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월간지 '점프볼' 1월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편집 : 신호섭(heltant79)
참여 : 신호섭(heltant79), 안태진(Dream Time), 송석규(Point Guard), 김준우(jeffrey23)

NBA의 현재와 미래가 만났다. NBA를 대표하는 두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와 르브론 제임스는 지난여름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국에 8년 만의 금메달을 안기며 최고의 호흡을 과시했다. 또한 2008-2009 시즌 초반 리더로써 소속팀의 높은 승률을 이끌고 있다. 뛰어에서는 1월 19일(미국시각) 시즌 첫 맞대결을 가지게 될 이들이 함께 하는 가상 인터뷰를 마련해 봤다.

뛰어(DDUEH)_ 먼저 지난 베이징 올림픽 얘기부터 해볼까요? 두 분 모두 생애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은 두 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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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트(KB24) 나라를 대표해서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경쟁하는 것은 굉장히 멋진 일입니다. 최소한 저에게는 NBA 파이널보다 올림픽이 더 큰 의미를 가졌죠. 10년 넘게 프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도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올림픽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지난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우승을 차지하며 미국 농구의 강함을 세계에 증명한 이번 올림픽은 매우 뜻 깊은 대회였습니다.

제임스(LBJ23) 저는 루키 시즌을 갓 마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처음 대표 팀으로 선발됐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어렸고 큰 기여를 하지 못한 채 동메달에 그치고 말았죠. 제가 본격적으로 대표 팀의 주축이 된 것은 2006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대표 팀 부터였습니다. 제 드래프트 동기인 드웨인 웨이드, 카멜로 앤써니 등이 함께 했었죠. 일본으로 가기 전 한국에서 시범경기를 가졌는데, 거기서 복무하고 있던 주한미군을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애국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올림픽에서는 꼭 금메달을 따고 싶었습니다. 대표 팀 모두가 자기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마침내 우승을 차지해 시상대에 섰던 것은 정말 특별한 추억이었습니다.

DDUEH_ 두 분은 지난 올림픽 지역예선에서 처음으로 한 팀이 되었습니다. 팀 동료로써 서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KB24_ 이번 대표 팀에는 서른을 넘은 베테랑 선수가 저와 제이슨 키드뿐일 정도로 젊은 팀이었습니다. 그래서 르브론을 비롯한 젊은 선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대회 기간 내내 좋은 분위기를 유지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죠. 르브론은 실력과 품성 모두 뛰어난 선수입니다. 2006년부터 대표 팀 주장을 맡으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리더십을 발휘했고, 이번 올림픽에서는 팀 전체의 목소리를 잘 대변해줬죠. 코트 위에서는 올 라운드 플레이를 선보이며 팀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냈습니다. 르브론은 최고의 농구선수이자 최고의 리더입니다.

LBJ23_ 작년 여름 코비가 우리 팀에 가세하자 팀의 경쟁력은 매우 높아졌습니다. 코비는 상대 에이스 봉쇄와 클러치 타임 공격을 맡았는데, 그는 두 가지 모두 최고의 선수임을 증명했죠. 스페인과의 결승전에서 코비가 4쿼터에 성공한 4점 플레이 보셨나요? 그런 슛을 넣은 선수가 코비라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죠. 이번 올림픽 대표 팀에는 소속팀에서 에이스인 선수가 즐비했지만, 위기의 순간 코비에게 볼을 주는 것을 주저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DDUEH_ 두 분의 소속팀인 LA 레이커스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지금 리그 최상위권에 올라있습니다. 두 팀 모두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데요, 데뷔 후 한 팀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로써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습니다.

KB24_ 레이커스는 전통의 강팀입니다. 창단 이래 약팀이었던 적이 별로 없었던 팀이죠. 지난 몇 년간 힘든 시간을 겪기는 했지만, 언젠가는 다시 강팀이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희 팀원 대부분은 팀이 어렵던 시절을 함께 한 오랜 동료들입니다. 필 잭슨 감독님과 함께 트라이앵글 오펜스 시스템을 갈고닦아왔죠. 지난 시즌에는 보스턴에게 아깝게 패했지만, 이번 시즌은 다를 겁니다.

