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명문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요즘 성적이 신통치 못한 뉴욕 닉스. 현재 자산 규모만 608 Million 달러인 이 부자구단은 1946년에 BAA 리그의 한 팀으로서 설립되었습니다. 닉스는 1950년에 넷 클리프튼이란 흑인선수와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리그에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리그 역사상 첫 흑인선수를 영입했던 이 구단은 그 이전인 1947년에 와따루 미사까라는 일본선수를 영입한 적도 있습니다.

 

파이널에 8번 진출했고, 70년과 73년에 걸쳐 두 번의 우승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구단입니다. 레이커스, 재즈와 더불어 아직까지 한 시즌에 60패를 해보지 않은 세 팀 중 하나인 닉스는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리그 MVP는 단 한 명 밖에 배출하질 못 했습니다. 하지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닉스 출신의 선수들은 무려 12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9명이 닉스 구단에 의해 영구결번이 되어 있습니다 - 월트 프래지어 (#10), 딕 바넷 (#12), 얼 먼로우 (#15), 딕 맥과이어 (#15, 감독), 윌리스 리드 (#19), 데이브 드부셔 (#22), 빌 브래들리 (#24), 패트릭 유잉 (#33), 레드 홀즈만 (#613, 감독, 613승을 거뒀다는 의미입니다). 이 중, 프래지어, 먼로우, 리드, 드부셔, 유잉 등 다섯 명과 제리 루카스는 역대 최고 50인에도 선정이 됐습니다.

 

 

 

1973년도 우승팀 사진입니다.

빌 브래들리 (24), 필 잭슨 (18), 데이브 드부셔 (22), 윌리스 리드 (19), 제리 루카스 (32) 등이 뒤에 서있고, 앞선에 헨리 비비 (17, 마이크 비비의 아버지), 윌트 프래지어 (10), 레드 홀즈만 감독,
얼 먼로우 (15) 등의 모습도 보입니다.

 

 

, 그러면 이제 제가 선정한 All-Time 뉴욕 닉스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타팅 5

 

포인트 가드 - 월트 프래지어 (Walt Frazier, 193cm, 1967~1977)

  

Walt Frazier vs Wilt Chamberlain
Walt Frazier vs Wilt Chamberlain by Vedia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1967 1라운드 드래프트 5번 픽으로 뉴욕에 둥지를 튼 프래지어는 All-NBA 팀에 6, All-NBA Defensive 퍼스트 팀에 7회 선정된 뉴욕 닉스 구단 사상 최고의 포인트 가드였습니다. 총 어시스트 수에서 아직도 깨지지 않는 닉스 구단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프래지어는 역대 포인트 가드 랭킹에서도 5위 안에 이름을 올리는 선수입니다.

 

커리어 평균으로 18.9, 5.9리바운드, 6.1어시스트, 1.9스틸, 49.0% 야투율을 기록한 프래지어의 플레이 스타일은 한 마디로 빨랐습니다. 포인트 가드로선 큰 편에 속했지만, 수비 스타일이 마치 고양이처럼 민첩했던 선수입니다. 프래지어는 장거리 외곽슛을 보유하지는 못 했습니다. 하지만,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나 미드레인지 점프슛. 턴어라운드 점프슛 등이 매우 정확했습니다. 화려한 묘기가 없이도 인기가 높았던 매우 효율적인 농구를 구사한 명 가드였습니다. 특히, 롤스로이즈를 몰고 다니며 항상 패션을 이끄는 모자와 외투 착용으로도 유명했던 레전드입니다. 1970년과 1973, 두 번에 걸쳐 우승의 영광을 누렸으며, 70년 파이널 7차전에선 36점에 19어시스트로 맹활약 했습니다.

 

 

슈팅 가드 - 얼 먼로우 (Earl "The Pearl" Monroe, 191cm, 1972~1980)

  

Calvin Murphy vs Earl Monroe
Calvin Murphy vs Earl Monroe by Vedia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스핀 무브와 헤지테이션 무브의 창시자, 얼 먼로우는 학창시절부터 필라델피아 시 길거리 농구의 신화로 알려져있던 인물입니다. 당시에 얻은 "블랙 지저스"라는 특이한 별명이 후에 덴젤 워싱턴 주연의 농구영화 'He Got Game'에서 레이 앨런의 영화 속 이름인 '지저스'로 인용되기도 했지요. 이 "흑인 구세주"의 농구인생은 화려했습니다.

 

1967년 볼티모어 불렛츠에 의해 전체 2번픽으로 드래프트된 먼로우는 같은 해 드래프트된 뉴욕 닉스의 월트 프래지어와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었습니다. 그래서 71~72 시즌 중간에 그를 닉스로 데려온 결정은 큰 모험이었습니다. 대학에서나 프로에서나 언제나 팀의 에이스였던 선수가 과연 자신의 평생 라이벌이었던 프래지어와 호흡을 맞출 수 있겠는가?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시각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매 경기 20개를 웃도는 야투시도를 해왔던 먼로우는 닉스에서 철저히 자신을 죽이며 팀의 일원으로 녹아들었습니다. 평균득점(커리어 평균 18.8)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대신 닉스는 리그 전체를 파죽지세로 몰아붙일 수 있는 막강한 전력을 갖출 수가 있었습니다. 체임벌린과 웨스트의 레이커스도, 압둘자바와 오스카 로벗슨의 벅스도, 하블리첵과 코웬스의 식서스도, 닉스의 프래지어-먼로우-윌리스 리드-데이브 드부셔 등이 안팎에서 터뜨리는 파상공세엔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73년도의 우승은 그의 이런 희생에 대한 보상이었습니다. 68년 신인왕이었던 먼로우는 69년엔 All-NBA 퍼스트 팀에도 이름을 올렸던 닉스 역사상 최고의 슈팅 가드입니다.

 

 

스몰 포워드 - 버나드 킹 (Bernard King, 200cm, 1982~1987)

 

Bernard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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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스 소속으로 뛴 시즌은 비록 4시즌 밖에 안 되지만, 80년대 초중반에 리그를 쥐고 호령했던 그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무시무시한 역대 최고급의 공격력은 그를 닉스 올타임 팀의 선발진에 놓고도 남음이 있게 합니다. 버나드 킹, 그는 '불운과 의지'의 사나이였습니다. 루키시즌에 이미 24.2, 9.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화려한 신고식을 한 킹은 프로 3년차 때 입은 심한 부상으로 선수생명에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각고의 노력 끝에 다음 시즌에 화려하게 재기하며 'Comeback Player of the Year' 상의 주인공이 됩니다.

 

82년에 닉스로 트레이드된 후부터 그의 공격력은 거의 "언터쳐블" 수준으로 급상승합니다. 특히, 84년 올스타 게임 직후, 두 게임 연속으로 50득점을 한 후의 킹은, 당시 최고의 포워드라 불리웠던 래리 버드나 줄리어스 어빙 조차도 "현 리그의 진정한 MVP는 버나드 킹이다"라고 표현을 할 정도의 괴물이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왕'이었죠. 현재 르브론 '킹' 제임스가 보여주는 리그 내 영향력이나 임팩트를 생각해보시면 얼추 비슷할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도 빠른 슛 타이밍을 자랑하던 그의 턴어라운드 점퍼는 압둘자바의 스카이 훅과 더불어 가장 막기 힘든 슛이었다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버드에게 84 MVP를 빼앗긴 킹은, 85년 시즌에도 평균득점 33점으로 승승장구 하고 있었으나, 시즌 55번째 게임에서 심각한 무릎부상을 당하고 맙니다. 28세의 나이로 최전성기에 들어가던 이 위대한 포워드의 전성기는 거기서 사실상 끝이 나고 맙니다. 수없이 많은 재활 끝에 1991년에 평균 28.4점을 기록하며 올스타와 All-NBA 팀에 뽑히는 재기에 성공하지만, 그의 나이는 이미 35세였습니다.

 

 

센터 - 패트릭 유잉 (Patrick Ewing, 213 cm, 1985~2000)

  

EWING /NEW YORK KNICKS - SAN ANTONIO SPURS 93-80

특별한 설명이 필요가 없는 선수죠. 국내에선 90년대 4대 센터 중 한 명이었다는 소리를 듣는 위대한 센터입니다. 대학 초년생 시절부터 이미 빌 러셀과 압둘자바의 대를 이을 재목이라는 평을 받았던 유잉은 대학 4년 동안 조지타운 대를 3번이나 파이널에 올려 놓은 전적도 있습니다. 유잉은 대학 최고의 센터란 소리를 들으며 뉴욕 시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프로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초창기는 그리 평탄치 않았습니다. 팀엔 이미 올스타에도 뽑힌 적이 있었던 센터, 빌 카트라이트가 버티고 있었고, 유잉은 자신만의 특별한 공격무기를 개발하지 못 했으며, 리바운드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 했습니다. 프로 5년차였던 1989~90 시즌에 맞춰서 턴어라운드 점퍼를 주무기로 장착했고, 또 이 때쯤 되서야 리바운드에도 눈을 떴지요. 이 때부터가 유잉의 전성기입니다. 문제는 같은 컨퍼런스의 마이클 조던과 불스도 그 때부터 전성기로 돌입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번번이 우승의 문턱에서 주저앉아야만 했던 유잉이었습니다. 94년 파이널에서도 6차전, 7차전 모두 간발의 차이로 승리를 내줬고, 이후에도 레지 밀러의 인디애나에게 무릎을 꿇는 등, 유잉은 실력에 비해 정말로 우승복이 없는 선수였습니다. 1986년 신인왕, 1990 All-NBA 퍼스트 팀을 포함 All-NBA 팀 총 10회 선정, 올스타 11회에 빛나는 유잉의 커리어 평균은 21.0, 9.8리바운드, 2.4블락샷입니다.

 

 

파워 포워드 / 센터 - 윌리스 리드 (Willis Reed, 206cm, 1964~1974)

  

Chamberlain vs Willis Reed
Chamberlain vs Willis Reed by Vedia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윌리스 리드는 뉴욕 닉스의 심장과 같은 선수입니다. 뉴욕의 올드팬들은 지금도 윌리스 리드를 닉스 구단 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센터로서는 단신이었으나 탄탄한 몸과 근성, 배짱으로 체임벌린, 빌 러셀, 압둘자바, 데이브 코웬스, 웨스 언셀드와 같은 동시대 최고의 센터들과의 싸움에서 항상 우위를 점했던 빅맨입니다. 큰 경기에서 유독 강했고,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레전드급 센터들과의 대결을 대부분 승리로 이끌었던 역전의 용사였습니다. 대퇴부와 허벅지 부상으로 출전이 불가능했던 70년 파이널의 7차전에서 절룩거리는 상태로 등장해 체임벌린과 점프볼을 했고, 닉스에게 경기의 첫 두 골을 선사하며 팀의 사기를 끌어올린 그를 가리켜 닉스팬들은 '수퍼맨'이라 불렀습니다.

 

65년 신인왕이기도 했던 리드는 70년과 73년 두 번의 우승 시즌에 모두 파이널 MVP를 탔으며, 70년엔 리그 MVP와 올스타게임 MVP로까지 선정되어 3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즌에 All-NBA Defensive 퍼스트 팀에도 이름을 올렸었지요. 리드는 커리어에 걸쳐 18.7, 12.9리바운드를 기록했는데, 블락샷이 기록이 되질 않았어서 그렇지 블라킹도 아주 잘했던 선수입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기동력도 좋았고, 훅 슛이나 중거리 슛에도 능했습니다. 무엇보다 풋워크가 좋아서 현란한 포스트업 무브로 상대팀 센터들을 페인트존 안에서 농락할 수 있는 기술까지 보유하고 있었죠. 닉스 사상 최고의 선수인 리드를 유잉과 함께 올-타임 팀 선발진의 더블 포스트에 추대합니다.

 

 

 


벤치 멤버들

 

 

파워 포워드 - 데이브 드부셔 (Dave DeBusschere, 200cm, 1968~1974)

 

Dave Debusschere
Dave Debusschere by Vedia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서 커리어의 상반기를 보낸 드부셔는 폴 사일러스와 함께 NBA 최초의 블루칼라워커 형 파워 포워드였다고 칭할 만한 원조 터프가이 중 하나였습니다. 사실, 사일러스와 드부셔의 골밑 몸싸움 대결은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하고 처절했었어요.

 

디트로이트 시절에도 All-Defensive 팀 제도가 있었다면, 아마도 커리어 내내 All-Defensive 퍼스트팀에만 오르다가 은퇴했을 명 수비수였기도 하지요. 69년부터 74년까지 6년 연속으로 All-Defensive 퍼스트팀에 선정된 직후 은퇴를 했습니다. 그러나 16.1, 11.0리바운드라는 커리어 평균이 말해주듯이 드부셔는 득점력도 뛰어난 수비수였습니다. 그를 디트로이트에서 데려오는 순간, 닉스의 우승 퍼즐이 다 들어 맞았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리드-프래지어-드부셔로 이어지는 삼각편대가 완성됐던 것입니다. 신장은 작았으나 체임벌린을 가장 잘 막았던 선수인 드부셔는 올스타에도 8회나 선정이 됐습니다.

 

 

슈팅 가드 - 앨런 휴스턴 (Allan Houston, 198 cm, 1996~2005)

 

BASKETBALL: Allan HOUSTON

닉스 구단에서 9시즌을 뛰고 은퇴한 휴스턴은 레지 밀러와 더불어 명실공히 90년대 최고의 외곽슈터였습니다. 커리어 3점 성공률이 40%를 넘는 휴스턴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견고한 슈팅 폼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2000년과 2001, 2년 연속으로 올스타에도 선정된 훌륭한 슈팅 가드였습니다.

 

1999년엔 8번 시드의 닉스를, 대들보인 유잉 없이, 스프리웰, 래리 존슨과 함께 파이널로 견인한 바도 있지요. 닉스의 라이벌, 마이애미 히트를 1라운드 5차전에서 회심의 버저비터 중거리 슛으로 꺾고 주먹을 불끈 쥐었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국내 팬들도 많으실 겁니다. 휴스턴의 커리어 평균은 17.3점이고 플레이오프 평균은 19.3점입니다.

 


콤보 가드
- 존 스탁스
(John Starks, 195cm, 1990~1998)


패트릭 유잉의 전성기와 함께 했던 열정의 가드, 존 스탁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식품점 배달원을 하며 생활하다가 뒤늦게서야 오클라호마 주립대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NBA에 드래프트되지도 못 했고, 25세가 되던 1990년에 뉴욕 닉스의 트라이 아웃에 참가해서 눈에 띄이게 됐습니다. 연습시합 중 유잉의 위로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시도하던 찰나에 유잉이 밀쳐내면서 무릎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부상으로부터의 완쾌가 지연되면서 어영부영 닉스의 멤버가 된 그는 92~93 시즌부터 선발진으로 승격이 됩니다. 역시 '인생 한 방' 입니다.

 

숱한 명승부를 연출해내며, 닉스의 백코트를 이끈 스탁스는 94년엔 올스타에, 97년엔 올해의 식스맨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3점이 매우 뛰어난 선수였으나, 94년 파이널 6차전 막판, 회심의 슛이 올라주원에게 블락을 당했고, 7차전에선 최악의 야투율을 보여서 보기에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스윙맨 - 빌 브래들리 (Bill Bradley, 196cm, 1967~1977)

  


by Jeffrey Guterma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브래들리는 명문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수재였습니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으로부터 장학생 자격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까지 했던 인물입니다. 대학시절엔 3년 연속으로 All-America팀에 선정되고, 65년엔 대학 MVP로까지 선정됐습니다.

 

프로 전 커리어를 뉴욕 닉스에서만 보냈던 브래들리는 수비력과 패싱력이 뛰어난 스몰 포워드였습니다 (대학시절엔 가드였습니다). 특히, 속공 상황에서의 연결고리 역할을 누구보다 잘 수행했으며, 중장거리 뱅크샷이 주특기였던 선수입니다. 70년과 73년 우승시즌 때 팀에 없어서는 안 되었을 감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파워 포워드 - 찰스 오클리 (Charles Oakley, 206cm, 1988~1998)

  


유잉이 카트라이트와 포지션이 겹쳐있는 비효율적인 라인업에 카트라이트 대신 진정한 블루칼라워커 리바운드로서 영입된 빅맨이었죠. 88년에 오클리가 팀에 합류하자마자 닉스의 성적은 전년도의 38승에서 52승으로 훌쩍 뛰었고, 유잉은 자유롭게 자신의 센터 역할에만 충실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클리는 꾸준히 두자릿수 리바운드를 잡아주며 유잉의 보디가드 역할을 해주었고, 자신만의 터프한 수비력도 꾸준히 향상시켜 나갔습니다. 94년엔 올스타와 All-Defensive 퍼스트팀에도 선정이 됐습니다. 내구성이 좋아서 웬만하면 부상을 당하는 일이 없던 오클리는 닉스의 90년대 중흥에 반드시 필요했던 선수였습니다.

 

 

포인트 가드 - 마크 잭슨 (Mark Jackson, 186cm, 1987~1992, 2000~2002)

  


마크 잭슨은 닉스 구단에서 총 6시즌 반을 뛰었던 선수로서, 유잉, 오클리와 함께 닉스를 플레이오프 컨텐더로 만들었던 정통 포인트 가드였습니다. 루키시즌에 이미 13.6, 10.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올해의 신인왕'을 수상했는데, 이는 1라운드 18번픽으로 뽑힌 선수로선 역사에 남을 업적이었습니다.

