리그 최고들 중 하나인지를 여실히 증명해 보였습니다. 가넷 (26점, 12리바운드, 4어시스트)의 2연속 야투가 들어갈 때만 해도 승운은 셀틱스 쪽으로 기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맷 보너가 멋진 런닝 플로터로 응수하면서 스퍼스는 다시 한 번 역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곧이어 터진 로져 메이슨의 삼점으로 경기를 뒤집을 수 있었습니다. 메이슨이 3점을 터뜨릴 때 기가 막힌 스크린을 서준 덩컨의 공로가 묻혀서도 안 될 것입니다.  

비록 패배는 했지만, 셀틱스 선수들도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물론 막판 레이 앨런의 실수들이 뼈아팠지만, 이런 클러치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앨런이 팀을 구해냈던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현 셀틱스는 수비 면에서 약간의 보완과 분발이 필요할 듯 싶습니다. 스퍼스는 오늘 셀틱스를 상대로 48.8%의 야투 성공률을 보였고, 삼점슛도 21개를 시도해 8개나 성공시켰습니다. 2쿼터와 4쿼터, 두 쿼터에만 69득점을 했습니다. 스퍼스의 공격 실행력도 좋았으나, 작년 플레이오프 때 보여준 수비력이 셀틱스에게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스탯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은 시즌이 흘러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향상될 수 있는 부분이고, 챔피언 보스턴 셀틱스는 충분히 작년 플레이오프 때의 레벨로 팀전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팀입니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_
오늘 포포비치 감독의 수비전략은 훌륭했습니다. 론도와 셀틱스 빅맨들이 스퍼스 진영을 유린하지 못 하도록 경기 초반부터 그들의 타이밍과 리듬을 빼았는 수비를 지시했고, 피어스나 앨런이 득점을 할 만한 위치에서 공을 잡으면 시기적절하게 협력수비가 붙도록 지시했습니다. 이 수비전략은 셀틱스로 하여금 페인트존 바깥에서 점프슛만을 쏘도록 하는 효과를 가져 왔고, 더불어 유연한 슈팅리듬을 가져가지 못 하도록 하는 결과까지 파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셀틱스는 오늘 11개의 3점을 시도해 3개 밖에 성공시키지 못하는 부진을 보였습니다. 공격에 있어서도, 평상시보다 약간 빠른 타이밍에 슛을 쏘도록 지시함으로써, 피지컬한 수비가 강점인 셀틱스가 수비진영을 제대로 갖출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 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선수들 로테이션에 있어서도 어느 한 선수도 40분을 뛰지 못 하도록 출장시간을 잘 배분했습니다. 그러나 보웬이나 유도카의 출장시간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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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덩컨_
(39분 출장, 23점, 13리바운드, 5어시스트)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 스퍼스 승리의 중심에는 팀의 대들보, 팀 덩컨이 있었습니다. 후반 들어서 포스트업 무브가 약간 주춤하는 기색이 있었지만, 경기 초반부터 클러치 상황까지 덩컨의 제공력과 장악력은 독야청청 빛이 났습니다. 페인트존 수비에서는 뛰어났지만, 미드레인지 점퍼를 쏘는 셀틱스 선수들에 대한 헬핑 디펜스가 예전같지는 못 했습니다. 쫓아가는 타이밍이 반의 반 박자씩 느렸다고나 할까요? 하여간 오늘 덩컨은 팀의 주장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냈습니다. 셀틱스 수비가 그토록 조여드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여유있게 자신의 슛들을 성공시키는 모습에서 타 팀원들이 많은 용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마누 지노빌리_ (31분 출장, 19점, 3리바운드, 3어시스트, 3스틸) 오래 쉬어서인지, 아니면 셀틱스 전이라 의욕이 넘쳐서였는지, 초반에 마누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1쿼터 막바지에 두 개의 슛을 성공시키면서 리듬감을 찾았고, 그 이후로는 매우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큰 경기임에도 서두르거나 무리하지 않고, 차분하게 게임이 자기에게로 올 수 있도록 기다리는 여유와 노련함이 엿보였습니다. 언제 외곽슛을 던져야 할지, 언제 돌파를 해야할 지, 언제 패스를 빼줘야 할 지, 그 결정을 완벽하게 실수없이 해냈고, 수비 면에서도 많은 칭찬을 받을 만 했습니다. 마지막에 앨런으로부터 천금같은 스틸을 해내며 얻어낸 clear path 파울, 폴 피어스를 육탄방어로 막아내는 모습, 그리고 몸을 날려 잡아내는 리바운드와 스틸 등등, 팀의 해결사로서 부족함이 없는 경기를 했습니다.

토니 파커_ (32분 출장, 7점, 7어시스트, 3-12 야투) 오늘 셀틱스가 수비에서 주안점을 둔 것은 파커의 경기리듬을 완전히 빼앗겠다는 것이었고, 그 면에서 셀틱스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파커에게 순간적으로 붙는 더블팀이나 함정수비가 처음부터 파커의 리듬감과 자신감을 모두 앗아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파커는 나름대로 플레이메이커로서 본인의 역할을 잘 해주었죠. 또 그런 수비를 받으면서도 턴오버를 한 개만 범했다는 것이 고무적이었습니다.

