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의 출애굽기 14장을 보면 이러한 잘 알려진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4: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 지라 14: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14:23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 뒤를 쫓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14:24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14:25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스라엘의 해방에 관한 역사이며, 그들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종, 모세를 통해 이루어진 기적의 기록입니다. 1950년대에 찰튼 헤스턴이 모세 역을 맡았던 영화 '십계'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에피소드지요. 

 


1983년 5월, 뉴욕 메디슨 스케어 가든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같은 '모세'에 의해서.

시계를 거꾸로 돌려 1982년 여름의 필라델피아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줄리어스 어빙이 이끌던 필라델피아 76ers는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컨퍼런스 타이틀을 밥먹듯 쟁취하며 파이널에만 세 번을 올라갔던 강 팀이었습니다. 그러나 파이널마다 이들이 넘지 못했던 벽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리바운드의 열세'였지요. 백보드 부수기만 좋아하던 괴물 덩커, 대럴 도킨스, 그리고 수비는 좋았으나 몸싸움에서 많이 밀렸던 키 큰 파워 포워드, 콜드월 존스. 이 두 명의 빅맨으로 빌 월튼, 모리스 루카스, 로버트 패리쉬, 케빈 맥헤일, 커림 압둘자바 등이 버티고 있던 리그의 강 팀들을 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982년 파이널에서도 식서스가 압둘자바의 레이커스에 무릎을 꿇자, 식서스의 구단주, 해럴드 캣츠는 큰 용단을 내립니다. 자유계약 선수로 풀리는 휴스턴 로켓츠의 모제스 말론을 당시로서는 구기 종목 사상 최고의 충격적인 금액인 6년 13.2 밀을 제시하며 데려오기로 결단을 내린 것이죠. 휴스턴에서 이에 맞서 대응을 했으나, 악에 받쳐 말론에 올인하겠다는 식서스 구단주의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식서스는 1983년 드래프트 1번 픽 권한 (이 픽이 랄프 샘슨이 될 것임은 식서스도 알고 있었습니다)과 콜드월 존스를 묶어서 모제스 말론과 트레이드 합니다.


모제스 말론... 좀 더 정확하게 발음하자면 '모우지스 멀론'인데, 이 모제스 (Moses)가 바로 구약성서 출애굽기의 그 '모세'와 같은 이름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모셰'라고 하는데, 그래서였는지 당시 한국 신문에서도 이 선수를 '모세 말론'이라고 표기를 했었습니다.

이미 리그 MVP를 두 번이나 수상했고, 매 시즌 리바운드왕이었으며, 특히나 압둘자바와의 대결에서도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28세의 센터. 거의 혼자의 힘으로 약체였던 휴스턴 로켓츠를 1981년 파이널까지 올려놓았던 80년대 당시의 MDE.

그가 줄리어스 어빙의 식서스에 합류를 한 것입니다.

예상대로 이 식서스는 타 팀들을 파죽지세로 몰아 붙이며 정규시즌을 65승이라는 성적으로 마쳤습니다. 사실 시즌 막판 어빙의 부상만 없었다면 70승을 거둘 수도 있었던 팀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전년도 시즌, 팀 리바운드가 리그 꼴찌권이었던 팀이 말론의 합류로 단 번에 리그 1위의 자리에도 올랐습니다.


플레이오프가 시작되기 직전, 모제스 말론은 TV 카메라 앞에서 식서스의 플레이오프를 다음과 같은 세 마디 말로써 전망했습니다.

"Fo, fo, fo".

다시 말해 "4승, 4승, 4승", 세 번의 스윕으로 우승하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고, 일종의 예언(?)이었습니다.

모제스 말론은 프라이드와 자부심이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식서스에 합류하면서 백넘버도 24번에서 2번으로 바꾸었죠. 자신의 1년 연봉이 2백만 달러임을 져지넘버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받는 최고액 연봉에 걸맞는 활약을 하겠다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의 간접적인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양 컨퍼런스에서 각각 6개의 팀들만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었습니다. 그리고 상위 시드 1, 2위 팀은 부전승으로 1라운드를 통과했고, 나머지 3~6위의 팀들 중 두 팀이 올라와 1, 2위 팀들과 컨퍼런스 준결승전을 치뤘습니다.

리그 1위였던 식서스는, 뉴저지 넷츠를 이기고 올라온 뉴욕 닉스와 2라운드를 치루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당시의 뉴욕 닉스는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었습니다. 올스타 센터였던 빌 카트라이트, 80년대 초중반, 어빙, 버드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스몰 포워드, 버나드 킹, 그리고 찰스 오클리 스타일의 리바운드왕 출신 파워 포워드, '트럭' 로빈슨까지 버티고 있던 팀입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일방적인 시리즈였습니다. 홈에서의 2연전을 아주 쉽게 챙긴 식서스는 3차전 원정경기마저 승리로 장식하며 시리즈 스윕을 눈 앞에 두게 된 것이죠. 스윕을 당하지 않으려는 닉스 선수들이 절치부심 4차전에서 죽기살기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4차전 종료 1분을 남긴 상황에서 양 팀은 동점이 되었습니다.

닉스의 공격. 골 밑의 빌 카트라이트에게 버나드 킹의 패스가 투입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카트라이트 뒤에 있던 말론이 이 엔트리 패스된 공을 쳐냈습니다. 식서스의 모리스 칙스가 가까스로 이 공을 살려내 다시 모제스 말론에게 공을 던져 주었습니다.

공을 다시 건네받은 말론은 하프라인 바이얼레이션에 걸리지 않기 위해 본인이 스스로 공을 몰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센터가 공을 드리블하기 시작하자 이 공을 뺏으려고 닉스 선수들이 겹겹이 그의 앞을 막아서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때였습니다,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 모인 닉스 팬들이 자기들의 눈을 의심한 것은.

자기 앞에 서있는 카트라이트를 방향전환 드리블로 가볍게 제친 말론은 포인트 가드인 트렌트 터커마저 크로스오버 드리블로 따돌리고, 몸을 날려 그의 드리블을 저지하려던 어니 그런펠드도 360도 스핀 무브로 뚫습니다.

뒤쫓아온 카트라이트의 스틸시도를 왼 손 드리블로 가볍게 처리한 뒤, 골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터프가이, '트럭' 로빈슨 위로 점프하며 더블 클러치 레이업을 올려 놓았습니다.

그의 돌파와 드리블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가는 닉스 선수들.... 거대한 센터가 coast-to-coast 기술로 상대팀 선수들을 넉다운 시키는 진풍경이었습니다.

마치 모세가 홍해를 지팡이로 가르는 듯한 모습이었죠.

닉스 선수들과 팬들은 경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식서스의 시리즈 스윕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 들여야만 했습니다.

이 닉스와의 시리즈에서의 모제스 말론의 스탯은 게임당 31점, 18리바운드였습니다.



1982년 여름, 식서스에 입단할 당시부터 '식서스의 구세주', '식서스를 해방시켜 약속의 땅으로 이끌 모세'로 필라델피아 시민들로부터 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모제스 말론. 그는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파이널에서 압둘자바와 매직 존슨의 레이커스까지 스윕해버리며 필라델피아 시민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었습니다.

1983년 5월, 구약성서의 한 믿음의 영웅과 같은 이름을 갖고 있던 그가, 그 영웅이 보여줬던 홍해의 기적을 뉴욕의 심장인 메디슨스퀘어 가든에서 재연해 보인 것은 이 팬들과의 약속의 실현을 준비하는 장엄한 전주곡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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