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adams님이 촬영한 Go Cavs.

샤킬 오닐 트레이드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6월 25일(이하 미국 현지시각), 대니 페리 클리블랜드 단장은 기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드래프트 행사장에 도착했다. 바로 전날 이루어진 대형 트레이드로 2009-2010 시즌 목표가 우승임을 분명히 한 페리 단장이 드래프트에서 클리블랜드의 1라운드 30번과 2라운드 46번 지명권보다 높은 순위의 지명권을 확보할 것이며, 전날 핵심 선수의 유출 없이 트레이드를 성사시킨 것은 이들을 드래프트 당일 트레이드에 쓰려 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이번 드래프트는 유망주가 부족과 경제 불황 등의 이유로 반드시 필요한 선수가 아니면 신인을 로스터에 추가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다 보니 10순위 밖의 선수들은 평소같으면 충분히 뽑혔을 기량을 갖췄는데도 죽죽 미끄러졌다. 클리블랜드가 진작부터 노려오고 있었다는 피츠버그 대학의 샘 영을 비롯해 많은 유망주가 1라운드 후반까지 지명되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1라운드 마지막 지명권을 클리블랜드가 행사할 시간이 돌아왔고, 클리블랜드 측에서 선수 이름을 써서 제출한 종이를 든 데이빗 스턴 총재가 단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스턴 총재는 1라운드 지명자만 직접 호명하므로 이것이 그날 스턴 총재의 마지막 호명이었다. 거의 모든 팬들이 당연히 샘 영의 이름이 불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8cm의 스윙맨인 영은 클리블랜드가 그토록 원했던 장신 스윙맨이었고 4학년을 마친 즉시전력감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피츠버그 대학 감독과 페리 단장은 친분이 돈독한 사이였고 대학농구 시즌 중에 영을 꾸준히 관찰해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With the 30th pick, Cleveland Cavaliers select........." 순간 스턴 총재의 눈에 짜증 비슷한 곤혹스러움이 스쳐갔다. 종이에 적혀있는 선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스턴 총재는 1라운드 마지막 지명 선수의 이름을 힘들게 말했다.

"크리스천 아옝가(Christian Eyenga)!"



순간 행사장엔 적막이 흘렀다. 페리 단장의 선택을 납득할 수 없었다기보다는 아옝가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드래프트를 트위터로 생중계하고 있던 클리블랜드 전문기자조차도 '정보 없음, 현재 알아보는 중'이라는 글을 올린 뒤 침묵할 뿐이었다.

아옝가의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설명들이 있다.

'인사이드 플레이가 없는 스몰포워드'
'점퍼 매커니즘이 확립되지 않은 슈팅가드'
'3점 슈터이지만 슛 부정확함'

마치 말장난같은 이런 평가야말로 아옝가가 베일에 싸인 미스터리 맨임을 증명해준다.

아옝가 지명으로 가장 놀란 것은 아옝가 자신이었다. 드래프트 전날까지 클리블랜드에서 자신을 지명할 거라는 어떠한 언질도 받지 못했고 스스로도 1라운드에서 뽑힐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아옝가는 단상에 올라가 스턴 총재와 악수를 하면서도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시즌까지 스페인 DKV 유벤투트 산하의 유소년 팀에서 뛴 아옝가는 올해로 스무 살을 맞은 196cm의 스윙맨이다. 콩고의 수도 킨샤사 출신으로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디켐베 무톰보의 고향 후배인 아옝가는 작년 여름 오클라호마 시티가 지명한 세르지 이바카와 함께 콩고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었다. 당시엔 빅맨으로 뛰며 엄청난 운동능력을 발휘한 아옝가를 스페인 스카우트가 주목했고, 얼마 전까지 유럽 리그의 트렌드였던 아프리카 선수 수집의 막차를 타고 유벤투트에 입단할 수 있었다. 유벤투트는 아옝가를 스윙맨으로 키울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옝가는 유소년 팀에서 스윙맨의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익혀야 했다. 아옝가의 스카우팅 리포트가 반전개그처럼 되어있는 이유는 이렇게 농구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당시 유소년팀에서 아옝가와 한솥밥을 먹었던 리키 루비오는 스페인 대표팀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뛰며 올해 드래프트의 최고 이슈메이커가 되었다.

그런데 아옝가의 콩고 청소년 대표시절을 관찰했던 것은 스페인 스카우트만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는 클리블랜드의 스카우트도 있었다. 아옝가가 아니라 이바카를 관찰하기 위해서긴 했지만 말이다. 아옝가의 뛰어난 운동능력은 곧바로 페리 단장에게 보고되었고, 이번 드래프트에서 아옝가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페리 단장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지명을 한 것이다.




하지만 페리 단장이 아옝가를 즉시전력감으로 쓰려고 뽑은 것은 아니었다. 스윙맨 역할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본기가 떨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등 미국 문화를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아옝가는 몇 년 후를 보고 뽑은 선수였다. 아니나다를까, 페리 단장은 2라운드 46번 지명권으로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스윙맨 대니 그린을 뽑았고, 같은 포지션의 두 선수 중 페리 단장이 계약한 것은 아옝가가 아니라 그린이었다. 서머리그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아옝가는 유벤투트와의 계약을 3년 연장해 당분간 스페인에서 뛰게 됐다. 다만 매년 계약을 중단할 권한이 있어 언제든 클리블랜드에 합류할 수 있는 상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처음부터 아옝가가 아니라 그린을 쓸 작정이었다면 어째서 1라운드 그린/2라운드 아옝가가 아니라 그 반대였나? 여긴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었다.