 

자유투를 던지기 직전 림을 향해 팔을 뻗어보며 마치 거리를 재는 듯한 이상한 습관을 갖고 있기도 했지만, 그의 패싱력은 최고였습니다. 특히 뒤에서 따라오는 선수에게 정확하게 넣어주는 No-look 패스가 일품이었죠. 89년에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파워 포워드 / 센터 - 제리 루카스 (Jerry Lucas, 203cm, 1971~1974)

  


by Jeffrey Guterma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1960년 로마 올림픽 금메달의 주역, 제리 루카스는 자신의 커리어 말년 세 시즌만 닉스와 함께 했습니다. 한 구단의 올-타임 팀에 넣기엔 활약한 시즌이 많지가 않았지만, 닉스가 리그를 장악했던 70년대 초반,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상징성때문에 백업 빅맨으로 이 팀에 그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시즌 평균 20득점, 20리바운드를 두 번이나 기록했던 신시내티 로열즈 시절이 선수로서의 최전성기였으나, 닉스 시절에도 윌리스 리드와 데이브 드부셔를 보좌하며 리그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프런트라인을 구축하는 데에 일조를 했습니다. 72년 시즌 초반에 리드가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하자, 팀의 주전 센터로서 평균 17, 13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파이널로까지 이끌기도 했지요. 루카스는 초창기엔 훅 슛과 플로터 등이 주 공격루트였는데, 닉스 시절엔 중장거리 점프슛까지 장착을 했었습니다. 체임벌린, 러셀 등과 동시대를 뛰었으면서도 All-NBA 팀에 5, 올스타에 7회 선정됐으며, 1996년에 선정된 역대 50인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 레전드 빅맨입니다.

 

 

 

이 외에도 닉스를 거쳐간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습니다. 초창기 선수로는 리치 게린, 해리 갤러틴, 리차드 맥과이어, 밥 맥카두, 마이클 레이 리차드슨, 빌 카트라이트 등이 있겠고, 최근 선수로는 래리 존슨, 라트렐 스프리웰, 스테판 마버리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닉스에서 뛴 햇수가 너무 적었거나, 구단에 미친 임팩트 면에서 위에 올린 선수들에 비해 약간 밀린다고 판단되어서 제외시켰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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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draft07
nbadraft07 by Paulo C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마이클 조던, 샘 카셀, 레지 밀러, 루크 잭슨, 마이클 올로워캔디..

이 다섯명의 공통점은 딱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들 모두 NBA 선수들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이 모두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입성했다는 사실이다.

 

마이클 조던은 3픽으로 시카고에 뽑혀 NBA에 진출해 농구 황제가 되었고, 샘 카셀은 1라운드 치고는 비교적 낮은 24번째로 뽑혔지만 꽤나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11번픽으로 뽑힌 레지 밀러는 인디애나 팬들의 야유를 받으며 NBA에 입성했지만 명예의 전당 후보로 거론될만큼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냄으로써 팬들이 틀렸다는것을 증명해냈고, 루크 잭슨과 마이클 올로워캔디는 높은 순위와는 다르게 부상과 실력부족등의 이유로 NBA 무대에서 사라졌다.

2005 IPL 500 Festival Parade
2005 IPL 500 Festival Parade by jenniferrt66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데뷔 당시 인디애나 팬들에게 많은 야유를 받았던 레지 밀러, 그러나 그는 현재 인디애나의 레전드다.

이렇듯 드래프트를 통해 많은 신인들이 등장하지만
,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는 선수들이 있는 반면, 끝도없이 추락하는 선수들도 있기 마련이다.

 

NBA 드래프트는 또한 서로 경쟁하는 신인들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예를들어 드래프트 1번픽으로 뽑힌 선수는 프로 지망생중 가장 유망한 선수라고 할 수 있으며 2라운드 후반대에 뽑힌 선수들은 경쟁자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NBA 드래프트에 뽑힌 것 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드래프트 순위가 선수들의 잠재력이나 실력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언제나 실수하기 마련이며 결국 NBA 드래프트 역시 NBA 스카웃들의 능력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드래프트 순위는 기대치의 많고 적음의 척도이지 선수들의 잠재력과 재능의 절대적 기준은 될 수가 없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은 1순위가 아닌 3순위로 뽑혔으며, 현재 NBA 최고의 플레이어인 코비 브라이언트 역시 1픽이 아닌 13번픽으로 뽑혔다. 현재 올랜도의 그저그런 백업 센터인 아도날 포일은 8번픽으로 NBA에 입성했다. 그의 커리어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높은 순번이다.

 

낮은 순위로 뽑힌 선수들이 스타가 되고, 높은 기대치를 받았던 선수들이 사라지는 현상이 NBA 드래프트의 묘미가 아닐까. 그래서 필자는 이번 기회에 NBA 드래프트의 묘미를 좀더 자세하게 펼쳐보려 한다.

 


1
번픽 출신이 MVP가 될 확률은?

 

드래프트 1순위는 대개 최약체 팀이 보유하기 마련이다. 물론 드래프트 로터리를 통해 그 순위가 변경되기는 하지만 그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다. 잠시 드래프트 로터리를 설명하겠다.

해당
NBA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14개의 팀들은 추첨을 통하여 다음 시즌 NBA 드래프트 순위를 정하게 된다. 14개 팀들 중 승률이 낮은 팀일수록 1순위에 당첨될 확률이 높게 되어있다. 하지만 종종 최저승률을 보유한 팀이 1순위에 당첨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드래프트 1순위를 보유한 팀은 리빌딩을 필요로 하는 팀이라는 것이다. , 팀의 재건을 위해 팀의 중심이 될만한 선수를 드래프트 1순위로 뽑는것이 정설이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팀 던컨,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앨런 아이버슨이 좋은 예다.

 

우선 1980년부터 2005년까지의 NBA 드래프트 1순위들을 보자.

(필자는 최근 25년을 통계의 토대로 사용했다)

 

2005

MIL

Andrew Bogut

Utah

2004

ORL

Dwight Howard

Southwest Christian Acad. (GA)

2003

CLE

LeBron James

St. Mary / St. Vincent (ohio) HS

2002

HOU

Yao Ming

Shanghai Sharks

2001

WAS

Kwame Brown

Glynn Academy, HS

2000

NJN

Kenyon Martin

Cincinnati

1999

CHI

Elton Brand

Duke

1998

LAC

Michael Olowokandi

Pacific

1997

SAS

Tim Duncan

Wake Forest

1996

PHI

Allen Iverson

Georgetown

1995

GSW

Joe Smith

Maryland

1994

MIL

Glenn Robinson

Purdue

1993

ORL

Chris Webber

Michigan

1992

ORL

Shaquille ONeal

Louisiana State

1991

CHA

Larry Johnson

Nevada-Las Vegas

1990

NJN

Derrick Coleman

Syracuse

1989

SAC

Pervis Ellison

Louisville

1988

LAC

Danny Manning

Kansas

1987

SAS

David Robinson

Navy

1986

CLE

Brad Daugherty

North Carolina

1985

NYK

Patrick Ewing

Georgetown

1984

HOU

Akeem Olajuwon

Houston

1983

HOU

Ralph Sampson

Virginia

1982

LAL

James Worthy

North Carolina

1981

DAL

Mark Aguirre

DePaul

1980

GSW

Joe Carroll

Purdue

 

이들 중 과연 시즌 MVP에 선정된 선수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정답은 바로 르브론 제임스, 팀 던컨, 샤킬 오닐, 앨런 아이버슨, 하킴 올라주원, 데이빗 로빈슨 등 6명밖에 안된다. 최근 25년간 1순위 출신들 중 MVP가 될 확률은 대략 24%였다. 물론, 2000년대 드래프트 1순위 출신 선수들은 아직도 나이가 젊기때문에 이것이 정확한 통계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최고의 유망주라도 최고의 선수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고는 자신있게 말 할수 있을 것 같다.


Tim Duncan
Tim Duncan by themmg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1
번픽 출신과 신인왕의 관계

 

1순위로 뽑힌 신인들이 신인왕을 탈 확률을 한번 알아보자.

랄프 샘슨, 패트릭 유잉, 데이빗 로빈슨, 데릭 콜맨, 래리 존슨, 샤킬 오닐, 크리스 웨버, 앨런 아이버슨, 팀 던컨, 엘튼 브랜드, 르브론 제임스까지 총 11명이 최근 25년간 (1980년부터 2005년까지) 1순위 출신으로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데이빗 로빈슨은 1987년에 1순위로 뽑혔지만 군복무로 인해 1989년에 데뷔했다) 1순위 출신들이 MVP보다는 신인왕을 탈 확률이 더 높은것이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MVP NBA 에 소속된 모든 선수들과 경쟁을 해야 하지만 신인왕 수상은 1년차들만이 경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숫자부터 차이가 나기때문에 확률적 비교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1순위라고 무조건 신인왕을 탄다는 공식 역시 성립이 불가능하다.

1987-1988 시즌의 신인왕인 마크 잭슨은 1987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8번째로 뽑혔다. 2002-2003 시즌의 신인왕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역시 2002 NBA 드래프트 1라운드 9번픽이었다. 불행하게도, 2라운더 출신의 신인왕은 없지만, 드래프트 순위가 낮다고 해당 선수의 능력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진 비운의
1라운더


이제는 이야기의 초점을
1순위 픽에서 좀더 포괄적인 1라운드로 바꿔보겠다.
1라운드 출신 선수들의 성공시대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에, 높은 기대치에 비해 너무나도 쉽게, 너무나도 안타깝게 무너져 내린 1라운드 출신 선수들의 이야기를 좀더 해보려 한다.

 

2002 1라운드 2번픽으로 시카고 불스에 입단한 제이슨 윌리엄스 (훗날 제이 윌리엄스로 개명)는 성공적인 루키 시즌을 보냈다. 신인으로써 트리플 더블까지 기록한 그는 당시 최약체 팀이었던 시카고 불스의 재건을 이끌 재목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 해 오프시즌 도중 윌리엄스는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왼쪽 무릎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고, 2003 NBA 드래프트에서 불스는 윌리엄스의 공백을 위해 포인트가드 커크 하인릭을 드래프트 하게 된다. 신인계약 조항에 오토바이에 대한 금지 조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 사고를 냈던 제이 윌리엄스는 결국 웨이브 당하면서 NBA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물론 간간히 그는 컴백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무산되고 말았다)




1986년으로 돌아가 보자. 1986 NBA 드래프트에서 2번픽으로 전년도 챔피언인 보스턴 셀틱스에 뽑힌 렌 바이어스가 드래프트 직후 마약 (코카인으로 추정됨) 과다복용으로 인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렌 바이어스는 NBA 자체에서 밀어줬던 유망주이기도 했다. 마이클 조던의 라이벌로 유명세를 떨쳤던 그는 프로 계약을 맺기도 전에 아이다스와 전속계약을 맺을만큼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선수였다. 하지만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때문에 바이어스는 그 재능의 꽃을 피우지도 못한채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1986년은 저주의 드래프트라고도 불리게 된다. 바이어스 바로 다음으로 뽑힌 크리스 워시번 역시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해 2년만에 NBA에서 영구 퇴출당했기 때문이다. 약물덕분에 NBA는 두명의 안타까운 재능을 잃고 말았다. 물론, 워시번의 NBA에서의 활약은 미미했지만 말이다.

 

레지 루이스 역시 젊은 나이에 생애를 마감한 안타까운 케이스다. 1988 22번째로 보스턴 셀틱스에 입단한 그는 줄곧 셀틱스에서 뛰어왔다. 농구 명문과는 거리가 먼 노스웨스턴 대학출신의 이 포워드는 2년차때부터 두각을 보이며 셀틱스의 주축 선수로 자리매김했지만 1993년 여름에 갑작스런 호흡곤란 증세에 이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특히 그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992년에 올스타로 선정되었기에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더욱 더 안타까워 보일수밖에 없었다. 루이스의 사망은 셀틱스에게는 악몽이었으며, NBA로써도 재능있는 선수를 잃었기에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훗날 그의 등번호는 셀틱스에서 영구결번 되었는데 이는 보스턴이 우승팀 멤버가 아닌 선수의 번호를 영구결번시킨 두번째 케이스였다. 그 첫번째는 바로 에드 맥컬리.

 

농구 외적의 문제들로 인해 사라진 선수들이 있는반면 농구 실력 자체의 문제때문에 사라진 선수들 역시 많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는 바로 1998 LA 클리퍼스가 1번픽으로 뽑은 마이클 올로워캔디다. 올로워캔디는 기본기 부족이라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축복받은 사이즈와 젊은 나이때문에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국 그 잠재력을 단 한번도 뿜어내지 못한채 현재 NBA에서 모습을 감춘지 오래다.

 

2004 1라운드 8번픽으로 토론토에 입단한 라파엘 아라우죠 역시 올로워캔디와 비슷한 케이스다. 신체적 사이즈와 잠재력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아라우죠는 몇시즌 NBA에서 버티지 못한 채 자취를 감췄다.

 

필자에게 가장 아쉬운 1라운더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조나단 벤더라고 말할 것이다.

1999 5번째로 드래프트에 호명된 축복받은 운동능력의 소유자는 힘과 기술을 둘다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어떤 이는 벤더를 제 2의 페니 하더웨이, 또 다른 이는 제 2의 케빈 가넷이라고 불렀지만, 벤더는 결국 둘다 되지 못하고 계속되는 부상에 견디지 못해 2006년에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이 외에도 높은 드래프트 순위에 비해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NBA를 떠난 선수들은 수없이 많다. 그 이유가 어떠하던, 이는 드래프트 순위가 NBA 루키들의 실력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NBA
드래프트에 대한 필자의 시각

 

이미 언급했듯이 필자는 NBA 드래프트 순위가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순위가 높을수록 해당 선수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높아진다. 하지만 순위가 절대로 기량의높고 낮음을 결정할 수 없다. 높은 순위로 드래프트된 신인들 중 성공한 케이스가 있는 반면, 실패한 케이스 역시 많기 때문이다. 또한, 각 팀이 필요로하는 부분들이 다르기 때문에 드래프트 순위의 변동은 쉽게 볼수 없는 현상도 아니다.

 

결국 NBA 드래프트 순위는 해당 선수의 절대적 실력이 아닌, NBA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주관적 평가에 따른 순위라고 하는것이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

 

NBA 드래프트 순위에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해도, NBA 드래프트 그 자체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진 무대다. 프로 지망생들에게는 꿈과 같은 무대이며, 구단들에게는 전력을 보강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또한,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기대하는 팬들에게는 드래프트 순위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스포츠는 항상 예측 가능하지 못한 반전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NBA 드래프트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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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헤드코치 2009. 10. 1. 17:24

댈러스 빅3 해체 그 이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여러분은 댈러스 매버릭스의 빅3라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아마 대부분 덕 노비츠키-제이슨 테리-조쉬 하워드나 노비츠키-하워드-제이슨 키드를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댈러스의 빅3의 간판은 노비츠키-마이클 핀리-스티브 내쉬의 차지였다. 엄청난 화력으로 NBA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던 ‘원조 빅3’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해보았다.
 

City of Champs
City of Champs by Janz Images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미약했던 시작

댈러스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선수는 핀리였다. 1996-1997시즌 도중에 피닉스 선즈에서 이적해온 핀리는 미래가 밝은 선수였다. 댈러스가 3J 시대의 종말을 고하면서 그 후를 이끌어갈 선수로 선택한 인물이 바로 핀리였다. 댈러스의 기대대로 핀리는 무럭무럭 성장해나갔다. 하지만 핀리 혼자만의 힘으로 팀을 쇄신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어느새 핀리는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지만 팀 성적은 늘 하위권을 맴돌았다.

댈러스는 변화를 모색했다. 팀이 좀 더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해선 핀리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조력자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데려온 인물들이 캐나다 출신의 내쉬와 독일에서 건너온 노비츠키였다. 1998-1999시즌 내쉬와 노비츠키 그리고 핀리는 처음 손발을 맞추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빅3의 윤곽은 그리 뚜렷하지 않았다. 팀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건 1999-2000시즌부터였다.  

특히 노비츠키의 성장세가 놀라웠다. 노비츠키는 루키 시즌과 비교해 일취월장해진 기량을 과시하며 유럽 농구의 위상을 만방에 알렸다. 팀 성적 또한 노비츠키의 활약에 힘입어 1989-1990시즌 이후로 가장 좋은 승률을 기록하며 내년 시즌 전망을 밝게 했다. 희망을 가득안고 맞은 2000-2001시즌, 댈러스는 예전의 바닥을 전전하던 그 팀이 아니었다.

인상적인 소포모어 시즌을 보냈던 노비츠키는 더욱 강력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핀리 역시 건재했다. 특히 눈여겨 볼만 했던 것은 내쉬의 발전이었다. 댈러스로 트레이드 된 후 첫 두 시즌까지 변변치 못한 성적을 올렸던 내쉬는 2000-01시즌을 기점으로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수준급 포인트가드로 올라섰다.

댈러스 빅3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올렸다.