LBJ23_ 제가 입단한 2003-2004 시즌 이래 팀에서 꾸준히 추진해온 전력 강화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3년 저희 팀은 리그 최약체였지만 지금은 재능 있는 선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죠. 마이크 브라운 감독님의 수비농구 위에 이번 시즌에는 뛰어난 공격력까지 추가됐습니다. 이번 시즌의 캐벌리어스는 제 프로 경력 뿐 아니라 팀 역사를 통틀어서도 최강이라 자부합니다.

DDUEH_ 두 분은 내년 1월 19일(미국시각) LA에서 이번 시즌 첫 맞대결을 치르게 됩니다. 두 분의 맞대결은 모든 팬들의 눈을 한 곳에 모으곤 하는데요. 지금까지의 맞대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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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24_ 저는 지난 시즌 홈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군요. 저와 르브론 모두 최고의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르브론이 마지막 순간을 지배하며 제 머리 위로 위닝샷을 꽂아 넣었죠. 저 친구 굉장히 좋아하더군요(웃음). 르브론과 대결하는 것은 대단히 흥분되는 일입니다. 저는 항상 최고의 선수를 상대로 경기하고 싶고, 르브론은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하나거든요.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LBJ23_ 2005~2006 시즌 가졌던 원정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날 코비는 마지막 순간 저를 틀어막으며 연속해서 야투 세 개를 성공시켰죠. 코비는 경기 내내 팀 전체를 어깨에 짊어지고 갔고, 저도 그렇게 해보려 했지만 마지막 순간 실패했습니다. 에이스가 어떻게 경기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 한판이었죠. 제가 농구에 진지하게 빠져들 무렵 코비는 이미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고, 제가 리그에 발을 들여놓기 전 이미 세 개의 우승반지를 가지고 있었죠. 그리고 코비는 제가 NBA에서 상대해본 선수 중 단연 최고의 선수입니다. 이런 선수와 대결하는 것은 제게 언제나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죠.

DDUEH_ 두 분은 각자의 포지션에서 리그 최고의 선수입니다. 서로가 생각하는 상대의 경기 스타일과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LBJ23_ 코비는 리그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스윙맨입니다.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를 상징하는 ‘20득점 5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한 시즌도 일곱 차례나 되죠. 슈팅가드 포지션에서는 최상급의 리바운드와 어시스트 능력을 지녔습니다. 풀타임 주전으로 발돋움한 후 코비는 줄곧 레이커스의 플레이메이커 역할과 주득점원 역할을 겸해왔습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죠. 코비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재능은 득점력이란 것 말입니다. 코비가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하기 전에도 그는 리그 최고의 득점기계였습니다.

