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바이슨 딜레 (Bison Dele) - 센터 | |
개명 前 이름: 브라이언 윌리엄스 (Brian Carson Williams) 고향: 4/6/1969 프레스노, 캘리포니아 사망: 7/7/2002 키: 6-9 (206cm) 몸무게: 235 lbs.(107kg) 학력: 애리조나 대학교 포지션: 센터 드래프트: 1991년 1라운드 (10번픽) 올랜도 매직 주요수상: 맥도날드 올아메리카 선정 (1987) |
● 통산 성적
시즌 |
팀 |
경기 |
시간 |
FG% |
3P% |
FT% |
REB |
AST |
STL |
BLK |
TO |
PF |
PTS |
91/92 |
ORL |
48 |
18.9 |
.528 |
- |
.669 |
5.7 |
0.7 |
0.9 |
1.1 |
1.8 |
2.9 |
9.1 |
92/93 |
ORL |
21 |
11.4 |
.513 |
.000 |
.800 |
2.7 |
0.2 |
0.7 |
0.8 |
1.2 |
2.3 |
4.6 |
93/94 |
DEN |
80 |
18.8 |
.541 |
.000 |
.649 |
5.6 |
0.6 |
0.6 |
1.1 |
1.3 |
2.8 |
8.0 |
94/95 |
DEN |
63 |
20.0 |
.589 |
- |
.654 |
4.7 |
0.8 |
0.6 |
0.7 |
1.8 |
3.3 |
7.9 |
95/96 |
LAC |
65 |
33.2 |
.543 |
.167 |
.734 |
7.6 |
1.9 |
1.1 |
0.8 |
2.9 |
3.5 |
15.8 |
96/97 |
CHI |
9 |
15.3 |
.413 |
- |
.733 |
3.7 |
1.3 |
0.3 |
0.6 |
1.2 |
2.2 |
7.0 |
97/98 |
DET |
78 |
33.6 |
.511 |
.333 |
.707 |
8.9 |
1.2 |
0.9 |
0.7 |
2.3 |
3.2 |
16.2 |
98/99 |
DET |
49 |
24.0 |
.501 |
.000 |
.686 |
5.6 |
1.4 |
0.8 |
0.8 |
2.3 |
3.7 |
10.5 |
총합 |
- |
413 |
24.2 |
.528 |
.143 |
.691 |
6.2 |
1.1 |
0.8 |
0.9 |
2.0 |
3.1 |
11.0 |
● 바이슨 딜레 전기 (Biograph)
사람들은 아마도 바이슨 딜레라는 이름보다 브라이언 윌리엄스가 익숙할 것이다. 그는 개명을 결심한 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로 이적, 제 2의 전성기를 기대하게금 만들었지만 돌연 은퇴를 선언하여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리고 2002년, 남태평양 부근에서 실종신고를 받은 각 기관들의 수사에 의하여 살인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딜레의 목숨을 앗아간 이는 다름아닌 그의 친형 케빈 윌리엄스였다.
딜레의 몸속에는 사실 음악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플래터스라는 유명한 뮤지컬 극단에 소속되어 있는 유진 윌리엄스라는 실력파 배우였다.
그의 대학농구 경력은 사실 메릴랜드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1년 후, 애리조나로 전학을 결심하였고 이 후 두 시즌을 뛰었다. 그리고 1991년 올랜도 매직에 의하여 1라운드 10번픽으로 지명되는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샤킬 오닐의 골밑 파트너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2번 째 시즌에서 부상을 입었다. 여기에 우울증 진단까지 받으며 내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브라이언은 매우 재능이 많은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젊은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집중력에 문제가 있었죠. 물론, 나중에 그가 그 외에도 다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올랜도의 단장이었던 존 가브리엘은 브라이언을 이렇게 기억한다.
딜레는 루키 시절부터 수영을 하거나 운전을 할 때, 또는 연습을 할 때 가끔 순간적인 기억 상실을 일으키곤 했다. 우울증 진단을 받은 그는 프로잭을 복용하게 되었으며 식생활도 바꿔야 했다. 게다가 수면제 없이는 잠도 잘 수 없었다.
결국 정규시즌의 1/3도 뛰지 못한채 오히려 루키 시즌보다 퇴보한 딜레는 덴버 너게츠로 트레이드 된다.
나름대로의 출장시간을 보장받으며 재기의 발판을 다진 딜레는, 1995-96시즌을 앞두고 다시 한 번 LA 클리퍼스로 이적한다. 비록 패배에 익숙한 팀이었지만 딜레는 개인적으로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부상의 악몽도 잊었지만 이번에는 연봉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220만$의 연봉이 너무 과하다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딜레는 1996-97시즌을 무적선수로 맞이하게 됐다.