리그 최고의 공격력 그리고 한계

핀리-노비츠키-내쉬의 조합은 가히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했다. 댈러스와 상대하는 팀들은 항상 100점 이상의 실점을 각오해야 했다. 이들을 막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 선수가 펼치는 다양한 기술과 공격은 많은 팀을 공포에 떨게 했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빅3의 위상은 커져갔고 댈러스는 서부지구를 대표하는 팀으로 급부상했다. 2000-2001시즌 전까지 무려 10년간 플레이오프는 꿈도 못 꿨던 팀이 단숨에 우승을 노리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물론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 데는 무엇보다 빅3의 공헌이 컸다. 어디에도 그들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빅3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공격 무기로서 상대 팀을 무차별하게 폭격했다. 과거 3J 시절과 비교해 봐도 전혀 꿀릴 것이 없었다. 빅3는 댈러스의 희망이자 얼굴이자 미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댈러스와 빅3는 2%가 부족했다. 공격 지향적인 팀이 그렇듯 우승 문턱에서 항상 고배를 마셨다. 사실 댈러스는 공수 밸런스가 좋은 팀이 아니었다. 뛰어난 공격력에 비해 약한 수비력은 중요한 순간에 댈러스의 발목을 잡았다. 단기전 승부에선 날카로운 창뿐만 아니라 단단한 방패도 필요했다. 공격에 올-인한 댈러스의 스타일은 매번 실패를 맛보게 했다.

우승권에 점점 멀어지자 댈러스는 빅3 해체라는 단호한 결정을 내린다. 제일 먼저 팀을 나간 선수는 내쉬였다. 내쉬는 2003-2004시즌이 종료된 후 피닉스로 팀을 옮긴다. 다음 차례는 핀리였다. 핀리는 내쉬가 팀을 나간 지 딱 한 시즌 만에 같은 州에 있는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이적한다. 2005-2006시즌이 시작할 때 쯤 남은 선수는 노비츠키가 유일했다. 댈러스는 팀의 사령탑 역시 돈 넬슨에서 에이버리 존슨으로 교체하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했다.

BASKETBALL/VORRUNDE: WM 2002, GER - USA 87:104


세 남자의 엇갈린 운명

재밌는 건 그 다음부터다. 서로 다른 팀에서 각자의 길을 걸어간 세 선수의 운명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간다. 우선 가장 충격을 안겨준 선수는 내쉬였다. 내쉬는 피닉스로 이적하자마자 팀에 전 시즌 대비 32승을 더 안겨주며 생애 첫 MVP 수상은 물론이고 리그의 트렌드까지 주도하는 영향력을 과시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쉬는 아마레 스타더마이어가 시즌 아웃 된 다음 시즌에도 팀을 54승으로 이끌며 리그 최고의 포인트가드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특이하게도 내쉬는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댈러스를 벗어나면서부터 더욱 일취월장한 기량을 뽐내며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특히 30대에 접어든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따름이었다.

노비츠키도 오히려 내쉬와 핀리가 팀을 옮기고 나서야 눈에 띌 만 한 활약을 보여줬다. 노비츠키는 내쉬와 핀리없이 맞이한 첫 시즌에 생애 첫 파이널 무대를 밟으며 괄목할 만 한 성과를 보여줬다. 마이애미 히트와의 대결에서 시리즈를 2-0까지 몰고 가며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리는 듯 했으나 뒷심 부족으로 스윕패를 당해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하지만 다음 시즌 노비츠키는 더 강력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난 시즌 준우승의 아픔을 되풀이하지는 않겠다는 듯 팀을 리그 전체 1위로 이끌며 굳은 각오를 보여줬다. 하지만 노비츠키의 꿈은 단 플레이오프 1라운드 만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옛 은사인 넬슨이 이끄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철저히 공략당하며 허무하게 시리즈를 내주고 만 것이다. 그 이후로 노비츠키는 여전히 변함없는 기량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우승의 적기를 놓친 팀들이 그렇듯 다시 패권에 도전하기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핀리 역시 샌안토니오로 둥지를 옮기고 나서 드라마틱한(?) 발자취를 보여주었다. 샌안토니오로 오고 나서는 출장시간도 줄고 역할도 축소되었지만 정작 우승은 제일 먼저 맛봤다. 2007년, 다행히 샌안토니오의 마지막 홀수 해 우승 징크스의 수혜자(?)가 되며 데뷔한 지 12시즌 만에 첫 우승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핀리 또한 빅3가 해체되고 나서 오히려 더 잘 풀리는(?) 결과를 맞았다. 물론 개인 성적은 떨어졌지만 어찌 그것을 우승에 비할 수 있을까.

이처럼 세 선수는 댈러스 빅3가 해체될 당시에 많은 팬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조금은 특별한 인상을 남기며 새로이 기억되고 있다. 내리막길을 걸을 것만 같았던 내쉬는 갑자기 약진했고, 노비츠키는 극단의 부침을 보였으며, 핀리는 롤-플레이어로 완연히 자리를 잡으면서 우승을 낚았다. 또한 내쉬와 노비츠키는 MVP를 세 번이나 나눠갔기도 했다. 여기서 누가 더 나은 경력을 쌓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건 여전히 세 선수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고 각자가 택한 노선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다. 이는 지금의 그들이 있기까지 빅3로 뭉쳤던 그 시절의 조각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주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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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HELTANT79 2009. 9. 28. 16:57

칠전팔도-클리블랜드의 FA 영입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클리블랜드는 오프시즌이 시작될 무렵 지니고 있던 가장 큰 트레이드 자산인 벤 월러스/사샤 파블로비치의 만기계약 카드를 샤킬 오닐 영입에 올인했고,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소위 '알박기'에 썼다. 대니 페리 단장이 일부러 말할 것도 없이 누구든지 클리블랜드가 오프시즌 FA시장에서 활발히 쇼핑에 나설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드래프트를 마감한 시점에서 클리블랜드가 FA 영입에 쓸 수 있었던 '실탄'은 다음과 같았다.

  • 미드레벨 익셉션(약 5.8백만 달러)
  • 바이애뉴얼 익셉션(약 2백만 달러)
  • 베테랑 미니멈 익셉션(최대 약 1백만 달러)

클리블랜드는 이들 카드를 이용해 장신 윙 플레이어, 득점이 가능한 파워포워드, 베테랑 가드 등을 영입하려 했다. 또한 옵트아웃을 통해 비제한 FA가 될 수 있었던 앤더슨 바레장과의 재계약도 성사시켜야 했다.

클리블랜드가 FA 시장을 노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선수들이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중 상당수는 실제로 클리블랜드와 협상을 했고, 영입 성사 직전까지 간 선수들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대내외적인 요인 때문에 클리블랜드는 창단 이후 가장 분주한 여름을 보내야 했다. 이번 순서에서는 전력 강화를 위해 페리 단장이 FA 시장에서 겪은 일들을 살펴본다.



Mavs-Bucks


찰리 빌라누에바


인사이드의 지배자인 오닐이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자 가장 먼저 거론된 이름은 찰리 빌라누에바(당시 밀워키 벅스)였다. 그동안 오닐과 호흡을 맞춘 파워포워드들은 모두 중거리슛이 가능한 선수들이었다. 올랜도 시절의 호레이스 그랜트, 레이커스 시절의 그랜트와 로버트 오리, 마이애미 시절의 유도니스 하슬렘은 모두 오닐이 만들어준 미들레인지 공간을 잘 활용하며 우승을 일궈낸 '스트레치 파워포워드'였다. 클리블랜드는 주전 파워포워드 바레장의 미들슛 능력이 전무했기 때문에, 오닐 영입의 이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스트레치 파워포워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211cm의 신장에 3점슛까지 가능한 빌라누에바는 이런 클리블랜드의 요구에 딱 맞는 선수였다. 특히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클리블랜드를 침몰시킨 올랜도의 라샤드 루이스에게는 최적의 대항마로 보였다. 팀의 에이스 르브론 제임스와는 어린 시절부터 또래 친구였으며 모리스 윌리암스와도 밀워키 시절 절친한 사이였음이 알려지며 빌라누에바 영입 가능성은 높아져갔다. 빌라누에바 역시 오닐이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된 직후 '클리블랜드는 나같은 선수를 원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는 등 클리블랜드 행에 큰 관심을 보였다. 퀄리파잉 오퍼 권한을 가졌던 밀워키가 재정 압박때문에 빌라누에바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자 클리블랜드가 5.8백만 달러의 미드레벨 익셉션을 모두 써서 빌라누에바를 영입할 것이란 추측이 기정사실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의 빌라누에바 영입 시도는 의외의 암초를 만나 좌절됐다. 당초 빌라누에바에게 미드레벨 익셉션 금액 이상을 제시할 수 있는 팀은 네 팀이었다. 이중 파워포워드가 필요한 팀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였지만 조 듀마스 디트로이트 단장은 유타의 올스타 파워포워드 카를로스 부저 영입에 주력하고 있었다. FA가 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던 부저는 새 팀과 거액의 계약을 맺을 걸로 예상되고 있었기 때문에, 클리블랜드의 빌라누에바 영입 경쟁 팀에 애시당초 디트로이트는 포함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FA 시장에서 원하는 만큼의 큰 계약을 이끌어낼 수 없음을 알게 된 부저가 유타 잔류를 선언하자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부저 영입 실패로 돈 쓸 곳이 없어진 디트로이트가 빌라누에바에게 연평균 8백만 달러의 장기계약을 제시했고, 벌써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은 것처럼 말하던 빌라누에바는 망설임 없이 디트로이트를 선택했다. 아직 젊은 빌라누에바는 금전적인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우승권 팀으로 갈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FA 시장에서 처음으로 노린 빌라누에바의 영입에 실패하면서 클리블랜드의 FA영입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Pistons vs. Cavaliers


라쉬드 월러스/안토니오 맥다이스

어제의 숙적이 오늘의 동지로? 클리블랜드의 오랜 라이벌 디트로이트의 골밑을 지난 시즌까지 책임졌던 월러스와 맥다이스도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이들은 빌라누에바와 같은 수준의 중거리슛 능력을 지닌데다가 빌라누에바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수비력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어차피 오닐을 영입한 시점에서 클리블랜드의 목표는 '지금 당장 우승하기'가 되었으므로, 이들에게 2년 이상의 미드레벨 익셉션 계약을 제시해서 오닐의 파트너로 쓸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FA 시장이 시작되 전부터 클리블랜드가 월러스에게 2년 계약을 제시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페리 단장은 월러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맥다이스에게는 다소 관심이 있었으나 미드레벨 익셉션을 모두 쓸 생각은 없었다. 보스턴 셀틱스의 빅3가 닥 리버스 감독과 함께 월러스를 방문해 보스턴행을 설득하는 동안 페리 단장은 월러스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라스베거스에서 다음에 언급될 론 아테스트와 트레버 아리자 스카우트에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맥다이스에게도 2백만 달러 가량의 바이애뉴얼 익셉션을 쓸 생각은 있었지만 미드레벨 익셉션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월러스는 보스턴과, 맥다이스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다년계약을 맺으며 리그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Pacquiao and Cotto Press Conference


론 아테스트/트레버 아리자


FA 협상기간 첫 주동안 침묵을 지키던 페리 단장은 미국 독립기념일 주말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이크 브라운 감독과 함께 라스베거스로 날아가 여러 FA를 만난 것이다. 조쉬 칠드레스, 션 매리언 등 여러 이름이 나왔지만 페리 단장이 진심으로 노린 것은 론 아테스트(당시 휴스턴 로케츠)와 트레버 아리자(당시 LA 레이커스)였다. 두 선수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원소속팀을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페리 단장은 둘 중 하나에게 미드레벨 익셉션 전액을 제시하면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2미터대의 신장으로 강력한 수비력을 지닌 이 두 선수는 클리블랜드의 약점 중 하나인 장신 윙플레이어 부재를 말끔히 해결해줄 수 있을 걸로 생각되었다.

페리 단장은 먼저 아테스트와 접촉했다. 라스베거스에서 아테스트의 매니저와 만난 페리 단장은 미드레벨 익셉션 전액을 제시했다. 그런데 여기에 레이커스가 끼어들었다.
라마 오덤의 재계약을 앞둔 레이커스는 아리자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대신 아테스트와 접촉했다. 레이커스가 제시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은 클리블랜드와 같은 미드레벨 익셉션 전액 뿐이었다. 아테스트 급의 선수를 잡기에는 다소 부족한 금액이었으나 레이커스는 계약을 제안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아테스트 본인이 진작부터 레이커스행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곤 했기 때문이다. 오덤과 죽마고우이자 래퍼이기도 한 아테스트는 오덤과 헐리우드가 있는 LA를 동경하고 있었다. 2008 파이널에서 레이커스가 패배한 직후 샤워실에 들러 코비에게 '너를 우승시켜주겠다'고 말한 후 사라진 일화도 있었다. 아테스트는 클리블랜드행도 진지하게 고려했으나 결국 레이커스행을 선택했다. 오닐의 클리블랜드 입단식이 열렸던 6월 2일의 일이었다.

이제 레이커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아리자는 클리블랜드를 비롯한 여러 팀과 협상을 벌였다. 클리블랜드는 아테스트 때와 똑같은 미드레벨 익셉션 전액을 제시했고, 주전 스윙맨 트레이스 맥드래디의 복귀가 불투명한 휴스턴 역시 똑같은 금액을 제시했다. 야오 밍까지 부상당한 휴스턴은 우승 전력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전년도 우승팀 출신 아리자가 승리를 위해 클리블랜드를 선택할 것이란 예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이번에도 헛물을 켰다. 아리자가 휴스턴행을 선택한 것이다. 올여름 FA 시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계약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판단한 아리자는 다음 계약을 위해 조금이라도 많은 역할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우선시했고, 주전으로 나오더라도 르브론, 모리스 윌리암스, 오닐에 이어 네 번째 옵션에 불과할 클리블랜드보다는 팀의 기둥인 야오 밍과 맥그래디의 공백으로 많은 역할을 확보할 수 있는 휴스턴 쪽이 더 매력적이었다.

금전 문제도 클리블랜드의 발목을 잡았다. 클리블랜드와 휴스턴이 제시한 계약 조건은 5년간 34백만 달러로 같았지만, 소득세율 차이때문에 실수령액에서 차이를 보인 것이다. 클리블랜드가 속한 오하이오 주는 미국에서 소득세율이 가장 높은 주 중 하나인 반면, 휴스턴이 속한 텍사스 주는 소득세율이 가장 낮은 주 중 하나였다. 이에 따라 아리자가 클리블랜드로 올 경우 2백만 달러에 가까운 금전적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아테스트와 아리자의 계약 실패는 빌라누에바나 월러스/맥다이스 영입 실패 사례와는 성질이 달랐다. 빌라누에바는 불가항력에 가까운 연봉차이가 있었고 월러스와 맥다이스는 페리 단장 본인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아테스트와 아리자는 페리 단장이 직접 영입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것이다. 그것도 경쟁 상대와 똑같은 조건을 제시하고도 밀려났다. 협상력 부족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클리블랜드라는 팀, 클리블랜드라는 도시가 FA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비관론이 쏟아졌다. 그 와중에 클리블랜드에 와서 워크샵을 가진 첫 선수엿던 채닝 프라이는 더 많은 출장 기회를 얻기 위해 피닉스행 비행기를 탔고, 올랜도 매직이 에너지 넘치는 인사이더 브랜드 배스를 영입하는 등 경쟁팀들의 전력은 갈수록 강해져갔다.

이러다 아무도 못 건진 채 새 시즌을 맞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던 7월 중순, 페리 단장이 그때까지 잃었던 점수를 순식간에 만회하기 시작했다.


basquetebol
basquetebol by delima[dubem] 저작자 표시비영리


바레장 재계약


이번 여름 옵트아웃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바레장이 FA를 선언하자 적잖은 클리블랜드 팬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바레장은 2년 전에도 재계약에 난항을 겪은 끝에 시즌이 한참 진행된 다음에야 팀에 합류했고, 이때문에 클리블랜드 인사이드진에 전체적으로 과부하가 걸린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바레장은 준수한 벤치 플레이어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봉 천만 달러를 요구하며 버텼는데, 지난 시즌 주전 파워포워드로 올라서며 생애 최고의 활약을 펼친 직후 FA를 선언한 것이다. 게다가 바레장의 에이전트는 악명 높은 댄 페건이었다. 팬들의 우려가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페건도 이번만큼은 무턱대고 뻗댈 수 없었다. 당초 바레장과 페건이 FA를 선언하면서 기대한 연봉은 평균 천만 달러였는데, 경제 한파와 '2010 프로젝트'로 인해 올 여름 바레장에게 그런 거액을 안겨줄 팀은 없었던 것이다. 클리블랜드보다 많은 금액을 제시한 팀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바레장에게 계약을 제시한 팀이 없을 정도였다. 페건은 울며 겨자먹기로 클리블랜드로 돌아와 페리 단장과 마주앉을 수밖에 없었다.
바레장 말고도 FA 여러 명과 계약을 추진하고 있었던 페리 단장도 바레장 재계약을 질질 끌 이유가 없었다. 결국 쿨할 필요가 있었던 페리와 페건은 협상 개시 며칠 만에 바레장 재계약을 쿨하게 발표했다.

