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86년 4월 6일에 벌어졌던 당시 NBA 리그 최고의 라이벌전, 식서스 대 셀틱스의 경기를 추억해 볼까 합니다.

1960년대 러셀의 셀틱스 대 체임벌린의 식서스의 대결로 시작된 영원한 맞수 셀틱스와 식서스. 그들은 1970년대에 들어서도 데이브 코웬스, 존 하블리첵이 셀틱스를 이끌며 ABA로부터 줄리어스 어빙을 영입한 식서스와 그 유명한 라이벌 관계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1980년. 셀틱스가 드래프트한 래리 버드와 함께 라이벌 전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양 팀은 1980년대 초중반 미국 프로 스포츠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지요.

80년대 초중반의 이 두 팀 간의 대결은 당시 한국 농구대잔치 시절의 현대, 삼성 간의 라이벌 대결을 보는 듯 했습니다. 라이벌 전이 벌어지기 전 날은 선수들이 잠도 잘 못 자고 음식도 먹지 못 할 정도였다니까요.

두 팀 간의 대결은, 보스턴과 필라델피아 두 도시 간의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직장인들도, 학생들도, 이 두 팀 간의 경기를 앞두고 며칠 전부터 신경전과 탐색전을 벌였고, 경기결과에 따라 두 도시 전체의 분위기 자체가 영향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이 두 팀은 프리시즌 시범경기를 하다가도 패싸움을 벌이기가 일쑤였습니다. 1982년 10월로 기억하는데, 이 한 경기에서만 4번의 싸움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 두 팀은 이후로 몇 년 간은 시범경기에서조차 맞붙지 못 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1986년 시즌은 래리 버드의 셀틱스가 최전성기를 구가할 때였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86년의 셀틱스를 87년의 레이커스, 96년의 불스, 72년의 레이커스와 함께 역대 최고 팀의 반열에 올려 놓습니다. 버드, 맥헤일, 패리쉬, 데니스 존슨이 최절정기의 기량을 보유하고 있었고, 여기에 벤치에서 빌 월튼이 식스맨으로 출전하던 팀이었습니다.

반면, 식서스는 프로 2년차 찰스 바클리가 리그를 강타하고 있었으나, 모제스 말론과 앤드루 토니가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었고, 바비 존스와 줄리어스 어빙은 은퇴를 앞두고 있던... '지는 해'였던 팀입니다.

4월 6일. 대부분의 강팀들이 플레이오프를 준비하며 컨디션 조절에 힘쓰던 시기. 리그에서 파죽지세로 14연승을 구가하던 무적의 셀틱스가 식서스 원정경기를 왔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 경기는 단순한 정규시즌 경기가 아니었습니다. 플레이오프를 준비하며 몸을 사리는 일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라이벌 전이었습니다.

식서스도 마찬가지. 바로 전 경기에서 상대선수에게 눈을 찔리는 부상을 당해 시즌아웃된 모제스 말론 없이 셀틱스의 막강한 프런트 라인을 상대해야 했지만... 이 경기는 목숨을 걸고라도 잡아야만 했던 셀틱스 전이었습니다. 식서스는 배수의 진을 펴고 이 경기에 팀의 사활을 걸었습니다.


긴장 속에 시작된 숨막히는 경기. 당시 AFKN에서도 셀틱스 대 식서스의 라이벌전은 TV로 곧잘 생중계를 해줬기 때문에, 저는 직접 녹화를 하면서 이 긴장감 넘치는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전반전에는 맥헤일, 패리쉬의 고공 농구 대 바클리의 파워 농구 양상이었습니다. 버드와 어빙은 서로 수비를 너무 타이트하게 하다 보니 약간은 부진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전반전은 셀틱스가 48 대 47, 1점차로 앞선 가운데 마쳤습니다.

이 두 팀 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폭발을 한 것은 3쿼터가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셀틱스의 가드 데니 에인지와 식서스의 가드 쎄데일 쓰릿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났고, 성격이 있는 에인지가 쓰릿에게 다가와 욕설을 하며 쓰릿의 가슴을 밀쳤지요.

이 때, 쓰릿이 번개보다 빠른 동작으로 에인지의 턱에 정권을 날립니다. 에인지는 고개가 한 번 휙 돌아가더니 비틀비틀 거리다가 쓰러졌습니다. 그 쓰러진 에인지에게 바클리까지 달려 들었습니다.

데니 에인지.... 그는 그 날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입니다.


쓰릿이 퇴장을 당한 후 속개된 경기는 점차 셀틱스의 분위기로 바뀌어 나갔습니다. 전반전에 잠잠했던 버드가 살아나기 시작했던 것이죠.

버드는 이 경기에서 18점, 10리바운드, 10어시스트의 트리플 더블 활약을 했습니다.