  • 페리 단장은 처음부터 1라운드 지명 선수는 당장 로스터에 넣지 않을 생각이었다. 1라운더는 2라운더보다 계약기간도 두 배나 길고 기본 연봉도 많이 줘야 하기 때문이다. 클리블랜드가 아무리 부자 팀이라도 재정 부담이 없을 수는 없다. 필요한 곳에 얼마든지 돈을 쓸 수 있는 것과 필요없는 데 돈을 낭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2라운드에서 괜찮은 선수를 뽑을 수 있다면 굳이 1라운더를 계약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당장 쓰지 않을 아옝가를 1라운드로, 즉시전력인 그린을 2라운드로 지명한 것이다. 그리고 그린과 2라운드 계약을 하면서 클리블랜드는 1라운드 계약을 할 때에 비해 거의 0.8백만 달러를 절약하며, 전날 오닐을 데려오면서 피닉스에게 지급한 0.5백만 달러의 현금을 때우는 데 성공했다.

  • 지금 클리블랜드는 우승을 노리는 팀이고 루키를 두 명이나 15인 로스터에 넣을 수가 없다. 드래프트 당시 이번 시즌에 팀에 남을 것이 확실한 선수는 10명, 여기에 FA를 선언한 앤더슨 바레장과 재계약하면 11명이었다. 각종 익셉션 등으로 베테랑 두 명 정도를 더 영입할 예정인 클리블랜드로써는 이것만으로도 12인 로스터를 넘어버린다. 여기에 루키를 두 명이나 추가하면 쓰지도 않을 전력에 돈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추가 FA 영입에 필요한 실탄을 아끼면서 로스터도 비울 필요가 있었다.

  • 위와 같은 사정이 있었다 해도 클블이 상위지명권을 얻을 수 있었다면 그걸로 즉시전력감을 뽑았을 것이다. 하지만 클리블랜드의 이러한 시도는 실패했고, 게다가 상위지명권을 얻어서라도 뽑으려던 선수들이 2라운드까지 밀려내려오니 굳이 1라운드 지명권으로 선수를 뽑는 걸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대니 그린이 클리블랜드 로스터에 합류한 유일한 신인이 되었다. 198cm의 스윙맨인 그린은 조던, 워디, 카터 등 NBA 슈퍼스타의 산실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역사상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선수이자 대학 통산 1,000득점 500리바운드 250어시스트 150블록슛 150스틸을 모두 달성한 ACC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다.

그린은 그리 유복하지 못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뉴욕 롱 아일랜드는 우범지대로 분류될 만큼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린은 어렸을 때부터 성실한 아이로 자라났다. 뱀에게 큰 관심을 보인 어린 그린은 그때 산 암컷 붉은꼬리 도마뱀 '제이드'를 지금까지 소중히 키우고 있다. 180cm가 넘는 제이드는 조만간 클리블랜드에서 그린과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짖지도 물지도 않고 털도 안 빠져요. 키우기도 쉽습니다." 그린이 제이드를 자랑하며 한 말이다.

유명한 덩커였던 제럴드 그린의 사촌동생이기도 한 그린은 찰리 빌라누에바가 속한 뉴욕 유소년 팀에서 뛰며 이름을 알려나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 팀을 25승 1패로 이끈 그린은 여러 대학의 스카우트 제이를 뿌리치고 전부터 동경해왔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린은 고등학교 시절만큼 활약하지 못했다. 아버지 대니 그린 시니어가 마약 소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위해 법정을 드나들어야 했던 그린은 농구에 집중하지 못했고, 타일러 핸스브로를 비롯한 동기들이 뛰는 모습을 벤치에서 지켜보는 시간이 늘어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죄가 확정되자 다시 농구에 매진, 졸업 시즌에는 처음으로 선발로 뛰며 팀의 NCAA 토너먼트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주포인 웨인 엘링턴이 다소 기복을 보였음에도 노스캐롤라이나의 경기력에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은 항상 꾸준한 슈팅을 보여주는 그린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린의 주특기는 외곽슛과 수비다.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기본기를 갈고 닦았고, 매우 안정된 슛폼과 사이드스텝을 지니고 있다. 팀 수비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 ACC 수비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페리 단장이 그린에게서 본 가장 큰 가능성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실함과 팀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이타심이다. 드래프트 행사에 초청받지 못해 뉴욕의 한 호텔에서 자신의 지명 장면을 시청한 그린은 다음날 바로 클리블랜드 연습 코트를 찾아 개인 연습을 시작할 정도로 성실한 선수다. 동기들이 하나둘 앞서나가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온 그린은 핸스브로와 함께 지난 시즌 노스캐롤라이나 농구팀의 정신적 지주였다. 이번 서머리그에서도 자신의 포지션에 신인이 두 명이나 들어온 데 위기감을 느낀 테런스 킨지가 그린에게 전혀 패스하지 않았지만, 그린은 슛을 보여줄 기회가 없음을 불평하지 않고 끊임없이 볼을 돌리며 수비를 했다. 서머리그를 마친 후 킨지는 떠나고 그린은 남은 이유다.

앤써니 파커와 자마리오 문이 새로 영입되면서 그린이 당장 이번 시즌부터 로테이션에 들어가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대학 때 보여줬던 대로 성실하게 기량을 쌓아나간다면 이르면 다음 시즌부터는 팀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린과 스타일이 비슷한 베테랑 파커를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



페리 단장이 드래프트에서 보여준 선택은 클리블랜드가 FA 시장에서 활발한 선수 영입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 1라운드 하위 지명권만으로는 우승 가능 전력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클리블랜드는 최근 몇 년 중 가장 시끌벅쩍했던 여름을 보내게 됐다.

다음 글에서는 페리 단장이 FA 시장에서 보여준 칠전팔도의 선수 영입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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