바레장의 계약 조건은 6년 계약(마지막 해는 팀 옵션)에 총액 48.3백만 달러였다. 연평균 8백만 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이다. 다른 팀과의 계약에 실패하고 막다른 곳에 몰린 선수에게 너무 후하게 쳐줬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페리 단장은 바레장이 2010년 이후 르브론 의 동료로써 손색이 없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마지막 해 9.8백만 달러 중 약 7백만 달러는 비보장이다. 다시 말해 클리블랜드는 이제 27세가 된 바레장의 전성기 5년을 연평균 7.7백만 달러에 쓰고, 32세가 될 마지막 해에는 7백만 달러짜리 샐러리 비우기 카드로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클리블랜드로써는 결코 나쁜 조건이 아니다. 다년 계약으로 심리적 안정을 얻은 바레장도 올 여름 3년만에 처음으로 브라질 국가대표에 가세, 모든 면에서 한 단계 발전한 모습을 보이며 브라질이 세계선수권 미주지역 예선에서 우승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바레장과 재계약함으로써 파워포워드 부재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페리 단장은 장신 윙맨 영입에 박차를 가했다.


Anthony Parker told us in Hebrew
Anthony Parker by Nir Nussbaum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앤써니 파커/자마리오 문


페리 단장의 가장 큰 강점은 항상 '플랜 B'를 준비해놓고 있다는 점이다. 아테스트와 아리자 영입에 실패한 후에도 어김없이 플랜 B를 가동했다. 목표는 WNBA 슈퍼스타 캔디스 파커의 오빠로 유명한 앤써니 파커(당시 토론토)였다.

1975년생으로 34세을 맞은 파커는 미국보다 유럽에서 더 유명한 선수다. 필라델피아와 올랜도에서 세 시즌을 보내고 유럽리그로 향한 파커는 이스라엘의 마카비 텔아비브에서 뛰며 이스라엘 챔피언십 5회, 이스라엘컵 5회, 유로리그 3회 우승을 이끌었다. 2005년에는 유로리그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페리 단장은 파커가 유럽에 있을 때부터 파커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파커가 오랜 유럽 생활을 마치고 NBA로 돌아왔을 때 적극적인 영입 노력을 펼쳤지만 파커를 데려오는 데는 실패했었다. 그로부터 3년 후 파커가 토론토와의 계약을 끝마치고 FA 가 되자 마침내 파커를 영입한 것이다. 토론토도 파커를 놓치기 아까웠지만 히도 터콜루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파커의 버드 권리를 포기하는 바람에 클리블랜드에 영입 기회가 온 것이다. 계약 조건은 미드레벨 익셉션의 일부인 2년간 총액 5백만 달러였다.

198cm의 스윙맨인 파커는 준수한 운동능력과 정교한 슈팅 능력, 견고한 수비력과 리딩까지도 가능한 패싱 능력을 모두 갖춘 선수다. 주 포지션은 슈팅가드지만 필요에 따라 스몰포워드와 포인트가드도 볼 수 있는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다. 랜스 블랭스 부단장은 파커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효율적인 선수'라며 '힘든 영입 경쟁을 극복하고 파커를 얻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파커 역시 클리블랜드에서 뛸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팀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커를 영입한 지 일주일 후, 페리 단장은 마이애미의 장신 스윙맨 자마리오 문을 영입하며 윙 플레이어 보강을 마쳤다. 문은 흔히 '빈자의 트레버 아리자'로 불리는 선수다. 아리자의 몸값(이번 여름 기준)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비슷한 활약을 해주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르브론이 쉬는 동안 상대 스윙맨을 막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던 클리블랜드는 203cm의 장신에 뛰어난 운동능력과 수비력을 갖춘 문의 가세로 커다란 구멍을 메운 셈이다. 피닉스 선즈의 포워드 맷 반즈 역시 클리블랜드 행을 희망했지만, 페리 단장의 선택은 수비력이 더 나은 문이었다.

아테스트나 아리자 한 선수에게 썼을 돈으로 파커와 문이라는 준수한 윙 플레이어 두 명을 영입한 페리 단장은 이제 파워포워드 보강으로 눈을 돌렸다.


Boston Celtics vs Denver Nuggets in Denver


리온 포우


션 메이(당시 샬럿 밥캐츠)와 하킴 워릭(당시 멤피스 그리즐리스)을 모두 지나치며 파워포워드 자원 보강에 관심이 없는 듯했던 페리단장은 누구도 예상 못한 계약을 터뜨렸다. 보스턴의 백업 인사이더 리온 포우를 미니멈 계약으로 영입한 것이다.

지난 시즌 무릎에 큰 부상을 입어 내년 2월까지 출장이 불가능한 포우는 보스턴이 자신에게 일찌감치 재계약을 제안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포우의 재기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한 보스턴은 포우에게 얼마를 제시해야 할 지 몰라 주저하고 있었고, 포우는 보스턴이 자신을 대우하는 방식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감지한 페리 단장은 포우에게 미니멈 계약을 제시했다. 첫 해엔 0.84백만 달러, 2년째에는 비보장으로 0.91백만 달러라는 조건이었다. 달리 갈 곳이 없었던 포우는 승락 의사를 밝혔고, 그 후 포틀랜드와 댈러스, 멤피스, 그리고 보스턴이 뒤늦게 계약 의사를 타진했으나 스스로 남아일언 중천금을 외치는 포우의 결정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203cm의 단신 파워포워드인 포우는 리그에서 가장 터프한 선수 중 하나이다. 신장은 작은 편이지만 탄탄한 근육에서 뿜어져나오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일단 골밑에서 볼을 잡으면 높은 확률로 득점으로 연결시킨다. 근성이 뛰어나 리바운드에도 능하고 탄탄한 몸을 이용한 골밑 수비에도 일가견이 있다.

포우는 현재 생애 세 번째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중이다. 빨라야 1월 말에나 복귀할 수 있고 복귀한다고 해도 과거의 움직임을 보여줄 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페리 단장의 포우 영입은 일종의 도박인 셈이다. 다만 리스크는 적고 배당은 높은 도박이다. 포우가 재기에 실패한다해도 클리블랜드가 잃는 것은 0.84백만 달러의 이번 시즌 확정 연봉 뿐이다. 하지만 재기에 성공해 2008년 파이널 2차전에서 14분 동안 21점을 올리던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플레이오프에서 클리블랜드 골밑은 그 어느 팀보다도 강한 골밑이 될 것이다.

물론 대가는 있었다. 포우가 활약할 경우 출장시간이 줄어들 것을 염려한 베테랑 파워포워드 조 스미스가 클리블랜드와의 재계약을 거부하고 애틀랜타로 향한 것이다. 팀에서 거의 유일한 '스트레치 파워포워드'였던 스미스의 이탈은 페리 단장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겼다.


끝나지 않은 선수 영입

페리 단장은 우여곡절 끝에 장신 윙플레이어 두 명을 확보하는 한편 FA 선언을 한 바레장을 지켜냈다. 포우를 미니멈 계약으로 영입하며 모험수를 던지기도 했다. 굵직굵직한 FA들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놓치긴 했지만, 이후 영입한 멤버들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트레이닝 캠프를 맞이하면서도 페리 단장의 행보는 멈추지 않고 있다. 바레장, 포우와 계약했지만 아직 '스트레치 4번'의 공백은 남아있으므로 지난 시즌까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뛰었던 2년차 포워드 랍 커즈를 비보장 계약으로 초청했고, 대럴 잭슨 등의 비보장 카드를 이용해 베테랑 가드와 사인앤트레이드를 추진한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2005년 클리블랜드 단장으로 취임한 이래 페리 단장은 '트레이드는 귀신, FA영입은 등신'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모리스 윌리암스 트레이드나 2008년의 빅딜 등으로 트레이드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래리 휴즈, 도넬 마샬, 데이먼 존스 등 이른바 '휴즈 패키지'와 장기계약을 맺는 등 FA 시장에서는 많은 오점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런 페리 단장이 이번 여름 드디어 승부수를 던지며 그 어느 때보다도 분주한 여름을 보냈다. 시즌이 시작되면 페리 단장의 FA 영입이 이번에는 '귀신'일지 '등신'일지 모두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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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POINT GUARD 2009. 9. 28. 15:55

뉴올리언스의 내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트레이닝 캠프 개막을 목전에 둔 지금, 새로운 뉴올리언스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들이 강력한 챔피언 컨텐더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 때 샐러리 문제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보이던 뉴올리언스의 팬들에게는 '새로움'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설레이는 오프 시즌이 되고 있다. 과연, 새로운 뉴올리언스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Okafor Holds Off Nesterovič
Okafor Holds Off Nesterovič by FLC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1. 에메카 오카포

에매카 오카포. 아마도 시즌 개막을 기다리고 있는 뉴올리언스 팬들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선수일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오카포는 타이슨 챈들러와의 맞트레이드로 뉴올리언스에 합류했다. 챈들러가 뉴올리언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수많은 팬들의 기대와 우려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오카포는 뉴올리언스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리바운드
오카포가 가장 먼저 해결해줘야 하는 문제는 바로 리바운드다. 지난 시즌, 챈들러가 부상으로 사실상 전력외 선수가 되면서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이 바로 리바운드였다. 45경기 출장에 그친 챈들러를 제외하면, 팀 내 가장 많은 리바운드를 기록한 선수는 데이비드 웨스트로 경기당 평균 8.5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웨스트 다음으로 많은 리바운드를 잡아낸 선수는 다름 아닌 크리스 폴. 그는 경기당 평균 5.5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6-0의 폴이 팀 내 리바운드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웨스트가 리바운드에 강점을 가진 선수는 아니라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오카포는 팀 내 메인 리바운더로써의 역할을 수행해줘야 한다.

오카포는 데뷔 이후 매년 경기당 평균 10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기록하고 있다. 비록 리그 리바운드 수위 자리를 놓고 다투는 수준의 수치는 아니지만, "꾸준함"이라는 덕목에 있어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겠다. 그리고 바로 이 "꾸준함"이야 말로 뉴올리언스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다. 사실상 챈들러가 부상 없이 "꾸준한" 활약을 해줬다면 오카포를 영입할 이유가 없다.
챈들러와의 연장 계약을 논의하고, 그가 계속해서 팀의 메인 리바운더로써 군림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챈들러는 또 다시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고, 팀은 더이상 불안한 외줄타기를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오카포는 챈들러처럼 폭발적인 리바운더는 아니지만, 매년 꾸준히 일정 수치 이상의 리바운드를 잡아줄 수 있는 선수다. 오카포는 팬들의 시선을 사로 잡을만큼 압도적인 리바운더의 모습을 보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뉴올리언스의 골밑에 안정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선수이며, 가랑비에 옷 젖듯이 시나브로 10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는 오카포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몇몇 이들은 오카포 역시 부상 전력이 있는 불안한 선수라고 말하지만, 소포모어 시즌(26경기 출장)을 제외하고는 제법 꾸준히 경기에 나서고 있으며 특히 지난 2년간 연속으로 82경기에 모두 출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일의 일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당장 지금의 모습만을 놓고 본다면 건강상의 이유로 팀을 이탈할 확률은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이번 시즌 오카포는 리바운드에 있어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낼 지도 모르겠다. 지난 시즌 동안 오카포의 골밑 파트너들은 나즈 모하메드, 사가나 좁 같은 이들이었다. 웨스트, 힐튼 암스트롱, 션 막스 같은 선수들과 함께 플레이하던 챈들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리바운드를 기록할 수 있는 확률이 적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공격 리바운드 같은 경우, 챈들러는 팀의 거의 모든 공격 리바운드를 전담하다시피 하며 팀 내 ORB% 부문에 있어서 압도적인 1위를 유지해오던 것에 반해, 오카포는 팀 내 ORB% 수치가 매년 3~4위 수준에 머물러왔다.

커리어 평균 3.7개의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내고 있는 오카포에게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내는 재주가 없다는 말은 실례다. 골밑 파트너들과 공격 리바운드를 나눠잡았다고 해석하는 쪽이 무리가 덜할 것이다. 뉴올리언스 입장에서는 조금 씁쓸한 이야기지만, 이번 시즌의 오카포는 자의든 타의든 더이상 리바운드를 나눠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2006-07 시즌 이후 처음으로 평균 11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기록할 확률이 높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리바운드 부문 커리어 하이를 작성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는 단순한 수치 비교를 통해 "챈들러가 오카포보다 위력적인 리바운더다"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Perkins Guarding Paul
Perkins Guarding Paul by Eric Kilby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공격
2008-09 시즌의 뉴올리언스가 가장 처참한 실패를 맛보았던 것이 바로 '공격'에 관한 것들이다. 크리스 폴의 과부하 현상을 방지하고자 여러가지 패턴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오카포의 가세는 다소 정체되어 가는 뉴올리언스의 공격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오카포의 영입이 확정된 이후, 공격 측면에서 적잖은 기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오카포에게 득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라는 반문을 해왔다. 맞다. 오카포에게 "스코어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당장 오카포가 20-10을 기록해줄 것이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것은 오카포의 "스코어링"이 아닌, 뉴올리언스의 "공격"에 대한 것이다.

오카포로 인한 공격 파생 효과를 이야기 할 때면, "오카포는 단독으로 로우 포스트를 공략할 수 있다" 라는 말을 즐겨한다. 이 말은 오카포가 샤킬 오닐이나 팀 던컨처럼 포스트 업을 통해 20~25점을 득점해 줄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말 그대로 '혼자서 공을 가지고 골밑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이게 무슨 대수냐고?

지난 08-09 시즌 뉴올리언스가 '공격' 부문에 있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이유는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공격 패턴의 개발은 폴의 과부하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 되었다.

해서 팀이 꺼내든 카드는 로우 포스트 플레이어들의 새로운 활용법들이었다. 이 중 챈들러의 활용에 있어서 팀은 두 가지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하나는 챈들러의 컨트롤 타워化, 다른 하나는 챈들러의 단독 로우 포스트 공략이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실패'였다. 특히 단독 로우 포스트 공략은 그야말로 암담했다. 포스트업 스킬은 좀처럼 향상되지 않았고, 불안한 드리블링은 이내 실책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런 스캇이 고집스럽게 챈들러를 통한 로우 포스트 공략을 시도한 것은, 모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구호처럼 "안되도 되야하는" 미션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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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6717 by Keith Allison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챈들러가 팀의 공격에 공헌하는 장면은 폴과의 콤비 플레이,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폴과의 픽앤롤 플레이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바꿔 말하면, 챈들러가 팀의 공격에 공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폴이 함께 해야만 했다. 그것도 단순히 엔트리 패스를 넣어주는 수준이 아닌, 픽앤롤 플레이가 시전되었을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폴과 챈들러의 픽앤롤 플레이가 시작되고 멋진 앨리웁으로 공격이 마무리 될 때면, 챈들러의 경우 상대팀의 포인트 가드(폴의 매치업 상대)를 등에 지고 뛰어오르거나 완벽한 노마크 찬스를 포착하여 득점에 성공해왔다. 하지만 그 반대쪽에서 드리블을 하는 폴은 상대팀의 센터(챈들러의 매치업 상대)를 끌어 안으며 드리블을 하거나, 자신에게 더블 팀/트리플 팀을 붙여놓고서야 노마크가 된 챈들러에게 패스를 할 수 있었다. 분명 폴에게 적잖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장면이다 (워낙에 폴이 쉽게 플레이를 성공시킨 탓에 편해보이는 것 뿐이다).

그나마도 폴이 벤치에 앉아있는 상황에서는 활용 불가능한 패턴이기에, 폴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챈들러의 공격 공헌도는 '0'에 수렴하기 시작한다. 오카포는 다르다. 그에게 공을 맡겨 놓고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 직접 로우 포스트 득점을 시도해도 되고, 오카포가 볼을 지키는 동안 다른 선수들이 득점을 노릴 수도 있다.

폴도 마찬가지다. 오카포에게 엔트리 패스를 넣어주고 기회를 엿보거나, 제2/제3의 패턴 플레이를 지시할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간결하게 말하자면, 팀의 주전 센터를 활용하기 위해 굳이 스크린을 타고 페인트 존으로 돌격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좋지 아니한가?

게다가 오카포는 반드시 폴과 함께 해야 하는 타입의 선수도 아니다. 데런 칼리슨도, 바비 브라운도, 모리스 피터슨이나 데빈 브라운도 오카포와 함께 공격할 수 있다. 엔트리 패스를 넣어주고, 빈 자리를 향해 움직일 수 있는 가드라면 누구든지 오카포와 함께 공격할 수 있다. 폴이 벤치에 앉아있는 상황에서도 팀의 주전 센터를 활용한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카포는 폴이 1차적으로 수비진을 흔들어주지 않아도, 이미 세팅이 되어 있는 상대 수비진을 상대로도 공격을 시도할 수 있는 선수다. 어찌보면 참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이지만, 그 동안의 뉴올리언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일들이 이제는 가능하게 되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오카포가 20-10을 기록하며 팀 내 골밑 득점을 전담하리라 기대하진 않는다. 잘해봐야 폴과 웨스트에 이은 팀의 세 번째 공격 옵션에 지나지 않을 선수다. 화려한 무브먼트로 팀의 공격을 이끌 선수는 분명 아니다. 공격에 있어서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란 힘들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팀공격에 있어 높은 활용도를 갖는 선수라는 점에는 지금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챈들러와의 픽앤롤 플레이가 사라지면, 폴이 예전만 못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이들에게 말씀드린다. 사실 폴은 이미 08-09 시즌에 챈들러와의 2:2 플레이를 배제한채 플레이했다. 실제로 많은 뉴올리언스 팬들이 "왜 픽앤롤을 하지 않는 것이냐!" 라는 성토를 하곤 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의 폴이 어떤 모습을 보였던가? 챈들러의 부재로, 픽앤롤 플레이의 실종으로 인해 무너져내렸던가?