코비는 리그 역사를 통틀어 가장 다양한 공격루트를 지닌 선수 중 한 명입니다. 내외곽에서 모두 득점이 가능하며 슛 거리 또한 상상을 초월하죠. 어떠한 상황에서도 슈팅 자세가 무너지지 않을 만큼 밸런스가 좋고, 몇 명이 수비하건 자신의 공격리듬만 완벽하면 보란 듯이 슛을 성공시킵니다. 과거에 비해 돌파 비중이 줄어들고 중거리 점프슛 시도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야투 성공률이 더 좋아진 것은 그만큼 그의 슛이 위력적이라는 증거죠. 코비는 수비에서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입니다. 코비는 지금까지 언제나 상대팀의 에이스들을 직접 수비해 왔으며, 팀 사정에 따라 포인트 가드부터 스몰 포워드까지 완벽하게 상대할 수 있죠. 코비는 지난 베이징 올림픽 때도 전문 수비수 이상의 찰거머리 수비로 미국의 우승에 공헌한 바 있습니다. 어떤 팀을 무너뜨리려면 그 팀의 에이스를 무너뜨리면 됩니다. 코비는 그런 일을 항상 해오고 있죠. 좋은 자세와 판단력, 경험이 어우러진 코비의 수비력은 리그 내에서도 최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코비의 진정한 위대함은 다른 데 있습니다. 게임의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 코비는 평소에도 대단한 집중력을 한두 단계 높여버립니다. 코비의 이런 집중력과 승부사 기질은 제가 항상 본받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KB24_ 르브론의 가장 큰 장점은 그의 몸 자체입니다. 206cm, 115kg의 몸은 파워포워드나 센터에게 어울리는 신체조건이죠. 그런 몸이 가드의 스피드로 치고 들어오는 르브론의 돌파는 현재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무기 중 하나입니다. 이런 식의 공격능력은 그에게 안정성과 성공률이라는 이점을 가져다주죠. 르브론은 완벽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 바디 밸런스를 지니고 있어 돌파만으로도 얼마든지 득점을 올릴 수 있습니다. 아직 공격적인 측면에서 발전단계에 있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즌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한 걸 보세요. 그가 점프슛을 안정적으로 던질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느 정도의 공격력을 선보일 지 정말 기대됩니다. 르브론은 수비 또한 해마다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패싱 레인 차단에만 의존하던 신인 시절과는 달리, 요즘 르브론은 상대 에이스와의 1:1 대결에서도 대부분 승리를 거두고 있죠. 신체조건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거의 모든 포지션을 수비할 수 있다는 점도 르브론이 가지는 가치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르브론이 정말로 무서운 선수인 이유는 지금 보여주는 모습이 그의 전성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르브론은 매년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죠. 이번 시즌도 그동안 많은 지적을 받았던 자유투 성공률을 10% 가까이 끌어올렸습니다. 3~4년 후 팬 여러분은 엄청나게 성장한 르브론을 볼 수 있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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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UEH
_ 두 분의 그런 스타일은 언제부터 자리를 잡았나요? 프로가 되기 전의 경험이 NBA에서의 플레이 스타일에 영향을 주었습니까?

KB24_ 물론입니다. 필라델피아에서 로워 매리언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저는 농구부의 정규 훈련이 끝난 다음에도 길거리 농구장에서 시합을 계속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길거리 농구는 미국의 다른 지역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보통 길거리 농구에서는 수비가 크게 강조되지 않는데, 필라델피아에서는 수비를 못하면 농구를 할 수 없습니다. 정규 농구건, 길거리 농구건 간에요. 그래서 저는 어려서부터 수비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죠. 생각해보면 저는 어려서부터 승부욕이 굉장히 강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1:1 대결을 할 때도 상대를 철저히 누르지 못하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죠.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제 실력이 늘었다는 걸 확인할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LBJ23_ 저는 농구를 시작하면서부터 포인트가드로 뛰었습니다. 볼을 가지고 동료들의 득점을 돕는 게 재미있었어요.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 제 생각대로 게임을 조립하고, 조립한 대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좋았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키가 2미터를 넘어선 후에도 제 포지션은 여전히 포인트가드였습니다. 그리고 스몰포워드로 뛰고 있는 지금도 팀 리딩의 상당부분을 맡고 있죠. 저는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동료들이 위기 상황에서 저에게 의지하는 것이 기분 좋았습니다. 항상 리더가 되고자 했죠. 그래서 NBA 선수가 된 다음에도 동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항상 노력했습니다.