그리고 96-97 시즌, 플레이오프를 앞둔 불스는 그를 영입하죠. 브라이언으로써는 불스라는 최고 인기팀에서 뛰어 자신의 몸 값을 높이려는 계산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불스 왕조의 센터로 9게임을 뛰면서 NBA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맛보죠.
다음 시즌에 그는 디트로이트와 7년간 4천 5백만불이라는 거액의 계약을 맺습니다.
그가 이름을 바이슨 딜레로 바꾼 것은 바로 이 시점이죠.
그랜트 힐과 함꼐 2년을 더 뛴 딜레는, 2년 동안 각각 16.2점-8.9리바운드, 10.5점-5.6리바운드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1999년, 딜레는 무려 나머지 3천 6백만불의 계약을 포기하고 농구계를 떠납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브라이언에게 농구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았어요. 나중에 97년에 시카고에서 우승 반지도 끼고, 또 디트로이트와 4500만불의 계약을 맺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는 거액을 포기하고 그냥 은퇴하고 말았어요."
이슬람교로 전향해 이름을 바꾼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뭔가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경기를 끝마치면 집으로 돌아가서 TV를 켭니다. 그러면 세계가 나한테 다가오죠."
"그리고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아침에 깨어 멍한 상태에서 뉴욕 타임스 신문이 눈에 들어오면, 나는 혹시 내가 뉴욕에 있는게 아닌가 하고 착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는 결코 평범한 농구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딜레는 항상 더 훌륭한 농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해왔지만, 농구는 그의 인생의 목표에 도달하는 하나의 과정의 불과했습니다.
"그에게 농구는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열정은 없었어요. 그는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정도 사이즈에 그정도 재능을 가진 선수를 저는 별로 본 적이 없어요."
전 덴버의 단장이었으며, 그를 이슬람으로 이끈 버니 비커스태프는 이렇게 그를 기억합니다.
딜레는 방랑자였고, 농구란 그에게 지루하고 따분한 반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거기다가 매 게임 그에게 내려지는 냉정한 평가들.....어떤 게임에서 그는 올스타 플레이어였지만 어떨 때는 매우 실망스럽곤 했습니다.
그를 둘러싼 모든 고통을 잊고 그를 편하게 해줄 곳, 그가 타히티로 간 이유가 그거였을지도 모릅니다.
바이슨 딜레(브라이언 윌리암스)는 농구 외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한결 같이 그가 농구에는 그다지 열정이 없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는 특히 예술과 음악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원정 경기를 떠날 때, 올랜도의 동료 선수들은 주로 팝이나 R&B, 랩 음악을 들었지만 브라이언은 비행기 한쪽 구석에서 혼자 소설을 읽거나 클래식 음악을 듣곤 했죠.
"브라이언은 정말 괜찮은 친구였죠. 그는 남들을 방해하지 않았어요. 항상 혼자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죠."
"그래서 옆에 있어도 아무도 그의 존재를 잘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는 절대 평범한 NBA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매우 섬세하고 예술적인 친구였죠. 아마도 그래서 그가 올랜도란 도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올랜도 시절 팀 동료였던 제프 터너는 처음 그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별로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저는 그냥 브라이언 답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가끔 아무 연락도 없이 조용히 사라졌다가 나타나곤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994년이었던가요? 딜레는 휴스턴의 농구 캠프에 운동화에 "Sand Creek"이란 단어를 쓰고 나타났습니다. 물론 동료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도무지 감도 잡을 수 없었죠.
그 사건은 1864년 콜로라도 민병대가 연방정부로부터 안전을 보장 받았던 163명의 인디안들을 학살한 사건이었고, 딜레는 그 일을 애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은퇴 후, 딜레는 레바논에서 잠시 정수 사업을 하기도 했고, 유럽으로 혼자 배낭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전세계를 여행했죠.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세계가 나의 집이고, 나는 그 집의 왕이다..." 그는 어떤 구속도 평가도 원치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었던 것이죠.
2002년 7월, 남태평양 타히티로 보트 여행을 떠난 그는 배의 선장, 여자 친구와 함께 실종됩니다.
그리고 그 용의자로는 바로 그의 친형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그의 형 다보드 마일스(케빈 윌리암스)는 딜레와 같이 보트를 탔었는데 멕시코에서 의식 불명으로 발견되었고 병원에 혼수 상태로 있다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타히티 경찰은 그가 딜레를 죽이고 자기가 딜레 행세를 하려 했다고 의심하고 있지만 진실은 아직 아무도 모르는 상태죠.
농구 선수로써도 특출했지만, 한 인간으로써도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바이슨 딜레, 무려 3천 6백만불이란 거액을 아무 미련없이 버리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나선 바이슨 딜레......
그는 자기가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를 얻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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