물론 챈들러의 존재가 폴을 보다 높은 단계로 이끌어줬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챈들러가 없다고해서 폴이 힘없이 주저 앉을만한 선수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폴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이다. 사실 데뷔할 당시의 폴은 오픈 코트 활용과 트랜지션 게임 능력을 높이 평가 받던 선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지공 팀인 뉴올리언스에 완벽히 녹아들어 플레이하고 있지 않은가? 챈들러의 부재로 인한 폴의 부진을 우려하는 것은 필요 이상의 걱정이다. 아, 그리고. 오카포 역시 픽앤롤에 능한 선수다.


Julian Wright
Julian Wright by Keith Allison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2. 줄리안 라이트

오카포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다음 순서는 응당 이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줄리안 라이트. 수많은 뉴올리언스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영건. 팀 내 유일의 스카이워커. 하지만 기대만큼의 실망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게 했던 애증의 존재.

트레이드나 드래프트 소식을 제외한다면, 오프 시즌 동안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소식은 단연 라이트에 관한 것이었다. 서머 리그가 시작될 무렵, 스캇이 인터뷰를 통해 라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남겼다. 그것은 페자 스토야코비치를 대신해 스타팅 포워드로 게임에 임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라슈얼 버틀러가 트레이드 된 이후 슈팅 가드로 전향하는 것이 아니냐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지만, 최근 트레이닝 캠프를 앞두고 다시 한 번 스캇 코치가 라이트에 대해 입을 열었다. 라이트는 팀의 주전 스몰 포워드로 출장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대해서 스토야코비치와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이로써 확실해 진 것은 두 가지. 더이상 라이트가 듀얼 포워드로 기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스몰 포워드로의 정착), 이번 시즌에야말로 충분한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평소 라이트의 기용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불만들을 한 번에 해소시킬 수 있는 움직임이다.

라이트의 플레이가 다소 불안정했던 것은 사실이다. 공격의 경우 컨디션에 따라서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주다가도, 평범한 미들점퍼를 에어볼로 날려버리기도 했다. 한 두차례의 작은 실수에 크게 위축되어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슛찬스를 잃기도 했다. 수비도 마찬가지. 날로 향상되는 대인 방어에 비해 팀디펜스에 대한 움직임은 다소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본인의 실수로 오픈 찬스를 내준 뒤에는 어김 없이 수비 실수를 범하곤 했다. 강점을 보이는 대인 방어 역시 기복이 심했다. 하지만 이럴 수록 보다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다소 자신감이 없어보이는 라이트의 경우는 몇 차례 실수를 하더라도 자신있게 플레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캇은 라이트가 실책을 저지르기 무섭게 그를 벤치로 불러들였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메인 포지션인 스몰 포워드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지 않았다.

'새로운 시도'라는 명목하에 때로는 스몰 포워드, 때로는 파워 포워드로 출장했으며 지난 서머 리그에서는 포인트 가드의 롤까지 테스트 받아야 했다. 제한된 출장 시간, 한 두 차례의 실수에도 곧바로 벤치에 주저 앉게 되는 상황에서 다양한 포지션에 대한 테스트까지 이뤄졌으니 뭔가를 보여줄래야 보여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계속되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 실망스러운 시즌 종료를 맞이했던 라이트였다. 그의 더딘 성장 곡선에도 아직까지 그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만약 라이트가 스스로의 가능성을 폭발시키며 한 단계 도약하는 시즌을 보낸다면, 뉴올리언스는 지난 수년간 그토록 염원하던 '운동 능력 넘치는 슬래셔'를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정적이고 폴의 드리블링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팀공격에 있어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줄 것이다. 이미 대인 방어에 있어서는 실전력으로써의 검증을 끝마치고 있는 단계이기에, 팀을 대표하는 또 한 명의 얼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라이트가 주전 멤버로 자리를 잡게 된다면, 스토야코비치를 벤치 득점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되던 벤치 뎁스와 팀공격력을 동시에 보완할 수 있는 움직임이다. 그아말로 "라이트만 터져준다면" 뉴올리언스는 또 다른 가능성을 가진 팀으로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2009-10 시즌, 뉴올리언스의 개막전 주전 스몰 포워드는 과연 누구일까? 스토야코비치? 라이트?


Hornets Head Coach Byron Scott
Hornets Head Coach Byron Scott by Schröder+Schömbs PR _ Brands | Media | Lifestyle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3. 젊은 농구, 공격 농구... 스캇의 선택은?

베테랑을 중요시하고, 선수 기용에 변화의 폭이 매우 적으며, 좀처럼 젊은 선수들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바이런 스캇. 하지만 그런 스캇도 이번 시즌만큼은 고집을 꺾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팀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6명이나 되고, 수많은 베테랑들이 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라이트의 주전 출장 가능성'에 대한 인터뷰도 이런 변화를 반증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설령 라이트가 주전 포워드로 출장하지 못하더라도, 지난 시즌에 비해 월등히 많은 기회를 부여받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 폴의 백업이자 팀 내 두 번째 포인트 가드 자리에는 루키 칼리슨이 자리하고 있고, 마커스 쏜튼 역시 버틀러가 떠나간 슈팅 가드 포지션에서 적잖은 임무를 부여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선수는 아마도 스캇의 아래에서 플레이했던 루키들 중 리차드 제퍼슨과 폴 이후 가장 많은 기회를 부여받을 선수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어린 선수들을 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팀컬러에도 조금의 변화가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철저한 지공과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던 뉴올리언스였으나, 다가오는 09-10 시즌에는 보다 공격적이고 빠른 템포의 농구를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지금의 뉴올리언스는 특유의 팀디펜스(무한 더블팀 - 로테이션)에 필수불가결 요소였던 챈들러가 팀을 이탈했기에 팀디펜스를 전반적으로 손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지금, 새로이 합류한 선수들의 면면이나 서머 리그에서의 모습들을 보건데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공격의 비중을 상향 조정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머 리그에서의 모습들을 되뇌여보자. 칼리슨의 경우, 수비에 강점이 있으며 안정적인 농구를 한다는 장점을 가진 선수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서머 리그에서의 칼리슨은 세간의 평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과감한 드리블로 상대의 페인트 존을 노렸으며, 돌파에 이은 플로터로 직접 득점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폴의 백업으로써 에릭 스노우 같은 스타일의 선수가 될 것이라던 스카우팅 리포트가 무색하게도, 서머 리그에서의 칼리슨은 차라리 앨런 아이버슨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게다가 이것이 철저히 벤치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쏜튼도 마찬가지. 쏜튼은 서머 리그 루키 득점 1위를 차지하며 공격력을 뽐냈다. 쏜튼은 본래 공격력이 좋은 선수가 아니었냐고? 맞다.

쏜튼에게서 발견한 특이점은 단순한 득점력이 아닌, 포인트 가드로써의 롤을 수행하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는 것이다. 쏜튼이 대학시절 포인트 가드로 플레이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NBA 레벨에서 포인트 가드의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그런 쏜튼에게 포인트 가드의 롤을 시험했다는 것 역시 나름의 시사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스캇은 점수 쟁탈전을 펼칠 때면 반드시 두 명의 볼핸들러를 기용하곤 했다. 한 때 지겹도록 언급했던 "보조 볼핸들러"라는 존재가 그것이다. 제이슨 키드에겐 케리 키틀즈가 있었고, 배런 데이비스에겐 스피디 클랙스턴이 있었으며, 폴에게는 자네로 파고가 있었다.

스캇은 두 명의 볼핸들러를 기용하며 순간적으로 게임의 템포를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점수 쟁탈전을 펼치곤 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에는 "보조 볼핸들러"로 활약해줬어야 했던 선수들(안토니오 다니엘스, 데빈 브라운)이 모두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해서 스캇은 나름의 공격 전술을 시도해 볼 겨를조차 없었다. 칼리슨과 쏜튼이 서머 리그에서 보여준 모습은, 여차 하면 폴과 함께 코트에 나서서 "보조 볼핸들러"의 역할을 수행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 쏜튼의 경우, 과거 파고가 수행하던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는 유닛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최근 팀에 합류한 바비 브라운 역시 빠른 스피드와 드리블을 통한 페네트레이션을 주무기로 하는 공격형 선수다. 다리우스 송가일라 역시 공격에 강점을 보이는 선수이며, 아이크 디오구 역시 공격형 선수다.

09-10 시즌의 뉴올리언스는 보다 젋고 빠르고 공격적인 농구를 구사할 수 있는 팀이 되었다. 남은 것은 스캇 코치의 결단이다. 이번 시즌은 스캇과 뉴올리언스의 계약이 만료되는 해이다. 과연 스캇이 임기 마지막 시즌에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지도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 평소처럼 베테랑 위주의 안전한 플레이를 펼칠 것인지, 과감하게 젊은 선수들을 기용하며 보다 에너지 넘치는 농구를 보여줄 것인지...

일단 최소한의 필요 요소들은 충족되었다. 09-10 시즌의 뉴올리언스는 보다 높이 뛰어오르고, 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팀이 되었다. 결국 모든 것은 스캇의 손에 달린 셈이다. 과연 우리는 '달리는 뉴올리언스'를 볼 수 있을까?


4. 마치며

09-10 시즌의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전혀 새로운 '신상'팀이 되어 돌아올 뉴올리언스. 기대만큼 우려도 크고,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임은 틀림 없다. 하지만 한 때 샐러리 문제로 팀이 공중 분해 되는 것은 아닐까 노심 초사 하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멋진 선수들과 함께 시즌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시즌은 뉴올리언스 팬들에게 충분히 즐거운 1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모든 걱정 근심은 접어두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즌 개막을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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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GOLD&PURPLE 2009. 9. 24. 02:49

레이커스, 어떻게 변했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드디어 NBA 2009-10 시즌 개막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2009년도 드래프트를 모두 마쳤고, 웬만한 선수들의 재계약도 거의 끝난 상황이다. 이 글에서 언급할 레이커스 역시 섬머리그를 끝내고 프리시즌 게임을 비롯한 시즌 돌입만을 남겨두고 있다.

Lakers championship video screen
Lakers championship video screen by LA Wad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레이커스는 영예의 2009년 NBA의 챔피언팀이 되었고, 과연 이러한 영광을 다음 해에도 이어갈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을 줄로 안다. 레이커스는 샐러리캡 여유분이 없었지만 의외로 굵직한 외부 FA 수혈을 하는 등, 디펜딩 챔피언임에도 불구하고 팀의 외형이 사뭇 달라졌다.

 작다면 작은, 크다면 큰 변화를 맞은 올 여름. 레이커스가 과연 어떻게 바뀌었는지, 또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한지 소소한 뒷 이야기들과 함께 짚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Trevor Ariza
Trevor Ariza by ericrichardson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레이커스, 이렇게 바뀌었다

 2009년 레이커스 우승의 최대 활력소였던 '에너자이저' 트레버 아리자가 레이커스와 재계약하지 않고 전격적으로 휴스턴 로켓츠와 FA계약을 맺으며 팀을 떠났고, 아리자의 자리를 03-04시즌에 '올해의 수비수'에 선정된 바 있는 올스타 포워드 론 아테스트가 FA계약을 통해 메우게 되었다. 의문시 되었던 파워 포워드 라마 오덤의 재계약도 시간을 길게 끌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는데, 그로 인해 불거져나왔던 기존의 전력 하락 가능성을 불식시키고, 외형적으로 챔피언팀의 위용을 그대로 유지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전력이 한층 더 나아진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확정된 레이커스의 13인 로스터는 다음과 같다.

 포지션  이름  신장
 Guard  Derek Fisher
 6-1
 Guard  Jordan Farmar
 6-2
 Guard  Shannon Brown
 6-4
 Guard  Kobe Bryant
 6-6
 Guard  Sasha Vujacic
 6-7
Forward  Ron Artest
 6-7
Forward  Luke Walton
 6-8
Forward  Adam Morrison
 6-8
Forward  Lamar Odom
 6-10
 Forward-Center  Josh Powel
 6-9
 Forward-Center  Pau Gasol
 7-0
 Center  DJ Benga
 7-0
 Center  Andrew Bynum
 7-1

 조쉬 파월이 실제로 센터를 보기엔 사이즈가 작아 포워드로 뛰는 것을 감안해도 7푸터 이상의 센터 자원이 셋이나 되고, 가드에서 포워드에 이르기까지의 빈틈을 최소화한 로스터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Staples Center Panorama
Staples Center Panorama by zerega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긴 구단 프런트

 누가 봐도 전력의 강함을 느낄 수 있는 화려한 로스터를 유지한 데에는, 무려 3명의 재계약이 걸려있던 상황에서 2명을 재계약하고 나머지 1명의 공백을 올스타 포워드인 론 아테스트로 메워 팀을 업그레이드 시킨 밋치 컵책 단장의 공을 치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파우 가솔을 트레이드 해와 팬들 사이에서 '컵책신'으로까지 불리고 있는 레이커스 단장이 더욱 대단해보이는 이유다.

 당초 레이커스는 라마 오덤과 트레버 아리자의 2명을 모두 잡을 수는 없어보였다. 미국의 경제 한파로 인해 자금 유동성이 떨어진 상황이었고, 구단주인 제리 버스 박사는 팬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티켓 가격을 동결하겠다고 한 터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레이커스가 기존의 챔피언 전력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한층 더 상승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앞서 언급했던 단장 밋치 컵책 뿐 아니라 구단주인 제리 버스의 과감한 결단력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제리 버스는 돈을 가장 많이 쓰는 구단주는 아니다. 하지만 주머니를 열 때와 열지 않을 때를 현명하게 판단할 줄 아는 몇 안되는 구단주이며, 그 판단은 레이커스가 2008년 준우승을 기록하고, 2009년엔 드디어 리그 챔피언 트로피를 획득하면서 다시 한번 옳았음이 입증된 셈이다. 몇몇 구단들은 사치세 때문에 시장가 이하의 가격으로도 소속 선수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있지만, 버스는 그러한 재정적 부담을 기꺼이 감수하며 다시 한번 레이커스의 'Repeat', 또는 '3Peat'을 위해 주머니를 열었다.

 물론 그러한 재정 부담을 온전히 팀이나 팬을 위한 희생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레이커스는 연간 5000만불에 달하는 영업이익이 나는 최고의 흥행 구단이기 때문이다. 비인기 구단은 재정 지출이 곧 재정적자를 의미하지만, 레이커스와 같은 인기 구단은 그러한 재정 지출이 기존의 전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기존의 수익을 더 길게 가져갈 수 있는 보험의 성격을 띌 수도 있는 것이다. 추후에 기회가 되면 팀간의 이러한 재정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글을 남길까 한다.

 레이커스 프런트는 일시적으로 재정 손해를 감수하게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팬들의 더 굳건한 지지를 얻었으며 또한 또 다른 스타의 영입으로 더 나은 마케팅 포지션에 위치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런 상황을 두고 '명실상부' 라고 하는가 보다.

 프런트의 속내야 어찌되었든, 이러한 든든한 지원 덕분에 레이커스는 또 한번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위치를 당분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트레버 아리자의 이적과 동시에 영입된 론 아테스트일 것이다.

Happy (and sweaty)
Happy (and sweaty) by jeffbalk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론 아테스트의 영입

 다들 알다시피 론 아테스트는 지난 해에도 리그 수비 세컨팀에 자리했으며 03-04 시즌에는 외곽 수비수로는 역대 7번째로 '올해의 수비수'에 선정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한 당대 최고의 수비수다. 수비능력 뿐 아니라, 기회가 되면 게임당 20점이상을 뽑아낼 수 있는 무시할 수 없는 공격능력 또한 팀에 많은 보탬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론 아테스트의 공격/수비 능력이 팀에 어떻게 보탬이 될까.

 우선 아테스트의 수비 능력부터 짚어보자. 최근의 아테스트는 사실 발동작이 여타의 일류 수비수처럼 기민하지는 못하다. 대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하체 힘과 밸런스를 가지고 있어 공격수가 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 지난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아테스트 자신과 카멜로 앤서니가 코비에게 행했던 수비 방법 - 디나이 수비에는 당할 자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발빠른 공격수들을 리그 입성 초기 처럼 잘 따라다니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 그동안 쌓은 경험으로 인해 예전에 뒤떨어지지 않는 수비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수비 능력으로 인해 코비 브라이언트가 중요 순간에 어김 없이 공격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혹사당해야 했던 점을말끔하게 해소해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미 언급했듯이 아테스트가 막기 힘든 발빠른 선수들(하지만 실질적으로 우승권팀의 에이스는 대부분 아테스트가 막을 수 있는 중량급 스윙맨들이다)은 여전히 코비가 맡아야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수비능력으로 인해, 레이커스는 1선의 수비가 2선의 수비에 비해서 달려보였던 이미지를 벗고 1선 수비 역시 리그 최정상급의 라인업을 갖추게 되어 아테스트의 영입은 큰 효과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아테스트의 영입은 수비에서만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다.

