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 스포츠의 꽃 농구의 시즌이 돌아왔다. 국내리그는 WKBL이 막을 올린데 이어 KBL도 20일 시범경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한다. NBA 역시 2008-09시즌을 앞두고 트레이닝캠프를 통하여 마지막 담금질로 여념이 없다.

해마다 늘 겪게 되는 일이지만 올 여름에도 별들의 이동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블록버스터급은 아니어도 팀을 좌지우지 할 만한 올스타 레벨의 굵직한 선수들이 우승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친정팀과의 이별을 고하기도 하였다. 어떤 이는 의지와 상관없이 등이 떠밀려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때문에 LA 클리퍼스의 새 얼굴 배런 데이비스마커스 캠비의 각오는 남다르다. 저마다의 사연은 다르지만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우승이다. 오랜 세월 이어온 만년 꼴지, 동네북의 간판을 확실히 걷어내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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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퍼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부끄러운 수식어에 수긍이 간다. 그도 그럴 것이 우승은 고사하고 플레이오프 진출만으로도 해마다 힘겨운 사투를 벌였기 때문이다. 강팀들이 60승이니 50승이니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구석에서 신생팀들과 최다 패를 두고 자웅을 겨루었으니 팬들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가다 못해 재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즌이 끝날 때면 드래프트 상위 픽을 얻는 수혜도 입었지만 이 역시 운이 따라주지를 않았다. 갓 데뷔한 스타들이 경험삼아 클리퍼스에 몇 년 뛰고 이적을 해버리는 통에 소위 말하는 ‘남 좋은 일’을 일관해 왔기 때문. 고참선수들도 클리퍼스라면 손사레를 치긴 매한가지다.

전설적인 센터 빌 월튼은 부상으로 클리퍼스의 벤치를 달구고 보스턴으로 떠났다. 휴먼 하이라이트 필름으로 수많은 팬들을 몰고 다닌 도미니크 윌킨스 역시 트레이드로 클리퍼스에 온 것을 “모욕”이라 칭하며 이듬해 보스턴으로 이적하였다. 이 사건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윌킨스는 그리스행 비행기로 몸을 실어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하였다.

클리퍼스의 끝없는 터널에 조금씩 빛이 들어선 것은 밀레니엄시대로 접어들면서이다. 시카고 불스 출신의 신인왕 엘튼 브랜드를 영입하면서 마이클 올로워칸디와 나름의 궁합을 맞춘 것이 그 시작이었다. 백코트와 벤치는 무한 잠재로 넘쳐흘렀다. 포인트 포워드 라마 오돔과 ‘제2의 케빈 가넷‘을 꿈꾸던 대리우스 마일스가 포진해 있었고 코리 매거티와 쿠엔튼 리차드슨이라는 유망한 스윙맨들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어 그 미래는 매우 밝아 보였다.

‘LA의 주인은 더 이상 레이커스가 아니다‘라고 큰소리 칠만한 배짱을 갖추게 된 것이다. 베테랑 가드 샘 카셀과 쿠티노 모블리의 합류를 필두로 젊은 골밑 자원을 보강한 클리퍼스는 2005-06시즌 꿈에 그리던 플레이오프 진출을 달성한데 이어 덴버 너게츠를 꺾고 2라운드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특히 서부 컨퍼런스 준결승전에서는 난적 피닉스 선즈와 최종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며 침몰 직전으로 몰아넣어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클리퍼스의 짧고도 굵었던 마지막 투쟁이었다. 이후 두 시즌동안 내리 플레이오프 진출에 좌절하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 팀의 기둥이었던 브랜드와 프랜차이즈 스타 매거티마저 떠난 사실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시즌에 임해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때문에 새로운 클리퍼스 호의 선장 마이크 던리비 감독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던리비 감독은 “클리퍼스가 2006년 수준의 수비 팀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실망할 것”이라 공언하며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경기운영을 펼칠 것을 약속했다.

준비여건은 완벽하다. 새로 합류한 리키 데이비스나 기존의 모블리-팀 토마스는 수준급 퍼러미터 디펜더로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언제 어디에 내놓아도 제 몫을 해낼 인물들이다. 클리퍼스의 골밑을 책임졌던 크리스 케이먼은 올림픽에서의 부진으로 주가가 하락했다고는 하지만 나이를 감안하면 존재감을 발휘할 여지가 남아있음은 물론 성장에 대한 기대감마저 갖게 할 젊은 인재다. 또한 브랜드의 공백은 수비왕 출신의 블락머신 캠비가 훌륭하게 메울 전망이다. 어느 덧 노장소리를 듣게 된 캠비지만 케이먼과 함께 강력한 시너지를 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수비가 밑바탕이 되는 것도 좋지만 골이 들어가야 이기는 법이다. 역시 공격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선수 면면을 살펴보면 공격성향이 짙고 볼 소유욕이 많은 점이 눈에 띈다. 이번에 데뷔할 에릭 고든 역시 인디애나 대학시절 슈팅머신으로서 본인의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슈팅가담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던리비 감독은 “누가 되었든 볼을 만지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며 적절한 볼 배급과 원활한 볼 무브를 강조하였다. 

골든스테이트에서 시원시원한 속공 조율사로 코트를 휘저었던 데이비스는 알 쏜튼이나 리키 데이비스 같은 탄력 넘치는 이들에 날개를 달아 줄 것이다. 또한 노장 모블리와 함께 직접 지원사격에 나선다면 신바람 고득점 농구를 이 곳 클리퍼스에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신인 고든이 즉시 전력감으로서 당장에 큰 도움은 못되겠지만 벤치에서 캐치 앤 슈터 정도의 몫만 제대로 해낸다면 더 할 나위 없는 보탬이 될 것이다. 

이들 모두가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지만 새로운 팀 조련에 일가견이 있는 던리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니 많은 이들은 전폭적인 신뢰를 보낼 수밖에 없다. 포틀랜드 감독시절에는 온갖 스타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큰 잡음 없이 팀을 이끈 그다. 이러한 던리비 감독의 역량은 이번 시즌 클리퍼스에도 유감없이 발휘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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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험무대의 선봉에 설 데이비스의 책임은 특히 무겁지만 그의 입은 연신 웃음이다. 데뷔 후 10번째 시즌을 맞이하며 만난 세 번째 팀이지만 이 곳 LA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LA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한시도 캘리포니아 주를 떠나 본적이 없는 그에게 더 없는 행운이다. 이는 고향의 가족들과 모든 친구들에게 전폭적인 응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리적인 안정을 취하기엔 더 없는 조건이라는 얘기다. 특히 올여름 비지땀을 흘리며 9kg 가까이 감량에 성공했다. 가드 이상의 파워는 유지하며 날렵함과 더 나은 스피드를 준비한 것이다.

절묘한 타이밍에 팀을 떠난 브랜드에 대한 아쉬움은 뒤로한 채 이제는 그와 농을 주고받을 정도로 쾌활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이비스다. 이번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에 대해 “가능성은 무한하다”며 자신감을 드러낸 그의 말에서는 이번 시즌에 임하는 그의 각오를 엿볼 수 있었다. 

스테이플 센터의 간판을 교체하는 것은 그들이 이룰 초과 목표달성의 보너스일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강해지는 서부 컨퍼런스의 틈에서 과연 클리퍼스의 원대한 꿈이 이루어 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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