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농구 카페나 동호회의 질문 게시판에 종종 올라오는 글을 보면 이런 물음들이 발견됩니다.

"저의 농구 롤모델은 누구로 하면 좋을까요?"

"코비를 저의 롤모델로 삼고 싶은데 도움 좀 주세요.".....

여기서 말하는 '롤 모델'로 삼는다는 표현은, 어떤 특정선수와 같은 스타일의 슛폼이나 농구 스타일을 닮고 싶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과연 여기서 말하는 '롤 모델'이 올바른 용어사용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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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 모델'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Robert K. Merton이라는 이름의 대학교 사회학 교수셨습니다. 이 분이 말한 '롤 모델'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A role model is any "person who serves as an example, whose behaviour is emulated by others".

이 분이 사회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에게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인생의 귀감이 될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역설하는 과정에서 이 용어가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특정한 인물의 삶과 행동양식을 닮아서 그 사람처럼 본이 되는 삶을 살고 싶을 때에, 그 모델이 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롤 모델'이라는 것이죠.

제 닉네임이 말해주듯이, 저는 자라면서 'Doctor J' 줄리어스 어빙을 저의 롤 모델로 삼고 자랐습니다.

줄리어스 어빙처럼 공중을 걸어 다니고, 덩크하고 싶어서 그를 롤 모델로 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빙이 코트 위에서나 코트 밖에서나 타 팀의 모든 선수들과 감독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마음에 저도 커서 그러한 인물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멀었지만, 그와 같은 모습으로 살고자 최소한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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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지에 실린 '롤 모델' 관련 칼럼을 보면, 미국의 모든 메이저 스포츠를 통틀어서 최고의 롤 모델이 누구였는가라는 질문에 칼럼니스트가 주저함 없이 줄리어스 어빙을 1위로 지목했습니다. 농구선수로서는 데이빗 로빈슨도 3위인가 4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어빙이 농구를 제일 잘 해서가 아닙니다. 잘 하는 순서였다면 당연히 마이클 조던이었겠죠.

또 어빙이 완벽한 인간이라는 말과도 거리가 멉니다. 이미 혼외정사로 인해 낳은 어빙의 2세도 있지 않습니까? 그도 어쩔 수 없는 한 인간임을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선수 시절의 어빙은 자신의 팀원들은 물론, 라이벌 팀의 선수들, 타 팀의 감독들, 리그의 모든 심판들을 포함해 사무국까지, 그리고 농구에 관련되어있지 않은 모든 사람들로부터도 한결같은 존경과 애정을 받았고, 심지어 라이벌들에게조차 안 좋은 말이나 트래쉬 토킹을 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신화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프로 선수들이 흔히 하는 도박이나 술, 담배 등은 평생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인터뷰를 할 때도 언제나 옳은 말만 했고, 자기 자신을 내세우거나 또는 상대방 선수, 상대 팀을 깍아 내리거나 폄하해서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선수가 어빙입니다.


'롤 모델'은 이렇게 자신에게 바람직하고 올바른 인생관과 행동양식을 갖고 살고 싶게끔 자극을 준 다른 특정 대상인 가리킬 때 쓰는 용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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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프로 초창기에 악동 노릇을 많이 했던 찰스 바클리도 '당신은 아이들이 보고 닮고 싶어하는 프로 스포츠 스타인데 이렇게 말하고 행동해도 괜찮겠느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주 단순하게 "I am not a role model. I am Charles Barkley."라고 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과 행동양식을 배우라고 강요하지 않을테니, 당신들도 나에게 어떤 특정한 모습의 삶의 모습을 강요하지 말아라'라고 한 것이죠.

말이 길어졌군요. 정리하겠습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면 이렇습니다.

"나는 마라도나를 나의 롤 모델로 삼겠다." "나는 데니스 로드맨을 나의 롤 모델로 삼겠다"라는 말은 사실 어불성설입니다.

이들을 롤 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마약 중독에 빠진 사람이나 여성편력, 기행 등을 일삼던 선수처럼 인생을 살고 싶다"라는 말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농구선수였던 윌트 체임벌린이 선수 시절 당시에 '롤 모델'로 거론되지 않았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냥, '나는 마라도나의 축구 기술를 배우고 싶다'라든지 '데니스 로드맨의 열정과 몸관리, 리바운드 기술을 본받아 내 것으로 만들어 농구할 때 써먹고 싶다', 또는 '코비의 슛폼과 플레이 스타일, 또는 그의 악착같은 근성과 노력하는 자세를 내 인생에도 적용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롤 모델은 인격과 행동양식에 관한 용어이지, 실력이나 능력, 스타일에 관한 용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특정 용어가 약간 잘못 이해되고 사용되어지는 것 같아서 한 말씀 올렸습니다.

 다가오는 연말연시 건강하고 보람있게 잘 보내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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