 아테스트의 영입은 오히려 공격에서 수비보다 더 큰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기존의 레이커스 공격에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벤치 득점 불안'이다. 오덤이 버티고 있는 벤치 라인업은 분명 한때 리그 최고의 생산력을 자랑했으나, 실질적으로 바이넘의 부상으로 인해 시즌 중반 이후(더 솔직해지면, 바이넘 부상 이전에도 파마, 사샤등의 벤치 멤버들이 제몫을 해주지 못했다)그 동력을 잃고 많이 쳐져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시즌 내내 벤치 멤버들이 나오는 2쿼터 중반이 되면 게임이 쳐지고 점수가 따라잡히는 문제 때문에, 쉬어야 할 가솔이 쉬지 못하고 계속 뛰면서 체력을 쏟아붓는 식의 장면이 빈번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가솔의 체력 문제를 언급한 언론의 질문에 필 잭슨은 "가솔은 7푸터 답지 않게 몸이 유연해 다른 7푸터와 체력 문제를 직접비교할 수 없다"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가솔은 코비 이상으로 많은 경기를 뛰고 있으며 많은 분들이 미처 챙기지 못했겠지만, 지난 시즌에는 6-6의 코비보다 7-0의 가솔이 더 많은 시간 - 코비 36.1분, 가솔 37.0분 출장 - 코트 위에 있었다.

 아테스트가 합류함으로써 코비-가솔에 이은 A급 공격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므로 가솔 역시 코비처럼 다소 줄어든 플레잉 타임으로 체력을 아끼고 플레이오프를 대비할 수 있다. 아테스트가 가솔 대신 센터나 파워포워드로 뛸 수는 없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가솔의 플레잉타임의 상당 부분은 대신 뛸 선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벤치 멤버들의 생산력이 빈약했기에 억지로 뛴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자 대신 아테스트가 있는 레이커스라면 파월이나 벵가가 몇 분 더 코트 위에 있어도 팀의 공격이 그 전만큼 답답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아테스트의 영입이 무조건 좋은 결과를 내리라 낙관할 수만은 없다. 공/수 양면에서 A클래스를 유지하는 모습도 아테스트의 모습이지만, 관중과 싸우며 난동을 부리기도 하고 상대 공격수의 바지를 내리고 테크니컬 파울2개를 범해 경기에서 순식간에 퇴장당하는 모습 역시 다른 선수가 아닌 온전히 아테스트의 모습이다.

 레이커스의 팬들은 오덤이 아테스트와 그 누구보다 친한 어릴적 부터의 친구사이라는 점, 아테스트가 우승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 코비 브라이언트와도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LA에 깊은 애정이 있다는 사실등을 미루어, 이전과 같은 일이 절대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Lakers Championship Celebration
Lakers Championship Celebration by mstickmanp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조용한 대박 - 섀넌 브라운

 아테스트의 영입과 더불어 단행했던 섀넌 브라운의 재계약은 오랜만에 실속을 차린 좋은 계약이다. 섀넌 브라운이라는 선수의 기량도 기량이지만, 정황상 기존의 가드들이 재각성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계약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흥행 구단인 레이커스라고 해도, 오덤과 아테스트를 잡기 위해서는 일종의 재정상 저축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했었다. 드래프트픽을 팔고, 팀의 최고 슈터인 블라디미르 라드마너비치를 애덤 모리슨과 섀넌 브라운으로 트레이드 하며 일정액의 샐러리를 줄였다. 후반기 한때 레이커스는 갑자기 팀내 최고의 3점 슈터를 잃은 여파와 피셔의 체력문제로 인한 야투율 하락, 사샤의 계속된 부진으로 팀의 외곽포가 한꺼번에 침몰해 어려운 경기를 끌고가기도 했다.

 이는 시즌 내내 지속된 조던 파마와 사샤 부야치치의 부진 덕분이고, 그 이유는 경쟁자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들을 대체할 만한 백업 멤버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벤치중에서도 상당히 중용될 수 밖에 없었고 또한 플레이의 질도 점점 떨어져갔다. 하지만 다행히도 섀넌 브라운에게 기회를 주자 40%를 상회하는 고감도 3점슈팅을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포인트가드-슈팅가드의 양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으며 좋은 수비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돌아오는 09-10시즌은 그러한 브라운의 3점슛 능력(물론 아직까지는 일시적인 성적인지 기량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과 아테스트(지난 시즌 3점슛 40.0%)의 영입으로 인해 블라디미르 라드마너비치의 고감도 3점슛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을 전망이다. 브라운이 피셔의 체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좋은 백업이 될 수 있으므로 피셔의 좋은 슈팅 확률도 유지되는 결과까지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때 리그에서 손꼽히는 유망주로 언급되기도 했던 조던 파마의 부활이 섀넌 브라운 덕분에 이루어질 수 있을지. 또한 사샤 부야치치가 400만불 이상의 제 몸값을 해 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지만, 만약 그들이 제 궤도에 올라설 수 있다면 본 필자는 브라운의 공을 무시할 수 없으리라 본다.


마치며 

 레이커스의 오프시즌 움직임을 중심으로 글을 남겨 다른 중요한 포인트가 빠졌을 수 있음은 백번 인정한다. 미진한 점은 앞으로의 글에서 점차 개선해 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끝으로 레이커스 로스터의 강점과 약점, X Factor 등을 간단하게 남기며 글을 마친다.

강점 :

-> 그 어떤 팀보다도 큰 사이즈가 최대 강점이다. 단 한번의 공/수가 필요할 때 브라이언트-아테스트-오덤-가솔-바이넘의 초장신 라인업이 발동될 가능성이 있으며, 그러한 장신 라인업을 돌리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브라운이 포인트가드로 많은 시간 뛰어줄 수 있다면 그 어느 포지션에서도 신장으로의 미스매치가 발생하지않음은 물론이고, 스퍼스나 매직처럼 스윙 패스를 통해 많은 수비 로테이션을 유발시키는 팀을 상대로 아주 좋은 활약을 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약점 :

-> 아테스트가 가세했기 때문에 코비가 빠른 선수들을 막는다면, 중량급 스윙맨을 막느라 빠른 선수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은 비교적 줄어들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주전 포인트가드인 피셔의 발이 더 느려질 공산이 크기 때문에 파커나 폴을 비롯한 빠른 선수들에 대한 대책은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정규시즌 막판과 플레이오프에서 수비 잠재력을 보여준 브라운의 각성이 있다면 의외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X Factor :

-> 플레이오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앤드류 바이넘이 부상 악령에서 벗어나 완벽히 회복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레이커스의 전력을 가장 크게 좌우할 수 있을것이다. 코비-가솔-아테스트-오덤은 오랜기간 자신의 기량을 증명한 선수들이나, 바이넘은 아직 증명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그간의 부상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 온전히 사고였음을 다음 시즌의 건강한 모습을 통해 증명해낼 수 있다면 레이커스의 전력에 그 어떤 부침도 없을것이다. 하지만 바이넘이 시즌 내내 건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면 플레이오프무대에서 다시 한번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지난 로켓츠와의 플레이오프 맞대결에서 처럼 팀의 우승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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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adams님이 촬영한 Go Cavs.

샤킬 오닐 트레이드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6월 25일(이하 미국 현지시각), 대니 페리 클리블랜드 단장은 기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드래프트 행사장에 도착했다. 바로 전날 이루어진 대형 트레이드로 2009-2010 시즌 목표가 우승임을 분명히 한 페리 단장이 드래프트에서 클리블랜드의 1라운드 30번과 2라운드 46번 지명권보다 높은 순위의 지명권을 확보할 것이며, 전날 핵심 선수의 유출 없이 트레이드를 성사시킨 것은 이들을 드래프트 당일 트레이드에 쓰려 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이번 드래프트는 유망주가 부족과 경제 불황 등의 이유로 반드시 필요한 선수가 아니면 신인을 로스터에 추가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다 보니 10순위 밖의 선수들은 평소같으면 충분히 뽑혔을 기량을 갖췄는데도 죽죽 미끄러졌다. 클리블랜드가 진작부터 노려오고 있었다는 피츠버그 대학의 샘 영을 비롯해 많은 유망주가 1라운드 후반까지 지명되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1라운드 마지막 지명권을 클리블랜드가 행사할 시간이 돌아왔고, 클리블랜드 측에서 선수 이름을 써서 제출한 종이를 든 데이빗 스턴 총재가 단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스턴 총재는 1라운드 지명자만 직접 호명하므로 이것이 그날 스턴 총재의 마지막 호명이었다. 거의 모든 팬들이 당연히 샘 영의 이름이 불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8cm의 스윙맨인 영은 클리블랜드가 그토록 원했던 장신 스윙맨이었고 4학년을 마친 즉시전력감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피츠버그 대학 감독과 페리 단장은 친분이 돈독한 사이였고 대학농구 시즌 중에 영을 꾸준히 관찰해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With the 30th pick, Cleveland Cavaliers select........." 순간 스턴 총재의 눈에 짜증 비슷한 곤혹스러움이 스쳐갔다. 종이에 적혀있는 선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스턴 총재는 1라운드 마지막 지명 선수의 이름을 힘들게 말했다.

"크리스천 아옝가(Christian Eyenga)!"



순간 행사장엔 적막이 흘렀다. 페리 단장의 선택을 납득할 수 없었다기보다는 아옝가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드래프트를 트위터로 생중계하고 있던 클리블랜드 전문기자조차도 '정보 없음, 현재 알아보는 중'이라는 글을 올린 뒤 침묵할 뿐이었다.

아옝가의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설명들이 있다.

'인사이드 플레이가 없는 스몰포워드'
'점퍼 매커니즘이 확립되지 않은 슈팅가드'
'3점 슈터이지만 슛 부정확함'

마치 말장난같은 이런 평가야말로 아옝가가 베일에 싸인 미스터리 맨임을 증명해준다.

아옝가 지명으로 가장 놀란 것은 아옝가 자신이었다. 드래프트 전날까지 클리블랜드에서 자신을 지명할 거라는 어떠한 언질도 받지 못했고 스스로도 1라운드에서 뽑힐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아옝가는 단상에 올라가 스턴 총재와 악수를 하면서도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시즌까지 스페인 DKV 유벤투트 산하의 유소년 팀에서 뛴 아옝가는 올해로 스무 살을 맞은 196cm의 스윙맨이다. 콩고의 수도 킨샤사 출신으로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디켐베 무톰보의 고향 후배인 아옝가는 작년 여름 오클라호마 시티가 지명한 세르지 이바카와 함께 콩고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었다. 당시엔 빅맨으로 뛰며 엄청난 운동능력을 발휘한 아옝가를 스페인 스카우트가 주목했고, 얼마 전까지 유럽 리그의 트렌드였던 아프리카 선수 수집의 막차를 타고 유벤투트에 입단할 수 있었다. 유벤투트는 아옝가를 스윙맨으로 키울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옝가는 유소년 팀에서 스윙맨의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익혀야 했다. 아옝가의 스카우팅 리포트가 반전개그처럼 되어있는 이유는 이렇게 농구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당시 유소년팀에서 아옝가와 한솥밥을 먹었던 리키 루비오는 스페인 대표팀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뛰며 올해 드래프트의 최고 이슈메이커가 되었다.

그런데 아옝가의 콩고 청소년 대표시절을 관찰했던 것은 스페인 스카우트만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는 클리블랜드의 스카우트도 있었다. 아옝가가 아니라 이바카를 관찰하기 위해서긴 했지만 말이다. 아옝가의 뛰어난 운동능력은 곧바로 페리 단장에게 보고되었고, 이번 드래프트에서 아옝가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페리 단장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지명을 한 것이다.




하지만 페리 단장이 아옝가를 즉시전력감으로 쓰려고 뽑은 것은 아니었다. 스윙맨 역할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본기가 떨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등 미국 문화를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아옝가는 몇 년 후를 보고 뽑은 선수였다. 아니나다를까, 페리 단장은 2라운드 46번 지명권으로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스윙맨 대니 그린을 뽑았고, 같은 포지션의 두 선수 중 페리 단장이 계약한 것은 아옝가가 아니라 그린이었다. 서머리그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아옝가는 유벤투트와의 계약을 3년 연장해 당분간 스페인에서 뛰게 됐다. 다만 매년 계약을 중단할 권한이 있어 언제든 클리블랜드에 합류할 수 있는 상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처음부터 아옝가가 아니라 그린을 쓸 작정이었다면 어째서 1라운드 그린/2라운드 아옝가가 아니라 그 반대였나? 여긴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었다.

  • 페리 단장은 처음부터 1라운드 지명 선수는 당장 로스터에 넣지 않을 생각이었다. 1라운더는 2라운더보다 계약기간도 두 배나 길고 기본 연봉도 많이 줘야 하기 때문이다. 클리블랜드가 아무리 부자 팀이라도 재정 부담이 없을 수는 없다. 필요한 곳에 얼마든지 돈을 쓸 수 있는 것과 필요없는 데 돈을 낭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2라운드에서 괜찮은 선수를 뽑을 수 있다면 굳이 1라운더를 계약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당장 쓰지 않을 아옝가를 1라운드로, 즉시전력인 그린을 2라운드로 지명한 것이다. 그리고 그린과 2라운드 계약을 하면서 클리블랜드는 1라운드 계약을 할 때에 비해 거의 0.8백만 달러를 절약하며, 전날 오닐을 데려오면서 피닉스에게 지급한 0.5백만 달러의 현금을 때우는 데 성공했다.

  • 지금 클리블랜드는 우승을 노리는 팀이고 루키를 두 명이나 15인 로스터에 넣을 수가 없다. 드래프트 당시 이번 시즌에 팀에 남을 것이 확실한 선수는 10명, 여기에 FA를 선언한 앤더슨 바레장과 재계약하면 11명이었다. 각종 익셉션 등으로 베테랑 두 명 정도를 더 영입할 예정인 클리블랜드로써는 이것만으로도 12인 로스터를 넘어버린다. 여기에 루키를 두 명이나 추가하면 쓰지도 않을 전력에 돈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추가 FA 영입에 필요한 실탄을 아끼면서 로스터도 비울 필요가 있었다.

  • 위와 같은 사정이 있었다 해도 클블이 상위지명권을 얻을 수 있었다면 그걸로 즉시전력감을 뽑았을 것이다. 하지만 클리블랜드의 이러한 시도는 실패했고, 게다가 상위지명권을 얻어서라도 뽑으려던 선수들이 2라운드까지 밀려내려오니 굳이 1라운드 지명권으로 선수를 뽑는 걸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대니 그린이 클리블랜드 로스터에 합류한 유일한 신인이 되었다. 198cm의 스윙맨인 그린은 조던, 워디, 카터 등 NBA 슈퍼스타의 산실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역사상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선수이자 대학 통산 1,000득점 500리바운드 250어시스트 150블록슛 150스틸을 모두 달성한 ACC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다.

그린은 그리 유복하지 못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뉴욕 롱 아일랜드는 우범지대로 분류될 만큼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린은 어렸을 때부터 성실한 아이로 자라났다. 뱀에게 큰 관심을 보인 어린 그린은 그때 산 암컷 붉은꼬리 도마뱀 '제이드'를 지금까지 소중히 키우고 있다. 180cm가 넘는 제이드는 조만간 클리블랜드에서 그린과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짖지도 물지도 않고 털도 안 빠져요. 키우기도 쉽습니다." 그린이 제이드를 자랑하며 한 말이다.

유명한 덩커였던 제럴드 그린의 사촌동생이기도 한 그린은 찰리 빌라누에바가 속한 뉴욕 유소년 팀에서 뛰며 이름을 알려나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 팀을 25승 1패로 이끈 그린은 여러 대학의 스카우트 제이를 뿌리치고 전부터 동경해왔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린은 고등학교 시절만큼 활약하지 못했다. 아버지 대니 그린 시니어가 마약 소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위해 법정을 드나들어야 했던 그린은 농구에 집중하지 못했고, 타일러 핸스브로를 비롯한 동기들이 뛰는 모습을 벤치에서 지켜보는 시간이 늘어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죄가 확정되자 다시 농구에 매진, 졸업 시즌에는 처음으로 선발로 뛰며 팀의 NCAA 토너먼트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주포인 웨인 엘링턴이 다소 기복을 보였음에도 노스캐롤라이나의 경기력에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은 항상 꾸준한 슈팅을 보여주는 그린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린의 주특기는 외곽슛과 수비다.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기본기를 갈고 닦았고, 매우 안정된 슛폼과 사이드스텝을 지니고 있다. 팀 수비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 ACC 수비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페리 단장이 그린에게서 본 가장 큰 가능성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실함과 팀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이타심이다. 드래프트 행사에 초청받지 못해 뉴욕의 한 호텔에서 자신의 지명 장면을 시청한 그린은 다음날 바로 클리블랜드 연습 코트를 찾아 개인 연습을 시작할 정도로 성실한 선수다. 동기들이 하나둘 앞서나가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온 그린은 핸스브로와 함께 지난 시즌 노스캐롤라이나 농구팀의 정신적 지주였다. 이번 서머리그에서도 자신의 포지션에 신인이 두 명이나 들어온 데 위기감을 느낀 테런스 킨지가 그린에게 전혀 패스하지 않았지만, 그린은 슛을 보여줄 기회가 없음을 불평하지 않고 끊임없이 볼을 돌리며 수비를 했다. 서머리그를 마친 후 킨지는 떠나고 그린은 남은 이유다.