DDUEH_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좀 더 해보기로 하죠. 두 분은 성장 과정이나 농구를 접하게 된 과정 등이 모두 다릅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KB24_ 저는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아버지(조 ‘젤리 빈’ 브라이언트)께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서 NBA 선수로 활약하고 계셨죠. 아버지는 1982-83시즌을 끝으로 NBA 무대를 떠나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년시절을 미국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보내게 되었죠. 사실 저는 어린 시절 농구선수가 되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이탈리아는 열광적인 축구 열기로 유명한 나라였기 때문이죠. 그곳의 모든 아이들은 축구 선수를 꿈꾸며 자라났고, 저 역시 AC 밀란 팀의 프로 축구선수로 뛰는 것을 꿈꿨습니다. 그런데 제 키가 너무 빨리 자라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결국 저는 제 신체조건이 축구를 계속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한번 시작하자 농구란 운동이 너무 재미있었더군요. 마치 저를 위해 생겨난 운동 같았죠. 하루 종일 농구공과 함께 살았습니다. 아버지도 저를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고요.

아버지께서 은퇴하신 후 저희 가족은 다시 필라델피아로 돌아왔습니다. 학교에서 저는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아는 조금 특이한 아이였죠. 일단 미국 아이들 문화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조금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저는 금방 적응했죠.

저는 사실 대학교를 거쳐 NBA 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농구 경험이 없으면 NBA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학교 성적도 좋았고요. 그런데 저보다 1년 일찍 고졸로 입단한 케빈 가넷이 NBA 적응에 성공하는 걸 보고 강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래서 NBA 드래프트를 신청했습니다.

LBJ23_ 저는 오하이오 주 애크런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팀 홈구장인 퀴큰 론즈 아레나와는 50킬로미터쯤 떨어진 조그만 도시죠. 그러니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오하이오 토박이로 살아온 셈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저를 굉장히 힘들게 키우셨습니다. 16살에 아버지 없이 저를 낳으셨거든요. 게다가 제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며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하셔야 했죠. 그나마도 제가 열 살 무렵에는 법원에서 저희 어머니에게 부양능력이 없다는 판결을 내려서 따로 살아야 했습니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운동을 하고 있을 때만은 행복했습니다. 운동장에서는 제가 가장 뛰어났거든요. 저는 농구와 미식축구를 했는데 저희 학교 미식축구팀 감독님이던 프랭키 워커 선생님께서 저를 맡아 키워주셨습니다. 제 은인인 셈이죠.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농구 교실에서는 제 평생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그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싶어서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에 함께 입학할 정도로 친했죠. 그 친구들은 지금도 제 주위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저희 팀이 유명해지자 사람들이 저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행복하지 않았어요. 언론들은 저에 대한 기사를 써서 돈을 버는데, 저와 어머니는 여전히 가난했기 때문이죠. 그건 굉장히 불공평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빨리 돈을 벌고 싶었죠. 어머니를 더 이상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거치지 않고 NBA 드래프트를 신청했죠.