맷 보너_ (36분 출장, 23점, 8리바운드, 2스틸, 3-6 3점슛률) 6명의 '명예의 전당급' 선수들이 코트에 있었던 이 경기의 전반전 스폿라이트는 다름아닌 맷 보너의 몫이었습니다. 보스턴 근교 출신의 이 선수는 마치 친정집에라도 돌아온 양, 전반에만 3점슛 3개를 포함, 16점을 쓸어 담았습니다. 단순히 3점 뿐만 아니라, 수비가 들러 붙으면 마치 마누 지노빌리처럼 골밑으로 돌진해 들어가 레이업이나 플로터를 성공시키기도 했습니다. 웬만한 자신감이 없다면 이런 플레이는 하기 힘든데.... 결과적으로, 보너의 이러한 플레이는 보스턴 골밑수비의 핵인 가넷을 외곽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보너가 노비츠키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경기 종료 1분을 남겨두고, 가넷이 두 개의 슛을 성공시키며 셀틱스가 승기를 잡았을 때, 맞불을 놓았던 선수도 보너였지요. 주로 4쿼터에는 '투명인간'이 되어 버리던 선수가 보너였음을 감안해 볼 때, 오늘의 이 클러치 슛은 앞으로의 보너의 경기력에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로져 메이슨_ (31분 출장, 11점, 3리바운드, 2-6 3점슛률) 4쿼터 종료 1분을 나긴 상황까지 스퍼스 팀의 최대역적(?)은 바로 메이슨이었습니다. 슛이 안 들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수비도 안 되죠, 중요한 순간마다 잡은 공을 놓쳐대지요.... 그런데.... 대체 그 놈의 킬러 본능이란 게 뭔지... 경기 종료를 얼마 안 남기고 자신이 수비리바운드를 잡고 드리블 해 나가서 그냥 3점을 냅다 던진 것이 들어가 버렸네요? 올 시즌에 그가 성공시킨 클러치 3점이 제 기억으로만도 5개입니다. 아직 수비에서 미흡한 부분들이 많이 보이지만, 그리고 경기를 완전히 말아먹을 잠재력도 농후하지만, '제 2의 로버트 오리'라 불릴 만한 강심장과 클러치 3점 능력 하나만으로도 효용가치가 높은 선수입니다.

마이클 핀리_ (27분 출장, 7점, 2어시스트) 마지막 순간의 자유투 말고는 이렇다 할 플레이를 펼치지 못 했습니다. 공수 양 면에서 부진한 모습이었고, 몸 움직임도 느렸습니다. 핀리에게 간 27분이 보웬에게 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브루스 보웬_ (7분 출장, 무득점) 3쿼터 시작과 함께 셀틱스가 10-0 런을 가져갈 때 출격해 불을 끈 장본인입니다. 공격에서는 아무런 활약을 못 했으나, 보웬이 들어 오면서 스퍼스는 대패를 할 수도 있었던 경기를 원점으로 돌릴 수 있었습니다. 4쿼터 막판, 지노빌리가 앨런의 인바운드 패스를 스틸할 때 큰 역할을 한 선수도 보웬이었고, 마지막 피어스의 3점 시도를 에어볼로 만든 선수도 보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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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힐_
(16분 출장, 7점, 3리바운드, 3-3 야투율) 전반에는 몹시 긴장한 모습이었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디펜딩 챔피언의 홈구장이었으니, 루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지요. 그러나 그 심장떨리는 4쿼터에 투입된 힐은 '이게 정말 루키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베테랑 뺨치는 활약을 했습니다. 두 번의 버저비터를 성공시켰고, 엄청난 윙스팬과 스피드로 론도의 공격력을 둔화시켰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그가 얻은 경험은 앞으로의 플레이오프에서, 또 힐의 NBA 커리어에서 소중한 경험으로 남을 것입니다.

컷 토마스_ (19분 출장, 6점, 5리바운드) 작년 시즌과는 달리 완전히 스퍼스 시스템에 녹아든 토마스입니다. 오늘도 4쿼터 초반에 두 개의 중요한 골을 성공시켜 줬습니다. 그 중 하나는 공격 리바운드에 의한 득점이었죠. 보스턴같이 피지컬한 팀을 상대할 때 반드시 필요한 선수입니다.


맺는 글

지난 레이커스 전 승리 이후로, 가장 값지다고 할 만한 승리를 낚은 스퍼스였습니다. 특히, 작년 시즌에 두 팀 간에 벌어졌던 두 경기에서 모두 간발의 차이로 패배를 감수해야 했던 스퍼스였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시즌의 흐름상, 오늘의 승리는 앞으로 남은 로데오 원정트립은 물론, 후반기 남은 경기를 대하는 데 있어서도 팀에 많은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특히, 메이슨, 힐, 보너같이 누구도 예상치 못 했던 인물들이 치고 올라오며 빅 3의 부담을 덜어주었기에 얻어낼 수 있었던 승리여서 더더욱 값집니다.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이틀 후에 벌어질 뉴저지 넷츠와의 경기에서도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며 후반기에는 확실한 우승후보로 떠오를 스퍼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작년 시즌의 경기들과는 다르게 올 시즌의 스퍼스는 박빙의 클러치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팀이 되었습니다. 1999년에도, 2003년에도, 2005년에도, 2007년에도, 우승하던 시즌에는 이런 진흙탕 싸움의 경기 속에서 자주 살아남았던 팀이 스퍼스였음을 상기해 볼 때, 올해도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게 만드는군요.


마지막으로... 스퍼스의 플레이오프 탈락을 예고(?)하셨던 ESPN의 존 홀린저 씨에게는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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