앤써니 파커와 자마리오 문이 새로 영입되면서 그린이 당장 이번 시즌부터 로테이션에 들어가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대학 때 보여줬던 대로 성실하게 기량을 쌓아나간다면 이르면 다음 시즌부터는 팀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린과 스타일이 비슷한 베테랑 파커를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



페리 단장이 드래프트에서 보여준 선택은 클리블랜드가 FA 시장에서 활발한 선수 영입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 1라운드 하위 지명권만으로는 우승 가능 전력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클리블랜드는 최근 몇 년 중 가장 시끌벅쩍했던 여름을 보내게 됐다.

다음 글에서는 페리 단장이 FA 시장에서 보여준 칠전팔도의 선수 영입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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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COLUMNS/DOCTOR J 2009. 9. 22. 02:23

내가 80년대 최고의 파워포워드였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 매시즌 16~19점을 득점해주고, 야투성공률은 항상 56~58%를 유지하는 올스타급 선수
■ 매시즌 12~13리바운드를 잡아주고, 박스아웃과 페인트존 수비를 천직으로 알고 즐기는 블루칼라워커
■ 부상 당하는 법이 없이 매시즌 82게임을 소화하고, 게임당 38분 이상을 뛰는 왕체력
■ 체력과 기동력이 좋아서 골밑에서 몸싸움을 하다가도 속공 찬스만 나면 제일 먼저 달려나가는 빅맨
■ 농구 IQ가 뛰어나 전술이해가 몹시 빠르고, 쉴 새 없이 완벽한 스크린을 서주는 파워 포워드
■ 모든 선수들을 어우를 수 있는 리더쉽이 있으며 매사에 긍정적이고 이타적인 팀 주장
■ 감독의 말을 잘 듣고, 오프시즌에도 체력훈련과 몸 만들기에만 열중하는 롤 모델


어떻습니까? 이런 선수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 어느 누구라도 탐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선수가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지금부터 소개할 '80년대 최고의 파워 포워드'로 불리우는 벅 윌리암스(Buck Williams)가 바로 그런 선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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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 윌리암스의 본명은 'Charles Lynwood Williams'입니다. 1960년, 자동차 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난 윌리암스는 어릴 때부터 골격과 체력이 또래 아이들에 비해 남달랐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엔 육상, 미식축구, 농구를 겸했고, 이 세 종목 모두에서 출중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매릴랜드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윌리암스는 미식축구와 농구를 병행했고, 취미삼아서 뛰곤 했던 육상 중장거리 달리기 부문에선 대학 최고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던 준족이자 왕체력의 천부적인 운동선수였습니다. 워낙 잘 뛰어다녀서 붙은 숫사슴이란 뜻의 별명 'Buck'가 아예 이름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우상이었던 커림 압둘자바를 좇아 그는 농구선수의 길을 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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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이 6-8, 203cm에 체중도 100kg이 채 되질 못 했지만, 대학 3년 내내 그 터프하다는 ACC 지구에서 주전 센터를 보며 랄프 샘슨과 같은 큰 선수들을 상대했고, 이들과의 대결에서 조금도 밀린 적이 없었던 터프가이입니다. 매 시즌 ACC 지구의 리바운드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요.

그의 타고난 보드 장악력과 탄력, 터프함, 그리고 성실성이 눈에 띄어, 그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대표팀에 뽑히게 됩니다. 아이재야 토마스와 함께 대표팀의 공동주장을 맡았던 그는 NBA 팀들이나 구소련, 동구권 팀들과의 친선경기에서 주전 센터로서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프로 스카우터들의 눈길을 끌 수 있었습니다.

매릴랜드 대학 3학년을 마치고 NBA 드래프트에 뛰어든 그는 전체 지명 3번으로 뉴저지 넷츠에 입단을 했고, 자신의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포워드 포지션을 맡게 됩니다. 워낙에 자기보다 키 크고 덩치좋은 센터들과만 대결해 온 그로선 프로 적응이 상당히 쉬웠습니다. 이젠 자신과 비슷한 체격의 선수들만 상대하면 됐으니까요.

프로 첫 시즌부터 마치 몇 년 뛰어온 베테랑같은 원숙한 모습을 보이며 윌리암스는 페인트존을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게임당 12.3개의 리바운드, 평균 15.5점에 야투율까지 58.2%를 기록하며 아이재야 토마스를 밀어내고 '올해의 신인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죠.  

데뷔하자마자 어린 나이에 소속팀의 리더가 된 그는 동부 올스타에도 선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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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시 모든 구단의 감독, GM들이 군침을 흘리던 선수였어요. 맨 위에 묘사해 놓은 것처럼, 이런 선수는, 농구 밖에 모르며 혼을 불태우는 선수들이 많았던 옛날에도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터프한 농구를 하는데도 부상이 없고 체력도 남아 도는 선수, 골밑에서 상대팀 센터와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다가도 속공 찬스만 나면 번개처럼 달려나가 호쾌한 덩크로 속공 피니쉬를 해주는 빅맨, 라커룸의 리더이자 연습시간이나 오프시즌에도 타선수에게 본이 되는 자세만 보여주던 롤 모델, 이런 선수를 어떻게 탐내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윌리암스에겐 그 흔한 '서포모어 징크스'도 없었습니다. 루키 시즌에 이미 모리스 루카스와 함께 리그 최고의 파워 포워드 반열에 오른 그였지만, 프로 2년차엔 모든 부문에서 더 향상된 모습(17.0점, 12.5리바운드, 1.3블락샷, 58.8% 야투율)을 보이며 All-NBA 세컨드 팀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이게 특기할 만한 사항인데... 80년대 초반엔 정말로 훌륭한 포워드들이 많았어서 All-NBA 팀에 선정되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다는 점이지요. 퍼스트 팀 포워드는 항상 래리 버드와 줄리어스 어빙의 차지였기 때문에 어느 포워드라도 All-NBA 세컨드 팀에 뽑힌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영광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자리에 프로 2년차의 블루칼라워커 리바운더가 들어간 겁니다. 그러니 그의 2년 연속 올스타 선정도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죠.
 

윌리암스가 이끈 뉴저지 넷츠는 84년에 디펜딩 챔피언인 필라델피아 식서스를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업셋시키는 이변을 연출합니다. 윌리암스는 이 시리즈에서 식서스의 센터, 모제스 말론과 매치업이 되기도 했지만, 시리즈 평균 18.6점, 15.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 승리의 1등 공신이 되지요.

85년에도, 86년에도, 87년에도, 88년에도, 그의 스탯에는 도무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때 그의 별명이 영국 런던의 명물 대형 시계탑 '빅 벤'인 적도 있습니다. 평균스탯이 별 오차가 없이 항상 한결같다는 뜻이었습니다. 부상으로 결장하는 법이 없이 매경기 38~40분을 뛰어주며, 야투율은 55~59% 사이, 득점은 16~18점, 리바운드는 첫 7시즌동안 게임당 12개 (4개 이상의 오펜스 리바운드 포함)는 꼭 잡아주던 선수였으니까요. 

점프력은 37인치(93센치)에 불과했지만, 호쾌한 덩크를 아주 자주 터뜨려 줬습니다. 코트에서 그가 뛰어다니던 모습을 보면 한 마리의 야수와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Wild Cat"이었죠.

파워 포워드란 포지션이 골밑에서 센터를 도우며 몸싸움만 해주는 단순한 역할만을 부여받던 시절, 온갖 궂은 일은 물론, 팀의 득점까지 담당하며 코트 전역에 걸쳐 다이내믹한 플레이를 펼쳐보이던 그의 등장은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1989년에 칼 말론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벅 윌리암스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파워 포워드이며, 동시에 코트에선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선수다. 그가 다른 컨퍼런스에 있어서 다행이다."

벅 윌리암스는 수비력도 훌륭했습니다. 커리어에 걸쳐 올디펜시브 퍼스트팀에 두 번, 세컨드팀에 두 번, 도합 네 번 밖엔 뽑히지 못 했지만, 간발의 차로 세컨드팀을 놓친 게 또 네 번이나 됩니다. 항상 팀을 먼저 생각했고, 라커룸의 리더였으며, 코트 위의 온갖 궂은 일은 도맡아 하는 살림꾼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무슨 마가 끼었는지 그의 팀, 뉴저지 넷츠는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정말로 재능이 넘쳐났던 올스타 장신 포인트 가드, 마이클 레이 리차드슨이 1986년 시즌 중에 약물복용 문제로 리그에서 쫓겨난 후부터 3시즌 내리 드래프트하는 선수마다 실패였고, 트레이드해오는 선수마다 부상으로 앓아 누웠습니다. 오로지 한 선수, 벅 윌리암스만이 자신의 역할을 소처럼 묵묵히 해주고 있을 때였습니다.

성실하고 조용한 수퍼스타, 벅 윌리암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팀의 감독이자 GM, 윌리스 리드(전 뉴욕 닉스의 스타 센터 출신입니다)가 오.로.지. 윌리암스를 제대로 된 팀에서 뛰어보게 해주려고 트레이드를 감행합니다. 팀은 어차피 3시즌 내내 플레이오프에도 못 오르는 팀으로 추락해버린 상태였고, 윌리암스도 나이가 30세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윌리암스를 항상 존경하고 좋아해왔던 포틀랜드의 클라이드 드렉슬러가 팀 프런트를 향해, 벅 윌리암스만 영입해주면 팀을 파이널에 올려놓을 자신이 있다며 강력하게 트레이드를 제안했습니다. 결국, 윌리스 리드와 드렉슬러의 도움(?)으로, 벅 윌리암스는 1989년에 '부상병동' 샘 보위와 트레이드가 되며 젊은 포틀랜드 팀으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당시에 이 조용한 트레이드를 눈여겨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벅 윌리암스가 입단하면서 포틀랜드의 농구가 갑자기 강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워낙에 젊고 운동능력이 뛰어난 선수들만 우글대던 팀이라 벅 윌리암스처럼 경험이 많은 터프가이가 골밑을 완전히 책임져 주자 그 시너지 효과가 엄청나게 불어났던 것입니다. 릭 애들먼 감독이 윌리암스를 '본드'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다 따로따로 놀던 블레이저스의 어린 선수들을 하나로 묶어준 접착제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죠. 드렉슬러는 윌리암스를 '슈가'라고 불렀습니다. 아이스 커피를 마실 때에 마지막에 넣는 액체설탕처럼 팀 전체에 녹아들어 팀의 경기력 전체를 살려주는 선수란 뜻이었습니다.

Buck Williams 89
Buck Williams 89 by Vedia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포틀랜드에 영입이 되자마자 벅 윌리암스는 세 시즌 연속으로 All-NBA Defensive 팀에 선정이 됩니다. 칼 말론, 숀 캠프, 탐 체임버스, 로이 타플리, 오티스 소프, 데이빗 로빈슨, 하킴 올라주원과 같은 득점력 좋은 서부의 올스타 빅맨들을 상대로 그는 맹활약을 합니다. 그리고 2년 연속으로 야투 성공률 1위의 자리에도 오르게 되지요. 

팀의 성적도 그에 비례했습니다. 1990년에 59승의 성적으로 파이널 진출, 1991년엔 리그 최고의 승률인 63승과 함께 서부 결승 진출, 92년에도 파이널 진출... 비록 팀을 우승으로 이끌지는 못 했지만, 그가 합류하기 전까진 네 시즌 연속으로 1라운드에서 탈락하던 팀이 포틀랜드였음을 감안해 보면 그의 팀 합류가 가져온 위력이 얼마나 컸는 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게 되지요.

대신, 포틀랜드에 합류하면서 벅 윌리암스는 스스로 롤플레이어가 됐습니다. 팀에 뛰어난 득점원이 많았고, 모두들 열심히 해보자는 의지 또한 강했기 때문에 윌리암스는 철저히 자신을 죽이며 골밑 수비와 리바운드에만 신경을 씁니다. 그래서 90년대의 그가 별다른 재능이 없이 골밑에서 몸싸움만 해대는 '노가다' 선수의 이미지로 굳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89년과 90년에 나온 대부분의 권위있는 농구잡지들 - 이를테면 Basketball Digest, ESPN Pro Basketball, Street & Smith's Pro Basketball, The Sporting News 등등 - 에선 80년대 최고의 파워 포워드로 윌리암스를 선정하는 데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80년대는 찰스 바클리, 칼 말론, 케빈 맥헤일이란 역대급 파워 포워드들 3인이 쏟아져 나온 시기이기도 했으나 (물론, 윌리암스도 동포지션 역대 10위 안에 드는 선수입니다만) 이들의 전성기의 시작은 80년대 중반이나 후반이었죠. 윌리암스의 경우는 81년 데뷔시즌을 시작으로 10년 이상 꾸준히 그 전성기 기량이 유지된 케이스이기 때문에 80년대만 놓고 봤을 때는 윌리암스가 최고였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어느 특정한 시기를 떠나 윌리암스의 플레이 스타일이란 것이 어느 팀에 가든 완전히 녹아들 수 있었고, 이 선수의 내구성이나 이타적인 자세, 성실함, 운동능력 등이 많은 선수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자산이었음을 볼 때, 이러한 부분들만 놓고 봐도 참으로 '완소'의 대표적인 선수가 아니었겠나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윌리암스는 커리어 통산 오펜스 리바운드가 4,526개로 모제스 말론과 로버트 패리쉬 다음인 역대 3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4위가 데니스 로드맨이고 5위가 찰스 바클리입니다. 그의 진정한 선수로서의 가치는, 수비 시엔 상대팀 빅맨들에게 절대로 자리를 내주지 않는 포기할 줄 모르는 박스아웃 근성, 그리고 공격 시엔 끊임없이 도전하는 공격 리바운드에 대한 불굴의 투지에 있었습니다.

정신력, 체력, 내구력, 이 세 가지가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면서 그를 위대한 블루칼라워커형 파워 포워드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17년 동안 1,300 여 게임에 출전한 벅 윌리암스는 13점, 10리바운드, 그리고 55%의 야투율을 커리어 평균으로 기록했습니다.

90년대 초반, 원조 드림팀이 결성됐을 때, 그 팀의 사령관이었던 척 데일리 감독이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비록 이 드림팀에 뽑히지는 못 했지만, 이 팀에 어울리고, 또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에 들어오는 것이 그야말로 마땅한 선수를 하나만 더 뽑으라면, 저는 주저없이 벅 윌리암스를 뽑겠습니다." 자신의 선수인 아이재야 토마스가 팀에 선정되지 못 했는데도, 척 데일리 감독은 이러한 말을 남겼습니다. 벅 윌리암스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타선수들 사이에서도 덕망이 높았던 윌리암스는 90년대 현역시절에 NBA 선수협회 노조위원장으로서 활약하며 선수들과 협회 사이에 생겨날 수 있는 갈등을 최소화시키는 역할도 참 잘 해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990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피닉스 선즈와의 6차전 원정경기에서 마지막 결정적인 스틸과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팀을 파이널에 올린 그가 공을 체육관 천정을 향해 높이 던져 올리는 순간, 모든 블레이저스 선수들이 그를 코트 바닥 위에 눕히고 덮치며 기뻐하던 모습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파이널 진출이 확정되고, 라커룸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자축하는 블레이저스 선수들에게로 중계 캐스터가 인터뷰를 위해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드렉슬러에게 질문했습니다.

캐스터: "현재 기분이 어떠십니까?"

드렉슬러: "벅 윌리암스!"

캐스터: "예. 올 시즌, 벅 윌리암스 선수의 활약이 정말 컸습니다. 그렇죠?"

드렉슬러: "벅 윌리암스!"

캐스터: "파이널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 지...?"

드렉슬러: "벅 윌리암스! 포틀랜드, 예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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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 윌리암스의 수상경력

ACC Rookie of the Year: 1979
ACC All-ACC (2nd team): 1980, 1981
USA Olympic Team: 1980

NBA All-Star: 1982, 1983, 1986
NBA All-NBA (2nd team): 1983
NBA Rookie of the Year: 1982
NBA All-Rookie (1st team): 1982
NBA All-Defense (1st team): 1990, 1991
NBA All-Defense (2nd team): 1988, 1992
NBA Field Goal Percentage leader: 1991 (60.2%), 1992 (60.4%)
NBA Minutes Played leader: 1985 (3182)
NBA Offensive Rebounds (total) leader: 1984 (355)
NBA Games Played leader: 1985 (82), 1987 (82), 1990 (82), 1995 (82)


요즘은 왜 이런 '쾌남' 파워포워드가 나오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Nets Legend Buck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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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오프시즌에는 상위권 팀들의 전력 강화가 두드러졌다. 경제 한파 및 소위 '2010 프로젝트' 올인 등으로 인해 당장 우승을 노리지 않는 팀들은 이번 여름 돈을 쓰기보다는 미래를 위해 비용을 절감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수요자가 발을 뺀 오프시즌 시장에는 유례 없는 찬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이런 환경은 지금 당장 전력을 강화해 우승하고자 하는 우승권 팀들에게는 오히려 절호의 기회였다.