DDUEH_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지금은 같은 목표를 향해 경쟁하고 있군요. 이제는 각기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아이들, 그리고 가족들은 두 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KB24_ 제 아내 바네사와 저는 1999년 처음 만났습니다. 저는 21살, 바네사는 17살 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죠. 저희는 첫눈에 반했습니다. 하지만 제 부모님은 저희들의 결혼을 크게 반대하셨어요. 저희가 너무 어리고 바네사가 흑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죠. 저희는 끝내 부모님을 설득하지 못했고, 부모님은 저희 결혼식에 오시지 않으셨어요. 결국 몇 년 동안 부모님과 의절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첫 딸 나탈리아가 태어난 것은 그 무렵이었습니다. 나탈리아는 저희와 부모님 사이에 놓인 벽을 단숨에 허물어주었습니다. 저희는 나탈리아를 데리고 부모님을 찾아뵈었고, 부모님은 언제 저희 부부의 결혼을 반대했느냐는 듯이 저희를 따뜻하게 맞아주셨죠. 그 아이가 저희 모두를 다시 가족으로 만들어줬어요. 나탈리아와 2년 전 태어난 둘째딸 지아나는 제게 가장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LBJ23_ 저도 아이들 엄마인 사바나와 일찍 만났습니다. 저흰 고등학교 동창이었죠.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꼭 멋진 결혼식을 올릴 겁니다. 저는 벌써 두 아들의 아버지죠. 이제 네 살이 된 맏아들 르브론 주니어는 저를 많이 닮았고, 두 살인 브라이스 막시무스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글래디에이터’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지었어요. 제가 아버지 없이 자랐기 때문에 이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빠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오프 시즌 동안에는 하루 종일 아이들과 뒹굴며 보내죠. 고향 팀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홈경기마다 어머니와 아이들을 관중석에 앉히고 경기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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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UEH
_ 두 분은 모두 마이클 조던의 후계자로 주목받아왔습니다. 두 분에게 조던은 어떤 의미이고 조던과의 비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KB24_ 저는 선수생활 내내 조던과 비교되어 왔습니다. 리그 안팎에서 '제2의 조던'을 찾으려고 하던 시절에 전성기를 보냈기 때문이겠지만, 역사상 최고의 선수와 비교된다는 것은 저를 굉장히 피곤하게 만들더군요. 물론 저의 플레이가 조던을 연상시킨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제 어린 시절 조던은 모든 아이들의 우상이었고, 농구를 한 아이 치고 조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선수는 없었으니까요. 언젠가 필라델피아로 원정을 온 조던을 경기장 복도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저를 보고 그냥 지나치려다 소개를 받고 짧은 인사를 나눴죠. 그때는 긴장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 후 데뷔 2년 만에 올스타전 선발로 뽑혀 조던을 상대로 경기했을 때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NBA에서 경력이 쌓이고 저 스스로가 이룬 업적이 늘어가면서, 이젠 조던과의 비교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던이 아니고 조던도 제가 아니죠. 저는 팬 여러분께 '코비 브라이언트'라는 농구선수로써 기억되고 싶네요.

LBJ23_ 저는 조던이 루키 시즌을 보내던 1984년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조던이 은퇴한 바로 다음 시즌 리그에 데뷔했죠. 제 또래 선수들은 어린 시절을 온전히 조던과 함께 보낸 셈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조던처럼 되고 싶어 했죠. 저 역시 마찬가지로, NBA에 데뷔했을 때 등번호도 아무 망설임 없이 23번으로 정할 정도였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조던이 저를 워크아웃에 초청한 적이 있었어요. 거기서 조던과 함께 훈련했습니다. 40살에 가까웠던 조던이 소화하는 엄청난 훈련 량을 본 경험은 워크아웃 후에도 계속해서 저를 분발하게 했죠. 저는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최고의 선수란 자신의 소속팀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는 선수를 말하죠. 저는 조던을 보면서 그렇게 될 수 있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물론 저는 조던이 아닙니다. 조던같이 플레이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조던이 농구를 이룬 업적은 저도 꼭 이룩하고 싶습니다.

DDUEH_ 마지막으로 두 분이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KB24_ 르브론은 NBA의 미래입니다. 2000년대에 데뷔한 선수 중 가장 앞서가고 있죠. 아직 전성기를 맞지 않았는데도 이미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하나가 됐습니다. 팬 여러분들은 어쩌면 지금부터 10년을 지배할 선수가 뛰는 모습을 보고 계신 걸지도 모르죠. 농구인으로써 르브론과 같은 선수가 발전해가는 과정을 본다는 것은 매우 흥분되는 일입니다. 그가 마침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순간을 기대합니다.

LBJ23_ 코비는 저의 우상이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코비가 제게 아디다스 농구화를 선물했을 때도 그랬고, NBA 선수가 되어 서로 경쟁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죠. 그는 오늘날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입니다. 저는 이 말을 수백 번도 더 반복해서 말해왔죠. 마침내 코비가 그의 가치를 인정받아 MVP를 수상했던 지난 시즌 저도 함께 기뻐했습니다. 코비는 저희 같은 젊은 선수들에게 프로 선수의 모범을 보이고 있죠. 앞으로도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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