4쿼터 중반에 이를 때까지 셀틱스는 계속 7~8점차의 리드를 유지했습니다.

바로 이 때였습니다. 경기 내내 잠잠하던 줄리어스 어빙(23점, 6리바운드, 5어시스트)의 슛이 갑자기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빙은 혼자서 연이어 9득점을 하더니 급기야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며, 셀틱스의 완승으로 굳어져가던 경기를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 라이벌 전의 드라마는 경기종료 막판까지 계속 됐습니다.

94 대 92로 박빙의 리드를 지켜나가고 있던 셀틱스에게 승리를 굳힐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20여 초를 남기고 던진 셀틱스 제리 시스팅의 슛이 식서스 선수들의 손에 맞고 나가면서 셀틱스에게로 팀 리바운드가 주어진 것입니다.  바클리의 지나친 의욕이 가져온 뼈아픈 실수였지요. 팀원인 클레몬 존슨이 수비 리바운드를 잡았으나, 굳이 자기가 잡겠다고 열을 올리다가 공이 튕겨져 나가고 만 것입니다.

스틸을 노리며 타이트한 수비를 펼쳤으나 스틸에 실패한 식서스는 공을 가진 버드에게 파울을 해야만 했습니다.

남은 시간은 6초. 자유투라인 앞에 버드가 섰습니다.

리그 최고의 클러치 슈터, 래리 버드. 버드는 89.6%로 1986년 시즌 자유투 성공률 1위였던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경기는 끝났다고 봐야 했습니다. 자유투 한 개만 들어가도 95 대 92로 셀틱스가 3점차 리드를 잡은 채 식서스

는 6초 동안에 3점슛을 쏴야만 했으니까요. 천하의 버드가 여기서 자유투 한 개라도 놓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니 딱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위대한 이름...... 바로............ 찰스 바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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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클리는 자유투를 던지려던 버드를 노려보며 두 손으로 자기의 목을 꽉 조르는 몸짓을 보였습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버드, 너 오늘 죽었다" 라는 뜻이었답니다.

버드도 인간이었나 봅니다. 그 천하의 버드가 첫번째 자유투를 놓친 것입니다. 경기해설을 맡았던 게리 벤더 씨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라며 놀라더군요.

그리고 두번째 자유투......

세상에...... 버드가 이 두번째 자유투까지 놓치고 맙니다.

리바운드는? 물론 바클리의 품 안으로 들어갔지요.

벤치에 앉던 버드가 자기 손에 들려있던 큰 타월을 부욱 찢어 버리더군요. 금세기 최고 수준의 악력이었습니다.

이제 식서스에게 남은 시간은 6초.

작전은 탄력받은 바클리를 이용한 빠른 2점슛이었습니다. 돌파하는 바클리. 그리고 사력을 다해 이를 저지하려던 맥헤일.

점프볼이 선언됐습니다. 남은 시간은 3초.

식서스는 작전타임을 불렀고, 마지막 3점슛을 쏘기 위한 작전이 전달됐습니다.


자, 이제 식서스가 경기를 가져가려면 세 가지 조건의 시나리오가 충족되어야 했습니다.

(1) 194센치의 바클리가 스탠딩 리치 295센치에 달하는 맥헤일을 상대로 점프볼을 따내야 했습니다.

(2) 그 따낸 점프볼이 작전상 3점을 쏘게끔 되어있던 식서스 선수의 손으로 정확하게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3) 그 공을 받은 식서스 선수가 곧바로 3점을 던져서 그 골을 성공시켜야만 했습니다.


이 세가지가 모두 실제로 일어났다면.... 여러분,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아는 한, 역대 최고의 점프볼 능력을 갖추고 있던 바클리는 심판에게 공을 좀 높이 띄워달라고 부탁을 했고, 자신의 폭발적인 점프력, 놀라운 타이밍, 그리고 뱃심까지 가세한 삼박자로 정확하게 어빙에게로 공을 쳐내줍니다.

공을 받은 어빙은 즉시로 점프를 하며 앞에서 수비하던 데니 에인지 위로 페이더웨이 3점슛을 던졌고, 그 공은 깨끗하게 림의 그물을 갈랐습니다.

95 대 94. 식서스의 승리였습니다. 어빙의 승리였고, 바클리의 승리였으며, 맷 구카스 감독의 승리였습니다.




라이벌 전은 이래서 재미있습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분명히 밀리는데도, 더 강한 상대팀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방법이 어디에선가 솟아 나거든요.

휴스턴의 7-4 파워포워드 랄프 샘슨의 버저비터와 함께 디펜딩 챔피언 레이커스가 탈락한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5차전 경기와 더불어 1986년 시즌 최고의 게임으로 선정된 경기의 리캡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Doctor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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