샐러리 절감을 노리는 팀들에게 만기계약자를 보내고 즉시전력감을 받아오거나 수요 부족으로 몸값이 크게 떨어진 자유계약선수들을 끌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라마 오돔을 지키면서도 론 아테스트를 미드레벨 익셉션만으로 영입한 지난 시즌 우승팀 LA 레이커스나 리처드 제퍼슨, 안토니오 맥다이스를 영입해 빈틈없는 라인업을 갖춘 샌안토니오 스퍼스, 히도 터콜루를 잃었지만 빈스 카터 등을 영입해 손익계산 플러스를 기록한 올랜도 매직, 라쉬드 월러스를 영입해 골밑을 강화한 보스턴 셀틱스 등이 이런 과정을 통해 슈퍼 팀으로 올라섰다.

그 중에서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샤킬 오닐 영입은 오프시즌 초반 최대의 이슈였다. 6월 24일(이하 미국 현지시작) 대니 페리 클리블랜드 단장은 벤 월러스와 사샤 파블로비치, 2010년 2라운드 지명권과 약간의 현금을 피닉스 선즈에 보내고 오닐을 영입하는 대형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이번 오프시즌 클리블랜드가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자산인 월러스+파블로비치 만기계약 카드를 오닐에게 쓴 것이다. 드래프트 전날 전해진 이 뉴스는 수많은 NBA 팬들을 전율케 했다.



영입 과정

사실 오닐의 클리블랜드 행은 지난 시즌부터 꾸준히 논의되어오고 있었다. 피닉스의 플레이오프 진출이 점점 멀어지던 지난 2월, 트레이드 마감일이 다가오자 오닐의 거대 계약을 부담스러워하는 피닉스를 상대로 페리 단장이 트레이드를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과거 샌안토니오에서 한솥밥을 먹은 바 있는 페리 단장과 스티브 커 피닉스 단장은 클리블랜드의 만기계약 선수들과 오닐의 트레이드를 진지하게 논의했으나, 페리 단장이 아직 계약이 1년 남아있던 월러스를 제시한 반면 커 단장은 계약 마지막 해였던 월리 저비악을 원하는 바람에 난항을 맞았다. 두 단장은 한 테이블에 앉아 제3의 팀을 끌어들여 트레이드를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 했지만 결국 결렬되고 말았다.

따라서 클리블랜드가 플레이오프에서 인사이드 파워의 약세를 드러내며 올랜도에게 패하자 오닐 루머가 고개를 든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오닐을 비롯해 마커스 캠비, 타이슨 챈들러, 라쉬드 월러스, 찰리 빌라누에바, 카를로스 부저 등 리그의 유수한 빅맨들이 클리블랜드와 관련된 루머에 휩싸였다. 페리 단장은 이 모든 루머를 부정하면서도 협상 가능성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 묘한 여운을 남겼다.

보름 정도가 지나자 오닐의 행선지가 조만간 결정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피닉스가 오닐을 원하는 팀들과 협상중인데, 클리블랜드를 비롯해 댈러스 매버릭스와 시카고 불스 등이 그 대상이라는 것이었다. 샐러리 절감 효과는 월러스/파블로비치를 내놓은 클리블랜드가, 전력 강화 효과는 브래드 밀러를 내놓은 시카고가 비교우위를 지니고 있었다. 피닉스는 댈러스 및  시카고와의 협상 사실을 지렛대 삼아 클리블랜드의 '2009년 히트상품' 딜론테 웨스트를 요구했고, 페리 단장은 당연히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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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4413 by Keith Allison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6월 22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클리블랜드 스포츠 전문기자 브라이언 윈드호스트가 '빅 딜이 임박했으며 수일 내로 성사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고, 이제 팬들의 이목은 오닐 영입 가능성에 집중됐다. 페리 단장은 제3의 팀을 끌어들여 삼각 딜을 모색하는 한편, 오닐이 아닌 다른 선수의 영입 가능성을 흘리며 커 단장을 압박해갔다.

샌안토니오의 제퍼슨 영입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인 6월 24일 오후 11시 50분, 트레이드 당사자인 오닐이 자신의 트위터에 '이제 (우승)반지 하나를 더 얻을 시간'이라는 글을 올리며 자신의 클리블랜드 행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비판한 칼럼니스트 마크 잭슨을 비난했다. 오닐이 트레이드를 통보받은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고, 곧이어 ESPN 홈페이지에 오닐의 클리블랜드 행 뉴스가 메인 기사로 올라왔다. 넉 달에 걸친 긴 협상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입단 기자회견에 참석해 댄 길버트 구단주로부터 클리블랜드의 겨울을 뒤덮는 눈을 치울 대형 삽을 선물받은 오닐은 이번 시즌 목표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 마디로 대답했다.

"Win a Ring for the King."

왕(르브론)의 팀에 우승하러 왔음을 분명히 한 입단 일성이었다.



손익평가

오닐 트레이드의 세부사항은 다음과 같다.

오닐(21백만 달러)<->월러스(14백만 달러)+파블로비치(4.9백만 달러)+2010년 2라운드 지명권+현금 0.5백만 달러

오닐을 데려오는 댓가로 클리블랜드가 내놓은 것 중 월러스는 하락세가 뚜렷했고 파블로비치는 사실상 로테이션 밖의 선수였으며, 선수층이 두터운 클리블랜드에서 내년 2라운드 지명권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지도 미지수였다. 다시 말해 클리블랜드가 오닐 트레이드로 잃은 것은 사실상 없었던 셈이다. 당초 트레이드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던 웨스트, J.J. 힉슨, 테런스 킨지, 2009년 드래프트 30번 지명권 중 아무 것도 잃지 않았다.

1972년생으로 가치 평가에 '건강하기만 하면'이라는 단서가 붙게 된 오닐은 그야말로 건강하기만 하면 클리블랜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다. 인사이드 득점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클리블랜드에 오닐이 가세한 것은 분명히 전력 플러스 요인이다. 르브론 제임스는 자신의 프로 경력을 통틀어 최고의 센터와 경기할 수 있게 됐다며 이 트레이드를 크게 환영했다. 오프시즌에 오닐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런 선수와 함께 뛰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할 정도다.

오닐의 영입은 클리블랜드의 게임을 크게 바꿀 것이다. 클리블랜드는 그동안 로포스트에서 볼을 잡고 움직일 수 있는 선수가 거의 없었는데, 그 자리에 지난 20년간 로포스트에서 가장 위력적이었던 선수가 가세한 것이다. 이제 클리블랜드는 르브론이나 모리스 윌리암스가 외곽에서 볼을 잡고 공격을 시작하는 대신 로포스트에 있는 오닐에게 볼을 넘긴 후 오프더볼 무브를 통해 공격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리그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클리블랜드 외곽슈터진은 그 위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게 됐다. 오닐은 최고의 로포스트 득점원일 뿐아니라 킥아웃 능력에서도 리그 최고를 다투는 빅맨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르브론의 골밑 돌파를 통해서만 볼을 받던 슈터진은 이제 오닐을 통해서도 슛찬스를 얻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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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157 by jmb1977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클리블랜드는 지난 시즌 골밑에서 1:1 수비를 해줄 수 있는 빅맨이 없어 고전해야 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리그 최고 수준의 헬프디펜스 능력을 키웠지만, 헬프디펜스 자체가 자기 수비수를 버려두고 하는 수비다보니 볼이 잘 도는 팀을 상대로는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플레이오프에서 올랜도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도 골밑의 하워드에 너무 신경을 쓰다가 라샤드 루이스 등 올랜도 슈터진에게 무차별 폭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로포스트에서 여전히 강력한 1:1 수비력을 보여주는 오닐이 가세하면서 이런 문제점은 대폭 개선될 전망이다.

결과적으로 벤치가 강화된 것도 커다란 플러스 요인이다. 오닐에게 선발 자리를 넘겨주고 벤치에서 나오게 될 지드루너스 일가우스카스는 리그 대부분의 팀에서 주전 센터로 뛸 수 있는 선수다. 지난 시즌 벤치 멤버의 경기력 부재로 어려움을 겪었던 클리블랜드에게 일가우스카스의 벤치 출전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도움을 받을 선수는 에이스 르브론이다. 르브론과 오닐이 함께 뛴다는 것은 볼을 지니고 있을 때 더블팀을 해야 하는 선수 두 명이 동시에 코트에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제 과거처럼 스윙맨 두 명이 르브론을 더블팀하고 빅맨 한 명이 드라이브인 경로에 끼어들어 막는 것은 매우 힘들어졌다. 그 뒤에는 골밑 마무리 능력으로는 역대 최고를 다투는 오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닐 역시 입단 기자회견에서 상대팀들에게 "이제 더블팀은 없다. 여기 밑줄 백 번 그어라. 이제 더 이상 더블팀 올 수는 없다." 고 강조했다. 시간이 흐르며 어느 정도 정립돼가던 르브론 수비법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은 상대팀들에게 커다란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잃은 것은 사실상 없는 반면 기대 수익은 크다는 점에서 클리블랜드의 이번 트레이드는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새로 생긴 과제

오닐 영입은 분명히 팀 전력에 보탬이 됐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생겼다.

상대의 2:2 플레이, 특히 하이포스트 픽앤롤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오닐은 전성기에도 2:2 수비에 매우 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2:2 공격을 막으려면 빅맨의 기동력이 필수적인데 다소 발이 느린 오닐이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피닉스가 샌안토니오의 팀 던컨을 넘기 위해 야심차게 오닐을 영입했다가 실패한 이유도 던컨이 파커나 지노빌리와 2:2 플레이로 오닐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클리블랜드가 오닐을 영입한 가장 큰 이유인 올랜도의 드와이트 하워드도 1:1 못지 않게 2:2 플레이를 많이 하는 편이다. 오닐을 도와줄 최적화된 수비 전술이 필요하다.

LeBron James
LeBron James by Keith Allison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르브론과 오닐이 최대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전술도 필요하다. 르브론의 주무기는 어디까지나 골밑 돌파기 때문에 골밑에서 오닐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닐은 르브론의 프로 시절 뿐아니라 농구 경력 전체를 통틀어서도, 유소년 리그 때 한 팀이었던 리온 포우 이후 처음으로 함께 뛰게 된 로포스트 득점원이다. 르브론 자신이 빅 센터와 함께 뛰는 법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오닐 역시 페니 하더웨이, 코비 브라이언트, 드웨인 웨이드 등 스윙맨을 가장 잘 살린 센터이긴 하지만 르브론처럼 돌파 비중이 높은 스윙맨과 뛰어본 적은 없다. 오닐이 르브론의 돌파 경로를 가로막고 볼을 요구하는 일이 많아질 경우 팀워크가 깨질 가능성도 있다.

이 둘을 조율해야 할 클리블랜드의 공격 코치는 현재 공석 상태다. 지난 시즌 볼무빙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클리블랜드가 효율적인 공격팀이 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존 쿠에스터 코치가 디트로이트 감독으로 영전했기 때문이다. 새 공격 코치 후보 0순위인 마이크 말론 코치가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닐이 골밑으로 몰아준 수비진의 헛점을 공략할 수 있는 '스트레치 파워포워드' 부재도 과제다. 지금까지 오닐과 좋은 호흡을 보인 파워포워드는 모두 중거리 슛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올랜도 시절의 호레이스 그랜트, 레이커스 시절의 그랜트와 로버트 오리, 마이애미 시절의 유도니스 하슬렘 등은 모두 오닐을 막느라 쏠린 수비진을 공략할 수 있는 중거리 슛을 지니고 있었다. 피닉스에서 호흡을 맞췄던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의 경우 뛰어난 중겨리 슛 능력이 있었지만 오닐과 공격 템포를 맞추는 데 실패하며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했다.

이번 시즌 선발 파워포워드로 오닐과 함께 나올 앤더슨 바레장은 중거리슛 능력이 제로에 가깝다. 물론 올 여름 FIBA 아메리카 선수권대회에서 괜찮은 슈팅능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NBA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여줄 지는 미지수다. 지난 시즌 클리블랜드의 파워포워드 중 유일하게 중거리 슛을 갖췄던 조 스미스는 애틀랜타 호크스에 새 둥지를 틀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법, 오닐이 확보해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안이 필요하다.



작년 여름 조 스미스, 데이먼 존스라는 만기계약 카드로 모 윌리암스를 얻어왔던 페리 단장은 올 여름엔 월러스, 파블로비치 만기계약 카드로 오닐을 데려와 2연타석 홈런을 쳤다. 르브론이 사실상 계약 마지막 해를 맞는 이번 시즌 오닐은 '반드시 우승' 모드인 클리블랜드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We are all Witness(우리 모두 산 증인)'라는 모토 아래 르브론의 왕좌등극의 목격자가 되기를 기대했으나 지난 시즌 뜻을 이루지 못한 클리블랜드 팬들에게 오닐은 'Witness Protection(증인 보호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다.

클리블랜드의 오프시즌 첫 움직임이자 최대 자산을 이용한 움직임이 오닐 영입이었다는 것은 이후 전력 강화 움직임이 오닐이라는 대전제 아래 이뤄질 것이란 뜻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다음 순서에서는 클리블랜드가 오닐 이후 FA로 영입한 선수들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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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이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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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CARES

사회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탄생한 NBA CARES가 이번 NBA 아시아 챌린지를 통하여 처음으로 한국에서 펼쳐졌다.
 
NBA CARES는 지난 해 뉴올리언즈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흔적도 없앨 만큼, 지역사회에 큰 공헌을 보태주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2009 아시아 챌린지에서는 처음으로 지체 장애우들을 대상으로 클리닉을 시행하였다.

참여한 선수들의 얼굴에서는 단순한 행사가 아닌 진정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프로의식을 엿볼수가 있었다. 지체 장애우들을 상대로 하나하나 세심하게 가르치는 선수단과 의욕적으로 그에 따르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NBA CARES가 왜 탄생했는지 말해주었다.

비록 기본적인 패스와 슛 연습 위주의 단순한 프로그램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상호간에 함께 호흡할 수 있어 행복한 프로그램이었다.

KBL측에서도 지역사회와 리그가 공생할 수 있는 유익한 프로그램을 적극 장려하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비록농구 외적인 행사이긴 하지만 대외적인 이미지 개선을 도모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프시즌에 불려나와 귀차니즘이 가득했던 선수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이러한 선진문화의 정착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던 퍼포먼스와 팬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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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치어리더와 마스코트다.

점차 발전하고 있지만 한국의 치어리더들은 여전히 정형화 된 틀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느낌이다. 반면 NBA 치어리더들은 차별화된 퍼포먼스를 연이어 선보이며 스케일에서 격을 달리했다.
 
체조선수 출신으로 알려진 한 치어리더는 10번 연속 백덤블링과 함께 묘기농구단에서나 보여 줄 법한 트램플린을 이용한 덩크 퍼포먼스를 보여 체육관을 달궜다.

흑인 특유의 탄력도 한 몫 했겠지만 그들의 당당함과 적극적인 호응 이끌기가 인상적이었다. 관중석으로 뛰어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팬에게 다가가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뉴저지 네츠의 마스코트 슬라이 폭스의 장난스러운 퍼포먼스도 기억에 남는다. 아나운서와 해설자에게 서슴없이 장난을 거는 모습은 국내에서는 보기드문 퍼포먼스로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블라디 디박이 경기에서 착용했던 올스타 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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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선수들의 팬서비스와 프로정신

앞서 1부에서도 언급한 부분이다.

인터뷰에서는 노쇠하고 현역에서 물러난지 오래됐기 때문에 안 될 것이라고 대답하던 전설들은 팬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들은 현역선수들에게 프로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팬들은 그들의 전성기 모습을 원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자신들의 가장 빛났던 시절들을 떠올리고, 기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것쯤은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루즈볼을 살리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으며, 힘겨운 덩크슛도 무리하여 시도했던 것이다. 이들은 팬들에게 즐거움을, 국내 현역선수 선수들에게는 프로가 무엇인지 값진 메세지를 선사했다.

게임이 끝나고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팬들에게 보여준 서비스 정신도 일품이었다. 자신이 입고 뛴 져지를 아낌없이 던져주는 모습에서 진정 팬들을 아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그들에게는 오늘이 수많은 행사 중의 하나지만 팬들에게는 평생에서 잊지 못할 하루가 될 수도 있다. 어린 농구팬들에게는 이만한 추억거리도 없을 것이다.

인터뷰 자세도 확고한 프로의식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동대문에 위치한 나이키 훕시티 싸인회에서는 팀 하더웨이가 시종일관 질문자와 눈을 마주치면서 성실함으로 호평을 받았다. 인터뷰 내내 질문자의 눈을 마주치면서 질문을 받고 답하였다.

팬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NBA측 선수들 뿐 아니라 D-리그 선수들까지, 필자를 비롯한  모든 팬들의 눈을 응시하며 싸인을 해주고 져지를 던져주었다. 이는 미국 선수들에게 상호간의 소통에서 중요시여기는 부분이고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다.

팬으로서 4일이라는 시간동안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느낀 점을 써보았다. 그들이 귀찮아 할 만큼 집요하게 뒤를 쫓았지만 ‘나’라는 팬 한명 각인시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벤트였지만 다음 행사에서는 보다 더 많은 팬들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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